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은 비판, 상식, 상상력으로부터 동시적으로 발생한다
경합하는 이론들을 겨냥한 여하한 비판도 자기 자신의 입장에서 약점을 발견하려는 시도로 항상 사용되어야 한다. 그러나 나 자신의 접근방식으로부터 발생하는 비의도적 결과나 불합리한 결과를 내가 발견하지 못한다. 나의 접근방식에 따르면, 상식적 견해가 비판을 견디어낸다면 그 견해를 수용하는 것이 합당하다: 과학은 비판과 동시에 상식과 동시에 상상력으로부터 발생한다. (예를 들어 나는 물질적 물체의 실재를 그리하여 물질의 실재를 상식적으로 신뢰한다. 그러나 나는 ‘유물론자’가 아니다; 내가 정신을 신뢰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물질이 궁극적이고 설명될 수 없다는 교설이 비판을 견디어냈다고 내가 믿지 않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 교설은 게다가 무미건조하고 창조적이지 못한 교설이다. 어느 날 우리가 물질을 만족스럽게 설명할 수 있다면 ㅡ 가령, 힘이나 경향의 장(場)에서 간섭[disturbance]으로서 ㅡ 심지어 오늘날 몇몇 ‘심령론자[spiritualists]’가 생각하는 경향을 지닌 바와 같이, 우리가 물질을 설명해치웠다고 생각하는 것을 우리가 경계해야 한다. 일식이나 월식, 혹은 천둥이나 원자폭탄을 설명함에 의하여 이것들이 비실재적이거나 현상일뿐이라고 우리가 밝히지 않는다. 자동차나 치즈 조각이 자동차나 치즈 조각이 아닌 부분의 구조라고 주장함으로써 우리는 자동차나 치즈 조각이 망상이라고 암시하지 않는다. 그러나 기묘하게도 심지어 러셀도 물질의 구조를 설명함으로써 물질이 망상이라고 물리학이 증명한 것인 양 말한다.)
ㅡ 칼 포퍼, ‘실재론과 과학의 목적’, 2000년, 129-130쪽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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