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장 문명의 정의(定義)를 논함
앞장에서 이어지는 데 따라, 이제 여기서는 서양문명의 유래를 논해야 하는 장소이지만, 서양문명을 논하기 전에 우선 문명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문명을 정의(定義)하는 일도 대단히 어렵다. 다만 문명을 정의(定義)하는 일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극단적으로는 여론이 문명을 옳다고 하고 또는 문명을 옳지 않다고 논쟁하는 일도 있다. 아마도 논쟁이 일어나는 이유를 찾는 것에서, 원래 문명의 글자 의미는 확대해석하는 것이 가능하고, 또 이것을 좁게 해석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 좁은 글자 의미에 따른 것은, 사람의 힘을 써서 오직 사람의 소비를 늘려, 의식주의 헛된 꾸밈을 많게 하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또 그 넓은 글자 의미에 따르면, 의식주의 안락뿐만 아니라, 지식을 연구하고 덕을 닦아서 인간이 고상한 지위까지 오르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학자가 혹시 이 글자의 뜻의 넓고 좁은 것에 착안하면, 또 말 많은 논쟁을 절약할 수 있다.
먼저 문명은 상대적이라는 말에서, 그 미치는 바에 한계가 없다. 다만 야만의 형편을 벗어나 차츰 진보하는 것을 말한다. 원래 인류는 서로 교류하는 것을 그 본성으로 한다. 혼자 다니면서 고립될 때는 그 재주와 지혜가 발생할 까닭이 없다. 가족이 서로 모이는 것도 아직 인간의 교류를 다하는 데 부족하다. 세간에서 서로 교류하고 국민이 서로 접촉하여, 그 교류는 더욱 넓어지고 그 법칙은 더욱 정돈되는 데 따라, 사람의 정(情)은 더욱 조화를 이루고 지식은 더욱 열릴 수 있다. 문명이라는 것은 영어에서 「civilization」이라고 한다. 곧 라틴어「civitas」에서 온 것인데 국가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문명이라는 것은 인간의 교류를 점차 바꾸어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모양을 기술하는 언어인데, 야만적이고 무법적인 독립에 반대하여 한 나라의 체제를 이루는 것을 의미한다.
문명이란 것이 지극히 크고 지극히 중대하여, 인간의 모든 일이 문명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것이 없다. 제도도 말하고 문학도 말하고, 상업도 말하고 공업도 말하고, 전쟁도 말하고 법령도 말하는 것도, 이것을 대체적으로 상호간에 서로 비교하는 것은 무엇을 목적으로 하여 그 이해득실을 논하는가? 다만 문명이 잘 진보하는 것으로써 이익도 되고 득도 되고, 이것을 퇴보시키는 것으로써 해(害)도 되고 실(失)도 될 따름이다. 문명은 흡사 큰 극장과 같아서, 제도와 문학과 상업 이하의 것은 배우와 같다. 이 배우인 사람은 각자 특기인 기예를 펼쳐 한 단계의 연기를 하여, 연극의 취지에 잘 맞게 진심을 표현하여, 관객으로 하여금 기쁘게 하는 자를 칭하여 배우의 솜씨가 좋은 자라 한다. 나아가고 물러가는 횟수를 그르치고, 언어의 마디를 잃고, 그 웃음이 진실하지 않고, 그 울음이 무정하여, 연극의 짜임새를 위하여 내용을 놓치는 자를 지칭하여 배우의 솜씨가 서툰 자라고 하는 것이다. 혹은 또 그 우는 것도 웃는 것은 사실에 근접하여 묘하다할지라도, 장소와 시기를 그르쳐, 울어야 하는 것에 웃고, 웃어야 하는 것에 우는 자도 역시, 재주가 형편없는 자라고 말할 수 있다. 문명은 흡사 바다와 같고, 제도와 문학 이하의 것은 강과 같다. 강의 바다에 물을 대는 것이 많은 것을 큰 강이라 지칭하고, 그것에 물을 대는 것이 적은 것을 작은 강이라고 말한다. 문명은 흡사 창고와 같다. 인간의 의복과 식량, 세상살이에 필요한 자본, 생생한 기력, 모두 이 창고 안에 없는 것이 없다. 인간에게 필요한 사물을 혹시 싫어할 수 있어도, 적어도 이 문명을 돕는 공로가 있으면 싫어함을 버리고 묻지 않는다. 비유컨대 내란과 전쟁과 같은 것이다! 더욱 심한 것은 독재나 폭정 같은 것도, 세상의 문명을 진척시키는 데 도움을 주어서 그 효능이 현저하여 특히 드러나는 때에 이르면, 인간의 절반은 과거의 추악함을 잊고 이것을 비난하는 일이 없다. 그 형편이 흡사 돈을 내서 물건을 사고, 그 값이 지나쳐도, 그 물건을 사용하여 편리함을 얻은 일이 큰 때에 이르면, 인간의 절반은 과거의 손실을 잊는 것과 같다. 즉 이것이 인지상정이다.
임시적으로 몇 가지 문단으로 문제를 설정하여 문명이 있는 곳을 상세히 한다.
첫째, 이곳에 한 무리의 국민이 있다. 그 외형은 평온하고 쾌활하고, 세금은 낮고 노역을 적고, 재판의 법은 올바르고, 악을 징벌하는 길이 실행된다. 일반적으로 이것을 말하여, 인간의 의식주의 형편에 관하여 그 조처가 적당하여 도무지 호소할 만한 일이 없다. 그렇다하더라도, 다만 의식주의 안락함만으로, 그 지혜와 덕행이 발생하는 힘을 특히 더욱 막고 자유롭지 못하게 하여, 국민을 보는 일을 소나 양과 같이 하여, 다스리고 길러서, 단지 배고픔과 추위에 주의할 따름이다. 그 사정은, 단지 위에서부터 억압하는 부류에 다르지 않고, 주위 사방으로부터 압박하는 일과 같아, 옛날 마쓰마에(松前)로부터 아이누 인을 취급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것을 문명과 개화라고 말할 수 있는가? 이 국민 사이에 지혜와 덕행이 진보하는 것을 보는가?
둘째, 여기에 또 한 무리의 국민이 있다. 그 외형의 안락함은 앞의 국민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역시 참을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그 안락함이 적은 것을 대신하여 지혜와 덕행의 길이 완전히 막힌 것은 아니다. 백성은 혹시 고상한 주장을 외치는 자가 있고, 종교와 도덕의 논의도 진보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하더라고 자유의 큰 뜻은 추호도 행하여지지 않고, 사사건건 모두 자유를 방해하는 데 신경을 쓸 따름이다. 국민은 혹시 지혜와 덕행을 얻은 자가 있다하여도, 이것을 얻은 것은 흡사 빈민이 구조용 옷과 음식을 얻은 것과 같고, 스스로 이것을 얻은 것이 아니고, 타인에게 의뢰하여 이것을 얻었을 뿐이다. 백성은 혹시 진리를 구하는 자가 있어도, 진리를 구하는 것은, 스스로를 위하여 구하는 것일 수 없고 사람들을 위하여 진리를 구한다. 아시아 여러 나라의 국민은 신정(神政) 정치를 위하여 속박을 당하고, 활발한 기상을 잃고 애써 벌레처럼 움직이는 비굴함의 극한상황에 빠져있는 일이 즉, 이것이다, 이것을 문명의 개화라고 말할 수 있는가? 이것을 국민 사이의 문명이 진보한 흔적으로 보는가?
세 번째, 여기에 또 한 무리의 국민이 있다. 그 형편이 자유스러워도, 조금도 사물의 순서가 없고, 조금도 평등의 취지가 보이지 않는다. 큰 것이 작은 것을 통제하고, 강한 것이 약한 것을 억눌러, 한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오직 폭력뿐이다. 비유컨대 옛날 유럽의 형세가 이와 같다. 이것을 문명의 개화라고 말할 수 있는가? 물론 문명의 씨앗은 여기서 배태되었다고 말할 수 있어도, 실제로 이 형세를 문명이라고 말할 수 없다.
넷째, 여기에 또 한 무리의 백성이 있다. 사람마다 신체를 자유롭게 하고 방해하는 것이 없고, 사람마다 힘을 마음대로 쓰되 크고 작음, 강하고 약함의 차별이 없다. 가고 싶으면 가고, 멈추고 싶으면 멈추어, 각 사람의 권리와 의무를 유달리 하는 일이 없다. 그렇다하더라도 이 백성은 아직 인간 교류의 맛을 알지 못하고, 사람마다 그 힘을 한 사람을 위하여 소비하여 전체의 공공이익에 착안하지 않고, 한 나라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교류가 어떤 일인지 분간하지 못하고, 세세대대 태어나서 죽고, 죽어서 또 태어나, 그 태어나는 때의 형편은 죽는 때의 형편과 다르지 않다. 몇 세대를 지나더라도 그 토지에 인간의 생생한 흔적을 보는 일이 없다. 비유컨대 방금 야만스러운 인종이라고 주장한 일이 즉 이것이다. 자유와 평등의 기풍이 결핍되어도, 문명의 개화라고 말할 수 있는가?
위 네 단락에 거론한 바의 사례를 보는 데, 하나도 문명이라고 칭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그렇다면 곧 어떤 것을 지칭하여 문명이라고 이르는가? 이른바, 문명이라는 것은 사람의 몸을 안락하게 하고 마음을 고상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의복과 음식은 풍부하게 하여 인품을 존중하는 것을 말한다. 아니면 몸의 안락만으로서 문명이라고 말하는가? 인생의 목적은 의복과 음식만이 아니다. 만약 의복과 음식만으로써 목적으로 하면, 인간은 개미와 같을 따름이고, 또 벌과 같을 따름이다. 이것을 하늘의 약속이라고 할 수 없다. 아니면 마음을 고상하게 하는 것만으로써 문명이라고 말하는가? 천하의 사람들이 모두 좁고 더러운 거리에서 살면서 물을 마시는 것은 안회(顔回)와 같다! 이것을 천명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래서 사람의 몸과 마음 모두가 바라는 바를 얻는 것이 아니면 문명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없다. 그리하여, 사람은 안락에는 한계가 있을 수 없고, 사람의 마음의 품위에도 역시 끝이 있을 수 없다. 그 안락이라고 말하는 것과 고상이라고 말하는 것이, 바로 그 진보하는 때의 형편을 지적하여 이름이 나는 것이라면, 문명이라는 것은 사람의 안락과 품위의 진보를 말하는 것이다. 또 이 사람의 안락과 품위를 얻게 하는 것은 사람의 지덕(智德)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문명이라는 것은 결국, 사람의 지덕(智德)의 진보라고 할 수 있다.
앞에 이미 말하여, 문명은 지극히 크고 지극히 중요하여 인간의 모든 일을 망라하고, 그 이르는 바에 한계가 없고 현재 틀림없이 진보의 형편에 존재한다. 세상 사람들은 혹시 이것의 뜻을 알지 못하고 심하게 오류에 빠지는 일이 있다. 이 사람의 주장에서 말하는 바, 문명이라는 것은 사람의 지덕(智德)의 밖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서양 여러 나라의 국민을 보는 데, 과연 부덕한 소행이 많고, 혹은 사기행위로써 상업을 행하는 자가 있고, 혹은 사람을 위협하여 이익을 탐하는 자가 있어, 이것을 덕(德)이 있는 국민이라고 말할 수 없고 지극히 문명적이라고 칭하는 영국의 관할 하에 있는 「아일랜드」 국민은, 생계의 길에서 희망 없이 년 중 벌레가 움직이듯이 감자를 먹을 따름, 이것을 지혜롭다고 할 수 없고, 이런 연유로 관찰하면, 문명은 반드시 지덕(智德)과 병행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하더라도, 이 사람은 현재 세상의 문명을 보고 최고라고 생각하여, 반대로 그 진보의 과정에 있는 연유를 알지 못하는 자이다. 오늘날의 문명은 아직도 그 반에도 도달하지 않았다, 어찌 갑자기 깨끗하고 밝아서 완전히 아름다운 시대를 희망할 수 있는가? 이 지혜도 없고 덕(德)도 없는 사람이 곧 이 문명 세상의 질병이다. 지금 세상을 향해 문명의 최고도를 촉구하는 것은, 비유컨대 세상에서 완전히 건강한 사람을 구하는 것과 같다. 세상의 백성은 많다고 하더라도, 몸에 한 점의 질병도 없고, 태어나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사소한 병도 걸리지 않는 사람이 있을 수 있는가? 결코 있을 수 없다. 병리(病理)로써 논의하면, 금세기의 사람은 설사 건강과 유사한 사람이 있어도, 그 사람을 병을 지닌 건강(帯患健康)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나라도 역시 아직도 이 사람과 같다. 설사 문명이라고 칭하더라도, 반드시 허다한 결점이 없을 수 없다.
어떤 사람은 또 말하여, 문명은 지극히 크고 지극히 중요하다, 인간의 만사는 문명을 향하는 길을 피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문명의 본 뜻은 상하 평등에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서양 여러 나라의 형세를 보는 데, 개혁의 첫 발은 반드시 우선 귀족을 전복하는 데 있어, 영국과 프랑스 기타의 역사를 보고 그 실제 흔적을 증명할 수 있고, 가까이는 우리 일본에 관해서도, 번(藩)을 폐지하고 현(県)을 두고, 무사는 이미 권력을 잃고 벼슬아치도 역시 안색이 질리고, 이것 역시 문명의 취지가 아닌가? 이런 이치를 확대하여 논의할 때는, 문명국에서는 군주를 받들 수 없는 것 같다. 과연 그런가? 답변하여 말하여, 이것은 소위 한 눈으로써 천하의 일을 살피는 논의이다. 문명이라는 것은 크고 무거울 뿐만 아니라, 또한 넓고 여유가 있다. 문명은 지극히 넓고 지극히 여유가 있다. 어찌 국왕을 용인하는 지위가 없을까? 국왕을 수용할 수 있고, 귀족도 둘 수 있는데, 왜 이와 같은 명칭에 구애되어 구구한 의심을 품는 데 만족하는가? 「기조<Guizot>」의 문명사에 언급된 일이 있다. 왕정은 백성의 계급을 견지하는 일로 인도와 같은 나라에도 실시할 수 있고, 혹은 이에 반하여 국민이 평등하여, 막연하게 상하의 본분을 알지 못하는 나라에도 실시할 수 있고, 혹은 전제억압의 세계에도 실시할 수 있고, 혹은 개화되어 자유로운 동네에도 실시할 수 있어, 군주는 흡사 일종의 진기한 머리(頭)와 같고, 정치풍속은 몸과 같아서, 동일한 머리로써 다른 종류의 몸에 연결할 수 있고, 군주는 흡사 진기한 과실과 같고, 정치풍속은 나무와 같아서, 동일한 과실은 다른 종류의 나무에 잘 오를 수 있다고 한다. 이 말은 진실로 그러하다. 모든 세계의 정부는 오직 편리함을 위해서 설치된 것이다. 국가의 문명에 편리한 것이 있으면, 정부의 체제는 군주제도 공화제도 그 이름을 묻지 않고 그 실제를 취할 수 있다. 역사시대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세계에서 시험한 정부의 체제에서는, 독재군주제도 있고, 입헌군주제도 있고, 귀족정치도 있고, 의회정치도 있어도, 다만 그 체제만을 보고 무엇을 편리함으로 하고 무엇을 불편함으로 할 수 없다. 다만 한편으로 치우치지 않는 것을 긴요하다고 할 따름이다. 군주제도 반드시 불편하지는 않고, 공화정치도 반드시 좋지는 않다. 1848년 프랑스의 공화정치는 평등하다는 평판이 있어도 사실은 비참했다. 오스트리아에서 「프란시스[Francis]」 2세의 시대에서는 독재정부인데 실제로 관대했다. 현재의 미국 정치는 중국정부보다 낫다고 하여도, 「멕시코」의 공화정치는 영국의 군주정치에서 멀리 떨어진다. 그러므로 오스트리아와 영국의 정치를 좋다고 하여도, 이것 때문에 중국의 형편을 따를 수 없다. 미국의 정치를 기뻐하여도, 프랑스와 「멕시코」의 사례를 모방할 수 없다. 정치는 실제에 관해서 알 수 있어, 그 이름만으로 보고 평가할 수 없다. 정부의 체제는 반드시 한 가지 형태가 될 수 없기 때문에, 논의하는 방법은 학자가 적절하게 마음을 관대하게 하여 한편으로 치우치는 일이 없어야 한다. 이름을 다투어 실제를 해치는 것은 고금에서 그 사례가 적지 않다.
중국과 일본등지에 관해서는 임금과 신하에 대한 윤리로써 사람의 천품이라고 칭하고, 사람에게 임금과 신하의 윤리가 있는 것은 또한 부부와 부모자식의 윤리와 같아서, 임금과 신하의 본분은 사람의 생전에 먼저 정해진 것이라는 생각을 포함해서, 공자 같은 경우도 이 미혹을 벗어나는 일이 없고, 생애의 생각하는 바는 주나라 천자를 도와 정치를 하는 것, 또는 궁핍한 나머지 제후에게서도 지방수령에게서도 자신을 쓰는 자가 있으면 그 사람을 섬기어, 어쨌든 토지와 백성을 지배하는 임금에게 의탁하여 일을 성취하고자 하는 것 외에는 책략이라는 것이 없다. 결국 공자도 아직 사람의 천성을 연구하는 길을 알지 못하여, 다만 그 시대에 이행되는 사물의 형편에 눈을 감고, 그 시대의 생생한 백성의 기풍에 마음을 빼앗겨, 저도 모르게 그 중간에 갇히게 되어, 나라를 세우는 데는 임금과 신하 외에는 수단이 없는 것으로 추측하고 단정하여 가르침을 남겼을 따름이다. 물론 그 가르침에서 임금과 신하의 일을 논의한 취지는 매우 순수하여, 그 한 국면 안에서 그 취지를 보면 차질이 없을 뿐만 아니라, 어떻게 해서라도 사람의 일의 아름다움을 다하는 것과 같을지라도, 원래 임금과 신하는 사람이 태어난 후에 생기는 것 것이어서, 이것을 사람의 본성이라고 할 수 없다. 사람의 본성대로 준비하는 것이 뿌리이고, 태어난 후에 생기는 것은 가지이다. 사물의 가지에 대하여 논의의 순수한 것이 있다고 말하여도, 그것으로 인하여 그 뿌리를 움직일 수 없다. 비유컨대 옛날 사람들은 천문학을 알지 못하여 다만 하늘을 움직이는 것으로 생각하여, 지구는 정지되고 하늘을 움직인다는 생각을 근본으로 하여 무리하게 4계절의 순환을 계산하여, 그 주장하는 바에 얼추 이치를 마련했다고 보여도, 지구의 본성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마침내 크게 실수를 저질러 별자리 분야의 망설을 만들어, 일식과 월식을 이해하는 일이 없어, 사실에 대하여 맞지 않는 일이 매우 많다. 원래 옛날 사람들이 지구는 정지해 있고 하늘이 움직인다고 말한 것은, 다만 해와 달과 별들이 움직이는 것 같은 것을 목격하고, 그 목격한 바의 상황에 따라서 억측하여 단정한 일일 뿐이라고 하여도, 그 일에 관하여 사실을 규명하면, 그 상황은 원래 지구와 다른 천체를 서로 대조하여 지구의 움직임 때문에 생긴 현상이기에, 지구의 움직임은 본성이고, 현상은 가지의 조짐이다. 가지의 조짐을 오인하여 본성에 없는 일을 왜곡할 수 없다. 하늘이 움직인다는 주장에 이치가 있다고 생각하고, 그 이치를 주장하여 지구가 움직인다는 주장을 배척할 수 없다. 그 이치는 결코 진실한 이치가 아니다. 결국 물체에 관하여 그 이치를 연구하면서 다만 물체와 물체의 관계만을 보고 억지로 만든 주장이다. 만약 이 주장으로써 진리로 하면, 달리는 배 가운데보다 해안의 달리는 것같이 되는 것을 보고, 해안은 움직이고 배는 정지한다고 말하는 것이 되지 않을 수 없다. 큰 오해가 아닌가? 그러므로 천문을 말하는 것에는, 우선 지구가 어떤 물체이어서 그 운행이 어떻게 되는지를 살피어, 그 다음에 이 지구와 다른 천체의 관계를 밝히어, 사계절의 순환의 이치를 주장할 수 있다. 그러므로 말하는 바, 물체가 있고 그 다음에 이론이 있으며, 이론이 있고 그 다음에 물체를 생성하는 것이 아니다. 추측하여 단정하는 것으로써 먼저 물체에 대한 이론을 설파하여, 그 이론으로 인하여 물체의 이치를 해치지 말라. 임금과 신하에 관한 이론도 역시 이와 같다. 임금과 신하의 관계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이다. 지금 이 관계에 관하여 이치를 볼 수 있는 일이 있다 해도, 그 이치는 가끔 세상에서 임금과 신하가 되는 일이 있고 그 다음에 생겼던 일이라면, 이 이치를 보고 임금과 신하를 사람의 본성이라고 할 수 없다. 혹시 이것을 사람의 본성이라고 하는 것은, 세계 여러 나라, 사람이 있으면 반드시 임금과 신하가 없을 수 없는 이유가 있어도, 사실에 있어서 결코 그렇지 않다. 일반적으로 인간의 세상에는 아버지와 아들, 부부가 없지 않고, 어른과 어린이 친구가 없지 않다. 이 4자는 사람의 천성에 갖추어진 관계이어서, 이것을 본성이라고 할 수 있어도, 오직 임금과 신하에 이르러서는 지구상의 어떤 나라에서 그 관계가 없는 곳이 있어, 방금 의회정치를 세운 나라가, 즉 이것이다. 이 여러 나라에서는 임금과 신하가 없어도, 정부와 국민의 사이에 각 그 의무가 있어, 그 정치 풍습은 역시 매우 아름다운 것이다. 하늘에 두 개의 해가 없고 땅에 두 명의 임금이 없다는 것은 맹자의 말이어도, 바로 지금 현재에 임금이 없는 나라가 있고, 게다가 그 국민의 형편이 요순우(堯舜禹) 삼대 성왕시대보다 나은 것은 어찌된 것인가? 가령 맹자로 하여금 오늘날에 살도록 한다면, 오히려 어떤 체면을 가지고 이 여러 나라 국민을 볼까? 성현의 실수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절대왕정을 주장하는 것은, 먼저 사람의 본성이 어떤 것인가를 살핀 후에 임금과 신하의 의리를 설명하고, 그 의미라는 것은 과연 사람의 본성에서 배태되는 것인지, 혹은 사람이 태어난 후에 우연한 사정으로 인하여 임금과 신하의 관계가 생겨, 이 관계에 관한 약속을 임금과 신하의 의리라고 지칭하는 것인지, 사실에 의거하여 그 전후를 상세하게 하지 않을 수 없다. 생각을 비우고 태연하게 깊이 자연의 도리가 존재하는 곳을 구하면, 반드시 이 약속이 우연에서 생긴 이유를 밝힐 수 있다. 이미 그 우연함을 알면 또 결과적으로 그 약속의 편함과 불편함을 논하지 않을 수 없다. 사물에 관하여 편함과 불편함의 논의를 허락하는 것은 곧 이것에 수정과 개혁을 가할 수 있는 증거이다. 수정을 가하여 고칠 수 있는 것은 자연의 법칙이 아니다. 따라서 아들이 아버지가 될 수 없고, 아내가 남편이 될 수 없고, 아버지와 아들 부부 사이는 고치는 것이 어렵다하더라도, 임금이 변하여 신하가 될 수 있다. 탕왕과 무왕이 선왕을 추방한 것이 곧 이것이다. 혹은 임금과 신하가 좌석을 같이하여 어깨를 비교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번을 폐지하고 현을 둔 것이 곧 이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관찰하면, 절대왕정을 개혁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다. 다만 이것을 개혁하는가 혹은 마는가에 관한 비결은, 그 문명에 편리한지 혹은 불편한지를 살피는 데 달렸을 따름이다. 《혹은 서양학자의 주장에, 임금과 신하는 중국과 일본에 국한되지 않고, 서양에서도 「주인(master)」과 「하인(servant)」이라는 명칭이 있어, 곧 임금과 신하의 뜻이라고 말하는 자가 있어도, 서양의 임금과 신하와 중국 일본의 임금과 신하는 그 뜻이 같지 않다. 저 「주인(master)」 및 「하인(servant)」에 맞을 수 있는 문자가 없으므로, 임시로 이것을 임금과 신하로 번역했던 것이지만, 이 문자에 구애될 수 없다. 우리들은 옛날부터 일본과 중국의 사람들의 생각이 인정하는 바의 임금과 신하를 말함이다. 비유컨대 옛날 우리나라에서도 주인을 살해한 사람은 처형하고, 하인을 때려죽여도 처벌을 받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 주인과 이 하인이 곧 임금과 신하이다. 봉건시대에 제후와 사무라이의 신분 등은 분명히 임금과 신하라고 할 수 있다.》
앞의 논의에 따르면, 절대왕정은 개혁할 수 있다. 그런즉 이것을 개혁하여 민주정치를 취하여, 이 정치로써 최선에 머무르는 곳으로 하는가? 말하건대, 결코 그렇지 않다. 아메리카 북방에 한 민족이 있다. 지금부터 250년 전, 그 종족의 선조인 자들이 《「순례자들<Pilgrims Fathers>」이라고 한다. 그 인원이 101인으로, 영국으로부터는 1620년이다.》 영국에서 학정에 고생하여, 임금과 신하의 의리를 싫어하여 마침내 스스로 본국을 나와, 떠나서 북아메리카 지방에 와서, 천신만고를 겪고 점차 자립의 단초를 연 일이 있다. 곧 그 땅은 「매사추세츠<Massachusetts>」의 「플리머스<Plymouth>」로, 그 옛 흔적이 아직도 지금 남아있다. 그 후 뜻을 지닌 사람들이 뒤쫓아 와서, 본국으로부터 집을 옮기는 자가 매우 많고, 장소를 선택하여 주거지를 정하여 「뉴잉글랜드」 지방을 열고, 인구가 점점 늘어나, 국가의 재정이 점점 증가하고, 1775년에 이르러서는 이미 13주의 땅을 점유하고, 마침내 본국 정부에 등을 돌리고, 8년 동안 쓰디쓴 전쟁을 겪고, 겨우 승리를 얻어, 처음으로 큰 독립국가의 기초를 열었다. 곧 지금의 북아메리카 합중국이 이것이다. 처음부터 이 나라가 독립된 연유는, 그 국민이 용감하게 이기적이 되지 않고, 용감히 한 때의 야망을 펼친 것이 아니다. 지극히 공평한 자연의 도리에 기초하여, 인류의 권리와 의리를 보호하고, 자연이 부여한 복지를 온전히 했기 때문일 따름이다. 그 취지는 당시 독립의 격문을 읽으면 알 수 있다. 하물며 처음에, 저 101명의 선조가 1620년 12월 22일 눈보라 속에 상륙하여 해안의 바위를 디딘 그 당시에는, 어찌 한 점의 사심이 있었겠는가? 이른바 원래 빈털터리인 사람들로서, 하느님을 경배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것 외에, 다른 생각이 없었던 것은 분명하다. 이제 이 사람들의 생각을 미루어 헤아리니, 그 폭군과 타락한 관리들을 혐오한 것은 논제로 하고, 혹은 전 세계에서 정부라는 것을 폐지하여 그 흔적도 없이 하는 정도의 평소 생각이라 할 수 있다. 250년 전에 이미 이런 정신이 있었다. 그 후 1770년대의 독립전쟁도, 이 정신을 이어서 실천하려는 것이다. 전쟁이 끝난 후 정치체제를 세운 것도 이 정신에 기초를 두었다. 그 후 국내에서 시행되는 여러 가지 공업 및 상업적 법령 등, 모든 인간 교류의 길도 모두 이 정신을 목적으로 했다. 곧 미국의 정치는 독립한 국민의 기력을 활성화하여, 생각하는 바에 따라서 정한 것이라 할지라도, 그 풍속이 이 순수하고 조잡하지 않아서, 진정으로 인류가 멈출 수 있는 곳에 멈추어, 안락한 국토의 진정한 광경을 닮은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는데, 오늘날에 이르러 사실을 살펴보면 결코 그렇지 않다. 미국의 정치는 국민이 모여 권력을 쓸 수 있고, 그 권력의 관대함과 엄함은 전제정치의 (인터넷 원문의 단어는 立訓独裁인데 이와나미<岩波> 문고본에는 立君獨裁로 되어있다. 역자) 권력과 다르지 않아도, 한 사람의 뜻에서 나오는 것과 여러 사람의 손에서 이루어지는 그 의미는 다를 뿐이다. 또 미국의 풍속은 간편함을 중요시한다고 한다. 간편함은 본래 인간의 아름다운 일이라고 하더라도, 세상 사람들이 간편함을 반기면 간편함을 꾸며서 세상에서 아첨하는 자가 있고, 간편함을 가장하여 사람을 협박하는 사람도 있다. 오히려 저 시골 아이가 어리숙함으로써 사람들을 기만하는 것과 같다. 또 미국에는 뇌물을 금지하는 법률이 매우 많아도, 뇌물을 금하는 일이 더욱 조밀하면 뇌물행위도 역시 더욱 심하다. 그 사정은 과거 일본에서 도박을 금지한 일도 대단히 엄격하였는데, 도박의 유행이 대단히 성행하게 된 것과 같다. 이것들의 상세한 사례를 일일이 든다면 끝도 없어도, 지금 잠시 이것을 중단하고, 여론에 미국의 정치를 공평하다는 이유는, 그 국민이 공적인 마음으로써 정치를 하고, 인구 백만의 나라에서는 백만의 마음을 합쳐서 일을 합의하여 정하므로 공평하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상 큰 차이가 있다. 그래서 한 가지 사례를 들자. 미국의 정치에서는 국회의원을 선출함에, 투표를 이용하여 다수의 편을 선출하는 법이 있다. 다수가 있으면 한 표가 많아도 다수이므로, 만일 국내의 인기가 두 갈래로 나뉘는 일이 있어, 백만의 인구 안에서부터 한 갈래를 51만 명으로 다른 한 갈래를 49만 명으로 표를 던지면, 선거에 당선되는 인물은 반드시 한편으로 치우쳐, 49만 명의 사람은 처음부터 국회에 참여할 수 없다는 의미가 된다. 또 이 선거에 당선된 국회의원의 수를 100명으로 하여, 국회에 출석하여 중요한 국사를 협의하여 정할 때에, 여느 때처럼 투표를 이용하여 51명과 49명의 차이가 나면, 이것 역시 51명의 다수로 결정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이 결정은 전 국민 중의 다수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다수 중의 다수로써 결정하여, 그 차이가 대단히 작은 경우라면, 다수의 국민 4분의 1의 마음으로써 다른 4분의 3을 억누르는 비율이 된다. 이것을 공평하다고 할 수 없다 (「밀<Mill>」의 대의정치론에서). 이 대의정치의 다른 일에 관해서는 크게 논의의 불일치를 이루는 일이 있다. 쉽게 그 득실을 판단할 수 없다. 또 전제정치에서는 정부가 힘으로 국민을 괴롭히는 폐단이 있다. 미국의 정치에서는 국민이 주장으로써 정부를 번거롭게 하는 폐단이 있다. 따라서 정부가 혹시 그 번거로움을 참지 못하면, 곧 군대에 의뢰하여 마침내 큰 화를 초래하는 일이 있다. 미국에만 전쟁이 적다고 할 수 없다. 근자에는 1861년 노예에 대한 논의로부터 미국의 남북에 당파를 나누어, 백만의 시민이 별안간 무기를 들고 옛날부터 없었던 큰 전쟁을 시작하여, 형제가 서로 죽이고 같은 인종이 서로 해쳐서, 내란 4년간에 재물을 허비하고 사람을 잃은 일이 대부분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다. 본디 이 전쟁이 일어난 원인은, 국내의 상류층이, 노예라는 오래된 악습을 혐오해, 자연의 이치와 인간의 도리를 주창한 사건에 이르는 일이어서, 인간 세상의 한 가지 아름다운 이야기로 부를 수 있어도, 그 사건이 한 번 일어나면, 사건의 가지 끝에 또 새싹이 생겨, 이치와 이익이 서로 섞이고, 도리와 욕심이 서로 얽혀, 마침내 원래 취지가 있는 곳을 알 수 없게 되어, 그 사건의 흔적에 나타나는 일을 보면, 결국 자유로운 나라의 국민은, 서로 권위를 탐하여 사사로운 일을 마음대로 하고자 하는 욕망에 지나지 않는다. 그 모양은 흡사 하늘나라의 낙원에서 귀신의 무리가 싸우는 것과 같다. 만약 지하의 선조들로 하여금 알게 하면, 지금 이 귀신의 아들이 싸우는 것을 보고 뭐라고 할까? 전사자가 황천에 이르러도, 선조들을 보고 안색이 질릴 것이다. 또 영국의 학자 「밀<Mill>」이 저술한 경제서에 말하여, 어떤 사람의 주장에, 인류의 목적은 오직 전진하여 취하는 데 있어, 발로 딛고 손으로 밀어, 서로 발뒤꿈치를 붙이고 앞을 다툴 수 있어, 이것이 곧 생산과 진보를 위하여 최고로 원할 수 있는 상황이므로, 다만 이익을 다투는 것으로써 인간의 최고의 약속으로 생각하는 자가 없지 않아도, 내 소견으로는 그것이 매우 바람직하지 않고, 방금 세계 가운데 이익을 다투는 상황이 실제로 나타나는 곳은 아메리카 합중국이다. 「코카서스」 인종의 《백인종》 남자가 서로 힘을 합쳐, 바르지 못하고 공평하지 못한 굴레를 벗어던지고 특별한 하나의 세상을 열어, 인구가 번성토록 하고, 재화의 이용을 풍요롭게 하고, 토지도 역시 넓어서 경작하는 데 여유가 있다. 자주와 자유의 권리는 일반적으로 시행되어 국민도 또 가난이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한다. 이 지극히 좋고 지극히 아름다운 편리함을 얻었다할지라도, 그 일반적인 풍속에 나타나는 결과를 보면 역시 괴이하여, 전국의 남자는 일 년 내내 분주하게 돈을 뒤쫓고, 전국의 아내는 일생동안 열심히 이 돈을 뒤쫓는 남자를 낳을 따름이니, 이것을 인간 교류의 최선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나는 이것을 믿지 않는다. 이상 「밀<Mill>」의 주장을 보고 역시 더 이상 미국의 풍속에 관하여 그 풍속의 한 부분을 이해하는 데 충분하다.
이상의 토론으로 보면, 전제정치는 반드시 좋지는 않고, 민주정치도 반드시 편리하지는 않다. 정치라는 이름을 어떻게 부르더라도 결국 인간 교류 중의 한 가지 조항에 지나지 않으면, 겨우 그 한 가지 조항의 형태를 보고 문명의 본래 취지를 판단할 수 없다. 그 형태가 불편하면 고칠 수 있고, 혹은 실제로 방해가 되지 않으면 고치지 않을 수 있다. 인간의 목적은 오직 문명에 도달하는 한 가지 일일 뿐이다. 문명에 도달하게 하는 것에는 여러 가지 방법들이 없을 수 없다. 따라서 그 방법들을 시험하고 따라서 그 방법들을 고치고, 천백번의 시험을 거쳐 그 사이에 다소 진보를 이룩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인간의 사상은 한 편으로 치우칠 수 없다. 침착한듯하여 여유가 있는 일이 필요하다. 무릇 세상의 사물은 시험하지 않으면 진보하는 일이 없다. 가령 시험하여 잘 진보하는 것도 그 완성에 이른 일이 있다고 나는 듣지 못했다. 역사의 시작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혹은 이것을 시험하는 세상의 한 가운데라고 말할 수 있다. 여러 나라의 정치도 지금 틀림없이 시험되고 있다면 갑자기 그 정부의 좋고 나쁨을 정할 수 없는 것은 본래부터 논외이다. 다만 그 문명에 도움이 되는 일이 많은 것을 좋은 정부라고 칭하고, 이익이 되는 일이 적거나, 또는 그 문명을 해치는 것을 일러 나쁜 정부라고 말할 따름이다. 그래서 정치의 좋고 나쁨을 평가하는 것에는, 그 국민이 도달할 수 있는 문명의 정도를 재서 결정할 수 있다. 세계에 아직 최고의 문명국이 없다면, 지극히 선하고 지극히 아름다운 정치도 역시 아직 있을 수 없다. 혹은 문명의 최고도에 이르면, 어떤 정부도 쓸모없는 것에 속할 수 있다. 만약 그렇다면, 왜 문명의 형태를 선택하는 데 만족하고, 왜 문명의 명분을 다투는 데 만족하는가? 현재 세상의 문명이 진보 중에 있다면, 정치도 역시 진보 중에 있는 것이 분명하다. 다만 각각의 나라가 서로 몇 걸음 앞서거니 뒤처지거니 할 따름이다. 영국과 「멕시코」를 비교하여, 영국의 문명이 우월하다는 것은 그 정치 역시 우월한 것이다. 미국의 풍속이 편리하지 않아도, 중국의 문명에 비교하여 우월한 곳이 있으면, 미국의 정치는 중국보다 좋은 것이다. 따라서 전제정치도 민주정치도 좋다고 말하면 모두 좋고, 좋지 않다고 말하면 모두 좋지 않다. 또 정치만이 문명의 근원은 아니다. 문명에 따라서 진보하거나 퇴보해서, 문학과 경제 등의 여러 여건과 함께, 문명 한 가운데 한 국면의 역할을 하는 것이 되는 것은, 앞에서 이미 토론했다. 따라서 문명은 비유컨대 사슴과 같고, 정치 등은 궁사와 같다. 궁사는 본래 한 명이 아니고 문명을 잡는 궁사도 역시 여러 사람의 패거리를 달리 할 수 있다. 다만 그 목표가 되는 것은 사슴을 쏘아 잡는 데 있을 따름이다. 사슴만 잡으면, 서서 쏘든 앉아서 쏘든, 혹은 적절한 시기에 따라 맨손으로 잡든 무방하다. 특히 한 가족의 쏘는 법에 구애되어, 맞힐 수 있는 화살을 쏘지 않고, 잡을 수 있는 사슴을 놓치는 것은, 사냥에서 서툰 짓이라고 할 수 있다.
第三章 文明の本旨を論ず
前章の続きに従へば、今こゝに西洋文明の由来を論ず可き場所なれども、これを論ずる前に先づ文明の何物たるを知らざる可らず。其物を形容すること甚だ難し。啻にこれを形容すること難きのみならず、甚しきに至ては世論或は文明を是とし或はこれを非として争ふものあり。蓋しこの論争の起る由縁を尋るに、もと文明の字義はこれを広く解す可し、又これを狭く解す可し。其狭き字義に従へば、人力を以て徒に人間の需用を増し、衣食住の虚飾を多くするの意に解す可し。又其広き字義に従へば、衣食住の安楽のみならず、智を研き徳を脩めて人間高尚の地位に昇るの意に解す可し。学者若し此字義の広狭に眼を着せば、又喋々たる争論を費すに足らざる可し。
抑も文明は相対したる語にて、其至る所に限あることなし。唯野蛮の有様を脱して次第に進むものを云ふなり。元来人類は相交るを以て其性とす。独歩孤立するときは其才智発生するに由なし。家族相集るも未だ人間の交際を尽すに足らず。世間相交り人民相触れ、其交際愈広く其法愈整ふに従て、人情愈和し知識愈開く可し。文明とは英語にて「シウヰリゼイション」と云ふ。即ち羅甸(らてん)語の「シウヰタス」より来りしものにて、国と云ふ義なり。故に文明とは人間交際の次第に改りて良き方に赴く有様を形容したる語にて、野蛮無法の独立に反し一国の体裁を成すと云ふ義なり。
文明の物たるや至大至重、人間万事皆この文明を目的とせざるものなし。制度と云ひ文学と云ひ、商売と云ひ工業と云ひ、戦争と云ひ政法と云ふも、これを概して互に相比較するには何を目的として其利害得失を論ずるや。唯其よく文明を進るものを以て利と為し得と為し、其これを却歩せしむるものを以て害と為し失と為すのみ。文明は恰も一大劇場の如く、制度文学商売以下のものは役者の如し。此役者なるもの各得意の芸を奏して一段の所作を勤め、よく劇の趣意に叶ふて真情を写出だし、見物の客をして悦ばしむる者を名けて役者の巧なる者とす。進退度を誤り、言語節を失し、其笑ふや真ならず、其泣や無情にして、芝居の仕組これがために趣を失する者を名けて役者の拙なる者とするなり。或は又其泣くと笑ふとは真に迫て妙なりと雖ども、場所と時節とを誤て、泣く可きに笑ひ、笑ふ可きに泣く者も亦、芸の拙なるものと云ふ可し。文明は恰も海の如く、制度文学以下のものは河の如し。河の海に水を灌ぐこと多きものを大河と名け、其これを灌ぐこと少きものを名けて小河と云ふ。文明は恰も倉庫の如し。人間の衣食、渡世の資本、生々の気力、皆この庫中にあらざるはなし。人間の事物或は嫌ふ可きものと雖ども、苟もこの文明を助るの功あればこれを捨てゝ問はず。譬へば内乱戦争の如き歟。尚甚しきは独裁暴政の如きも、世の文明を進歩せしむるの助となりて其功能著しく世に顕はるゝの時に至れば、半は前日の醜悪を忘れてこれを咎るものなし。其事情恰も銭を出して物を買ひ、其価過当なりと雖ども、其物を用ひて便利を得ること大なるの時に至れば、半は前日の損亡を忘るゝが如し。即是れ世間人情の常なり。
今仮に数段の問題を設て文明の在る所を詳にせん。
第一 爰に一群の人民あり。其外形安くして快く、租税は薄く力役は少なく、裁判の法正しからざるに非ず、懲悪の道行はれざるに非ず。概してこれを云へば、人間衣食住の有様に就ては其処置宜しきを得て更に訴ふ可きものなし。然りと雖ども、唯衣食住の安楽あるのみにて、其智徳発生の力をば故さらに閉塞して自由ならしめず、民を視ること牛羊の如くして、これを牧しこれを養ひ、唯其飢寒に注意するのみ。其事情、啻に上より抑圧するの類に非ずして、周囲八方より迫窄(はくさく)するものゝ如し、昔日松前より蝦夷人を取扱ひしが如き是なり。これを文明開化と云ふ可き乎。この人民の間に智徳進歩の有様を見るや否(いなや)。
第二 爰に又一群の人民あり。其外形の安楽は前段の人民に及ばずと雖ども亦堪ゆ可らざるに非ず。其安楽少なきの代りとして智徳の路は全く塞がるに非ず。人民或は高尚の説を唱る者あり、宗旨道徳の論も進歩せざるに非ず。然りと雖ども自由の大義は毫も行はるゝことなく、事々物々皆自由を妨げんとするに注意するのみ。人民或は智徳を得る者ありと雖ども、其これを得るや恰も貧民が救助の衣食を貰ふが如く、自からこれを得るに非ず、他に依頼してこれを得るのみ。人民或は道を求る者ありと雖ども、其これを求るや、自からために求ること能はずして人のためにこれを求るなり。亜細亜諸国の人民、神政府のために束縛を蒙り、活潑の気象を失ひ尽して蠢爾卑屈の極度に陥りたるもの、即是なり。これを文明開化と云ふ可き乎。この人民の間に文明進歩の痕を見るや否。
第三 爰に又一群の人民あり。其有様自由自在なれども、毫も事物の順序なく、毫も同権の趣意を見ず。大は小を制し、強は弱を圧し、一世を支配するものは唯暴力のみ。譬へば往昔欧羅巴の形勢斯の如し。これを文明開化と云ふ可き乎。固より文明の種はこゝに胚胎すと云ふと雖ども、現に此有様を名て文明と云ふ可らざるなり。
第四 爰に又一群の人民あり。人々其身を自由にして之を妨るものなく、人々其力を逞ふして大小強弱の差別あらず。行かんと欲すれば行き、止らんと欲すれば止まりて、各人其権義を異にすることなし。然りと雖ども、此人民は未だ人間交際の味を知らず、人々其力を一人のために費して全体の公利に眼を着けず、一国の何物たるを知らず交際の何事たるを弁ぜず、世々代々生て又死し、死して又生れ、其生れしときの有様は死するときの有様に異ならず。幾世を経ると雖ども其土地に人間生々の痕跡をみることなし。譬へば方今野蛮の人種と唱るもの、即是なり。自由同権の気風に乏しからずと雖ども、之を文明開化と云ふ可きや否。
右四段に挙る所の例を見るに、一もこれを文明と称す可きものなし。然ば則ち何事を指して文明と名るや。云く、文明とは人の身を安楽にして心を高尚にするを云ふなり、衣食を饒(ゆたか)にして人品を貴くするを云ふなり。或は身の安楽のみを以て文明と云はんか。人生の目的は衣食のみに非ず。若し衣食のみを以て目的とせば、人間は唯蟻の如きのみ、又蜜蜂の如きのみ。これを天の約束と云ふ可らず。或は心を高尚にするのみを以て文明と云はんか。天下の人皆陋巷(らうかう)に居て水を飲む顔回の如くならん。これを天命と云ふ可らず。故に人の身心両ながら其所を得るに非ざれば文明の名を下だす可らざるなり。然り而して、人の安楽には限ある可らず、人心の品位にも亦極度ある可らず。其安楽と云ひ高尚と云ふものは、正に其進歩する時の有様を指して名けたるものなれば、文明とは人の安楽と品位との進歩を云ふなり。又この人の安楽と品位とを得せしむるものは人の智徳なるが故に、文明とは結局、人の智徳の進歩と云て可なり。
前既に云へり、文明は至大至重にして人間万事を包羅し、其至る所際限なくして今正に進歩の有様に在りと。世人或はこの義を知らずして甚だしき誤謬に陥ることあり。其人の説に云く、文明とは人の智徳の外に見はれたるものなり、然るに今西洋諸国の人を見るに、果して不徳の所業多し、或は偽詐を以て商売を行ふ者あり、或は人を威して利を貪る者あり、これを有徳の人民と云ふ可らず、又至文至明と称する英国の管下に在る「アイルランド」の人民は、生計の道に暗く終歳蠢爾として芋を喰ふのみ、これを智者と云ふ可らず、是に由て之を観れば、文明は必ずしも智徳と並び行はるゝものに非ずと。然りと雖ども、此人は今の世界の文明を見てこれを其極度なりと思ひ、却て其進歩の有様に在る所以を知らざるものなり。今日の文明は未だ其半途にも至らず、豈遽に清明純美の時を望む可けんや。此無智無徳の人は即是れ文明の世の疾病なり。今の世界に向て文明の極度を促すは、これを譬へば世に十全健康の人を求るが如し。世界の蒼生多しと雖ども、身に一点の所患なく、生れて死に至るまで些少の病にも罹らざる者ある可きや。決してある可らず。病理を以て論ずれば、今世の人は仮令ひ健康に似たるものあるも、これを帯患健康と云はざるを得ず。国も亦猶この人の如し。仮令ひ文明と称すと雖ども、必ず許多(あまた)の欠点なかる可らざるなり。
或人又云く、文明は至大至重なり、人間万事これに向て道を避けざるものなし、然るに文明の本旨は上下同権に在るに非ずや、西洋諸国文明の形勢を見るに、改革の第一着は必ず先づ貴族を倒すに在り、英仏其他の歴史を見て其実跡を証す可し、近くは我日本に於ても、藩を廃して県を置き、士族既に権を失ふて華族も亦顔色なし、是れ亦文明の趣意ならん、此理を拡めて論ずるときは、文明の国には君主を奉ず可らざるが如し、果して然るや。答て云く、是れ所謂片眼を以て天下の事を窺ふの論なり。文明の物たるや大にして重なるのみならず、亦洪にして且寛なり。文明は至洪至寛なり。豈国君を容るゝの地位なからんや。国君も容る可し、貴族も置く可し、何ぞ是等の名称に拘はりて区々の疑念を抱くに足らん。「ギゾ-」氏の文明史に云へることあり。立君の政は人民の階級を墨守すること印度の如き国にも行はる可し、或は之に反して人民、権を同ふし、漠然として上下の名分を知らざる国にも行はる可し、或は専制抑圧の世界にも行はる可し、或は開化自由の里にも行はる可し、君主は恰も一種珍奇の頭の如く、政治風俗は体の如し、同一の頭を以て異種の体に接す可し、君主は恰も一種珍奇の菓実の如く、政治風俗は樹の如し、同一の菓実よく異種の樹に登(みの)る可しと。此言真に然り。都て世の政府は唯便利のために設けたるものなり。国の文明に便利なるものなれば、政府の体裁は立君にても共和にても其名を問はずして其実を取る可し。開闢の時より今日に至るまで、世界にて試たる政府の体裁には、立君独裁あり、立君定律あり、貴族合議あり、民庶合議あれども、唯其体裁のみを見て何れを便と為し何れを不便と為す可らず。唯一方に偏せざるを緊要とするのみ。立君も必ず不便ならず、共和政治も必ず良ならず。千八百四十八年仏蘭西の共和政治は公平の名あれども其実は惨刻なり。墺地利(おーすとりや)にて第二世「フランシス」の時代には独裁の政府にて寛大の実あり。今の亜米利加の合衆政治は支那の政府よりも良からんと雖ども、「メキシコ」の共和政は英国立君の政に及ばざること遠し。故に墺地利、英国の政を良とするも、之がために支那の風を慕ふ可らず。亜米利加の合衆政治を悦ぶも、仏蘭西、「メキシコ」の例に傚ふ可らず。政は其実に就て見る可し、其名のみを聞て之を評す可らず。政府の体裁は必ずしも一様なる可らざるが故に、其議論に当ては学者宜しく心を寛にして一方に僻すること勿る可し。名を争ふて実を害するは古今に其例少からず。
支那日本等に於ては君臣の倫を以て人の天性と称し、人に君臣の倫あるは猶夫婦親子の倫あるが如く、君臣の分は人の生前に先づ定たるものゝやうに思込み、孔子の如きも此惑溺を脱すること能はず、生涯の心事は周の天子を助けて政を行ふ歟、又は窮迫の余りには諸侯にても地方官にても己を用ひんとする者あれば之に仕へ、兎にも角にも土地人民を支配する君主に依頼して事を成さんとするより外に策略あることなし。畢竟孔子も未だ人の天性を究(きはむ)るの道を知らず、唯其時代に行はるゝ事物の有様に眼を遮られ、其時代に生々する人民の気風に心を奪はれ、知らず識らず其中に籠絡せられて、国を立るには君臣の外に手段なきものと臆断して教を遺したるものゝみ。固より其教に君臣のことを論じたる趣意は頗る純精にして、其一局内に居て之を見れば差支なきのみならず、如何にも人事の美を尽したるが如くなりと雖ども、元と君臣は人の生れて後に出来たるものなれば、之を人の性と云ふ可らず。人の性のまゝに備はるものは本なり、生れて後に出来たるものは末なり。事物の末に就て議論の純精なるものあればとて、之に由て其本を動かす可らず。譬へば古人天文の学を知らずして只管天を動くものと思ひ、地静天動の考を本にして無理に四時循環の算を定め、其説く所に一通りは条理を備へたるやうに見ゆれども、地球の本の性を知らざるが故に、遂に大に誤りて星宿分野の妄説を作り、日食月食の理をも解くこと能はず、事実に於て不都合なること甚だ多し。元来古人が地静天動と云ひしは、唯日月星辰の動くが如くなるを目撃し、其目撃する所の有様に従て臆断したるのみのことなれども、其事に就て実を糺せば、此有様はもと地球と他の天体と相対して地球の動くがために生じたる現象なるゆゑ、地動は本の性なり、現象は末の験(しるし)なり。末の験を誤認めて本の性にあらざることを誣ゆ可らず。天動の説に条理あればとて、其条理を主張して地動の説を排す可らず。其条理は決して真の条理に非ず。畢竟物に就ては其理を究めずして唯物と物との関係のみを見て強ひて作たる説なり。若し此説を以て真の条理とせば、走る船の中より海岸の走るが如くなるを見て、岸は動き船は静なりと云はざるを得ず。大なる誤解ならずや。故に天文を談ずるには、先づ地球の何物にして其運転の如何なるを察して、然る後に此地球と他の天体との関係を明にし、四時循環の理をも説く可きなり。故に云く、物ありて然る後に倫あるなり、倫ありて然る後に物を生ずるに非ず。臆断を以て先づ物の倫を説き、其倫に由て物理を害する勿れ。君臣の論も猶斯の如し。君と臣との間柄は人と人との関係なり。今この関係に就き条理の見る可きものありと雖ども、其条理は偶ま世に君臣なるもの有て然る後に出来たるものなれば、此条理を見て君臣を人の性と云ふ可らず。
若しこれを人の性なりと云はゞ、世界万国、人あれば必ず君臣なかる可らざるの理なれども、事実に於て決して然らず。凡そ人間世界に父子夫婦あらざるはなし、長幼朋友あらざるはなし。此四者は人の天稟に備はりたる関係にて、これを其性と云ふ可しと雖ども、独り君臣に至ては地球上の某国に其関係なき処あり、方今民庶会議の政府を立たる諸国、即是なり。此諸国には君臣なしと雖ども、政府と人民との間に各其義務ありて、其治風或は甚だ美なるものあり。天に二日なし地に二王なしとは孟子の言なれども、目今現に無王の国ありて、然も其国民の有様は遥に唐虞(とうぐ)三代の右に出るものあるは如何ん。仮に孔孟をして今日に在らしめなば、将(は)た何の面目有てこの諸国の人民を見ん。聖賢の粗漏と云ふ可し。故に立君の政治を主張するものは、先づ人性の何物たるを察して後に君臣の義を説き、其義なるものは果して人の性に胚胎したるもの歟、或は人の生れて然る後に偶然の事情に由て君臣の関係を生じ、此関係に就ての約束を君臣の義と名るもの歟、事実に拠て其前後を詳にせざる可らず。虚心平気深く天理の在る所を求めなば、必ず此約束の偶然に出でたる所以を発明す可し。既に其偶然なるを知らば又随て其約束の便不便を論ぜざる可らず。事物に就て便不便の議論を許すは即ちこれに修治改革を加ふ可きの証なり。修治を加へて変革す可きものは天理に非ず。故に子は父たる可らず、婦は夫たる可らず、父子夫婦の間は変革し難しと雖ども、君は変じて臣たる可し。湯武の放伐、即是なり。或は君臣席を同ふして肩を比す可し。我国の廃藩置県、即是なり。是に由て之を観れば、立君の政治も改む可らずに非ず。唯之を改ると否とに就ての要訣は、其文明に便利なると不便利なるとを察するに在るのみ。《或る西洋学者の説に、君臣は支那日本に限らず、西洋にも「マ-ストル」と「セルウェント」の称あり、即ち君臣の義なりと云ふ者あれども、西洋の君臣と支那日本の君臣とは其義一ならず。彼の「マ-ストル」及び「セルウェント」に当る可き文字なきゆゑ、仮に之を君臣と訳したることなれども、此文字に拘泥す可らず。余輩は古来和漢の人心に認る所の君臣を君臣と云ふなり。譬へば昔我国にて主人を殺す者は磔、家来は手打にするも不苦と云ふ。此主人此家来は即ち君臣なり。封建の時に大名と藩士との間柄などは明なる君臣と云ふ可し。》
前の論に従へば、立君の政治は之を変革して可なり。然ば則ち之を変革して合衆政治を取り、この政治を以て至善の止まる所とする乎。云く、決して然らず。亜米利加の北方に一族の人民あり。今を去ること二百五十年、其種族の先人なる者《「ピルグリム・フハアザス」を云ふ。其人員百一人にて、英国を去りしは千六百二十年のことなり。》英国に於て苛政に苦み、君臣の義を厭(いとひ)尽して自から本国を辞し、去て北亜米利加の地方に来り、千辛万苦を嘗めて漸く自立の端を開きしことあり。即ち其地は「マッサチュセット」の「プリマウス」にして、其古跡今尚存せり。爾後有志の輩、跡を追ふて来り、本国より家を移す者甚だ多く、処を撰び居を定めて「ニウエンゲランド」の地方を開き、人口漸く繁殖し、国財次第に増加し、千七百七十五年に至ては既に十三州の地を占め、遂に本国の政府に背き、八年の苦戦、僅に勝利を得て、始て一大独立国の基を開きたり。即ち今の北亜米利加合衆国、是なり。抑も此国の独立せし由縁は、其人民敢て私を営むに非ず、敢て一時の野心を逞ふするに非ず。至公至平の天理に基き、人類の権義を保護し、天与の福祚(ふくそ)を全ふせんがためのみ。其趣旨は当時独立の檄文を読て知る可し。況や其初め、かの一百一名の先人が千六百二十年十二月二十二日風雪の中に上陸して海岸の石上に足を止めし其時には、豈一点の私心あらんや。所謂本来無一物なるものにて、神を敬し人を愛するの外、余念なきこと既に明なり。今此人の心事を推て計るに、其暴君汚吏を嫌ふは固より論を俟ず、或は全世界に政府なるものを廃却して其痕跡なからしめんとする程の素志なる可し。二百五十年以前既にこの精神あり。次で千七百七十年代独立の戦争も、此精神を承けてこれを実に顕はしたるものならん。戦争終て後に政体を作りたるも此精神に基きしことならん。爾後国内に行はるゝ百工商売政令法律等、都て人間交際の道も皆此精神を目的として之に向ひしことならん。然ば則ち合衆国の政治は独立の人民其気力を逞ふし、思ひのまゝに定めたるものなれば、其風俗純精無雑にして、真に人類の止る可き所に止り、安楽国土の真境を摸し出したるが如くなる可き筈なるに、今日に至て事実を見れば決して然らず。合衆政治は人民合衆して暴を行ふ可し、其暴行の寛厳は立訓独裁の暴行に異ならずと雖ども、唯一人の意に出るものと衆人の手に成るものと其趣を異にするのみ。又合衆国の風俗は簡易を貴ぶと云へり。簡易は固より人間の美事なりと雖ども、世人簡易を悦べば簡易を装ふて世に佞する者あり、簡易を仮て人を嚇する者あり。猶かの田舎児が訥朴を以て人を欺くが如し。又合衆国にて賄賂を禁ずるの法甚だ密なりと雖ども、之を禁ずること愈密なれば其行はるゝことも亦愈甚し。其事情は在昔日本にて博奕を禁ずることも最も厳にして、其流行最も盛なりしが如し。是等の細件を枚挙すれば際限なしと雖ども、今姑くこれを擱き、世論に合衆政治を公平なりとする所以は、其国民一般の心を以て政を為し、人口百万人の国には百万の心を一に合して事を議定するゆゑ公平なりと云ふことならん。然るに事実に於て大に差支あり。爰に其一箇条を示さん。合衆政治にて代議士を撰ぶに、入札を用ひて多数の方に落札するの法あり。多数とあれば一枚多きも多数なるゆゑ、万一国中の人気二組に分るゝことありて、百万の人口の内より一組を五十一万人とし一組を四十九万人として札を投ずれば、撰挙に当る人物は必ず一方に偏して、四十九万人の人は最初より国議に与るを得ざる訳けなり。又この撰挙に当たる代議士の数を百人として、議院に出席し大切なる国事を議定するときに、例の如く入札を用ひて五十一人と四十九人との差あれば、是亦五十一人の多数に決せざる可らず。故に此決議は全国民中の多数に従ふに非ず、多数中の多数を以て決し、其差、極て少なきものなれば、大数国民四分一の心を以て他の四分の三を制するの割合なり。之を公平と云ふ可らず(「ミル」氏代議政治論の内)。此他代議政治の事に就ては頗る議論の入組たるものあり。容易に其得失を断ず可らず。又立君の政治には政府の威を以て人民を窘るの弊あり。合衆の政治には人民の説を以て政府を煩はすの患あり。故に政府或は其煩はしきに堪へざれば、乃ち兵力に依頼して遂に大に禍を招くことあり。合衆政治に限りて兵乱少なしと云ふ可らず。近くは千八百六十一年売奴の議論よりして合衆国の南北に党類を分ち、百万の市民忽ち兇器を取て古来未曾有の大戦争を開き、兄弟相屠り同類相残(そこな)ひ、内乱四年の間に財を費し人を失ふこと殆ど其数を計る可らず。元と此戦争の起る原因は、国内上流の士君子、売奴の旧悪習を悪み、天理人道を唱へて事件に及びしことにて、人間界の一美談と称す可しと雖ども、其事一度び起れば、事の枝末に又枝末を生じ、理と利と相混じ、道と慾と相乱れ、遂には本趣意の在る所を知る可らずして、其事跡に現はれたるものを見れば、必竟自由国の人民、相互に権威を貪り其私を逞ふせんと欲するより外ならず。其状恰も天上の楽園に群鬼の闘ふが如くなり。若し地下の先人をして知ることあらしめなば、今この衆鬼子の戦ふを見てこれを何とか云はん。戦死の輩も黄泉に赴くと雖ども、先人を見るに顔色なかる可し。又英国の学士「ミル」氏著述の経済書に云く、或人の説に、人類の目的は唯進て取るに在り、足以て踏み手以て推し、互に踵を接して先を争ふ可し、是即ち生産進歩のために最も願ふ可き有様なりとて、唯利是争ふを以て人間最上の約束と思ふ者なきに非ざれども、余が所見にては甚だこれを悦ばず、方今世界中にてこの有様を事実に写出したる処は亜米利加の合衆国なり、「コウカス」人種《白人種》の男子相合し、不正不公の覊軛を脱して別に一世界を開き、人口繁殖せざるに非ず、財用富饒ならざるに非ず、土地も亦広くして耕すに余あり、自主自由の権は普く行はれて国民又貧の何物たるを知らず、斯る至善至美の便宜を得ると雖ども、其一般の風俗に顕はれたる成跡を見れば亦怪む可し、全国の男児は終歳馳駆(ちく)して金円を逐ひ、全国の婦人は終身孜々として此逐円の男子を生殖するのみ、これを人間交際の至善と云はん乎、余はこれを信ぜずと。以上「ミル」氏の説を見ても亦以て合衆国の風俗に就き其の一斑を窺知るに足る可し。
右所論に由て之を観れば、立君の政治必ずしも良ならず、合衆の政治必ずしも便ならず。政治の名を何と名るも必竟人間交際中の一箇条たるに過ぎざれば、僅に其一箇条の体裁を見て文明の本旨を判断す可らず。其体裁果して不便利ならば之を改るも可なり、或は事実に妨なくば之を改めざるも可なり。人間の目的は唯文明に達するの一事あるのみ。之に達せんとするには様々の方便なかる可らず。随て之を試み随て之を改め、千百の試験を経て其際に多少の進歩を為す可きものなれば、人の思想は一方に偏す可らず。綽々(しやくしやく)然として余裕あらんことを要するなり。凡そ世の事物は試みざれば進むものなし。仮令試てよく進むも未だ其極度に達したるものあるを聞かず。開闢の初より今日に至るまで或は之を試験の世の中と云て可なり。諸国の政治も今正に其試験中なれば遽に其良否を定む可らざるは固より論を俟たず。唯其文明に益すること多きものを良政府と名け、之に益すること少なき歟、又は之を害するものを名けて悪政府と云ふのみ。故に政治の良否を評するには、其国民の達し得たる文明の度を測量してこれを決定す可し。世に未だ至文至明の国あらざれば、至善至美の政治も亦未だある可らず。或は文明の極度に至らば何等の政府も全く無用の長物に属す可し。若し夫れ然るときは、何ぞ其体裁を撰ぶに足らん、何ぞ其名義を争ふに足らん。今の世の文明、其進歩の途中に在れば、政治も亦進歩の途中に在ること明なり。唯各国互に数歩の前後あるのみ。英国と「メキシコ」とを比較して、英の文明右に出でなば其政治も亦右に出ることならん。合衆国の風俗便宜しからざるも、支那の文明に比してこれに優る所あらば、合衆国の政治は支那よりも良きことならん。故に立君の政治も共和の政治も、良なりと云へば共に良なり、不良なりと云へば共に不良なり。且政治は独り文明の源に非ず。文明に従て其進退を為し、文学商売等の諸件と共に、文明中の一局を働くものなりとのことは、前既に之を論じたり。故に文明は譬へば鹿の如く、政治等は射者の如し。射者固より一人に非ず、其射者も亦人々流を異にす可し。唯其目途とする所は鹿を射てこれを獲(う)るに在るのみ。鹿をさへ獲れば、立てこれを射るも、坐してこれを射るも、或は時宜に由り赤手(素手)を以て之を捕るも妨あることなし。特(ひと)り一家の射法に拘泥して、中(あ)たる可き矢を射ず、獲べき鹿を失ふは、田猟に拙なるものと云ふ可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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