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훌륭한 세계에 살고 있다
후기
이 저서의 발행인에 의하여 짧은 후기를 집필해달라는 요청을 나는 받았고, 내가 원래 1969년에 저서를 집필했을 때 그리고 내가 최고로 행복한 철학자라고 서술했을 때 (126쪽에)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여전히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지의 질문이 제기되었다.
그 질문은 나의 낙관론인 우리가 훌륭한 세계에 살고 있다는 나의 믿음과 관련된다. 나의 이 믿음은 더 강력해졌을 뿐이다. 우리 서구 사회에서 많은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나는 매우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 서구 사회가 역사상 최고의 사회라는 것을 나는 여전히 의심하지 않는다. 그리고 많은 잘못된 것은 서구 사회의 지배적인 종교 때문이다. 우리가 사는 사회적 세상이 일종의 지옥이라는 지배적인 종교적 신념을 나는 의미한다. 이 종교는 지성인들에 의하여, 특히 가르치는 직업에 종사하는 그리고 뉴스 매체에 종사하는 지성인들에 의하여 퍼진다. 파멸과 암울이 거의 경쟁하는 상태다: 사람들이 우리의 서구 사회를 급진적으로 비난할수록, 그 사람들의 말을 경청하는 기회가 (그리고 아마도 그 기회에서 지도적 역할을 수행하는) 더 커지는 듯하다.
우리 서구의 자유민주주의가 파멸에 처했다는 이 정치선전과 밀접하게 연관되는 것은, 마르크스주의가 과학이라는 그리고 과학의 예언 능력 덕분에 마르크스주의적 신조가 궁극적으로 승리할 것을 우리가 “알” 수 있다는 신념인데 많은 지성인에 의하여 공유된다. 공산주의 승리의 불가피성으로 인하여, 군사력에 의하여 서양은 중단될 수 없는 공산주의 전파에 저항하려고 ㅡ 물론 헛되이! ㅡ 하기보다 항복하기만 해야 한다고 암시된다. 그래서 핵전쟁에 홀로 책임질 터인 것은 서양이다. 이런 방식으로 서양은, 지구상에서 공산주의적 천국의 도래를 막으려는 무의미한 시도에서 세계를 위협하는 지독한 괴물로 보인다.
지성인들이 진보적이라는 것을 옳다; 그러나 진보는 이룩하기가 쉽지 않고 단순한 진보론은 쉽게 잘못된 결정을 초래할 것이기 때문에 그 진보론은 위험하다. 진보적 강령으로서 마르크스주의로 선회함으로써 그리고 마르크스주의가 반증됨을 발견함으로써, 이론과 실재 모두에서 지성인들은 훨씬 더 급진적이 되었다. 이유인즉 마르크스주의가 그렇게 성공적이지 못했다는 사실에 대하여 “자본주의” (다시 말해서. 비-마르크스주의) 국가들에 의한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저항을 비난한다면, 자신들이 자신들의 마르크스주의적 신조들 유지할 수 있다고 그들이 알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많은 사람이, 소련이 자체의 많은 자원을 군비에 소비하도록 강요한 것은 이 저항이라고 생각한다.)
마르크스주의적 유토피아 및 유토피아적 급진론의 꿈으로 인하여 그리고 비-마르크스주의적 서양에 대한 증오로 인하여, 폭력 지지와 서양에서 현재 산업주의와 관련되는 자유는 전체주의의 숨겨진 형태이고 그리하여 공개된 형태의 전체주의보다 훨씬 더 악랄하다는 주장에 대한 지지가 발생했다. 이것이, 내가 1919년에 처음 마주친 서양 공산주의자들에게 특징적인 현대적 형태의 정치적 교서이다: “사태가 나빠질수록 상황이 더 나아진다”라는 (공산주의의 기회를 위하여) 정책.
내가 보기에 러시아인들로부터 우리가 배울 수 있는 단 한 가지만 있다: 러시아인들은 자기 국민에게, 국민이 최상의 사회에서 산다고 말한다.
우리 서구 자유민주주의에서 우리 삶을 다른 사회에서 삶과 진지하게 비교할 준비가 된 사람은, 유럽과 북미에서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인류의 전체 역사를 통하여 최상이고 최고로 공정한 사회를 우리가 경험한다는 데 어쩔 수 없이 동의할 것이다. 식량부족이나 주택 부족으로 큰 아픔을 겪는 사람들이 없을 뿐 아니라 젊은이들이 자신의 미래를 선택하기 위한 기회가 무한히 더 많기도 하다. 배우고자 하는 사람을 위한 그리고 다채로운 방식으로 즐겁게 지내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가능성이 풍부하게 있다. 그러나 아마도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지성적 비판을 경청한 준비가 되어 있고 우리 사회의 향상을 위하여 합리적 제안이 제시된다면 우리가 틀림없이 행복하다는 것이다. 이유인즉 우리의 사회가 개혁에 열려 있을 뿐 아니라 자체를 개혁하고자 열성적이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추악한 세상에 산다는 허구를 위한 정치선전이 이어졌다.
당신의 눈을 뜨고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리고 살아 있는 우리가 얼마나 행운인지 보라!
ㅡ 칼 포퍼, ‘끝없는 탐구(Unended Quest)’, 1993년, 197-8쪽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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