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포퍼 원전+번역문

객관적 해석과 주관적 해석 비교

이윤진이카루스 2026. 6. 2. 07:14

객관적 해석과 주관적 해석 비교.hwpx
0.08MB

 

객관적 해석과 주관적 해석 비교

 

6. 객관적 해석과 주관적 해석의 비교.

우리의 주요 관심사는 과학에서, 특히 물리학에서 확률론적 가설의 위상이라고 내가 독자에게 회상시킨다. 논리적 해석은 여기에 들어오지 않는데 단지 이유가 논리적 해석이 확률 서술을 분석적으로서나 항진명제적으로서 그리고 그리하여 시험될 수 없는 것으로서 수용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논리적 해석은 주관적 해석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들어온다.

설명된 바와 같이 나는 빈도 해석과 경향 해석 모두를 객관적으로 지칭한다: 두 가지 모두가 확률을 특정 물리 체계들의 성질로서 ㅡ 예를 들어 실험적 구성 ㅡ 수용한다. 이 물리적 체계들 안에서 발생하는 것에 대한 우리 자신의 불완전한 지식의 척도들과 동일한 이 확률들을 수용하는 저 해석들을 나는 주관적이라고 지칭한다.

주관적 해석은 주로, 확률이 우리의 고찰에 들어올 때마다 이것은 우리의 불완전한 지식 때문이라는 그럴듯하고도 널리 믿어지는 견해의 결과이다: 우리의 지식이 완벽하다면 우리에게 확률이 필요하지 않은데 이유인즉 우리가 항상 확실성을 틀림없이 경험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견해는 엄청나게 틀렸다. 이 견해의 목표는 물리학에서 그리고 기회의 게임 이론에서 확률 서술의 의미를 설명하고 분석하는 것이다. ‘앞면을 던질 확률은 1/2이다와 같은 서술들은 다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앞면이 던져질 것이라는 서술과 앞면이 던져지지 않을 것이라는 서술 모두가 우리 지식을 구성하는 불충분한 증거에 의하여 동등하게 잘 뒷받침된다.’ 다시 말해서 주관적 해석은 내가 객관적으로 지칭한 해석들을 특정 이점들을 가지고 있다고 믿어지는 또 다른 해석으로 대체하려고 시도한다. 그러나 주관적 해석은, 객관적 이론의 가장 단순하고 가장 중요하며 가장 잘 확인된 결과 중 몇 가지 결과와 충돌한다.

나는 물론 객관적 이론을 주관적 언어로 해석하는 데 반대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이 태양이 빛나고 있다그래서 낮이다대신 나에게 태양이 빛나고 있다고 믿을 이유가 있다’, ‘나에게 지금 낮이라는 지식이 있다라고 (기타 등등) 말하기를 선호한다면 그의 의견을 바꾸려고 시도하면서 나의 시간을 나는 낭비하지 않겠다. 유사하게 누군가가 p(α,b) = 1/3’이라는 형식의 객관적 서술을 다음과 같은 것으로 대체하기를 원한다면: ‘내가 α에 반대하여 내기를 건다면, 조건 b에 대한 나의 지식에 비추어 α에 반대하여 나는 기꺼이 2:1의 가능성을 제시하겠다’, 나는 그 사람에 반대하여 다시 논증하지 않겠다. 객관적 이론을 반영하는 이 종류의 주관론적 재해석은 그다지 흥미롭지 않을 터이고 우리를 많이 계몽시키지는 못할 터지만 아마도 해롭지는 않을 터이다.

그러나 주관적 해석이 반영하려고 시도하는 것은 객관적 이론이 ㅡ b(실험적) 조건을 대표하는 ㅡ 아니라 논리적 해석인데 그 해석에 관하여 그 해석이 때로 객관적 이론이 낳는 확률값과 다른 확률값을 낳을 것이라고 이미 간략하게 우리가 밝혔다.

그리하여 주관적 이론의 위상은 희망이 없다: (a) 주관적 이론의 목표는 객관적 확률을 분석하여 설명하는 것이다; 그 목표는 (b) 논리적 이론을 주관적 이론의 토대로서 수용하기 마련이다 (내가 이 절에서 밝힐 것과 같이); 그러나 우리가 안 바와 같이 (c) 논리적이고 객관적인 확률이, 객관적 확률이 자유롭게 선택된 시험될 수 있는 가설인 반면 논리적 확률 서술은 시험될 수 없는 항진명제라는 (혹은 이 종류의 것) 사실 때문에, 상충하는 값들을 초래할 것이다.

먼저 나는 (b)만을 ㅡ 주관적 이론은 자체를 논리적 해석에 근거시키기 마련이라는 것 ㅡ 밝히겠다.

것이 그러한 까닭은 주관적 이론이, p(α,b)를 우리가 지닌 실제적 총계 지식 b에 의하여 합리적으로 정당화될 α에 대한 저 신뢰도로서 해석하려고 시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실제로, 논리적 해석이 답변하려고 시도하는 동일한 문제이다 (오직 주관적 언어로 표현된); 이유인즉 논리적 해석이, 서술 α가 서술 b에 의하여 논리적으로 뒷받침되는지 혹은 승인되는지 아니면 정당화되는지의 정도를 평가하려고 시도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우리가 논리적 해석을 주관적으로 ㅡ 다시 말해서 우리의 지식이나 무지(無知)에 관하여 ㅡ 해석한다면 p(α,b)는 정확하게 우리가 지닌 실제적 총계 지식 b가 의심스럽거나 가설적인 α를 합리적으로 정당화하는 정도가 된다.

ㅡ 칼 포퍼, ‘실재론과 과학의 목적(Realism and the Aim of Science)’, 2000, 295-6쪽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