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포퍼 원전+번역문

귀납은 허구이다

이윤진이카루스 2025. 12. 28.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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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납은 허구이다

 

이제 귀납에 관한 상황은 어떠한가? 언제 귀납적 추론이 귀납적으로 불건전(unsound)”한가 (“성립하지 않는[invalid]”과 다른 단어를 사용하여)? 제시된 유일한 답변은 이렇다: 귀납적 추론이 귀납적 행태에서 실용적 실수를 빈번히 초래할 때 귀납적 추론이 귀납적으로 불건전(unsound)”하다. 그러나 누군가에 의하여 제시된 귀납적 추론의 모든 규칙은, 누군가가 그 규칙을 사용한다면, 그런 실용적 실수를 빈번히 초래한다고 나는 주장한다.

거기서 요점은, 심지어 한순간에도 진지하게 생각될 수 있는, 제시된 적이 있는 귀납적 추론의 ㅡ 이론이나 보편법칙을 낳은 추론 ㅡ 규칙이 없다는 것이다. 카르납은 동의하는 듯하다; 이유인즉 그는 다음과 같이 서술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나의 강좌에서 귀납적 추론의 사례를 제시하지 않고 연역적 추론의 사례를 제시한 것을 포퍼는 흥미롭다라고 한다. 나의 개념으로 확률론적 (“귀납적”) 추론은 본질적으로 추론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더 정확하게 확률을 할당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는 대신 확률을 할당하기 위한 원칙의 사례를 요구했어야 한다. 그리고 이 요구는, 제시되지는 않았지만 합당한 것인데, 예상되었고 충족되었다.

 

그러나 카르납은, 모든 전칭명제에 확률 0을 할당하는 체계만을 전개했다: 그리고 그 후 힌티카(Hintikka)(그리고 다른 사람들) 0이 아닌 귀납적 확률을 전칭명제에 정말로 귀속시킨 이론체계들을 전개했을지라도, 이 체계들이 본질적으로 매우 빈약한 언어에 국한된 듯하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고 그 언어로 심지어 원시적 자연과학도 정식화될 수 없을 터이다. 게다가 그 체계들은, 어느 때고 유한하게 많은 이론이 이용될 수 있는 경우에 국한된다. (이것으로 인하여 체계들이 놀라울 정도로 복잡해지는 것이 방지되지 않는다.) 아무튼 내가 생각하기에 그런 법칙은 ㅡ 실제로 항상 수없이 많은 ㅡ 그런 법칙의 입증 등급이 0보다 더 클지라도, 틀림없이 확률 0(확률계산의 의미에서) 주어진다. 그리고 우리가 새로운 체계를 ㅡ 몇몇 법칙에, 가령 0.7의 확률을 할당하는 체계 ㅡ 정말로 채택할지라도 우리가 무엇을 얻는가? 법칙에 귀납적 뒷받침이 있는지 없는지를 그 체계로 우리가 알 수 있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그 체계로 우리가 알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어떤 (주로 자의적인) 새로운 체계에 ㅡ 누구의 체계이든 관계없이 ㅡ 따라서, 이 체계에 맞는 믿음의 느낌을 우리가 원한다면 0.7의 믿음 등급을 지닌 법칙을 우리가 신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규칙이 왜 중요할 터인가 그리고, 그런 규칙이 중요하다면 그런 규칙이 어떻게 비판될 수 있는가를 ㅡ 그런 규칙은 무엇을 배제하는가, 그리고 그런 규칙이 왜 보편법칙에 0 확률을 할당하는 것에 대한 카르납과 나 자신의 논증보다 선호되어야 하는가 ㅡ 말하기 어렵다.

합당한 귀납적 추론의 규칙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은 귀납론자인 넬슨 굿먼[Nelson Goodman]에 의해서도 인정되는 듯하다.) 내가 귀납적 문헌을 읽고 모든 것으로부터 내가 추출할 수 있는 최고의 규칙은 다음과 같은 것일 터이다:

미래는 과거와 그렇게 매우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이것은 물론, 모든 사람이 실제로 수용하는 규칙이다; 그리고 우리가 실재론자라면 (어떤 사람이 뭐라고 하든, 우리 모두가 실재론자라고 내가 믿는 바와 같이) 이와 같은 것을 우리는 이론에서도 또한 수용해야 한다. 그러나 그 규칙은 워낙 모호해서 흥미롭지 않다. 그리고 그 규칙의 모호성에도 불구하고, 그 규칙은 너무 많이 전제하여 틀림없이 우리가 (그리하여 귀납적 규칙이) 모든 이론 형성에 앞서서 전제해야 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전제한다; 이유인즉 그 규칙은 시간의 이론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예상될 수 있었다. 이론 없는 관찰과 이론 없는 언어가 있을 리 없기 때문에, 물론 이론 없는 규칙이나 귀납 원리가 있을 리 없다; 모든 이론이 근거해야 하는 규칙이나 원리는 없다.

그리하여 귀납은 허구이다. “귀납적 논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확률계산에 대한 논리적해석이 존재할지라도, 일반화된 논리(그렇게 지칭될 같이) “귀납적 논리의 체계라고 전제할 충분한 이유가 없다.

또한 귀납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유감스러울 수 없다: 우리는 귀납 없이도 아주 잘해나갈 듯이 보인다 ㅡ 대담한 추측인 그리고 가능한 한 엄격하게 우리가 비판하고 시험하는 이론을 사용하여, 그리고 우리가 지닌 만큼 많은 재능을 사용하여.

 

물론 이것이 훌륭한 관행이라면 ㅡ 성공적 관행 ㅡ 그것은 귀납의 귀납적으로 성립하는규칙이라고 굿먼(Goodman)과 다른 사람들이 말할 것이다. 그러나 나의 전체적 요점은, 그것이 성공적이거나 믿음직하거나 기타 등등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오류를 유발하게 되어 있다고 우리에게 알려주어서 우리가 그 오류를 조심하고 그 오류를 제거하려고 노력할 필요성을 의식시킨다는 것이다.

ㅡ 칼 포퍼, ‘끝없는 탐구(Unended Quest)’, 1993, 146-8쪽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