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에 근접하는 박진성(迫眞性: verisimilitude)
나의 지식론에서 (혹은 다른 사람의 지식론에서) 이룩될 것 같은 유일한 종류의 박진성(迫眞性: verisimilitude)이라는 관념의 사용인 (1)과 (2)의 두 가지 사례로써 나는 먼저 설명하겠다.
(1) 지구가 정지되어 있고 별들로 구성된 하늘이 지구 주위를 선회한다는 서술은, 지구가 자전한다는 서술보다 진리로부터 더 멀다; 정지해있는 것은 태양이라는 서술보다 더 멀다; 그리고 지구와 다른 행성들이 태양의 주위를 원형 궤도로 돈다는 서술보다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오가 제안한 바와 같이) 더 멀다. 행성들이 원형으로 움직이지 않고 태양을 공동의 중심으로 (태양은 정지해있거나 태양 자체를 축으로 회전하면서) 타원형으로 (그다지 길쭉하지 않은) 움직인다는 케플러의 서술이 진리에 더 가깝다. 정지해있는 공간이 존재하지만, 선회와 별도로 그 공간의 위치가 별들을 관찰하거나 기계적 효과를 관찰함으로써 발견될 수 없다는 서술은 (뉴튼으로부터 기인하는) 진리를 향하여 더 나아간 단계이다.
(2) 유전에 대한 그레고르 멘델(Gregor Mendel)의 관념은 찰스 다윈의 견해보다 진리에 더 가까운 듯이 보인다. 나중에 일어난 초파리 기르기 실험은 유전이론의 박진성을 한층 더 개선했다. 개체군(종[種: species])의 유전자 집합(gene pool)이라는 관념은 한 걸음 진보한 단계이다. 그러나 단연코 가장 위대한 단계는 유전자 암호를 발견한 데서 정점을 이루었다.
(1)과 (2)의 사례에 의하여 박진성(迫眞性: verisimilitude)의 공식적 정의(定義: definition)가 박진성을 합리적으로 말하기 위하여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 밝혀진다고 내가 믿는다. (아래 261-278쪽 또한 참조.)
그렇다면 왜 나는 공식적 정의(定義: definition)를 내놓으려고 시도했는가?
나는 정의의 필요성에 반대하여 자주 논증했다. 정의란 실제로 필요하지 않고, 다음 종류의 상황에서 제외하고, 소용도 없다: 훌륭한 이론에 대하여 기본전제가 더욱 적게 필요할 뿐 아니라 우리 이론이 정의 없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설명할 수 있다고도 우리가 정의를 도입함으로써 밝힐 것이다. 다시 말해서 새로운 정의는 그 정의가 이론을 강화한다는 조건으로만 흥미롭다. 나의 과학의 목적론과 관련하여 나는 이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과학은 진리를 목표로 함과 동시에 설명 문제의 해결을, 다시 말해서 더 큰 설명력, 더 큰 내용 그리고 더 큰 시험가능성을 지닌 이론을 목표로 한다는 이론. 진리 및 내용에 관한 박진성(迫眞性: verisimilitude)을 정의함에 의하여 이 과학의 목적론을 한층 더 강화하려는 희망은 불행하게도 소용없다. 이 정의를 폐기하면 나의 이론이 약화한다는 폭넓게 믿어지는 견해는 전혀 근거가 없다. 나의 정의에 대한 비판이 제시되고 몇 분 만에 왜 내가 이전에 그 실수를 보지 못했는지 의아하게 생각하면서 그 비판을 수용했다고 내가 부언할 것이다; 그러나 내가 적어도 1933년에 전개했고 그 후 건강하게 자랐으며 연구하는 과학자들에 의하여 많이 이용된 나의 지식론이 불행하게도 잘못된 정의에 의하여 조금이라도 흔들렸다고 아무도 밝히지 않았고, 박진성(迫眞性: verisimilitude)이라는 관념이 (내 이론의 본질적 부분이 아닌) 나의 이론 내부에서 정의되지 않은 개념으로서 더 사용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를 아무도 밝히지 않았다.
나의 권위가 이 사건에 의하여 손상당한다는 주장은 분명히 사실이지만, 나는 권위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거나 소망한 적이 없다. 나의 이론이 손상당한다는 주장은, 심지어 근거를 대려는 시도도 없이 전개되어서 내가 보기에 무능하기만 한 듯하다.
ㅡ 칼 포퍼, ‘실재론과 과학의 목적(Realism and the Aim of Science)’, 2000년, xxxv-xxxvii쪽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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