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겐슈타인과 싸움
그러나 나의 사고방식, 나의 관심 그리고 나의 문제가 많은 영국 철학자의 마음에 전혀 들지 않았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있을 수 없었다. 이것이 왜 그랬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몇몇 경우에 그것은 아마도 과학에 대한 나의 관심 때문이었을 것이다. 다른 경우에서 그것은 아마도 실증주의를 향한 그리고 언어철학을 향한 나의 비판적 태도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것으로 인하여 나는 비트겐슈타인과 조우하게 되는데 그 조우에 관하여 나는 아주 다양하고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들었다.
1946-47년 학기 초 케임브리지 대학의 도덕학 클럽의 비서로부터 어떤 “철학적 수수께끼(philosophical puzzle)”에 논문 한 편을 강연해달라는 초청을 내가 받았다. 이것이 비트겐슈타인의 언명이었다는 것과 그것 배후에, 철학에 진짜 문제는 없고 언어학적 수수께끼만 있다는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적 논지가 있다는 것은 물론 분명했다. 이 논지가 내가 아주 혐오하는 논지 중 하나였기 때문에 나는 “철학적 문제는 있는가?”에 관하여 강연하기로 결심했다. 그 비서에 의한 “어떤 철학적 수수께끼를 서술하는” 논문을 강독해달라는 요청에 나의 놀라움을 표현함으로써 나의 논문을 (1946년 10월 26일 킹스 칼리지의 R. B. 브레이스웨이트[Braithwaite] 방에서 강독된) 내가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철학적 문제가 존재한다는 것을 함축적으로 부인함으로써 초청장을 보낸 누구도 진정한 철학적 문제에 의하여 초래된 논쟁에 아마도 부지불식간에 편을 들었다고 지적했다.
이것에, 나의 주제에 대한 도전적이고 다소 경박한 소개로서만 의도가 있었음은 내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바로 이 시점에서 비트겐슈타인은 펄쩍 뛰면서 큰소리로 다음과 같이 말했는데 내가 보기에 화가 났다: “비서는 정확하게 자기가 지시를 받은 대로 행동했다. 그는 나 자신의 지시를 근거로 행동했다.” 나는 이것에 개의치 않고 계속 말했다; 그러나 밝혀진 바와 같이, 적어도 청중으로서 비트겐슈타인을 칭송하던 사람 중 몇몇이 그것을 주목하고 결과적으로 비서에 대한 엄중한 불평이자 농담의 의도가 있던 나의 비평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의사록에 나타나는 바와 같이, 비서 또한 그랬는데 의사록에 그는 그 사건을 각주를 붙여 보고한다: “이것이 클럽의 초청 형식이다.”
그러나 진정한 철학적 문제가 없다고 내가 생각한다면 나는 틀림없이 철학자가 아닐 터라고 나는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많은 사람 혹은 아마도 모든 사람이, 많은 아니면 혹시 모든 철학적 문제에 대하여 생각 없이, 옹호될 수 없는 해결책들을 채택한다는 사실로 인하여 철학자가 되는 것에 정당성이 주어진다고 나는 말을 이어갔다. 비트겐슈타인은 다시 펄쩍 뛰어 나를 제지하고 수수께끼와 철학적 문제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상세하게 말했다. 내가 보기에 합당했던 어느 순간 나는 그의 말에 끼어들어 다음과 같은 철학적 문제에 관하여 내가 준비한 목록을 주었다: 우리의 감각을 통하여 사물을 우리가 아는가?, 우리는 귀납에 의하여 우리의 지식을 습득하는가? 이것들을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적이라기보다 논리적이라고 배척했다. 그러자 나는 그가 수학적으로서 배척한 문제인, 잠재적이거나 혹시 심지어 실재적 무한성이 존재하는지의 문제를 언급했다. (이 배척 사실은 의사록에 등재되었다.) 그 사람 다음 나는 도덕적 문제와 도덕적 규칙의 성립 문제를 언급했다. 그 시점에서 비트겐슈타인은 난롯가에 앉아서 자기 주장을 강조하기 위하여 지휘자의 지휘봉처럼 간혹 자신이 사용한 부지깽이를 신경질적으로 놀리고 있었는데 나에게 도전적으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도덕적 규칙의 사례를 제시하시오!” 나는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부지깽이로 강사를 위협하지 않는 것.” 그러자 비트겐슈타인은 화를 내면 부지깽이를 내던지고 문을 큰 소리를 내며 닫고 거칠게 방을 나갔다.
나는 정말로 매우 미안했다. 비트겐슈타인에게 도발하여 진정한 철학적 문제가 없다는 견해를 옹호하기를 바라고 이 쟁점을 근거로 그와 싸우기를 바라서 내가 케임브리지에 갔음을 나는 인정한다. 그러나 그를 화나게 하려는 의도가 나에게는 결코 없었다; 그래서 그가 농담을 알아보지 못한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내가 농담하고 있었다고 그가 아마도 정말로 느꼈고 그를 화나게 만든 것은 그것이었다고 나는 나중에야 깨달았다. 그러나 내가 나의 문제를 가벼운 마음으로 다루기를 원했을지라도, 나는 진지했다 ㅡ 아마도 비트겐슈타인 자신보다 더 진지했는데 왜냐하면 결국 그는 진정한 철학적 문제를 신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트겐슈타인이 떠난 다음 우리는 매우 유쾌한 토론을 경험했는데 그 토론에서 버트런드 러셀은 주요 강연자 중 한 분이었다. 그리고 브레이스 웨이트(Braithwaite)는 나중에, 비트겐슈타인이 다른 모든 사람의 말을 제지하는 방식으로 내가 비트겐슈타인의 말을 제지한 유일한 사람이었다고 말함으로써 나를 칭찬했다 (아마도 의심스러운 칭찬).
다음날 런던으로 향하는 기차의 나의 객실에 학생 두 명이 서로 마주 보고 앉았는데 남학생은 책을 읽고 있었고 여학생은 좌파 신문을 읽고 있었다. 갑자기 그 여학생이 다음과 같이 물었다: “칼 포퍼라는 이 사람은 누구지?” 남학생이 이렇게 답변했다: “그 사람에 대하여 들어본 적 없어.” 명성이 그 정도였다. (내가 나중에 알아낸 바와 같이, 그 신문에 열린사회와 그 적들에 대한 공격이 실렸다.)
도덕학 클럽의 모임은 거의 즉각적으로 무절제한 소문의 대상이 되었다. 놀라울 정도로 짧은 시간에 나는, 비트겐슈타인과 내가 부지깽이를 들고 싸움질을 벌였다는 것이 사실인지를 묻는 편지 한 통을 뉴질랜드로부터 받았다. 정곡을 찔렀고 소문은 과장이 심하지 않았으며 크게 심하지 않았다.
그 사건은 부분적으로 나의 습관에 기인할 수 있는데, 특정 청중에게 수용될 수 없다고 내가 예상하는 내 견해의 몇 가지 결론을 내가 전개하려는 어떤 장소에서 강연해달라는 요청을 받을 때마다 벌어진다. 이유인즉 강연에 관해서는 오직 한 가지 구실만 있다고 내가 믿기 때문이다: 도전하는 것. 그것은 강연이 저서보다 나을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이다. 이것이, 내가 실행한 바와 같이 나의 주제를 선택한 이유이다. 게다가 비트겐슈타인과의 사이에 벌어진 이 논란은 근본적인 것이었다.
철학적 문제가 있다고 나는 주장한다; 그리고 심지어 그 문제 몇 가지를 내가 해결했다고 나는 주장한다. 그러나 내가 다른 곳에서 서술한 바와 같이 “백 년이나 된 철학적 문제에 대한 단순한 해결책이 가장 간절한 듯이 보인다.” 많은 철학자의 견해, 특히 비트겐슈타인파의 견해는 어떤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면 그 문제는 철학적이었을 리가 없다는 것이다.
ㅡ 칼 포퍼, ‘끝없는 탐구(Unended Quest)’, 1993년, 122-4쪽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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