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포퍼 원전+번역문

미래는 과거를 닮을까

이윤진이카루스 2026. 2. 24.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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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과거를 닮을까

 

사실상 미래는 과거를 닮을까?’와 같은 모든 언명은, 직관적으로 자연스럽지만 고도로 의심스러운 시간론(theory of time)을 무비판적이고 무의식적으로 수용하는 것에 순진하게 근거한다. 예를 들어 성 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하여 믿어지고 표현되며, 단어들로 명시적으로 처음 언명한 사람 중 뉴튼이 한 명이었던 것은 다음과 같은 이론이었다: ‘절대적이고 참이며 수학적 시간은, 스스로 그리고 자체의 고유한 본성으로부터, 외부적인 것과 관련 없이 균일하게 흐른다.’

귀납 문제를 시간적 용어로 (‘미래내일과 같은) 언명하는 사람들은 이것이나 본질적으로 유사한 시간 이론을, 자체의 문제성 특징을 인식하지 못한 듯이 보이면서 무의식적으로 전제한다. 이유인즉 그들이, 지금까지 시행되는 규칙성과 다른 규칙성이 미래나 내일 있을 것이라는 의미에서 자연법칙이 변할지를 고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으로 인하여 미래나 내일이 자연법칙에서 변화로부터 독립적으로 올 것이라 이론이 수반된다. 그래서 발생하는 것으로부터 독립적이고, 자연법칙에서 변화로부터 독립적인 시간의 흐름을 그들이 전제한다. 그리하여 정확하게 뉴튼이 기술하려고 시도하는 것을 그들이 전제한다. 그러나 그들은 뉴튼보다 더 순진하여, 자신들의 문제를 언명하면서 특정 자연법칙이 ㅡ 절대 시간의 흐름 법칙 ㅡ 흄의 의심에서 제외된다고 무의식적으로 전제한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한다. 다시 말해서 그들이 자신들을 경험주의자와 귀납주의자로 믿을지라도 그들은 칸트와 함께 이 시간의 법칙이 선험적으로 타당하다고 전제한다.

이 관점은 다음 노선을 따르는 형이상학적 우주론과 대등하다. 시간이 (그리고 아마도 공간이) 있고, 자연의 모든 것은 시간 안에서 발생한다. 세상은 사건들의 총체이지 사물들의 총체가 아니며 (헤라클레이토스가 최초로 깨달은 바와 같이) 사건들은 본질적으로 시간 안에 (그리고 아마도 공간 안에) 놓인다.

이 우주론은 라이프니츠(Leibniz)와 버클리(Berkeley)에 의하여 도전받았는데 버클리는 독립적으로 시간과 공간의 관계설(relational theory of time and space)을 제안했다. 시간은, 사건들 사이에서 성립하는 관계들을 (이전[before]; 이후[after]; 동시적[simultaneous]과 같은) 배열하는 체계로서 간주되었다; 그리고 공간은 사물들 사이에서 성립하는 관계들을 배열하는 체계로서 간주되었다. 세상은 여기서 다시 사건들의 총체이다. 그러나 이 사건들은 한 가지 시간 안에 있지 않고, 그 시간의 존재가 한 가지 사건이 존재하는 조건이다. 오히려 사건들의 총체만, 그 사건들의 시간적 관계와 함께, 존재한다; 그래서 시간은 이 시간적 관계의 추상적 체계에 대한 명칭인 한 단어일 뿐이다. 더 정교한 이 관점은 아마도 옳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관점은 심지어 아인슈타인 이전에 과학에서 상당히 일반적으로 수용되었다.

ㅡ 칼 포퍼, ‘실재론과 과학의 목적’, 2000, 77-8쪽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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