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자 주: 본서를 번역하면서 역자는 앞의 장까지 David A. Dilworth와 G. Cameron Hurst III세의 영어번역본 An Outline of a Theory of Civilization을 참고하였는데, 한국어번역본 문명론의 개략, 임종원 역, 제이앤씨가 근자에 발간됨에 따라 그 한국어번역본 또한 참고하였음.
제 2권
제 4장 한 나라 국민의 지혜와 덕행(德行)을 논함.
앞 장에서 문명은 사람의 지혜와 덕행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곧 여기에 지혜와 덕행을 지닌 사람이 있어, 문명인이라고 지칭할 수 있는가? 내가 말하는 바, 그렇다. 그것을 지칭하여 문명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하더라도 이 사람이 살고 있는 나라를 보고 문명국이라고 지칭하는 것이 가능한지 아닌지를 알 수 없다. 문명은 한 사람의 몸에 관하여 논할 수 없고, 전국의 형편에 관하여 보는 것이 가능한 것이다. 지금 서양 여러 나라를 문명이라고 하고 아시아 여러 나라를 반개(半開)라고 할지라도, 두세 명의 인물을 들어 논하면, 서양에도 완고하고 지극히 어리석은 사람이 있고, 아시아에도 지혜와 덕행이 높은 선비가 있다. 그러나 서양을 문명으로 아시아를 문명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서양에서는 이 지극히 어리석은 사람이, 그 어리석음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없고, 아시아에서는 이 높은 선비가, 그 지혜와 덕행을 마음대로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은 왜인가? 한 사람의 지혜와 어리석음 때문이 아니라, 전국에 행해지는 기풍에 통제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문명이 있는 곳을 찾는 것에는, 먼저 그 나라를 통제하는 기풍이 있는 곳을 살피지 않을 수 없다. 또 기풍은 곧 한 나라 국민에게 있는 지혜와 덕행의 현상이기에, 혹은 앞으로 나아가고 혹은 퇴보하고, 혹은 증가하고 혹은 감소하여, 나아가고 퇴보하고 증가하고 감소하는 순간도 멈추는 일이 없어서 흡사 전체 나라의 운동의 근원이 되는 것이어서, 한 번 기풍이 있는 곳을 찾아서 도달하면 천하의 사물이 하나가 되어 명확해지고, 그 이해득실을 살펴서 논하는 일은 물건의 호주머니 속에서 찾는 것보다 쉬울 수 있다.
위와 같이 기풍이 되는 것은 한 사람의 기풍이 아니어서 전국의 기풍이라면, 지금 한 바탕의 일에 관하여 그것을 살피고자 하는 것도, 눈으로 보는 것이 가능하지 않고 귀로 듣는 것이 가능하지 않아, 혹은 가끔 그것을 보고 들은 일이 있다고 하는 것도, 그 본 바와 들은 바에 따라 항상 차질이 생겨나서 일의 진면목을 판단하는 데 충분하지 않다. 비유컨대 한 나라의 산과 늪을 헤아리는 데는, 그 나라의 가운데 산재한 산과 늪의 평수를 측량하여, 그 총계를 기록하여 그것을 산의 나라로 지칭하거나 늪의 나라고 지칭할 수 있고, 드물게 큰 산과 큰 늪이 있으면 갑자기 억측으로 단정하여 그것을 산의 나라나 늪의 나라로 말할 수 없는 것과 같다. 그래서 전체 국민의 기풍을 알고 그 지혜와 덕행의 의미를 찾으려고 하는 데는, 그 노력을 서로 모아 세간에서 일반적인 실제 흔적에 나타나는 것을 보고 그것을 살피지 않을 수 없다. 혹은 이 지혜와 덕행은 사람의 지혜와 덕행이 아니어서 국가의 지혜와 덕행이라고 지칭할 수 있는 것이다. 아마도 국가의 지혜와 덕행인 것은 국가의 한 가운데 일반에 분포된 지혜와 덕행의 전체 양을 지적하여 이름을 붙인 것이라면 된다. 이미 그 양의 많고 적음을 알면 그 진퇴증감을 살펴 그 움직이는 방향을 분명히 하는 것도 역시 어렵지 않다. 생각건대 지혜와 덕행의 운동은 흡사 큰 바람과 같고 또 강의 흐름과 같다. 큰 바람은 북쪽에서 남쪽으로 불고, 강물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흘러, 그 완급의 방향은 높은 곳에서 멀리 보아 분명히 그것을 볼 수 있다할지라도, 물러가 집안으로 들어가면 바람이 없는 듯하고, 제방의 사이를 보면 물의 흐름이 없는 것 같다. 혹은 심하게 물의 흐름을 막은 것이 있으면, 전적으로 그 방향을 바꾸어 거꾸로 흐르는 일도 있다. 그렇다하더라고 그 거꾸로 흐르는 것은 그것을 막는 것이 있어서 그런 것이라면, 부분의 역류를 보고 하류의 방향을 추측하여 단정하기는 어렵다. 반드시 그 시선을 높고 멀게 하지 않을 수 없다. 비유컨대 경제론에, 부유함의 토대는 정직과 공부와 검약의 3개 조항에 있다고 한다. 이제 서양의 상인과 일본의 상인을 비교하여 그 상업의 뜻을 보는 데에서, 일본의 상인이 반드시 부정직하지도 않고, 또 반드시 나태하지도 않고, 게다가 검소하고 절약하는 풍습에 이르러서는 크게 서양인이 미치지 못하는 바가 있다. 그러나 한 나라의 상업의 결과에 나타나는 빈부에 관하여 보면, 일본은 크게 서양 여러 나라에 따라가기가 어렵다. 또 중국은 오랜 옛날부터 예의의 나라라고 칭하여, 그 말 혹은 자부심에 비슷하여도, 실제로 현실성이 없으면 이름 역시 있을 수 없다. 옛날 중국에서는 실제로 예의바른 선비가 있어 그 업적을 말할 수 있는 일이 적지 않았다. 오늘날에 이르러서도 그 인물이 부족하지 않다고 할지라도, 전국의 형편을 보면 사람을 죽이고 물건을 도둑질하는 자가 매우 많아서, 형법이 매우 엄격하여도 죄인의 수가 항상 감소하는 일이 없다. 그 인정과 풍속의 비굴함과 천박함은 정말로 아시아 국가의 골격을 표시할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중국은 예의의 국가가 아니고, 예의바른 사람이 살고 있는 국가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의 마음이 하는 일은 천 갈래 만 갈래, 아침저녁으로 다르고, 낮과 밤으로 같지 않다. 오늘날의 선비는 내일의 소인이 될 수 있고, 올해의 적은 내년의 친구가 될 수 있다. 그 임기응변은 나올수록 더욱 기이하다. 환상과 같고 마귀와 같아서, 생각하여 논의할 수 없고 측량할 수 없다. 타인의 마음을 미루어 헤아릴 수 없는 것은 본래 논의를 기대할 수 없고, 부부와 부모자식간이라 하더라도 상호간에 마음의 움직임이 변하는 것을 헤아릴 수 없다. 부부와 부모자식뿐만 아니라, 자신의 마음으로써 스스로 잘 그 마음의 변화를 억제하는 것에 충분하지 않다. 소위 지금의 나는 옛날의 내가 아니라는 것이 곧 그것이다. 그 형편은 흡사 맑은 날과 비를 측정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옛날 기노시타 토키치(木下藤吉: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옛 이름)는 주인의 돈 여섯 량을 훔쳐 도망쳐서, 이 여섯 량의 돈을 무사 집안에 바치는 자본으로 하여 처음에는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를 섬기고, 차츰 입신하는 데 따라 니와(丹羽)와 시바타(柴田)의 명망을 흠모하여, 하시바 히데요시(羽柴秀吉)로 이름을 바꾸고 노부나가의 대장이 되어, 그 후 끊임없는 시대의 변화를 맞이하여, 혹은 패배하고 혹은 성공하여, 기회를 타고 변화에 순응하여, 마침내 일본국의 중앙을 점령하여, 도요토미(豊) 태합(太閤)이라는 이름으로서 전국의 정권을 한 손에 잡고, 오늘날에 이르기까지도 그 업적의 번성함을 기리지 않은 일이 없다. 그러나 처음에 토키치(藤吉)가 여섯 량의 돈을 훔쳐 도망쳤을 때, 어찌 일본국의 중앙을 점령하려는 평소의 마음이 있었겠는가? 이미 노부나가(信長)를 섬긴 후에도 겨우 니와(丹羽)와 시바타(柴田)의 명망을 선망하여 스스로 성명을 바꾼 것이 아닌가? 그 의지가 작았던 것을 미루어 알 수 있다. 그래서 주인의 돈을 훔쳐서 붙잡히지 않은 것은 도둑의 몸으로서 기대 밖의 일이다. 그 다음에 노부나가(信長)를 섬기며 대장이 된 것은 토키치(藤吉)의 몸으로서 기대 밖의 일이다. 또 수년간의 성공과 좌절을 겪고 마침내 일본국의 중앙을 점령한 것은 하시바 히데요시(羽柴秀吉)의 몸으로서 기대 밖의 일이다. 이제 이 사람이 태합(太閤)의 지위에서 있으면서 돌아보아 전년에 여섯 량의 돈을 훔친 시기의 형편을 회상하면, 생애의 일은 한 번도 우연히 이루어지지 않는 일이 없고, 바로 이 꿈 가운데 또 꿈에 들어가는 마음이라고 할 수 있다. 후세의 학자로서 도요토미(豊) 태합(太閤)을 평하는 자는, 모두 도요토미(豊) 태합(太閤)이던 시절의 언행으로써 그 일생의 인물을 증명하고자 하는 일은 그러므로 큰 오해를 낳는다. 토키치(藤吉)라고 말하는 것과 하시바(羽柴)라고 말하는 것과 도요토미(豊) 태합(太閤)이라고 말하는 것도, 모두 한 사람의 생애 사이의 한 단계이어서, 토키치(藤吉)가 되는 때는 토키치(藤吉)의 마음이 있고, 하시바(羽柴)가 되는 때에는 하시바(羽柴)의 마음이 있고, 태합(太閤)이 되는 것에 이르면 스스로 또 태합(太閤)의 마음이 있어, 그 마음의 움직임 처음 중간 마지막 세 단계에 대하여 한결같을 수가 없다. 상세하게 이것을 논하면, 생애에 마음이 움직이는 것은 천 갈래 만 갈래로 구별하여 천태만상의 변화를 볼 수 있다. 옛날과 오늘날의 학자들은 이 이치를 알지 못하여, 인물을 평하는 데 그 말투로써, 어떤 사람은 어릴 적에 큰 뜻이 있었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세 살 때 그 기이한 말을 했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5세 때 그 기이한 행동이 있었다고 하고, 심하게는 그 사람 생전의 길조를 기록하고, 또는 꿈을 설명하여 그 사람의 언행록의 일부가 되는 일도 있는 데 이르렀다. 미혹에 빠지는 일도 역시 심하다고 할 수 있다. 《세상의 바른 역사라고 기리는 책 중에는, 도요토미(豊) 태합[太閤)의 어머니가 태양이 품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고 임신하여, 고 다이고[醍醐] 천황은 고스노끼[南木]의 꿈에 반응하여 고스노끼[楠]라는 성을 얻었다고 하고, 또 한고조는 용의 상서로움을 얻고 태어나 그 얼굴이 용과 닮았다고 한다. 이런 종류의 허랑한 망설을 헤아리면 일본과 중국의 역사 가운데 셀 수없이 많다. 세상의 학자는 이 망설을 주장하여 다른 사람을 속일 뿐만 아니라, 자신도 역시 그것에 빠져 스스로 믿는 자와 같다. 딱하기 짝이 없다고 할 수 있다. 분명히 옛것을 흠모하는 오래된 질병에서 분별없이 옛 사람을 존경하여, 그 인물이 죽은 후부터 멀리 그 업적을 보고 기이하게 하여, 오늘날의 사람의 귀와 눈을 놀라게 하기 위하여, 견강부회의 주장을 조작할 따름이다. 그것을 점쟁이 무리의 망언이라고 할 수 있다.》 원래 인간이라는 것은 타고난 것과 교육에 따라, 스스로 그 지조가 높은 자도 있고 혹은 비천한 자도 있어, 그 높은 자는 높은 일에 의지를 두고, 그 비천한 자는 비천한 일에 뜻을 두어, 그 지조에 대강의 방향이 있는 것은 본래 논외라할지라도, 지금 여기서 논하는 바는 큰 뜻이 있는 자도 반드시 큰 일을 이루는 것이 아니고, 큰 일을 이루는 자도 반드시 유년 시절부터 생애의 성공을 기약하는 것이 아니고, 설사 대부분의 지조가 방향을 정하여도, 그 의도와 성과는 따라서 변하고 따라서 나아가, 진퇴와 변화가 끝이 없고, 우연한 세력에 편승하여 끝내 큰 일을 이루는 것의 순서를 기록한 것이다. 학자는 이 취지를 오해하지 말라.
앞에서 논하는 바에 따라 이것을 보면, 사람 마음의 변화를 살피는 것은 사람의 힘이 미치는 바가 아니고, 결국 그 노력은 모두 우연에서 나와서 게다가 규칙이 없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은가? 답변하여 말하는데, 결코 그렇지 않다. 문명을 논하는 학자에게는 스스로 이 변화를 살피는 한 가지 방법이 있다. 이 방법에 의거하여 그것을 구하면, 사람 마음의 움직임에는 일정한 규칙이 있을 뿐만 아니라, 그 규칙의 올바름은 실제 물체의 모양을 보는 것과 같고, 활자판으로 눌러놓은 문자를 읽는 것과 같아, 그것을 오해하고자 하여도 도저히 오해할 수 없다. 생각건대 그 방법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천하의 사람 마음을 하나로 간주하여, 영구적인 시간의 한계 사이에 넓게 비교하여, 그 결과에 나타나는 것을 입증하는 방법이, 바로 그것이다. 비유컨대 맑은 날과 비가 오는 날 같은 것은 맑음으로써 저녁의 비를 점칠 수 없고, 하물며 수 십 일 사이에 며칠 맑고 며칠 비가 온다는 일정한 규칙을 세우고자 하는 것은 사람의 지혜가 미치는 바가 아니다. 그러나 일 년 간의 맑고 비오는 날을 평균하여 계산하면, 맑음은 비보다 많을 것을 알 수 있다. 또 그것을 한 곳의 지방에서 재는 것보다 넓게 한 주(州)나 한 나라까지 확대할 때는, 그 맑은 날과 비가 오는 날의 숫자는 더욱 정밀할 수 있다. 또 이 실험을 확대하여 멀리 세계의 가운데까지 확대하여, 이전 수 십 년과 이후 수 십 년의 맑음과 비가 옴을 그 날짜 숫자로 비교하면, 전후가 반드시 한결같아 며칠의 차이도 없을 수 있다. 혹은 그것을 백 년까지 확대하고 천 년까지 확대하는 일이 있으면, 반드시 1분의 시간 차이도 없는 것에 이를 수 있다. 사람 마음의 움직임도 역시 이와 같다. 이제 한 몸과 한 가정에 관하여 그 사람의 노력을 살피면 더욱 규칙이 존재하는 것을 보지 못하더라도, 널리 한 나라에 관하여 그것을 구하면 그 규칙의 올바름은 저 맑을 날과 비오는 날의 평균하여 그 백분율이 정밀한 것에 다르지 않다. 어떤 나라 어떤 시대에서는, 그 나라의 지혜와 덕행이 이 방향으로 향하고, 혹은 이 원인에 따라서 이 정도로 나아가고, 혹은 저 장애물에 방해를 받아 저 정도로 퇴보하는 것도, 흡사 형태가 있는 물체에 관하여 그 나아가고 퇴보하는 방향을 보는 것과 같다. 영국인 「버클( Buckle)」씨의 영국문명사에서 말하여, 한 나라의 사람 마음을 대강으로 하여 그것을 보면 규칙이 있는 것이 실제로 놀랍게도 지속되어, 범죄는 사람 마음의 움직임이니, 한 사람의 몸에 관하여 그것을 보면 본래 그 움직임에 규칙이 있을 수 없어도, 그 나라의 사정에 이변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죄인의 수는 매년 다르지 않고, 비유컨대 사람을 살해하는 자와 같은 것은 대체로 한 때의 분노에 편승하는 것이라면, 한 사람의 몸으로써 누가 미리 그것을 예견해서, 내년 몇 월 며칠에 누구를 살해하는 것을 스스로 생각하는 자가 있는가? 그런데 프랑스 전국에서 사람을 죽인 죄인을 헤아리는 것에, 그 숫자가 매년 같을 뿐만 아니라, 그 살해에 쓰인 도구의 종류까지도 매년 다르지 않고, 더욱 그것으로부터도 불가사의한 것은 자살하는 자이다. 원래 자살이라는 사건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명령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권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속여서 유혹할 수도 없고, 협박으로 강요할 수도 없고, 바로 한 마음이 결정하는 바에서 나타나는 것이라면, 그 숫자에 규칙이 있다고 생각할 수 없다. 그런데 1846년부터 50년에 이르기까지. 매년 런던에서 자살하는 자의 숫자가, 많게는 266명이고 적게는 213명이어서, 평균 240명으로 정한 숫자가 되었다. 이상 버클(Buckle)」씨의 주장이다. 또 여기서 비슷한 한 가지 예를 들어 말한다. 상업상으로 물품을 파는 사람은, 그것을 손님에게 강제로 사도록 할 수 없다. 그것을 사는 것과 사지 않는 것도 전적으로 사는 사람의 권리에 달렸다. 그런데 팔 물건을 구매하는 사람은, 대체로 세간의 경기를 살펴서 항상 여분의 상품을 비축하는 일이 없다. 미곡과 옷감등은 부패의 두려움이 없고 혹은 구매에서 지나치게 많은 것도 즉시 손해를 보지 않을지라도, 한 여름에 생선과 육 고기 또는 찐 과자들을 구매하는 사람은, 아침에 구매해서 저녁에 팔지 않으면 당장 전체 손실을 입을 수 있다. 그런데 한 여름에 시험 삼아 도쿄의 과자점에 가서 찐 과자를 구하면, 종일 그것을 팔고, 저녁이 다다르면 제품을 전부 팔아버려, 밤이 이슥해지면 남은 제품이 부패한 일이 있다는 것을 듣지 못한다. 그 형편이 좋은 것은 바로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이 미리 약속한 것과 같고, 저 저녁에 물건 전부를 사는 사람은, 흡사 자신의 편리함과 불편함을 버리고, 다만 과자가게의 구매에 남은 것이 있을까 두려워 그것을 사는 것과 같다. 어찌 신기하지 않은가? 지금 과자가게의 형편은 이와 같다하더라도, 물러서 시중의 집집마다에 이르러, 일 년 사이에 몇 번 찐 과자를 먹고, 어떤 가게에서 얼마나 제품을 구매하는지 물으면, 사람 모두 그것에 대답하는 일이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찐 과자를 먹는 사람의 마음 움직임은 한 사람에 관하여 볼 수 없다할지라도, 시중의 사람 마음을 일체로 그것을 살피면, 그것을 먹는 마음의 움직임에는 반드시 규칙이 있어, 분명하게 그 진퇴방향을 볼 수 있다.
따라서 천하의 형세는 한 가지 일과 한 가지 사물에 관하여 추측하여 단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널리 사물의 움직임을 보고 일반적인 흔적에 나타나는 바를 살펴서, 이것과 저것을 비교하는 것에 아니라면 참된 실정을 분명히 하는 데 충분하지 않다. 이와 같이 넓게 실제에 관하여 연구하는 방법을, 서양의 언어로는 「통계학(statistics)」이라 칭한다. 이 방법은 인간의 업적을 살펴서 그 이해득실을 명확하게 하기 위하여 빠질 수 없는 것이어서, 근래 서양의 학자는 오로지 이 방법을 사용하여 사물의 탐색에 성과가 많다고 한다. 대개 토지와 사람의 많고 적음, 물가와 임금의 높고 낮음, 결혼하는 자, 병에 걸린 자, 죽는 자 등, 일일이 그 숫자를 기록하여 표를 만들어, 이런저런 모습을 비교할 때는, 세간의 사정, 그것을 찾는 것에 근거가 없는 것도, 일별하여 분명한 것이 있다. 비유컨대 영국에서 매년 혼인하는 자의 숫자는 곡물가격에 따라, 곡물의 가격이 높으면 혼인이 적고, 그 가격이 하락하면 혼인이 많아, 전혀 그 백분율이 틀리는 일이 없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아직 「통계학(statistics)」의 표를 작성하는 자가 없으면 그것을 알 수 없어도, 혼인의 숫자는 반드시 곡식의 가격에 따르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남녀가 한 방에서 거주하는 것은 큰 윤리여서 (결혼은 인생의 중대한 일이다 『맹자』 만장[万章] 상 2편), 세상사람 모두 그 예의를 중시하여 경솔히 행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당사자가 서로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도 있고, 신분과 빈부의 상황도 있고, 부모의 말에도 따르지 않을 수 없고, 중매자의 말도 기다리지 않을 수 없고, 그 밖에 제반 사정에 따라서, 이것저것의 관계를 잘하여 그 혼담을 정리하는 것은 우연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실제로 그러한 것을 도모하지 않고도 그런 것과 같다. 세상에서 혼인을 기이한 인연이라고 하고, 또는 이즈모 신사의 인연결정(出雲の大社結縁)이라는 신화가 있어도, 모두 혼인이 우연에서 나타나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 그런데 지금 실상에 관하여 그것을 보면 결코 우연이 아니다. 당사자의 의견에 따라 이루어질 수도 없고, 부모의 명령에 따라서 정해질 수도 없고, 중매인의 능변이라 할지라도 인연을 결정하는 신령이라 할지라도, 세간의 일반적인 혼인을 어떻게라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당사자의 마음도, 부모의 명령도, 중매인의 언어도, 큰 신사(神社)의 신비로운 힘도, 대체로 그것을 제압하고, 자유자재로 그것을 제어하여, 혹은 세상의 혼담을 정하고, 혹은 그것을 깨뜨리는 것은, 세간에는 오직 유력한 쌀의 시세가 있을 뿐이다.
이 취지에 따라서 사물을 천착하면, 그 움직임의 원인을 구하는 데 매달리는 것에 크게 편리하다. 원래 사물의 움직임에는 반드시 그 원인이 없을 수 없다. 그러므로 이 원인을 가까운 원인과 먼 원인의 두 가지로 구별하여, 가까운 원인은 보기 쉽고 먼 원인은 분별하기 어렵다. 가까운 원인의 숫자는 많고 먼 원인의 숫자는 작다. 가까운 원인은 자칫하면 혼잡하여 사람은 귀와 눈을 현혹하는 일이 있어도, 먼 원인은 한 번 찾아서 얻으면 확실히 움직이지 않는다. 그래서 원인을 찾는 요령은 가까운 원인에서 점점 거슬러 먼 원인에 이르는 것에 있다. 그 거슬러 올라가는 일은 점점 멀면 원인의 숫자가 점점 감소하고, 한 가지 원인으로써 여러 가지 모양의 움직임을 설명할 수 있다. 지금 물에서 끓는 움직임을 일으키는 것은 장작불이고, 사람의 호흡의 움직임을 발생시키는 것은 공기이다. 그러므로 공기는 호흡의 원인이고 장작은 끓는 원인이어도, 다만 이 원인만을 찾아 얻는 것으로는 아직 연구를 다한 것이 되지 못한다. 원래 이 장작이 타는 원인은 장작의 특징 중에 있는 탄소와 공기 중의 산소가 화합하여 열을 발생시키는 것에 따르고, 사람이 호흡하는 원인은 공기 중에서 산소를 끌어 폐에서 혈중에 너무 많은 탄소를 화합하여 또 그것을 배출하는 것에 따르는 일이라면, 장작과 공기는 다만 가까운 원인이고 그 먼 원인은 곧 산소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물이 끓는 것과 사람이 호흡하는 것은 그 움직임의 뜻도 다르고 그 가까운 원인도 역시 달라도, 더욱 한 발자국 나아가 그 먼 원인이 되는 산소를 얻어, 처음에 끓는 움직임과 호흡의 움직임을 동일한 원인에 돌려서 확실한 논의를 정할 수 있다. 앞에서 말하여 세간의 혼인과 같은 것도, 그 가까운 원인을 말하는 것은 당사자의 마음, 부모의 명령, 중매인의 말, 기타 제반 사정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과 같아도, 이 가까운 원인에서는 아직 사정을 상세히 하는 것에 부족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혼잡을 빚어 사람의 귀와 눈을 현혹하는 일이 있다. 곧 이 가까운 원인을 버리고, 나아가 먼 원인이 있는 곳을 살펴, 곡물의 가격이라는 것을 이해하여, 비로소 혼인의 많고 적음을 좌우하는 진실한 원인을 맞이하여, 확실하여 흔들리지 않는 규칙을 보는 것이다.
또 한 예를 들어 말한다. 여기 술에 취한 사람이 있다. 말에서 떨어져 허리를 부딪쳐, 마침내 반신불수의 증세에 빠졌다. 그것을 치료하는 방법은 어떻게 가능한가? 이 병의 원인은 낙마이기에, 그 허리에 고약을 붙이고, 오로지 타박 치료법을 실시할 수 있는가? 만약 그런 사람은 돌팔이 의사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낙마는 단지 이 병의 가까운 원인일 뿐이다. 사실은 여러 해 동안 음주로 양생하지 않은 것에 따라, 이미 척수의 쇠약을 일으켜 바로 이 증세를 일으킨 때에 맞아, 우연히 낙마로써 전신을 격동시켜 그것 때문에 갑자기 반신불수를 일으켰을 따름이다. 그러므로 이 병을 치료하는 방법은, 우선 음주를 금하고 병의 먼 원인인 척수의 쇠약을 회복하는 것에 있을 따름이다. 조금이라도 의학에 뜻을 둔 사람은 이와 같은 병의 원인을 말하여 그 치료법을 베푸는 일이 쉬워도, 세상의 문명을 논하는 학자에 이르러서는 곧 그렇지 않고, 이것이나 저것이나 모두 평범한 의사의 종류일 뿐이다. 가깝게 귀와 눈이 듣고 보는 곳에 빠져 사물의 먼 원인을 찾는 것을 모르고, 이것에 속고 저것에 은폐되어, 망령되게 잔소리를 하고 방자하게 큰일을 행한다 하여, 바로 앞의 암흑, 어두운 밤에 몽둥이를 휘두르는 것과 같다. 그 당사자를 생각하면 불쌍할 수 있고, 세상의 편리를 생각하면 두려울 수 있다. 조심하지 않을 수 없다.
앞에서 논한 것과 같이, 세상의 문명은 보편적으로 그 국민 일반에 분포된 지혜와 도덕의 현상이라면, 그 국가의 평화와 혼란 및 흥망도 역시 일반의 지혜와 도덕에 관계되는 것이어서, 두 세 사람으로 가능한 바가 아니다. 전국의 세력은 진보하려고 해도 진보할 수 없고, 멈추려고 해도 멈출 수 없다. 위의 역사의 두 세 조항을 들어서 그 상황을 밝힌다. 원래 이론 중에서 예문을 이용하면, 그 문장이 길어서 혹시 독자로 하여금 염증 나게 하는 두려움이 없지 않아도, 역사에 의거하여 사건을 설명하는 것은, 어린애에게 쓴 약을 주는데 설탕을 섞어 먹기 좋게 하는 것과 같다. 생각건대 처음 공부하는 사람의 정신에는 형태가 없는 이론을 이해하는 일이 매우 쉽지 않고, 따라서 역사이론에 접하여 이 이치를 보여줄 때는, 스스로 이해를 빨리 하는 편리함이 있으면 된다. 살며시 일본과 중국의 역사를 살피는데, 옛날부터 영웅호걸이라는 군자들은, 때를 만나는 자가 매우 드물다. 스스로 그것을 탄식하여 불평하고, 후세의 학자도 그것을 추도하여 눈물을 흘리지 않는 일이 없다. 공자도 때를 만나지 못했다고 말하고, 맹자도 역시 그렇다. 미치자네(道真)는 쓰쿠시(筑紫)에 유배를 가고, 마사시게(正成)는 미나토 강(湊川)에서 죽어서, 그것들과 같은 사례는 일일이 들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우연히 세상에서 공적을 이루는 자가 있으면 그것을 천재일우라 일컫는다. 생각건대 때를 만나기가 어려움을 평하는 것이다. 그런데 저 이른바 때라는 것은 무엇을 가리켜 말하는가? 주나라 제후들이 공자와 맹자를 잘 이용하여 국정을 맡겼다면 반드시 천하를 태평하게 당연히 다스릴 수 있었으니, 이 사람들을 이용하지 않은 것이 당시 제후들의 죄라고 할 수 있는가? 미치자네(道真)의 유배, 마사시게(正成)의 죽음은, 후지와라 씨와 고다이고 천황(後醍醐天皇)의 죄라고 하는가? 그런즉 때에 맞지 않는다는 것은 두세 명의 마음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어서, 그 때라는 것은 오직 두세 명의 마음으로써 만들 수 있는 것인가? 만약 주나라의 제후의 마음으로 하여금 우연히 공자와 맹자를 흔쾌히 받아들이도록 하고, 고다이고 천황(後醍醐天皇)으로 하여금 구스노키 씨(楠氏)의 책략에 따르도록 한다면, 과연 각자가 그 일을 이루어, 오늘날의 학자가 상상하는 것과 같이 천재일우의 큰 업적을 성취한 것인가? 이른바 때라는 것은 두세 사람의 마음과 다르지 않은가? 때에 맞지 않는다는 것은 영웅호걸의 마음과 군주의 마음이 어긋난다고 하는 뜻인가? 나의 의견은 완전히 그것과 다르다. 공자와 맹자를 고용하지 않은 것은 주나라 제후의 죄가 아니라, 제후로 하여금 그들을 고용하지 못하게 한 자들이 있다. 구스노키 씨(楠氏)의 죽음은 고다이고 천황(後醍醐天皇)의 어리석음이 아니라, 구스노키 씨(楠氏)로 하여금 죽을 곳에 빠지도록 한 자들이 달리 있다. 생각건대 그것을, 교묘히 가로챈, 그것은 무엇인가? 곧 시대의 추세이다. 곧 당대의 인간의 기풍이다. 곧 그 당시 사람들에게 할당된 지혜와 덕행의 상태이다. 청하여 시험 삼아 그것을 논하겠다. 천하의 형세는 마치 증기선이 달리는 것과 같을수록, 세상의 일에 맞는 사람은 항해자와 같다. 1000톤의 배에 500마력의 증기기관을 장착하여, 한 시간에 5 리를 달려 열흘에 1200 리의 바다를 건널 수 있다. 그것을 이 증기선의 속도라고 판단한다. 어떤 항해자에게서 어떤 궁리를 작용시켜도, 이 500 마력을 높여 550 마력이 되게 할 수는 없다. 1200 리의 항해를 빨리하여 9일에 마치는 기술은 있을 수 없다. 항해자의 직분은 다만 기관의 힘을 방해하지 말고 충분히 운전이 작동하도록 하는 데 있을 따름이다. 혹은 두 번 항해에 처음은 15일을 보내고 나중에는 10일에 다다르는 일이 있으면, 그것은 두 번째 항해자의 솜씨가 아니고, 첫 번째 항해자의 서투름으로 인하여 증기의 힘을 막은 증거이다. 사람의 서투름은 한계가 있을 수 없다. 이 증기로써 15일이 걸릴 수 있고 20일도 걸릴 수 있고, 혹은 그 극단에 이르면 전혀 작동하지 않게 되는 일도 있을 수 있어도, 사람의 솜씨로써 기관이 지닌 본연의 힘을 만드는 이치가 절대 있을 수 없다. 세상의 치세와 난세, 흥망도 역시 이와 같다. 그 대세의 움직임을 맞아, 두 세명의 인물이 국정을 맡아 세상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자 하여도 결코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물며 그 사람들의 마음을 배반하여 홀로 자신의 뜻에 따르도록 하고자 하는 일에 있어서야! 그 어려움은 배를 타고 육지를 달리고자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옛부터 영웅호걸의 세상에서 일을 성취했다고 하는 것은, 그 사람의 재주로써 백성의 지혜와 덕행을 증진시켰다는 것이라 아니라, 단지 그 지혜와 덕행의 발전에 맞추어 그것을 막지 않았을 따름이다. 시험 삼아 보면, 세상의 상인들은, 여름에는 얼음을 팔고 겨울에는 숯덩이를 판매하는 것이 아닌가? 다만 세상의 사람 마음을 따를 따름이다. 이제 겨울을 맞아 얼음가게를 열고, 여름밤에 숯덩이를 파는 사람이 있으면, 사람들 누가 그것을 바보라고 하지 않는가? 그런데 저 영웅호걸이라는 무사들에 이르러서는 홀로 그렇지 않고, 바람 불고 눈 오는 추운 겨울에 얼음을 팔고자 하는데 그것을 사는 사람이 없으면, 곧 그 사지 않는 사람에게 허물을 돌리고 홀로 스스로 불평을 하는 것은 무엇인가? 몰지각한 슬픈 일이다. 영웅호걸은, 얼음이 팔리지 않은 것이 두려우면, 그것을 저장하여 여름이 오기를 기다려, 그것을 기다리는 사이에 열심히 얼음의 효능을 설명하여, 세상의 사람들로 하여금 얼음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리는 게 상책이다. 결과적으로 그 물건의 실제적인 효능이 있으면, 시절에 이르러 그것을 사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혹은 또 실제 효능이 없어서 도저히 팔 수 있는 목표가 없으면, 결단하여 장사를 멈출 수 있다.
주나라 말엽에 이르러 천하의 사람 모두 왕실의 예법이 주는 속박을 싫어하여, 그 속박이 점점 해이해지는 데 따라, 제후는 천자를 배신하고, 대부(大夫)는 제후를 제압하고, 혹은 신하의 신하가 국가의 정치를 맡는 자가 있어, 천하의 정권은 사분오열, 바로 그것이 봉건적 귀족이 권력을 다투는 시절이어서, 또 요순의 사양하는 (왕위를 양보함) 풍습을 흠모하는 자가 없고, 천하에 오직 귀족이 있는 것을 알지 백성이 있는 것을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귀족의 약소한 자를 돕고 귀족의 강대한 자를 제어하면, 곧 천하의 인심에 맞아 한 세대의 권력을 잡을 수 있다. 제환 (제나라의 환공)과 진문 (진나라의 문공)의 정치가 곧 그것이다. 이때를 맞이하여 공자는 홀로 요순의 정치 풍습을 주장하고, 무형의 도덕적 의무로써 천하를 가르치는 이론을 주장하여도, 본래 실제로 실행할 수가 없다. 당시로써 공자가 한 일을 보니, 저 관중의 (환공의 재상) 무리가 시대의 상황에 순응하는 재주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 맹자에 이르러서는 그 일이 더욱 어렵다. 당시 봉건적인 많은 귀족들이 점차 합쳐 세력을 좇으니, 약한 자를 돕고 강한 자를 억제하는 정치가 또 이행되지 않고, 강자가 약자를 멸망시키고 큰 나라가 작은 나라를 병합하는 시절이 되어, 소진(蘇秦)과 장의(張儀)의 무리가 바로 사방으로 날뛰어, 그 일을 돕거나 그 일을 파괴하여 합종연횡의 전쟁에 분주한 세상이 되면, 귀족이라 하더라도 스스로 몸을 지킬 수 없다. 어찌 저 백성을 생각하는 데 여유가 있을까, 어찌 다섯 이랑의 집을 (국민의 살림 『맹자』 양혜왕 3장) 돌보는 데 여가가 있겠는가? 다만 전국의 힘을 공격과 방어하는 일에 쓰고 군주 일신의 안전을 도모할 따름이다. 설사 또는 명석한 군주와 인자한 군주가 있어도, 맹자의 말을 듣고 인자한 정치를 베풀면 정치와 함께 몸을 위험에 빠뜨리는 것이 두려움이 있는데, 곧 등(滕)나라가 (춘추전국시대의 작은 나라) 제나라와 초나라 사이에 끼어 맹자에게 대책이 없었던 것도 그 한 가지 증거이다 (양혜왕 하편 3장). 내가 감히 관중과 장의(張儀)와 소진(蘇秦)의 편을 들어 공자와 맹자를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도, 다만 이 두 명의 대가가 시대 상황을 알지 못하고, 그 학문을 당시의 정치에 베풀고자 하여, 오히려 세간의 조롱을 받고, 후세에 도움이 되는 일이 없는 것을 애석해 할 따름이다. 공자와 맹자는 한 시대의 대학자이고, 옛날부터 드문 사상가이다. 만약 이 사람들로 하여금 탁견을 간직하게 하여, 당시에 행하여지는 정치의 범위를 벗어나 흡사 특별히 한 세상을 열어, 인류의 본분을 주장하여 만대에 차질이 없는 가르침을 정하는 일이 있었으면, 그 업적은 틀림없이 마땅히 매우 컸는데, 일생동안 그 범위 안에서 농락당하여 한 걸음을 벗어나는 일도 없었고, 그 주장하는 바도 그것 때문에 저절로 체면을 잃고, 진실한 이론이 아니어서 과반이 정치적 담론을 섞어, 소위 「철학(philosophy)」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일이었다. 그 길에 종사하는 패거리는, 설사 만권의 책을 읽어도, 정부의 위에 서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면 다른 데는 쓸모가 없는 것 같고, 물러나서 몰래 불평할 뿐이다. 어찌 그것을 비열하다고 할 수 없을까? 이 학문이 만약 널리 세상에 시행된다면, 천하의 사람은 모두 정부 위에 서서 정치를 하는 사람이어서, 정부의 아래 서 있는 다스림을 받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사람에게서 지혜와 어리석음의 상하를 차별하고, 자기들 스스로 지혜로운 위치에 서서 어리석은 백성들을 다스리려는 데 급급하기에, 세상의 정치에 관계하고자 하는 마음도 역시 급하다. 결국 열중하고 번민하여 상갓집 개라는 (세상에 받아들여지지 않아서 몰락한 사람) 비방을 초래하는 데 이른다. 나는 성인 때문에 그것을 치욕스럽게 여긴다. 또 이 학문의 길을 정치에 실시하는 한 가지 일에 관해서도 커다란 차질이 있다. 원래 공자와 맹자의 근본적인 주장은 마음을 닦는 것과 사람이 지켜야 할 윤리의 길이다. 분명히 무형의 인의도덕(仁義道德)을 논한 것이어서, 그것을 마음의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도덕도 순수하면 그것을 경시할 수 없다. 한 몸의 사사로움에서는 그 효능이 대단히 크다 하여도, 덕(德)은 한 사람 내부에 존재하여, 형체가 있는 외부의 물체에 접촉하여 작동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행함이 없고 혼돈하여 사람이 하는 일이 적은 세상에 있어서는 백성을 유지함에 편리하여도, 문화가 발전하는 데 따라 점차 그 힘을 잃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지금 내부에 존재하는 무형의 것으로써 바깥에 나타나는 유형의 정치에 실시하고, 고대의 도(道)로써 현대의 사람의 일을 처리하고, 사사로운 정(情)으로써 백성을 다스리는 것은, 미혹(迷惑)이 심하다고 할 수 있다. 이 시대와 장소를 알지 못하는 것은, 흡사 배를 타고 육지를 달리려 하고, 한여름 철에 모피 옷을 구하는 것과 같다. 도저히 현실에 적용할 수 없는 책략이다. 그 명확한 증거는 수천 년 오래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공자와 맹자의 도(道)를 정치에 시행하여 천하를 잘 다스린 자가 없는 것으로써 입증할 수 있다. 그래서 말하는 바, 공자와 맹자를 중용하지 않은 것은 제후의 죄가 아니고, 그 시대의 추세에 방해가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후세의 정치에 그 도(道)를 시행하지 않은 것은 도(道)의 허물이 아니라, 그것을 실시하는 시대와 장소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주나라 시대는 공자와 맹자에 맞는 시대가 아니고, 공자와 맹자는 이 시대에 존재하여 실제로 일을 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니다. 그 도(道)도 후세에 정치에서는 실시할 수 있는 도(道)가 아니고, 이론가의 주장《철학[philosophy]》과 정치가의 일《정치적 문제들[political matters]》은 크게 차이가 있는 것이다. 후세의 학자들은 공자와 맹자의 도(道)로써 정치의 법칙을 구하지 말라. 이 일에 관해서는 본서 가운데 특별히 논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
구스노키(楠) 씨의 죽음도 역시 시대의 상황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일본에서 정치적 권력이 황실을 떠난 날은 이미 오래되었다. 호겐헤이지(保元平治) 이전부터 군사권은 전부 겐(源)과 페(平) 두 사람에게 돌아가서, 천하의 무사 모두 그들에게 예속되지 않은 자가 없다. 요리토모((源氏: 미나모토노 요리토모[源頼朝])는 조상의 유업을 계승하여 관동(関東)에서 일어났고, 일본에서 1인자로서 이에 대항한 자가 없는 것은, 천하의 사람 모두가 관동(関東)의 병력을 두려워하여 복종하니, 겐지(源氏: 미나모토노 요리토모[源頼朝])가 있음은 알되 황실이 있음을 알지 못한 것이다. 호조(北条) 씨가 그 다음에 정권을 잡았어도, 가마쿠라(鎌倉)의 구습을 고치지 못했다. 그것도 역시 겐지(源氏: 미나모토노 요리토모[源頼朝])의 영향력에 기댄 것이다. 호조(北条) 씨가 멸망하고 아소카가 씨가 일어난 것도 역시 겐지(源氏)의 가문을 이용하여 일을 성취한 것이다. 호조(北条)와 아시카가(足利)의 시절을 맞아 사방의 무사들이 군사를 일으켰고, 명분은 왕에 대한 충성이어도, 그 사실은 시험적으로 관동(関東)에 대항하여 명성을 노리는 것이다. 혹은 왕에 대하여 충성하는 이 무리들로 하여금 그 뜻을 이해하게 하였더라면, 반드시 또 제 2의 호조(北条)가 될 것이고, 제 2의 아시카가(足利)가 될 것이다. 천황을 위하여 일을 꾸미면 앞문의 호랑이를 쫓되 뒷문의 이리를 맞이하는 것과 같을 따름이다. 오다(織田)와 도요토미(豊臣)와 도쿠가와(徳川)의 업적을 보고 그것을 입증할 수 있다. 가마쿠라(鎌倉) 이후 천하에서 일을 도모하는 자는 한 사람도 왕에 대한 충성을 주장하여 외치지 않은 자가 없어도, 일을 성취한 후에는 한 사람도 왕에 대한 충성을 실제로 행한 자가 없다. 왕에 대한 충성은 오직 그 일을 꾸미는 사이의 핑계이어서, 일이 성취된 후의 사실이 아니다. 역사에 말하여, 고다이고(後醍醐) 천황이 호조(北条) 씨를 멸망시키고, 우두머리로서 아시카가 다카우지(足利尊) 씨의 공로를 칭찬하여 여러 장군 위에 두었고, 닛타 요시사다(新田義貞)로 하여금 이에 버금가게 하였고, 구스노키 마사시게(楠正成) 이하 왕에게 충성하는 공신들은 그것을 버리고 뒤돌아보지 않았으며, 마침내 다카우지(尊) 씨로 하여금 마음대로 야심을 이루게 하여, 재차 황실의 쇠약을 초래하였다 하여,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세상의 학자들은, 이 대목에 이르면 이를 갈고 소매를 걷어붙여, 다카우지(尊) 씨의 흉악함을 분노하고 천황의 어리석음을 한탄하지 않는 자가 없다. 생각건대 시대의 흐름을 모르는 자의 주장이다. 이 시대를 맞아 천하의 권력은 무사의 가문에 있고, 무사 가문의 근본은 관동(関東)에 있다. 호조(北条)를 멸망시킨 자도 관동(関東)의 무사이고, 천황으로 하여금 왕위에 복귀하도록 한 자도 관동(関東)의 무사이다. 아시카가(足利) 씨는 관동(関東)의 유명한 가문으로, 본래 명망이 높다. 당시 관서(関西)의 여러 족속이 왕에 대한 충성을 외쳐도, 아시카가(足利)가 행동을 고치지 않는다면 어찌 잘 천황의 복위를 이룰 수 있었는가? 위업을 이룬 날에 그것을 으뜸 공로로 한 것도, 천황의 뜻으로써 다카우지(尊) 씨가 전공(戰功)을 칭찬한 것이 아니라, 시대의 형세에 따라 아시카가(足利) 가문의 명망에 보답한 것이다. 이 한 가지 사건을 보고도 당시의 형세를 미루어 살필 수 있다. 다카우지(尊) 씨는 처음부터 왕에 대한 충성심이 있었던 것이 아니고, 그 권위는 왕에게 충성했기 때문에 얻은 것이 아니라, 아시카가(足利) 가문에 속하는 고유한 권위이다. 그 왕에게 충성한 것은 한 때 호조(北条)를 타도하기 위하여 자기에게 편리해서 충성을 했어도, 일단 그것을 타도하면 왕에게 충성하는 술수를 쓰지 않더라도 자신의 가문의 권위에 손해되는 바가 없다. 그것이 그 반복이 끝이 없고 또 가마쿠라(鎌倉)에 의지하여 자립한 이유이다. 마사시게(正成)와 같은 것은 곧 그렇지 않다. 가와치(河内)의 한 작고 한미한 가족에서 일어나, 왕에 대한 충성이라는 명분으로써 겨우 수백 명의 군사를 모아, 천신만고를 겪고 특별한 공로를 이루었어도, 어찌하여 명망이 부족하여 관동(関東)의 명문가와 어깨를 나란히 함이 부족하고, 아시카가(足利) 무리의 눈으로 그것을 보면 예속과 같을 따름이다. 천황은 본래 마사시게(正成)의 공을 모르는 것이 아니어도, 인심으로 거슬러 그것을 으뜸 공적의 반열에 놓을 수가 없다. 그래서 아시카가(足利)는 황실을 다스리는 자이고, 구노스키(楠) 씨는 황실에 다스림을 받는 자이다. 그것 역시 한 세대의 형세이니 어찌할 수 없다. 또 마사시게(正成)는 원래 왕에 대한 충성이라는 두 글자로 권력을 얻은 자라면, 천하에 왕에 대한 충성의 기풍이 번성하면 마사시게(正成)도 번성하고, 그렇지 않으면 마사시게(正成)도 역시 궁핍한 이치이다. 그런데 지금 이 왕에 대한 충성을 먼저 부르짓는 마사시게(正成)가 다카우지(尊) 씨의 무리에 예속되어 이를 감내하고, 천황도 역시 그것을 어떻게 할 수 없었던 것은, 당시 천하에 왕에 대한 충성의 기풍이 부족한 것을 미루어 알 수 있다. 그러나 그 기풍이 부족한 원인은 무엇인가? 오로지 고다이고(後醍醐) 천황이 어리석은 때문은 아니다. 호겐헤이지(保元平治) 시대 이래 역대 천황을 보건대, 그 어리석음과 부덕함은 일일이 셀 여유가 없다. 후세의 사가들이 아첨의 붓을 놀리는 것도 아직 잘 그 죄를 덮을 수 없다.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싸우고 형제가 서로 죽이고, 그 무신에게 의뢰하는 자는 다만 자기 집안 혈육을 죽이기 위함일 뿐이다. 호조(北条)시대에 이르러서는 신하의 신하로써 천황의 폐위를 맡도록 할 뿐만 아니라, 황실의 제후가 서로 그 혈육을 신하의 신하에게 무고하여 지위를 다투는 데 이르렀다. 자기 가문의 상속을 다투는 데 바쁘면, 또 천하의 일을 돌보는 데 겨를이 없어서, 그것을 도외시한 것을 알 수 있다. 천황은 천하의 일에 관계하는 주인이 아니어서, 무사 가문의 위력에 속박된 노예일 따름이다. 《후시미<伏見> 천황이 은밀하게 호조 사다토키<北条貞時>에게 칙령을 내려 가메야마<亀山> 천황의 아들을 세우는 불리함을 설명하여, 자신의 왕자를 세워 2대 후시미<伏見> 천황으로 삼은 것에, 후시미<伏見>의 사촌동생인 고우다<後宇多> 상황<上皇>인 사다토키<貞時>에게 호소하여, 고후시미<後伏見>를 폐위하고, 고우다<後宇多> 천황의 왕자를 세운 일이 있다.》 고다이고(後醍醐) 천황이 훌륭한 군주는 아니라 하더라도, 이전 시대의 여러 천황과 비교하면 그 언행이 대단히 볼만한 것이 있다. 天어찌 홀로 황실 쇠잔의 죄를 뒤집어 쓸 이치가 있겠는가? 정권이 황실을 떠난 것은 외부로부터 그것을 탈취당한 것이 아니라, 여러 해 동안 세력을 누려서 황실 스스로 권력을 버려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그것을 줍게 만든 것이다. 그것은 곧 천하의 인심이, 무사 가문이 있는 것을 알되 황실이 있는 것은 알지 못하고, 관동(関東)이 있는 것은 알되 수도 교토가 있는 것은 알지 못하는 이유이다. 설사 천황으로 하여금 덕(德)을 갖추고 총명하게 하는 것도, 열 명의 마사시게(正成)를 얻어 대장군에 임명하는 것도, 이 쇠잔하여 남은 것을 이어받어 무슨 일을 이룰 수 있겠는가? 사람의 힘이 미치는 바가 아니다. 이에 따라서 그것을 보면, 아시카가(足利)의 업적도 우연이 아니고, 구스노키(楠) 씨가 전사한 것도 역시 우연이 아니고, 모두 그런 까닭의 원인이 있어서 그런 것이다. 그래서 말하는 바, 마사시게(正成)의 죽음은 고다이고(後醍醐) 천황의 어리석음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고, 시대의 형편 때문인 것이다. 마사시게(正成)는 다카우지(尊) 씨와 전투를 하다가 죽은 것이 아니고, 시대의 상황에 대항하다가 패배한 것이다.
앞에서 논하는 바와 같이, 영웅호걸의 시대에 맞지 못했다고 하는 것은, 다만 그 시대에 행해지는 일반적인 기풍에 맞지 않아서 마음먹은 바와 어긋난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천재일우의 시대를 얻어 업적을 이루었다고 하는 것도, 역시 다만 시대의 추이에 맞추어 백성의 기력을 잡았던 것을 말할 따름이다. 1700년대에 아메리카 합중국이 독립한 것도 그 주모자 48인이 일을 일으킨 게 아니고, 「워싱턴」 한 사람의 전쟁 공로도 아니다. 48인의 대표자는 다만 13개 주의 주민에게 부여된 독립의 기력을 실제 상황에 표출하였고, 「워싱턴」은 그 기력을 전장에 사용했을 뿐이다. 그러므로 미국의 독립은 천재일우의 특별한 공적이 아니고, 설사 당시의 전쟁에서 패하여 한 때는 일을 그르치는 일이 있어도, 특별히 또 480명의 지사들이 있고, 특별히 또 10명의 「워싱턴」이 있어서 도저히 미국 국민은 독립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최근에는 4년 전 프랑스와 프러시아가 싸워서, 프랑스가 패주하는 것은 황제 「나폴레옹」 3세의 실책이어서, 프러시아의 승리는 그 재상 「비스마르크」의 공적이라고 하는 자가 있어도, 결코 그렇지 않다. 「나폴레옹」과 「비스마르크」의 지혜와 어리석음의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승패가 갈리는 까닭은 당시의 추세에서, 프러시아 국민은 하나로 단결하여 강하고, 프랑스 국민은 무리를 나누어 약했기 때문일 뿐이다. 「비스마르크」는 이 추세에 순응하여 프러시아 국민의 용기를 장악했고, 「나폴레옹」은 프랑스 국민이 향하는 곳을 거슬러 그 인심을 훼손했을 따름이다. 더욱 명백하게 증거를 보이겠다. 지금 「워싱턴」으로 중국의 황제를 삼고, 「웰링턴」으로 그 장군을 삼아, 중국의 군사력을 통솔하여 영국의 군대와 싸우는 일이 있으면, 그 승패가 어떻게 될 수 있는가? 설사 중국에 쇠로 만든 함선과 대포가 많아도, 영국의 화승총과 대형 범선 때문에 격파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보면, 전쟁의 승패는 장수에게서도 기인하지 않고, 또한 기계에서도 기인하지 않고, 다만 국민의 일반적인 기력에 있을 따름이다. 혹은 수만 명의 용사를 전쟁에 투입하여 패주하는 일이 있으면, 그것은 병졸이 아는 바가 아니고, 장수가 졸렬하여 병졸의 진퇴를 방해하여, 그 본연의 용기를 마음껏 펴지 못하게 한 죄이다.
또 한 가지 사례를 들어 말하겠다. 현재 일본정부에서 업적이 오르지 않아서 장관이 재주가 없는 것으로 돌리고, 오로지 인재를 얻기 위하여 이 사람을 등용하고 저 사람을 발탁하여 그것을 시도하지만, 업적이 실제로 변하는 것이 없다. 더욱이 이 인물이 부족하여 곧 외국인을 고용하여, 혹은 그것을 교사로 하거나 혹은 그것을 고문으로 마련하여 일을 도모하여도, 정부의 업적은 여전히 오르는 일이 없다. 그 업적이 오르지 않는 바에 관하여 그것을 보면, 정부의 관리는 실제로 재주가 없는 것과 같고, 교사와 고문을 위하여 고용한 외국인도 모두 어리석은 사람 같다. 그렇다하더라도 현재 정부의 고관은 국내의 인재들이고, 또 그 외 외국인이라 하더라도 어리석은 사람을 선택하여 고용한 것이 아니다. 그런즉 업적이 오르지 않는 것은 특별히 원인이 없다고 할 수 없다. 그 원인이 무엇인가? 정치를 실제로 실시하는 데 있어서 반드시 어떻게도 할 수 없는 사정이 있어, 그것이 원인이다. 이 사정이라는 것은 형언하기가 매우 어려워도, 일반적으로 소위 중과부적이어서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다. 정부가 실책을 저지르는 까닭은, 항상 중과부적이라는 것에 시달림을 당하는 것이다. 정부의 장관은 실책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알면서 그것을 행하는 것은 무엇인가? 장관은 세력이 없고, 중론(衆論)은 세력이 많아서, 어떻게도 할 수 없다. 이 중론(衆論)으로 인하여 초래되는 바를 찾으면, 진실로 그 처음 출처를 상세히 하지 않을 수 없다. 마치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과 같을지라도, 그 힘은 정부의 업무를 잘 제어하는 데 충분하다. 그러므로 정부의 업적이 올라가지 않는 것은 2, 3명의 관리의 죄가 아니라, 이 중론(衆論)의 죄이다. 세상 사람들은 오해하여 관리들의 처사를 탓하지 말라. 옛 사람들은 우선 임금 마음의 잘못을 바로잡는 것을 긴요한 일로 삼았다하더라도, 나의 주장은 그것과 다르다. 천하의 급한 일은 우선 중론(衆論)의 잘못을 바로잡는 데 있다. 무릇 관원이라는 자는 본래부터 가깝게 국가의 일을 접촉하는 자라면, 나라를 근심하는 마음도 스스로 깊고 절실하여서, 중론(衆論)의 잘못을 염려하여 여러 가지 방식으로 고심하여 그 잘못을 바로잡는 방법을 구하는 것이 당연하여도, 혹은 그렇지 않아서 그 관원도 역시 중론(衆論)을 만드는 자 중의 한 사람인지, 혹은 그 중론에 미혹되어 그것을 즐기는 자도 있을 것이다. 이 무리는 소위 사람을 염려하는 지위에 있으면서, 사람에게 염려하는 일을 행하는 자라고 할 수 있다. 정부 시책에서 때때로 스스로 세우고 스스로 깨뜨리는 것과 같은 실책이 있는 것도 이 무리가 일으키는 것이다. 그것 역시 국가를 위하여 어떻게도 할 수 없는 사정이 있으면, 나라를 걱정하는 학자는 단지 당연히 문명에 관한 이론을 주장하여, 관원이나 일반 국민이라는 차별 없이 동등하게 그것을 미혹 가운데서 구하여, 중론(衆論)의 방향을 고치도록 노력할 수 있을 뿐이다. 중론(衆論)이 향하는 바는 천하무적이니, 어찌 정부의 구구한 것을 염려하는 데 만족할 것인가? 어찌 관원의 사소함을 꾸짖는 데 만족할 것인가? 정부는 본래 중론(衆論)에 따라서 방향을 고치는 것이다. 그래서 말하는 바, 지금의 학자는 정부를 꾸짖지 말고 중론(衆論)의 잘못을 염려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은 말하여, 이 장(章)의 취지에 따르면, 천하의 사물은 모두 천하의 인심에 맡기어 옆에서 그것을 무엇이라고도 할 수 없고, 세상의 형세는 여전히 추위와 더위가 왔다가 가는 것과 같고 초목의 무성함과 시듦과 같아서 조금도 사람의 힘을 가할 수 없는 것인지, 정부와 인간에게 쓸모가 없고, 학자도 무용지물, 상인도 기술자도 다만 자연에 맡겨, 각자 스스로 노력할 수 있는 직분이 없는 것 같고, 그것을 문명진보의 형국이라고 하는가? 답하여 말하되, 결단코 그렇지 않다. 앞에서 이미 논한 바와 같이, 문명이 인간의 약속이라면, 그것을 달성하는 것은 본래 인간의 목적이다. 그것을 달성하는 때를 맞아 각자는 그 직분이 없을 수 없다. 정부는 사물의 순서를 담당하여 현재의 시책을 펴고, 학자는 전후에 주의하여 미래를 계획하고, 기술자와 상업인은 사사로운 직업을 경영하여 스스로 국부(國富)을 이루는 등, 각각의 직분을 나누어 문명의 한 국면을 노력하는 것이다. 물론 정부라 하더라도 전후에 주의하지 않을 수 없고, 학자에게도 현재의 일이 없을 수 없고, 또 정부의 관원도 학자들 안에서 나오는 것이라면, 이 직분과 저 직분이 같은 모양일 수 있는 것과 비슷하다할지라도, 이미 관청과 민간의 경계를 나누어, 그 본래 직분을 정하여 경계선을 명확히 하면, 현재와 미래의 구별이 없을 수 없다. 지금 국가에 일이 있으면 그 일의 선봉에 맞서서 즉시 가부를 결정하는 것이 정부의 책무이지만, 평소 잘 세상의 형세를 살펴서 장래를 대비하는 것이, 혹은 그 일을 초래하거나 혹은 그것을 미연에 방지하는 것은 학자의 직분이다. 세간의 학자 더러는 이 이치를 알지 못하고 들떠서 일을 좋아하여, 자기의 본분을 망각하여 세상에서 분주히 돌아다니고, 심하게는 관원에게 마음대로 다루어져 눈앞의 이해(利害)를 처리하려다가, 그 일을 이룰 수 없어서 오히려 학자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자가 있다. 미혹에 빠지는 일이 심하다. 생각건대 정부가 하는 일은 더욱 외과의술과 같고, 학자의 이론은 더욱 양생법(養生法)과 같다. 그 효능에 느리고 빠름과 완만하고 급한 차이가 있다할지라도, 함께 사람의 몸을 위해서는 빠질 수 없는 것이 같다. 다만 한 가지 크게 요긴한 것은 서로 그 역할을 방해하지 않고 오히려 서로 도와서, 상호간에 서로 자극하고 상호간에 서로 격려하여, 문명의 진보에 조금이라도 방해를 하지 않은 것에 있을 따름이다.
巻之二
第四章 一国人民の智徳を論ず
前章に文明は人の智徳の進歩なりと云へり。然ば則ち爰に有智有徳の人あらん、これを文明の人と名く可きや。云く、然り、これを名けて文明の人と云ふ可し。然りと雖ども此人の住居する国を目して文明の国と名く可きや否は今だ知る可らざるなり。文明は一人の身に就て論ず可らず、全国の有様に就て見る可きものなり。今西洋諸国を文明と云ひ亜細亜諸国を半開と云ふと雖ども、二、三の人物を挙てこれを論ずれば、西洋にも頑陋至愚の民あり、亜細亜にも智徳俊英の士あり。然り而して西洋を文明とし亜細亜を不文とするものは、西洋に於てはこの至愚の民、其愚を逞ふすること能はず、亜細亜に於てはこの俊英の士、其智徳を逞ふすること能はざるを以てなり。其これを逞ふするを得ざるは何ぞや。一人の智愚に由るに非ず、全国に行はるゝ気風に制せらるればなり。故に文明の在る所を求めんとするには、先づ其国を制する気風の在る所を察せざる可らず。且其気風は即ち一国の人民に有する智徳の現像にして、或は進み或は退き、或は増し或は減じ、進退増減瞬間も止むことなくして恰も全国運動の源なるが故に、一度びこの気風の在る所を探得れば天下の事物一として明瞭ならざるはなく、其利害得失を察してこれを論ずること物を嚢中に探るよりも易かる可し。
右の如くこの気風なるものは一人の気風に非ずして全国の気風なれば、今一場の事に就てこれを察せんとするも、目見る可らず耳聞く可らず、或は適(たまた)まこれを見聞きしたることありと云ふも、其所見所聞に随ひ常に齟齬を生じて事の真面目を断ずるに足らず。譬へば一国の山沢を計るには、其国中に布在せる山沢の坪数を測量し、其総計を記してこれを山国と名け又は沢国と名く可し、稀に大山大沢あればとて遽に臆断してこれを山国沢国と云ふ可らざるが如し。故に全国人民の気風を知り其智徳の趣を探らんとするには、其働の相集りて世間一般の実跡に顕はるゝものを見てこれを察せざる可らず。或は此智徳は人の智徳に非ずして国の智徳と名く可きものなり。蓋し国の智徳とは国中一般に分賦せる智徳の全量を指して名を下だしたるものなればなり。既に其量の多少を知れば其進退増減を察し其運動方向を明にするも亦難きに非ず。抑も智徳の運動は恰も大風の如く又河流の如し。大風北より南に吹き、河水西より東に流れ、其緩急方向は高き処より眺(目+永)て明にこれを見る可しと雖ども、退て家の内に入れば風なきが如く、土堤の際を見れば水流れざるが如し。或は甚しくこれを妨るものあれば、全く其方向を変じて逆に流るゝこともあり。然りと雖ども其逆に流るゝはこれを妨ぐるものありて然るものなれば、局処の逆流を見て河流の方向を臆断し難し。必ず其所見を高遠にせざる可らず。譬へば経済論に、富有の基は正直と勉強と倹約との三箇条に在りと云へり。今西洋の商人と日本の商人とを比較して其商売の趣を見るに、日本の商人必ずしも不正に非ず、亦必ずしも懶惰に非ず、加之其質素倹約の風に至ては遥に西洋人の及ばざる所あり。然るに一国商売の事跡に顕るゝ貧富に就て見れば、日本は遥に西洋の諸国に及び難し。又支那は往古より礼儀の国と称し、其言或は自負に似たれども、事に実あらざれば名も亦ある可らず。古来支那には実に礼儀の士君子ありて其事業称す可きもの少なからず。今日に至ても其人物乏しきに非ざる可しと雖ども、全国の有様を見れば人を殺し物を盗む者は甚だ多く、刑法は極て厳刻なれども罪人の数は常に減ずることなし。其人情風俗の卑屈賎劣なるは真に亜細亜国の骨法を表し得たるものと云ふ可し。故に支那は礼儀の国に非ず、礼儀の人の住居する国と云ふ可きなり。
人の心の働は千緒万端、朝は夕に異なり、夜は昼に同じからず。今日の君子は明日の小人と為る可し、今年の敵は明年の朋友と為る可し。其機変愈出れば愈奇なり。幻の如く魔の如く、思議す可らず測量す可らず。他人の心を忖度す可らざるは固より論を俟たず、夫婦親子の間と雖ども互に其心機の変を測る可らず。啻に夫婦親子のみならず、自己の心を以て自からよく其心の変化を制するに足らず。所謂今吾は古吾に非ずとは即是れなり。其情状恰も晴雨の測る可らざるが如し。昔木下藤吉主人の金六両を攘て出奔し、此六両の金を武家奉公の資と為して始て織田信長に仕へ、次第に立身するに従て丹羽柴田の名望を慕ひ、羽柴秀吉と姓名を改めて織田氏の隊長と為り、其後無窮の時変に遭ひ、或は敗し或は成り、機に投じ変に応じて、遂に日本国中を押領し、豊臣太閤の名を以て全国の政権を一手に握り、今日に至るまでも其功業の盛なるを称ぜざるものなし。然りと雖ども初め藤吉が六両の金を攘て出奔するとき、豈日本国中を押領するの素志あらんや。
既に信長に仕へし後も僅に丹羽柴田の名望を羨て自から姓名をも改めたるに非ずや。其志の小なること推て知る可し。故に主人の金を攘て縛(ばく)に就かざりしは盗賊の身に於て望の外のことなり。次で信長に仕て隊長と為りしは藤吉の身に於て望の外のことなり。又数年の成敗を経て遂に日本国中を押領せしは羽柴秀吉の身に於て望の外のことなり。今此人が太閤の地位に居て顧て前年六両の金を攘みし時の有様を回想せば、生涯の事業一として偶然に成らざるものなく、正に是れ夢中又夢に入るの心地なる可し。後世の学者豊太閤を評する者、皆其豊太閤たりし時の言行を以て其一生の人物を証せんとするが故に大なる誤解を生ずるなり。藤吉と云ひ羽柴と云ひ豊太閤と云ふも、皆一人生涯の間の一段にて、藤吉たるときは藤吉の心あり、羽柴たるときは羽柴の心あり、太閤たるに至れば自から又太閤の心ありて、其心の働、始中終の三段に於て一様なる可らず。尚細にこれを論ずれば、生涯の心の働は千段にも万段にも区別して千状万態の変化を見る可し。古今の学者此理を知らずして、人物を評するに当り其口吻として、某は幼にして大志ありと云ひ、某は三歳のときに斯の奇言を発したりと云ひ、某は五歳のときに斯の奇行ありと云ひ、甚しきは生前の吉祥を記し、又は夢を説て人の言行録の一部と為すものあるに至れり。惑へるも亦甚しと云ふ可し。《世の正史と称する書中に、豊太閤の母は太陽の懐に入るを夢みて妊娠し、後醍醐帝は南木の夢に感じて楠氏を得たりと云ひ、又漢の高祖は竜の瑞を得て生れ其顔竜に似たりと云ふ。此類の虚誕妄説を計れば和漢の史中枚挙に遑あらず。世の学者は此妄説を唱て啻に他人を誑かすのみならず、己も亦これに惑溺して自から信ずる者の如し。気の毒千万なりと云ふ可し。必竟古を慕ふの痼疾よりして妄に古人を尊祟し、其人物の死後より遥に其事業を見て之を奇にし、今人の耳目を驚かして及ぶ可らざるものゝ如くせんがために、牽強附会の説を作りたるのみ。これを売卜者流の妄言と云て可なり。》抑も人たる者は其天賦と教育とに由り、自から其志操の高き者もあり或は賎しき者もありて、其高き者は高き事に志し、其賎しき者は賎しき事に志し、其志操に大体の方向あるは固より論を俟たずと雖ども、今こゝに論ずる所は大志ある者とて必ずしも大業を成すに非ず、大業を成す者とて必ずしも幼年の時より生涯の成功を期するに非ず、仮令ひ大体の志操は方向を定るも、其心匠と事業とは随て変じ随て進み、進退変化窮りなく、偶然の勢に乗じて遂に大事業をも成すものなりとの次第を記したるなり。学者此趣意を誤解する勿れ。
前の所論に由てこれを観れば、人の心の変化を察するは人力の及ぶ所に非ず、到底(ツマリ)其働は皆偶然に出て更に規則なきものと云て可ならん乎。答云く、決して然らず。文明を論ずる学者には自から此変化を察するの一法あり。この法に拠てこれを求れば、人心の働には啻に一定の規則あるのみならず、其定則の正しきこと実物の方円を見るが如く、版に押したる文字を読むが如く、これを誤解せんと欲するも得て誤解す可らず。蓋し其法とは何ぞや。天下の人心を一体に視做して、久しき時限の間に広く比較して、其事跡に顕はるゝものを証するの法、即是れなり。譬へば晴雨の如きも朝の晴は以て夕の雨を卜す可らず、況や数十日の間に幾日の晴あり幾日の雨ありと一定の規則を立てんとするも人智の及ぶ所に非ず。されども一年の間に晴雨の日を平均して計れば、晴は雨よりも多きこと知る可し。又これを一処の地方にて計るよりも広く一州一国に及ぼすときは、其晴雨の日数愈精密なる可し。又この実験を拡て遠く世界中に及ぼし、前数十年と後数十年との晴雨を計て其日数を比較しなば、前後必ず一様にして数日の差もなかる可し。或はこれを百年に及ぼし千年に及ぼすことあらば、正しく一分時の差なきに至る可し。人心の働も亦斯の如し。今一身一家に就て其人の働を察すれば更に規則の存するを見ずと雖ども、広く一国に就てこれを求れば其規則の正しきこと彼の晴雨の日数を平均して其割合の精密なるに異ならず。某の国某の時代には、其国の智徳この方向に赴き、或は此の原因に由て此の度に進み、或は彼の故障に妨げられて彼の度に退きたりと、恰も有形の物に就て其進退方向を見るが如し。英人「ボックル」氏の英国文明史に云く、一国の人心を一体と為して之を見れば其働に定則あること実に驚くに堪たり、犯罪は人の心の働なり、一人の身に就てこれを見れば固より其働に規則ある可らずと雖ども、其国の事情に異変あるに非ざれば罪人の数は毎年異なることなし、譬へば人を殺害する者の如きは多くは一時の怒に乗ずるものなれば、一人の身に於て誰か預(あらかじ)めこれを期し、来年の何月何日に何人を殺さんと自から思慮する者あらんや、然るに仏蘭西全国にて人を殺したる罪人を計るに、其数毎年同様なるのみならず、其殺害に用ひたる器の種類までも毎年異なることなし、尚これよりも不思議なるは自殺する者なり、抑も自殺の事柄たるや、他より命ず可きに非ず、勧む可きに非ず、欺てこれに導く可らず、劫(おびやか)してこれを強ゆ可らず、正に一心の決する所に出るものなれば、其数に規則あらんとは思ふ可らず、然るに千八百四十六年より五十年に至るまで、毎年竜動(ろんどん)に於て自殺する者の数、多きは二百六十六人、少なきは二百十三人にして、平均二百四十人を定りの数とせりと。以上「ボックル」氏の論なり。又こゝに近く一例を挙て云はん。商売上に於て物を売る者は、これを客に強ひて買はしむ可らず。これを買ふと買はざるとは全く買主の権に在り。然るに売物の仕入を為す者は、大抵世間の景気を察して常に余計の品を貯ることなし。米麦反物等は腐敗の恐もなく或は仕入に過分あるも即時に損亡を見ずと雖ども、暑中に魚肉又は蒸菓子等を仕入るゝ者は、朝に仕入れて夕に売れざれば立どころに全損を蒙る可し。然るに暑中試に東京の菓子屋に行き蒸菓子を求れば、終日これを売り、日暮に至れば品のありたけを売払て、夜に入り残品の腐敗せしものあるを聞かず。其都合よきこと正しく売主と買主と預め約束せしが如く、彼の日暮に品のありたけを買ふ人は、恰も自分の便不便は擱き、唯菓子屋の仕入に余あらんことを恐れてこれを買ふものゝ如し。豈奇ならずや。今菓子屋の有様は斯の如しと雖ども、退て市中の毎戸に至り、一年の間に幾度び蒸菓子を喰ひ、何れの店にて幾許の品を買ふやと尋ねなば、人皆これに答ること能はざる可し。故に蒸菓子を喰ふ人の心の働は一人に就て見る可らずと雖ども、市中の人心を一体にしてこれを察すれば、其これを喰ふ心の働には必ず定則ありて、明に其進退方向を見る可きなり。
故に天下の形勢は一事一物に就て臆断す可きものに非ず。必ずしも広く事物の働を見て一般の実跡に顕はるゝ所を察し、此と彼とを比較するに非ざれば真の情実を明にするに足らず。斯の如く広く実際に就て詮索するの法を、西洋の語にて「スタチスチク」と名く。此法は人間の事業を察して其利害得失を明にするため欠く可らざるものにて、近来西洋の学者は専ら此法を用ひて事物の探索に所得多しと云ふ。凡そ土地人民の多少、物価賃銭の高低、婚する者、病に罹る者、死する者等、一々其数を記して表を作り、此彼相比較するときは、世間の事情、これを探るに由なきものも、一目して瞭然たることあり。譬へば英国にて毎年婚姻する者の数は穀物の価に従ひ、穀物の価貴ければ婚姻少なく、其価下落すれば婚姻多く、嘗て其割合を誤ることなしと云へり。日本には未だ「スタチスチク」の表を作る者あらざれば之を知る可らずと雖ども、婚姻の数は必ず米麦の価に従ふことなる可し。男女室に居るは人の大倫なり(結婚は人生の重大事である『孟子』万章上二)とて、世人皆其礼を重んじ軽率に行ふ可きものに非ず。当人相互ひの好悪もあり、身分貧富の都合もあり、父母の命にも従はざる可らず、媒妁の言をも待たざる可らず、其他百般の事情に由り、此も彼も都合よくして其縁談の整ふはこれを偶然と云はざるを得ず。実に其然るを図らずして然るものゝ如し。世に婚姻を奇縁と云ひ、又は出雲の大社結縁の神説あるも、皆婚姻の偶然に出るを証したるものなり。然るに今其実に就てこれを見れば決して偶然に非ず、当人の意に由て成る可らず、父母の命に従て整ふ可らず、媒妁の能弁と雖ども結縁の神霊と雖ども、世間一般の婚姻を如何ともすること能はず。当人の心をも、父母の命をも、媒妁の言をも、大社の神力をも、概してこれを制圧し、自由自在にこれを御して、或は世の縁談を整はしめ、或はこれを破れしむるものは、世間唯有力なる米の相場あるのみ。
此趣意に従て事物を詮索すれば、其働の原因を求るに付き大なる便利あり。抑も事物の働には必ず其原因なかる可らず。而してこの原因を近因と遠因との二様に区別し、近因は見易くして遠因は弁じ難し。近因の数は多くして遠因の数は少なし。近因は動もすれば混雑して人の耳目を惑はすことあれども、遠因は一度び之を探得れば確実にして動くことなし。故に原因を探るの要は近因より次第に遡て遠因に及ぼすに在り。其遡ること愈遠ければ原因の数は愈減少し、一因を以て数様の働を説く可し。今水に沸騰の働を起すものは薪の火なり、人に呼吸の働を生ずるものは空気なり。故に空気は呼吸の原因にして薪は沸騰の原因なれども、唯この原因のみを探得るも未だ詮索を尽したりとするに足らず。元来この薪の燃る所以は薪の質中にある炭素と空気中の酸素と抱合して熱を発するに由り、人の呼吸する所以は空気の中より酸素を引き肺臓に於て血中過剰の炭素と親和して又これを吐出すに由るものなれば、薪と空気とは唯近因にして其遠因は則ち酸素なるものあり。故に水の沸騰と人の呼吸とは其働の趣も異なり其近因も亦異なりと雖ども、尚一歩を進め其遠因なる酸素を得て、始て沸騰の働と呼吸の働とを同一の原因に帰して確実なる議論を定む可きなり。前に云へる世の婚姻の如きも、其近因を云へば当人の心、父母の命、媒妁の言、其他諸般の都合に由て成るものゝ如しと雖ども、この近因にては未だ事情を詳にするに足らざるのみならず、却て混雑を生じて人の耳目を惑はすことあり。乃ちこの近因を捨て、進て遠因のある所を探り、食物の価なるものを得て、始て婚姻の多寡を制する真の原因に逢ひ、確実不抜の規則を見るなり。
又一例を挙て云はん。こゝに酒客あり、馬より落て腰を打ち、遂に半身不随の症に陥りたり。之を療するの法如何す可きや。此病の原因は落馬なりとて、其腰に膏薬を帖し、専ら打撲治療の法を施して可ならん乎。若し然る者はこれを庸医(ようい 薮医者)と云はざる可らず。畢竟落馬は唯この病の近因のみ。其実は多年飲酒の不養生に由り、既に脊髄の衰弱を起して正にこの病症を発せんとするときに当り、会(たまた)ま落馬を以て全身を激動しこれがため頓(とみ)に半身の不随を発したるのみ。故にこの病を療するの術は、先づ飲酒を禁じて病の遠因なる脊髄の衰弱を回復せしむるの在るのみ。少しく医学に志す者は是等の病原を弁じて其療法を施すこと容易なれども、世の文明を論ずる学者に至ては則ち然らず、比々皆庸医の類のみ。近く耳目の聞見する所に惑溺して事物の遠因を索(もとむ)るを知らず、此に欺かれ彼に蔽はれ、妄に小言を発して恣に大事を行はんとし、寸前暗黒、暗夜に棒を振るが如し。其本人を思へば憐む可し、世の為を思へば恐る可し。慎まざる可らず。
前段に論ずる如く、世の文明は周ねく其国民一般に分賦せる智徳の現像なれば、其国の治乱興廃も亦一般の智徳に関係するものにて、二、三の人の能する所に非ず。全国の勢は進めんとするも進む可らず、留めんとするも留む可らず。左に歴史の二、三箇条を掲げて其次第を示さん。元来理論中に史文を用れば、其文章長くして或は読者をして厭はしむるの恐なきに非ざれども、史に拠て事を説くは、小児に苦薬を与ふるに砂糖を和して其口を悦ばしむるが如し。蓋し初学の人の精神には無形の理論を解すること甚だ易からず、故に史論に交へて其理を示すときは、自から了解を速にするの便利あればなり。窃に和漢の歴史を按ずるに、古より英雄豪傑の士君子、時に遇ふ者極て稀なり。自から之を歎息して不平を鳴らし、後世の学者も之を追悼して涙を垂れざるものなし。孔子も時に遇はずと云ひ、孟子も亦然り。道真は筑紫に謫せられ、正成は湊川に死し、是等の例は枚挙に遑あらず。古今遇ま世に功業を成す者あれば之を千歳一遇と称す。蓋し時に遇ふの難きを評したるものなり。然り而して彼の所謂時なるものは何物を指して云ふ乎。周の諸侯よく孔孟を用ひて国政を任じたらば必ず天下を太平に治む可き筈なるに、之を用ひざるは当時の諸侯の罪なりと云ふ乎。道真の遠謫、正成の討死は、藤原氏と後醍醐天皇の罪なりと云ふ乎。然ば則ち時に遇はずとは二、三の人の心に遇はずと云ふことにて、其時なるものは唯二、三の人の心を以て作る可きものならん乎。若し周の諸侯の心をして偶然に孔孟を悦ばしめ、後醍醐天皇をして楠氏の策に従はしめなば、果して各其事を成して、今の学者が想像する如き千歳一遇の大功を奏したることならん乎。所謂時とは二、三の人心と云ふに異ならざる乎。時に遇はずとは英雄豪傑の心と人君の心と齟齬すると云ふ義ならん乎。余輩の所見は全く之に異なり。孔孟の用ひられざるは周の諸侯の罪に非ず、諸侯をして之を用ひしめざるものあり。楠氏の討死は後醍醐天皇の不明に非ず、楠氏をして死地に陥らしめたるものは別にこれあり。蓋し其これを、せしめたる、ものとは何ぞや。即ち時勢なり。即ち当時の人の気風なり。即ち其時代の人民に分賦せる智徳の有様なり。請ふ試に之を論ぜん。天下の形勢は猶蒸気船の走るが如く、天下の事に当る者は猶航海者の如し。千「トン」の船に五百馬力の蒸気機関を仕掛け、一時に五里を走て十日に千二百里の海を渡る可し。之を此蒸気船の速力とす。如何なる航海者にて如何なる工夫を運らすも、此五百馬力を増して五百五十馬力と為す可らず。千二百里の航海を早くして九日に終るの術ある可らず。航海者の職掌は唯其機関の力を妨げずして運転の作用を逞ふせしむるに在るのみ。 或は二度の航海に初は十五日を費し後には十日にて達したることあらば、こは後の航海者の巧なるに非ず、初度の航海者の拙にして蒸気の力を妨げたる証なり。人の拙には限ある可らず。此蒸気を以て十五日も費す可し二十日も費す可し、或は其極に至らば全く働なきものと為すこともある可しと雖ども、人の巧を以て機関の本然になき力を造るの理は万々ある可らず。世の治乱興廃も亦斯の如し。其大勢の動くに当て、二、三の人物国政を執り天下の人心を動かさんとするも決して行はる可きことに非ず。況や其人心に背て独り己の意に従はしめんとするものに於てをや。其難きこと船に乗て陸を走らんとするに異ならず。古より英雄豪傑の世に事を成したりと云ふは、其人の技術を以て人民の智徳を進めたるに非ず、唯其智徳の進歩に当てこれを妨げざりしのみ。試に見よ、天下の商人、夏は氷を売り冬はたどんを売るに非ずや。唯世間の人心に従ふのみ。今冬に当て氷の店を開き、夏の夜にたどんを売る者あらば、人誰かこれを愚者と云はざらん。然り而して彼の英雄豪傑の士に至ては独り然らず、風雪の厳寒に氷を売らんとして之を買ふ者あらざれば、則ち其買はざる者に罪を帰して独り自から不平を訴るは何ぞや。思はざるの甚しきものなり。英雄豪傑、氷の売れざるを患ひなば、之を貯て夏の至るを待ち、其これを待つの間に勉て氷の功能を説き、世人をして氷なるものあるを知らしむるに若かず。果して其物に実の功能あれば、時節至てこれを買ふ者もある可し。或は又実の功能もなくして到底売る可き目途なくば、断じて其商売を止む可きなり。
周の末世に及て天下の人皆王室礼儀の束縛を悦ばず、其束縛漸く解くるに従ひ、諸侯は天子に背き、大夫は諸侯を制し、或は陪臣国命を執る者ありて、天下の政権は四分五裂、正に是れ封建の貴族権を争ふの時節にて、又唐虞辞譲(禅譲)の風を慕ふ者なく、天下唯貴族あるを知て人民あるを知らざるなり。故に貴族の弱小なる者を助けて其強大なる者を制すれば、則ち天下の人心に適して一世の権柄を執る可し。斉桓(斉の桓公)晋文(晋の文公)の霸業、即是なり。此時に当て孔子は独り堯舜の治風を主張し、無形の徳義を以て天下を化するの説を唱ふれども、固より事実に行はる可らず。当時を以て孔子の事業を見るに、彼の管仲(桓公の宰相)の輩が時勢に順ふの巧なるに及ばざること遠し。孟子に至ては其事益難し。当時封建の衆貴族漸く合一の勢に赴き、弱を助け強を制するの霸業は又行はれずして、強は弱を滅ぼし大は小を併するの時節と為り、蘇秦張儀の輩正に四方に奔走して、或は其事を助け或は之を破り、合縦連衡の戦争に忙はしき世なれば、貴族と雖ども自から其身を安んずるを得ず。奈何ぞ人民を思ふに遑あらんや、奈何ぞ五畝の宅(国民の暮し『孟子』梁恵上三)を顧るに遑あらんや。唯全国の力を攻防の事に用ひて君長一己の安全を謀るのみ。仮令ひ或は明主仁君あるも、孟子の言を聞て仁政を施せば政と共に身を危ふするの恐あり、即ち滕(春秋戦国時代の小国)の斉楚に介(はさ)まりて孟子に銘策なかりしも其一証なり(梁恵下一三)。余輩敢て管仲蘇張に左袒して孔孟を擯斥するに非ずと雖ども、唯此二大家が時勢を知らず、其学問を当時の政治に施さんとして、却て世間の嘲を取り、後世に益することなきを悲むのみ。孔孟は一世の大学者なり、古来稀有の思想者なり。若し此人をして卓見を抱かしめ、当時に行はるゝ政治の範囲を脱して恰も別に一世界を開き、人類の本分を説て万代に差支なき教を定ることあらしめなば、其功徳必ず洪大なる可き筈なるに、終身この範囲の内に籠絡せられて一歩を脱すること能はず、其説く所もこれがため自から体裁を失ひ、純精の理論に非ずして過半は政談を交へ、所謂「ヒロソヒイ」の品価を落すものなり。其道に従事する輩は、仮令ひ万巻の書を読むも、政府の上に立て事を為すに非ざれば他に用なきが如く、退て窃に不平を鳴すのみ。豈これを鄙劣(ひれつ)と云はざる可けんや。此学流若し周ねく世に行はれなば、天下の人は悉皆政府の上に立て政を行ふの人にして、政府の下に居て政を被る者はなかる可し。人に智愚上下の区別を作り、己れ自から智人の位に居て愚民を治めんとするに急なるが故に、世の政治に関らんとするの心も亦急なり。遂に熱中煩悶して喪家の狗(世に受け入れられずに落ちぶれた人)の譏を招くに至れり。余輩は聖人のために之を恥るなり。又其学流の道を政治に施すの一事に就ても大なる差支あり。元来孔孟の本説は修心倫常の道なり。畢竟無形の仁義道徳を論ずるものにて、之を心の学と云ふも可なり。道徳も純精無雑なれば之を軽んず可らず。一身の私に於ては其功能極て大なりと雖ども、徳は一人の内に存して、有形の外物に接するの働あるものに非ず。故に無為渾沌にして人事少なき世に在ては人民を維持するに便利なれども、人文の開るに従て次第に其力を失はざるを得ず。然るに今内に存する無形のものを以て外に顕はるゝ有形の政に施し、古の道を以て今世の人事を処し、情実を以て下民を御せんとするは、惑溺の甚しきものと云ふ可し。其時と処とを知らざるは、恰も船を以て陸を走らんとし、盛夏の時節に裘(かはごろも)を求るが如し。到底事実に行はる可らざるの策なり。其明証は数千年の久しき今日に至るまで、孔孟の道を政に施してよく天下を治めたる者なきを以て徴す可し。故に云く、孔孟の用ひられざるは諸侯の罪に非ず、其時代の勢に妨げられたるものなり。後世の政に其道の行はれざるは道の失に非ず、之を施すに時と場所とを誤りたるものなり。周の時代は孔孟に適する時代に非ず、孔孟は此時代に在て現に事を為す可き人物に非ず。其道も後世に於ては政治に施す可き道に非ず、理論家の説《ヒロソヒイ》と政治家の事《ポリチカルマタル》とは大に区別あるものなり。後の学者、孔孟の道に由て政治の法を求る勿れ。此事に就ては書中別に又論ずる所ある可し。
楠氏の死も亦時勢の然らしむるものなり。日本にて政権の王室を去ること日既に久し。保元平治の以前より兵馬の権は全く源平二氏に帰して、天下の武士皆其隷属にあらざるはなし。頼朝、父祖の遺業を継で関東に起り、日本国中一人として之に抗する者なきは、天下の人皆関東の兵力に畏服し、源氏あるを知て王室あるを知らざればなり。北条氏次で政権を執ると雖ども、鎌倉の旧物を改めず。是亦源氏の余光に頼るものなり。北条氏亡て足利氏起るも亦源氏の門閥を以て事を成したる者なり。北条足利の際に当て諸方の武士兵を挙げて、名は勤王と云ふと雖ども、其実は試に関東に抗して功名を謀るものなり。或は此勤王の輩をして果して其意を得せしめなば、必ず又第二の北条たる可し、第二の足利たる可し。天子のために謀れば前門の虎を逐て後門の狼に逢ふが如きのみ。織田豊臣徳川の事跡を見て之を証す可し。鎌倉以後天下に事を挙る者は一人として勤王の説を唱へざるものなくして、事成る後は一人として勤王の実を行ふたるものなし。勤王は唯其事を企る間の口実にして、事成る後の事実に非ず。史に云く、後醍醐天皇北条氏を滅し、首として足利尊氏の功を賞して諸将の上に置き、新田義貞をして之に亜(つ)がしめ、楠正成以下勤王の功臣は之を捨てゝ顧みず、遂に尊氏をして野心を逞ふせしめ、再び王室の衰微を致せりとて、今日に至るまでも世の学者、歴史を読て此一段に至れば切歯扼腕、尊氏の兇悪を憤て天皇の不明を歎ぜざる者なし。蓋し時勢を知らざる者の論なり。此時に当り天下の権柄は武家の手に在て、武家の根本は関東に在り。北条を滅したる者も関東の武士なり、天皇をして位に復せしめたる者も関東の武士なり。足利氏は関東の名家、声望素より高し。当時関西の諸族、勤王の義を唱ると雖ども、足利が向背を改るに非ずんば安ぞよく復位の業を成すを得んや。事成るの日に之を首功と為したるも、天皇の意を以て尊氏が汗馬の労を賞したるに非ず、時勢に従て足利家の名望に報じたるものなり。此一事を見ても当時の形勢を推察す可し。尊氏は初より勤王の心あるに非ず、其権威は勤王のために得たるものに非ず、足利の家に属したる固有の権威なり。其王に勤めたるは一時北条を倒さんがため私に便利なるを以て勤めたれども、既に之を倒せば勤王の術を用ひざるも自家の権威に損する所なし。是れ其反覆窮りなく又鎌倉に拠て自立したる由縁なり。正成の如きは則ち然らず。河内の一小寒族より起り、勤王の名を以て僅に数百人の士卒を募り、千辛万苦奇功を奏したりと雖ども、唯如何せん名望に乏しくして関東の名家と肩を並るに足らず、足利輩の目を以て之を見れば隷属に等しきのみ。皇固より正成の功を知らざるに非ずと雖ども、人心に戻て之を首功の列に置くを得ず。故に足利は王室を御する者にして、楠氏は王室に御せらるゝ者なり。是亦一世の形勢にて如何ともす可らず。且正成は、もと勤王の二字に由て権を得たる者なれば、天下に勤王の気風盛なれば正成も亦盛なり、然らざれば正成も亦窮するの理なり。然るに今此勤王の首唱たる正成が尊氏の輩に隷属視せられて之を甘んじ、天皇も亦これを如何ともすること能はざるは、当時天下に勤王の気風乏しきこと推て知る可し。而して其気風の乏しき所以は何ぞや。独り後醍醐天皇の不明に由るに非ず。保元平治以来歴代の天皇を見るに、其不明不徳は枚挙に遑あらず。後世の史家諂諛(てんゆ)の筆を運らすも尚よく其罪を庇ふこと能はず。父子相戦ひ兄弟相伐ち、其武臣に依頼するものは唯自家の骨肉を屠らんがためのみ。北条の時代に至ては陪臣を以て天子の廃立を司どるのみならず、王室の諸族互に其骨肉を陪臣に讒して位を争ふに至れり。自家の相続を争ふに忙はしければ、又天下の事を顧るに遑あらず、之を度外に置きしこと知る可し。天子は天下の事に関る主人に非ずして、武家の威力に束縛せらるゝ奴隷のみ。《伏見帝密に北条貞時に敕(勅)して亀山帝の後(子)を立るの不利を説き、帝の皇子を立てゝ後伏見帝と為したりに、伏見の従弟なる後宇多上皇貞時に訴へ、後伏見を廃して後宇多帝の皇子を立たることあり。》後醍醐天皇名君に非ずと云ふも、前代の諸帝に比すれば其言行頗る見る可きものあり。何ぞ独り王室衰廃の罪を蒙るの理あらんや。政権の王室を去るは他より之を奪ふたるに非ず、積年の勢にて由て王室自から其権柄を捨て他をして之を拾はしめたるなり。是即ち天下の人心、武家あるを知て王室あるを知らず、関東あるを知て京師あるを知らざる所以なり。仮令ひ天皇をして聖明ならしむるも、十名の正成を得て大将軍に任ずるも、此積弱の余を承て何事を成す可きや、人力の及ぶ所に非ず。是に由て之を観れば、足利の成業も偶然に非ず、楠氏の討死も亦偶然に非ず、皆其然る所以の源因ありて然るものなり。故に云く、正成の死は後醍醐天皇の不明に因るに非ず、時の勢に因るものなり。正成は尊氏と戦て死したるに非ず、時勢に敵して敗したるものなり。
右所論の如く、英雄豪傑の時に遇はずと云ふは、唯其時代に行はるゝ一般の気風に遇はずして心事の齟齬したることを云ふなり。故に其千歳一遇の時を得て事を成したりと云ふものも、亦唯時勢に適して人民の気力を逞ふせしめたることを云ふのみ。千七百年代に亜米利加合衆国の独立したるも其謀首四十八士の創業に非ず、「ワシントン」一人の戦功に非ず。四十八士の輩は唯十三州の人民に分賦せる独立の気力を事実の有様に顕はし、「ワシントン」は其気力を戦場に用ひたるのみ。故に合衆国の独立は千歳一遇の奇功に非ず、仮令ひ当時の戦に敗して一時は事を誤ることあるも、別に又四百八十士もあり、別に又十名の「ワシントン」もありて、到底合衆国の人民は独立せざる可らざる者なり。近くは四年前仏蘭西と孛魯士(ぷろしや)との戦に、仏の敗走は国帝第三世「ナポレオン」の失策にして、孛の勝利は其宰相「ビスマルク」の功なりと云ふ者あれども、決して然らず。「ナポレオン」と「ビスマルク」と智愚の差あるに非ず。其勝敗の異なりし所以は当時の勢にて、孛の人民は一和して強く、仏の人民は党を分て弱かりしがためのみ。「ビスマルク」は此勢に順て孛人の勇気を逞ふせしめ、「ナポレオン」は仏人の赴く所に逆ふて其人心に戻りたるがためのみ。尚明に其証を示さん。今「ワシントン」を以て支那の皇帝と為し、「ヱルリントン」を以て其将軍と為し、支那の軍勢を率ひて英国の兵隊と戦ふことあらば、其勝敗如何なる可きや。仮令ひ支那に鉄艦大砲の盛あるも、英の火縄筒と帆前船のために打破らる可し。是に由て観れば、戦の勝敗は将帥にも因らず、亦器械にも因らず、唯人民一般の気力に在るのみ。或は数万の勇士を戦に用ひて敗走することあらば、こは士卒の知る所に非ず、将帥の拙劣を以て兵卒の進退を妨げ、其本然の勇気を逞ふせしめざるの罪なり。
又一例を挙て云はん。方今日本の政府にて事務の挙らざるを以て長官の不才に帰し、専ら人才を得んとして此を登用し彼を抜擢して之を試れども、事務の実に変ることなし。尚此人物を不足なりとして乃ち外国人を雇ひ、或はこれを教師と為し或はこれを顧問に備へて事を謀れども、政府の事務は依然として挙ることなし。其事務の挙らざる所に就てこれを見れば、政府の官員は実に不才なるが如く、教師顧問のために雇たる外国人も悉皆愚人なるが如し。然りと雖ども方今政府の上に在る官員は国内の人才なり、又其外国人と雖ども愚人を撰てこれを雇たるものに非ず。然ば則ち事務の挙らざるは別に源因なかる可らず。其源因とは何ぞや。政を事実に施すに当て必ず如何ともす可らざるの事情あり、是れ其源因なり。此事情なるものはこれを名状すること甚だ難しと雖ども、俗に所謂多勢に無勢にて叶はぬと云ふことなり。政府の失策を行ふ由縁は、常にこの多勢に無勢なるものに窘めらるればなり。政府の長官其失策たるを知らざるに非ず。知てこれを行ふは何ぞや。長官は無勢なり、衆論は多勢なり、これを如何ともす可らず。此衆論の由て来る所を尋るに、真に其初発の出所を詳にす可らず。恰も天より降り来るものゝ如しと雖ども、其力よく政府の事務を制御するに足れり。故に政府の事務の挙らざるは二、三の官員の罪に非ず、この衆論の罪なり。世上の人誤て官員の処置を咎る勿れ。古人は先づ君心の非を正だすを以て緊要事と為したれども、余輩の説はこれに異なり。天下の急務は先づ衆論の非を正だすに在り。抑も官員たる者は固より近く国事に接するものなれば、其憂国の心も亦自から深切にして、衆論の非を患ひ百方苦慮して此非を正だすの術を求む可き筈なれども、或は然らずして其官員も亦衆論者中の一人なる歟、又は其論に惑溺してこれを悦ぶ者もあらん。此輩は所謂人を患るの地位に居て、人に患らるゝの事を為す者と云ふ可し。政府の処置に往々自から建てゝ自から毀つが如き失策あるも此輩の致す所なり。是亦国のために如何ともす可らざるの事情なれば、憂国の学者は唯須らく文明の説を主張し、官私の別なく等しく之を惑溺の中に救て、以て衆論の方向を改めしめんことを勉む可きのみ。衆論の向ふ所は天下に敵なし、奈何ぞ政府の区々たるを患ふるに足らん、奈何ぞ官員の瑣々(ささ)たるを咎るに足らん。政府は固より衆論に従て方向を改るものなり。故に云く、今の学者は政府を咎めずして衆論の非を憂ふ可きなり。
或人云く、此一章の趣意に従へば、天下の事物は悉皆天下の人心に任して傍より之を如何ともす可らず、世の形勢は猶寒暑の来往の如く草木の栄枯の如くして毫も人力を加ふ可らざるもの乎、政府の人間に用なく、学者も無用の長物、商人も職人も唯天然に任して、各自から勉む可き職分なきが如し、これを文明進歩の有様と云ふ乎。答て云く、決して然らず。前既に論ずる如く、文明は人間の約束なれば、之を達すること固より人間の目的なり。其これを達するの際に当て各其職分なかる可らず。政府は事物の順序を司どりて現在の処置を施し、学者は前後に注意して未来を謀り、工商は私の業を営て自から国の富を致す等、各職を分て文明の一局を勤るものなり。固より政府と雖ども前後の注意なかる可らず、学者にも現在の仕事なかる可らず、且政府の官員とても学者の内より出るものなれば、此彼の職分同様なる可きに似たりと雖ども、既に官私の界を分ち、其本職を定めて分界を明にすれば、現在と未来との区別なかる可らず。今国に事あれば其事の鋒先きに当て即時に可否を決するは政府の任なれども、平生よく世上の形勢を察して将来の用意を為し、或は其事を来たし或は之を未然に防ぐは学者の職分なり。世の学者或は此理を知らずして漫に事を好み、自己の本分を忘れて世間に奔走し、甚しきは官員に駆使されて目前の利害を処置せんとし、其事を成す能はずして却て学者の品位を落す者あり。惑へるの甚しきなり。蓋し政府の働は猶外科の術の如く、学者の論は猶養生の法の如し。其功用に遅速緩急の別ありと雖ども、共に人身のためには欠く可らざるは同様なり。唯一大緊要は互に其働を妨げずして却て相助け、互に相刺衝して互に相励し、文明の進歩に一毫の碍障を置かざるに在るの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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