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납은 없다
나는 여기서, 나의 최초 발간 저서가 된 저 개요의 개요를 제시할 수 없다. 그러나 내가 언급할 한두 가지 요점이 있다. 지식이론을 제공하려는 의도 그리고 동시에 방법에 ㅡ 과학의 방법 ㅡ 관한 논문이 되려는 의도가 그 저서에 담겨있었다. 그 조합은, 우리의 이론과 우리의 이론이자 우리의 가설이며 우리의 추측으로 구성되는 것으로 인간의 지식을 간주하기 때문에, 가능했다; 우리의 지성적 활동의 산물로서 간주하기 때문에 가능했다. 물론 “지식”을 보는 다른 방식이 있다: 우리는 “지식”을 생명체의 주관적 상태인 주관적 “정신상태”로서 간주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지식을 서술의 체계로서 취급하기로 ㅡ 토론에 부쳐진 이론 ㅡ 선택했다. 이 의미에서 “지식”은 객관적이다; 그리고 그런 지식은 가설적이거나 추측성이다.
이런 방식으로 지식을 보게 되자 나는 흄(Hume)이 지녔던 귀납의 문제를 다시 언명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객관적 재언명에서 귀납의 문제는 더 이상 우리의 믿음의 ㅡ 혹은 우리의 믿음에 대한 합리성의 ㅡ 문제가 아니라 단칭명제와 (“관찰될 수 있는” 단일한 사실에 대한 서술) 전칭명제 사이의 논리적 관계의 문제이다.
이런 형태로, 귀납의 문제는 해결이 가능해진다: 전칭명제가 단칭명제로부터 연역될 수 없기 때문에 귀납은 없다. 그러나 전칭명제는, 관찰될 수 있는 사실에 대한 서술과 충돌할지도 모르기 때문에, 단칭명제에 의하여 반박될 것이다.
게다가, 심지어 우리의 이론이 시험에 부쳐지기 전에 우리는 객관적 의미에서 “나은” 그리고 “더 나쁜” 이론을 이야기할 것이다; 나은 이론은 더 큰 내용과 더 큰 설명력을 (두 가지 모두 우리가 해결하려고 시도하고 있는 문제에 상대적이다) 지닌 이론이다. 그리고 이것들은 또한 시험 가능한 나은 이론이라고 나는 밝혔다; 그리고 ㅡ 그 이론이 시험들을 견딘다면 ㅡ 더 잘 시험된 이론이다.
귀납의 문제에 대한 이 해결책으로 인하여 시행착오 방식이자 과학의 방법에 대한 새로운 이론인 비판적 방법에 대한 분석이 발생한다: 우리가 어디에서 잘못을 저질렀는지 탐지하기 위하여, 대담한 가설들을 제시하여 그 가설들을 가장 엄격한 비판에 부치는 방법에 대한 분석이 발생한다.
이 방법론적 관점에서, 우리는 문제로써 시작한다. 우리는 어떤 문제 상황에 빠져있음을 항상 발견한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가 해결할 수 있기를 희망하는 문제를 선택한다. 해결책은 항상 잠정적인데 이론이자 가설인 추측을 본질로 삼는다. 경합하는 다양한 이론은, 그 이론들이 지닌 결점을 탐지하기 위하여 비교되고 비판적으로 토론된다; 그리고 항상 변하고 항상 미결정적인 비판적 토론의 결과는 “당시의 과학(the science of the day)”으로 지칭될 것이 된다.
그리하여 귀납은 없다: 반증이나 “오류판정”을 통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사실로부터 이론으로 결코 논증할 수 없다. 과학에 대한 이 견해는 다윈적인 것으로서, 선택적인 것으로서 서술될 것이다. 대조적으로 우리가 귀납에 의하여 나아간다고 주장하는 이론, 혹은 검증을 (오류판정이라기보다는) 강조하는 방법을 사용하는 이론은 라마르크적(Lamarckian)이다: 그 이론은, 환경에 의한 선택이라기보다 환경에 의한 지시(instruction)를 강조한다.
귀납의 문제에 대하여 제시된 해결책은 더 오래된 문제를 ㅡ 우리가 지닌 믿음의 합리성이라는 문제 ㅡ 해결하는 방법을 또한 밝힌다고 언급될 것이다 (이것이 탐구의 논리[Logik der Forschung]의 주장은 아니었을지라도). 이유인즉 우리는 먼저 믿음이라는 관념을 행위라는 관념으로 대체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행위들이 (혹은 미-행위들[inactions]), 비판적인 과학적 토론과 관련하여 당시 우세하던 상태에 따라서 수행된다면, “합리적”이라고 우리는 말할 것이다. “합리적”에 대하여 “비판적”보다 나은 동의어는 없다. (믿음은 물론 결코 합리적이지 않다: 믿음을 유보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아래 주석226과 비교하라.)
ㅡ 칼 포퍼, ‘끝없는 탐구(Unended Quest)’, 1993년, 85-7쪽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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