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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 ‘b’에 대한 객관주의적 해석과 주관주의적 해석

이윤진이카루스 2026. 6. 2. 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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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 ‘b’에 대한 객관주의적 해석과 주관주의적 해석

 

7. 'p(α,b)'에서 ‘b’에 대한 객관주의적 해석과 주관주의적 해석.

나의 앞 문단은 두 가지 접근방식 사이의 작지만 중요한 차이점을 가리킨다. 객관주의자가 p(α,b) = r을 자신의 가설로서 수용하는 반면, 주관주의자는 α를 자신의 가설로서 그리고 p(α,b)를 그 가설에 대한 우리의 신뢰도로서 수용한다. (객관주의자는 자신의 가설을 신뢰하거나 신뢰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이 요점으로 나중에 돌아오겠다. ‘p(α,b)에서 b가 수행하는 역할에 대한 객관주의적 관점과 주관주의적 관점 사이의 차이점을 지금 나는 강조하고 싶다.

b에 대한 객관주의적 관점은, b가 반복될 수 있는 상황에 대한 반복될 수 있는 조건을 서술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안 바와 같이, 이전 실험들의 결과들은 정보 b의 일부가 아니다; 그래서 그 결과들이 b의 일부라면 그 결과들은 손실 없이 생략될 수 있을 터이다; 이유인즉 우리가 조건 b의 반복가능성을 전제하기에 그 결과들이 틀림없이 무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반복가능성은 이전 실험들의 독립성을 수반한다.

b에 대한 주관주의적 관점은 매우 다르다. 여기서 b는 틀림없이 우리가 지닌 유관한 지식 모두를 포함한다; 그리고 문제의 실험에 대한 과거 결과들을 관찰하면 고도로 유관할 것이다. 주관주의자에 따르면 우리가 p(α,b)의 값을 판단할 수 있는 것은 그 결과들로부터이다. 우리의 과거 지식이 ㅡ 다시 말해서 b α가 과거에 흔히 발생했다고 우리에게 알려준다면, α가 매우 드물게 발생했다고 b가 우리에게 알려준다는 조건보다 p(α,b)는 훨씬 더 큰 값을 지닐 것이다.

정말로 주관적 접근방식의 토대를 이루는 근본적 직관인 이 그럴듯한 관점은 다음 절에서 상세하게 설명될 것이다. 여기서 나는

(i) 객관적 이론의 b가 일반적으로 주관적 이론의 b와 같지 않다는 것,

(ii) 심지어 객관적 이론의 b가 일반적으로 주관적 이론의 b와 같거나 거의 같은 곳에서도 주관적 이론의 b, 객관적 이론에 따라서 틀림없이 무관할지라도 주관적 이론에 따라서 틀림없이 고도로 유관한 정보를 포함할 것이라고 밝히고 싶을 따름이다.

(i)에 대하여 객관적 이론과 논리적 이론 모두가 완전히 자유롭게 자신들의 b를 선택할 수 있다. 논리적 이론은 여하한 αb에 대하여 p(α,b)에 관심을 둔다. 유사하게 객관적 이론은, 조건 b의 여하한 집합이 주어진 α의 확률에 대한 질문을 제기할 것이다. 물론 객관적 이론의 αb의 실제적 선택은 주로 과학적 문제 상황에 의존할 것이다. 그러나 b, 가령 이미 관찰되거나 그렇지 않으면 알려진 상황에 한정할 이유가 전혀 없다.

이것과 반대로 주관적 이론은, b가 우리의 실제적 총계 지식을 의미한다면, p(α,b)α에 대한 우리의 신뢰도로서 간주한다. 모든 적용에서 b는 주관적 이론에 의하여 우리가아는 것의 총계로서 해석될 것이다. 모든 적용에서 주관적 이론은 그러므로 b의 선택에 자유롭지 않다: 우리의 지식이 항시 변하기 때문에 b는 상수가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b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b는 변수가 아니다; 반대로 b는 우리의 통제를 완전히 벗어난 것이다: 우리의 지식은 우리에게 주어진것이다.

이것과 반대로 객관적 이론을 심지어 적용에서도 b를 자유 선택에 개방된 것으로서 간주한다. 내가 동전을 특정 방식으로 구부려 동전의 앞면이 오목한 면에 있다면 앞면이 나올 확률은 무엇인지 자유롭게 물을 수 있는 사람은 나다. 새로운 확률을 발견하는 방법은 또 다른 문제이다. 조건은 주어지지 않고 우리가 우리의 문제를 선택할 때 우리에 의하여 선택되거나 선정되거나 구축된다.

그리하여 α의 확률을 결정하는 실제적 문제에서 두 가지 이론이 동일한 b를 사용하여 연산해야 한다는 이유가 전혀 없다.

그러나 주관주의자는 당신이 순진하여 피상적인 언명의 제물이라고 답변할 것이다. 당신이 b선택한다라고 당신이 말하면 동전 구부리기를 당신이 선택할 수 있다고 당신은 의미할 따름이다. 누가 이것을 부인하는가? 굽은 동전의 경우 당신이 앞면의 확률을 발견하고 싶어 하면 당신이 합당한 결과를 얻고 싶어 한다는 조건으로 당신은 과거 경험을 사용하기만 해도 충분할 것이다: 당신의 모든 지식을 당신이 사용할 것이고, 당신이 바로 이 동전을 구부렸다는 사실은 모든 당신 지식의 중요하고도 유관한 부분일 것이다. 그 사실을 b의 구성성분으로만 수용하면 순진하다. 그 사실은 b의 가장 두드러진 ㅡ 매우 두드러져서 당신과 당신 같은 다른 사람들이 나머지 것들을 잊게 만들고 그것을 당연하게 만드는 ㅡ 부분일 것이다. 그러나 논리학자는 항상 억압된 전제들을 ㅡ 논증에서 함축적으로 전제된 저 전제들 ㅡ 요구해야 한다. 그리고 이 억압된 전제들은, 이 경우 우리의 모든 과거 지식이다. 그 지식의 전부가 물론 유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동전 던지기와 관련된 이전 경험들, 그리고 또한 동전과 주사위의 빈도에 관한 불균형의 영향과 관련된 이전 경험들과 사실상 물리학에 대한 우리의 전체 지식이 모두 유관할 것이다. 그래서 동전 던지기 집합에서 상대빈도를 관찰함에 의해서가 아니라면 당신은 어떻게 p(α,b)의 ㅡ 이 동전으로 앞면을 던지는 것의 ㅡ 값을 알아낼 것인가? 백번이나 수백 번 동전을 던진 후에 당신이 p(α,b)를 측정할 수 있을 것이다.

주관적 이론을 옹호하는 사람의 경우를 내가 설득력 있게 제시하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그가 여기서 말하는 것은 모두 오류이고 혼란스럽다고 나는 믿는다. 그러나 b의 위상이라는 문제와 관련된 주관적 이론 옹호자의 요점 중 저 요점들에게만 내가 여기서 도전하겠다.

그러나 이 구부러진 특정 동전을 던지는 데서 앞면이 나올 확률을 실제적으로 결정하는 문제에 주관주의자가 나처럼 관심을 가진다는 것을 내가 먼저 주목해야겠다. 이것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동의한다; 이것은 우리 토론의 확고한 기초인 공통적 토대이다.

이제 주관주의자들은, p(α,b)의 참인 값이거나 최고의 값 혹은 합당한 값이 앞선 실험의 결과에 의하여 강력하게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서 우리는 멈추고 고찰할 것이다. 객관적 이론은, 앞선 실험의 결과가 무관하다고 말한다: 그렇지 않으면 실험들은 반복들의 연속이 아닐 터이다. 주관주의자들은 실험들이 유관하다고 말한다. 누가 옳은가? 느낌으로 주관주의자들이 여기서 승인되는 경향을 보인다고 내가 생각한다. 나는 답변을 다음 절들로 연기하고 대신 이렇게 질문한다: 이것은 단순히 견해의 차이인가 아니면 그것 뒤에 더 많은 것이 있는가? 무관성과 독립성은, 결국, 철학적이거나 인식론적 노리개가 아니라 주관주의자와 객관주의자가 잘 알려진 동일한 수학적 공식들에 (특별한 곱셈 법칙) 의하여 정의(定義)하는 개념들이다.

객관주의자는 자신의 독립성이나 무관성 이론이 계산의 적용에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라고 지적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그 이론은 도박 배제 체계(the excluded gambling system)(과학적 발견의 논리. 49이하에서 토론된) 대등한데 그 체계는 통계적으로 잘 시험되었다. 독립성은 시험될 수 있고 시험되었으며, 시험들은 충분히 민감하여 시험들에 의하여 예를 들어 카드를 섞는 통상적인 방법들이 그다지 좋지 않은 것이 탐지된다.

이제 객관적 이론과 주관적 이론 사이의 공통적 토대는 두 가지 이론 모두가 확률이론을 물리학에서나 기회의 게임에서 사용되는 것으로서 설명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주관적 이론의 주장은, 자체가 이것을 여하한 객관적 이론만큼 잘하거나 객관적 이론보다 더 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주관적 이론과 모든 적용 사이의 갈등이 있다: 모든 적용에 이전 실험들과 그 실험들의 유관성으로부터 독립이 필요한데 그 실험들과 그 실험들의 유관성에서 주관적 이론은 (분명히 매우 그럴듯하게) 의존과 유관성을 요구한다.

그리하여 객관주의자 자신이, 억압된 전제들이라고 (이전 실험의 결과) 주장되는 것을 b의 구성성분들로서 명시적으로 채택할지라도 자신의 수학적 이론에 의하여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구성성분들을 무관한 것으로서 자신이 무시할 것임을 알게 된다고 객관주의자가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객관주의자는 자신의 과거 경험을 순진하게 간과하지 않지만, 고도로 성공적인 이론의 ㅡ 사실상 주관주의자가 설명하겠다고 제안하는 동일한 이론 ㅡ 요건을 따르는 데서 간과한다.

객관주의자가 무관한 것으로서 배척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b의 부분들이 고도로 유관하다고 주관주의자가 믿기 때문에, b에 관한 차이점은 남는다; 객관주의자가 사실상 옳든 주관주의자가 옳든 그들의 이론은 완전히 다르며, 이론을 물리학에서와 게임 이론에서 사용되는 것으로서 이해하여 해석한다는 주관주의자의 주장은, b의 위상 때문에만 배척되어야 한다.

요컨대 객관주의자는, 일관적인 객관적이고 물리적 조건 b 하에서는 (항아리 속의 검은 공들과 흰 공들의 상수비[常數比: constant ratio]; 일관적인 완전한 혼합) 항아리에서 뽑기 각각의 확률이 일관적이라고 믿는다. 주관주의자는 반대한다: 우리가 또한 물리적 조건의 일관성에 대하여 알지라도 뽑기 각각의 결과에 대하여 우리가 아는 뽑기 이후에 확률은 변한다.

ㅡ 칼 포퍼, ‘실재론과 과학의 목적(Realism and the Aim of Science)’, 2000, 296-300쪽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