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률에 대한 성향 해석
여기서 개관적인 두 번째 해석이자 나은 해석이 ㅡ 성향 해석 ㅡ 있다고 나는 제안하고 싶다. 나의 제안은 빈도 이론에 대한 통상적 비판 중 여하한 비판도 정당화된다는 소신에 의하여 동기가 부여되지 않는다. 반대로 빈도 이론의 일관성을 내가 의심하지 않으며 빈도 이론을 이용하여 연구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내가 믿는다. 그러나 성향 이론이 결정적으로 선호될 수 있다고 내가 또한 믿는다. 이것을 믿는 나의 근거 중 몇 가지 근거는, 다른 근거들이 나중을 위하여 남겨질 반면, 현재 절에서 토론될 것이다.
이 절에서 그 토론이 ‘단칭 사건들(singular events)’의 (혹은 발생) 확률을 해석하는 문제에만 국한될 것이어서, 성향 해석과 대조적으로 확률에 대한 빈도 해석을 내가 여기서 언급할 때마다 내가 염두에 두는 것은 단칭 사건들의 확률에 대한 빈도 이론이다.
빈도 해석의 관점에서 특정 종류의 사건에 ㅡ 특정한 주사위를 사용하여 6을 얻는 것과 같은 ㅡ 있는 확률은 극단적으로 긴 (아마도 무한한) 사건들의 수열에서 그 특정 종류의 사건에 있는 상대빈도일 따름이라고 기억될 것이다. 그리고 이 주사위를 사용하여 오늘 아침 아홉 시 이후에 이루어진 세 번째 던지기에서 6을 얻는 확률과 같은 단칭 사건의 (다시 말해서 과학적 발견의 논리, 23절의 의미에서 ‘발생’; 또한 71절 참조) 확률에 대하여 우리가 말한다면, 순수 통계적 해석에 따라서 이 세 번째 던지기가 던지기 수열의 하나의 항(項: member)으로서 간주될 것이고 이 수열의 하나의 항(項: member)으로서 자체의 역량에서 저 수열의 확률을 공유한다고만 말할 의도가 우리에게 있다; 다시 말해서 저 수열 내부에서 상대빈도일 뿐인 확률을 공유한다만 말할 의도가 우리에게 있다.
확률 해석에 대한 객관적 실험 조건의 중요성에 관하여 앞 장(章)에서 도달된 결과들을 이용함으로써, 이 빈도 해석에 반대하여 논증할 것과 성향 해석에 호의적으로 논증하자고 현재 절에서 내가 제안한다. 나는 다음과 같이 진행하자고 제안한다. (1) 빈도 해석의 관점에서 성향 해석을 수용될 수 없게 만드는 듯이 보이는 성향 해석에 반대하여 틀림없이 반대론이 제기됨을 내가 먼저 밝히겠다. (2) 그다음 이 반대론에 예비적 답변을 내가 내놓겠다; 그리고 그다음 요점 (3)으로서, 처음 제기되었을 때 심각한 난제처럼 보이지 않을지라도, 빈도 해석이 틀림없이 직면하는 특정 난제를 내가 제시하겠다. (4) 마지막으로 이 난제를 극복하기 위하여 빈도 해석은 첫눈에 사소하게 보이는 수정을 채택할 수밖에 없음을 내가 밝히겠다; 그러나 표면적으로 사소한 이 수정은 성향 해석의 채택과 동치인 것으로 판명된다.
(1) 순수 통계적 확률 해석의 관점에서 성향 해석이 수용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유인즉 성향이, 자체를 실현하는 경향이나 의향이 부여된 가능성으로서 그리고 성향이 실험 반복의 긴 수열에서 사실상 스스로 실현될 통계적 빈도에 대하여 책임지는 것으로 고려되는 가능성으로서 (혹은 가능성에 대한 측도[measures]나 ‘무게[weights]’로서) 설명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향은, 특정 수열의 통계적 성질을 우리가 설명하여 예측하는 데 돕기 위하여 도입된다; 그리고 이것이 성향의 유일한 기능이다. 그리하여 (빈도 이론가는 주장할 것이다) 성향에 의하여, 단칭 사건의 반복이 같은 조건에서 특정 통계적 성질이 있는 수열을 생성할 것임을 제외하고, 단칭 사건에 대하여 여하한 것도 우리가 예측하거나 말할 수 없다. 이 모든 것에 의하여 성향 해석이 ‘성향’이라는 새로운 단어와 그 단어와 연상되는 새로운 인상(image)이나 은유를 ㅡ 경향이나 의향 또는 충동의 새로운 인상이나 은유 ㅡ 제외하고 빈도 해석에 아무것도 추가할 수 없다고 밝혀진다. 그러나 이 의인화적(擬人化的: anthropomorphic)이거나 심리학적 은유는 ‘힘(force)’과 ‘에너지’라는 옛 심리적 은유보다 훨씬 덜 유용하고, 그 옛 심리학적 은유는 자체의 원래 형이상학적이고 의인화적(擬人化的: anthropomorphic) 의미를 상실하는 정도까지만 유용한 물리학적 개념들이 되었다.
이것이 개략적으로 빈도 이론가의 견해일 터이다. 성향 해석을 옹호하여 나는 두 가지 다른 논증을 이용할 예정이다: 예비적 답변 (2)와 형세를 역전시켜 빈도 이론가를 이기려는 시도에 해당하는 논증; 이것은 (3)과 (4)에서 토론될 것이다.
(2) 예비적 답변으로서 성향이라는 관념과 힘이라는 관념 ㅡ 특히 힘의 장(場) ㅡ 사이에 유사점이 있다는 제안을 나는 수용하고 싶다. 그러나 ‘힘’이나 ‘성향’이라는 표찰이 모두 심리학적이거나 의인화적(擬人化的: anthropomorphic) 은유일지라도 두 가지 관념 사이의 중요한 유사점은 여기에 놓이지 않는다; 그 유사점은, 더 정확하게, 두 가지 관념 모두 물리적 세계의 관찰될 수 없는 의향적 성질에 주목하여 물리 이론의 해석에 도움을 준다는 사실에 놓인다. 여기에 그 관념들의 유용성이 놓인다. 힘이라는 개념은 ㅡ 혹은 훨씬 낫게 힘의 장(場) 개념 ㅡ 관찰될 수 있는 가속(accelerations)을 설명하기 위하여 특정 방정식에 의하여 (은유에 의해서라기보다) 기술된 의향적인 물리적 실체를 도입한다. 유사하게 성향이나 성향들의 장(場)이라는 개념은, 관찰될 수 있는 빈도들을 이 사건들의 반복의 수열로 설명하기 위하여 단칭 실험적 물리 장치의 ㅡ 다시 말해서 단칭 물리적 사건들의 ㅡ 의향적 성질을 도입한다. 두 가지 모두의 경우 새로운 관념의 도입은, 물리 이론에 대한 그 관념의 유용성의 도움을 받고 정당화될 수 있다. 두 가지 개념 모두는 버클리(Berkeley)의 의미에서 ‘초자연적(occult)’이거나 ‘단어들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 개념들의 유용성 일부는, 이 개념들이 관찰될 수 없는 물리적 실재의 성질들과 그 이론이 관련된다고 암시한다는 사실과 우리가 관찰할 수 있고 그리하여 우리가 그 이론을 시험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이 실재의 훨씬 더 피상적인 효과 중 오직 몇 가지 효과라고 암시한다는 사실에 정확하게 놓인다. (위 11절에서 15절까지 참조.) 성향 해석에 호의적인 주요 논증은, 양자 이론으로부터 특정 비합리적이고 주관주의적 특성의 방해하는 요소들을 ㅡ 성향보다 더 ‘형이상학적’이고, 게다가 그 단어의 나쁜 의미에서 ‘형이상학적’인 요소들 ㅡ 제거하는 성향 해석의 힘에서 발견될 수 있다. 성향 해석이 판단되어야 할 것은 이 적용 분야에서 그 해석의 성공 혹은 실패에 의해서이다.
ㅡ 칼 포퍼 저, W. W. 바틀리(Bartley), III 편집, ‘실재론과 과학의 목적(Realism and the Aim of Science)’, 2000년, 349-352쪽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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