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납의 논리적 문제 해결
우리의 모든 가설은 추측이어서 누구나 자유롭게 추측을 ㅡ 심지어 우리 대부분에게 매우 어리석게 보일 추측도 ㅡ 제시한다. 그런 방식으로만 우리는 대담하고 비-규약적이고 새로운 관념들을 향하여 나아갈 수 있다. 우리는 어리석어 보이는 관념들을 흔히 대면함으로써 이 자유에 대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그 관념들은 진지하게 고찰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몇 가지는 진지하게 고찰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몇 가지는 첫인상과 반대로 왕왕 올바른 방향으로 움직임으로 판명될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비록 한 이론을 선험적으로 터무니없다고 배척하는 모든 과학자가 위험을 감수할지라도 그런 위험을 피할 방법이 없다; 모든 새로운 추측의 제안은 위험할 뿐 아니라 그 제안을 진지하게 수용할지 아니면 배척할 것인지의 결정 또한 위험하다. 귀납주의자와 반대로 나는 주어진 증거를 가장 잘 설명하는 한 가지 (귀납적으로 결정된) 이론이 있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반대로 경합하는 이론들의 다수라는 ㅡ 물론 우리가 비판을 통하여 줄이려고 시도하는 ㅡ 관념은 나의 방법론에 필수적이다.
그런 다수로 인하여 귀납주의자가 당혹할지도 모르는 반면 나에게는 전혀 문제가 아니다.
실제로 더 분명하게 ‘터무니없는’ 추측 중 많은 추측이 비판을 통하여 제거될 것이다; 시험될 수 없거나 덜 시험될 수 있는 것으로서 제거될 것이다; 자의적이거나 임시방편적인 것으로서 제거될 것이다; 구실도 없이 불필요한 새로운 문제를 야기하는 것으로서 제거될 것이다; 그리고 만족스러운 설명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우리의 가장 일반적인 관념들과 충돌하는 것으로서 제거될 것이다: 다소 모호하지만, 과학이론처럼 시행착오에 의하여 발전하는 가장 일반적인 관념들과 충돌하는 것으로서 제거될 것이다: 훌륭한 설명의 ‘문체’라는 (기계적, 전기적, 통계적, 기타 등등) 관념들과 충돌하는 것으로 제거될 것이다. 물론 그런 고찰로 인하여 우리가 때때로 훌륭한 이론을 배척할지도 모른다. 이것 또한 우리가 감수하는 위험의 하나이다; 이것은 과학의 추측성 특징의 일부이다.
그리하여 갈릴레오는 조류에 관한 달 이론을 잘못 배척했는데 왜냐하면 (내가 다른 곳에서 제안한 바와 같이) 아무도 점성술을 관찰하여 논박하거나 심지어 점성술이 ‘근거한’ 방대한 양의 귀납적 증거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려고 수고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일지라도, 그가 나쁜 취향이라고 올바르게 느꼈던 것이 별들의 ‘영향력’에 대한 점성술적 이론의 본질적인 부분이었다. 다른 사례는 유럽 대륙에서 뉴튼의 중력이론을 일찍 배척한 것이고 영국에서 영(Young)이 입자설을 반증할 때까지 뉴튼 권위의 영향을 받아 호이겐스(Huygens)의 빛 파동설을 일찍 배척한 것이다.
그러므로 방법론자의 의무가, 사실에 들어맞는 터무니없는 이론이 터무니없다고 설명하여 그 이론을 선험적으로 배제하는 근거를 내놓는 것이라는 소신은 순진하다: 과학자들의 이론이 (그리고 자신들이) 인정받고 생존하기 위하여 싸우는 일을 과학자들에게 우리가 맡겨야 한다. 게다가 그 소신은 귀납적 소신이다. 한 이론을 수용하는 데 유일하게 충분한 근거가 과거의 관찰에 의한 그 이론의 뒷받침이라고 생각하는 귀납주의자는, 고도로 매력 없는 많은 이론 모두가 가장 매력적인 이론만큼 과거의 관찰에 의하여 똑같이 잘 뒷받침된다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을 발견하면 분명히 당황한다. 그러나 나에게 그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반대로 높은 설명력이 있는 이론이 어떤 이유로든지 (어떤 사람의 달과 관련 없는 이론이 갈릴레오에게 보였던 것처럼) 어떤 사람에게 매력적이고 유망하게 보인다면, 심지어 내부의 난제에 직면해서도 그리고 심지어 표면적인 경험적 반증에 직면해서도 그가 그 이론을 고수하여 너무 일찍 희망을 잃지 않는 것이 옳다; 그는 결국 그 이론을 올바르게 이해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의 지적(知的) 노력이 비판을 맞이하려고 노력하는 데서 클수록 그는 자신의 실수로부터 더 많이 배울 것이다. 우리가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혹은 어떻게 수정하는지를 즉각 알지 못하는 탁월한 관념을 우리가 잃지 않으려면 어느 정도의 독단론과 완고함이 필요하다.
과학의 비판적 방식 안에 심지어 정신병자 비주류를 위한 장소와 기능이 있다. 우리의 대학들이 학자나 과학자를 양성하려고 시도해서는 안 되고 더 수수하고 더 진보적인 목표에 ㅡ 돌팔이와 학자 혹은 과학자를 구분할 수 있는 사람을 양성하는 목표 ㅡ 만족하려고 시도해야 한다고 나는 예전에 서술했다. 나는 L. E. J. 브로우베르(Brouwer)에 의하여 즉각 바로잡혔는데 그는 심지어 이 문구도 교수들이 흔히 외부인을 멸시하는 저 진보적이지 못한 우월감을 고취하는 것으로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에 충분히 진보적이 아니라고 나에게 말했다. 그는 과학에 심지어 돌팔이를 위한 공간도 있다고 지적하여, 이런 종류의 차별을 뒷받침하는 것으로서 해석될 수 있는 여하한 것도 올바르게 거부하였다.
그리하여 우리가 개기월식 동안에 촬영된 까마귀를 제외하고 모든 까마귀가 검다는 이론과 같은 모든 이론을 비난하는 데 방법론적 근거를 제공한다면, 우리는 아마도 매우 중요한 이론을 쉽게 비난할 터이다. 항성들의 상대적 각거리(relative angular distances) 몇 가지가 다소 다른 것으로 밝혀질 때 개기일식 동안 촬영된 항성들을 제외하고 황도 십이궁도(Zodiac) 지역에서 항성의 무리들이 항상 동일한 상대적 각거리들을 보인다는 아인슈타인의 법칙에 반대하여 우리는 아마도 선험적 근거를 제시할 터이다. 사진술이 무엇인지 갈릴레오가 알았더라면 그는 이 아인슈타인의 법칙이 불쾌한 점성술적 풍미를 지녔다고 아마도 쉽게 느꼈을 터이다.
VI
지금까지 우리의 토론은 논리적이거나 방법론적 또는 인식론적이었다. 우리의 토론은, 내가 ‘어떻게 당신은 아는가? 당신의 주장에 대한 근거나 정당화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당신은 왜 경합하는 추측들보다 이 추측을 선호하는가? 당신의 선호에 대한 근거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내가 대체했다고 말함으로써 요약될 것이다.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나의 답변이 ‘나는 알지 못한다’인 반면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나의 답변은 통상적으로 더 잘 입증된 이론에 대한 우리의 선호가, 물론 시험 결과에 대한 우리의 토론을 포함하여 우리의 비판적 토론에 사용된 저 논증들에 의하여 합리적으로 옹호될 것이라는 점이다. 이것들은 논증들의 입증 등급이 요약 보고서를 제공하도록 의도된 논증들이다.
이런 방식으로 귀납의 논리적 문제가 해결된다.
ㅡ 칼 포퍼, ‘실재론과 과학의 목적’, 2000년, 69-71쪽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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