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장 4장의 속편
한 나라 문명의 형편은 그 국민의 일반적인 지덕(智德)을 보고 알 수 있다. 앞장에서 일컬은 바의 중론(衆論)은 곧 국내의 여러 사람의 의견이어서, 그 시대에 있어서 보편적인 국민 사이에 분포된 지덕(智德)의 형편을 드러내는 것이어서, 이 중론(衆論)으로써 사람의 마음이 있는 곳을 살필 수 있어도, 이제 또한 이 중론(衆論)이라는 것에 관하여 두 가지 토론이 있다. 즉, 그 한 가지의 뜻은, 중론(衆論)은 반드시 사람의 숫자에 유래하지 않고, 지력(智力)의 분량에 유래하여 강약이 있는 것이다. 두 번째 뜻은, 사람마다 지력(智力)이 있다할지라도 관습에 의하여 그것을 결합하지 않으면 중론(衆論)의 형식을 이루지 못하는 일이 있다. 그 형편은 다음과 같다.
첫째로 한 사람의 주장은 두 사람의 주장에 승리하지 못한다. 3인의 같은 주장은 두 사람을 제압할 수 있다. 사람의 숫자가 많을수록 논의의 힘도 역시 더욱 강하다. 소위 중과부적이라는 것이다. 그렇다할지라도 이 논의의 많고 적음과 강함과 약함은, 오직 재주와 지혜가 같은 인물 사이에 유효할 따름이다. 천하의 인물을 하나로 하여 보면, 그 논의의 힘은 사람의 숫자의 많고 적음에 유래하지 않고 지혜와 덕행의 양의 많고 적음에 유래하여 강약이 있는 것이다. 사람의 지혜와 덕행은 오히려 그 사람의 근력과 골격의 힘과 같아서, 한 사람에게서 세 사람을 겸하는 자가 있고, 혹은 10인을 겸하는 자가 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 사람을 모아 하나로 하고, 그 하나의 강약을 계산하는 것은 오직 사람 숫자의 많고 적음을 보고 알 수 없다. 하나의 사이에 분포된 힘의 양을 측정하지 않을 수 없다. 비유건대 100명의 사람에서 1000관의 물건을 들면, 한 사람의 힘, 각 10관이 되어도, 사람마다의 힘의 양이 반드시 같을 수 없다. 시험 삼아 이 100명의 사람을 등분하여 50명으로 2개조를 만들어, 이 2개조의 50명으로써 각 물체를 들도록 하면, 1개조의 50명은 70관을 들고, 1개조의 50명은 30관을 드는 것이리라. 더욱 이것을 넷으로 나누고 또 여덟으로 나누어서 시험하면, 반드시 상황에서 불균형을 낳아, 그 최고 강자와 최고 약자를 비교하여, 한 사람이 충분히 10명의 힘을 겸하는 자가 있음을 볼 것이다. 결과적으로 또 100명 안에서부터 억센 사람 20명을 골라 1개조로 하고, 다른 80명으로 1개조를 하여 시험하면, 20명의 조는 60관을 들고, 80명의 조는 겨우 40관을 들 수 있다. 이제 이런 상황에 관하여 계산하는 것에는, 사람의 숫자로써 보면 2와 8과의 비율이 되지만, 힘의 양으로써 보면 6과 4와의 비율이 된다. 그러므로 힘의 양은 사람의 숫자에 의하여 정할 수 없고, 들어 올리는 바의 물체의 경중과 사람의 숫자와의 비율을 보고 알 수 있는 것이다.
지혜와 덕행의 힘은 저울과 자로써 측정할 수 없어도, 그 내용은 틀림없이 근육과 골격의 힘과 다를 이유가 없다. 그 강약이 서로 다른 데 이르러서는 근력의 차이부터도 더욱 심하여, 혹은 1명으로 100명을 겸하고 1000명을 겸하는 사람도 있을 터이다. 만약 사람의 지혜와 덕행으로써 주정(酒精)과 같은 것이 되게 한다면, 반드시 눈을 놀라게 하는 진기한 광경이 있을 것이다. 이런 종류의 인물은 10명을 증류하여, 지혜와 덕행의 수량, 한 말을 얻는 것에, 저런 종류의 인물은 100명을 증류하여 겨우 3홉을 얻는 일도 있을 터이다. 한 나라의 중론(衆論)은 사람의 체질로부터 나오지 않고 그 정기(精氣)로부터 피어나는 것이기에, 저 중론(衆論)을 부르짖는 사람도 반드시 주장하는 사람이 많을 따름에 의하여 힘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의 무리에 분포된 지혜와 덕행의 분량이 많기 때문에, 그 수량으로써 사람의 숫자가 부족한 것을 보충하여, 마침내 중론(衆論)의 명분을 얻는 것이다.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도 국민의 지혜와 덕행을 평균하면, 나라 가운데 글자를 모르는 어리석은 국민이 과반일 것이다. 그 국론이라고 부르짖고 중론(衆論)이라고 칭하는 것은, 모두 중류 이상의 지식인의 주장이어서, 다른 어리석은 국민은 단지 그 주장에 뇌화부동 하여 그 범위 안에 농락당하여 감히 자신의 어리석음을 어쩌지 못할 따름이다. 또 그 중류 인간 이상 안에서도 지혜와 어리석음의 차이는 여러 가지로 무한하고, 이것은 저것을 이기고 저것은 이것을 이겨서, 처음에 서로 접하여서 당장에 패한 것이 있고, 오랫동안 서로 대립하여 승부를 결정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 천 번 갈고 백 번 단련하여, 겨우 일시적인 다른 주장을 제압할 수 있는 것을, 국론(國論)과 중론(衆論)이라고 칭할 뿐이다. 이것이 곧 신문과 연설회가 번성하여 여러 사람들의 입이 시끄러움 까닭이다. 결국 국민은 국가의 지혜와 덕행 때문에 채찍질을 당하여 지혜와 덕행의 방향을 바꾸면, 국민도 역시 방향을 바꾸고, 지혜와 덕행의 편을 가르면 국민도 역시 편을 갈라서, 나아감과 물러감과 모임과 흩어짐 모두가 지혜와 덕행에 따르지 않는 것이 없다. 《세간에 글과 그림을 즐기는 자는 중류 이상이고 글자를 알고 풍류가 있는 인물이다. 그 인물이 이것을 줄기는 까닭은, 옛날 도자기의 내력을 상상하고 글과 그림의 운필의 잘하고 못함을 비교하여 즐기는 것이어도,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옛날 도자기와 글과 그림을 중시하는 풍속은 널리 세간에 유행하여, 글자 한 자도 모르는 무식한 사람이라도 조금 돈이 있는 자는 반드시 글과 그림을 구하여 도코노마<일본 전통 가옥에서 바닥을 높이어 벽에 서화나 족자를 걸고 바닥에는 장식품을 두는 것. 역자 주>에 족자를 걸고, 진기한 그릇이나 골동품을 모아 득의양양한 표정을 짓는 자들이 많다. 웃을 수 있고 또 수상쩍게 여길 수 있어도, 결국 이 어리석은 백성도 중류 이상의 사람들의 풍류에 뇌화부동 하여, 부지불식간에 그런 일을 하는 것이다. 그 밖에 유행하는 의상과 염직물의 무늬 등도 모두 다른 사람의 창의성에 뇌화부동 하여 그것을 즐기는 것이다.》 가깝게 우리 일본의 사건으로써 한 가지 증거를 보이겠다. 연전에 정부를 메이지 유신하여 번(藩)을 폐지하고 현(県)을 설치한 행위가 있다. 귀족은 이로 인해 권력도 재산도 같이 잃었어도, 감히 불평을 부르짖지 못한 것은 어째서인가? 사람들은 혹은 말하여, 왕정의 메이지유신은 왕실의 위력에 의하고, 번(藩)을 폐지하고 현(県)을 설치한 것은 집정의 지혜로운 결단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라고. 이것은 시대의 추세를 알지 못하는 자의 추측이다. 왕실에 실제적인 위력이 있다면 그 복고가 왜 반드시 게이오(慶應) 말년을 기다렸겠는가? 일찍이 도쿠가와(德川) 씨를 무너뜨리고 가능했다. 혹은 아시카가(足利) 시대 말기에 정권을 만회하는 것도 가능하다. 복고의 기회는 반드시 게이오(慶應) 말년에 한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 시기에 이르러 처음으로 그 업적을 이루었고, 마침내 번(藩)을 폐지하는 큰일을 행한 것은 왜인가? 왕실의 위력 때문이 아니고, 집정의 지혜로운 결단 때문이 아니고, 특별히 그 원인이 없을 수 없다.
우리나라 국민은 오랫동안 전제의 폭정에 시달려, 문벌로서 권력의 원천을 삼았고, 재주가 있는 자라도 문벌에 의지하여 그 재주를 쓰지 않으면 일을 할 수가 없었다. 한 때는 그 세력에 압도되어 전국에 지혜의 힘이 작동하는 바를 볼 수 없고, 사사건건 모두 정체되어 흐르지 않는 상태로 존재하는 것처럼 되었다고 할지라도, 사람의 지혜가 발생하는 힘은 멈추고자 하여도 멈출 수가 없고, 이 정체하여 흐르지 않은 사이에도 여전히 잘 걸음을 옮겨, 도쿠가와(德川) 씨의 말기에 이르러서는 세상 사람들이 문벌을 혐오하는 마음을 일으켰다. 그 인물은, 혹은 유교학자 겸 의사에 숨고 혹은 저술가에 숨고, 혹은 제후의 무사의 안에도 있고 혹은 승려와 신관(神官)의 안에도 있어, 누구도 모두 글자를 알아도 뜻을 얻지 못한 자이다. 그 징후는, 덴메이(天明: 에도시대의 연호)와 분카(文化: 에도시대의 연호)의 시절부터 세상에 나온 저서와 시집 또는 역사소설의 가운데서, 때때로 사건에 의존하여 불평을 호소하는 자가 있음을 보고 알 수 있다. 본디 그 문장의 위에서 문벌과 전제 정치를 부정하여 분명하게 논의를 일으킨 것은 아니고, 비유건대 국학자 무리는 왕실의 쇠미함을 슬퍼하고, 한학자 무리는 귀족 정권의 사치를 풍자하고, 또 일종의 에도시대 통속 문학가는 오만불손한 말과 멋대로 지껄이는 말로써 세간을 우롱하는 등, 그 문장에서도 형편에서도 확실한 순서가 없다할지라도, 그 시대에 유행하는 현상을 달가워하지 않은 뜻은 스스로 언어 외에 나타나는 것이어서, 실제로 본인도 호소하는 바를 알지 못하며 불평을 호소하는 것이다. 그 상황은 흡사 고질에 걸린 몸을 괴롭혀 스스로 명확하게 병세를 설명할 수 없다할지라도, 오직 그 고통을 호소하는 자와 같다. 《대체로 도쿠가와[徳川] 씨의 초기에, 그 정권이 번창한 시기에는, 세상의 저술가도 그 위력에 압도되어 조금도 시대의 추세를 비난하지 않고, 오히려 막부의 정치에 아첨하는 자가 있었다. 아라이 하쿠세키[新井白石]의 저서, 나카이 치쿠잔[中井竹山]의 비사[秘史] 등을 보고서 알 수 있다. 그 후 분세이[文政: 에도 후기의 연호] 시대에 이르러 저술한 라이 산요[頼山陽]의 일본외사[日本外史]에서는, 오로지 왕정의 쇠퇴를 분노하였고, 문장 속의 어투가 흡사 도쿠가와[徳川] 씨를 향해 그 죄를 비난하는 것과 같다. 이제 그런 이유를 찾건대, 하쿠세키[白石]와 치쿠잔[竹山]은 반드시 막부의 노예도 아니고, 산요[山陽]는 반드시 천황의 충신이 아니고, 모두 시대의 추세가 그렇게 만든 바이다. 하쿠세키[白石]와 치쿠잔[竹山]은 한 때 세력에 눌려 붓을 마음대로 휘두를 수 없었고, 산요[山陽]는 조금 그 속박에서 벗어나 당시에 실시되던 전제정치에 분노하여, 일본외사[日本外史]를 통하여 그 노여움을 배출했을 따름이다. 그 밖에 국학, 소설, 광시[狂詩: 에도 중기 이후 유행한 해학을 주제로 한 한시체의 시], 광문[狂文: 에도 중기 이후의 해학과 풍자 속어를 주로 사용하여 조롱하는 글] 등이 성행한 것은 특히 덴메이[天明: 에도 후기의 연호]와 분카[文化: 에도 후기의 연호] 시대 이후 최고조를 이룬다. 모토오리[本居], 히라타[平田], 바킨[馬琴], 쇼쿠 산진[蜀山人], 히라가 겐나이[平賀源内] 등과 같은 무리는, 모두 뜻을 품은 높은 지식인이었으나, 그 재간을 펼치기에는 지위가 없어서 공연히 글 쓰는 일에 자신을 맡기어, 그 일에 의지하여 혹은 왕을 존경하자는 주장을 외치고, 혹은 충신과 의로운 선비의 형편을 기록하고, 혹은 미친 소리를 내어 한 시대를 조롱하여, 강력하게 스스로 불평을 위로한 자들이다.》 그리하여 이 국학자(國學者) 무리도 반드시 왕실의 충복이 아니고, 한학자(漢學者) 무리도 역시 반드시 정말 나라를 염려하는 높은 지식인이 아니었다. 그 증거에는, 세상의 은둔 군자라는 자가, 평상시에는 불평을 소리 내도, 일단 벼슬길에 발탁되면 돌연 그 주장을 바꾸어 불평하는 소문을 듣지 않고, 오늘 왕가를 존중하자는 자도 박봉이 풍요롭게 됨과 마주치면 내일 막부 지지파가 되고, 어제 시골의 유교학자도 등용의 명을 받으면 오늘은 득의양양한 모습을 드러내는 자가 많다. 옛날과 현재의 실제 경험으로써 이것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곧 이 일본학 학자와 중국학 학자 무리가, 도쿠가와(徳川) 말기에 이르러 왕을 존경하고 나라를 염려하는 뜻을 붓끝에 표현하여 몰래 논의의 단초를 연 것도, 대개는 그 사람의 속내에서 아니고, 한 때 왕을 존경하는 것과 나라를 염려하는 것을 명분으로 삼아서 자기의 불평을 배출하는 것이리라. 하지만 그 마음씨가 진실한지 아닌지, 또 그 논의의 사사로움과 공적임은 잠시 접어두고, 본디 이 불평이 생기는 연유를 찾으면, 세상의 전제정치와 문벌에 막혀서 자기가 재주를 펼칠 수 없는 것으로부터 마음에 분노를 자아내는 것이라면, 사람의 정서가 전제정치 하에 있을 것을 좋아하지 않는 확실한 증거는, 붓끝에 나타나는 바의 어투를 보고 명명백백하다. 오직 폭정이 번성한 시대에서는 이 사람의 정서를 표현할 수 없을 따름이다. 사람의 정서를 표현하는 것과 표현하지 못하는 것은, 폭정의 힘과 국민의 지혜의 힘이, 그 강약여하에 달려있다. 정부의 폭력과 국민의 지혜의 힘은 정확하게 반대가 되는 것이어서, 이것에서 세력을 얻으면 그것에서 권력을 잃고, 그것에서 때를 얻으면 이것에서 불평이 생겨, 그 균형은 마치 저울이 평형을 이루는 것과 같다. 도쿠가와(徳川) 씨의 정권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같이 번성하여 저울은 항상 한쪽으로 기울었지만, 말년에 이르러 사람의 지혜가 겨우 진보하여. 마침내 그 한쪽 끝에 작은 저울추를 놓을 수 있었다. 저 덴메이(天明: 에도 후기의 연호)와 분카(文化: 에도 후기의 연호) 때부터 세상에 유행하는 저서의 종류는 곧 이 저울추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저울추라는 것이 매우 가벼워서 본디 균형을 이루기에 부족하고, 하물며 그 균형을 파괴하는 것에 관해서야. 만약 그 후에 개항한 일이 없는 것으로 한다면, 어느 때에 이 균형을 뒤엎고 지혜의 힘의 방향에서 권세를 얻었겠는가? 지식인이 잘 알 수 있는 바가 아니다. 다행히 가에이(嘉永) 시대에 「페리[Perry]」가 도래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것을 개혁의 호기로 삼는다. 「페리[Perry]」의 도래 이후, 도쿠가와(徳川) 정부에서 여러 외국과 조약을 체결하는 데 이르러, 세상 사람들이 비로소 정부의 조치를 보고 그 어리석으면서도 약함을 알고, 또 한편으로는 외국인을 접촉하여 그 말을 듣고, 혹은 서양서적을 읽고 혹은 번역서를 보고 점점 규모를 넓혀서, 유령 같은 정부라 할지라도 백성의 힘으로써 무너뜨릴 수 있음을 깨닫기에 이르렀다. 그 사정을 표현하여 말하면, 갑자기 귀머거리와 장님의 귀와 눈을 열고 처음으로 소리와 색을 듣고 볼 수 있는 것을 아는 것과 같다. 그런데 처음에 일의 실마리를 연 것은 양이론(攘夷論)이다. 대체로 이 논의가 피어난 근원을 찾으니, 결코 사람의 사사로운 감정에서가 아니고, 자신과 타인의 구분을 분명히 해서 스스로 이 나라를 지키고자 하는 진심에서 출발하지 않은 것은 없다. 개벽 이래 처음으로 외국인에 접촉하고, 어둡고 적막한 심야에서 시끄럽고 바쁜 대낮으로 나온 자라면, 그 목격한 바의 사물 모두 모두 기괴하여 마음에 맞는 것이 없다. 그 마음은 곧 사사로운 마음이 아니고, 일본과 외국과의 경계선을 겨우 뇌리에 상상하여, 한 몸으로써 조국을 맡겠다는 마음이라면, 그것을 공적인 것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본디 어둠과 밝음이 갑자기 변하는 때를 맞아, 정신이 현혹되어 그 논의에 이치가 치밀한 자가 있을 수 없고, 그 거동도 역시 거칠어서 어리석지 않을 수 없다. 일반적으로 말하면 애국심이 조잡하고 미숙한 자라도, 그 목적은 국가를 위한 것이기 때문에 공적인 것이고, 그 논의는 오랑캐를 물리치는 한 가지 조목이기 때문에 단순하다. 공적인 마음으로써 단순한 주장을 외치면, 그 세력은 반드시 강성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곧 양이론(攘夷論)의 초기에 세력을 얻은 까닭이다. 세간의 사람들도 한 때 이것에 농락당하여, 아직 외국과의 외교의 이익을 보지 못하여 우선 그것을 혐오하는 마음을 이루어, 천하의 모든 죄악을 외국과의 외교로 돌리고, 만약 국내에 재난이 발생하면, 이것도 외국인의 소행이라고 말하고 저것도 외국인의 계략이라고 칭하여, 전국을 들어 외국과의 외교를 좋아하는 자가 없기에 이르렀다. 설사 사적으로 그것을 좋아하는 자가 있어도 세상의 일반적인 형편에 뇌화부동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막부(幕府)는 홀로 이 외교의 충격을 맞아 외국인과 접촉하는 것에서 조금의 이치에 의지하지 않을 수 없다. 막부(幕府)의 담당자가 반드시 외교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단지 외국인의 위력과 핑계에 답할 수가 없어서 도리를 주장하는 자가 많아도, 양이(攘夷)파의 눈으로써 보면 이 도리는 관습에 빠진 갈팡질팡(因循姑息)일 뿐이다. 막부는 흡사 양이론(攘夷論)과 외국인 사이에 끼어서 진퇴유곡의 상황에 빠져, 마침내 그 균형을 얻지 못하여 더욱더 약점을 드러내고, 양이(攘夷)파는 더욱 세력을 얻어 꺼리는 바가 없어, 양이(攘夷)와 복고(復古)와 왕에 대한 존경과 막부 토벌을 외쳐, 오로지 막부를 무너뜨려서, 외국 오랑캐를 없애는 한 가지 일에 힘을 쏟았다. 그 사이에 사람을 암살하고 집을 불태우는 등, 높은 선비들이 반기지 않은 행동도 적지 않았다 할지라도, 결국 막부를 무너뜨리는 목적에 이르러서는 중론(衆論)이 일치하여, 전국의 지혜의 힘이 모조리 이 목적으로 향해 게이오(慶応) 말년에 혁명의 과업을 이루었던 것이다. 이 과정에 따르면, 혁명과 복고(復古) 후에 직접적으로 양이(攘夷)를 이룰 수 있음이 당연하여도 반대로 그런 일이 없고, 또 적으로 대하던 막부를 무너뜨리면 당연히 곧 끝날 수 있는데, 겸하여 다이묘 무사들도 배척한 것은 왜인가? 생각건대 우연이 아닌 것이다. 양이론(攘夷論)은 혁명의 시작이어서, 소위 사건의 가까운 원인일 따름이다. 일반적인 지혜의 힘은 처음부터 향하는 바를 달리하여, 그 목적은 복고도 아니고, 또 양이(攘夷)도 아니고, 복고(復古)와 양이(攘夷)의 주장을 선봉에서 사용하여 종전의 문벌과 전제를 정벌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사건을 일으킨 자가 왕실이 아니고, 적으로 삼는 바의 대상이 막부가 아니고, 지혜의 힘과 전제와의 전쟁이어서, 이 전쟁을 계획한 원인은 국내의 일반적인 지혜의 힘이다. 이것을 사건의 먼 원인으로 삼는다. 이 먼 원인이라는 것은 개항 이래 서양문명이 주장하는 바를 끌어들여 구원병으로 삼고, 그 세력이 점차 강성해지더라도, 지혜의 전쟁을 일으키는 데는 선봉이 없을 수 없어서, 이것 때문인지 가까운 원인과 합쳐서 그 전장으로 향했고, 혁명의 행동을 끝내고 개선하였던 것이다. 선봉의 주장도 한 때는 용기를 일으켰어도, 승리 후에 이르러서는 점차 그 구조가 조잡하여 오래 유지할 수 없음을 알고, 차츰 완력을 버리고 지혜의 힘의 무리에 들어감으로써 오늘날의 세력을 이루었다. 앞으로 지혜의 힘이 점점 권력을 얻어, 저 애국심이 조잡한 사람들로 하여금 조밀하게 하고, 미숙한 자로 하여금 익숙하게 하여, 우리나라의 국체(国体)를 보호하는 일이 있으면 무한한 행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말하는 바, 왕정복고(王政復古)는 왕실의 위력에 의거하지 않고, 왕실은 국내의 지혜의 힘에 명분을 빌려주었던 것이다. 번(藩)을 폐지하고 현(県)을 설치한 것(폐번치현: 廃藩置県)은 정권을 잡은 탁월한 결단이 아니고, 정권잡음은 국내의 지혜의 힘에 사역을 당하여 그 역할을 실제로 수행하였던 것이다.
위와 같이 전국의 지혜의 힘으로써 중론(衆論)을 이루어, 그 중론(衆論)이 귀착하는 바에서 정부를 개혁하고, 마침내 봉건제도도 폐지한 것이지만, 이 중론(衆論)에 관여한 사람들을 헤아리면 그 숫자가 매우 작다. 일본의 인구를 3천만으로 하고, 농업과 공업과 상업인의 숫자는 2500만보다도 많고, 무사계급은 겨우 2백만이 못되고, 기타 의료인과 신관(神官)과 승려와 떠돌이 무사 등속을 모아 가령 무사로 간주하여, 대략 500만 명을 귀족의 무리로 정하여, 2500만 명을 평민의 무리로 하여, 옛날부터 평민은 국사에 관여하는 일이 없는 풍습이라서, 이번의 사건에 관해서도 본래 알지 못하고, 따라서 이 중론(衆論)의 출처는 반드시 무사의 무리 500만 명 이내이다. 또한 이 500만 명 안에서도 개혁을 좋아하는 자는 매우 적다. 제일 개혁을 좋아하지 않는 것이 심한 자는 귀족이고, 그 다음이 대신(大臣)과 가노(家老: 중신[中臣])이고, 그 다음이 많은 녹봉을 받던 무사이다. 이 무리는 모두 개혁으로 인하여 손실을 입은 자여서 결코 개혁을 좋아할 이유가 없다. 몸에 재주와 덕(德)이 없고 집에는 많은 재산을 쌓아두고, 벼슬에 있어서는 높은 벼슬을 차지하고, 민간에 있어서는 부유한 명망을 얻은 인물이, 국가를 위하여 의(義)을 부르짖고 재산을 잃고 몸을 죽였던 사람은 옛날부터의 사례에 매우 드물다면, 이번의 개혁에 관해서도 이러한 인물은 무사층에서도 평민층에서도 당연히 극히 적다. 다만 이 개혁을 반기는 자는, 번(藩) 안에서 문벌이 없는 자이거나, 또는 문벌이 있어도 항상 뜻을 얻지 못하여 불평을 품은 자이거나, 또는 지위도 녹봉도 없어서 민간에 섞여 거주하는 가난한 서생(書生)이거나, 누구도 모두 사건만 당하면 소득은 있되 손실은 없는 신분의 사람들 외에 없다. 일반적으로 이것을 말하면 개혁의 난(亂)을 좋아하는 사람은 지혜의 힘이 있되 돈이 없는 사람이다. 옛날과 현재의 역사를 보고 이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이번의 개혁을 획책한 자는 무사의 무리 5백만의 안에 겨우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고, 여성과 어린이를 제외하면 어느 정도의 사람 숫자도 없을 것이다.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도 알지 못하고, 문득 신기한 주장을 부르짖고 나서서, 어떤 시간도 없이 세간에 유포되어, 그 주장에 응하는 자는 반드시 지혜의 힘이 왕성한 인물이어서, 주위의 사람들은 이것 때문에 설득당하고 이것 때문에 협박당하여, 어떤 생각 없이 뇌화부동 하는 자도 있고, 어쩔 수 없어서 따르는 자도 있어서, 점차 사람의 숫자가 늘어나, 마침내 이 주장을 인정하고 국가의 중론(衆論)으로 하여, 천하의 세력을 압도해서 유령과 같은 정부도 전복한 것이다. 그 후 번(藩)을 폐지하고 현(県)을 설치한 한 가지 조치도 귀족 전체를 위해서는 극히 불리하여, 그것을 반기지 않는 자는 열에 일곱이나 여덟이고, 그 주장을 하는 자는 겨우 두셋이어도, 그 7이나 8의 사람 숫자는 소위 고풍가(古風家: 보수주의자)이어서, 이 무리 사이에 분포된 지혜의 힘이 매우 부족하여, 두셋의 개혁가 무리에 있는 지혜의 분량에 미치지 못하는 바가 크다. 고풍가(古風家: 보수주의자)와 개혁가는 그 사람 숫자를 비교하면 7, 8과 2, 3과의 비율이 되지만, 지혜의 양은 이 비율을 거꾸로 한 것과 같다. 개혁가는 다만 이 지혜의 양으로써 사람 숫자의 부족을 보충하고, 7, 8 명의 사람으로 하여금 그 원하는 바를 마음대로 하지 못하게 했을 따름이다. 바로 지금의 형편에서는 진실로 고풍가(古風家: 보수주의자)라고 칭할 수 있는 자도 매우 적고, 옛 무사족 안에 그 녹봉과 직위를 유지할 수 있는 논의를 세우는 자도 없고, 국학과 한학을 하는 고학자(古学者) 무리도 반은 이미 그 주장을 바꾸어, 더러는 억지로 끌어대는(牽强附會: 견강부회) 논리를 만들어 사사로이 자신의 평소의 주장을 가장하고, 체면을 유지하면서 개혁가의 무리에 섞이기를 원하는 자도 있다. 이것을 비유하면 화친을 구실로 항복을 꾸미는 것과 같다. 본디 그 구실은 화친에서도 항복에서도, 혼동이 오래되는 데 이르면 마침내는 실제의 방향을 같이 하여, 함께 문명의 길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에, 개혁가의 무리는 차츰 증가할 수 있어도, 그 처음의 일을 꾸미어 성취하는 것은 사람의 숫자가 많기 때문이 아니고, 다만 지혜의 힘으로써 많은 사람을 제압한 것이다. 오늘날에도 고풍가(古風家: 보수주의자)의 무리에 지혜의 힘이 있는 자를 만들어, 차츰 동료를 얻어 왕성하게 옛 풍습을 주장하는 자가 있으면, 반드시 그 무리에 세력을 증가시켜 개혁가도 길을 피하는 일이 있을 수 있어도, 다행히도 고풍가(古風家: 보수주의자)에는 지혜의 힘이 있는 자가 적고, 혹은 우연히 인물을 만들면 홀연히 무리에 등을 돌리고 자신의 역할을 하지 않는 것이다.
일의 성패는 사람의 숫자에 기인하지 않고 지혜의 힘의 양에 기인하는 것은 앞의 문단의 확실한 증거로써 분명히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인간 교제의 사정은 모두 이 지혜의 힘이 있는 곳을 목적으로 하여 처리하지 않을 수 없다. 10명의 어리석은 자의 뜻에 맞추려고 한 명의 지혜로운 자의 비난을 초래할 수 없고, 100명의 어리석은 사람들의 칭찬을 사려고 하다가 10명의 지혜로운 사람으로 하여금 불평을 품게 할 수는 없다. 어리석은 자에게 비난을 받는 것도 부끄러워 할 것이 못되고, 어리석은 자에게 칭찬을 받는 것도 즐거워 할 것이 못되니, 어리석은 자의 비난과 칭찬으로써 일을 처리하는 기준으로 삼을 수 없다. 비유컨대 주례(周禮: 주나라의 예법)에 기록된 향음(鄕飮: 지방의 학생 가운데 우수한 자를 군주에 추천할 때, 지방장관이 베푸는 연회)의 뜻에 근거하여, 후세의 정부가 때로 술과 안주를 백성에게 제공한 사례가 있어도. 그 백성이 즐거워하는 형편을 보고 지방의 인심을 점칠 수는 없다. 적어도 문명을 향해 가는 인간 세상에 살면서, 다른 사람이 선물로 주는 것을 먹고 마시고 그것을 기뻐하는 자는, 굶주린 자가 아니면 어리석은 백성이다. 이 어리석은 백성이 기뻐하는 것을 보고 그것을 기뻐하는 자는, 그 어리석은 백성과 같이 어리석은 자일 따름이다. 또 옛날 역사에, 나라의 임금이 모습을 감추고 민간에 돌아다니며, 동요를 듣고 감동하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어찌 그것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 아닌가? 이것은 오랜 옛날의 일이어서 증명하기가 부족하지만, 오늘날에 있어서 정말로 이것과 비슷한 자가 있다. 곧 그러한 자라는 것은 독재정부에 고용되어 있는 바의 간첩이, 이것이다. 정부가 폭정을 저질러 민간에 불복하는 자가 있을 것을 두려워하여, 나이 어린 사람을 보내어 세간의 사정을 탐색하게 하고, 그 말을 듣고 정치적 조치를 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 나이 어린 사람을 칭하여 간첩이라고 한다. 원래 이 간첩이라는 자는 누구를 만나서 어떤 말을 들을 수 있는가? 당당한 학식이 높은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일을 숨기는 것이 없다. 혹은 은밀히 혼란을 꾸미는 자는, 그 인물이 반드시 간첩보다도 지혜의 힘이 왕성한 자라면, 누군가 이 나이 어린 사람으로 하여금 은밀한 일을 탐색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따라서 간첩이라는 자는 다만 돈 때문에 사역을 당하여 세간에서 배회하여, 어리석은 백성에게 접촉하여 어리석은 주장을 듣고, 자기의 억측을 섞어서 이것을 주인에게 보고할 따름이다. 사실상 조금도 유익한 것이 없고, 주인을 위해서는 돈을 잃고 헛되이 지혜로운 자의 조롱을 사는 자라고 할 수 있다. 프랑스의 「나폴레옹」 3세는 다년간 간첩을 이용했어도, 프러시아와 전쟁 때에는 국민의 실정을 탐색할 수 없었던 것이구나, 한 번 패배하고 생포되었던 것이 아니냐? 이것을 거울로 삼지 않을 수 없다. 정부가 만약 세간의 실정을 알고자 한다면, 출판을 자유롭게 하여 지혜로운 자의 논의를 듣는 것이 상책이다. 저서와 신문지에 제한을 두고 지혜로운 자의 언로(言路)를 막고, 간첩을 이용하여 세상 사정의 동정을 탐색하는 것은, 그 모양이 흡사 살아있는 물건을 밀봉하여 공기의 흐름을 끊고, 옆에서 그것이 죽는지 사는지를 살피는 것과 같다. 어찌 그것이 비열하지 않은가? 그것의 죽음을 원하면, 때려서 죽일 수 있고, 불에 태워서 죽일 수 있다. 국민이 지닌 지혜의 힘으로써 국가에 해로움 있게 한다면, 천하에 독서를 금지하는 것도 가능하고, 천하의 공부하는 사람을 땅에 묻는 것도 가능하다. 진시황의 선례를 따를 수 있다. 「나폴레옹」의 영특함도 더욱 이 비열함을 면할 수 없고, 정치가의 마음씨는 비천하다할만하다.
둘째, 사람들의 논의는 모여서 내용을 바꾸는 일이 있다. 성질이 겁이 많은 사람이어도 세 사람이 서로 모이면 어두운 밤에 산길을 통행하여 두려운 일이 없다. 생각건대 그 용기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서 찾을 수 없고, 세 사람 사이에 생기는 용기이다. 그리고 또는 10만의 용사가 바람소리와 학의 울음소리를 듣고 도망치는 일이 있다. 생각건대 그 두려움은 한 사람 한 사람에게서 찾을 수 없고, 10만 명 사이에 생기는 두려움이다. 사람이 지닌 지혜의 힘으로 하는 논의는 오히려 화학의 법칙에 따르는 화공약품과 같다. 소다와 염산을 각각 별도로 분리하면 어떤 독극물이어서, 혹은 금속류를 분해하는 힘이 있어도, 그것을 혼합하면 평범한 식염이 되어 주방의 일용품으로 제공할 수 있다. 석회와 염화암모늄은 어느 것도 독극물이 아니지만, 그것을 혼합하여 염화암모늄 정제품이 되면 그 기력으로써 사람을 졸도시킬 수 있다. 요즘 우리 일본에 유행하는 여러 곳의 회사라는 것을 보는데, 그 회사가 클수록 그 불미스러운 일이 더욱 심한 것과 같다. 100명의 회사는 10명의 회사에 미치지 못하고, 10명의 회사는 3명의 조합에 미치지 못하고, 3명의 조합보다도 한 사람에게서 밑천을 내어 한 사람의 독단으로 상업을 하면 이익을 얻는 일이 가장 많다. 대체로 방금 회사를 결성하여 상업을 하려는 자는 대개 모두 세간에서 재능이 있는 사람이어서, 저 고풍스러운 완고한 자가 선조가 남긴 법칙을 고수하여 손톱에 불을 붙이는(매우 검약한) 것과 비교하면, 그 지혜의 힘의 차이는 본디 비교가 되지 못한다. 그런데 재능이 있는 사람들이 서로 모여 일을 꾸미는 데 이르면, 갑자기 그 성질을 바꾸어 웃음을 참을 수 없는 실책을 저질러 세간에 비웃음을 당할 뿐만 아니라, 그 회사 안의 재능이 있는 사람들도 스스로 그런 이유를 알지 못하여 당황하는 일이 있다. 또 지금 정부의 관리도 모두 내국인이어서, 일본국 안의 지혜의 힘은 태반이 정부에 모인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 하여도 이 인물들이, (앞은 구절은 ‘또 지금 정부의 관리도 모두 내국인이어서, 일본국 안의 지혜의 힘은 태반이 정부에 모인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 하여도 이 인물들이,’는 이와나미 문고본(岩波文庫本)에 있는 ‘また, 今の政府の官員も皆國內の人物にて, 日本國中の智力は大半政府に集るというも可なり。然りといえどもこの人物,’라는 표현으로 이 인터넷 본에는 빠져있고, 뒤에 이어지는 구절에서도 又今の는 앞의 구절에서 중복된다. 역자) 정부에 모여서 일을 하는 것을 담당하는 데는, 그 조치가 반드시 지혜롭지는 않고, 이른바 많은 지혜로운 자가 결합하여 성질이 변한 것이어서, 저 강력한 힘을 가진 소다와 염산을 혼합하여 식염을 만드는 이치와 다르지 않다. 일반적으로 말하면 일본인은 동료들을 결속하여 일하는 수행하는 것을 맞아, 한 사람 한 사람이 타고난 지혜의 힘에 비하여 어울리지 않는 졸렬함을 모두 보여주는 것이다.
서양 여러 나라의 국민이 반드시 지혜로운 자도 아니고, 그런데 그 동료를 결속시켜 일을 수행하여 세간의 실적에 드러나는 바를 보면, 지혜로운 자의 행위와 비슷한 것이 많다. 국내의 업무가 모두 동료의 합의가 아닌 것이 없다. 정부도 동료의 합의로 의회라는 것이 있다. 상업도 동료의 조합으로 「컴퍼니(company)」라는 것이 있다. 학자에게도 동아리가 있고, 사원에도 동아리가 있다. 궁벽한 촌락에 이르기까지도 서민 각자가 동아리를 맺어 공적인 일과 사적인 일을 서로 이야기하는 풍습이 있다. 일단 동아리를 나누면 그 동아리마다 각각 고유의 논리가 없을 수 없다. 비유건대 몇 명의 친구들이거나, 또는 두세 채의 이웃으로 동아리를 맺으면, 곧 그 동아리에 고유한 주장이 있다. 합쳐서 하나의 촌락이 되면 한 촌락의 주장이 있고, 한 주(州)가 되고 하나의 군(郡)이 되면 역시 한 주(州)와 한 군(郡)의 주장이 있다. 이 주장과 저 주장이 서로 합쳐서 다소 내용을 바꾸어, 또 합치고 통합하여 마침내 한 나라의 중론(衆論)을 정하는 것이어서, 그 내용은 흡사 약간의 병사를 모아 소대가 되고, 합쳐서 중대가 되고, 또 통합하여 대대가 되는 것과 같다. 대대의 힘은 잘 적(敵)을 향하여 싸울 수 있어도, 그 병사 개인에 관해서 보면 반드시 용사인 것만은 아니다. 그러므로 대대의 힘은 병사 각자의 힘이 아니고, 그 대대를 결성하였기 때문에 특별히 생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한 나라의 중론(衆論)도 그것을 결정한 것 위에서 보면 매우 고상하면서도 힘이 있어도, 그러한 이유는, 고상하면서도 힘이 있는 인물이 부르짖는 것 때문만으로써 논의가 활발하였던 것이 아니고, 이 논의에 뇌화부동 하는 동료의 조합이 합당함을 얻어, 동아리 전체 내부에 관하여 스스로 논의의 용기를 일으켰던 것이다. 일반적으로 말하면, 서양 여러 나라에 통하는 중론(衆論)은 그 국민 각자의 지혜보다도 한층 더 고상해서, 그 사람들은 인물에 어울리지 않는 주장을 부르짖어 어울리지 않는 일을 수행하는 자라고 할 수 있다.
위와 같이 서양인은 지혜에 어울리지 않는 탁월한 개념을 부르짖어 어울리지 않는 재주를 부리는 자이다. 동양인은 지혜에 어울리지 않는 어리석은 주장을 내뱉어 어울리지 않은 졸렬함을 진력하는 자이다. 이제 그런 까닭의 원인을 찾는 데, 다만 습관이라는 두 글자에 있을 따름이다. 습관이 오래되면 제 2의 천성이 되어 알게 모르게 일을 이룰 수 있다. 서양 여러 나라의 중론(衆論)의 법도 수십 수백 년 옛날부터 대대로 습관에서 그 풍속을 이룬 것이라면,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의식하지 못하여 스스로 형식을 얻을 것이리라. 아시아 여러 나라에 관해서는 곧 그렇지 않아서, 인도의 「카스트(caste)」와 같이, 사람의 품격을 정하여 편중된 형세를 이루고, 사람의 이해(利害)를 구별하고 사람의 득실(得失)에 특권을 주어, 스스로 상호간에 박정할 뿐만 아니라, 포악한 정부의 풍습으로 특별히 결사를 금지하는 법을 세워 집회를 방해하고, 국민도 또한 오로지 무사태평을 원하는 심정에서 결사와 집회와의 구별을 변호하는 기력이 없고, 다만 정부에 의지하여 국사에 관여하지 않고, 백만의 사람은 백만의 심정을 안고 각각 한 가정 안에 칩거하여, 집밖은 흡사 외국과 같아서 전혀 마음을 쓰는 일이 없고, 우물 청소를 서로 이야기하는 것도 어려운데, 하물며 도로공사에 관해서야! 길에서 죽어가는 사람을 보면 도망치듯 지나가고, 개똥을 만나면 피하여 통과하고, 세상에서 소위 관계 맺기를 피하는 데 바쁘기 때문에, 어떻게 모여서 회의를 계획하는 여유가 있으리오. 습관이 오래되어 그 풍속을 만들고, 마침내 지금의 상태에 빠진 것이다. 이것을 비유하면 세상에 은행이라는 것이 없어서, 국민 모두 그 여윳돈을 집에 쌓아두고, 일반에 유통하는 것을 중지하여 국가에서 큰일을 계획할 수 없는 것과 같다. 국내의 가가호호를 찾으면 자본이 많지 않은 것이 아니고, 다만 가가호호에서 멈추어 전국적인 쓰임이 되지 못할 따름이다. 국민의 논의도 또한 이와 같다. 집집마다 묻고 사람마다 물으면 각자 소견이 없는 것이 아니라도, 그 소견이 백 천 만의 수로 나뉘어, 그것을 결합할 수단을 얻을 수 없어서 전국적인 쓰임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세상의 학자들의 주장에, 국민이 모여 논의하는 것은 바람직할 수 있는 일이지만 무지한 국민은 안타깝지만 전제 치하에 서지 않을 수 없고, 그리하여 의회를 시작하는 것은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고 하는 자들이 있다. 생각건대 그 때라는 것은 국민에게서 지혜를 낳는 시기라고 할 수 있어도, 사람의 지혜는 여름의 초목과 같아서 하룻밤 사이에 성장하는 것이 아니고, 가령 혹은 성장하는 일이 있어도 관습에 의하여 쓰임이 아니라면 성공하기 어렵다. 관습의 힘도 매우 강성한 것이어서, 그것을 배양하면 그 작동에 제한이 있을 수 없다. 마침내는 사유재산을 보호하려는 사람의 마음도 제압하기에 충분하다. 그 한 가지 사례를 밝히겠다. 우리나라에서 정부의 세입의 대략 5분의 1은 귀족의 세습녹봉으로 쓰이고, 그 재원이 나오는 곳은 농업과 상업 밖에 없다. 이제 이 녹봉을 폐지하면 농업과 상업의 공물은 5분의 1이 감액되어, 매년 내는 공물 5섬은 4섬이 될 수 있다. 서민은 어리석다하여도 4와 5를 구별하는 지혜의 힘이 없다고 할 수 없다. 농부의 신분이 되어 한편으로 생각하면 불합리한 일이 아니라, 다만 내가 생산한 쌀을 나누어 연고가 없는 사람을 부양하는 일이라면, 주든지 주지 말지의 두 가지 논의만 있을 따름이다. 또 무사의 신분이 되어 생각하면 세습녹봉은 조상이 물려준 가문의 재산이고, 선조에게 공로가 있어서 받은 것이므로 스스로 날품팔이 품삯과 다르고, 이제 우리에게 병역의 의무가 없기 때문이라 하여 어떻게 선조가 포상으로 받은 것을 중단하여 가문의 재산을 잃어버리는 이치가 있는가, 무사가 필요 없다 하여 그 가문에 속한 녹봉을 빼앗는 것이라면, 부유한 상인과 농사를 크게 짓는 농부가 무위도식하는 것도 그 재산을 빼앗지 않을 수 없고, 어떻게 오로지 우리의 재산을 깎아 연고가 없는 농부와 상인을 살찌우나 하고. 이렇게 주장을 펼치면 역시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라도, 무사들 안에서도 이 논의가 있는 것을 듣지 못했다. 농부도 무사도 현재 자기의 사유재산을 얻고 잃는 경계선이 있으며, 태연히 다른 나라의 이야기를 듣는 것과 같고, 자연스러운 재앙과 행복을 기다리는 것과 같고, 다만 말없이 앉아서 사태의 추이를 관망할 따름이다. 참으로 괴이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만약 서양 여러 나라에서 이런 종류의 사건이 일어나게 한다면, 그 여론은 어떨 것인가? 여러 사람의 말이 끓어오르는 것과 같이 한꺼번에 입씨름을 벌여 대소동이었을 것이다. 나는 본디 세습녹봉을 주고 빼앗는 득실을 여기서 논하는 것이 아니어도, 다만 일본인이 논의하지 않는 관습에 압도당하고, 만족할 수 없는 원만함에 만족하여, 열 수 있는 입을 열지 않고, 피울 수 있는 논의를 피우지 않는 것에 놀랄 따름이다. 이익을 다투는 것은 옛 사람들이 금지하는 말이지만, 이익을 다투는 것은 곧 이치를 다투는 것이다. 이제 우리 일본은 외국인과 이익을 다투고 이치를 다투는 시기이다. 나라 안에 거주하면서 욕심이 없는 사람은 나라 밖에 대해서도 역시 욕심이 없지 않을 수 없고. 나라 안에서 우둔한 자는 밖에서 활발할 수 없다. 무사와 백성이 우둔하고 욕심이 없는 것은 정부가 전제정치를 펴는 데는 편리할지라도, 이 무사와 백성에게 의지한 외국과의 외교는 불안하다. 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지방의 이해(利害)을 논의하는 기상이 없고,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독자적으로 개인의 영욕(榮辱)을 중시하는 용기가 없으면, 어떤 일을 이야기하더라도 무익할 따름이다. 생각건대 기상이 없고 또 용기가 없는 것은, 자연적인 결함이 아니고, 관습에 의하여 잃어버린 것이므로, 그것을 회복하는 법도 역시 관습에 의하지 않으면 이루어질 수 없다. 관습을 바꾸는 것도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第五章 前論の続
一国文明の有様は其国民一般の智徳を見て知る可し。前章に云ふ所の衆論とは即ち国内衆人の議論にて、其時代に在て普く人民の間に分賦せる智徳の有様を顕はしたるものなれば、此衆論を以て人心の在る所を窺ふ可しと雖ども、今又この衆論のことに就て二箇条の弁論あり。即ち其第一条の趣意は、衆論は必ずしも人の数に由らず、智力の分量に由て強弱ありとのことなり。第二条の趣意は、人々に智力ありと雖ども習慣に由て之を結合せざれば衆論の体裁を成さずとのことなり。其次第左の如し。
第一 一人の論は二人の論に勝たず。三人の同説は二人を制す可し。其人数愈多ければ其議論の力も亦愈強し。所謂寡は衆に敵せざるものなり。然りと雖ども此議論の衆寡強弱は、唯才智同等なる人物の間に行はるゝのみ。天下の人を一体に為して之を見れば、其議論の力は人の数の多寡に由らずして智徳の量の多寡に由て強弱あるものなり。人の智徳は猶其筋骨の力の如く、一人にて三人を兼る者あり、或は十人を兼る者あり。故に今衆人を集めて一体と為し、其一体の強弱を計るには唯人数の多少を見てこれを知る可らず。一体の間に分賦せる力の量を測らざる可らず。譬へば百人の人数にて千貫目の物を挙れば、一人の力、各十貫目なれども、人々の力量は必ず同等なる可らず。試に此百人を等分して五十人づゝの二組と為し、この二組の五十人をして各物を挙げしめなば、一組の五十人は七十貫目を挙げ、一組の五十人は三十貫目を挙ることあらん。尚これを四分し又これを八分して之を試みなば、必ず次第に不平均を生じ、其最強の者と最弱の者とを比して、一人よく十人の力を兼る者あるを見ん。依て又其百人の内より屈強なる者二十人を撰て一組と為し、他の八十人を一組と為して之を試みなば、二十人の組は六十貫目を挙げ、八十人の組は僅に四十貫目を挙ぐ可し。今この有様に就て計算するに、人の数を以て見れば二と八との割合なれども、力の量を以て見れば六と四との割合なり。故に力量は人の数に由て定む可らず、其挙る所の物の軽重と其人数との割合を見て之を知る可きなり。
智徳の力は権衡度量を以て計る可らずと雖ども、其趣正しく筋骨の力に異なるの理なし。其強弱の相違に至ては筋力の差よりも尚甚しく、或は一人にて百人を兼ね千人を兼るものもあらん。若し人の智徳をして酒精の如きものならしめなば、必ず目を驚かす奇観ある可し。此種類の人物は十人を蒸溜して、智徳の量、一斗を得たるに、彼の種類の人物は百人を蒸溜して僅に三合を得ることもあらん。一国の議論は人の体質より出るに非ずして其精気より発するものなれば、彼の衆論と唱るものも必ずしも論者の多きのみに由て力あるに非ず、其論者の仲間に分賦せる智徳の分量多きがため、其量を以て人数の不足を補ひ、遂に衆論の名を得たるものなり。欧羅巴の諸国にても人民の智徳を平均すれば、国中文字を知らざる愚民は半に過ぐ可し。其国論と唱へ衆説と称するものは、皆中人以上智者の論説にて、他の愚民は唯其説に雷同し其範囲中に籠絡せられて敢て一己の愚を逞ふすること能はざるのみ。又其中人以上の内にも智愚の差は段々限あることなく、此は彼に勝ち彼は此を排し、始て相接して立所に敗するものあり、久しく互に屹立して勝敗決せざるものあり。千磨百錬、僅に一時の異説を圧し得たるものを、国論衆説と名るのみ。是即ち新聞紙演説会の盛にして衆口の喧しき所以なり。畢竟人民は国の智徳の為に鞭撻せられて、智徳方向を改れば人民も亦方向を改め、智徳党を分てば人民も亦党を分ち、進退集散皆智徳に従はざるはなし。 《世間に書画等を悦ぶ者は中人以上字を知て風韻ある人物なり。其これを悦ぶ所以は、古器の歴代を想像し書画運筆の巧拙を比較して之を楽むものなれども、今日に至ては古器書画を貴ぶの風俗洽く世間に行はれて、一丁字を知らざる愚民にても少しく銭ある者は必ず書画を求めて床の間に掛物を掛け、珍器古物を貯へて得意の色を為せる者多し。笑ふ可く亦怪む可しと雖ども、畢竟この愚民も中人以上の風韻に雷同して、識らず知らず此事を為すなり。其外流行の衣裳染物の模様等も皆他人の創意に雷同して之を悦ぶものなり。》近く我日本の事を以て其一証を示さん。前年政府を一新して次で廃藩置県の挙あり。華士族はこれがために権力も利禄も共に失たれども、敢て不平を唱ること能はざるは何ぞや。人或は云く、王政一新は王室の威光に由り、廃藩置県は執政の英断に由て成りしものなりと。是れ時勢を知らざる者の臆断なり。王室若し実の威光あらば其復古何ぞ必ずしも慶応の末年を待たん。早く徳川氏を倒して可なり。或は足利の末に政権を取返すも可なり。復古の機会は必ずしも慶応の末年に限らず。然るに此時に至て始て其業を成し、遂に廃藩の大事をも行ふたるは何ぞや。王室の威光に由るに非ず、執政の英断に由るに非ず、別に其源因なかる可らず。
我国の人民積年専制の暴政に窘められ、門閥を以て権力の源と為し、才智ある者と雖ども門閥に藉(よつ)て其才を用るに非ざれば事を為す可らず。一時は其勢に圧倒せられて全国に智力の働く所を見ず、事々物々皆停滞不流の有様に在るが如くなりしと雖ども、人智発生の力は留めんとして留む可らず、この停滞不流の間にも尚よく歩を進めて、徳川氏の末に至ては世人漸く門閥を厭ふの心を生ぜり。其人物は、或は儒医に隠れ或は著述家に隠れ、或は藩士の内にもあり或は僧侶神官の内にもあり、何れも皆字を知て志を得ざる者なり。其徴候は、天明文化の頃より世に出る著書詩集又は稗史(はいし)小説の中に、往々事に寄せて不平を訴るものあるを見て知る可し。固より其文の上に門閥専制の政を不正なりとて明に議論を立るには非ず、譬へば国学者流は王室の衰微を悲み、漢学者流は貴族執政の奢侈を諷し、又一種の戯作者は慢語放言以て世間を愚弄する等、其文章にも事柄にも取留たる条理なしと雖ども、其の時代に行はるゝ有様を悦ばざるの意は自から言外に顕はるゝものにて、実は本人も訴る所を知らずして不平を訴るなり。其状恰も旧痾(きうあ)身を悩まして自から明に容体を述ること能はずと雖ども、唯其苦痛を訴る者の如し。《都て徳川氏の初、其政権の盛なる時には、世の著述家も其威に圧倒せられて毫も時勢を咎めず、却て幕政に佞するものあり。新井白石の著書、中井竹山の逸史等を見て知る可し。其後文政の頃に至て著したる頼山陽の日本外史には、専ら王政の衰廃を憤り、書中の語気恰も徳川氏に向て其罪を責るが如し。今其然る所以を尋るに、白石竹山は必ずしも幕府の奴隷なるに非ず、山陽は必ずしも天子の忠臣なるに非ず、皆時勢の然らしむる所なり。白石竹山は一時の勢に制せられて筆を逞ふするを得ず、山陽は稍や其束縛を脱して当時に行はるゝ専制の政を怒り、日本外史に藉て其怒気を洩したるのみ。其他和学小説狂詩狂文等の盛なるは特に天明文化の後を最とす。本居、平田、馬琴、蜀山人、平賀源内等の輩、皆有志の士君子なれども、其才力を伸るに地位なくして徒に文事に身を委ね、其事に託して或は尊王の説を唱へ、或は忠臣義士の有様を記し、或は狂言を放て一世を嘲り、強ひて自から不平を慰めたるものなり。》 然り而して此国学者流も必ずしも王室の忠僕に非ず、漢学者流も亦必ずしも真実憂世の士君子に非ず。其証拠には、世の隠君子なる者、平居不平を鳴すと雖ども、一旦官途に抜擢せらるれば忽ち其説を変じて不平の沙汰を聞かず、今日の尊王家も五斗米の饒なるに遇へば明日の佐幕家と為り、昨日の町儒者も登用の命を拝すれば今日は得色を顕はす者多し。古今の実験に由て之を見る可し。然ば則ち此和漢の学者流が、徳川の末世に至て尊王憂世の意を筆端に顕はして暗に議論の端を開たるも、多くは其人の本音に非ず、一時尊王と憂世とを名にして以て自己の不平を洩したることならん。されども今其心術の誠なると否と、又其議論の私なると公なるとは姑く擱き、素と此不平の生ずる由縁を尋れば、世の専制門閥に妨げられて己が才力を伸ばすこと能はざるよりして心に憤を醸したるものなれば、人情、専制の下に居るを好まざるの確証は、筆端に顕はるゝ所の語気を見て明々白々たり。唯暴政の盛なる時代には此人情を発露するを得ざるのみ。其これを発露すると否とは、暴政の力と人民の智力と、其強弱如何に在るなり。政府の暴力と人民の智力とは正しく相反対するものにて、此に勢を得れば彼に権を失し、彼に時を得れば此に不平を生じ、其釣合恰も天秤の平均するが如し。徳川氏の政権は終始一の如く盛にして天秤は常に偏重なりしが、末年に及て人智僅に歩を進め、始て其一端に些少の分銅を置くを得たり。かの天明文化の頃より世に行はれたる著書の類は即ちこの分銅と云ふ可きものなり。然りと雖ども此分銅なるもの極て軽量にして固より平均を為すに足らず、況や其平均を破るに於てをや。若し其後に開港の事なからしめなば、何れの時に此平均を倒にして智力の方に権勢を得べきや、識者のよく知る所に非ず。幸にして嘉永年中「ペルリ」渡来の事あり。之を改革の好機会とす。
「ペルリ」渡来の後、徳川の政府にて諸外国と条約を結ぶに及び、世人始て政府の処置を見て其愚にして弱きを知り、又一方には外国人に接して其言を聞き、或は洋書を読み或は訳書を見て益規模を大にし、鬼神の如き政府と雖ども人力を以てこれを倒す可きを悟るに至れり。其事情を形容して云へば、頓に聾盲の耳目を開て始て声色の聞見す可きを知たるが如し。而して始て事の端を開たる者は攘夷論なり。抑も此議論の発する源を尋るに、決して人の私情に非ず、自他の別を明にして自から此国を守らんとするの赤心に出ざるはなし。開闢以来始て外国人に接し、暗黒沈静の深夜より喧嘩囂躁(がうさう)の白昼に出たる者なれば、其見る所の事物悉く皆奇怪にして意に適するものなし。其意は即ち私の意に非ず、日本国と外国との分界をば僅に脳中に想像して、一身以て本国を担当するの意なれば、之を公と云はざるを得ず。固より暗明頓に変じたる際に当り、精神眩惑して其議論に条理の密なる者ある可らず、其挙動も亦暴にして愚ならざるを得ず。概して云へば報国心の粗且未熟なる者なれども、其目的は国の為なるが故に公なり、其議論は外夷を攘ふの一箇条なるが故に単なり。公の心を以て単一の論を唱れば、其勢必ず強盛ならざるを得ず。是即ち攘夷論の初に権を得たる由縁なり。世間の人も一時に之に籠絡せられ、未だ外国交際の利を見ずして先づ之を悪むの心を成し、天下の悪尽(ことごと)く外国の交際に帰して、苟も国内に禍災の生ずるあれば、此も外人の所為と云ひ彼も外人の計略と称し、全国を挙て外国の交際を悦ぶ者なきに至れり。仮令ひ私に之を悦ぶ者あるも世上一般の風に雷同せざるを得ず。然るに幕府は独り此交際の衝に当て外人に接するに稍や条理に拠らざるを得ず。幕府の有司必ずしも外交を好むに非ず、唯外国人の威力と理窟とに答ること能はずして道理を唱る者多しと雖ども、攘夷家の眼を以て視れば此道理は因循姑息のみ。幕府は恰も攘夷論と外国人との中間に介まりて進退惟谷(これきはまる)の有様に陥り、遂に其平均を得ずして益(ますます)弱を示し、攘夷家は益勢を得て憚る所なく、攘夷復古尊王討幕と唱へ、専ら幕府を殪して外夷を払ふの一事に力を尽せり。其際には人を暗殺し家を焼く等、士君子の悦ばざる挙動も少なからずと雖ども、結局幕府を殪すの目的に至ては衆論一に帰し、全国の智力悉く此目的に向て慶応の末年に革命の業を成したるなり。此成行に従へば、革命復古の後には直に攘夷の挙に及ぶ可き筈なれども却て其事なく、又仇とする所の幕府を殪さば則ち止む可き筈なるに、併せて大名士族をも擯斥(ひんせき)したるは何ぞや。蓋し偶然に非ざるなり。攘夷論は唯革命の嚆矢にて、所謂事の近因なる者のみ。一般の智力は初より赴く所を異にし、其目的は復古にも非ず、又攘夷にも非ず、復古攘夷の説を先鋒に用ひて旧来の門閥専制を征伐したるなり。故に此事を起したる者は王室に非ず、其仇とする所の者は幕府に非ず、智力と専制との戦争にして、此戦を企たる源因は国内一般の智力なり。之を事の遠因とす。此遠因なる者は開港以来西洋文明の説を引て援兵と為し、其勢次第に強盛に赴くと雖ども、智戦の兵端を開くには先鋒なかる可らず、是に於てか近因と合して其戦場に向ひ、革命の一挙を終て凱旋したるなり。先鋒の説も一時は勇気を発したれども、凱旋の後に至ては漸く其結構の粗にして久を持すること能はざるを知り、次第に腕力を棄てゝ智力の党に入り、以て今日の勢を成せり。向後この智力に益権を得て、彼の報国心の粗なる者をして密ならしめ、未熟なる者をして熟せしめ、以て我国体を保護することあらば無量の幸福と云ふ可し。故に云く、王政復古は王室の威力に拠るに非ず、王室は恰も国内の智力に名を貸したる者なり。廃藩置県は執政の英断に非ず、執政は恰も国内の智力に役せられて其働を実に施したる者なり。古今の歴史を見てこれを知る可し。
右の如く全国の智力に由て衆論を成し、其衆論の帰する所にて政府を改め、遂に封建の制度をも廃したることなれども、此衆論に関る人を計れば其数甚だ少し。日本国中の人口を三千万とし、農工商の数は二千五百万よりも多く、士族は僅に二百万に足らず、其他儒医神官僧侶浪人の類を集めて仮に之を士族と視做し、大数五百万人を華士族の党と定め、二千五百万人を平民の党と為し、古より平民は国事に関ることなき風なれば、此度の事に就ても固より之を知らず、故にこの衆論の出る所は必ず士族の党五百万人の内なり。又この五百万人の内にも改革を好む者は甚だ少し。第一これを好まざるの甚しきものは華族なり、次で大臣家老なり、次で大禄の侍なり。此輩は皆改革に由て所損ある者なれば決してこれを好むの理なし。身に才徳なくして家に巨万の財を貯へ、官に在ては高官を占め、民間に在ては富有の名望を得たる人物が、国のために義を唱て財を失ひ身を殺したる者は古来の例に甚だ稀なれば、此度の改革に就ても斯る人物は士族の内にも平民の内にも極て少き筈なり。唯此改革を好む者は、藩中にて門閥なき者か、又は門閥あるも常に志を得ずして不平を抱く者歟、又は無位無禄にして民間に雑居する貧書生歟、何れも皆事にさへ遇へば所得有て所損なき身分の者より外ならず。概して之を云へば改革の乱を好む者は智力ありて銭なき人なり。されば此度の改革を企たる者は士族の党五百万の内僅に十分の一にも足らず、婦人小児を除き何程の人数もなかる可し。何処より発したるとも知れず、不図新奇なる説を唱へ出して、何時となく世間に流布し、其説に応ずる者は必ず智力逞しき人物にて、周囲の人は之がために説かれ之がために却(おびやか)され、何心なく雷同する者もあり、止むを得ずして従ふ者もありて、次第に人数も増し、遂に此説を認めて国の衆論と為し、天下の勢を圧倒して鬼神の如き政府をも覆したることなり。其後廃藩置県の一挙も華士族一般のためには極て不便利にして、之を好まざる者は十に七、八、この説を主張する者は僅に二、三なれども、其七、八の人数は所謂古風家にて、此党の間に分賦せる智力は甚だ乏しく、二、三の改革者流に有する智力の分量に及ばざること遠し。古風家と改革家と其人数を比較すれば七、八と二、三との割合なれども、智力の量は此割合を倒にしたるが如し。改革家は唯此智力の量を以て人数の不足を補ひ、七、八の衆人をして其欲する所を逞ふせしめざりしのみ。目今の有様にては真に古風家と称す可き者も甚だ少なく、旧士族の内に其禄位の保つ可き議論を立る者もあらず、和漢の古学者流も半は既に其説を変じ、或は牽強附会なる論を作て私に自家の本説を装ひ、体面を全ふして改革家の党に混同せんと欲する者もあり。之を譬へば和睦を名にして降参を謀る者の如し。固より其名は和睦にても降参にても、混同の久しきに至れば遂には実の方向を同ふして、共に文明の路に進む可きが故に、改革家の党は次第に増す可しと雖ども、其初め事を企てゝこれを成したるは人数の多きがために非ず、唯智力に由て衆人を圧したるなり。今日にても古風家の党に智力ある人物を生じて、次第に党与を得て盛に古風を唱ることあらば、必ず其党に勢を増して改革家も路を避くることなる可しと雖ども、幸にして古風家には智力ある者少なく、或は遇ま人物を生ずれば忽ち党に叛て自家の用をば為さゞるなり。
事の成敗は人の数に由らずして智力の量に由るとのことは前段の確証を以て明に知る可し。故に人間交際の事物は悉皆この智力の在る所を目的として処置せざる可らず。十愚者の意に適せんとして一智者の譏を招く可らず、百愚人の誉言を買はんがために十智者をして不平を抱かしむ可らず。愚者に譏らるゝも恥るに足らず、愚者に誉めらるゝも悦ぶに足らず、愚者の譏誉は以て事を処するの縄墨(じようぼく 基準)と為す可らず。譬へば周礼(しゆらい)に記したる郷飲の意に基き、後世の政府時として酒肴を人民に与ふるの例あれども、其人民の喜悦する有様を見て地方の人心を卜す可らず。苟も文明に赴きたる人間世界に居り、人の恵与の物を飲食して之を悦ぶ者は、飢者に非ざれば愚民なり。此愚民の悦ぶを見て之を悦ぶ者は、其愚民に等しき愚者のみ。又古史に、国君微行して民間を廻り、童謡を聞て之に感ずるの談あり。何ぞ夫れ迀遠なるや。こは往古の事にて証するに足らざれども、今日に在て正しく之に類する者あり。即ち其者とは独裁の政府に用るところの間諜、是なり。政府暴政を行ふて民間に不服の者あらんことを恐れ、小人を遣て世間の事情を探索せしめ、其言を聞て政を処置せんと欲するものあり。此小人を名けて間諜と云ふ。抑もこの間諜なる者は誰に接して何事を聞く可きや。堂々たる士君子は人にものを隠すことなし。或は陰に乱を企る者あらば、其人物は必ず間諜よりも智力逞き者なれば、誰か此小人をして密事を探り得せしめん。故に間諜なる者は唯銭のために役せられて世間に徘徊し、愚民に接して愚説を聞き、自己の臆断を交へて之を主人に報ずるのみ。事実に於て毫も益することなく、主人のためには銭を失ふて徒に智者の嘲を買ふ者と云ふ可し。仏蘭西の第三世「ナポレオン」多年間諜を用ひたれども、孛魯士と戦争のときには国民の情実を探り得ざりしにや、一敗の下に生捕られたるに非ずや。之を鑑みざる可らず。政府若し世間の実情を知らんと欲せば、出版を自由にして智者の議論を聞くに若かず。著書新聞紙に制限を立てゝ智者の言路を塞ぎ、間諜を用ひて世情の動静を探索するは、其状恰も活物を密封して空気の流通を絶ち、傍より其死生を候(うかゞ)ふが如し。何ぞ夫れ鄙劣なるや。其死を欲せば、打て殺す可し、焼て殺す可し。人民の智力を以て国に害ありとせば、天下に読書を禁ずるも可なり、天下の書生を坑(あなうめ)にするも可なり。秦皇の先例則とる可きなり。「ナポレオン」の英明も尚この鄙劣を免かれず、政治家の心術賎むに堪たり。
第二 人の議論は集て趣を変ずることあり。性質臆病なる者にても三人相集れば暗夜に山路を通行して恐るゝことなし。蓋し其勇気は人々に就て求む可らず、三人の間に生ずる勇気なり。又或は十万の勇士風声鶴唳を聞て走ることあり。蓋し其臆病は人々に就て求む可らず、十万人の間に生ずる臆病なり。人の智力議論は猶化学の定則に従ふ物品の如し。曹達(ソーダ)と塩酸とを各別に離せば何れも激烈なる物にて、或は金類をも鎔解するの力あれども、之を合すれば尋常の食塩と為て厨下の日用に供す可し。石灰と硇砂(だうしや)とは何れも激烈品に非ざれども、之を合して硇砂精と為せば其気以て人を卒倒せしむ可し。近来我日本に行はるゝ諸方の会社なるものを見るに、其会社愈大なれば其不始末愈甚しきが如し。百人の会社は十人の会社に若かず、十人の会社は三人の組合に若かず、三人の組合よりも一人にて元手を出し一人の独断にて商売すれば利を得ること最も多し。抑も方今にて結社の商売を企る者は大抵皆世間の才子にて、かの古風なる頑物が祖先の遺法を守て爪に火を灯す者に比すれば、其智力の相違固より同日の論に非ず。然るに此才子相会して事を謀るに至れば、忽ち其性を変じて捧腹に堪へざる失策を行ひ世間に笑はるゝのみならず、其会社中の才子も自から其然る所以を知らずして憮然たるものあり。又今の政府に会して事を為すに当ては、其処置必ずしも智ならず、所謂衆智者結合の変性なるものにて、彼の有力なる曹達と塩酸と合して食塩を生ずるの理に異ならず。概して云へば日本の人は仲間を結て事を行ふに当り、其人々持前の智力に比して不似合なる拙を尽す者なり。
西洋諸国の人民必ずしも智者のみに非ず、然るに其仲間を結て事を行ひ世間の実跡に顕はるゝ所を見れば、智者の所為(しよい)に似たるもの多し。国内の事務悉皆仲間の申合せに非ざるはなし。政府も仲間の申合せにて議事院なるものあり。商売も仲間の組合にて「コンペニ」なるものあり。学者にも仲間あり、寺にも仲間あり。僻遠の村落に至るまでも小民各仲間を結て公私の事務を相談するの風なり。既に仲間を分てば其仲間毎に各固有の議論なきを得ず。譬へば数名の朋友歟、又は二、三軒の近隣にて仲間を結べば、乃ち其仲間に固有の説あり。合して一村と為れば一村の説あり、一州と為り一郡と為れば亦一州一郡の説あり。此の説と彼の説と相合して少しく趣を変じ、又合し又併せて遂に一国の衆論を定むることにて、其趣は恰も若干の兵士を集めて小隊と為し、合して中隊と為し、又併せて大隊と為すが如し。大隊の力はよく敵に向て戦ふ可しと雖ども、其兵士の一己に就て見れば必ずしも勇士のみに非ず。故に大隊の力は兵士各個の力に非ず、其隊を結たるがために別に生じたるものと云ふ可し。今一国の衆論も其定りたる上にて之を見れば頗る高尚にして有力なれども、其然る由縁は、高尚にして有力なる人物の唱へたるが故のみを以て議論の盛なるに非ず、此議論に雷同する仲間の組合宜しきを得て、仲間一般の内に於て自から議論の勇気を生じたるものなり。概して云へば、西洋諸国に行はるゝ衆論は其国人各個の才智よりも更に高尚にして、其人は人物に不似合なる説を唱へ不似合なる事を行ふ者と云ふ可し。
右の如く西洋の人は智恵に不似合なる銘説を唱て不似合なる巧を行ふ者なり。東洋の人は智恵に不似合なる愚説を吐て不似合なる拙を尽す者なり。今其然る所以の源因を尋るに、唯習慣の二字に在るのみ。習慣久しきに至れば第二の天然と為り、識らず知らずして事を成す可し。西洋諸国衆議の法も数十百年の古より世々の習慣にて其俗を成したるものなれば、今日に至ては知らずして自から体裁を得ることならん。亜細亜諸国に於ては則ち然らず、印度の「カステイ」の如く、人の格式を定めて偏重の勢を成し、其利害を別にし其得失を殊にし、自から互に薄情なるのみならず、暴政府の風にて故さらに徒党を禁ずるの法を設て人の集議を妨げ、人民も又只管無事を欲するの心よりして徒党と集議との区別を弁論する気力もなく、唯政府に依頼して国事に関らず、百万の人は百万の心を抱て各一家の内に閉居し、戸外は恰も外国の如くして嘗て心に関することなく、井戸浚(さらひ)の相談も出来難し、況や道普請に於てをや。行斃(ゆきだふれ)を見れば走て過ぎ、犬の糞に逢へば避けて通り、俗に所謂掛り合を遁るゝに忙はしければ、何ぞ集議を企るに遑あらん。習慣の久しき其風俗を成し、遂に今の有様に陥りたるなり。之を譬へば世に銀行なる者なくして、人民皆其余財を家に貯へ、一般の融通を止めて国に大業の企つ可らざるが如し。国内の毎戸を尋れば財本の高なきに非ず、唯毎戸に溜滞して全国の用を為さゞるのみ。人民の議論も又斯の如し。毎戸に問ひ毎人に叩けば各所見なきに非ざれども、其所見百千万の数に分れ、之を結合するの手段を得ずして全国の用を為さゞるものなり。
世の学者の説に、人民の集議は好む可きことなれども無智の人民は気の毒ながら専制の下に立たざるを得ず、故に議事を始るには時を待つ可しと云ふものあり。蓋し其時とは人民に智を生ずるの時なる可しと雖ども、人の智恵は夏の草木の如く一夜の間に成長するものに非ず、仮令ひ或は成長することあるも習慣に由て用るに非ざれば功を成し難し。習慣の力は頗る強盛なるものにて、之を養へば其働に際限ある可らず。遂には私有保護の人心をも圧制するに足れり。其一例を示さん。今我国にて政府の歳入凡そ五分の一は華士族の家禄に費し、其銭穀の出る処は農商より外ならず。今この禄を廃すれば農商の所出は五分の一を減じて、五俵の年貢は四俵と為る可し。小民愚なりと雖ども四と五を区別するの智力なしと云ふ可らず。百姓の身と為りて一方より考れば入組たる事に非ず、唯己が作り出したる米を分て無縁の人を養ふことなれば、与ふると与へざるとの二議あるのみ。又士族の身と為りて考れば家禄は祖先伝来の家産なり、先祖に手柄ありて貰ひしものなれば自から日傭賃に異なり、今我輩に兵役あらざればとて何ぞ先祖の賞典を止めて家産を失ふの理あらんや、士族を無用なりとして其家に属したる禄を奪ふことならば、富商豪農の無為にして食ふ者も其産を奪はざる可らず、何ぞ独り我輩の産を削て無縁の百姓町人を肥さんやと。斯く説を述れば亦一理なきに非ざれども、士族の内にも此議論あるを聞かず。百姓も士族も現に己が私有を得ると失ふとの界に居て、恬として他国の話を聞くが如く、天然の禍福を待つが如く、唯黙坐して事の成行を観るのみ。実に怪しむ可きに非ずや。仮に西洋諸国に於て此類の事件あらしめなば、其世論如何なる可きや。衆口沸くが如く一時の舌戦を開て大騒動なる可し。余輩固より家禄与奪の得失を爰に論ずるには非ざれども、唯日本人が無議の習慣に制せられて、安んず可らざるの穏便に安んじ、開く可きの口を開かず、発す可きの議論を発せざるを驚くのみ。利を争ふは古人の禁句なれども、利を争ふは即ち理を争ふことなり。今我日本は外国人と利を争ふて理を闘(たたかは)するの時なり。内に居て澹泊(淡泊)なる者は外に対しても亦澹泊ならざるを得ず、内に愚鈍なる者は外に活潑なるを得ず。士民の愚鈍澹泊は政府の専制には便利なれども、此士民を頼て外国の交際は甚だ覚束なし。一国の人民として地方の利害を論ずるの気象なく、一人の人として独一個の栄辱を重んずるの勇力あらざれば、何事を談ずるも無益なるのみ。蓋し其気象なく又其勇力なきは、天然の欠点に非ず、習慣に由て失ふたるものなれば、之を恢復するの法も亦習慣に由らざれば叶ふ可らず。習慣を変ずること大切なりと云ふ可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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