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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사회와 그 적들 제 8장 철학자 왕(王)

이윤진이카루스 2010. 7. 31. 16:31

8 장: 철학자 왕(王)

 

 

 

그리고 국가는 기념비를 세울 것이다... 그들을 기억하기

위하여. 그리고 반신(半神)인 그들에게 제물이 바쳐질

것이다,... 은총의 복을 받아서 신처럼 되어버린 사람으로서...

플라톤.

 

 

 

 

플라톤의 믿음과 소크라테스의 믿음 사이의 격차는 내가 지금까지 밝힌 것보다 훨씬 더 크다. 플라톤은 철학자라는 의미를 정하면서 소크라테스를 따랐다고 나는 말했다. '당신은 누구를 진정한 철학자라고 부르는가? -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들'라는 대화를 우리는 국가에서 읽는다. 그러나 그 자신이 이 말을 할 때, 그의 말에는 신빙성이 없다. 그도 이 말을 실제로 신뢰하지 않는데, 그 까닭은 그가 다른 장소에서 거짓말과 속임수를 철저하게 이용하는 것이 통치자가 갖는 제왕적 특권이라고 솔직하게 선언하기 때문이다: '도시의 이익을 위하여 적과 자신의 시민 모두를 속이면서 거짓말을 하는 것이 도시의 통치자가 하는 일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은 이 특권에 손을 대서는 안 된다.'

'도시의 이익을 위하여'라고 플라톤은 말한다. 다시 우리는 집단적 효용성 원칙에 호소하는 것이 궁극적인 윤리적 고찰임을 발견한다. 전체주의적 도덕성은 모든 것, 심지어 철학자의 의미, 개념도 무시한다. 정치적 적합성에 관한 동일한 원칙으로써 피통치자는 사실을 말할 것을 강요당하리라는 것은 언급할 필요도 없다. '통치자는 다른 사람이 거짓말을 하는 것을 적발하면.. 그 때는 도시에 상처를 입히고 도시를 위험에 빠뜨리는 행위를 시작했기 때문에 그를 처벌할 것이다... ' 겨우 이렇게 사소하게 예기치 못한 의미에서만 플라톤이 주장하는 통치자는 - 철학자 왕 -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I

플라톤은 자신이 주장하는 집단적 효용성 원리를 성실성의 문제에 적용하는데, 의사의 보기를 들어 예시한다. 플라톤은 자신의 정치적 임무를 사회라는 병든 몸뚱이를 치료하는 사람, 혹은 구원하는 사람으로 시각화하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이 본보기는 잘 선정되었다. 이것과 별도로, 그가 의술에 부여하는 역할은, 국가의 이익이 부모의 결혼에서부터 자신의 무덤에 이르기까지 시민의 삶을 지배하는, 자신이 주장하는 도시의 전체주의적 특성을 보여준다. 플라톤은 의술을 정치의 한 형태로 해석하거나, 혹은 그 자신이 표현하는 바와 같이 그는 '의술의 신(神) 아에스쿨라피우스(Aesculapius)를 정치가로 간주한다'. 의술은, 그가 설명하는 바, 생명의 연장을 그 목적으로 생각해서는 안 되고 국가의 이익만을 그 목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올바르게 통치되는 모든 사회에서, 각자는 국가 속에서 자신에게 할당된 특정한 일을 가지고 있다. 이것을 각자는 수행해야 하고, 누구도 병을 앓고 치료하는데 쓸 시간을 가지고 있지 않다.' 따라서, 의사에게는 '자신의 일상적인 의무를 수행할 수 없는 사람을 치료할 권리가 없다; 그 까닭은 그런 사람은 자신과 국가에게 무익하기 때문이다'. 이것에 추가되는 생각은 그러한 사람에게는 '아마도 똑같이 병에 걸릴 자식'과 또한 국가에 짐이 될 자식이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노인이 되어서 플라톤은 개인주의에 대한 자신의 증폭된 증오에도 불구하고, 보다 개인적인 취향으로 의술에 대하여 언급한다. 그는 심지어 자유시민을 노예처럼 다루는 의사에 대하여, '자신의 의지가 법인 참주처럼 명령을 내리고 그 다음에는 다음 노예-환자에게로 달려간다'고 불평하며, 적어도 노예가 아닌 사람들에게는 치료시에 보다 친절하고 인내하라고 호소한다.) 거짓말과 기만의 쓸모에 관해서, 플라톤은 이것들이 '오직 의술로서만 유용'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플라톤이 강변하는 바, 국가의 통치자는 강한 약을 처방하는 용기를 지니지 못한 몇몇 '평범한 의사'처럼 행동해서는 안 된다. 철학자로서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인 철학자 왕은 왕으로서 '보다 용감한 사람이어야 하는데 그 까닭은 그가 '매우 많은 거짓말과 기만행위를 처방할' 결심이 되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 피통치자의 이익을 위하여라고 플라톤은 서둘러 말을 추가한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바와 같이, 그리고 플라톤의 의술에 대한 언급에서 다시 우리가 알게 되는 바와 같이,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이다. (칸트는 예전에 매우 다른 정신으로, '정직은 정책보다 낫다'는 문장은 논란의 여지가 없지만 '정직이 가장 좋은 정책'이라는 문장은 정말로 의심스러울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플라톤은 통치자들에게 강한 약을 사용하라고 촉구하면서 어떤 거짓말을 염두에 두고 있는가? 크로스먼(Crossman)은 플라톤이 '정치선전, 피통치자 다수의 무리의.. 행동을 통제하는 기술'을 의미한다고 옳게 강조한다. 분명히, 플라톤은 이것들을 첫 번째로 염두에 두었다; 그러나 통치자는 완전히 계몽된 지식인이어야 하는 반면, 정치선전 거짓말은 피통치자가 받아먹는 것으로 의도되었다고 크로스먼이 말한다면 나는 동의할 수 없다. 나는 오히려 플라톤이 소크라테스의 지식주의와 유사한 어떤 것과도 완전히 단절하는 것이, 심지어 통치자 자신들도 적어도 몇 세대 뒤에는 자신들의 가장 큰 정치선전 거짓말을 믿게 되리라는 그의 희망을 두 번이나 그가 표현한 곳보다 더 명백한 곳은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의미하는 것은 인간 속의 금속이라는, 그리고 대지에서 태어난 자라는 신화로 알려진 그의 인종주의, 즉 그가 주장하는 피와 흙의 신화이다. 여기서 우리는 플라톤의 공리주의적이고 전체주의적인 원리가 모든 것, 심지어 통치자들이 가지는 진실을 알, 그리고 진실을 요구할 권리도 제압해버리는 것을 본다. 통치자 자신도 정치선전 거짓말을 신뢰해야 한다는 그의 소망의 동기는 그 거짓말이 지니는 건강 효과의 증폭, 즉 주인 인종의 통치를 강화하여 궁극적으로 모든 정치적 변화를 중지시키려는 그의 희망이다.

II

플라톤은 자신이 말하는 피와 흙의 신화를 사기극이라고 솔직하게 인정하며 소개한다. '자, 그렇다면,' 국가에서 소크라테스는 말한다, '정말로 조금 전에 우리가 언급한 매우 편리한 거짓말 중 하나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우리가 운이 좋다면, 군주다운 거짓말 하나로 심지어 통치자 자신을 설득할 것이지만 - 아무튼 도시의 나머지 모든 사람들은 설득하겠지.' '설득하다'라는 용어가 사용된 것을 주목하면 흥미롭다. 어떤 사람을 거짓말을 믿도록 설득하는 것은, 더 정확하게, 그 사람을 오도하거나 속인다는 뜻이다; 그리고 '우리가 운이 좋다면, 우리는 심지어 통치자 자신들 속일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해석하는 것이 그 글귀의 솔직한 냉소와 더 어울릴 것이다. 그러나 플라톤은 '설득'이라는 단어를 매우 흔하게 사용하여, 여기서 사용한 예는 다른 글의 의미를 밝혀준다. 유사한 글에서 그가 정치선전 거짓말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은 경고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그가 정치가란 '설득과 힘 모두를 사용하여' 통치를 해야 한다고 성원하는 곳에서.

자신의 '군주다운 거짓말'을 선언하고 나서, 플라톤은, 자신의 신화를 설명하는 데로 곧장 나아가지 않고, 처음에는 자신의 정의(正義) 발견 앞에 서술한 긴 서문과 다소 흡사한 긴 서문을 전개한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그의 불안을 나타내는 징표이다. 그는 독자로부터 많은 호의를 받을 제시문이라고 기대하지 않았던 듯싶다. 그 신화 자체는 두 가지 이념을 소개한다. 첫 번째 이념은 모국의 방어를 강화하는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도시의 무사들이 '조국의 땅에서 태어난', 즉 원주민이고 자신들의 어머니인 조국을 방어할 각오가 되어있다는 이념이다. 이 오래되고 유명한 이념은 분명히 플라톤이 말하기를 주저하는 이유가 아니다 (대화의 표현은 교묘하게 주저를 암시하고 있지만). '이야기의 나머지'인 두 번째 이념은, 그러나, 인종주의에 관한 신화이다: '신은.. 통치할 수 있는 사람에게 금을 넣어주었고, 무장보조원들에게는 은을, 그리고 농부와 다른 생산 계급에게는 철과 구리를 넣어주었다.' 이 금속은 세습되고, 인종적 특징이 된다. 이 글에서 플라톤은 망설이며 처음으로 인종주의를 도입하는데, 그는 자녀들이 부모의 금속과 비교하여 다른 금속의 혼합물을 가지고 태어날 가능성을 고려한다. 그는 여기서 다음 규칙을 발표한다고 인정된다: 하층 계급 하나에서 '자녀들이 금과 은의 혼합물을 가지고 태어난다'면 '그들은 수호자로 지명될 것이고.. 무장보조원으로 지명될 것이다.' 그러나 이 양보는 국가에 나오는 나중 글에서 (그리고 또한 법률에서), 특별히 위 5 장에서 부분적으로 인용된 인간의 추락과 숫자 이야기에서 취소된다. 이 글로부터 우리는 천한 금속으로 혼합되는 것은 무엇이든지 고위 계급에서 제외됨을 알게 된다. 혼합 가능성과 신분에서의 상응하는 변화는 그러므로, 귀족으로 태어났으나 퇴보하는 자식은 밀려 내려가는 것을 의미할 따름이고 천하게 태어난 아이가 신분상승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금속의 혼합이 파멸을 야기하는 방식은 인간의 추락 이야기의 결말 부분에 묘사된다: '쇠는 은과 섞이고 구리는 금과 섞일 것이다, 그리고 이 혼합물로부터 변종이 태어나고 불합리한 잡종이 태어날 것이다; 그리고 이것들이 태어날 때마다 이것들은 갈등과 적의(敵意)를 불러올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불화가 어디서 생기든지, 그 불화의 족보와 탄생을 설명하는 방법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땅에서 태어난 자들에 관한 신화가, '도시는 쇠와 구리로 수호될 때 멸망하고 만다'는 날조된 신탁의 예언을 냉소적으로 만들어냄으로써, 끝남을 보아야 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자신의 인종주의를 즉시 더 급진적인 형태로 제시하기를 플라톤이 망설인다는 것은 그 인종주의가 플라톤 시대의 민주주의적이고 인도주의적인 경향에 얼마나 반대가 되었는지를 그가 알고 있었음을 가리킨다.

자신의 피와 흙의 신화가 정치선전 거짓말이라고 플라톤이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을 생각하면, 그 신화를 평하는 사람들의 자세가 다소 당황스럽다. 예를 들어 아담(Adam)은 이렇게 쓴다: '그 신화가 없다면, 국가에 대한 현재 설명은 불완전할 것이다. 우리는 도시의 영원함을 위하여 어떤 보장을 요구한다..; 그리고 플라톤이 그 보장을 이성보다는 믿음 속에서 발견해야 했던 것보다 플라톤의.. 교육의 우세한 도덕적 및 종교적 정신과 더 합치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나는 플라톤이 정치선전 거짓말을 옹호한 것보다 플라톤의 전체주의적 도덕성과 더 합치되는 것이 없다는데 동의한다 (이것이 완전히 아담이 의미했던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그러나 나는 어떻게 종교적이고 이상주의적인 비평가가 암시적으로, 종교와 믿음이 기회주의적 거짓말의 수준과 동일하다고 선언할 수 있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사실상, 아담의 비평은 종교의 교리는 사실은 아닐지라도 매우 이롭고 필수적인 정치적 고안이라는 홉스의 관습주의를 연상케 한다. 그리고 이 고찰은 플라톤이 결국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관습주의자였음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관습주의자로 일컬어지는 프로타고라스가 적어도 법은 우리가 만든 것인데 신적(神的) 영감의 도움을 받아서 만들어진다고 믿었던 반면, 그는 심지어 '관습으로써' 종교적 믿음을 세우는 일에 반대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가 종교적 믿음이란 날조일 뿐이라고 인정하는 솔직함을 지니고 있다고 믿어야 한다). 소피스트들의 체제전복적인 관습주의에 대항하여 플라톤이 싸운 것에 대하여, 그리고 궁극적으로 종교에 기초를 둔 정신적 자연주의를 세운 것에 대하여 플라톤을 칭찬하는 플라톤 비평가들이 관습, 아니 더 정확하게 조작한 것을 종교의 궁극적 기초로 만들어버리는 그를 왜 비난하지 않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사실상, 그의 '영험한 거짓말'에 의하여 밝혀진 바와 같이 플라톤의 종교에 대한 자세는 펠로폰네소스 전쟁 이후 아테네에 치욕스러운 피의 정권을 세웠던 30인의 참주 중 지도자였던 자신이 사랑했던 삼촌 그리티아스(Critias)의 자세와 실제로 동일하다. 시인이었던 크리티아스는 정치선전 거짓말을 찬미한 최초의 사람이었는데, 그의 조작을 플라톤은 국민을 '설득하기' 위하여, 즉 국민을 협박하여 복종하도록 만들기 위하여 종교를 만들어내는 현명하고 교활한 사람을 찬양하는 강요적 시구에서 설명한다.

'그때, 현명하고 교활한 사람이 온 것 같았다,

신에 대한 두려움을 처음으로 발명한 자...

그는 매우 매혹적인 원리인 이야기를 만들었다,

거짓말하는 지식의 장막으로 진실을 감추고.

그는 무서운 신들이 사는 곳을 말했다,

회전하는 천공 위, 그곳에서 뇌성이 울린다

그리고 번개의 무서운 섬광이 눈을 멀게 만든다...

그는 그렇게 공포의 사슬로 사람을 묶었다;

아름다운 곳에 사는 신들로 그들을 에워 쌓으며,

그는 자신의 마술로 사람들을 매혹하고, 그들의 기를 꺾어 놓는다 -

그리하여 무법은 법과 질서로 변했다.

크리티아스의 견해로, 종교는 위대하고 영리한 정치가의 군주다운 거짓말에 지나지 않는다. 플라톤의 견해는 국가에서 (그 책에서 그는 신화란 거짓말이라고 솔직하게 시인한다) 신화를 소개하는 데에서와, 의식(儀式)과 신을 설정하는 것이 '위대한 사상가의 문제'라고 말하는 법률에서 두드러지게 흡사하다. - 그러나 이것이 플라톤의 종교적 자세에 관한 진실 전부일까? 이 분야에서 그는 기회주의자일 뿐이었을까, 그리고 그의 초기 작품의 매우 다른 정신은 단지 소크라테스의 영향을 받은 것이었을까? 나는 직감적으로 심지어 나중 작품에 간혹 더 진솔한 종교적 감정이 표현되어 있을 것이라고 느끼지만, 물론 이 문제를 확실하게 결정할 방법은 없다. 그러나 나는 플라톤이 종교적 문제를 정치와 연관시켜 생각하는 곳마다, 그의 정치적 기회주의는 다른 모든 감정을 휩쓸어버린다고 믿는다. 그리하여 플라톤은 법률에서 신에 관한 정직하고 명예로운 사람들의 견해가 국가의 견해와 다르다면 심지어 그 사람들에게도 가장 혹독한 처벌을 요구한다. 그들의 영혼은 종교재판가들의 야간 위원회에서 다루어져야 하고, 그들이 승복하지 않거나 그들이 범죄를 다시 저지른다면, 불경을 사형으로 처벌한다. 그는 소크라테스가 바로 그 죄목의 희생이 된 것을 잊었던가?

이런 주장을 고취하는 것은 그런 상태로서의 종교적 믿음에 관한 이익이라기보다는 주로 국가 이익이라는 것이 플라톤의 핵심적인 종교적 원리에 의하여 밝혀진다. 그가 법률에서 가르치기를 신은 선과 악 사이의 갈등, 즉 전체주의와 개인주의 사이의 갈등으로 설명되는 갈등에서 잘못된 편에 서는 모든 사람들을 혹독하게 처벌한다. 그리고 그는 강변하기를 신은 인간에게 능동적으로 흥미를 가지기 때문에 단순한 구경꾼이 아니다. 신의 화를 가라앉히는 것을 불가능하다. 기도를 올리거나 제물을 바친다고 그들이 감동을 받아 처벌을 그만두지는 않는다. 이 가르침의 뒤에 있는 정치적 이익은 명백하고, 국가는 정치-종교적 교리의 여하한 부분에 관한 모든 의심, 그리고 특히 신은 처벌을 그만두지 않는다는 원리에 관한 의심을 억압해야 한다는 플라톤의 주장에 의하여 그 정치적 이익은 훨씬 더 명백해진다.

플라톤의 기회주의와 거짓말에 관한 그의 이론은 물론 그가 말하는 것을 해석하기 어렵게 만든다. 그는 자신이 주장하는 정의에 관한 이론을 어느 정도까지 믿었던 것일까? 그는 자신이 설교한 종교적 원리의 진실을 어느 정도까지 믿었던가? 혹시 그는 다른 (정도가 약한) 무신론자들에 대하여 처벌을 주장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자신이 무신론자였을까? 우리가 이 질문에 분명하게 대답할 희망을 가질 수 없다 할지라도, 나는 적어도 플라톤을 의심하지 않는 것이 어렵고, 방법론적으로 불완전하다고 믿는다. 그리고 모든 변화를 중지시킬 시급한 필요가 있다는 그의 믿음의 근본적인 충심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10 장에서 이 문제로 돌아가겠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플라톤이 소크라테스의 진리 사랑을 주인 계급 통치는 강화되어야 한다는 더 근본적인 원리에 종속시켰다는 것을 의심할 수 없다.

그러나 플라톤의 진리에 관한 이론이 그의 정의에 관한 이론보다 다소 덜 급진적이라는 것을 주목하면 흥미롭다. 우리가 본 바와 같이 정의(正義)는 그가 주장하는 전체주의적 국가의 이익에 부합하는 것으로 실제로 뜻이 정해진다. 물론 진리의 개념을 동일한 공리주의적이고 실용주의적인 형태로 뜻을 정하는 것이 가능했을 것이다. 플라톤은 나의 국가 이익에 부합하는 모든 것은 신뢰되어야 하고 그러므로 '진실'이라고 불리어야 하기 때문에 신화는 진실이다라고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면 진리에 대한 다른 기준은 있을 수가 없다. 이론적으로, 유사한 조치가 실제로 헤겔의 실용주의적 후계자에 의해서 취해졌다; 실제로는, 그 조치가 헤겔 자신과 그의 인종주의적 후계자에 의하여 취해졌다. 그러나 플라톤은 자신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솔직하게 인정할 정도로 소크라테스의 정신을 충분히 보유하고 있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헤겔 학파가 취한 조치는 소크라테스의 동료 누구에게도 일어날 수 없는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III

플라톤이 주장하는 최상의 국가에서 진리의 이데아가 하는 역할을 이쯤 해두자. 그러나 정의와 진리는 별도로 하고, 우리가 플라톤의 정치강령을 순전히 전체주의적이고 역사주의에 기초한다고 해석한 것에 대하여 6장에서 제기된 반대이론을 일소하려면, 우리는 아직도 선(善), 미(美), 그리고 행복 같은 더 진전된 이데아를 고찰해야 한다. 이 이념들을 토론하기 위한 방식과, 또한 앞장에서 부분적으로 논의된 지혜를 토론하기 위한 방식은 우리가 진리의 이데아를 논의함으로써 도출된 다소 부정적인 결과를 고찰함으로써 얻어질 수 있다. 그 까닭은 이 결과가 새로운 문제를 낳기 때문이다: 플라톤은 다른 한편으로 왕은 '더 대담해'져서 거짓말을 사용해야 한다고 강변하면서, 철학자를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정의(定義)한다면 왜 철학자들이 왕이 되어야 하고 왕이 철학자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할까?

이 질문에 대한 유일한 답변은 물론 플라톤이 '철학자'라는 용어를 사용할 때 사실상 매우 다른 것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말로 우리는 앞장에서 그가 주장하는 철학자란 지혜를 헌신적으로 구하는 사람이 아니라 지혜를 자신만만하게 소유한 사람이라는 것을 보았다. 그 철학자는 배운 사람이며 현자(賢者)이다. 그러므로 플라톤이 주장하는 것은 학식의 지배 - 내가 이름을 붙인다면 학식정치(sophocracy) - 이다. 이 주장을 이해하기 위하여, 우리는 어떤 종류의 기능 때문에 플라톤이 말하는 것처럼 그가 주장하는 국가의 통치가가 지식의 소유자, 즉 '완전히 자격을 갖춘' 철학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바람직한지를 알아내려고 노력해야 한다. 고찰될 기능은 두 가지 주요 집단으로 나뉠 수 있는데 즉, 국가의 창건과 관련된 것과 국가 보전과 관련된 것이다.

IV

철학자 왕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도시의 창건자와 입법가의 기능이다. 플라톤에게 왜 이 임무를 위하여 철학자가 필요했는지는 분명하다. 국가가 안정되려면, 국가는 자신의 신성한 형상이나 이데아의 진실한 모조품이어야 한다. 그러나 최고의 과학인 논리학에 능통한 철학자만이 천상의 원형을 보고 복제할 수 있다. 이 요점은 플라톤이 철학자의 통치권을 위하여 자신의 주장을 전개하는 국가의 그 부분에서 많이 강조된다. 철학자는 '진리를 보는 것을 매우 사랑한다', 그리고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은 항상 부분뿐만 아니라 전체를 보는 매우 좋아한다. 그러므로 그는, 평범한 사람들이 그러는 것처럼, 감지되는 것들과 그것들의 '아름다운 소리와 색깔과 모양'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는 '아름다움의 실제적 성질을 보고 찬양하기를' 원한다 - 아름다움의 형상이나 이데아를. 이런 방식으로, 플라톤은 철학자라는 용어에 형상과 이데아라는 신성한 세계를 사랑하고 예언하는 사람이라는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그런 상태로, 철학자는 도덕적인 도시의 창건자가 되는 사람이다: '신적인 것과 교감하는 철학자'는 이상적인 도시와 그 도시에 사는 이상적인 시민들에 관한 '자신의 천상의 영상을.. 실현하려는 충동으로 압도'될는지도 모른다. 그는 '신성한 것을 자신의 모형으로' 가진 설계가나 화가를 닮았다. 오직 진정한 철학자만이 '도시의 기본설계를 그릴' 수 있는데, 그 까닭은 그들만이 '눈을 이리저리, 모형에서 그림으로, 다시 그림에서 모형으로 굴림'으로써 원형을 볼 수 있고 모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체제를 그리는 화가'로서, 철학자는 선(善)과 지혜의 빛에 의하여 도움을 받아야 한다. 이 두 가지 이념과 그 이념의 중요성에서 철학자가 도시의 창건자로서 하는 역할에 관하여 몇 가지 비평이 추가될 것이다.

플라톤이 주장하는 선(善)에 관한 이념은 형상의 위계질서에서 가장 높은 것이다. 그것은 형상과 이데아라는 신성한 세계에서 태양인데, 다른 모든 이념을 드러낼 뿐만 아니라 그 이념들의 존재의 근원이다. 선에 관한 플라톤의 이념은 또한 모든 지식과 모든 진리의 근거의 시발점이다. 그러므로 선(善)을 보고, 가치를 감상하고, 아는 능력은 논리학자에게 필수 불가결하다. 선의 이념은 형상의 세계에서 태양이자 빛의 근원이므로, 그 이념 때문에 철학자이자 화가인 사람은 자신의 대상을 감지할 수 있다. 그 기능은 그러므로 도시의 창건자에게 가장 중요하다. 그러나 순전히 형식적인 이 정보가 우리가 가진 것 전부이다. 플라톤이 주장하는 선의 이념은 이곳에서 가장 직접적으로 윤리적이고도 정치적인 역할을 한다; 그 지침이 선의 이념을 이용하지 않고 도입되는 유명한 전체주의적 도덕규범을 별도로 하고, 우리는 어떤 행동이 선하다, 혹은 어떤 행동이 선을 낳는다라는 말을 듣지 못한다. 선은 목표이다, 모든 사람이 선을 갈망한다라는 말은 우리가 가진 정보에 보탬이 되지 않는다. 이 공허한 형식주의는 필레부스(Philebus)에서 훨씬 더 뚜렷한데, 거기에서 선은 '척도'나 '중용'의 이념과 동일시된다. 그리고 플라톤이, 자신의 유명한 강의 '선에 관하여'에서, 선을 '통일체로서 생각되는 확정된 것의 부류'로서 정의(定義)하여 교육을 받지 못한 청중을 실망시켰다는 보고를 듣고 나는 그 청중들과 같은 심정이었다. 국가에서, 플라톤은 자신이 '선'으로써 의미하는 바를 설명할 수 없다고 솔직하게 말한다. 우리가 습득할 수 있는 유일한 실제 암시는 4 장 첫머리에 언급된 것으로, 선(善)은 보전하는 모든 것이고 악한 것은 부패나 쇠퇴를 낳는 것이다. ('선'은 그러나 이곳에서 선의 이념으로 보이지 않고, 오히려 사물을 이념들과 닮게 만드는 사물의 속성으로 보인다.) 따라서 선은 사물의 불변하는, 정지된 상태이다; 선은 정지된 사물의 상태이다.

이것은 플라톤이 주장하는 정치적 전체주의를 크게 뛰어넘지 않는 듯 싶다; 그리고 플라톤의 지혜에 관한 이념을 분석하면 동일하게 실망스러운 결과에 다다른다. 지혜는 우리가 본 바와 같이 플라톤에게는 자신의 한계를 들여다보는 소크라테스식 통찰을 의미하지 않는다; 또한 지혜는 우리 대부분이 기대하는 인간성이나 인간사(人間事)에 대한 따뜻한 관심과 도움을 주려는 동정심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플라톤이 주장하는 현명한 사람은 우수한 세상의 문제에 깊이 몰두하여 '인간사를 내려다 볼 시간이 없다.. ; 그들은 질서정연하고 측정된 것을 쳐다보며 그것들에게 집착한다'. 인간을 현명하게 만드는 것이 올바른 종류의 배움이다: '철학적 본성은, 영원히 존재하며 생성과 쇠퇴에 의하여 고통을 당하지 않는 실재를 자신들에게 밝혀주는 그런 종류의 학식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플라톤이 지혜를 논하는 것도 변화를 정지시키려는 이상을 벗어나지 않는 듯싶다.

V

도시를 창건하는 사람들이 하는 일을 분석하여도 플라톤의 원리에서 새로운 윤리적 요소가 밝혀진 바는 없지만, 그 분석은 도시의 창건자가 왜 철학자여야 하는지 분명한 이유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것은 철학자가 통치권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을 완전히 정당화하지는 못한다. 그것은 겨우 왜 철학자가 최초의 입법가가 되어야 하는지를 설명할 뿐, 그가 영원한 통치자로서 왜 필요한지를 설명하지 못하는데 그 이유는 특히 다음 지도자들은 어떤 변화도 도입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철학자가 통치해야 한다는 주장을 완벽하게 정당화하기 위하여, 우리는 그러므로 도시의 보전과 연관된 임무를 분석하는 데로 나아가야 한다.

플라톤의 사회학 이론으로부터 우리는 국가는, 일단 창건되면, 주인 계급의 단결에 금이 가지 않는 한 계속해서 안정될 것이라고 알게 된다. 그러므로 그 계급을 양육하는 것은 최고 권력을 보존하는 위대한 기능이자 국가가 존재하는 한 지속되어야 하는 기능이 된다. 그것은 철학자가 통치해야 한다는 주장을 얼만큼이나 정당화하는가? 이 질문에 답변하기 위하여, 우리는 다시 이 기능 안에서 두 가지 다른 활동을 구별한다: 교육을 감독하는 일과 우생학적 양육을 감독하는 일.

왜 교육 감독관은 철학자가 되어야 하는가? 국가와 그 교육제도가 창건되면, 왜 경험이 많은 장군이나 군인-왕이 교육을 맡는 것이 충분하지 않을까? 교육제도는 군인뿐만 아니라 철학자도 길러내야 하며 그래서 감독관으로서 군인뿐만 아니라 철학자도 필요하다는 대답은 명백하게 불만족스럽다; 그 까닭은 교육 감독관으로서 그리고 영원한 통치자로서 철학자가 필요하지 않다면, 교육제도가 새로운 철학자를 길러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 상태의 교육제도를 요구하는 것은 플라톤이 주장하는 국가에서의 철학자에 대한 필요성을 정당화하지도 않고, 통치자는 철학자여야 한다는 전제를 또한 정당화하지 않는다. 플라톤이 주장하는 교육이, 국가의 이익에 부합하는 목적과는 별도로, 개인주의적 목표를 가지고 있다면 물론 이것은 다를 것이다; 예를 들어, 철학적 능력 그 자체를 위하여 개발하려는 목적. 그러나 우리가 앞장에서 본 바와 같이, 우리는 플라톤이 얼마나 독립적인 사고 같은 어떤 것에 대해서도 두려워하는지를 볼 때; 그리고 우리가 이제 이 철학 교육의 궁극적인 이론적 목표가 단지 이 이념을 논리 정연하게 설명할 수 없는 '선의 이념에 대한 지식'이란 것을 볼 때, 우리는 이것이 설명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다. 그리고 플라톤이 또한 아테네의 '음악' 교육을 제한할 것을 요구하는 것을 우리가 보는 4 장을 기억한다면 이 인상은 강화된다. 플라톤이 통치자의 철학교육에 부여하는 커다란 중요성은 다른 이유로 설명되어야 한다 - 순전히 정치적인 이유로.

내가 보는 주요 이유는 통치자의 권위를 극한까지 증가시키기 위한 필요성이다. 무장보조원에 대한 교육이 바르게 수행된다면, 훌륭한 군인이 충분히 있게 된다. 그러므로 뛰어난 군사적 능력은 도전 받지도 않고 도전 받을 수도 없는 권위를 세우는데 불충분하다. 이런 권위는 더 높은 요구에 기초해야 한다. 플라톤은 그 권위를 자신이 만든 통치자들에서 자신이 전개하는 초자연적이고 신비로운 권력을 소유하고 있다는 데 둔다. 그 통치자들은 다른 사람들과 같지 않다. 그들은 다른 세상에 속하며 신성한 것과 교감한다. 그러므로 철학자 왕은 우리가 헤라클리투스와 관련하여 언급한 제도인 종족적 제사장-왕을 부분적으로 닮은 듯 보인다. (제사장-왕이나 의술인이나 무당 제도는 또한 그들이 지니고 있던 놀라울 정도로 순진한 종족적 금기로 고대 피타고라스 종파에게 영향을 미친 듯하다. 분명히, 이것들 대부분은 심지어 플라톤 이전에 없어졌다. 그러나 자신들의 권위가 초자연적인 것에 기인한다는 피타고라스 종파원들의 주장은 남았다.) 그러므로 플라톤이 주장하는 철학교육은 분명히 정치적 기능을 한다. 그 철학교육은 통치자들에게 표시를 해주고 통치자와 피통치자 사이에 장벽을 세워놓는다. (이것은 우리 시대까지 '고등'교육의 주요 기능으로 남았다.) 플라톤의 지혜는 주로 영구적인 정치적 계급 통치를 확립하기 위하여 습득된다. 그 지혜는 그 지혜를 소유한 사람인 의술인에게 신비로운 능력을 부여하는 정치적 '의술'로 묘사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국가 속에서 철학자가 갖는 기능에 관한 우리의 질문에 대한 완전한 대답이 될 수는 없다. 오히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왜 철학자가 필요한가라는 질문이 변했다는 것과, 우리는 이제 무당이나 의술인의 실제 정치적 기능에 관한 유사한 질문을 제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플라톤은 자신이 전문화된 철학적 훈련을 고안했을 때, 어떤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있었음이 틀림없다. 우리는 입법가의 임시 기능과 유사한 통치자의 영구적 기능을 찾아야 한다. 그런 기능을 발견할 유일한 희망은 주인 인종을 양육하는 분야에 있는 듯싶다.

VI

왜 철학자가 영구적인 통치자로 필요한지 알아내는 최선의 방법은 이렇게 질문하는 것이다: 플라톤에 따르면, 철학자에 의해서 영구적으로 통치되지 않는 국가에는 무슨 일이 발생하는가? 플라톤은 이 질문에 분명한 답변을 했다. 국가의 수호자가, 심지어 매우 완벽한 국가의 그들도, 피타고라스의 지식과 플라톤의 숫자를 알고 있지 못하면, 수호자 인종과 국가는 쇠퇴해야 한다.

인종주의는 그리하여 플라톤의 정치강령에서 사람들이 처음보고 예상하는 것보다 더 중추적인 역할을 차지한다. 플라톤의 인종적 혹은 혼인 숫자가 그의 기술적(記述的) 사회학에 대한 배경, '플라톤의 역사철학이 짜여지는 배경' (아담[Adam]이 표현하는 바와 같이)을 제공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 숫자는 플라톤이 철학자의 통치권을 정치적으로 주장하는 배경을 제공한다. 4 장에 플라톤이 주장하는 국가의 목축업자, 즉 가축을 기르는 사람의 배경에 관하여 언급이 있었기에, 우리는 아마도 그가 주장하는 왕이란 양육하는 왕이라는 것을 쉽게 발견할 것이다. 그러나 그가 주장하는 철학자는 결국 철학적 양육가로 판명된다는 것은 여전히 어떤 사람에게는 놀라운 일일 것이다. 과학적, 수학적-논리적이며 철학적인 양육의 필요성은 철학자의 통치권을 뒤에서 주장하는 것일 뿐이다.

어떻게 인간 파수견의 순수 혈통을 얻는가라는 문제가 국가의 앞 부분에서 강조되고 상술된 것이 4 장에서 밝혀졌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는 왜 오직 진짜이자 완전히 자격을 갖춘 철학자만이 유능하고 성공적인 정치적 양육가가 되어야 하는지 그 합당한 이유를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나, 개나 말이나 새를 기르는 모든 사람이 아는 바와 같이, 합리적인 양육이란 어떤 형태, 자신이 쏟을 노력에서 지침이 될 목표, 그가 교배와 선택의 방식으로 접근을 시도할 이상(理想)이 없다면 불가능하다. 그런 기준이 없다면, 그는 어느 후손이 '충분히 훌륭한'지 결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는 '훌륭한 후손'과 '나쁜 후손'의 차이점을 말할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이 기준은 플라톤이 양육하고자 하는 인종에 관한 플라톤의 이데아에 정확하게 일치한다.

진정한 철학자, 논리학자만이, 플라톤에 따르면, 도시의 신성한 원형을 볼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다른 신성한 원형인 인간의 형상이나 이데아를 볼 수 있는 것은 논리학자뿐이다. 오직 논리학자만이 이 모형을 모방할 수 있으며, 하늘로부터 땅으로 불러 내릴 수 있고, 이곳에서 실현할 수 있다. 인간에 관한 이데아는 왕의 이데아이다. 그 이데아는, 몇몇 사람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모든 인간에게 공통적인 것을 대표하지는 않는다; 그 이데아는 '인간'이라는 보편적 개념이 아니다. 그 이데아는, 오히려, 인간의 신과 같은 원형이며 불변하는 초인(超人)이다; 그것은 초(超)희랍인이며, 주인을 초월한다. 철학자는 플라톤이 '가장 항구적이고, 가장 남성적이며, 그리고, 가능성의 한계 안에서, 가장 아름답게 형성된 인간..'이라는 인종으로 묘사하는 것을 지상에서 구현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고귀하게 태어나고, 경외감을 일으키는 성격을 지닌'. 그것은 '신이 아니라면 신과 같은.. 완벽한 아름다움으로 조각된' - 천부적으로 왕권과 지배를 맡을 운명인 귀족 인종 - 남녀 인종이어야 한다.

우리는 철학자 왕이 지니는 두 가지 근본적인 기능이 비슷함을 본다: 철학자 왕은 도시의 신성한 원형을 복제해야 한다, 그리고 그는 인간의 신성한 원형을 복제해야 한다. 그는 '자신이 지닌 천상의 영상을, 도시에서뿐만 아니라 개인에게서 실현할' 수 있고, 그럴 충동을 지닌 유일한 사람이다'.

이제 우리는 왜 플라톤이 평범한 우수성을 초월하는 것이, 그가 동물사육의 원칙이 인종에게도 적용되어야 한다고 처음으로 주장하는 동일한 장소에서, 그가 주장하는 통치자에게 필요한지를 암시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 그가 말하기를 우리는 동물을 사육하면 매우 조심스러워야 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동물을 기르지 않는다면, 당신은 기르는 새나 개의 종이 빠르게 쇠퇴하리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이것으로부터 사람은 동일하게 신중한 방식으로 양육되어야 한다고 추론할 때, '소크라테스'는 소리친다: '맙소사!.. 동일한 원칙에 인종에게도 적용된다면, 우리는 얼마나 탁월한 우수성을 우리의 통치자로부터 요구해야 하는가!' (따옴표 속의 소크라테스는 플라톤이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려 자신의 말을 하는 것이다 - 역자 주) 이 외침은 의미심장하다; 그 외침은 통치자란 자신들만의 신분을 가지고 자신들만의 훈련을 받아서 '탁월한 우수성'을 지닌 계급을 구성할 것이라는 최초의 한 가지 암시이다; 그러므로 그 외침으로 인해서 우리는 통치자는 철학자여야 한다는 주장에 대비하게 된다. 그러나 그 글은 인종의 의사로서 거짓말과 기만을 행하는 것이 통치자의 의무여야 한다는 플라톤의 주장을 직접적으로 낳는 한 훨씬 더 의미심장하다. 플라톤이 주장하는 바, 거짓말은 필수적이다, '당신이 기르는 동물의 무리가 최고의 완벽성에 도달하려면'; 그 까닭은 이것에는 '우리가 수호자 무리를 정말로 불화가 없게 지키고자 한다면, 통치자를 제외하고 모든 사람으로부터 비밀이 유지되어야 하는 조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정말로, 의술로서 거짓말을 하는 데 통치자들을 유혹하는 일은 (위에 인용됨) 이와 관련하여 발생한다; 그 유혹으로 인하여 독자는 플라톤에 의하여 특히 중요하다고 생각된 다음 주장을 대비하게 된다. 그는 통치자란 젊은 무장보조원들을 결혼시킬 목적으로, '실망한 사람들이.. 통치자가 아니라 자신의 악운(惡運)을 비난하도록, 교묘한 투표제도'를 만들어야 하는데, 통치자들은 은밀히 투표를 조작하여야 한다고 포고한다. 책임 수용을 피하기 위한 이 비열한 충고 직후에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려서 말함으로써, 플라톤은 자신의 위대한 스승을 중상한다), '소크라테스'는 글라우콘에 의하여 곧 수용되어 상술되고, 그러므로 우리가 글라우콘의 포고령이라고 부를 제안을 한다. 내가 의미하는 것은 전쟁이 계속되는 동안에 용감한 자의 희망사항에 복종하는 의무를 남녀 모든 사람에게 부과하는 야만적인 법이다: '전쟁이 지속되는 한,.. 아무도 그에게 'No'라고 말하지 못한다. 따라서, 어느 군인이, 남녀를 불문하고 어떤 사람에게 성행위를 하고자 한다면, 이 법으로 인하여 그는 용기의 대가를 얻기 위하여 더욱 열성적이 될 것이다.' (이 문장에서는 고대 그리스 군인사회에서 관행처럼 여겨지던 동성애에 관한 기록이 보인다 - 역자 주) 신중하게 지적되는 바, 국가는 그럼으로써 두 가지 뚜렷한 이득을 얻는다 - 자극 때문에 더 많은 영웅이 생겨나고, 또 그 영웅으로부터 더 많은 숫자의 아이들이 태어나서 영웅이 더 많아진다. (나중 이득은, 장기적 인종 정책의 관점에서 볼 때 가장 중요한 이득으로서,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려서 표현된다.)

VII

이러한 종류의 양육을 위해서는 특별한 철학적 훈련이 필요하지 않다. 철학적 양육은 그러나 쇠퇴의 위험을 상쇄하는데 그 주요 역할을 한다. 이 위험에 대항하여 싸우기 위해서, 완전히 자격을 갖춘 철학자가 필요한데, 즉 순수 수학 (입체 기하학을 포함하여), 순수 천문학, 순수 화성학, 그리고 모든 학문의 최고 업적인 논리학으로 훈련을 받은 철학자가 필요하다. 수학적 우생학의, 플라톤식 숫자의, 비밀을 아는 사람만이 인간에게 추락 전에 즐겼던 행복을 돌려줄 수 있고 인간을 위하여 그 행복을 보존할 수 있다. 글라우콘의 포고령이 발표된 다음에 (그리고 플라톤에 따르면 주인과 노예를 구분하는 것과 상응하는, 그리스인과 야만인을 자연적으로 구분하는 일을 다루는 막간 다음에), 플라톤이 자신의 중추적이며 가장 이목을 끄는 정치적 요구 - 철학자 왕의 통치권 -로 신중하게 표시하는 원칙이 발표될 때, 이 모든 것이 기억되어야 한다. 그가 가르치는 바, 이 요구만으로도 사회생활의 악을 제거할 수 있다; 악의 더 숨겨진 근원인 인종의 구성원에 만연한 악, 즉 인종쇠퇴뿐만 아니라 국가에서 만연한 악, 즉 정치적 불안정을 제거할 수 있다. 이것이 그 글이다.

'그래,' 소크라테스는 말한다, '이제 나는 전에 가장 큰 파도에 비유했던 화제에 뛰어들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이 나에게 비웃음의 소용돌이를 몰고 오리라고 예견할지라도, 나는 말을 해야한다. 정말로, 나는 바로 이 파도가 내 머리 위에서 부서져서 비웃음과 비방의 야단법석이 되는 것을 이제 볼 수 있다..' - '그 이야기를 말하시오'라고 글라우콘은 말한다. 소크라테스는 말한다 '그들의 도시 속에서, 철학자들에게 왕의 힘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않는다면, 또는 지금은 왕이나 과두 독재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진짜이자 완전히 자격을 갖춘 철학자가 되지 않는다면; 그리고 정치적인 힘과 철학, 이 두 가지가 융합되지 (오늘날 이 두 가지 중 하나만을 향한 자신들의 자연적인 취향을 따르는 많은 사람들은 힘으로 억압당하는 반면) 않으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면, 친애하는 글라우톤이여, 안식은 없을 거야; 그리고 악은 도시에서 멈추지 않고 만연할 것이야 - 내가 믿는 바 인종에게서도 멈추지 않고 만연할 것이야.' (여기에 대하여 칸트는 현명하게 대답한다: '왕이 철학자가 되어야 한다거나 철학자가 왕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실제로 일어날 것같지 않다; 권력의 소유는 이성의 자유로운 판단을 변함 없이 타락시키기 때문에 그런 일이 바람직하지도 않다. 그러나 왕이나 왕 같은, 즉 스스로를 다스리는 사람들이 철학자들을 억압하지 않고, 공개적인 발언을 할 수 있는 권리를 철학자들에게 남겨주는 것이 필수 불가결하다.')

이 중요한 플라톤의 글은 전체 작품에 대한 열쇠로서 완전히 적당하게 묘사되었다. 그 마지막 말, '내가 믿는 바 인종에게서도 멈추지 않고 만연할 것이야'는 내가 생각하기에 이곳에서는 상대적으로 작은 중요성을 띤 뒷궁리이다. 그러나 플라톤을 이상화하는 습관이, 플라톤은 여기서 자신의 구원약속을 도시라는 범위에서 '인류 전체'라는 범위로 확대하며 '인간애'에 관하여 이야기를 한다는 해석을 낳았기 때문에, 이 말들에 대하여 비평을 하는 일이 필요하다. 이와 관련하여, 국가와 인종, 그리고 계급의 구분을 초월하는 것으로서 '인간애'라는 윤리적 범주는 플라톤에게는 완전히 부적당한 것이라고 언명되어야 한다. 사실상, 평등주의적 신조에 대한 플라톤의 적대감, 소크라테스의 옛 제자이자 친구인 안티스테네스(Antisthenes)를 향한 그의 자세에서 보이는 적대감에 관하여 우리는 충분한 증거를 가지고 있다. 안티스테네스는 또한 알키다마스(Alcidamas)와 리코프론(Lycophron)처럼 고르기아스 학파에 소속되어 있었는데 그의 평등주의적 이론을 안티스테네스가 모든 인간의 형제애라는, 그리고 인간의 보편적 제국이라는 원칙까지 확대했던 것으로 보인다 (인간의 보편적 제국이란 기원전 5세기 경 페리클레스 시대 이후에 건설된 아테네 중심의 그리스 제국을 말하며 그 제국에서 탄생하는 세계인[cosmopolitan]들이 주창하는 인도주의를 의미한다 - 역자 주). 이 신조는 국가에서 그리스인과 야만인의 천부적 불평등을 주인과 노예의 천부적 불평등과 상호 연관지음으로써 공격을 받는다; 그리고 이 공격은 우리가 여기서 검토하고 있는 주요 글의 바로 앞에서 시작되는 일이 벌어진다. 이런 이유와 다른 이유 때문에, 플라톤은 인종 속에서 만연한 악에 대하여 언급할 때 자신의 독자들이 이 장소에서 충분히 익숙해져 있는 이론을, 즉 국가의 복지는 궁극적으로 통치계급 개별 구성원의 '본성'에 달려있다는 자신의 이론을 언급한다고 안심하고 생각할 수 있을 듯싶다; 그리고 그들의 본성과 그들 인종이나 자손의 본성은 나중에 개인주의적 교육이라는 악에 의하여, 훨씬 더 중요하게는 인종적 쇠퇴에 의하여 위협을 당한다. 플라톤의 말은, 천상의 안정과 변화 및 부패라는 악의 대비를 그 말이 분명히 언급함과 함께, 숫자와 인간의 추락 이야기의 전조가 된다.

플라톤이 자신의 가장 중요한 정치적 주장을 선언하는 이 핵심적인 글 속에서 자신의 인종주의를 언급해야 한다는 것은 매우 적절하다. 그 까닭은 우생학의 전제조건인 그 모든 과학에서 훈련을 받은 '진짜이자 완전히 자격을 갖춘 철학자'가 없다면, 국가는 실종된다. 숫자와 인간의 추락에 관한 자신의 이야기 속에서, 플라톤은 쇠퇴한 수호자들에 의하여 저질러지는 첫 번째이자 치명적인 태만의 죄악 한 가지는 우생학에서, 인종의 순수성을 지켜보고 시험하는 데에서 흥미를 잃어버리는 것이리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수호자로서 자신들의 임무에 완전히 부적합한 통치자들은 명령을 받을 것이다; 이름하여, (당신들의 인종일 뿐만 아니라 헤시오드의 인종이기도 한) 인종 속의 금속인 금과 은, 그리고 청동과 철을 지켜보고 시험하라는 명령.'

그 모든 것을 낳은 것은 신비로운 결혼 숫자에 관한 무지이다. 그러나 그 숫자는 의심할 바 없이 플라톤 자신의 발명품이다. (그 숫자는 순수한 화성학을 전제로 하는데, 순수한 화성학은 나중에 국가가 쓰여질 때 새로 나타난 과학인 입체 기하학을 전제로 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플라톤 자신을 제외하고 누구도 진정한 수호자 자격의 비결을 알고 그 열쇠를 쥐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한 가지 일을 의미할 수 있다. 철학자 왕은 플라톤 자신이며, 국가는 왕의 권력을 얻기 위하여 플라톤이, 자신이 그랬던 바와 같이 철학자라는 주장과 아테네의 마지막 왕인 순교자 코드러스(Codrus)의 자손이자 합법적 후계자라는 주장을 플라톤 자신 속에서 연결하여, 자신의 몫이라고 생각했던 권력에 대한 권리 주장이다. 플라톤에 따르면 코드러스는 '자기 자식을 위하여 왕국을 보존할 목적으로' 자신을 희생했던 왕이다.

VIII

이 결론이 내려지자마자, 그렇지 않았더라면 관련성이 없었던 많은 것들이 연결되고 분명해진다. 예를 들어, 당시의 문제와 인물들에 대한 언급으로 가득찬 플라톤의 작품은 저자 플라톤에 의하여 이론적 논문으로서보다는 시사적 정치 선언문으로서 의도된 것은 의심의 여지가 거의 없다. '국가가 정부에 대한 이론적 토론을 단순히 집대성해놓은 것이 아니라.. 쉘리(Shelly)처럼 "세상을 개혁하려는 열정"으로 불타는 한 아테네인에 의하여 제기된 실제 개혁에 관한 진지한 계획이라는 것을 망각한다면, 우리는 플라톤을 더할 나위 없이 오해하는 것이다'라고 A. E. 테일러(Taylor)는 말한다. 이것은 의심할 바 없이 사실이며, 우리는 이런 사고 하나 만으로부터, 자신이 주장하는 철학자 왕을 묘사하면서 플라톤이 동시대 철학자 몇 명을 분명히 생각했으리라고 결론을 내렸을 수도 있다. 그러나 국가가 쓰여지던 때는, 아테네에는 철학자라로 주장할 세 명의 뛰어난 사람만 있었다: 안티스테네스(Antisthenes), 이소크라테스(Isocrates), 그리고 플라톤 자신. 우리가 이점을 염두에 두고 국가라는 책에 접근한다면, 우리는 철학자 왕의 특징을 토론하는 데에서 플라톤에 의하여 개인적인 언급을 담고 있는 것으로 분명하게 표시된 긴 글이 있음을 즉각 발견한다. 그 글은 인기 있는 인물, 즉 알키비아데스(Alcibiades)를 분명히 언급하면서 시작하여 한 이름 (테아게스[Theages]라는 이름)을 공개적으로 언급하고, 플라톤 자신인 '소크라테스'를 언급하며 끝난다. 그 결과는 겨우 몇 명만이 철학자 왕의 자리에 적합한 진정한 철학자로 묘사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귀족으로 태어난 알키비아데스는 그 자리에 적합한 사람이었지만, 그를 구하려는 소크라테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철학을 버렸다. 버려지고 무방비 상태가 되어, 철학은 가치 없는 청원자들이 권리주장을 하는 대상물이 되었다. 결국, '철학과 연계될 가치가 있는 사람은 겨우 몇 명만 남았다'. 우리가 다다른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가치 없는 청원자'란 안티스테네스와 이소크라테스와 그들의 학파라는 것을 (그리고 플라톤이 철학자 왕과 관련된 핵심적인 글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그들은 플라톤이 '힘으로 억압했다'고 주장하는 동일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예상할 것이다. 그리고 정말로, 이 예상을 입증한 독립적인 증거가 있다. 유사하게, 우리는 '가치 있는 몇 명의 사람'에는 플라톤과, 아마도, 그의 친구 몇 명이 (디오[Dio]가 가능할 것이다) 포함되리라고 예상해야 한다; 그리고, 정말로, 이 글이 계속되면서 플라톤은 여기서 자신에 대하여 이야기를 한다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음이 드러난다: '이 작은 무리에 속하는 사람은.. 다수 사람의 광증과, 모든 공적인 일이 일반적으로 부패함을 볼 수 있다. 철학자는.. 야수들이 있는 우리 속의 사람과 같다. 다수 사람들이 저지르는 불의를 그는 저지르지 않지만, 야만인들의 세상으로 에워싸여 있기 때문에 그의 힘은 홀로 자신의 싸움을 계속하는데 충분하지 않다. 그는 자신의 도시나 친구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기 전에 살해될는지도 모른다... 이 모든 점을 올바르게 고찰한 다음에, 그는 자신의 평화를 지키며 자신의 일에만 노력을 한다..' 이 퉁명스럽고 가장 비(非)소크라테스적인 말 속에 표현된 강한 적의(敵意)는 그 말이 플라톤 자신의 말임을 분명히 나타낸다. 그러나 이 개인적인 고백을 완전히 이해하기 위해서, 그 고백은 다음 말과 비교되어야 한다: '노련한 항해사가 서투른 선원에게 자신의 명령을 받아들이라고 간청하는 것은 자연과 일치하지 않는다; 또한 현명한 사람이 부자의 문 앞에서 기다리는 것도 그렇다... 그러나 진실 되고 자연스러운 과정은, 부유하건 가난하건, 병든 자가 의사 집 문으로 달려가야 한다는 것이다. 같은 방식으로 통치를 받을 필요가 있는 사람들은 통치할 수 있는 사람의 집 문을 에워싸야 한다; 그리고 통치자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려면, 피통치자들에게 자신의 통치를 수용하라고 간청해서는 안 된다.' 이 글에서 누가 거대한 개인적인 자만심의 외침을 놓칠 수 있다는 말인가? 플라톤은 말한다, 여기 당신들의 천부적 통치자인, 통치하는 방법을 아는 철학자 왕인, 내가 있다. 당신들이 나를 원하면, 당신들이 나에게로 오고, 나는 당신들의 통치자가 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당신들에게 간청하며 다가가지는 않겠다.

플라톤은 사람들이 오리라고 믿었던가? 많은 위대한 문학작품처럼, 국가는 그 저자가, 절망의 기간을 오락가락하면서, 성공하리라는 활기차고 소모적인 희망을 경험했다는 흔적을 보여준다. 간간이, 적어도 플라톤은 사람들이 찾아오리라고 기대했다; 자기 작품의 성공이, 자기 지혜의 명성이 사람들을 불러오리라고. 그 다음에 다시, 그는 사람들이 자극을 받아 분노에 찬 공격을 해올 따름이라고 느꼈다; 그가 자초하는 것은 '비웃음과 비방의 홍수' - 심지어 아마도 죽음 - 일 것이라고.

그는 야망을 가지고 있었을까? 그는 별을 따려하고 있었다 - 신과 같아지려고. 나는 간혹 플라톤을 향한 열광의 일부가, 그가 많은 은밀한 꿈을 표현했다는 사실 때문이 아닌지 의아해한다. 심지어 자신에게는 야망이 없다고 플라톤이 주장하는 곳에서조차도, 우리는 그가 야망에 의하여 고취됨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는 우리를 확신시킨다, 철학자에게는 야망이 없다고; '통치할 운명'이지만, '철학자는 통치를 갈망하지 않는다'. 그러나 주어진 이유는 그의 신분이 너무 높다는 것이다. 신성한 것과 교감하는 사람은 자신이 있는 높은 곳에서 하강하여 국가의 이익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한다. 그는 열망하지 않는다; 그러나 천부적인 통치자와 구세주로서 그는 올 준비가 되어있다. 불쌍한 인간들을 그를 필요로 한다. 그가 없다면 국가는 분명히 멸망하는데 그 까닭은 그만이 국가를 보전하는 비결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 쇠퇴를 막는 비결...

나는 우리가 철학자 왕의 통치 뒤에는 권력 추구가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통치자에 대한 그 아름다운 초상화는 자화상이다. 우리가 이것을 발견한 충격으로부터 회복되었을 때, 우리는 경외감을 불어넣는 초상화를 새롭게 보게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소크라테스의 반어법으로 약간 무장한다면 그것이 그다지 무서운 것이 아님을 발견할 것이다(소크라테스의 반어법[Socratic/Socrates' irony]란 자신이 무식하다는 것을 밝힘으로써 상대방 스스로 무지를 깨닫게 만드는 교육방법을 말한다 - 역자 주). 우리는 그 초상화의 인간적인, 정말로, 그것의 너무나 인간적인 특징을 감지하기 시작할 것이다. 최초의 왕권 대신에, 최초의 철학 교수직을 정립한 데 만족해야 했던 플라톤에게 우리는 다소 미안한 감정조차 갖기 시작할는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꿈, 자신의 모습을 따서 그가 구성했던 왕의 이데아를 실현할 수 없었던 플라톤. 소크라테스의 반어법으로 무장되면, 우리는 플라톤의 이야기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따서 '위대한 개'라는 자신의 왕 이데아를 구현했던 위대한 덴마크인인 토노(Tono)의 작품인 추악한 다크스훈트(Ugly Dachshund) 이야기라는 플라톤주의에 대한 천진스럽고 무의식적인 작은 풍자를 우울하게 닮은 것이 있음을 발견하기조차 할 것이다. (그러나 토노는 결국 자신이 위대한 개라는 것을 다행히도 발견한다).

철학자 왕이라는 이 이념은 인간의 왜소함에 대한 얼마나 큰 기념비인가! 정치가에게 자신의 권력, 우수성, 그리고 지혜에 의하여 현혹되는 위험을 경고했던, 그리고 정치가에게 가장 중요한 것 - 우리 모든 허약한 인간이라는 것 -을 가르치려고 애썼던 소크라테스의 소박함 및 자애로움과 그 이념은 얼마나 대조적인가! 반어법과 이성과 진실의 이 세상에서 마술적 권력이 현자(賢者)를 평범한 사람 위 높은 곳으로 들어올리는 플라톤이 주장하는 현자의 왕국으로 내려감은 어떤 몰락인가; 그리고 거짓말을 그만둘 정도로, 혹은 모든 무당들의 유감스러운 직업을 - 자신의 동료들 위에 군림하는 권력과 교환하여 마술을, 양육하는 마술을 파는 것 - 무시할 정도로 충분히 높지는 않을지라도!

-"열린 사회와 그 적들, 1권 플라톤", 칼 포퍼 -

CHAPTER 8: THE PHILOSOPHER

KING

And the state will erect monuments... to commemorate

them. And sacrifices will be offered to them as demigods,

... as men who are blessed by grace, and godlike.

PLATO.

The contrast between the Platonic and the Socratic creed is even greater than I have shown so far. Plato, I have said, followed Socrates in his definition of the philosopher. 'Whom do you call true philosophers? - Those who love truth', we read in the Republic. But he himself is not quite truthful when he makes this statement. He does not really believe in it, for he bluntly declares in other places that it is one of the royal privileges of the sovereign to make full use of lies and deceit: 'It is the business of the rulers of the city, if it is anybody's, to tell lies, deceiving both its enemies and its own citizens for the benefit of the city; and no one else must touch this privilege.' .

'For the benefit of the city', says Plato. Again we find that the appeal to the principle of collective utility is the ultimate ethical consideration. Totalitarian morality overrules everything, even the definition, the Idea, of the philosopher. It need hardly be mentioned that, by the same principle of political expediency, the ruled are to be forced to tell the truth. 'If the ruler catches anyone else in a lie.. then he will punish him for introducing a practice which injures and endangers the city...' only in this slightly unexpected sense are the Platonic rulers - the philosopher kings - lovers of truth.

I

Plato illustrates this application of his principle of collective utility to the problem of truthfulness by the example of the physician. The example is well chosen, since Plato likes to visualize his political mission as one of the healer or saviour of the sick body of society. Apart from this, the role which he assigns to medicine throws light upon the totalitarian character of Plato's city where state interest dominates the life of the citizen from the mating of his parents to his grave. Plato interprets medicine as a form of politics, or as he puts it himself, he 'regards Aesculapius, the god of medicine, as a politician' . Medical art, he explains, must not consider the prolongation of life as its aim, but only the interest of the state. 'In all properly ruled communities, each man has his particular work assigned to him in the state. This he must do, and no one has time to spend his life in falling ill and getting cured.' Accordingly, the physician has 'no right to attend to a man who cannot carry out his ordinary duties; for such a man is useless to himself and to the state'. To this is added the consideration that such a man might have 'children who would probably be equally sick', and who also would become a burden to the state. (In his old age, Plato mentions medicine, in spite of his increased hatred of individualism, in a more personal vein. He complains of the doctor who treats even free citizens as if they were slaves, 'issuing his orders like a tyrant whose will is law, and then rushing off to the next slave-patient' , and he pleads for more gentleness and patience in medical treatment, at least for those who are not slaves.) Concerning the use of lie and deceit, Plato urges that these are 'useful only as a medicine' ; but the ruler of the state, Plato insists, must not behave like some of those 'ordinary doctors' who have not the courage to administer strong medicines. The philosopher king, a lover of truth as a philosopher, must, as a king, be 'a more courageous man', since he must be determined 'to administer a great many lies and deceptions' - for the benefit of the ruled, Plato hastens to add. Which means, as we already know, and as we learn here again from Plato's reference to medicine, 'for the benefit of the state'. (Kant remarked once in a very different spirit that the sentence 'Truthfulness is the best policy' might indeed be questionable, whilst the sentence 'Truthfulness is better than policy' is beyond dispute .)

What kind of lies has Plato in mind when he exhorts his rulers to use strong medicine? Crossman rightly emphasizes that Plato means 'propaganda, the technique of controlling the behaviour of.. the bulk of the ruled majority' . Certainly, Plato had these first in his mind; but when Crossman suggests that the propaganda lies were only intended for the consumption of the ruled, while the rulers should be a fully enlightened intelligentsia, then I cannot agree. I think, rather, that Plato's complete break with anything resembling Socrates' intellectualism is nowhere more obvious than in the place where he twice expresses his hope that even the rulers themselves, at least after a few generations, might be induced to believe his greatest propaganda lie (이 문장은 I don't think that Plato's complete break with anything resembling Socrates' intellectualism is anywhere more obvious than in the place where he twice expresses his hope that even the rulers themselves, at least after a few generations, might be induced to believe his greatest propaganda lie로 표현하는 것이 옳다. 문법적 오류이다. - 역자 주); I mean his racialism, his Myth of Blood and Soil, known as the Myth of the Metals in Man and of the Earthborn. Here we see that Plato's utilitarian and totalitarian principles overrule everything, even the ruler's privileges of knowing, and of demanding to be told, the truth. The motive of Plato's wish that the rulers themselves should believe in the propaganda lie is his hope of increasing its wholesome effect, i.e. of strengthening the rule of the master race, and ultimately, of arresting all political change.

II

Plato introduces his Myth of Blood and Soil with the blunt admission that it is a fraud. 'Well then', says the Socrates of the Republic, 'could we perhaps fabricate one of those very handy lies which indeed we mentioned just recently? With the help of one single lordly lie we may, if we are lucky, persuade even the rulers themselves - but at any rate the rest of the city.' It is interesting to note that the use of the term 'persuade'. To persuade somebody to believe a lie means, more precisely, to mislead or to hoax him; and it would be more in tune with the frank cynicism of the passage to translate 'we may, if we are lucky, hoax even the rulers themselves'. But Plato uses the term 'persuasion' very frequently, and its occurrence here throws some light on other passages. It may be taken as a warning that in similar passages he may have propaganda lies in his mind; more especially where he advocates that the statesman should rule 'by means of both persuasion and force' .

After announcing his 'lordly lie', Plato, instead of proceeding directly to the narration of his Myth, first develops a lengthy preface, somewhat similar to the lengthy preface which precedes his discovery of justice; and indication, I think, of his uneasiness. It seems that he did not expect the proposal which allows to find much favour with his readers. The Myth itself introduces two ideas. The first is to strengthen the defence of the mother country; it is the idea that the warriors of his city are authochthonous, 'born of the earth of their country', and ready to defend their country which is their mother. This old and well-known idea is certainly not the reason for Plato's hesitation (although the wording of the dialogue cleverly suggests it). The second idea, however, 'the rest of the story', is the myth of racialism: 'God.. has put gold into those who are capable of ruling, silver into the auxiliaries, and iron and copper into the peasants and the other producing classes.' These metals are hereditary, they are racial characteristics 두 절을 연결하는 접속사 and가 필요하다 - 역자 주). In this passage, in which Plato, hesitatingly, first introduces his racialism, he allows for the possibility that children may be born with an admixture of another metal than those of their parents; and it must be admitted that he here announces the following rule: if in one of the lower classes 'children are born with an admixture of gold and silver, they shall.. be appointed guardians, and.. auxiliaries'. But this concession is rescinded in later passages of the Republic (and also in the Laws), especially in the story of the Fall of Man and of the Number , partially quoted in chapter 5 above. From this passage we learn that any admixture of one of the base metals must be excluded from the higher classes. The possibility of admixtures and corresponding changes in status therefore only means that nobly born but degenerate children may be pushed down, and not that any of the base born may be lifted up. The way in which any mixing of metals must lead to destruction is described in the concluding passage of the story of the Fall of Man: 'Iron will mingle with silver and bronze with gold, and from this mixture variation will be born and absurd irregularity; and whenever these are born they will beget struggle and hostility. And this is how we must describe the ancestry and birth of Dissension, wherever she arises'. It is in this light that we must consider that the Myth of the Earthborn concludes with the cynical fabrication of a prophecy of a fictitious oracle 'that the city must perish when guarded by iron and copper'. Plato's reluctance to proffer his racialism at once in its more radical form indicates, I suppose, that he knew how much it was opposed to the democratic and humanitarian tendencies of his time.

If we consider Plato's blunt admission that his Myth of Blood and Soil is a propaganda lie, then the attitude of the commentators towards the Myth is somewhat puzzling. Adam, for instance, writes: 'Without it, the present sketch of a state would be incomplete. We require some guarantee for the permanence of the city..; and nothing could be more in keeping with the prevailing moral and religious spirit of Plato's.. education than that he should find that guarantee in faith rather than in reason.' I agree (though this is not quite what Adam meant) that nothing is more in keeping with Plato's totalitarian morality than his advocacy of propaganda lies. But I do not quite understand how the religious and idealistic commentator can declare, by implication, that religion and faith are on the level of an opportunist lie. As a matter of fact, Adam's comment is reminiscent of Hobbes' conventionalism, of the view that the tenets of religion, although not true, are a most expedient and indispensable political device. And this consideration shows us that Plato, after all, was more of a conventionalist than one might think. He does not even stop short of establishing a religious faith 'by convention' (we must credit him with the frankness of his admission that it is only a fabrication), while the reputed conventionalist Protagoras at least believed that the laws, which are our making, are made with the help of divine inspiration. It is hard to understand why those of Plato's commentators who praise him for fighting against the subversive conventionalism of the Sophists, and for establishing a spiritual naturalism ultimately based on religion, fail to censure him making a convention, or rather an invention, the ultimate basis of religion. In fact, Plato's attitude towards religion as revealed by his 'inspired lie' is practically identical with that of Critias, his beloved uncle, the brilliant leader of the Thirty Tyrants who established an inglorious blood-regime in Athens after the Peloponnesian war. Critias, a poet, was the first to glorify propaganda lies, whose invention he described in forceful verses eulogizing the wise and cunning man who fabricated religion, in order to 'persuade' the people, i.e. to threaten them into submission.

'Then came, it seems, that wise and cunning man,

The first inventor of the fear of gods...

He framed a tale, a most alluring doctrine,

Concealing truth by veils of lying lore.

He told of the abode of awful gods,

Up in revolving vaults, whence thunder roars

And lightning's fearful flashes blind the eye...

He thus encircled men by bonds of fear;

Surrounding them by gods in fair abodes,

He charmed them by his spells, and daunted them -

And lawlessness turned into law and order.'

In Critias' view, religion is nothing but the lordly lie of a great and clever statesman. Plato's views are strikingly similar, both in the introduction of the Myth in the Republic (where he bluntly admits that the Myth is a lie) and in the Laws where he says that the installation of rites and of gods is 'a matter for a great thinker'. - But is this the whole truth about Plato's religious attitude? Was he nothing but an opportunist in this field, and was the very different spirit of his earlier works merely Socratic? There is of course no way of deciding this question with certainty, though I feel, intuitively, that there may sometimes be a more genuine religious feeling expressed even in the later works. But I believe that wherever Plato considers religious matters in their relation to politics, his political opportunism sweeps all other feelings aside. Thus Plato demands, in the Laws, the severest punishment even for honest and honourable people if their opinions concerning the gods deviate from those held by the state. Their souls are to be treated by a Nocturnal Council of inquisitors, and if they do not recant or if they repeat the offence, the charge of impiety means death. Has he forgotten that Socrates had fallen a victim to that very charge?

That it is mainly state interest which inspires these demands, rather than interest in the religious faith as such, is indicated by Plato's central religious doctrine. The gods, he teaches in the Laws, punish severely all those on the wrong side in the conflict between good and evil, a conflict which is explained as that between collectivism and individualism. And the gods, he insists, take an active interest in men, they are not merely spectators (이 문장은 And since the gods, he insists, take an active interest in men, they are not merely spectators로 써서 접속사를 집어넣어야 한다 - 역자 주). It is impossible to appease them. Neither through prayers nor through sacrifices can they be moved to abstain from punishment. The political interest behind this teaching is clear, and it is made even clearer by Plato's demand that the state must suppress all doubt about any part of this politico-religious dogma, and especially about the doctrine that the gods never abstain from punishment.

Plato's opportunism and his theory of lies makes it, of course, difficult to interpret what he says. How far did he believe in his theory of justice? How far did he believe in the truth of the religious doctrines he preached? Was he perhaps himself an atheist, in spite of his demand for the punishment of other (lesser) atheists? Although we cannot hope to answer any of these questions definitely, it is, I believe, difficult, and methodologically unsound, not to give Plato at least the benefit of the doubt. And especially the fundamental sincerity of his belief that there is an urgent need to arrest all change can, I think, hardly be questioned. (I shall return to this in chapter 10.) on the other hand, we cannot doubt that Plato subjects the Socratic love of truth to the more fundamental principle that the rule of the master class must be strengthened.

It is interesting, however, to note that Plato's theory of truth is slightly less radical than his theory of justice. Justice, we have seen, is defined, practically, as that which serves the interest of his totalitarian state. It would have been possible, of course, to define the concept of truth in the same utilitarian or pragmatist fashion. The Myth is true, Plato could have said, since any thing that serves the interest of my state must be believed and therefore must be called 'true'; and there must be no other criterion of truth. In theory, an analogous step has actually been taken by the pragmatist successors of Hegel; in practice, it has been taken by Hegel himself and his racialist successors. But Plato retained enough of the Socratic spirit to admit candidly that he was lying. The step taken by the school of Hegel was one that could never have occurred, I think, to any companion of Socrates.

III

So much for the role played by the Idea of Truth in Plato's best state. But apart from Justice and Truth, we have still to consider some further Ideas, such as Goodness, Beauty, and Happiness, if we wish to remove the objections, raised in the chapter 6, against our interpretation of Plato's political programme as purely totalitarian, and as based on historicism. An approach to the discussion of these ideas, and also to that of Wisdom, which has been partly discussed in the last chapter, can be made by considering the somewhat negative result reached by our discussion of the Idea of Truth. For this result raises a new problem: Why does Plato demand that the philosophers should be kings or the kings philosophers, if he defines the philosopher as a lover of truth, insisting, on the other hand, that the king must be 'more courageous', and use lies?

The only reply to this question is, of course, that Plato has, in fact, something very different in mind when he uses the term 'philosopher'. And indeed, we have seen in the last chapter that his philosopher is not the devoted seeker for wisdom, but its proud possessor. He is a learned man, a sage. What Plato demands, therefore, is the rule of learnedness - sophocracy, if I may call it. In order to understand this demand, we must try to find what kind of functions make it desirable that the ruler of Plato's state should be a possessor of knowledge, a 'fully qualified philosopher', as Plato says. The functions to be considered can be divided into two main groups, namely those connected with the foundation of the state, and those connected with its preservation.

IV

The first and the most important function of the philosopher king is that of the city's founder and lawgiver. It is clear why Plato needs a philosopher for this task. If the state is to be stable, then it must be a true copy of the divine Form or Idea of the state. But only a philosopher who is fully proficient in the highest of sciences, in dialectics, is able to see, and to copy, the heavenly Original. This point receives much emphasis in the part of the Republic in which Plato develops his arguments for the sovereignty of the philosophers. Philosophers 'love to see the truth', and a real lover always loves to see the whole, not merely the parts. Thus he does not love, as ordinary people do, sensible things and their 'beautiful sounds and colours and shapes', but he wants 'to see, and to admire the real nature of beauty' - the Form or Idea of Beauty. In this way, Plato gives the term philosopher a new meaning, that of a lover and a seer of the divine world of Forms or Ideas. As such, the philosopher is the man who may become the founder of a virtuous city : 'The philosopher who has communion with the divine' may be 'overwhelmed by the urge to realize.. his heavenly vision', of the ideal city and of its ideal citizens. He is like a draughtsman or a painter who has 'the divine as his model'. only true philosophers can 'sketch the ground-plan of the city', for they alone can see the original, and can copy it, by 'letting their eyes wander to and fro, from the model to the picture, and back from the picture to the model'.

As 'a painter of constitutions', the philosopher must be helped by the light of goodness and of wisdom. A few remarks will be added concerning these two ideas, and their significance for the philosopher in his function as a founder of the city.

Plato's Idea of the Good is the highest in the hierarchy of Forms. It is the sun of the divine world of Forms or Ideas, which not only sheds light on all the other members, but is the source of their existence . It is also the source of cause of all knowledge and all truth . The power of seeing, of appreciating, of knowing the Good is thus indispensable to the dialectician. Since it is the sun and the source of light in the world of Forms, it enables the philosopher-painter to discern his objects. Its functio is therefore of the greatest importance for the founder of the city (functio는 function의 오기로 원문의 오류이다 - 역자 주). But this purely formal information is all we get. Plato's Idea of the Good nowhere plays a more direct ethical or political role; never do we hear which deeds are good, or produce good, apart from the well-known collectivist moral code whose precepts are introduced without recourse to the Idea of Good. Remarks that the Good is the aim, that it is desired by every man , do not enrich our information. This empty formalism is still more marked in the Philebus, where the Good is identified with the Idea of 'measure' or 'mean'. And when I read the report that Plato, in his famous lecture 'on the Good', disappointed an uneducated audience by defining the Good as 'the class of the determinate conceived as a unity', then my sympathy us with the audience. In the Republic, Plato says frankly that he cannot explain what he means by 'the Good'. The only practical suggestion we ever get is the one mentioned at the beginning of chapter 4 - that good is everything that preserves, and evil thing that leads to corruption or degeneration. ('Good' does not, however, seem to be here the Idea of Good, but rather a property of things which makes them resemble the ideas.) Good is, accordingly, an unchanging, an arrested state of things; it is the state of things at rest.

This does not seem to carry us very far beyond Plato's political totalitarianism; and the analysis of Plato's Idea of Wisdom leads to equally disappointing results. Wisdom, as we have seen, does not mean to Plato the Socratic insight into one's own limitations; nor does it mean what most of us would expect, a warm interest in, and a helpful understanding of, humanity and human affairs. Plato's wise men, highly preoccupied with the problems of a superior world, 'have no time to look down at the affairs of men.. ; they look upon, and hold fast to, the ordered and the measured'. It is the right kind of learning that makes a man wise: 'Philosophic natures are lovers of that kind of learning which reveals to them a reality that exists for ever and is not harassed by generation and degeneration.' It does not seem that Plato's treatment of wisdom can carry us beyond the ideal of arresting change.

V

Although the analysis of the functions of the city's founder has not revealed any new ethical elements in Plato's doctrine, it has shown that there is a definite reason why the founder of the city must be a philosopher. But this does not fully justify the demand for the permanent sovereignty of the philosopher. It only explains why the philosopher must be the first lawgiver, but not why he is needed as the permanent ruler, especially since none of the later rulers must introduce any change. For a full justification of the demand that the philosophers should rule, we must therefore proceed to analyse the tasks connected with the city's preservation.

We know from Plato's sociological theories that the state, once established, will continue to be stable as long as there is no split in the unity of the master class. The bringing up of that class is, therefore, the great preserving function of the sovereign, and a function which must continue as long as the state exists. How far does it justify the demand that a philosopher must rule? To answer this question, we distinguish again, within this function, between two different activities: the supervision of education, and the supervision of eugenic breeding.

Why should the director of education be a philosopher? Why is it not sufficient, once the state and its educational system are established, to put an experienced general, a soldier-king, in charge of it? The answer that the educational system must provide not only soldiers but philosopher, and therefore needs philosophers as well as soldiers as supervisors, is obviously unsatisfactory; for if no philosopher were needed as directors of education and as permanent rulers, then there would be no need for the educational system to produce new ones. The requirements of the educational system cannot as such justify the need for philosophers in Plato's state, or the postulate that the rulers must be philosophers. This would be different, of course, if Plato's education had an individualistic aim, apart from its aim to serve the interest of the state; for example, the aim to develop philosophical faculties for their own sake. But when we see, as we did in the preceding chapter, how frightened Plato was of permitting anything like independent thought ; and when we now see that the ultimate theoretical aim of this philosophic education was merely a 'Knowledge of the Idea of the Good' which is incapable of giving an articulate account of this Idea, then we begin to realize that this cannot be the explanation. And this impression is strengthened if we remember chapter 4, where we have seen that Plato also demanded restrictions in the Athenian 'musical' education. The great importance which Plato attaches to a philosophical education of the rulers must be explained by other reasons - by reasons which must be purely political.

The main reason I can see is the need for increasing to the utmost the authority of the rulers. If the education of the auxiliaries functions properly, there will be plenty of good soldiers. Outstanding military faculties may therefore be insufficient to establish an unchallenged and unchallengeable authority. This must be based on higher claims. Plato bases it upon the claims of supernatural, mystical powers which he develops in his leaders. They are not like other men. They belong to another world, they communicate with the divine (이 문장의 두 개의 절은 and로 연결되어야 한다. 즉 They belong to another world, and they communicate with the divine으로 써야 한다 - 역자 주). Thus the philosopher king seems to be, partly, a copy of a tribal priest-king, an institution which we have mentioned in connection with Heraclitus. (The institution of tribal priest-kings or medicine-men or shamans seems also to have influenced the old Pythagorean sect, with their surprisingly naive tribal taboos. Apparently, most of these were dropped even before Plato. But the claim of the Pythagoreans to a supernatural basis of their authority remained.) Thus Plato's philosophical education has a definite political functions. It puts a mark on the rulers, and it establishes a barrier between the rulers and the ruled. (This has remained a major function of 'higher' education down to our own time.) Platonic wisdom is acquired largely for the sake of establishing a permanent political class rule. It can be described as political 'medicine', giving mystic powers to its possessors, the medicine-men.

But this cannot be the full answer to our question of the functions of the philosopher in the state. It means, rather, that the question why a philosopher is needed has only been shifted, and that we would have now to raise the analogous question of the practical political functions of the shaman or the medicine-man. Plato must have had some definite aim when he devised his specialized philosophic training. We must look for a permanent function of the ruler, analogous to the temporary function of the lawgiver (이 문장에서 analogous 앞의 쉼표는 없어야 한다 - 역자 주). The only hope of discovering such a function seems to be in the field of breeding the master race.

VI

The best way to find out why a philosopher is needed as a permanent ruler is to ask the question: What happens, according to Plato, to a state which is not permanently ruled by a philosopher? Plato has given a clear answer to this question. If the guardians of the state, even of a very perfect one, are unaware of Pythagorean lore and of the Platonic Number, then the race of the guardians, and with it the state, must degenerate.

Racialism thus takes up a more central part in Plato's political programme than one would expect at first sight. Just as the Platonic racial or nuptial Number provides the setting for his descriptive sociology, 'the setting in which Plato's Philosophy of History is framed' (as Adam puts it), so it provides the setting of Plato's political demand for the sovereignty of the philosophers. After what has been said in chapter 4 about the graziers' or cattle breeders' background of Plato's state, we are perhaps not quite unprepared to find that his king is a breeder king. But it may still surprise some that his philosopher turns out to be a philosophic breeder. The need for scientific, for mathematico-dialectical and philosophical breeding is not the least of the arguments behind the claim for the sovereignty of the philosophers.

It has been shown in chapter 4 how the problem of obtaining a pure breed of human watch-dogs is emphasized and elaborated in the earlier parts of the Republic. But so far we have not met with any plausible reason why only a genuine and fully qualified philosopher should be a proficient and successful political breeder. And yet, as every breeder of dogs or horses or birds knows, rational breeding is impossible without a pattern, an aim to guide him in his efforts, an ideal which he may try to approach by the methods of mating and of selecting. Without such a standard, he could never decide which offspring is 'good enough'; he could never speak of the difference between 'good offspring' and 'bad offspring'. But this standard corresponds exactly to a Platonic Idea of the race which he intends to breed.

Just as only the true philosopher, the dialectician, can see, according to Plato, the divine original of the city, so it is only the dialectician who can see that other divine original - the Form or Idea of Man. only he is capable of copying this model, of calling it down from Heaven to Earth , and of realizing it here. It is a kingly Idea, this Idea of Man. It does not, as some have thought, represent what is common to all men; it is not the universal concept 'man'. It is, rather, the godlike original of man, an unchanging superman; it is a super-Greek, and a super-master. The philosopher must try to realize on earth what Plato describes as the race of 'the most constant, the most virile, and, within the limits of possibilities, the most beautifully formed men..: nobly born, and of awe-inspiring character' . It is to be a race of men and women who are 'godlike if not divine.. sculptured in perfect beauty' - a lordly race, destined by nature to kingship and mastery.

We see that the two fundamental functions of the philosopher king are analogous: he has to copy the divine original of the city, and he has to copy the divine original of man. He is the only one who is able, and who has the urge, 'to realize, in the individual as well as in the city, his heavenly vision' .

Now we can understand why Plato drops his first hint that a more than ordinary excellence is needed in his rulers in the same place where he first claims that the principles of animal breeding must be applied to the race of men. We are, he says, most careful in breeding animals. 'If you did not breed them in this way, don't you think that the race of your birds or your dogs would quickly degenerate?' When inferring from this that man must be bred in the same careful way, 'Socrates' exclaims: 'Good heavens!.. What surpassing excellence we shall have to demand from our rulers, if the same principles apply to the race of men!' This exclamation is significant; it is one of the first hints that the rulers may constitute a class of 'surpassing excellence' with status and training of their own; and it thus prepares us for the demand that they ought to be philosophers. But the passage is even more significant in so far as it directly leads to Plato's demand that it must be the duty of the rulers, as doctors of the race of men, to administer lies and deception. Lies are necessary, Plato asserts, 'if your herd is to reach highest perfection'; for this needs 'arrangements that must be kept secret from all but the rulers, if we wish to keep the herd of guardians really free from disunion'. Indeed, the appeal (quoted above) to the rulers for more courage in administering lies as a medicine is made in this connection; it prepares the reader for the next demand, considered by Plato as particularly important (이 문장에서 쉼표는 없어지고 considered로 시작되는 분사구문이 직접 the next demand를 수식해야 한다 - 역자 주). He decrees that the rulers should fabricate, for the purpose of mating the young auxiliaries, 'an ingenious system of balloting, so that the persons who have been disappointed.. may blame their bad luck, and not the rulers', who are, secretly, to engineer the ballot. And immediately after this despicable advice for dodging the admission of responsibility (by putting it into the mouth of Socrates, Plato libels his great teacher), 'Socrates' makes a suggestion which is soon taken up and elaborated by Glaucon and which we may therefore call the Glauconic Edict. I mean the brutal law which imposes on everybody of either sex the duty of submitting, for the duration of a war, to the wishes of the brave: 'As long as the war lasts,.. nobody may say "No" to him. Accordingly, if a soldier wishes to make love to anybody, whether male or female, this law will make him more eager to carry off the price of valour.' The state, it is carefully pointed out, will thereby obtain two distinct benefits - more heroes, owing to the incitement, and again more heroes, owing to the increased numbers of children from heroes. (The latter benefit, as the most important one from the point of view of a long-term racial policy, is put into the mouth of 'Socrates'.)

VII

No special philosophical training is required for this kind of breeding. Philosophical breeding, however, plays its main part in counteracting the dangers of degeneration. In order to fight these dangers, a fully qualified philosopher is needed, i.e. one who is trained in pure mathematics (including solid geometry), pure astronomy, pure harmonics, and, the crowning achievement of all, dialectics. only he who knows the secrets of mathematical eugenics, of the Platonic Number, can bring back to man, and preserve for him, the happiness enjoyed before the Fall . All this should be borne in mind when, after the announcement of the Glauconic Edict (and after an interlude dealing with the natural distinction between Greeks and Barbarians, corresponding, according to Plato, to that between masters and slaves) (corresponding 앞의 쉼표를 없애서 corresponding으로 시작되는 분사구문이 the natural distinction between Greeks and Barbarians를 수식하도록 하여야 한다. 문법적인 오류이다 - 역자 주), the doctrine is enunciated which Plato carefully marks as his central and most sensational political demand - the sovereignty of the philosopher king. This demand alone, he teaches, can put an end to the evils of social life; to the evil rampant in states, i.e. political instability, as well as to its more hidden cause, the evil rampant in the members of the race of men, i.e. racial degeneration. This is the passage.

'Well,' says Socrates, 'I am now about to dive into that topic which I compared before to the greatest wave of all. Yet I must speak, even though I foresee that this will bring upon me a deluge of laughter. Indeed, I can see it now, this very wave, breaking over my head into an uproar of laughter and defamation..' - 'Out with the story!' says Glaucon. 'Unless,' says Socrates, 'unless, in their cities, philosophers are vested with the might of kings, or those now called kings and oligarchs become genuine and fully qualified philosophers; and unless these two, political might and philosophy, are fused (while the many who nowadays follow their natural inclination for only one of these two are suppressed by force), unless this happens, my dear Glaucon, there can be no rest; and the evil will not cease to be rampant in the cities - nor, I believe, in the race of men.' (To which Kant wisely replied: 'That kings should become philosophers, or philosophers kings, is not likely to happen; nor would it be desirable, since the possession of power invariably debases the free judgement of reason. It is, however, indispensable that a king - or a kngly, i.e. self-ruling, people - should not suppress philosophers but leave them the right of public utterance.' )

This important Platonic passage has been quite appropriately described as the key to the whole work. Its last words, 'nor, I believe, in the race of men', are, I think, an afterthought of comparatively minor importance in this place. It is, however, necessary to comment upon them, since the habit of idealizing Plato has led to the interpretation that Plato speaks here about 'humanity', extending his promise of salvation from the scope of the cities to that of 'mankind as a whole'. It must be said, in this connection, that the ethical category of 'humanity' as something that transcends the distinction of nations, races, and classes, is entirely foreign to Plato. In fact, we have sufficient evidence of Plato's hostility towards the equalitarian creed, a hostility which is seen in his attitude towards Antisthenes, and old disciple and friend of Socrates. Antisthenes also belonged to the school of Gorgias, like Alcidamas and Lycophron, whose equalitarian theories he seems to have extended into the doctrine of the brotherhood of all men, and of the universal empire of men. This creed is attacked in the Republic by correlating the natural inequality of Greeks and Barbarians to that of masters and slaves; and it so happens that this attack is launched immediately before the key passage we are here considering. For these and other reasons , it seems safe to assume that Plato, when speaking of the evil rampant in the race of men, alluded to a theory with which his readers would be sufficiently acquainted at this place, namely, to his theory that the welfare of the state depends, ultimately, upon the 'nature' of the individual members of the ruling class; and that their nature, and the nature of their race, or offspring, is threatened, in turn, by the evils of an individualistic education, and, more important still, by racial degeneration. Plato's remark, with its clear allusion to the opposition between divine rest and the evil of change and decay, foreshadows the story of the Number and the Fall of Man .

It is very appropriate that Plato should allude to his racialism in this key passage in which he enunciates his most important political demand. For without the 'genuine and fully qualified philosopher', trained in all those sciences which are prerequisite to eugenics, the state is lost (trained 앞의 쉼표는 불필요하다 - 역자 주). In his story of the Number and the Fall of Man, Plato tells us that one of the first and fatal sins of omission committed by the degenerate guardians will be their loss of interest in eugenics, in watching and testing the purity of the race: 'Hence rulers will be ordained who are altogether unfit for their task as guardians; namely, to watch, and to test, the metals in the races (which are Hesiod's races as well as yours), gold and silver and bronze and iron.'

It is ignorance of the mysterious nuptial Number which leads to all that. But the Number was undoubtedly Plato's own invention. (It presupposes pure harmonics, which in turn presupposes solid geometry, a new science at the time when the Republic was written.) Thus we see that nobody but Plato himself knew the secret of, and held the key of, true guardianship. But this can mean only one thing. The philosopher king is Plato himself, and the Republic is Plato's own claim for kingly power - to the power which he thought his due, uniting in himself, as he did, both the claims of the philosopher and of the descendant and legitimate heir of Codrus the martyr, the last of Athens' kings, who, according to Plato, had sacrificed himself 'in order to preserve the kingdom for his children'.

VIII

Once this conclusion has been reached, many things which otherwise would remain unrelated become connected and clear. It can hardly be doubted, for instance, that Plato's work, full of allusions as it is to contemporary problems and characters, was meant by its author not so much as a theoretical treatise, but as a topical political manifesto. 'We do Plato the gravest of wrongs', says A. E. Taylor, 'if we forget that the Republic is no mere collection of theoretical discussions about government.. but a serious project of practical reform put forward by an Athenian.., set on fire, like Shelly, with a "passion for reforming the world".' (set on fire 앞의 쉼표는 없어야 한다 - 역자 주) This is undoubtedly true, and we could have concluded from this consideration alone that, in describing his philosopher kings, Plato must have thought of some of the contemporary philosophers. But in the days when the Republic was written, there were in Athens only three outstanding men who might have claimed to be philosophers: Antisthenes, Isocrates, and Plato himself. If we approach the Republic with this in mind, we find at once that, in the discussion of the characteristics of the philosopher kings, there is a lengthy passage which is clearly marked out by Plato as containing personal allusions. It begins with an unmistakable allusion to a popular character, namely Alcibiades, and ends by openly mentioning a name (that of Theages), and with a reference of 'Socrates' to himself . Its upshot is that only very few can be described as true philosophers, eligible for the post of philosopher king(eligible 앞의 쉼표는 없어야 한다 - 역자 주). The nobly born Alcibiades, who was of the right type, deserted philosophy, in spite of Socrates' attempts to save him. Deserted and defenceless, philosophy was claimed by unworthy suitors. Ultimately, 'there is left only a handful of men who are worthy of being associated with philosophy'. From the point of view we have reached, we would have to expect that the 'unworthy suitors' are Antisthenes and Isocrates and their school (and that they are the same people whom Plato demands to have 'suppressed by force', as he says in the key-passage of the philosopher king). And, indeed, there is some independent evidence corroborating this expectation . Similarly, we should expect that the 'handful of men who are worthy' includes Plato and, perhaps, some of his friends (possibly Dio); and, indeed, a continuation of this passage leaves little doubt that Plato speaks here of himself: 'He who belongs to this small band.. can see the madness of the many, and the general corruption of all public affairs. The philosopher.. is like a man in a cage of wild beasts. He will not share the injustice of the many, but his power does not suffice for continuing his fight alone, surrounded as he is by a world of savages. He would be killed before he could do any good to his city or to his friends... Having duly considered all these points, he will hold his peace, and confine his efforts to his own work..' . The strong resentment expressed in these sour and most un-Socratic words marks them clearly as Plato's own. For a full appreciation, however, of this personal confession, it must be compared with the following: 'It is not in accordance with nature that the skilled navigator should beg the unskilled sailors to accept his command; nor that the wise man should wait at the doors of the rich... But the true and natural procedure is that the sick, whether rich or poor, should hasten to the doctor's door. Likewise should those who need to be ruled besiege the door of him who can rule; and never should a ruler beg them to accept his rule, if he is any good at all.' Who can miss the sound of an immense personal pride in this passage? Here am I, says Plato, your natural ruler, the philosopher king who knows how to rule. If you want me, you must come to me, I may become your ruler (you must come to me and I may become your ruler로 쓰는 것이 옳다 - 역자 주). But I shall not come begging to you.

Did he believe that they would come? Like many great works of literature, the Republic shows traces that its author experienced exhilarating and extravagant hopes of success , alternating with periods of despair. Sometimes, at least, Plato hoped that they would come; that the success of his work, the fame of his wisdom, would bring them along. Then again, he felt that they would only be incited to furious attacks; that all he would bring upon himself was 'an uproar of laughter and defamation' - perhaps even death.

Was he ambitious? He was reaching for the stars - for god-likeness. I sometimes wonder whether part of the enthusiasm for Plato is not due to the fact that he gave expression to many secret dreams . Even where he argues against ambition, we cannot but feel that he is inspired by it. The philosopher, he assures us , is not ambitious; although 'destined to rule, he is the least eager for it'. But the reason given is - that his status is too high. He who has had communion with the divine may descend from his heights to the mortals below, sacrificing himself for the sake of the interest of the state. He is not eager; but as a natural ruler and saviour, he is ready to come. The poor mortals need him. Without him the state must perish, for he alone knows the secret of how to preserve it - the secret of arresting degeneration...

I think we must face the fact that behind the sovereignty of the philosopher king stands the quest for power. The beautiful portrait of the sovereign is a self-portrait. When we have recovered from the shock of the finding, we may look anew at the awe-inspiring portrait; and if we can fortify ourselves with a small dose of Socrates' irony then we may cease to find it so terrifying. We may begin to discern its human, indeed, its only too human features. We may even begin to feel a little sorry for Plato, who had to be satisfied with establishing the first professorship, instead of the first kingship, of philosophy; who could never realize his dream, the kingly Idea which he had formed after his own image. Fortified by our dose of irony, we may even find, in Plato's story, a melancholy resemblance to that innocent and unconscious little satire on Platonism, the story of the Ugly Dachshund, of Tono, the Great Dane, who forms his kingly Idea of 'Great Dog' after his own image (but who happily finds in the end that he is Great Dog himself) .

What a monument of human smallness is this idea of the philosopher king (이 문장은 마침표가 아니라 감탄부호로 끝내어 감탄문으로 처리함이 옳다 - 역자 주). What a contrast between it and the simplicity and humaneness of Socrates, who warned the statesman against the danger of being dazzled by his own power, excellence, and wisdom, and who tried to teach him what matters most - that we are all frail human beings (이 문장은 마침표가 아니라 감탄부호로 끝내어 감탄문으로 처리함이 옳다 - 역자 주). What a decline from this world of irony and reason and truthfulness down to Plato's kingdom of the sage whose magical powers raise him high above ordinary men; and although not quite high enough to forgo the use of lies, or to neglect the sorry trade of every shaman - the selling of spells, of breeding spells, in exchange for power over his fellow-men (이 문장은 마침표가 아니라 감탄부호로 끝내어 감탄문으로 처리함이 옳다 - 역자 주).

-"The Open Society and Its Enemies, Vol. 1 Plato", Karl R. Popp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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