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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혁 쇠데르퇴른대학 정치학 교수 |
“우리 국민들은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누구나 원하면 등록금 걱정 없이 탁아소부터 대학까지 얼마든지 교육을 받을 수 있고, 안정적인 연금이 있고, 직장을 잃으면 직업교육을 통해 다시 원하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큰 병이 나도 가정의 파탄 없이 치료를 받고 다시 가정과 직장으로 돌아갑니다. 이런 나라에서 사는 우리 국민들을 위해 우리는 앞으로도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1968년 9월 선거에서 차분하게 사민당이 이루어낸 업적과 사회보장제도를 하나하나 열거해 나간 노총리의 연설과 텔레비전 토론을 본 국민들은 열광했다. 2차대전 이후 처음으로 단독 과반수를 획득했으니 사민당은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였다. 하지만 당시 총리였던 타게 엘란데르는 승리에 도취하지 않고 세대교체를 단행해 후계자에게 정권을 물려주었다. 노정객의 멋진 정치적 승계를 보면서 모든 국민은 카타르시스를 느꼈고 그에게 무한한 경의를 표해 주었다.
1932년 사민당이 처음 단독정권을 수립할 때까지만 해도 1920년대와 같이 좌와 우의 정당들이 한번씩 정권을 주고받는 상황이 지속될 것으로 보았다. 하지만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44년간 연속으로 집권에 성공한 것이다. 세계 정당사에서 이런 유례없는 장기집권이 가능했던 요인은 무엇이었을까?
1930년대 사민당은 복지를 통해 모든 국민이 편하게 살 수 있는 국민의 집을 지어 주겠다고 약속한 것을 하나씩 실천해 나갔다. 좌우연정을 이끌어내 안정적인 정국과 경제성장도 이루어냈다. 2차대전 이후 고용안정을 바탕으로 줄곧 5%대의 지속적인 경제성장과 세계에서 가장 평화적인 노사관계를 구축해냈다. 기업의 사회적 기여도 이끌어냈다. 이를 두고 역사학자들은 ‘스웨덴 노조경영자 주식회사’라는 이름까지 명명해줄 정도였다.
사민당은 1940년대까지 노동자와 저소득층, 사회적 약자만의 지지를 바탕으로 했지만, 1950년대 연금개혁을 통해 신중산층까지 포함하는 중도좌익정당으로 탈바꿈해 나갔다. 육체노동자들의 연금이 사무직보다 상대적으로 낮아 사회적 불평등이 야기되자 사민당은 추가 연금제도를 도입해 국민투표를 통해 관철해냈다. 소득이 없거나 극히 낮은 국민들에게는 기초국민연금을 제공해주었다. 결과적으로 국민들은 더 이상 사민당을 좌파 사회정당으로 보지 않고, 실용적 온건중도 좌파정당으로 간주하기 시작한 것이다.
무엇보다도 스웨덴 사민당이 세계에서 유례없는 국민적 지지와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국민의 집’이라는 미래의 청사진을 보여줄 수 있었다는 점과, 노사 안정을 바탕으로 경제성장과 고용을 견인하면서도 보건, 의료, 탁아, 학교, 양로원 등 공공복지를 통해 모든 국민의 삶의 질을 획기적으로 높여주었다는 데 있다. 그리고 극적인 세대교체를 통해 사민당 지도부에 대해 확고한 믿음을 줄 수 있는 정당으로 국민들에게 강하게 각인시켜 주었다는 점이 또다른 성공요인이다.
역사는 되풀이되지 않는다. 우리나라와 여러 면에서 다른 스웨덴 사민당 같은 정당이 한국에서 뿌리를 내릴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번 대통령 선거가 스웨덴의 1968년 선거처럼 한국 정치사에 중요한 분기점 역할을 할 것을 기대해본다.
건강한 좌파정당의 존재는 정치발전에 필수요소이다. 하지만 그런 정당은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한국에서도 국민의 사랑과 지지를 전폭적으로 받을 수 있는 중도좌파 정당이 나올 수 있으려면 처음부터 다시 틀을 짜는 고통을 전제로 한다. 정치적 기득권을 내려놓고 전체 국민에게 믿음과 희망을 주는 정치를 보여줘야 가능하다. 30년 이상의 비전과 청사진을 보여주는 믿음직한 좌파정당을 기대해보는 것이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무리일까?
최연혁 쇠데르퇴른대학 정치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