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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술의 확률은, 논리적 내용이 증가하면 감소한다

이윤진이카루스 2026. 5. 22.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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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술의 확률은, 논리적 내용이 증가하면 감소한다

 

혹은 더 일반적으로, 몇 가지 단일 사건의 동시 발생으로 구성되는 복합적 사건의 확률은, 부속사건 중 여하한 사건의 확률보다 일반적으로 작고 기껏해야 그 확률과 같다.

따라서 사건을 기술하는 서술들에 (가설들에) 다음 것이 성립한다: 사건을 기술하는 서술의 확률은 서술의 논리적 내용이 증가함에 비례하여 감소한다.

내용의 규칙, 내가 그렇게 지칭할 것과 같이 (그 규칙은 확률계산의 단조성 공리[axiom of monotony]’에 대응한다; 앞 절의 각주1 과학적 발견의 논리, 부록 ivv 참조), 그 잘 확립된 언어적 용법에 따라서 두 개의 주사위를 12로 던지는 것이 한 개의 주사위로 6을 던지는 것보다 확률이 낮다라고 언급되는 잘 확립된 언어적 용법과 일치한다.

어떤 대응하는 내용의 규칙도, ‘확률의 첫 번째 의미에 대하여 성립하지 않고 그 의미를 내가 입증 등급이라고 지칭한다. 반대로: 물리학자 대부분은 맥스웰의 빛 이론이 프레스넬(Fresnel)의 빛 이론보다 첫 번째 의미에서 더 개연적이라고 ㅡ 다시 말해서 더 잘 입증되었거더 잘 시험되었다고 ㅡ 말할 것이다. 이유는 맥스웰의 이론이 더 폭넓고도 더 혹심하게 시험되었다는 ㅡ 심지어 프레스넬의 이론이 시험될 수 없었던 분야들에서도 ㅡ 것이다. 동시에, 맥스웰의 이론에 프레스넬의 이론보다 훨씬 더 큰 논리적 내용이 있다: 프레스넬의 이론이 단지 빛의 파장론인 반면 맥스웰의 이론은 빛의 파장론인 동시에 전자기론이다. 그리하여 맥스웰의 이론이 비록 더 잘 입증된다거나 더 잘 시험된다는 의미에서 더 개연적일지라도, 특히 가설이 성공적으로 통과한 시험들을 우리가 생각 중이라기보다 오히려 사건이 발생할 경우들을 우리가 생각 중이라면 역시 매우 잘 입증된 그 단어의 두 번째 용법의 의미에서 맥스웰의 이론은 동시에 덜 개연적이다.

(2) 두 가지 용법은 ㅡ 시험과 관련한 가설의 확률 및 사건의 경우들과 관련한 사건의 (혹은 가설의) 확률 ㅡ 거의 구분된 적이 없어서 대부분 동등하게 취급된다. 이것은, 직관적으로 ㅡ 다시 말해서, 적어도 첫 번째 모습을 근거로ㅡ 그것들이 구분하기 어렵다는 사실에 기인할 것이다. 그러나 두 번째 용법이 수학적 확률계산의 규칙과 (특히 수학적 확률계산의 단조성의 공리) 일치하는 반면, 첫 번째 법칙은 그렇지 않다고 밝혀질 수 있다.

두 가지 의미를 구분하지 못한 것에 대한 초기 사례와 특히 교육적 사례는 라이프니츠(Leibniz)의 유명한 편지에서 발견될 수 있다. 이 편지에서 라이프니츠는, 내용이 있는 것으로서 내가 기술해야 하는 가설에 대하여 매우 분명하게 말한다; 그는 그 가설의 단순성’, 그 가설의 장점그리고 그 가설의 (설명적) ‘에 대하여 말한다; 그리고 가설이란 가설의 단순성과 힘이 클수록, 그리고 가설이 더 적은 (추가적이거나 임시방편적) ‘전제들로써 해결할’ (설명할) 수 있는 현상의 숫자가 더 클수록, 개연적이라고 그가 말한다. 분명히 그는 확률에 관한 우리의 첫 번째 의미를 ㅡ 내가 입증 등급으로 부르기를 제안하는 것 ㅡ 염두에 두고 있다. 그러나 이 확률이 확률계산을 충족시키는 확률처럼 행동한다고 그가 생각하는 듯하다; 이유인즉 이 확률이 물리적 확실성(혹은 꾸뛰라[Couturat]가 자신의 비평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도덕적 확실성’) 근접할 것이어서 일종의 대용(surrogate 또는 Ersatz) 확실성이 진리라고 그가 제안하기 때문이다. 단순성과 설명력이 확률계산의 의미에서 논리적 비개연성과 대등하다고 그가 깨닫는다는 암시는 여기에 없다 (과학적 발견의 논리, 34절에서 46, 83, 30절 및 32절과 비교하라).

(3) 이제 이 모든 것에서 내가 옳다면, 이 두 가지 의미 사이의 혼란을 피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가설의 확률에 관한 거의 모든 저술가가 가설이 통과한 시험들과 관련하여 가설의 확률이 (또는 가설의 입증 등급’) 확률계산으로 취급될 수 있다고 추가 토론 없이 전제했기 때문이다.

ㅡ 칼 포퍼, ‘실재론과 과학의 목적(Realism and the Aim of Science)’, 2000, 224-6쪽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