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납(Carnap) 비판
나의 두 번째 사례는 카르납(Carnap)이다. 라이헨바흐의 경우에서처럼 아무도 과학에 대한 카르납의 충심에 있는 성실성을 의심할 수 없다. 그의 초기에, 특히 세계의 논리적 구조(Der Logische Aufbau der Welt)에서 카르납은 개인의 주관적 감각-경험의 토대에 근거하여 과학 세계의 체계를 구축하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얼마 후 그는 오토 노이라트(Otto Neurath)에 의하여 ‘물리주의(Physicalism)’로 전향했다. 자신의 거작에서 ㅡ 확률의 논리적 토대(Logical Foundations of Probability) ㅡ 그는 과학적 귀납의 확률론적 이론을 전개한다. 이 이론은, 나의 견해로 옳고 (과학적 발견의 논리, 80절 비교), 무한한 우주에서 보편법칙의 논리적 확률이 심지어 가장 선호될 수 있는 경험적 증거를 토대로 항상 0일 것이라는 결과를 낳는다. 그러나 카르납은 불행하게도 법칙의 확인 등급을 법칙의 논리적 확률과 동일시한다. 그는 그리하여 여하한 법칙의 (수용되든 배척되든) 확인 등급이 틀림없이 또한 0이라는 원치 않는 결과를 얻는다. 그리하여 어떤 법칙도 확인될 수 없다.
ㅡ 칼 포퍼, ‘실재론과 과학의 목적’, 2000년, 126-7쪽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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