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관성과 비판, 그리고 인간 특성의 원인은 언어다
31. 객관성과 비판
최근 몇 년 동안에 이루어진 나의 연구 중 많은 연구는, 주관론적 입장을 공격하거나 반격하면서, 객관성을 옹호하는 것이었다.
우선 내가 행동주의자가 아니라고 그리고 내가 객관성을 옹호한다고 해서 심리학에서 “내성법(內省法: introspective methods)”을 부인하지 않는다고 나는 분명히 해야겠다. 주관적 경험의 존재, 정신적 상태의 존재, 지성의 존재 그리고 정신의 존재를 나는 부인하지 않는다; 나는 심지어 이것들이 극도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이 주관적 경험에 대한 혹은 이 정신에 대한 우리의 이론이 다른 이론만큼 객관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객관적 이론에 의하여 나는, 논증될 수 있고 합리적으로 비판될 수 있는 이론을 의미하는데 시험될 수 있는 이론이 선호된다: 단순히 우리의 주관적 직관을 매혹하지 않는 시험될 수 있는 이론이 선호된다.
주관적 경험에 대하여 시험될 수 있는 몇 가지 단순한 법칙의 사례로서 나는 아마도, 뮐러-리어 착시효과(Müller-Lyer illusion)와 같은 시각적 착시를 언급할 것이다. 흥미로운 시각적 착시가, 나의 친구 Edgar Tranekjaer Rasmussen에 의하여 최근에 나에게 밝혀졌다: 흔들리는 추(pendulum)가 ㅡ 줄에 매달린 무게 ㅡ 한쪽 눈앞에 검은 유리를 놓고 관찰되면 그 추는, 쌍안시(雙眼視: binocular vision)에서 수직면으로보다 수평적 원둘레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검은 유리가 다른 한쪽 눈앞에 놓이면, 그 추는 반대 방향으로 동일한 원둘레로 움직이는 듯이 보인다.
이 경험은 독립적 주체를 (부언하면, 추가 평면에 흔들리는 것을 알고 목격한) 이용함으로써 시험될 수 있다. 그 경험은 또한, 습관적으로 (그리고 시험적으로) 단안시(單眼視: monocular vision)만을 사용하는 주체를 이용함으로써 시험될 수 있다: 그 주체는 수평적 움직임을 보고하지 못한다.
이와 같은 효과로 인하여 온갖 종류의 이론이 발생한다. 예를 들어 쌍안시(雙眼視: binocular vision)가, 공간적 거리를 해석하는 우리의 핵심적 암호해독 체계에 의하여 이용된다는 점 그리고 이 해석은 몇몇 경우에서 우리의 “나은 지식”과 독립적으로 작동할 것이라는 점. 그런 해석은 미묘한 생물학적 역할을 수행하는 듯이 보인다. 의심할 바 없이 그런 해석은 정상적 상태에서 매우 잘 작동하고 완전히 무의식적으로 작동한다; 그러나 우리의 암호해독 체계는 비정상적 상태에서 오작동될지도 모른다.
이 모든 것은, 우리의 감각기관에 많은 미묘한 암호해독 및 해석 장치가 ㅡ 다시 말해서 적응사례나 이론 ㅡ 내장되어 있다고 시사한다. 그것들은 “타당한” (가령 그것들이 반드시 우리의 모든 경험에 도입되기 때문에 “타당한”) 이론의 특성을 띠지 않지만, 특히 비상한 조건에서 그것들이 오류를 저지를 것이기 때문에, 더 정확하게 추측의 특성을 띤다. 이것의 결과는, 마흐(Mach)의 의미에서 감각이나 “요소(elements)”인 해석되지 않은 시각 자료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 모두가 이미 해석되고 암호가 해독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주관적 감지에 대한 객관적 이론이 구축될 것이다. 그 이론은, 평범한 감지를 우리의 주관적 지식의 주관적 근원이나 주관적 인식론적 토대로서가 아니라 더 정확하게 적응에 관한 특정 문제를 생명체가 해결하는 생명체의 객관적 업적으로서 기술하는 생물학적 이론일 것이다. 그리고 이 문제는, 추측적으로, 특정될 것이다.
여기서 제시된 접근방식이 행동주의로부터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가 이해될 것이다. 그리고 주관론에 관하여, 비록 여기서 제시된 접근방식으로 인하여 주관적 경험이 (그리고 “알기[knowing]”나 “믿기[believing]”의 주관적 경험) 주관론의 대상이 될지라도, 주관론이 이용하여 작동하는 이론이나 추측은 완벽하게 객관적이고 시험 가능하게 될 수 있다.
이것은 객관론적 접근방식의 한 가지 사례일 뿐인데, 그 접근방식을 위하여 나는 인식론, 양자물리학, 통계역학, 확률론, 생물학, 심리학 그리고 역사학에서 싸우고 있었다.
아마도 객관론적 접근방식에 가장 중요한 것은 다음을 인정하는 것인데 (1) 객관적 문제, (2) 객관적 업적, 즉 문제에 대한 해결책, (3) 객관적 의미에서 지식, (4) 언어적으로 정식화된 이론의 형태로 객관적 지식을 전제하는 비판.
(1) 문제에 의하여 우리가 곤혹감을 느낄지라도 그래서 그 문제를 해결하고자 열렬히 소망할지라도, 문제 자체는 객관적인 ㅡ 우리가 곤혹감을 느끼는 파리 그리고 그 파리를 우리가 없애려고 열렬히 소망할 것과 같이 ㅡ 것이다. 그것이 객관적 문제라는 것, 그것이 현존하여 몇몇 사건에서 역할을 수행할 것임은 추측이다 (파리의 존재가 추측인 바와 꼭 마찬가지로).
(2)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통상적으로 시행착오에 의하여 발견되는데 객관적 의미에서 업적이나 성공이다. 어떤 것이 업적이라는 것은 추측이고 그것은 논증될 수 있는 추측일 것이다. 업적이나 성공은 해결책처럼 항상 문제와 관련되기 때문에, 논증은 틀림없이 문제를 (추측된) 언급할 것이다.
(3) 객관적 의미에서 업적과 해결책을, 업적에 대한 주관적 느낌이나 아는 것에 또는 믿음에 대한 주관적 느낌으로부터 우리가 구분해야 한다. 어떤 업적도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서 그리하여 일반화된 의미에서 이론으로서 간주될 것이다; 그리고 그와 같이 업적이나 이론은 객관적 의미에서 지식의 세계에 ㅡ 정확하게, 문제와 잠정적 해결책의 세계 그리고 그 해결책과 관련되는 비판적 논증의 세계 ㅡ 속한다. 예를 들어 기하학적 이론과 물리학적 이론은 객관적 의미의 이 지식 세계에 (“세계 3”) 속한다. 그 이론들은 그 이론들이 비판적으로 토론되는 다양한 상태에서, 통상적으로 추측이다.
(4) 비판은, 비-유전적 (신체외적[身體外的: exosomatic) 수준에서 자연선택이라는 작업을 계속한다고 언급될 것이다: 비판은, 정식화된 이론이라는 형태로 객관적 지식의 존재를 전제한다. 그리하여 의식적 비판이 가능해지는 것은 언어를 통해서만 이다. 내가 추측하기에 이것이 언어의 중요성에 대한 주요 이유이다; 그리고 나는, 인간이 지닌 특성의 원인이 되는 것은 인간의 언어라고 추측한다 (심지어 음악과 같은 비-언어적 예술에서 인간의 업적을 포함하여).
ㅡ 칼 포퍼, ‘끝없는 탐구(Unended Quest)’, 1993년, 138-140쪽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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