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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의 세 가지 종류

이윤진이카루스 2026. 2. 24.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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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의 세 가지 종류

 

 

V

학습 이론에 대하여 우리는 틀림없이 경험으로부터 배울 수 있고 정말로 배운다. 나는 심지어, 흄과 다른 고전적 경험론자들과 함께, 모든 학습은 경험으로부터 배우는 것이라고 말할 작정이다.

그러나 모든 학습은 경험으로부터 배우는 것이라는 논지의 해석에 관한 한 나는 흄 및 다른 고전적 경험론자들과 다르다. 반복 학습 과정에서 수행하는 역할에 대한 평가에서, 그리고 또한 관찰경험 습득에서 수행하는 역할에 대한 평가에서 나는 그들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학습과 반복에 관하여 심각한 혼란의 근원은 모두 학습이라고 지칭되는 전혀 다른 세 가지 활동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소득을 얻으면서 세 가지 이상을 구분할 수 있을 터라고 내가 의미하고 싶지 않다.) 나는 그 세 가지를 (1) 시행착오에 의한 (또는 추측과 논박에 의한) 학습; (2) 습관 형성에 의한 학습 (또는 고유한 반복에 의한 학습); 그리고 (3) 모방에 의한 (혹은 전통 흡수에 의한) 학습이라고 지칭하겠다. 세 종류 모두는 인간에서뿐 아니라 동물에서도 발견될 수 있고, 새로운 사실에 대한 학습과 같은 이론적 지식의 습득뿐 아니라 재주의 습득에서 각각의 다양한 특징적 역할을 발휘한다.

 

(1) 이 세 가지 학습의 방법 중에서 첫 번째 방법인 시행착오에 의한 학습, 혹은 추측과 논박에 의한 방법만 유일하게 우리 지식의 성장과 유관하다; 그 방법만이 새로운 정보를 얻는다는 의미에서 학습이다: 이론적일 뿐 아니라 실용적인 새로운 사실과 새로운 문제를, 그리고 우리가 지닌 새로울 뿐 아니라 오래된 문제들에 대하여 새로운 해결책을 발견하는 의미에서 학습이다. 이런 종류의 학습에 일을 처리하는 새로운 재주와 새로운 방식의 발견이 포함된다. 이런 의미의 학습 과정에서 기계적 반복은 (돌에 구멍을 내는 물방울의 기계적 반복처럼) 어떤 역할도 수행하지 못한다. 새로운 발견을 낳는 것은 우리의 감각에 대한 반복적 충격이 아니라 전혀 다른 것이다: 해결되지 않은 채 우리를 지속적으로 성가시게 만드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우리의 반복되고 다양한 시도와 전혀 다른 것이다. 반복되는시도가 서로 다르다는 것과, 동일한 시도가 우리에게 성공적으로 보일 때만 그리고 그 동일한 시도를 다시 완전히 시험하려고 시도하기 위해서만 그 시도를 우리가 반복한다는 것이 여기서 필수적이다; 다시 말해서, 가능하면 다양한 상황에서 그 동일한 시도로 인하여 성가시게 만드는 우리의 문제에 성공적 해결책이 변함없이 이룩된다는 가설을 시험하기 위해서만 그 시도를 우리가 반복한다는 것이 여기서 필수적이다.

시행착오에 의한 학습에, 다양한 방식으로일지라도, 우연한 관찰(chance observation)로부터 학습뿐 아니라 체계적 관찰로부터 학습이 포함된다. 체계적 관찰, 우리가 해결하려고 시도하는 문제로부터, 혹은 우리가 시험하려고 시도하는 추측으로부터 항상 시작한다: 이것이 그 관찰을 체계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심지어 체계적 측정을 통하여 어떤 한도를 결정하려고 우리가 시도하는 곳에도 근저를 이루는 가설이 ㅡ 우리의 측정 조건에서 특정 변화와 관련하여 변하지 않는 한도가 있다는 가설 ㅡ 있다. 의식적으로 제시되든 아니면 무의식적으로 전제되든 어떤 그런 가설이 없다면, 관찰은 체계적일 수 없다. 그러나 이른바 우연한 관찰, 비록 발견을 이룩하는 데 가장 발명적이 아닌 방식일지라도, 여전히 시행착오 방법의 경우이다. 이유인즉 실제로 우연한 관찰의 모든 사례가 의식적이거나 무의식적으로 지니게 된 어떤 추측이나 전제 또는 기대에 대한 반증의 사례이기 때문이다. ‘우연한 관찰은 우리가 지나는 통로에 놓인 예기치 않은 돌과 같다: 우리가 그 돌을 기대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ㅡ 혹은 더 정확하게 무의식적으로일지라도 통로가 평탄하리라고 우리가 정말로 기대했기 때문에 ㅡ 우리는 그 돌에 걸려 넘어진다. 그리하여 소위 우연한 관찰이나 우연한 발견은 ㅡ 다시 말해서, 걸림돌 발견 ㅡ 우리가 혹시 힐끗 보고 생각할 것처럼 우연적이 아니다.

게다가 우연한 발견의 통상적 사례 대부분은 귀납주의적 오해에 근거한다: 심지어 걸림돌 발견의 진짜 사례는 드문 듯하다. 아마도 닭 콜레라에 대한 파스퇴르의 최초 닭 면역주사나 (1880) 나프탈렌을 프탈산으로 변화시키는 데 (황산을 넣어 가열함으로써) 관한 수은의 촉매 역할 발견이 진짜 사례에 가깝다. 그러나 다른 사례 중 많은 사례는 진짜 사례가 아니다.

예를 들어 외르스테드(Oersted)는 몇 가지 전자기 상호작용을 필사적으로 탐구하고 있었다. 그리고 뢴트겐(Roentgen)은 자신의 X-선 발견에 대하여 질문받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비가시광선을 찾고 있었다 ㅡ 그가 형광막을 통하여 탐지하기를 희망했던 (적외선과 자외선의 경우에서처럼) 광선. (이것이 막이 그곳에 세워졌던 이유다.) 크룩스관(Crookes tubes) 근처의 노출되지 않은 사진건판(unexposed photographic plates)이 여러 차례 노출의 표시를 ㅡ 기대와 반대로 ㅡ 보였고 그리하여 이것이 아마도 X-레이라는 진짜 걸림돌 발견을 쉽게 초래했었을 것이라고 인정된다; 그러나 관련된 사람 모두는, 심지어 크룩스를 포함하여, 노출에서 나타나는 저 표시의 중요성을 알아채지 못했다. 방사선에 관해서 베크렐(Becquerel)이 의식적으로 새로운 광선을 탐색했다; 그리고 더욱 특히 우라늄 염(uranium salts)에 관한 그의 연구에서 그는 앙리 푸앵카레(Henri Poincaré)에게서 나온 (그릇된) 가설에 의하여 유도되었다. 페니실린의 발견도 우연한 발견이 아니었는데 이유인즉 플레밍(Fleming)에 의하여 관찰된 살균 (혹은 세균 발육 저지) 효과의 종류가 그와 다른 사람에게 잘 알려져서 심지어 기대되지 않은 것(unexpected)’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래 항목 X 참조.) 게다가 플레밍은 심지어 자신의 발견 이전에 치료 목적을 위한 이 종류의 효과에 있는 가능한 중요성을 매우 많이 인식했다.

사람에게뿐 아니라 동물에게도 시행착오에 의한 학습은 원래 새로운 지식이라기보다 새로운 재주로 귀결된다. 그러나 모든 재주가 의식적이거나 무의식적인 기대와 연결된다; 그래서 착오라는 요소가 시행착오의 방식 안에서 이런저런 기대의 좌절 속에서 항상 명백해진다. (우리가 우리의 지식이라고 부르는 것은 ㅡ 주관적 의미에서 지식ㅡ 우리의 의식적, 아마도 언어로 언명된, 기대로 구성된다고 언급될 것이다.) 시행착오로 습득되는 새로운 재주의 사례로서 우리는 피아노 연주나 자전거 타기를 생각할 것이다; 혹은 더 정확하게, 피아노 위에서 한 악절에 대한 최고의 운지법 발견하기나 자전거를 타면서 넘어지지 않는 법을 학습하기. 이 경우들에서 우리는 먼저 체계적 시도에 의하여 ㅡ 만족스럽지 못한 해결책을 제거하거나 배척함에 (혹은 반증함) 의하여 ㅡ 의식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시도한다; 나중에 반복은 매우 다른 역할을 수행한다. 그러므로 그 경우들은 여기서 (1)(2)로 구분된 학습의 종류에서 반복의 특징과 기능을 대비하는 데 도움이 된다.

 

(2) 두 번째 종류의 학습은 ㅡ 고유한 반복을 통한 (혹은 기계적반복을 통한) 습관 형성 ㅡ 첫 번째 종류의 학습과 분명하게 구분되어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문제에 대한 새로운 해결책을 찾지 않고 시행착오에 의하여 이전에 발견된 (혹은 모방에 의하여 습득된; 아래 (3) 이하 참조) 해결책과 친숙해지려고 시도한다.

이 두 번째 종류의 학습이 첫 번째 종류의 학습과 어떻게 다른지 밝히기 위하여 우리의 주요 사례인 피아노로 특정 악절 연주하기를 학습하는 사례와 자전거를 타면서 넘어지지 않도록 배우는 사례를 고찰하면 유익하다.

부단한 연습이 ㅡ 다시 말해서 반복뿐 아니라 많거나 적은 기계적반복 또한 ㅡ 피아노 연주를 배우는 것에서만큼 중요한 인간의 재주는 없다. 그러나 새로운 운지법 같은 새로운 것을, 연습을 통하여 우리가 발견하지 않는다. 시행착오에 의하여 새로운 운지법을 배운 후에만, 다시 말해서 문제에 대한 대안적 해결책과 새로운 운지법을 비교하여 더 적당하지 못한 해결책을 배척한 후에야 우리는 새로운 운지법을 연습하기시작할 수 있다. 그리하여 기계적 반복이라는 기능은 ㅡ 연습의 기능, 혹은 암기식 학습ㅡ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이전에 발견된 것과 친숙성을 확립하는 것이다. 기계적 반복의 기능은 새로운 문제를 우리가 의식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몇 가지 잠정적 해결책을 반복적으로 시험하는 기능이 그러한 것처럼) 우리의 행동으로부터 의식의 요소를 가능한 한 멀리 제거하는 것이다. 그래서 원래 문제가 ㅡ 예를 들어 악보와 손가락의 움직임을 조정하는 문제 ㅡ 완전히 사라지고 우리가 더 중요한 것에 ㅡ 음악적 관념, 악절의 표현 ㅡ 온 정신을 쏟을 수 있는 상태에 우리가 도달한다. 자전거 타기 (혹은 자동차 운전) 학습에서 연습이나 반복 고유의 기능도 동일하다: 비록 그 기능으로 인하여 발견이 (일을 처리하는 방법의 발견) 새로운 재주로 변환될지라도 발견이나 심지어 새로운 재주가 생성되지 않는다; 그리하여 그 기능으로 인하여 특정 행동이 무의식적이 되어 우리가 자유롭게 교통 문제를 주의하게 된다.

모든 학습이 암기에 의한 학습이라는, 그리고 심지어 우리 지식의 성장이 기계적 반복을 통한 습관 형성의 결과라는 귀납적 교설은 그러므로 오류이다. 반복과 같은 것은 우리의 시선을 끌 수 없다; 오히려 그런 반복에 우리의 기대를 무의식적으로 만드는 경향이 있다. (우리가 시계의 째깍거리는 소리를 듣지 않을 것이지만, 시계가 멈춘 것을 들을것이다.)

우리 지식이 반복에 의한 귀납을 통하여 성장한다는 관념의 인기는 의심할 바 없이 (1)(2)의 두 가지 의미에서 학습을 뒤섞은 것에서 기인한다.

(3) 그러나 나는 세 번째 종류의 학습을 ㅡ 모방에 의한 학습 ㅡ 간단하게 언급할 것이다. 모방에 의한 학습은 더 원시적이고 중요한 형태의 학습 중 한 가지이다; 그래서 학습의 고도로 복잡한 본능적 토대와, 제안에 의하여 그리고 감정(emotions)에 의하여 그 학습에서 펼쳐지는 역할이 학습의 다른 방식들에서보다 (비록 이 방식들이 물론 항상 현존할지라도) 여기서 더 명백하다. 우리의 토론에 중요한 것은 개별적 학습자의 관점에서, 모방에 의한 학습이 항상 전형적인 시행착오 과정이라는 것이다: 아이는 (혹은 어린 동물) 자기 부모를 닮으려고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노력하여 자신을 고치거나 부모에 의하여 고쳐진다. 이 시행착오의 과정은 모방 과정의 처음이자 근본적인 과정을 구성한다. 그 과정은 그리하여 발견의 단계이다: 아이는 모방에 의하여 걷는 법을 발견한다; 그리고 이것은 부분적으로 시행착오에 의함을 의미한다. 그 단계는 물론 새로이 발견된 재주가 연습의 결과로서 무의식적으로 수행되어 습관이 되는 단계로 이어질 것이다.

 

VI

귀납주의자는 지식을 (주관적 의미에서 지식’) 기대들로 구성된다고 해석한다; 나도 그렇다. 그러나 귀납주의자는 나아가 기대를 반복의 결과인 연상에 의하여 연결된 관찰의 기억이라고 해석한다. (반복된 이전 경우에서 벨소리가 난 후 먹이가 도착했다는 단순한 이유로 벨소리가 나면 개가 먹이를 기대한다고 귀납주의자가 생각한다.)

이것과 반대로, 새로운 기대가 시행착오에 의하여 형성된다고 내가 믿는다: 우리가 문제를 경험하는 분야이며 우리가 배울 수 있는 다시 말해서 우리의 기대를 수정할 수 있는 분야인 흥미로운 분야에서 우리가 잠정적 기대를 형성한다. 새로 형성된 기대가 성공적이라면, 그 기대는 자동적, 무의식적이고 석화되어(石化되어: petrified) (반복에 의하여), 우리는 저 특정 분야에서 점차 배우기를 멈춘다. 먹이-얻기는 개의 행동이 보통 유연한(plastic)’ 분야이다. 개는 이 분야에서 배울 수 있고 시행착오에 의하여, 기대와 반증에 의하여 규칙성을 발견한다. 이런 방식으로 개는 또한 처음에 벨소리가 날 때 음식이 나타날 것이라는 이론을 형성한다; 그 후 예상이나 기대는 반복에 의하여 습관화나 석화(石化: petrified)될 것이다.

 

VII

여기에 제시된 견해는, 연상 이론 및 조건반사 이론과 날카롭게 대조된다 (아래 9절 참조). 이 이론들의 첫 번째는 단순한 연상 조건, 자료(data)’가 우리에게 주어진다고 전제함으로써 작용한다. 비록 우리가 복잡한 자극 상황에 대하여 잊고 자극이 단순하다고 전제할지라도, 이 전제는 순진하여 옹호될 수 없다. 이 이론들의 두 번째 이론은, 그 이론이 단순한 자료나 조건에 관하여 전제하지 않고 기대와 (역시 고도로 복잡할) 원래 무관한 자극이 (고도로 복잡할) 어떻게 바로 이 기대를 방출할 수 있는 신호가 될 것인지를 설명하려고 시도하는 한, 다르고 반대가 덜 가능하다. 이것은 문제로서 완벽하게 수용될 수 있다; 그러나 해결책인 조건반사설은 수용될 수 없다. 조건반사설은, 기초적인 비-복합적, -조건적 반사의 존재를 전제하고 그 존재로부터 구축되며 조건반사설은 모든 학습이 반사의 조건화로서 설명될 수 있다고 전제한다. 두 가지 전제 모두가 틀렸다. 첫 번째이자 근본적 의미에서 학습에, 다시 말해서 시행착오에 의한 학습에 단순한 반사를 크게 초월하는 발명이나 창조적 행동의 요소가 포함된다; 그리고 발명과 행동의 유연성이 가장 중요한 여기서 반사의 조건화에 대하여 말하면, 모든 학습 심지어 발견과 발명도 반복에 의하여 설명될 수 있다고 잘못 암시된다. 그러나 반복에 의한 학습이 시행착오에 의한 학습보다 덜 근본적이라고 (그리하여 또한 덜 기초적이라고) 우리가 알았다.

 

VIII

귀납주의자의 오류는, 시행착오에 의한 학습과 암기에 의한 학습 사이의 차이점을 인식하지 못한 데 국한되지 않고 습관 형성에 의하여 우리의 지식을 우리가 확대할 수 있다는 그의 결과적 전제에도 국한되지 않는다. 그는 또한, 우리 자신의 개입 없이 외부세계로부터 우리에게 주어지는감지나 관찰 혹은 감각-인상이나 감각 자료의 형태로 된 지식에 대한 어떤 원자재가 있다고 믿는다. 이것은 사실에 의하여 충분히 논박되는 옹호될 수 없는 심리학적 이론이다. 영화에서 우리에게 주어지는것은 정지 사진의 배열이지만 우리가 보거나 관찰하거나 감지하는 것은 움직임이다; 그래서 우리가 (가령) 영화로 된 만화의 사진만을 보고 있다고 우리가 지라도, 우리가 움직임을 본다는 것을 피할 수 없다.

간단한 사실은, 보는 것이나 감지하는 것 또는 관찰하는 것이 시각적 자극에 대한 반응일 뿐 아니라 특정 복잡한 상황에 대한 반응이기도 하고 그 상황에서 자극들로 구성된 복합체와 배열뿐 아니라 우리의 문제와 우리의 두려움과 희망, 우리의 욕구와 만족, 우리의 기호(嗜好)와 혐오 또한 역할을 수행한다. 우리의 반응은 ㅡ 다시 말해서 우리의 즉각적인 지각적 경험 ㅡ 이 모든 것에 의하여 그리고 또한 주로 우리의 이전 지식에 의하여 영향을 받는다; 우리의 기대나 예상에 의하여 영향을 받는데 우리의 기대나 예상은 우리의 반응에 대하여 일종의 도식적 이론구조를 제공한다. 우리가, 우리의 지식을 확대한다는 의미에서, 우리의 관찰이나 감지에 의하여 배운다면, 관찰이나 감지의 본질이 우리의 예상을 수정하고 예리하게 만들며 고치고 흔히 오류로 판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그렇게 배운다. 그리하여 귀납주의적 이론은 항상 피상적이다; 더 세밀하게 분석하면 귀납주의가 순진하게 우리의 감각 자료로서 간주하는 것은 실제로 생명체와 생명체의 환경 사이의 상호교환(give and take)으로 구성된다고 밝혀진다: 우리의 예상을 수정하거나 고치고 우리의 추측을 반증하는 과정이고 우리의 추측을 반증하는 것은 우리의 지식을 확대하는 모든 종류의 학습에 그렇게 특징적이다.

ㅡ 칼 포퍼, ‘실재론과 과학의 목적’, 2000, 39-46쪽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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