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막스 엘슈타인(Max Elstein)에 의하여 나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소개받았다. 그는 관찰적 관점을 강조도 비판도 하지 않았지만, 특별 이론의 문제를 (내가 염려하는 바, 통상적인 비-역사적 방식으로 마이클슨[Michelson]과 몰리[Morley]의 실험에 의하여 제기된 문제로서) 내가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었고 그는 나와 함께 민코프스키(Minkowski)가 제시한 해결책의 형태를 토론했다. 내가 진지하게 상대성에 대하여 조작주의적 접근방식을 취하지 못하도록 막은 것은 이 조치였을 것이다: 우리는, “관찰자”를 주목하지 않고 아인슈타인의 1905년 논문을 실재론자로서 읽을 수 있다; 혹은 대안적으로, 관찰자와 관찰자가 수행하는 것을 항상 다루면서 사람들은 그것을 실증주의자나 조작주의자로서 읽을 수 있다.
아인슈타인 자신이 여러 해 동안 독단적 실증주의자이자 조작주의자였다는 것은 흥미로운 사실이다. 그는 나중에 이 해석을 배척했다: 그는 1950년에 나에게, 이것이 자신이 저지른 최악의 오류이기에 자신이 후회한다고 말했다. 그 오류는 그의 인기 저서인 상대성: 특수 및 일반이론(Relativity: The Special and the General Theory)에서 정말로 진지한 형태를 띠었다. 거기 22쪽에서 (독일어 원본에서 14쪽 이하)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독자가 이 요점에 관하여 완벽하게 확신할 때까지 더 멀리 나아가지 말 것을 나는 독자에게 요구하고 싶다.” 그 요점은 개괄적으로, “동시성”은 틀림없이 정의(定義)되는데 ㅡ 그리고 조작적 방법으로 정의된다 ㅡ 왜냐하면 그렇지 않다면 “내가 동시성에 대한 서술에 의미를 부착할 수 있다고 생각할 때 나 자신을 기만하기... 때문이다”. 혹은 달리 표현하여 어떤 용어는 조작적으로 틀림없이 정의되거나 그렇지 않으면 그 용어는 무의미하다.a (요약하면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논고[Tractatus]의 영향을 받아서 그리고 매우 독단적인 형태로 비엔나 학파에 의하여 나중에 전개된 실증주의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의 이론에서 상황은, 단지, 관성계(inertial system)에 (혹은 “정태계[靜態系: stationary system]”) 대하여 사건은 뉴튼 이론에서와 꼭 마찬가지로 동시적이거나 동시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다음 이행법칙(移行法則: transitivity law)이 (Tr) 성립한다:
(Tr) 관성계에서, 사건 α가 b와 동시적이고 b는 c와 동시적이라면 α는 c와 동시적이다.
그러나 α와 b가 동시적인 체계가, b와 c가 동시적인 체계와 동일하지 않다면, (Tr)은 세 가지 떨어진 사건의 사건 발생 시간에 대하여 일반적으로 성립하지 않는다: (Tr)은, 몇 가지 사건이 다른 체계들에서 다시 말해서 상대적으로 움직이는 체계들에서 시간 배열이 되는 떨어진 사건들에 대하여 성립하지 않는다. 이것은, 상대적으로 움직이는 두 가지 (관성) 체계에 관하여 광속의 불변이라는 원리 다시 말해서 우리가 로렌츠변환(Lorentz Transformation)을 연역하도록 허용하는 원리의 결과이다. 다양한 (관성) 체계에서 만들어지는 사건의 시간 배열에 (Tr)의 적용과 로렌츠변환이 양립될 수 없다고 부주의한 사람들에게 경고하기 위함을 제외하고, 심지어 동시성을 언급한 필요가 없다.
조작주의를 여기서 도입할 이유가 없고 조작주의를 강조할 이유는 훨씬 더 없다고 알려질 것이다. 게다가 아인슈타인이 1905년에 ㅡ 적어도 상대성에 관한 자기 논문을 집필할 때 ㅡ 마이클슨(Michelson)의 실험을 인지하지 못했기 때문에, 아인슈타인에게 광속의 불변에 대하여 자신이 이용할 수 있는 증거가 부족했을 뿐이다.
그러나 탁월한 많은 물리학자는 아인슈타인의 조작주의에 의하여 큰 인상을 받았는데 그 조작주의를 그들은 상대성의 필수적 부분으로 간주했다 (아인슈타인 자신이 오랫동안 그렇게 한 바와 같이). 그리하여 조작주의는 하이젠베르크의 1925년 논문에 대한, 그리고 전자 통로라는 혹은 전자에 대한 고전적 위치-겸-운동량이라는 관념이 무의미하다는 널리 수용된 그의 제안에 대한, 영감이 되었다.
나로서는 여기에 나의 실재론적 인식론을, 양자-역학적 형식론에 대한 하이젠베르크의 주관론적 해석의 비판에 적용함에 의하여 그 인식론을 시험할 이유가 있었다. 보어(Bohr)에 관하여 나는 탐구의 논리(Logik der Forschung)에서 말하지 않았는데 왜냐하면 그가 하이젠베르크보다 덜 명시적이었으며 그리고 그가 혹시 믿지 않는 견해들로써 그에게 부담 지우기를 내가 주저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조작주의적 강령을 토대로 새로운 양자역학을 세운 것은 하이젠베르크였고 그 성공으로 인하여 이론물리학자 다수가 실증주의로 그리고 조작주의로 변신한 것은 하이젠베르크 때문이었다.
ㅡ 칼 포퍼, ‘끝없는 탐구(Unended Quest)’, 1993년, 96-8쪽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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