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령
북쪽 김 씨 도깨비
남쪽 박 씨 유령
서로 옳다 삿대질
주먹 몽둥이 휘둘러
끼리 잘 먹고 살겠다.
복종하면
먹여준다니
굽신굽신
애걸복걸
조삼모사
지하로 간다.
하데스 가면
생명 되찾아
가장 비천하게 살아도
여기보다 낫다고
떠도는 영혼
아우성친다.
음모론
뒤집어씌워
법률 희롱하고
안되면
흉기 휘두르고
암살 노린다.
누가
살인할 권한을 주었나?
도스토옙스키 물어도
답변 없고
모세
시나이산에서 내려와
우상 섬긴다
삼천 명 칼로 베니
집단학살
시작이다.
살인하지 말라
있어도
우상 섬기는 자 죽여
십계에 없다.
시나이산에 올라간
지식인의 후예
지금도 음모로 산다.
칼 뺀 유령에
눈치 보며
이리 붙을까,
저리 붙을까?
도깨비 된다.
고독한 자
홀로 살고
인간의 군자
하늘의 소인
하늘의 군자
인간의 소인.
유행 따르지 말라.
진리
군중 속에 있나,
대중 목소리 진실한가?
산속으로 들어간
구도자의 뒷모습
세상에 미련 남겼나?
후기:
홀로 사는 것은 모든 위대한 영혼의 운명이다.
To live alone is the fate of all greatest soul.
ㅡ 아르투르 쇼펜하우어 ㅡ
자신이 자랑할 수 있는 것이 전혀 없는 비참한 모든 바보는, 자신이 속한 민족에 대한 자존심을 마지막 자원으로서 채택한다; 그는 민족의 오류와 어리석음을 모든 수단을 동원해 기껍고 행복하게 옹호하여 자신의 열등함을 보상받는다.
ㅡ 아르투르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 ‘Essays and Aphorisms’ㅡ
야곱이 빵과 팥죽 얼마를 에서에게 주니, 에서가 먹고 마시고, 일어나서 나갔
다. 에서는 이와 같이 맏아들의 권리를 가볍게 여겼다.
ㅡ 창세기 25:34 ㅡ
바보는 자신을 찬양하는 더한 바보를 항상 발견한다.
ㅡ 몰리에르(Molière)ㅡ
A fool always finds a greater fool who admires him.
ㅡ Molièreㅡ
하늘의 소인은 사람의 군자이고 사람의 군자는 하늘의 소인이다.
天之小人 人之君子 人之君子 天之小人.
ㅡ 장자, 대종사 편 6 ㅡ
대중의 목소리는 신(神)의 목소리(vox populi vox dei)라는 고전적 신화가 있는데 그 신화는, 대중의 목소리에, 일종의 최종적 권위와 무제한적 지혜를 부여한다. 현대에 그 신화의 등가물은, 신화적 인물인 ‘보통 사람’, 그의 투표권, 그리고 그의 목소리가 궁극적으로 옳다는 상식에 대한 신뢰이다. 두 가지 경우 모두에서 명사의 복수형을 쓰지 않은 것은 특징적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하느님 감사합니다, 한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그리고 다양한 거리에 사는 다양한 사람은, 회의실에 모인 주요 인사들(VIPs)만큼 다양하다. 그래서 때때로 사람들이 다소 같은 목소리를 정말로 낸다면, 그들이 말하는 것은 반드시 현명한 것은 아니다. 그들은 옳을지도 모르고 틀릴지도 모른다.
ㅡ 칼 포퍼, ‘나은 세상을 찾아서(In Search of a Better World)’, 1996년, 151쪽 ㅡ
나는 과학에서든 철학에서든 유행, 동향, 경향 혹은 학파를 신뢰하지 않는다. 사실상 인류의 역사가, 유행하는 철학적이고 종교적 질병들이 창궐한 역사로서 잘 기술될 수 있을 터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 유행은 단지 한 가지 진지한 기능을 지닐 수 있을 따름이다 ㅡ 비판을 자아내는 기능. 그러나 배움이라는 공동 재산의 합리주의적 전통을, 그리고 이 전통을 보존하려는 시급한 요구를 나는 정말로 신뢰한다.
ㅡ 칼 포퍼, ‘실재론과 과학의 목적(Realism and the Aim of Science)’, 2000년, 7쪽 ㅡ
십계명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살인하지 말라! 그 계명은 거의 윤리학 모두를 포함한다. 예를 들어 쇼펜하우어가 윤리학을 언명하는 방식은 이 가장 중요한 계명의 확대일 뿐이다. 쇼펜하우어의 윤리학은 간단하고 직접적이면서 분명하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아무도 해치지 말고 당신이 할 수 있는 모든 힘으로 모든 사람을 도우라!
그러나 모세가 심지어 십계명을 선언할 수 있기 이전에 시나이산에서 십계명을 가지고 처음으로 내려왔을 때 무슨 일이 발생했던가? 그는, 황금 송아지 숭배라는 지독한 이단을 목격했다. 이것을 보고 그는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에 관하여 모두 잊었고 그는 다음과 같이 소리쳤다 (출애굽기 32):
누가 여호와의 편에 있는가? 내게로 나아오라….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기
를 너희는 각각 허리에 칼을 차고…. 각 사람이 그 형제를, 각 사람이 자기
친구를, 각 사람이 자기의 이웃을 죽이라 하셨느니라...
이날 백성 중에 삼천 명가량이 죽임을 당하니라.
저것이 아마도 시작이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사태가 이런 방식으로 계속되었다는 것이다; 성지(聖地: Holy Land)에서, 그리고 나중에 여기 서양에서. 그리고 기독교가 공식 종교의 위상에 도달한 다음 특히 서양에서 사태가 이런 방식으로 계속되었다는 것이다. 기독교는 정통성을 위한 박해인 종교적 박해의 무시무시한 이야기가 되었다. 나중에 ㅡ 무엇보다도 17세기 및 18세기에 ㅡ 여전히 다른 이념들이 경쟁적으로, 박해와 잔인성 그리고 공포를 정당화했다: 민족주의, 인종, 정치적 정통성 및 다른 종교들.
정통성과 이단이라는 관념 배후에 가장 작은 악행들이 숨어있다; 지성인들이 특히 저지르기 쉬운 악행: 오만, 독단에 가까운 자기만족. 지적 허영. 이 모든 것들은 ㅡ 잔인성과 같은 주요 악행이 아닌 ㅡ 작은 악행들이다.
ㅡ 칼 포퍼, ‘나은 세상을 찾아서(In Search of a Better World)’, 1996년, 189-190쪽 ㅡ
우리는 선량하다, 아마도 다소 너무 선량하다, 그러나 우리는 다소 어리석기도 하다; 그리고 우리가 겪는 고통의 기저에 놓여 있는 것은 이 선량함과 어리석음의 혼재이다.
오해를 피하기 위하여, 내가 ‘우리’라는 단어를 이 논지에서 사용할 때, 나 자신을 포함한다고 내가 강조하겠다.
여러분은 왜 나의 첫 번째 논지가 낙관적 견해의 일부가 되어야 하는지를 나에게 아마도 물을 것이다.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다. 한 가지 이유는 사악함이 제한된 정도의 어리석음보다 대처하기 훨씬 더 어렵다는 것인데 왜냐하면 그다지 영리하지 못한 선량한 사람들은 통상적으로 배우기를 매우 열망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우리가 절망적으로 어리석다고 내가 생각하지 않으며, 우리가 절망적으로 어리석지 않다는 것이 확실히 낙관적 견해라는 것이다. 우리에게 잘못된 것은 우리가 매우 쉽게 우리 자신을 오도한다는 것과, 그래서 새뮤얼 버틀러(Samuel Butler)가 에레혼(Erewhon)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쉽게 ‘맹종한다’는 것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구절들 중에서 한 구절을 인용하도록 여러분이 허용하기를 나는 희망한다: ‘... 에레혼 사람들은 쉽게 맹종하는 순종적이고 오랫동안 고통을 당한 사람들이어서, 그들의 현존 제도가 가장 엄격한 도덕적 원칙에 근거하지 않는다고 설득함에 의하여... 그들을 넋을 앗아가는 철학자가 그들 가운데서 출현할 때 재빨리 논리의 제단에 상식을 갖다 바치는 것이... 알려질 것이다’라고 버틀러가 서술한다.
ㅡ 칼 포퍼, ‘추측과 논박, 과학적 지식의 성장’, 1989년, 365-6쪽 ㅡ
나에 관한 한, E. M. 포스터(Forster)가 말하는 바와 같이, ‘나는 소신을 신뢰하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특히 과학에 대한 소신을 신뢰하지 않는다. 나는 기껏해야, 소신은 윤리학에서 자리를 차지하는데 심지어 여기서도 몇 가지 사례들에서만이라고 나는 믿는다. 예를 들어 객관적 진리는 가치라고 ㅡ 다시 말해서, 아마도 존재하는 가장 큰 가치인 윤리적 가치 ㅡ 그리고 잔인성은 가장 큰 죄악이라고 나는 믿는다.
ㅡ 칼 포퍼, ‘나은 세상을 찾아서’, 1996년, 6쪽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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