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하버드-스미스소니언 천체물리센터(CfA) 과학자들이 17일(현지시각) 미국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에서 태초 우주 대폭발(빅뱅) 뒤 급팽창을 입증하는 연구 결과를 설명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클렘 프리케, 제이미 복, 차오린 쿠오, 존 코박이다. 아래 사진은 이들이 남극에 설치한 전파망원경 바이셉을 활용해 포착한 원시 중력파의 패턴인데, 이는 약 138억년 전 우주 대폭발 뒤 급팽창이 있었음을 확인해주는 증거다. 케임브리지/AP 뉴시스 |
우주탄생 비밀 풀 증거 마침내 찾아
하버드-스미스소니언 천체물리센터
남극에 전파망원경 ‘바이셉2’ 설치
우주배경복사 편광 패턴 관측 통해
‘급팽창 증거’ 원시 중력파 흔적 검출
급팽창 시기·규모도 규명돼
중력 정밀연구 단서도 줄 듯
우주는 거시 구조로 볼 때 왜 이토록 균일할까? 그러면서도 왜 물질이 이리저리 한곳에 모여 은하, 항성, 행성을 이룰까? 그것은 우주 대폭발(빅뱅) 직후 빛보다도 빠른 속도로 공간이 팽창한 이른바 ‘급팽창’(인플레이션)의 순간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게 현대 우주론의 오랜 설명이다.
이런 급팽창 시기에 중력 요동으로 생성된 중력의 물결인 중력파의 원시 흔적이 정밀한 우주 관측을 통해 처음 검출됐다. 이는 태초에 급속 팽창의 단계를 거쳤기에 지금처럼 균일하고 평탄한 우주 공간이 이뤄졌다는 오랜 급팽창 이론을 확인해주는 강한 증거로 받아들여진다.
미국 하버드-스미스소니언 천체물리센터(CfA)는 17일(현지시각) 기자회견을 열어 “남극에 설치한 전파망원경 시설 ‘바이셉2’(BICEP2)를 통해 우주배경복사를 관측해 이런 결과를 얻었다”고 밝혔다. 기자회견은 인터넷으로 세계에 생중계됐다.
연구팀은 우주에서 날아오는 빛의 특정한 편광 성분(‘원형 편광’)을 매우 넓은 우주 공간에서 관측해냈다. 이 편광은 중력파로 인해 생기는 것으로 알려졌기에, 연구팀은 이런 편광의 우주 분포와 패턴을 관측하고 원시 중력파의 흔적만을 걸러내 이를 급팽창의 증거로 제시할 수 있었다.
위의 개념도는 약 138억년 전 우주 대폭발 직후 빛보다 빠른 속도로 공간이 팽창하는 급팽창 단계를 거쳐 현재의 우주 공간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아래 사진은 하버드-스미스소니언천체물리센터(CfA) 연구팀이 남극에 설치한 전파망원경 바이셉을 활용해 포착한 원시 중력파의 패턴인데, 이는 약 138억년 전 우주 대폭발 직후 급팽창이 실제로 일어났음을 확인해주는 증거다. 하버드-스미스소니언천체물리센터 제공 |
그동안 남극 지역에 천체 관측 시설을 갖추고 우주의 중력파를 검출하려는 경쟁이 치열하게 이뤄져 왔으며 지난해와 올해 초에도 남극 지역에 있는 다른 관측 시설의 연구그룹들(SPT 등)이 우주 편광 관측 결과를 발표했으나, 중력파에 의한 직접 효과를 보여주지는 못했으며 관측 영역이 크지 않고 정밀도도 상대적으로 떨어져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현대 우주론에 따르면 138억년 전 우주가 뜨거운 대폭발 이후 팽창하며 점차 식어 대폭발의 흔적이 매우 미미한 복사열로 전 우주 공간에 배경처럼 퍼져 있는데, 이번 관측에선 중력파에 의해 생기는 빛의 편광 패턴을 그런 우주배경복사에서 찾아냈다. 우주론을 연구하는 이석천 고등과학원(KIAS) 연구원은 “빛은 물결과 달리 진동방향과 진행방향이 직각을 이루는 편광 특성을 지니는데, 특히 특정 편광의 패턴(원형 편광)은 중력파에 의해 생기기 때문에 우주배경복사에서 편광 패턴을 관측한 것은 곧 원시 중력파의 흔적을 찾은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팀은 이런 편광 패턴을 분석해 급팽창이 대폭발 직후 10의 마이너스 37승 초 동안에 10의 16승 기가전자볼트(GeV)의 에너지 규모에서 일어났음을 보여주었다.
남극의 아문센-스콧 기지에 설치된 전파망원경 시설 ‘바이셉’이 밤하늘을 수놓은 은하수의 빛을 받아 붉게 물들어 있다. 미국 하버드-스미스소니언 천체물리센터는 17일 이 시설을 통해 우주배경복사를 관측해 우주 대폭발(빅뱅) 직후 급팽창으로 생성된 원시 중력파의 흔적을 검출했다고 밝혔다. 남극/로이터 뉴스1 |
여러 과학매체는 이번 발견을 주요 기사로 크게 보도했다. 과학저널 <네이처>는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 이론에서 중요한 요소이지만 찾지 못했던 중력파의 존재를 보여준 가장 직접적인 증거”라고 보도했다. 1980년 급팽창 가설을 처음 제시한 앨런 구스 교수(미국 매사추세츠공대·물리학)는 “급팽창의 그림과 맞아떨어지는 완전히 새롭고도 독립적인 우주론 차원의 증거”라며 환영했다.
이번 연구는 전자기력, 약력, 강력과 더불어 우주의 기본 힘이면서도 여전히 수수께끼에 싸인 중력의 성질에 관해 더욱 정밀하게 연구할 수 있는 단서를 줄 것으로도 기대된다.
이석천 연구원은 “우주배경복사의 편광 패턴을 관측하는 것과 다른 방법으로 중력파를 검출하려는 연구 프로젝트들(LISA, LIGO)은 계속 진행될 것”이라며 “이번 연구에선 무엇보다 대폭발 우주론에서 급팽창이 언제 어느 정도의 에너지 규모에서 일어났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를 제시했다는 점이 가장 눈에 띄는 성과”라고 말했다.
현대 우주론 모형에서, 우주는 138억년 전 특이점에서 대폭발을 일으켰으며 직후에 원자보다도 더 작은 우주 크기에서 축구공만한 우주 크기로 빛보다 빠르게 순간 팽창하는 시기(급팽창)를 거쳐 ‘균일 우주’의 토대를 마련했으며, 이후 계속 팽창하고 식으면서 지금 우주에는 우주 탄생의 흔적인 우주배경복사를 남긴 것으로 이해된다.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중력파
전기장이 흔들릴 때 나타나는 전파적 현상을 전자기파(빛)라고 정의하듯, 중력파는 중력장이 흔들릴 때 나타나는 전파적인 현상을 말한다. 빛 속도로 전파되며 진동수가 있다. 잔잔한 물에 돌을 던지면 물결이 일고 거기에 파가 생기는데, 중력파도 중력의 변화로 생기는 중력장의 흔들림이 전파되는 것이다.
우주배경복사
우주가 팽창하면서 점차 식어 우주 전체에 남아 있는 우주 대폭발(빅뱅)의 흔적으로 ‘우주의 온도’라고 말 할 수 있다. 전 우주에서 고르게 관측되는 우주배경복사는 영하 270도(절대온도 2.7K)이지만 국지적으로는 매우 미세한 차이가 나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