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장 서양의 문명을 목표로 하는 일
앞장에서 사물의 가볍고 무거움, 옳고 그름은 상대적인 말이라고 언급했다. 그러니까 문명과 개화(開化)의 글자도 역시 상대적인 것이다. 현재 세계의 문명을 논하는 데, 유럽 여러 나라 및 미합중국으로써 최상의 문명국이 되어, 터키, 중국, 일본 등, 아시아 여러 나라로써 반개국(半開國)으로 칭하고, 아프리카 및 호주 등을 보고 야만의 나라라고 말하여, 이 명칭으로서 세계의 통론이 되어, 서양 여러 나라의 국민만이 스스로 문명을 뽐낼 뿐만 아니라, 저 반개국민과 야만국민도, 스스로 이 명칭의 합리성에 복종하여, 스스로 반개 및 야만이라는 이름에 만족하여, 굳이 자기 나라의 형편을 뽐내어 서양 여러 나라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다. 비단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다소 사물의 이치를 아는 자는, 그 이치를 아는 일이 더욱더 자기 나라의 형편을 밝히고, 더욱더 이것을 밝히는 데 따라, 더욱 서양 여러 나라를 따라갈 수 없음을 깨닫고, 이것을 두려워하고, 이것을 슬퍼하여, 어떤 사람들은 서양 여러 나라를 배워 모방하려 하고, 어떤 사람들은 스스로 열심히 서양 여러 나라에 대립하려 하여,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지식인의 일생 걱정이 오직 이 한 가지 일에 있는 것 같다. ≪완고하고 천박한 중국인도 근래에는 학생을 서양에 파견했다. 나라를 근심하는 마음으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저 문명, 반개(半開), 야만이라는 명칭은, 세계의 통론에서도 세계 사람들이 허락하는 바이다. 그들이 이것을 허락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분명히 그 사실이 있어 속일 수 없는 확실한 증거를 보면 된다. 아래에 그 요점을 밝힌다. 곧 저 인류가 틀림없이 거쳐야 하는 단계이다. 혹은 이것을 문명의 나이(연령)이라고도 할 수 있다.
첫째, 사는 데 일정한 장소가 없고 먹는 데 일정한 음식이 없다. 편리함을 좆아서 무리를 지어도, 편리함이 다하면 홀연히 흩어져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혹은 거처를 정하여 농업과 어업에 힘써, 옷과 식량이 부족하지 않아도 기계를 궁리하는 것을 알지 못하고, 문자가 되는 것이 없지 않아도 문학적인 것은 없다. 자연의 힘을 두려워하고, 인간의 은혜와 위력에 의지하며, 우연한 불행과 행복을 기다릴 따름인데, 스스로 궁리를 짜내는 사람이 없다. 이것을 야만이라고 부른다. 문명으로부터 멀다고 말할 수 있다.
둘째, 농업의 길이 크게 열려 옷과 식량이 구비된다. 집을 지어 도시와 촌락을 세워서, 그 겉모양이 실제로 한 나라이지만, 그 내부의 실정을 찾으면 부족한 일이 매우 많다. 문학이 번성해도 실용적인 학문에 힘쓰는 자가 적고, 인간의 교제에 나아가면 시기하고 의심하고 질투하는 마음이 심해도, 사물의 이치를 말하는 때에는 의심을 내어 의심스러운 것을 질문하는 용기가 없다. 모방하는 잔꾀는 뛰어나지만 새로이 물건을 만드는 궁리가 부족하고, 옛것을 수양하는 것은 알되 옛것을 고치는 것은 알지 못한다. 인간의 교제에서 규칙이 되는 것이 없지 않지만, 습관에 압도되어 규칙의 골격을 이루지 못한다. 이것을 반개(半開)라고 칭한다. 아직 문명에 도달하지 않았다.
셋째, 천지간의 사물을 법칙 안에서 이용하더라도, 그 안에서 존재하며 스스로 활동을 강화하고, 사람의 기풍이 쾌활하고 활달하여 옛날 관습에 빠지지 않고, 스스로 몸을 지배하여 다른 사람의 은혜나 위력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덕(德)을 닦고 스스로 지식을 연마하고, 옛것을 섬기지 않고 현재에 만족하지 않으며, 작은 편리함에 안주하지 않고 미래의 큰 업적을 꾀하고, 앞으로 나아가되 물러서지 않으면 도달하되 멈추지 않고, 학문의 길은 공허하지 않아서 발명의 기틀을 열고, 공업과 상업은 날로 번성하여 행복의 원천을 깊게 하고, 사람의 지혜는 이미 오늘에 써도 그 일부는 남아서, 이로써 후일의 계획을 짜는 일과 같다. 이것을 오늘날의 문명이라고 한다. 야만이나 반개의 상황과 거리가 멀다고 할 수 있다.
위와 같이 세 가지 단계로 구분하여 그 양상을 기록하면, 문명과 반개와 야만의 구분이 분명해지지만, 원래 이 명칭이 상대적인 일이기에, 아직 문명을 보지 못한 사이는 반개로써 최상으로 하는 것도 방해되는 일이 없다. 이 문명도 반개에 비교하면 그 문명이 될 수 있어도, 반개도 야만에 비교하면 역시 이것을 문명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비유컨대 현재 중국의 형편으로써 서양 여러 나라에 비교하면 이것을 반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이 나라로써 남아프리카 여러 나라에 비교하거나, 가깝게는 우리 일본의 국민으로써 아이누 인을 비교하면, 이것을 문명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서양 여러 나라를 문명이라고 하더라도, 바로 지금 세상에 있어서 그 이름을 붙일 수 있을 따름이다. 상세히 그것들을 논하면 충족되지 않는 나라들이 매우 많다. 전쟁은 세계의 더없는 재앙이지만, 서양 여러 나라는 항상 전쟁을 일삼는다. 강도질과 살인은 사람의 커다란 악한 행위이지만, 서양 여러 나라에서 물건을 훔치는 자가 있고 사람을 죽이는 자가 있다. 국내에서 도당을 결성하여 권력을 다투는 자가 있어, 권력을 잃으면 불평을 외치는 자가 있다. 하물며 외국교제법 같은 것은 권모술수에 이르지 않는 바가 없다고 말할 수도 있다. 다만 일반적으로 그것을 조망하건대 잘 번성하여 나아가는 세력이 있을 따름인데 결단코 지금의 상황을 보고 그것을 최고의 선이라고 할 수 없다. 차후 수 천 년에 세계인들의 지혜와 도덕이 크게 향상되어 평화와 안락의 극대치에 이르는 일이 있으면, 지금 서양 여러 나라의 형편을 보고 불쌍한 야만을 통탄할 일도 있을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이것을 바라보면 문명에는 한계가 없는 일로, 지금의 서양 여러 나라로써 만족할 수가 없다.
서양 여러 나라의 문명으로써 만족하는 데는 부족하다. 그런즉 이것을 버리고 취하지 않을 것인가? 이것을 취하지 않을 때는 어떤 상황에 만족하는가? 반개(半開)도 만족스러운 단계가 아닌데, 하물며 야만의 단계에 머물러서야. 이 두 가지 단계를 포기하고 특별히 다시 돌아갈 곳을 구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부터 수 천 년 후를 기대하여 저 평화와 안락의 극대치를 기다리는 일도, 단지 사람들의 상상일 따름이다. 게다가 문명은 죽은 것이 아니고 움직이며 진보하는 것이다. 움직이며 진보하는 것은 반드시 순서와 단계를 거치지 않을 수 없다. 즉 야만은 반개로 진보하고, 반개는 문명으로 진보하여 그 문명도 이제 틀림없이 진보의 시기이다. 유럽이라 할지라도 그 문명의 유래를 찾으면 필시 이 순서와 단계를 거쳐서 오늘날의 형편에 이른 것이라면, 지금의 유럽의 문명은 곧 지금의 세계인의 지혜로써 겨우 도달할 수 있었던 최고의 지위라고 말할 수 있을 따름이다. 그러니까 지금 세계 여러 나라에서, 설령 그 형편이 야만이기도 하고 반개이기도 하더라도 적어도 한 국가의 문명의 진보를 계획하는 일은 유럽의 문명을 목적으로 하여 논의의 기준을 정하고, 그 기준에 의거하여 사물의 이해득실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의 전편에서 주장하는 바의 이해득실은, 전부 유럽문명을 목표로 정하여, 그 문명을 위해서 이익과 손실이 있고, 그 문명을 위해서 득실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므로, 배우는 사람들은 그 큰 뜻을 오해하지 말라.
어떤 사람들은 말하여, 세계 가운데 나라들이 분리되어 각각 독립체를 이루어, 또 따라서 사람의 마음과 풍속이 달라지고, 국가의 체제(国体)와 정치도 달라진다. 그러니 지금 그 나라의 문명을 계획하는데 이해득실 모두를 유럽을 목적으로 하는 것은 불합리하지 않은가? 적절하게 저 문명을 채택하여 그 사람들의 마음과 풍속을 살펴서, 그 국체(国体)에 따라서 그 정치를 지키고, 이것에 적합한 일은 선택하여, 취할 수 있는 것은 취하고 버릴 것은 버려, 처음부터 조화의 절적함을 얻을 수 있지 않은가? 답변하여 말하는데 외국의 문명을 취하여 반개(半開)의 나라에 시행하는 데는 처음부터 취하고 버리는 적절함이 없을 수 없다. 그렇다하더라도 문명에는 외부에서 보이는 사물과 내부에 존재하는 정신의 두 가지 구별이 있다. 외부의 문명은 취하기 쉽고, 내부의 문명은 얻기가 어렵다. 국가의 문명을 계획하는 데는 그 어려운 것을 우선하고 쉬운 것을 나중에 하여, 어려운 일을 이해하는 정도에 따라서 충분히 그 깊음과 얕음을 측정하여, 곧 이것에서 쉬운 일을 시행하여 틀림없이 그 깊음과 얕음에 맞추지 않을 수 없다. 만약 혹시 이 순서를 그르쳐, 그 어려운 일 없이 먼저 쉬운 일을 시행할 때는, 다만 그 쓸모가 없을 뿐만 아니라 반대로 손해가 되는 일이 많다. 처음에 밖에서 보이는 문명의 사물은 의복, 음식, 기계, 주거에서 정치적 명령과 법률 등등에 이르기까지 모두 귀와 눈으로써 듣고 볼 수 있는 것들 말한다. 이제 이 외형적 사물만으로써 문명이라고 한다면, 처음부터 국민의 마음과 풍속에 따라서 취하고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 서양 각국은 국경을 맞댄 땅이라 하더라도, 그 분위기가 반드시 유사한 한 가지가 아닌데 하물며 동서로 멀리 떨어진 아시아 여러 나라에 있어 모두 서양의 풍습을 모방할 수 있겠는가? 설령 이것을 모방하여도 문명이라고 부를 수 없다. 비유컨대 우리나라에서 행해지는 서양식의 의식주로써 문명의 징후가 될 수 있는가? 머리를 짧게 자른 남자를 만나서 그를 문명인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육류를 먹는 사람을 보고 그것을 개화인이라고 칭할 수 있는가? 결코 그렇게 할 수 없다. 또는 일본의 대도시에서 돌로 지은 빌딩과 철교를 모방하여 건설하고, 혹은 중국인이 갑자기 군대제도를 개혁하기 위하여 서양의 풍습을 모방하여, 큰 군함을 만들어 대포를 구매하며, 국내의 형편을 돌아보지 않고 쓸데없이 예산을 쓰는 것과 같은 것은, 내가 항상 기뻐하지 않는 바이다. 이와 같은 사물들은 사람의 힘으로 건설될 수 있거나 돈을 써서 구매가 가능하다. 유형 중 가장 두드러진 것이며, 쉬운 것 중 가장 쉬운 것이어서 그것들은 취할 때를 맞이하여 당연히 순서와 완급을 신중히 생각하지 않을 수 있을까? 반드시 자국의 인심과 풍속을 따르지 않을 수 없고, 반드시 자국의 강함과 약함 및 빈곤을 묻지 않을 수 없다. 곧 어떤 사람들이 말하는 바, 인심과 풍속을 살핀다는 것은 이 일일 수 있다. 이 일 단계에 나아가서 나는 물론 이견이 없지만, 어떤 사람들은 오직 문명의 외형만을 논하고, 문명의 정신은 버리고 질문하지 않는 것 같다. 생각건대 문명의 정신은 무엇인가? 국민의 기질이 즉 이것이다. 이 기질은 팔 수 있는 것도 아니요, 또한 사람의 힘으로써 급작스럽게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널리 한 나라의 국민 사이에 침투해서 널리 전국의 사건의 흔적에 나타난다 해도 눈으로써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서, 그것이 있는 장소를 아는 일이 매우 어렵다. 이제 시험 삼아 문명의 정신이 있는 바를 밝힌다. 학자는 만약 널리 세계 역사를 읽고, 아시아, 유럽의 두 가지 역사를 비교하여, 그 지리와 생산물을 묻지 않고, 그 정치적 명령과 법률에 구애받지 않고, 학술의 정교함과 서투름을 듣지 않고, 종교의 다름과 같음을 찾지 않고, 특별히 이 두 지역의 형편을 서로 멀리 떨어지게 하는 바의 일을 구하면, 반드시 일종의 무형의 일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을 설명하기는 대단히 어렵다. 이것을 기르면 성장하여 지구의 만물을 감싸고, 이것을 억압하면 위축하여 결국 그 형태와 그림자를 불 수 없다. 나아감과 물러감이 있고 번성함과 쇠퇴함이 있되 잠시도 움직이지 않는 일이 없다. 그 환상적인 일이 이와같다할지라도, 현재 아시아와 유럽 두 곳 안에서 상호간에 사건의 흔적에 나타나는 바를 보면, 분명히 그 허상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제 가령 이름을 붙인다면, 이것을 한 나라 국민의 기풍이라고 말하더라도, 시간에 관해서 말할 시에는 이것을 시대의 추세라고 칭하고, 사람에 관해서는 사람의 마음이라고 칭하고, 나라에 관해서는 나라의 풍속 또는 국론(國論)이라고 칭한다. 이른바 문명의 정신이란 즉 이런 것이다. 저 두 곳의 상황으로 하여금 크게 차이나도록 하는 것이 곧 이 문명의 정신이다. 그러므로 문명의 정신이란 혹은 이것을 한 나라의 인심과 풍속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을 근거로 생각하면, 어떤 사람의 주장에 서양의 문명을 취하는 것도 먼저 자국의 인심과 풍속을 살피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그 문장이 부족하여 분명하지 않은 것 같아도, 충분히 그 의미를 분석하여 이것을 해석할 때는, 곧 문명의 외형만을 취할 수 없고, 반드시 먼저 문명의 정신을 갖추어 그 외형에 맞을 수 있는 일이 아니면 불가능하다는 의미를 서술했을 따름이다. 이제 내가 유럽의 문명을 목표로 한다고 말하는 것도, 이 문명의 정신을 갖추기 위하여, 이것을 그 사람에게서 구하는 취지라면, 틀림없이 그 의견에 부합하는 것이다. 다만 어떤 사람은 문명을 구할 때마다 그 형태를 우선시하여, 갑자기 장애에 부딪혀 그 장애를 피하는 길을 모르고, 나는 그 정신을 우선시하여 미리 장애를 제거하여, 외형의 문명에 들어감에 쉽게 시작하는 차이점이 있을 따름이다. 어떤 사람은 문명을 혐오하는 사람은 아니고, 다만 이것을 좋아하는 일이 나와 같이 절실하지 않아, 아직 그 논의를 결정하지 않았을 따름이다.
이전 주장에서 문명의 외형에 들어감의 수월함과 그 정신은 구하기 어려운 유래를 설명했다. 이제 또 이 의미를 밝히겠다. 의복과 음식과 기계와 주거에서 정치적 명령과 법률 등에 이르기까지 모두 귀와 눈으로 듣고 보기가 가능한 것이다. 그러므로 정치적 명령과 법률을 의식주 등과 비교하면 약간 그 형편이 다르고, 귀와 눈을 사용하여 듣고 보기가 가능하더라고 손으로 쥐고 돈으로 매매할 수 있는 실물이 아니기에, 취하는 방법도 역시 약간 어렵고 의식주 등에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제 철교와 빌딩으로써 서양을 흉내 내는 것을 쉽다하더라도, 정치와 법률을 개혁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즉 이것을 우리 일본에서도, 철교와 빌딩은 이미 세워도 정치와 법률의 개혁은 아직 행하기가 어렵고 국민의 국회도 갑자기 행할 수 없는 까닭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전 국민의 기풍을 완전히 변화시키는 것 같은 일은 그 일이 극단적으로 어렵고, 하루아침에 우연히 업적으로 이룰 수 없다. 홀로 정부의 명령으로 강제할 수 없고, 홀로 종교의 가르침으로 설명할 수 없고, 하물며 겨우 의식주등의 것을 개혁하여 밖에서 그것을 도입할 수 있는가? 다만 그 한 가지 방법은 사람이 살아가는 자연에 따라서, 해로움을 제거하고 장애를 제거하여, 스스로 국민 일반의 지혜와 덕행을 발생시켜, 스스로 그 의견을 고상한 지경까지 진보시키는 데 있을 따름이다. 이와 같이 천하의 인심을 완전히 변화시키는 실마리를 열 때는, 정치적 명령과 법률의 개혁도 역시 점진적으로 이행되어 장애가 없을 수 있다. 인심은 이미 모습을 바꾸고 정치와 법률도 이미 바뀌면, 문명의 터전은, 처음에 여기에 세워서, 저 의식주라는 유형의 것과 같은 것은 자연의 세력이 따라서, 초대하지 않아도 오고, 구하지 않아도 얻는다. 그리하여 말하는데, 유럽의 문명을 구하는 데서는 어려운 것을 먼저하고 쉬운 것을 뒤로하여, 먼저 인심을 개혁하고 그 다음에 정치적 법령에 미치게 하여, 마침내 유형의 것에 이를 수 있다. 이 순서를 따르면, 일을 행함이 어렵다할지라도, 실제적인 장애가 없고 도달할 수 있는 길이 있다. 이 순서를 거꾸로 하면, 일이 쉬운 것 같아도, 그 길이 갑자기 막혀서, 흡사 장벽 앞에 선 것과 같아서 한 발짝도 나갈 수가 없고, 혹은 그 벽 앞에서 주저하고, 혹은 한 치도 나아가지 못해서 오히려 격렬히 뒤로 물러나는 일이 있을 수 있다.
위에서는 단지 문명을 구하는 순서를 논하는 일이 있었어도, 나는 결단코 유형의 문명이 쓸모가 없다는 것이 아니다. 유형에서도 무형에서도, 이것을 외국에서 구하는 것도 이것을 나라 안에서 만드는 것도, 차별이 있을 수 없다. 다만 이즈음에 전후와 완급의 조심이 있을 수 있을 뿐이다. 결코 이것을 금지하는 것이 아니다. 대저 사람이 살아가는 일에는 한계가 있을 수 없다. 육체적인 일이 있고, 정신적인 일이 있다. 그 미치는 바가 매우 넓고, 그 필요한 곳이 매우 많아서, 천성이 스스로 문명에 알맞은 것이기에, 적어도 그 성품을 해치지 않으면 된다. 문명의 요체는 이 자연에서 받아 얻은 마음과 육체의 일을 다 사용하여 남는 것이 없는 데 있을 따름이다. 비유컨대 몽매의 시대에서는 사람들 모두 완력을 존중하여, 인간의 교제를 지배하는 것은 다만 완력이 최고여서, 교제의 권력이 한편으로 쏠리지 않을 수 없다. 사람이 하는 일을 이용하는 것도 매우 좁다고 말할 수 있다. 문화가 다소 발전하여 세상 사람들의 정신이 점차 피어나면, 지능의 방향에서도 스스로 권력을 차지하여 완력을 상대하고, 지능도 완력도 상호간에 서로 견제하고 상호간에 서로 균형을 이루어, 다소 권위의 치우침을 방지하기에 충분한 일이다. 사람의 일을 이용하는 데서 조금 그 구역을 넓혔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하더라고 이 완력과 지능을 사용할 때마다, 옛날에는 그 항목이 매우 적어서, 완력은 오로지 전투에 쓰고 다른 때에는 돌볼 겨를이 없었다. 의식주의 물건을 구하는 것과 같은 것은 겨우 전투의 여력을 사용하는 것일 따름이다. 이른바 칼을 숭상하는 풍속이 이것이다. 지능도 역시 점진적으로 그 권위를 얻을지라도, 당시 야만적인 사람의 마음을 유지하는 데 바빠서, 그 일을 조화롭고 우호적이고 평화스럽고 편안한 태도에서 베풀 수 없었고, 오로지 이것을 백성을 다스리고 사람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사용하여, 완력에도 서로 의지하여 아직 지능이 독립적인 지위가 되는 일이 없었다. 지금 시험적으로 세계 여러 나라를 보니, 야만의 국민은 물론, 반개의 국가에서도, 지혜와 덕행이 있는 자는 반드시 다양한 관계로써 정부에 속하여, 그 힘에 의지하여 사람을 다스리는 일을 할 따름이다. 혹은 드물게 스스로 독립적으로 궁리하는 자가 있어도, 단지 옛 학문(古學)을 연구하며, 그렇지 않으면 한시(漢詩)나 일본 시와 문장 등의 재주를 탐닉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의 노력을 이용하는 일이 아직 넓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사람이 하는 일은 점점 다양하여 몸과 마음이 필요해서 쓰는 것이 점점 증가하는 데 이르러, 세간에 발명도 있고 궁리도 나타나, 공업과 상업의 일도 분주해지고 학문의 길도 다양하여, 또한 과거의 단순함에 만족할 수 없다. 전투, 정치, 옛날 학문, 시와 노래 등도 겨우 인간이 하는 일의 내부의 한 가지 분야이기에, 홀로 권력을 차지하지 않는다. 수천 수백의 사업이, 나란히 발생하여 함께 그 성장을 경쟁하고, 결국은 이것저것이 동등과 평등의 모양에서 멈추어, 상호 서로 다가가고 상호 서로 밀어주어, 점점 사람의 품행을 고상한 지경에 진보시키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서 처음으로 지능이 전체 권력을 잡고, 그로써 문명의 진보를 볼 수 있다. 대체로 인류의 노력이 단순해지면 그 마음도 점점 한결같아 지지 않을 수 없다. 그 마음이 점점 한결같아지면 그 권력은 점점 치우치지 않을 수 없다. 상상컨대 옛 시대에는 사업이 적어서 사람의 노력을 쓸 수 있는 장소가 없고, 그것 때문에 그 힘도 한쪽에 치우쳤지만, 세월을 경과함에 따라 흡사 일없는 세계를 변화시켜 분주한 지역이 되어, 몸과 마음 때문에 새롭게 운동의 땅을 개척하는 것과 같다. 지금 서양 여러 나라의 형편은 틀림없이 그 일이 많은 세계라고도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문명을 발전시키는 요체는, 노력하여 사람의 일을 분주하게 하여 필요하여 쓰는 것을 다양하게 하며, 사물의 가볍고 무거움 및 크고 작음을 묻지 않고, 많고 많은 이익을 이용하여 이로움을 내려는 정신의 노력을 활발하게 하는 데 있다. 그리하여 적어도 사람의 천성을 방해하는 일이 없으면, 그 일은 날마다 바빠지고 그 필요한 곳에 쓰임은 다양하여지지 않을 수 없다. 세계의 옛날과 오늘날의 실험에 근거하여 알 수 있다. 이것은 곧 사람의 삶이 스스로 문명에 알맞은 근거이지, 생각건대 우연이 아니다. 이것을 조물주의 깊은 뜻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이 논의에 미루어 생각하면, 여기에서 또 하나의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곧 그 사실은, 중국과 일본의 문명이 차이가 나는 일이다. 철저히 독재적인 정부 또는 신정(神政) 정치체제라고 칭하는 것은, 군주를 존경하는 근거를 오로지 하늘이 부여했다는 것에 귀속시켜, 지극히 높은 지위와 지극히 강한 힘도 하나로 합하여 인간의 교제를 지배하여, 깊이 백성의 마음의 내부에 침투하여 그 방향을 결정하는 일이라면, 이 정치아래 있는 사람은, 사상이 향하는 바, 반드시 한 방향에 치우쳐, 마음속의 여유를 남기지 않고, 그 생각하는 일이 항상 단일하지 않을 수 없다. 《생각하는 일이 다양하지 않다》 그러므로 세상에 일에 변화가 있어 조금이라도 이 교제의 구조를 파괴하는 일이 있으면, 상황의 좋고 나쁨에 구애되지 않고, 그 결과는 반드시 사람의 마음에 자유의 풍조를 생기게 할 수 있다. 중국에서 주나라 말엽에, 제후가 각각 할거하여 세력을 구성하여 백성 모두가 주나라 황실이 있는지를 알지 못한지 수 백 년, 그 시기를 맞아 천하가 크게 혼란하여도, 독재만의 요소는 크게 권력을 잃고, 백성의 마음에 조금 여유를 남겨 스스로 자유의 생각을 생겨나는 것에, 중국의 문명 3000여 년 간에 이상한 주장과 논쟁이 시끄럽고, 흑백이 완전히 상반되는 일도 세상에서 용인될 수 있는 것은, 특히 주나라 말엽이 그렇다. 《노자와 장자와 양자와 묵자 기타 백가의 주장이 매우 많다》 공자와 맹자의 이른바 이단이 이것이다. 이 이단도 공자와 맹자로 부터 보면 이단이지만, 이단으로부터 논하면 공자와 맹자도 이단을 면하지 못한다. 오늘날에 이르러 남아있는 책이 부족하여 이것을 증명하는 방법이 없어도, 당시 백성의 마음이 활발함에 자유의 기풍이 있었다고 미루어 알 수 있다. 또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하여 책을 불사른 것도, 오로지 공자와 맹자의 가르침만을 미워해서가 아니다. 공자와 맹자에서도 양자와 묵자에서도 모두 백가의 이상한 주장과 논쟁을 금지시키기 위해서이다. 당시 만약 공자와 맹자의 가르침만이 세상에 행하여지는 일이였다면, 진시황도 반드시 책을 불사른 데 미치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후세에도 폭군은 많아서 진시황의 폭행보다 못지않은 자가 있었어도, 전혀 공자와 맹자의 가르침을 해치지 않은 것으로써 알 수 있다. 공자와 맹자의 가르침은 폭군의 일을 방해하는 데 충분하지 않은 것이다. 그리하여 진시황이 특별히 당시의 이상한 주장과 논쟁을 미워하여 이것을 금지시킨 것은 무엇인가? 그 여러 사람의 입이 시끄럽고 특별히 그 입이 독재를 해치기 때문이다. 독재를 해치는 일이 있다면 다른 것이 아니라, 이 이상한 주장과 논쟁 사이에 생겼던 것은 반드시 자유의 요소였다는 것을 분명하게 증명할 수 있다. 그리하여 단일 주장을 고수하면, 그 주장의 성질은 가령 순수하고 선량하여도, 이것으로 인하여 결단코 자유의 기운이 생겨날 수 없다. 자유의 기풍은 오직 많은 일과 논쟁의 사이에 존재하는 일임을 알 수 있다. 진시황이 한 번 이 많은 일과 논쟁의 근원을 막고, 그 후에는 천하를 다시 합쳐 영원히 독재정치로 돌아가서, 정부가 여러 번 바꾸었어도, 인간 교제의 취지가 바뀐 일은 없고, 지극히 높은 위치와 지극히 강한 힘을 하나로 합쳐 세간을 지배하니, 그 구조에 최고로 편리하기 때문에 공자와 맹자의 가르침만을 세간에 전했던 것이다. 어떤 사람의 주장에, 중국은 독재정부였다 하더라도 더욱이 정부의 바뀜이 있고, 일본은 한 핏줄 만대의 상황이라 하면 그 백성의 마음이 스스로 고루하지 않다고 할 수 없다고 말하는 자가 있어도, 이 주장은 오직 외형의 명분에 구애되어 사실을 살피지 못한 것이다. 충분히 사실이 있는 곳을 상세히 하면 과연 반대 상황을 볼 수 있다. 그 다음은, 우리 일본에서 옛날에는 신정(神政)의 취지로써 한 세상을 지배하고, 백성의 생각을 단일하게 하여, 지극히 높은 지위와 지극히 강한 힘을 합한 일의 입장에서 이것을 믿어 의심하지 않는 자가 있으면, 그 생각하는 바가 한 방향으로 치우친 일이 본래부터 중국인과 다르다고 할 수 없다. 그런데 중고(中古) 헤이안 시대의 무사시대에 이르러 점점 교제의 구조를 파괴하여, 지극히 높은 것이 반드시 지극히 강한 것이 되지 않고, 지극히 강한 것이 반드시 지극히 높은 것이 되지 않는 형세가 되어, 백성의 마음이 감동하는 바에서 지극히 높은 생각도 지극히 강한 생각도 저절로 구별되어, 흡사 마음속에 두 가지를 수용하여 그 움직임을 허용한 것 같다. 이미 두 가지 것을 수용하여 그 움직임을 허용한 때는, 그 사이에 또한 한 가지의 도리(道理)를 추가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신정(神政)을 존중하고 높이는 생각도 무력으로 억압하고 제지하는 생각도 이것에 추가하는 데 도리에 대한 생각이어서, 세 가지가 각각 강약이 있더라도 하나같이 권력을 독점할 수 없다. 이것을 독점할 수 없으면 그 때 스스로 자유의 기풍이 생겨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을 저 중국인이 순전히 독재의 임금을 우러러, 지극히 높고 지극히 강한 생각을 하나로 하여 일편단심의 믿음에 빠지는 것에 비교하면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이 한 가지 일에 관해서는 중국인은 사상이 빈곤한 자이고 일본인은 부유한 자이다. 중국인은 일이 없고 일본인은 일이 많다. 생각하는 일이 많아서 사상에 풍부한 자는 미혹에 빠지는 마음도 스스로 담담하지 않을 수 없다. 독재의 신정(神政)에서, 일식(日蝕) 때 천자가 자리를 옮겨, 천문을 보고 길흉을 점치는 등의 일을 행하면, 백성도 스스로 그 형세에 복종하여, 더욱 임금을 신(神)으로 보고 더욱 어리석음에 빠지는 일이 있다. 방금 중국과 같은 것은 확실히 이런 형세를 이루었어도, 우리 일본에서는 그렇지 않다. 백성은 본디 어리석어 미혹이 심하지 않지 않을지라도, 이 미혹은 곧 자신의 미혹이어서, 신정(神政)이 백성에게 끼치는 해를 입는 일이 다소 적다고 말할 수 있다. 비유컨대 무사가문(武家)의 시대에, 일식(日蝕)이 일어나면 천황은 자리를 옮기는 일이 있었고, 혹은 천문을 관찰하고 혹은 천지를 제사지내는 일도 있었지만, 이 지극히 높은 천황에게 지극히 강한 힘이 없어서, 백성은 스스로 이것을 마음 밖에 두고 신경을 쓰지 않았다. 역시 지극히 강한 장군은 그 위력이 정말 지극히 강하여 한 세상을 위력으로 굴복시키기에 충분하여도, 백성의 눈으로 이것을 보면 지극히 높은 천황의 위력을 우러러 보는 것과 같지 않아서 스스로 사람으로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이와 같이 지극히 높은 생각도 지극히 강한 생각도 상호간에 서로 균형을 이루어 그 사이에 여지를 남겨, 조금이라고 사상의 작용을 허용하여 도리(道理)의 작용이 가능한 실마리를 열 수 있게 한 일은, 우리 일본의 우연한 요행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시대의 추세에 이르러서는 무사가문의 복고도 원래 원할 수 없어도, 가령 막부정치 7백년간에 황실 구실을 하며 무사가문의 무력을 얻는 것도, 또는 무사가문 구실을 하며 황실의 지위를 얻는 것도, 지극히 높은 것도 지극히 강한 것도 서로 합쳐 하나가 되어 백성의 몸과 마음을 동시에 침범하는 일이 있으면, 도저히 지금의 일본은 있을 수가 없다. 혹은 요즘에 이르러 저 천황학자들의 주장과 같이, 정치와 종교가 하나로 나가는 취지로써 세상을 지배하는 일이 있으면, 후일의 일본 역시 없을 것이다. 지금 그렇지 않은 것은 우리 일본 국민의 행복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하여 말하는 바, 중국은 독재의 신정(神政)을 만세에 전한 것이고 일본은 신정(神政)의 요소에 대하여 무력을 사용한 것이다. 중국의 요소는 하나고, 일본의 요소는 둘이다. 이 한 가지 일에 관하여 문명의 전후를 논하면, 중국은 한 번도 변하지 않아서 일본에 미칠 수가 없다. 서양의 문명을 취하는 데 일본은 중국보다 쉽다고 말할 수 있다.
이전 문단의 어떤 사람의 말에, 각 나라는 국가의 체제(国体)를 지키고 서양문명을 취하거나 버리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하는 의견이 있다. 국가의 체제를 논하는 것은 이 장(章)의 취지이어도, 다른 문명을 취하는 이야기를 맞아, 우선 국민의 마음에 반대의견을 느끼는 사람은 국가의 체제를 논하는 데, 그 심하기가 국가의 체제와 문명이 양립할 수 없다는 사람과 같아서, 이 문단에 이르러서는 세상의 의론가도 입을 닫고 또 말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 그 모양새가 마치 창으로 대결하기 전에 서로 물러서는 것과 같다. 도저히 화해가 이루어지는 과정을 볼 수 없다. 하물며 그 사리를 상세히 논하면, 필히 싸울 필요가 없고 분명히 화해의 길이 있는 데서야! 왜 이것을 버리고 논의하지 않을 이치가 있는가? 이것이 우리가 글을 길게 쓰는 것을 싫어하지 않고, 그리하여 어떤 사람의 말에 답하여 변론하는 까닭이다. 먼저 국가체제는 어떤 것을 가리키는가? 세간의 논의는 잠깐 중지하고 먼저 우리가 알고 있는 바로써 이것을 설명한다. 체제는 결합의 뜻이고 또 형식의 뜻이다. 사물을 모아서 이것을 모두 다른 사물과 구별할 수 있는 모양을 말한다. 그러므로 국가의 체제(国体)는, 한 민족의 국민을 서로 모아서 고민과 즐거움을 공유하고, 타국인에 대하여 자국인과 타국인을 구별하고, 스스로 서로 바라보는 일을 타국인을 바라보는 것보다 두텁게 하고, 스스로 서로 힘을 다하는 일을 타국인을 위하여 하는 것보다 열심히 하며, 한 정부 아래 있으며 스스로 지배하고 다른 정부의 통제를 받기 싫어하고, 불행과 행복을 함께 스스로 담당하여 독립하는 것을 말한다. 서양어로 nationality라고 부르는 것이 이것이다. 무릇 세계 가운데 나를 세우는 일이 있으며 역시 각각 그 체제가 있다. 중국에서는 중국의 국가 체제가 있고, 인도에는 인도의 국가 체제가 있다. 서양 여러 나라는, 어떤 나라도 일종의 국가 체제를 갖추어 스스로 이것을 보호한다. 이 국가의 체제에 대한 감정이 일어나는 까닭을 찾음에, 인종이 같은 것에 의한 것이 있고, 종교가 같은 것에 의한 것도 있고. 혹은 언어에 의하고, 혹은 지리에 의하여, 그 의미가 한결같지 않아도, 가장 유력한 원인으로 부를 수 있는 것은, 한 민족이 함께 세상 풍속의 변천을 경험하여 옛일을 돌아보는 정서가 동일한 것이 즉 이것이다. 혹은 이 여러 요건에 구애되지 않고 국가의 체제를 완성하는 나라도 없지 않다. 스위스에는 국가의 체제가 견고하지만, 그 국내의 여러 주(州)는 인종도 다르고 언어도 다르고 종교도 다른 자가 있는 것과 같다. 그렇다할지라도 이 여러 요건들이 서로 같아서 그 국민에게서 다소의 화목함이 없지 않다. 독일의 여러 나라의 같은 것은, 각각 독립적인 국가의 체제를 이루어도, 그 언어와 문자를 동일하게 회고하는 정을 같이하기 때문에, 오늘날에 이르기까지도 독일은 스스로 독일 전체 주(州)의 국가 체제를 보호하여 타국과 서로 구별하는 바가 있다.
국가의 체제는 그 나라에 있어 반드시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지 않아서, 상당히 변화가 있을 것이다. 혹은 합치고 혹은 갈라지고, 혹은 늘어나는 것도 있고 혹은 줄어드는 것도 있고, 혹은 완전히 끊어져서 흔적도 없는 것도 있다. 그러나 이 끊어짐도 끊어지지 않음도 언어와 종교 등의 여러 여건의 존속과 망함을 보고 판단할 수 없다. 언어와 종교가 존재해도, 그 국민이 정치권을 잃고 다른 나라 사람의 통제를 받는 때는, 곧 이것을 일러서 국가의 체제를 단절한 일이라고 말한다. 비유컨대 영국과 스코틀랜드가 서로 합쳐서 한 정부를 함께하는 것은, 국가의 체제를 합치는 것에서 쌍방 모두 잃은 것이 없다. 네덜란드와 벨기에도 나뉘어져 두 개의 정부가 된 것은, 국가의 체제가 나누어지는 일이 있어도 아직 타국인에게 빼앗긴 것은 아니다. 중국에 있어서 송나라 말엽에 국가의 체제를 잃고 원나라에게 빼앗겼다. 이것을 중화(中華) 멸망의 시작이라고 판단한다. 이후에 원을 없애고 원래대로 회복하여 명나라가 세상을 통일한 것은, 중화(中華)의 체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명나라 말기에 이르러 다시 청나라 때문에 정권을 탈취당하여, 마침내 중화(中華)의 국가체제를 끊어 청나라의 국가체제를 폈다.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중화(中華) 국민은, 옛날에 의지하여 언어와 풍속을 같이하여, 혹은 그 중에 인물이 있어 정부의 고위직에도 오를 수 있었는데, 외형은 청나라와 명나라를 합친 형태로 보여도, 사실은 중화(中華) 남쪽의 국가 체제를 잃고 북쪽의 청나라에 빼앗긴 것이다. 또 인도인이 영국에 제압당하고, 아메리카 원주민인 백인에게 내쫓긴 것과 같은 것은 국가의 체제를 잃은 심각한 일이다. 결국 국가체제의 존망은 그 국민의 정권을 잃는 것과 잃지 않은 것에 있는 것이다.
둘째, 나라에는「정치적 정당성(Political Legitimation)」이라고 하는 것이 있다.「Political」이라는 것은 정치의 의미이다. 「Legitimation」이라는 것은 정통(正統), 또 정당한 수단의 뜻이다. 이제 임시적으로 이것을 정통(正統)이라고 번역한다. 곧 그 나라에 행하여 보편적으로 국민이 허락하는 정치의 정당한 수단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세계 가운데 국가의 체제도 시대에 따라 정통(正統)은 한 가지가 될 수 없다. 혹은 군주를 세우는 주장으로써 정통(正統)으로 하는 일이 있고, 혹은 봉건제도로 나누는 주장으로써 정통(正統)으로 하는 일도 있고, 혹은 국회로써 옳다고 하고, 혹은 종교를 정치로 하는 것으로써 정당한 수단이 되는 일도 있다. 일반적으로 이 정통(正統)의 개념이 떠오르는 이유를 찾음에, 이 여러 주장의 처음에 권력을 쥐는 것이야 반드시 반은 완력의 사용을 피할 수 없어도, 이왕 권력을 얻으면 곧 또 완력을 휘두를 필요가 없고, 필요로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 권력을 얻은 이유를 완력의 원인에 귀속시키는 것은, 권력을 쥔 자의 금기어서 이것을 기피하는 일이 심하다. 어떤 정부에게도 그 권위의 근원을 물으면, 반드시 답하여 말하는 것은, 우리가 권력을 가진 것은 이치 때문이다, 우리가 권력을 보유한 세월이 이미 오래되어서, 시간의 경과에 따라 점점 완력을 버리고 도리(道理)에 의존하지 않는 것이 없다. 완력을 싫어하고 도리(道理)를 좋아하는 것은 인류의 천성이지만, 세간의 사람도 정부의 조치가 이치에 맞는 것을 보고 기뻐하여, 세월이 지나가는 것에 따라서 더욱더 이것을 정당한 수단의 일로 하여, 옛날을 잊고 현재를 사모하여, 그 한 세대의 사물에 붙좇아 불평을 호소하는 일이 없는 것에 이를 수 있다. 이것이 곧 정통(正統)이 되는 일이다. 그러므로 정통의 전복은 전쟁으로 인하여 이루어지는 일이 많다. 중국에서 진시황이 주나라 말기의 봉건제도들 무너뜨리고 군현으로 하고, 유럽에서 로마가 약해짐에 따라 북방의 야만족이 이것을 유린한 후 마침내 봉건제도를 이룬 것도 이 사례이다. 그렇다하더라도 문화가 점차 진보하여 학자의 논의에 권위가 커져서, 겸하여 또 그 나라의 사정에 맞는 일이 있으면, 반드시라도 군대를 사용하지 않고도 평온한 가운데 혁명할 수 있는 일도 있다. 비유컨대 영국에서 오늘날의 정치로써 1700년대 초에 비교하면, 그 형편이 하늘과 땅의 차이로 거의 다른 나라의 정치와 같다고 할 수 있어도, 영국에서 정치적인 사건에 붙좇아 내란에 이른 것은 1600년 중엽에서 말엽에 이르기까지의 일인데, 1688년 윌리엄 3세가 왕위에 오른 후에는 이 일에 붙좇아 한 번도 무기를 국내에 동원한 일이 없다. 그래서 영국의 정통(正統)은 160년 170년간에 크게 변혁을 겪었다 해도, 그 사이에 조금이라도 군대를 사용한 일이 없고, 부지불식간에 이전 국민은 이전 정부의 정당한 방식을 생각하고, 이후의 국민은 이후의 정부를 정당한 방식으로 생각할 따름이다. 혹은 미개한 세상에 있어서도 무력을 사용하지 않고 정통(正統)을 개혁한 일이 있다. 옛날 프랑스에서 카롤링 제후들은, 프랑스 왕에게 신하로 일했는데, 이 사실은 국가의 권력을 장악한 것과 같다. 일본에서도 황실에 대한 후지와라(藤原)의 경우이고 호조(北条)의 미나모토(源)에 대한 경우도, 이 사례이다.
정통(正統)에 대한 혁명은 국가체제의 존망에 관계되는 일이 아니다. 정치의 형편은 어쨌든 변화하여 몇 번의 변화를 경과해도, 자국 국민에게 정치를 베푸는 사이는 국가의 체제가 훼손되는 일이 없다. 오랜 옛날 미국의 정치와 네덜란드는 오늘날 군주의 정치를 받들고, 최근에는 프랑스와 같이 백년 사이에 정치적 요체를 바꾼 일이 10여회에 이르러도, 그 국가의 체제는 여전하여 옛날과 다르지 않다. 앞 절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국가의 체제를 지키는 한계는 다른 나라 사람으로 하여 정권을 빼앗지 않도록 하는 한 가지 일에 있다. 미국에서 대통령이 되는 자는 반드시 자국에서 태어난 자를 선택하는 사례가 있어도, 자국인에게 자국의 정치를 하기 때문에 사람들의 뜻에 의한 일이다.
셋째, 혈통은 서양에서「line」이라고 한다. 나라 임금의 부자가 서로 이어받되 핏줄이 끊어지지 않는 일이다. 세계의 나라마다의 형편에서, 임금의 혈통은 남자로 제한하는 일이 있고, 혹은 남자와 여자를 서로 고르지 않는 일도 있다. 상속법은 반드시 아버지와 아들에 국한하지 않고, 아들이 없으면 형제를 세우고, 형제가 없으면 더 먼 곳에 이르러, 친척 중에 제일 가까운 자를 선택하는 풍속이 있다. 서양 여러 나라는 군주 정치를 떠받드는 데 최고로 이것을 중시하여, 혈통 상속의 논쟁으로부터 전쟁을 일으킨 사례가 역사에 드물지 않다. 혹은 또 갑의 국가 군주가 죽어서 자식이 없고 때때로 을의 국가의 군주가 가까운 친척에 맞을 때는, 갑과 을의 군주 자리를 겸하여 양국의 임금이 되는 일도 있다. 이 풍속은 유독 유럽에서 행하여 질 따름이고, 중국에서도 일본에서 그 사례를 볼 수 없다. 다만 양 국가 사이에 한 임금을 떠받들어도, 그 나라의 국가체제에서 정통(正統)에 영향을 미치는 일이 없다.
이와 같이 국가의 체제도 정통(正統)도 혈통은 일일이 다른 것이어서, 혈통을 바꾸지 않고도 정통(正統)을 바꾼 일이 있다. 영국의 정치 연혁, 프랑스의「카롤링 제후들」의 사례가 이것이다. 또 정통(正統)은 바꾸어도 국가의 체재는 바꾸지 않는 일도 있다. 많은 나라에 그 사례는 대단히 많다. 또 혈통을 바꾸지 않고 국가의 체제를 바꾼 일이 있다. 영국인과 네덜란드인이 동양의 나라를 취하여 옛날 우두머리를 그대로 두고, 영국과 네덜란드의 정권으로써 식민지인들을 지배하여, 또 그 우두머리를 통제한 것과 같은 것이, 이것이다.
일본에서도 국가가 세워진 초기부터 국가의 체계를 바꾼 일이 없다. 천황의 혈통도 역시 계속되어 끊어진 적이 없다. 다만 정통(正統)에 이르러서는 여러 차례 크게 바뀌었다. 처음에는 천황이 스스로 정치를 했고, 그 다음에는 외척의 재상인 자가 정권을 독점하고, 그 다음에는 그 권력이 무사의 가문에로 옮겼고, 다시 옮겨 제후의 신하의 손에 떨어졌고, 다시 옮겨 장군의 집에 돌아가서, 점점 봉건의 세력을 이루어 에도 말년에 이르렀다. 정권이 한 번 황실을 떠나자 천황은 다만 실권이 없는 자리를 지녔을 따름이다. 산요의 야사(野史)에서 호조를 평하여 천황을 보는 일이 어미 잃은 돼지와 같다고 말했다. 그 말은 정말로 옳다. 정통(正統)의 혁명이 이와 같은 데 이르러 더욱이 국가의 체제를 잃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언어와 풍속을 함께하는 일본인에게 일본의 정치를 펴서, 외국인에게 정권을 조금도 빌려준 적이 없다면 된다.
그런데 여기에 우리들로서 크게 의심을 품을 일이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세상의 일반적인 통론에 있어서 오로지 혈통의 한 방향에 집중하고, 국가 체제도 혈통도 혼동하여, 이 혼동의 때에는 하나를 중시하고 다른 하나를 무시하는 폐단이 없지 않은 한 가지 일이다. 원래 우리나라의 천황 계통은 국가 체제와 같이하여 계속되어 오늘날에 이른 것은, 외국에도 그 비슷한 사례가 없고 드문 일이어서, 혹은 이것을 일종의 국가 체제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하더라도 잘 사물의 이치를 규명하여 이것을 논하면, 이 천황의 핏줄이 끊어지지 않은 것은 국가의 체제를 잃지 않은 징후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을 사람의 몸에 비유하면, 국가의 체제는 더욱 신체와 같고 천황의 계통은 더욱 눈과 같다. 눈의 광채를 보면 그 신체가 죽지 않을 것을 판단할 수 있어도, 한 몸의 건강을 유지하는 데는 눈만 주의하여 몸 전체의 생기를 돌보지 않을 이치가 없다. 몸 전체가 쇠약한 바가 있으면 그 눈도 역시 자연히 빛을 잃지 않을 수 없다. 혹은 심한 지경에 이르러서는 몸 전체가 이미 죽어 생기의 흔적이 없어도, 오직 눈이 열려있는 것을 보고 이것을 살아있는 몸으로 오인하여 두려워하지 않는다. 영국인이 동양의 여러 나라를 통제하는 데서, 몸을 죽이고 눈을 남겨놓은 사례가 적지 않다.
역사의 기록에 따르면, 혈통이 끊어지지 않고 유지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호조(北朝) 시대부터 이후, 남북조의 사정을 보면 알 수 있다. 그 시대에 있어서는 혈통에 복종하거나 배반하는 것도 있어 논쟁하는 일이 있어도, 사건이 이미 가라앉아 오늘날에 이르면 또 이 복종과 배반을 묻지 않는다. 순종과 배반은 오직 한 시대의 논의일 따름이다. 후세로부터 논할 때는 동일하게 천황의 혈통이므로, 이 혈통이 끊어지지 않은 것을 보고 만족한다. 그래서 혈통에 순종하거나 배반하는 일은 이 시대를 맞아 매우 중요한 일이어도, 시대를 생각 밖에 두고 지금의 마음으로써 옛날을 헤아려, 다만 혈통이 이어지는 데만 눈을 두고, 이것을 이어지게 하는 방법은 버리고 논하지 않을 때는, 충(忠)도 불충(不忠)도 의(義)도 불의(不義)도 있을 수 없다. 구스노키 마사시게(楠木正成)와 아시카가 다카우지(足利尊氏)를 구별하기는 어렵다. 그렇다할지라도 충분히 그 시대의 형세에 나아가 생각하면, 구스노키는 오직 혈통만을 논쟁한 것이 아니다. 이 사실은 정통(正統)을 논쟁하여 천황의 정권을 천황에게 돌려서, 어려운 것을 먼저하고 쉬운 것을 뒤로 미룬 것이다. 이 내용을 보아서 혈통을 유지하는 것도 정권을 유지하는 것도, 그 어느 것이 어렵고 쉬운지 알 수 있다.
옛날과 현재의 통론을 듣는 데, 우리나라의 주권이 탈취당하지 않은 것은 많은 나라보다 뛰어나다고 지적하여 의기양양한 것 같다. 이 많은 나라보다 뛰어나다는 것은 오직 천황의 핏줄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진 것을 자부하는 일인가? 천황의 핏줄로 하여금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게 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호조(北条)와 아시카가(足利)와 같이 충성하지 않는 자도 더욱 잘 이것을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게 했다. 혹은 정통(正統)이 외국보다 뛰어난 바가 있는가? 우리나라의 정통(正統)은 옛날부터 여러 번 혁명을 겪어 그 형편이 여러 외국과 다르지 않아서, 자랑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그렇다면 곧 그 주권이 탈취당하지 않은 것은, 개국이후 국가의 체제를 온전히 하여 외국인에게 정권을 탈취당한 일이 없는 한 가지 일에 있을 따름이다. 그래서 국가의 체제는 국가의 근본이다. 정통(正統)도 혈통도 이것에 따라 성쇠를 함께하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헤이안(平安) 시대의 황실에서 정권을 잃고 또는 혈통에 순종하고 배반하는 일이 있었더라도, 주권을 탈취당하는 일은 일본 국내에 일어난 적이 없어서 오늘날에 있어 의기양양함이 가능함은, 만약 옛날 러시아와 영국인으로 하여금 미나모토노 요리토모의 일을 수행하게 하면, 설령 천황의 핏줄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는 것도 일본인의 지위에 있어서 결단코 의기양양한 내색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가마쿠라(鎌倉) 시대에는 다행히도 러시아인과 영국인도 없었더라도, 오늘날은 실제로 그 사람들이 있어 일본국의 주위에 많이 몰려든다. 시대의 추이가 변하는 것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시대를 맞아 일본인의 의무는 다만 이 국가의 체제를 유지하는 한 가지뿐이다. 국가의 체제를 유지하는 것은 자국의 정권을 잃지 않는 것이다. 정권을 잃지 않고자 한다는 것에는 백성의 지혜를 촉진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조목은 매우 많다고 할지라도, 지혜를 발생시키는 길에서 1등의 필수사항은, 옛 습관에 빠지는 미혹을 일소하고 서양에서 행하여지는 문명의 정신을 취하는 데 있다. 음양오행의 미혹을 제거하지 않으면 사물의 진리를 밝히는 길에 들어갈 수 없다. 사람의 일도 역시 이와 같다. 옛 풍속에 속박되는 미혹을 제거하지 않으면 인간의 교제는 유지될 수 없다. 이미 이 미혹에서 탈출하여 지혜가 활발한 지경에 나아가, 전국의 지혜로써 국권을 유지하여 국가의 체제의 기초를 정할 때는, 또 왜 걱정하는 바가 있을까? 천황의 핏줄이 이어지는 것을 유지하는 것 같은 일은 쉬운 것 중에서도 쉬울 따름이다. 시험적으로 말하니, 천하의 선비여, 충절 외에 생각하는 것이 없는가? 충절도 충분히 하지 않을 수 없어도, 충성을 다하면서 큰 충성을 다할 수 있다. 천황의 핏줄이 이어지는 것을 보호하고자 원하면, 그 이어지는 데 빛을 보태어 보호할 수 있다. 국가의 체제가 견고하지 않으면 혈통이 빛날 수 없다. 이전의 비유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온몸에 생기가 없으면 눈도 빛을 잃는다. 이 눈을 귀중하게 생각하면 신체의 건강에 주의하지 않을 수 없다. 안약 한 가지를 써서 눈의 광명을 유지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 순서로써 생각하면, 서양문명은 우리의 국가 체제의 확고함과 겸해서 우리 천황의 핏줄에 빛을 보탤 수 있는 둘도 없는 한 가지 일이라면, 이것을 취하는 데 있어서 왜 주저하는가? 결단코 서양의 문명을 받아들여야 한다.
앞 절에서 옛 풍속에 대한 미혹을 일소하는 일을 언급했다. 미혹이라는 단어는 그 사용하는 바가 매우 넓어서, 세상의 사물에 대하여 여러 가지의 미혹이 있어도, 지금 이것을 정부에 대하여 논하여, 정부의 실제 위세와 허세를 서로 분별하는 이유를 보인다. 무릇 사물의 편리함과 불편함은 그것 때문에 하는 바의 목적을 정함과 다르다면 결정하기 어렵다. 집은 비와 이슬을 피하기 때문에 편리하고, 의복은 바람과 추위를 막기 때문에 편리하다. 인간 만사 모두 때문에 하는 바가 있다. 그렇다하더라도,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오래하여, 혹은 그 사물에 관하여 실제의 기능을 망각하고 오직 물건만 중요시하여, 이것을 치장하고, 이것을 꾸미고, 이것을 사랑하고, 이것을 특별히 돌보아, 심하게는 다른 불편을 묻는 일을 하지 않고 오로지 이것을 보호하고자 하는 데 이르는 일이 있다. 이것이 곧 미혹으로, 세상에 허식적인 일이 일어나는 이유이다. 비유컨대 전국시대에 무사가 모두 두 자루의 칼을 휴대한 것은, 법률에 의뢰할 수 없어서 사람마다 스스로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지만, 습관적인 사용이 오래되어, 평화로운 시대에 이르러도 아직 이 칼 휴대를 폐지하지 않고, 오직 이것을 폐지하지 않을 따름이어서, 점점 이 물건을 중요시하여, 재산을 들여 두 자루의 칼을 꾸미고, 무릇 무사의 이름이 있는 자는 늙은이와 어린이를 묻지 않고 모두 이것을 차고 다니지 않는 일이 없다. 그런데 이것의 실제 효과가 어떤지를 찾으면, 칼의 외면에 금과 은으로 아로새기고, 칼집 안에는 가늘고 무딘 칼을 넣는 일도 있다. 게다가 검술을 모르면서 칼을 차는 자가 열에서 여덟, 아홉이다. 필경, 해롭고 무익한 일이지만, 이것을 폐지할지언정 인정(人情)으로 돌아가는 것은 무엇인가? 세상사람 모두가 두 개의 칼의 실용을 망각하고 오직 칼을 중요시하는 습관을 따르는 경우이다. 이 습관이 곧 미혹이다. 이제 평화로운 무사를 향해 그 칼을 차고 다니는 까닭을 꾸짖어 물으면, 그 사람의 발뺌하는 말에서는 이것은 조상이래의 관습이라고 말하고, 무사의 휘장이라고 칭할 따름인데 그 밖의 명백한 말은 있을 수 없다. 누가 잘 칼 휴대의 실용을 들어 이 꾸짖는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자인가? 이미 이것을 관습이라고 말하고, 또 휘장이라고 말할 때는, 이 물건을 폐지하는 것도 가능하다. 혹은 폐지할 수 없는 실용이 있으면, 그 취지를 변경하여 실제적인 효과만을 취하는 것도 가능하다. 어떤 구실을 세우는 것도 칼을 차고 다니는 것으로써 무사의 천성이라고 말할 이유가 없다. 정부도 역시 이와 같다. 세계 여러 나라 어떤 지방에서도, 그 초기 정부를 세워서 한 나라의 형태를 세우는 이유는, 그 나라의 정권을 온전히 하여 국가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함이다. 정권을 유지하고자 하는 것에는 원래 그 권위가 없으면 안 된다. 이것을 정부의 실제 위력이라고 말한다. 정부의 쓸모는 오직 이 실제 위력을 주장하는 한 가지 일에 있을 뿐이다. 그런데 국가 설립의 야만 시대에는, 국민 모두가 사물의 이치에 어두워 겉모양에만 두려워 복종하는 일이 있어서, 이것을 통제하는 방법도 역시 스스로 그 취지에 따라, 혹은 비이성적인 위력을 사용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을 정부의 허세라고 한다. 원래 그 시대의 민심을 유지하는 데는 부득이한 방편의 경우에, 백성을 위하여 궁리하여 동류를 서로 잡아먹는 세계를 벗어나 점차 순종하는 첫걸음을 배우는 것이어서, 이것을 나무랄 수 없지 않아도, 인류의 천성에 관하여 권력을 지닌 자가 스스로 권력에 빠져 방자하게 구는 폐해를 면하지 못한다. 이것을 비유컨대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 술을 마시면 그 술의 취기를 타고 또 술을 원하여, 술이 걸핏하면 사람으로 하여금 술을 마시도록 하는 것과 같이, 저 권력을 쥔 자도 한 번 허세로써 권위를 얻으면, 그 허세가 행하는 것을 타고 또 허세를 떨쳐, 허세가 걸핏하면 사람으로 하여금 허세를 마음대로 하게 하여, 관습이 길어져, 마침내 허세로써 정부의 외형을 이루어 그 외형에 천태만상의 꾸밈을 해서, 꾸밈이 더욱 다양해지면 세상 사람들의 눈과 귀를 현혹하여, 회고하여 실용이 있는 곳을 잃고, 오직 꾸밈이 늘어나는 외형만을 보고, 이것을 일종의 보배로 생각하여, 이것을 특별히 돌보고 보호하기 위함은 다른 이해득실을 버리고 묻지 않은 것에 이르러, 혹은 임금과 백성 사이를 다른 것으로 것과 같이하여, 강력하게 그 구별을 조작하여, 계급과 복식과 문서와 언어 모두의 상하를 정하는 방식을 세우는 일이다. 소위 주(周)나라와 당(唐)나라의 의례(儀禮)라는 것이 이것이다. 혹은 터무니없이 불가사의 한 것을 부르짖어, 그 임금은 곧바로 하늘의 명령을 받는다고 말하는 것, 그 선조는 영험한 산에 올라 하늘의 신과 언어를 나누었다고 말하는 것, 꿈을 말하는 신탁(神託)을 부르짖어, 태연하여 괴상하지 않은 일이 있다. 이른바 신정(神政) 정치라는 것이 이것이다. 모두 정부를 유지할 수 있는 실제 위력의 취지를 잊고, 유지할 수 없는 허세에 빠지는 것을 터무니없는 거짓말이라고 말할 수 있다. 허세와 실제 위력을 서로 구분하는 것이 바로 이곳에 있다.
이 터무니없는 거짓말도 옛날 상고(上古)의 터무니없는 거짓말 시대에 있어서는 역시 한 시대의 계략이지만, 인간의 지혜가 점점 열리는 데 따라서 이 계략을 쓸 수 없다. 지금의 문명시대에 있어서는, 의복이 아름다워도 관직이 당당해도, 경솔하게 사람의 눈을 현혹시킬 수 없다. 헛되이 지식인의 비웃음을 초래하기 충분할 따름이다. 설사 문명의 지식인이 아니더라도, 문명의 사물을 보는 자가 그 눈과 귀를 스스로 높은 곳까지 높이기 때문에, 결단코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강화할 수 없다. 국민을 다스리는 방법은, 오직 이치에 근거하여 약속을 정하여, 정치와 법률의 실제 위엄으로써 이것을 지키는 한 가지 방법만 있다. 금세기 7년의 큰 가뭄에 제단을 세우고 비를 기원하여도 비가 오지 않은 것을 모든 사람이 안다. 천황이 몸소 오곡에 풍년이 들기를 기원하여도 과학의 법칙은 작동할 수 없다. 인류의 기도로써 좁쌀 한 알도 늘어나지 않는 이치는, 학교의 어린이도 분명히 안다. 오랜 옛날에는 검을 바다에 던져 조류가 물러가는 일이 있어도, 현재의 바다 조류에는 밀물과 썰물의 시각이 있다. 옛날에는 보라색 구름이 펼쳐지는 것을 보고 영웅이 있는 곳을 알았더라도, 지금의 인물을 구름 가운데서 구할 수 없다. 이 옛날과 지금의 사물은 그 이치를 달리하지 않고, 옛날과 현재 사람의 지혜가 그 특징이 같지 않는 증거이다. 백성의 품행은 점차 높아지고, 전국의 지혜를 증가시켜 정치에 실제적 권위를 얻는 것은, 국가를 위하여 축하할 수 없는 것인가? 그런데 지금 실용을 버리고 허세 때문에, 외형을 꾸미고자 하여 오히려 이로운 사람을 어리석음으로 인도하는 것은 미혹이 심하게 된다. 허세를 주장하고자 욕심을 부리면 하층 백성을 어리석게 하여 국가 건설의 초기로 돌아가는 것을 상책으로 생각한다. 백성이 어리석음으로 돌아가면 정치의 힘은 점차 쇠약을 불러온다. 정치의 힘이, 쇠약해지면, 나라는 나라가 아니다. 나라가 나라가 아니면 국가의 체제가 있을 수 없다. 이와 같은 것은 곧 국가의 체제를 보호하고자 하는데 오히려 스스로 해치는 일이다. 전후의 순서가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비유컨대 영국에서도, 그 선왕이 남긴 뜻을 이어 군주를 세운 전제정치라는 옛 풍습을 지키고자 했더라면, 그 왕의 핏줄이 일찍 이미 끊어졌음은 원래 논의의 여지가 없다. 지금 그렇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가? 왕실의 허세를 줄이고 백성의 권한을 높여, 전국의 정치에 실제의 세력을 증가시켜, 그 국가와 함께 왕위도 견고하게 한 것이다. 왕실을 보호하는 상책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국가의 체제는 문명으로 인하여 손해를 보는 것이 아니다. 사실은 문명에 의지하여 가치를 높이는 것이다.
세계 가운데 어떤 국민에서도, 옛 관습에 빠진 자는 반드시 사건의 유래를 옛날로 하여 길게 과장하여, 그 이어진 일을 더욱 길게 하면 이것을 소중히 하는 일도 더욱 심하여, 그 형편이 흡사 남을 말하기 좋아하는 자(好事家)가 골동품을 좋아하는 것과 같다. 인도의 역사에 이야기도 있다. 이 나라의 초대 왕을 「프라타마-라자<Prathama-Rajah>」라고 하는데, 성스럽고 덕이 많은 임금이다. 이 임금의 즉위 시 나이가 2백만 살, 재위 기간이 6백3십만 년이고 왕위를 왕자에게 물려주고, 여전히 10만년을 지내고 세상을 떠났다. 또 말하기를, 이 나라에 「마누<Manu>」라고 하는 책이 있다. 《인도의 전설에, 이 책은 우주의 신 「브라마<Brahma>」의 아들 「마누<Manu>」로부터 받은 것이어서 이런 이름이 되었다고 한다. 서력기원 1794년 영국인 「존즈<Jones>」씨가 이것을 영문으로 번역했다. 책의 뜻은 종교의 독단설을 잘 기록한 일이어도, 덕을 닦는 조항에 이르러서는 대단히 엄정하여 논의도 또한 고상하고, 그 주장하는 바에 기독교도 부합하는 일이 매우 많다. 그 부합하는 것은 가르침의 취지뿐만 아니라, 문장도 역시 비슷하다. 비유컨대 「마누<Manu>」의 글에 말하기를, 사람을 보는 일에 상처를 입히는 것과 같이하여 불평을 호소하게 하지 말라, 실제로 사람을 해치지 말라, 또한 의도로도 사람을 해치지 말라, 사람을 욕하지 말라, 욕하면 참고 견디어야 한다, 분노를 맞아 분노로서 분노에 보복하지 말라, 운운. 또 기독교의 「시편<Psalms>」의 글도 「마누<Manu>」의 글도 글자마다 서로 닮은 것이 있다. 「시편<Psalms>」의 글이 말하여, 어리석은 자는 스스로 마음에 고하여 「신(God)」은 없다고 말한다. 마누<Manu>」의 글에 말하여, 악인은 스스로 마음에 고하여 누가 자기를 보는가라고 말하여도 신(神)은 분명히 이것을 분간하고 또 가슴 속의 정신도 이것을 알 수 있다. 그 부합하는 일이 이와 같다. 이상 「브랜드<Brande>」의 백과사전에서 부분 번역.》 이 책이 인간의 세상에 전해진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20억년의 일이란다. 대단히 오래된 물건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인도인은 이 귀한 책을 지키는 옛날 국가의 풍습을 존중하여 편안한 잠에 빠진 기간에, 정권은 이미 서양인에게 빼앗기고, 신령스런 대국도 영국의 부엌이 되고, 「프라타마-라자<Prathama-Rajah>」의 자손은 영국인의 노예가 되었다. 또 그 6백만 년이라 말하는 것도 20억년이라는 주장하여, 천지와 같이 오래되었다고 자부하는 일도, 원래 황당한 자랑이어서, 저 책의 유래도 사실은 3천년으로부터 오래지 않은 것이지만, 잠시 그 자랑에 맡기어 말하여, 여기에 인도의 6백만 년에 대하여 아프리카의 7백만 년의 것이 있다고 말하고, 그 20억에 대하여 우리는 30억이라고 말하는 자가 있으면, 인도인의 입을 막을 수가 있다. 결국 어리석은 아이의 흰소리일 따름이다. 또 한 마디의 말로 그 자랑을 꺾을 수 있는 일이다. 말하건대, 천지의 규모는 영원하고 매우 큰 것이다. 어찌 가지가지 책의 계통으로 그 길고 짧음을 논쟁하겠는가? 우주의 한 순간, 홀연히 억만년을 경과할 수 있어, 그 10억년의 세월은 단지 이 순간의 작은 시간일 따름, 이 작은 시간에 관하여 무익한 논의를 하여 오히려 문명의 큰 계획을 망각하는 것은, 가볍고 무거운 것을 구별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 한 마디의 말을 들으면 인도인도 또 입을 닫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 세상의 사물은 오래된 것으로써 가치가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이전에 말한 바와 같이, 우리나라 천황의 핏줄은 국가의 체제와 함께 이어져서 외국에 비교되지 않는다. 이것을 우리나라의 일종의 천황병립 국가체제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할지라도, 설사 이 병립을 일종의 국가체제라고 말해도, 이것을 굳게 지켜 뒤로 물러가는 것은 이것을 활용하여 앞으로 나아가는 것과 같지 않다. 이것을 활용하면 장소 때문에 커다란 효과가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이 천황병립이 귀중한 이유는, 옛날부터 우리나라에 고유하기에 귀한 것이 아니라, 이것을 유지하여 정권을 유지하고 우리의 문명을 진척시킬 수 있어서 귀중한 것이다. 물건이 귀중한 것이 아니라, 그 노력이 귀중하다. 역시 가옥의 형태를 귀중히 여겨, 그 비와 이슬을 막는 효과를 귀중히 여기는 것과 같다. 혹시 선조가 전하는 집짓는 풍습을 생각하여, 그 집의 형태만을 귀중하게 여기는 일이라면, 종이로 집을 짓는 것도 가능한가? 그러므로 천황병립의 국가 체제가 혹시 맞지 않는 일이 있으면, 그 맞지 않는 이유는 필히 습관이 오래된 사이에 발생해서 허식의 미혹에 이른 것이라면, 오직 그 허식의 미혹만을 제거하고 실제적 효과는 남겨, 점차 정치의 뜻을 개혁하여 진보하는 일이 있으면, 국가의 체제도 정치의 계통도 천황의 핏줄도 3자 서로 돌아가지 않고, 지금의 문명과 함께 양립할 수 있다. 비유컨대 러시아에서 오늘 그 정치를 개혁하여 내일부터 영국의 자유로운 풍습을 모방하고자 하는 일이 있으면, 실제로 실행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현 상황에서 국가에 큰 피해를 일으킬 수 있다. 그 피해가 일어나는 이유가 무엇인가? 러시아와 영국 양국의 문명은 그 진보의 정도가 달라서 그 국민이 지닌 지혜의 차이가 있으며, 지금의 러시아는 지금의 정치로서 바로 그 문명에 맞는 것이 있으면 된다. 그렇다할지라도, 러시아로 하여금 영원히 그 옛날 사물의 허식을 굳게 지키게 하여, 문명의 이득과 손실을 생각하지 못하여 필히 고유의 정치를 신봉하게 하는 것은, 감히 원하는 바가 아니고, 다만 그 문명의 정도를 살펴서, 문명에서 한 걸음 나아가면 정치에서도 한 걸음 나아가서, 문명도 정치도 걸음마다 병행하는 것을 바랄 뿐이다. 이 일에 관해서는 다음 장 마지막에서도 논하는 바가 있다. 이것을 참고할 수 있다. 《글 중에 서양이라고 말하는 것도 구라파라고 말하는 것도 같은 의미이다. 지리를 기록하는 데는 구라파와 아메리카의 구별이 있어도, 문명을 논할 때는 아메리카의 문명도 그 기원은 구라파로부터 옮겨온 것이어서, 구라파의 문명이라는 것은 구라파 풍의 문명을 말하는 의미일 뿐이다. 서양이라고 말하는 것도 이것과 같다.》
第二章 西洋の文明を目的とする事
前章に事物の軽重是非は相対したる語なりと云へり。されば文明開化の字も亦相対したるものなり。今世界の文明を論ずるに、欧羅巴諸国並(ならび)に亜米利加の合衆国を以て最上の文明国と為し、土耳古、支那、日本等、亜細亜の諸国を以て半開の国と称し、阿非利加(あふりか)及び墺太利亜(おーすとらりや)等を目して野蛮の国と云ひ、此名称を以て世界の通論となし、西洋諸国の人民独り自から文明を誇るのみならず、彼の半開野蛮の人民も、自から此名称の誣(し)ひざるに服し、自から半開野蛮の名に安んじて、敢て自国の有様を誇り西洋諸国の右に出ると思ふ者なし。啻にこれを思はざるのみならず、稍や事物の理を知る者は、其理を知ること愈自国の有様を明にし、愈これを明にするに従ひ、愈西洋諸国の及ぶ可らざるを悟り、これを患ひ、これを悲み、或は彼に学てこれに傚はんとし、或は自から勉てこれに対立せんとし、亜細亜諸国に於て識者終身の憂は唯此一事に在るが如し。《頑陋なる支那人も近来は伝習生徒を西洋に遣りたり。其憂国の情以て見る可し。》然ば則ち彼の文明半開野蛮の名称は、世界の通論にして世界人民の許す所なり。其これを許す所以は何ぞや。明に其事実ありて欺く可らざるの確証を見ればなり。左に其趣を示さん。即是れ人類の当(まさ)に経過す可き階級なり。或は之を文明の齢と云ふも可なり。
第一 居に常処なく食に常食なし。便利を遂ふて群を成せども、便利尽くれば忽ち散じて痕を見ず。或は処を定めて農漁を勤め、衣食足らざるに非ずと雖ども器械の工夫を知らず、文字なきには非ざれども文学なるものなし。天然の力を恐れ、人為の恩威に依頼し、偶然の禍福を待つのみにて、身躬から工夫を運らす者なし。これを野蛮と名く。文明を去ること遠しと云ふ可し。
第二 農業の道大に開けて衣食具はらざるに非ず。家を建て都邑を設け、其外形は現に一国なれども、其内実を探れば不足するもの甚だ多し。文学盛なれども実学を勤る者少く、人間交際に就ては猜疑嫉妬の心深しと雖ども、事物の理を談ずるときには疑を発して不審を質すの勇なし。摸擬の細工は巧なれども新に物を造るの工夫に乏しく、旧を脩るを知て旧を改るを知らず。人間の交際に規則なきに非ざれども、習慣に圧倒せられて規則の体を成さず。これを半開と名く。未だ文明に達せざるなり。
第三 天地間の事物を規則の内に籠絡すれども、其内に在て自から活動を逞ふし、人の気風快発にして旧慣に惑溺せず、身躬から其身を支配して他の恩威に依頼せず、躬から徳を脩め躬から智を研き、古を慕はず今を足れりとせず、小安に安んぜずして未来の大成を謀り、進て退かず達して止まらず、学問の道は虚ならずして発明の基を開き、工商の業は日に盛にして幸福の源を深くし、人智は既に今日に用ひて其幾分を余し、以て後日の謀を為すものゝ如し。これを今の文明と云ふ。野蛮半開の有様を去ること遠しと云ふ可し。
右の如く三段に区別して其有様を記せば、文明と半開と野蛮との境界分明なれども、元と此名称は相対したるものにて、未だ文明を見ざるの間は半開を以て最上とするも妨あることなし。此文明も半開に対すればこそ文明なれども、半開と雖どもこれを野蛮に対すれば亦これを文明と云はざるを得ず。譬へば今支那の有様を以て西洋諸国に比すれば之を半開と云はざるを得ず。されども此国を以て南阿非利加の諸国に比する歟、近くは我日本上国の人民を以て蝦夷人に比するときは、これを文明と云ふ可し。又西洋諸国を文明と云ふと雖ども、正しく今の世界に在てこの名を下だす可きのみ。細にこれを論ずれ足らざるもの甚だ多し。戦争は世界無上の禍なれども、西洋諸国常に戦争を事とせり。盗族殺人は人間の一大悪事なれども、西洋諸国にて物を盗む者あり人を殺す者あり。国内に党与を結て権を争ふ者あり、権を失ふて不平を唱る者あり。況や其外国交際の法の如きは、権謀術数至らざる所なしと云ふも可なり。唯一般に之を見渡して善盛に趣くの勢あるのみにて、決して今の有様を見て直に之を至善と云ふ可らず。今後数千百年にして世界人民の智徳大に進み太平安楽の極度に至ることあらば、今の西洋諸国の有様を見て愍然たる野蛮の歎を為すこともある可し。是に由てこれを観れば文明には限なきものにて、今の西洋諸国を以て満足す可きに非ざるなり。
西洋諸国の文明は以て満足するに足らず。然ば則ちこれを捨てゝ採らざる乎。これを採らざるときは何れの地位に居て安んずる乎。半開も安んず可き地位に非ず、況んや野蛮の地位に於てをや。此二の地位を棄れば別に又帰する所を求めざる可らず。今より数千百年の後を期して彼の太平安楽の極度を待たんとするも、唯是れ人の想像のみ。且文明は死物に非ず、動て進むものなり。動て進むものは必ず順序階級を経ざる可らず。即ち野蛮は半開に進み、半開は文明に進み、其文明も今正に進歩の時なり。欧羅巴と雖ども其文明の由来を尋れば必ずこの順序階級を経て以て今日の有様に至りしものなれば、今の欧羅巴の文明は即ち今の世界の人智を以て僅に達し得たる頂上の地位と云ふ可けのみ。されば今世界中の諸国に於て、仮令ひ其有様は野蛮なるも或は半開なるも、苟も一国文明の進歩を謀るものは欧羅巴の文明を目的として議論の本位を定め、この本位に拠て事物の利害損得を談ぜざる可らず。本書全編に論ずる所の利害得失は、悉皆欧羅巴の文明を目的と定めて、この文明のために利害あり、この文明のために得失ありと云ふものなれば、学者其大趣意を誤る勿れ。
或人云く、世界中の国々相分れて各独立の体を成せば、又随て人心風俗の異なるあり、国体政治の同じからざるあり。然るに今其国の文明を謀て利害得失悉皆欧羅巴を目的と為すとは不都合ならずや、宜しく彼の文明を採り此の人心風俗を察し、其国体に従ひ其政治を守り、これに適するものを撰びて、取る可きを取り捨べきを捨て、始て調和の宜(よろしき)を得べきなりと。答て云く、外国の文明を取て半開の国に施すには固より取捨の宜なかる可らず。然りと雖ども文明には外に見はるゝ事物と内に存する精神と二様の区別あり。外の文明はこれを取るに易く、内の文明はこれを求るに難し。国の文明を謀るには其難を先にして易を後にし、難きものを得るの度に従てよく其深浅を測り、乃ちこれに易きものを施して正しく其深浅の度に適せしめざる可らず。若し或はこの順序を誤り、未だ其難きものを得ずして先づ易きものを施さんとするときは、啻に其用を為さゞるのみならず却て害を為すこと多し。抑も外に見はるゝ文明の事物とは衣服飲食器械住居より政令法律等に至るまで都て耳目以て聞見す可きものを云ふなり。今この外形の事物のみを以て文明とせば、固より国の人心風俗に従て取捨なかる可らず。西洋各国境を接するの地と雖ども、其趣必ずしも比隣(ひりん)一様ならず、況や東西隔遠なる亜細亜諸邦に於て悉皆西洋の風に傚ふ可けんや。仮令ひこれに傚ふも之を文明と云ふ可らず。譬へば近来我国に行はるゝ西洋流の衣食住を以て文明の徴候と為す可きや。断髪の男子に逢てこれを文明の人と云ふ可きや。肉を喰ふ者を見てこれを開化の人と称す可きや。決して然る可らず。或は日本の都府にて石室鉄橋を摸製し、或は支那人が俄に兵制を改革せんとして西洋の風に傚ひ、巨艦を造り大砲を買ひ、国内の始末を顧みずして漫に財用を費すが如きは、余輩の常に悦ばざる所なり。是等の事物は人力を以て作る可し、銭を投じて買ふ可し。有形中の最も著しきものにて、易中の最も易きものなれば、之を取るの際に当ては固より前後緩急の思慮なくして可ならんや。必ず自国の人心風俗に従はざる可らず、必ず自国の強弱貧困に問はざる可らず。即ち或人所云(いふところ)の人心風俗を察するとは此事なる可し。この一段に就ては余輩固より異論なしと雖ども、或人は唯文明の外形のみを論じて、文明の精神をば捨てゝ問はざるものゝ如し。 蓋し其精神とは何ぞや。人民の気風即是なり。此気風は売る可きものに非ず、又人力を以て遽に作る可きものにも非ず。洽(あま)ねく一国人民の間に浸潤して広く全国の事跡に顕はるゝと雖ども、目以て其形を見る可きものに非ざれば、其存する所を知ること甚だ難し。今試に其在る所を示さん。学者若し広く世界の史類を読て、亜細亜、欧羅巴の二流を比較し、其地理産物を問はず、其政令法律に拘はらず、学術の巧拙を聞かず、宗門の異同を尋ねずして、別に此二洲の趣をして互に相懸隔せしむる所のものを求めなば、必ず一種無形の物あるを発明す可し。其物たるやこれを形容すること甚だ難し。これを養へば成長して地球万物を包羅し、これを圧抑すれば萎縮して遂に其形影をも見る可らず。進退あり栄枯ありて片時も動かざることなし。其幻妙なること斯の如しと雖ども、現に亜欧二洲の内に於て互に其事跡に見はるゝ所を見れば、明に其虚ならざるを知る可し。今仮に名を下だして、これを一国人民の気風と云ふと雖ども、時に就て云ふときはこれを時勢と名け、人に就ては人心と名け、国に就ては国俗又は国論と名く。所謂文明の精神とは即ち此物なり。かの二洲の趣をして懸隔せしむるものは即ち此文明の精神なり。故に文明の精神とは或はこれを一国の人心風俗と云ふも可なり。これに由て考れば、或人の説に西洋の文明を取らんとするも先づ自国の人心風俗を察せざる可らずと云ひしは、其字句足らずして分明ならざるに似たれども、よく其意味を砕てこれを解くときは、即ち文明の外形のみを取る可らず、必ず先づ文明の精神を備へて其外形に適す可きものなかる可らずとの意見を述べたるものなり。今余輩が欧羅巴の文明を目的とすると云ふも、此文明の精神を備へんがために、これを彼に求るの趣意なれば、正しく其意見に符号するなり。唯或人は文明を求るに当て其形を先にし、忽ち妨碍に逢て其妨碍を遁るゝの路を知らず、余輩は其精神を先にして預(あらかじ)め妨碍を除き、外形の文明をして入るに易からしめんとするの相違あるのみ。或人は文明を嫌ふ者に非ず、唯これを好むこと我輩の如く切ならずして、未だ其議論を極めざるのみ。
前論に文明の外形をして入るに易く其精神はこれを求るに難しとの次第を述べたり。今又この義を明にせん。衣服飲食器械住居より政令法律等に至るまで皆耳目の聞見す可きものなり。而して政令法律はこれを衣食住居等に比すれば稍や其趣を異にし、耳目以て聞見す可しと雖ども手を以て握り銭を以て売買す可き実物にあらざれば、これを取るの法も亦稍や難くして衣食住居等の比にあらず。故に今鉄橋石室を以て西洋に擬するは易しと雖ども、政法を改革するは甚だ難し。即是れ我日本にても、鉄橋石室は既に成りて政法の改革は未だ行はれ難く国民の議会も遽に行はる可らざる由縁なり。尚一歩を進めて全国人民の気風を一変するが如きは其事極て難く、一朝一夕の偶然に由て功を奏す可きに非ず。独り政府の命を以て強ゆ可らず、独り宗門の教を以て説く可らず、況や僅に衣食住居等の物を改革して外より之を導く可けんや。唯其一法は人生の天然に従ひ、害を除き故障を去り、自から人民一般の智徳を発生せしめ、自から其意見を高尚の域に進ましむるに在るのみ。斯の如く天下の人心を一変するの端を開くときは、政令法律の改革も亦漸く行はれて妨碍なかる可し。人心既に面目を改め政法既に改まれば、文明の基、始めてこゝに立ち、かの衣食住有形の物の如きは自然の勢に従ひ、これを招かずして来り、これを求めずして得べし。故に云く、欧羅巴の文明を求るには難を先にして易を後にし、先づ人心を改革して次で政令に及ぼし、終に有形の物に至る可し。此順序に従へば、事を行ふは難しと雖ども、実の妨碍なくして達す可きの路あり。此順序を倒(さかしま)にすれば、事は易に似たれども、其路忽ち閉塞し、恰も墻壁の前に立つが如くして寸歩を進ること能はず、或は其壁前に躊躇する歟、或は寸を進めんとして却て激して尺を退くることある可し。
右は唯文明を求るの順序を論じたるものなれども、余輩決して有形の文明を以て到底無用なりとするに非ず。有形にても無形にても、之を外国に求るも之を内国に造るも、差別ある可らず。唯其際に前後緩急の用心ある可きのみ。決して之を禁ずるに非ず。抑も人生の働には際限ある可らず。身体の働あり、精神の働あり。其及ぶ所甚だ広く、其需(もとむ)る所極て多くして、天性自から文明に適するものなれば、苟も其性を害せざれば則ち可なり。文明の要は唯この天然に稟(う)け得たる身心の働を用ひ尽して遺す所なきに在るのみ。譬へば草昧の時代には人皆腕力を貴び、人間の交際を支配するものは唯腕力の一品にして、交際の権力一方に偏せざるを得ず。人の働を用ること極て狭しと云ふ可し。文化少しく進て世人の精神漸く発生すれば、智力の方にも自から権を占めて腕力と相対し、智力と腕力と互に相制し互に相平均して、聊(いささ)か権威の偏重を防ぐに足るものあり。人の働を用るに少しく其区域を増したりと云ふ可し。然りと雖ども此腕力と智力とを用るに当て、古は其箇条甚だ少なく、腕力をば専ら戦闘に費して他は顧るに遑あらず。衣食住の物を求るが如きは僅に戦闘の余力を用るのみ。所謂尚武の風俗是なり。智力も亦漸く其権を得ると雖ども、当時野蛮の人心を維持するに忙はしければ、其働を和好平安の事に施す可らずして、専ら之を治民制人の方便に用ひ、腕力と互に依頼して未だ智力独立の地位なるものなし。今試に世界の諸国を見るに、野蛮の民は勿論、半開の国に於ても、智徳ある者は必ず様々の関係を以て政府に属し、其力に依頼して人を治るの事を為すのみ。或は稀に自から一身のためを謀る者あるも、単に古学を脩る歟、若しくは詩歌文章等の技芸に耽るに過ぎず。人の働を用ること未だ広からずと云ふ可し。人事漸く繁多にして身心の需用次第に増加するに至て、世間に発明もあり工夫も起り、工商の事も忙はしく学問の道も多端にして、又昔日の単一に安んず可らず。戦闘、政治、古学、詩歌等も僅に人事の内の一箇条と為りて、独り権力を占るを得ず。千百の事業、並に発生して共に其成長を競ひ、結局は此彼同等平均の有様に止て、互に相迫り互に相推して、次第に人の品行を高尚の域に進めざるを得ず。是に於てか始て智力に全権を執り、以て文明の進歩を見る可きなり。都て人類の働は愈単一なれば其心愈専ならざるを得ず。其心愈専なれば其権力愈偏せざるを得ず。蓋し古の時代には事業少なくして人の働を用ゆ可き場所なく、之がために其力も一方に偏したることなれども、歳月を経るに従て恰も無事の世界を変じて多事の域と為し、身心のために新に運動の地を開拓したるが如し。今の西洋諸国の如きは正に是れ多事の世界と云ふ可きものなり。故に文明を進るの要は、勉めて人事を忙はしくして需用を繁多ならしめ、事物の軽重大小を問はず、多々益これを採用して益精神の働を活潑ならしむるに在り。然り而して、苟も人の天性を妨ることなくば、其事は日に忙はしくして其需用は月に繁多ならざるを得ず。世界古今の実験に由て見る可し。是即ち人生の自から文明に適する所以にして、蓋し偶然には非ず。之を造物主の深意と云ふも可なり。
此議論を推して考れば、爰に又一の事実を発明す可し。即ち其事実とは、支那と日本との文明異同の事なり。純然たる独裁の政府又は神政府と称する者は、君主の尊き由縁を一に天与に帰して、至尊の位と至強の力とを一に合して人間の交際を支配し、深く人心の内部を犯して其方向を定るものなれば、此政治の下に居る者は、思想の向ふ所、必ず一方に偏し、胸中に余地を遺さずして、其心事常に単一ならざるを得ず。《心事繁多ならず》故に世に事変ありて聊かにても此交際の仕組を破るものあれば、事柄の良否に拘はらず、其結果は必ず人心に自由の風を生ず可し。支那にて周の末世に、諸侯各割拠の勢を成して人民皆周室あるを知らざること数百年、此時に当て天下大に乱ると雖ども、独裁専一の元素は頗る権力を失ふて、人民の心に少しく余地を遺し自から自由の考を生じたることにや、支那の文明三千余年の間に、異説争論の喧しくして、黒白全く相反するものをも世に容るゝことを得たるは、特に周末を以て然りとす。《老壮楊墨其他百家の説甚だ多し》孔孟の所謂異端是なり。此異端も孔孟より見ればこそ異端なれども、異端より論ずれば孔孟も亦異端たるを免かれず。今日に至ては遺書も乏しくして之を証するに由なしと雖ども、当時人心の活潑にして自由の気風ありしは推して知る可し。且秦の始皇、天下を一統して書を焚(やき)たるも、専ら孔孟の教のみを悪みたるに非ず。孔孟にても楊墨にても都て百家の異説争論を禁ぜんがためなり。当時若し孔孟の教のみ世に行はれたることならば、秦皇も必ず書を焚くには及ばざる可し。如何となれば後世にも暴君は多くして秦皇の暴に劣らざる者ありと雖ども、嘗て孔孟の教を害とせざるを以て知る可し。孔孟の教は暴君の働を妨るに足らざるものなり。然り而して秦皇が特に当時の異説争論を悪て之を禁じたるは何ぞや。其衆口の喧しくして特に己が専制を害するを以てなり。専制を害するものとあれば他に非ず、此異説争論の間に生じたるものは必ず自由の元素たりしこと明に証す可し。故に単一の説を守れば、其説の性質は仮令ひ純精善良なるも、之に由て決して自由の気を生ず可らず。自由の気風は唯多事争論の間に在て存するものと知る可し。秦皇一度此多事争論の源を塞ぎ、其後は天下復た合して永く独裁の一政治に帰し、政府の家は屢交代すと雖ども、人間交際の趣は改ることなく、至尊の位と至強の力とを一に合して世間を支配し、其仕組に最も便利なるがために独り孔孟の教のみを世に伝へたることなり。或人の説に、支那は独裁政府と雖ども尚政府の変革在り、日本は一系万代の風なれば其人民の心も自から固陋ならざる可らずと云ふ者あれども、此説は唯外形の名義に拘泥して事実を察せざるものなり。よく事実の在る所を詳にすれば果して反対を見る可し。其次第は、我日本にても古は神政府の旨を以て一世を支配し、人民の心単一にして、至尊の位は至強の力に合するものとして之を信じて疑はざる者なれば、其心事の一方に偏すること固より支那人に異なる可らず。然るに中古武家の代に至り漸く交際の仕組を破て、至尊必ずしも至強ならず、至強必ずしも至尊ならざるの勢と為り、民心に感ずる所にて至尊の考と至強の考とは自から別にして、恰も胸中に二物を容れて其運動を許したるが如し。既に二物を容れて其運動を許すときは、其間に又一片の道理を雑(まじ)へざる可らず。故に神政尊祟の考と武力圧制の考と之に雑るに道理の考とを以てして、三者各強弱ありと雖ども一として其権力を専にするを得ず。之を専にするを得ざれば其際に自から自由の気風を生ぜざる可らず。之を彼の支那人が純然たる独裁の一君を仰ぎ、至尊至強の考を一にして一向の信心に惑溺する者に比すれば同日の論に非ず。此一事に就ては支那人は思想に貧なる者にして日本人は之に富める者なり。支那人は無事にして日本人は多事なり。心事繁多にして思想に富める者は惑溺の心も自から淡泊ならざるを得ず。独裁の神政府にて、日蝕の時に天子席を移し、天文を見て吉凶を卜する等の事を行へば、人民も自から其風に靡き、益君上を神視して益愚に陥ることあり。方今支那の如きは正に此風を成せりと雖ども、我日本に於ては則ち然らず。人民固より愚にして惑溺甚しからざるに非ずと雖ども、其惑溺は即ち自家の惑溺にして、神政府の余害を蒙りたるものは稍や少なしと云ふ可し。譬へば武家の世に、日蝕あれば天子は席を移したることもあらん、或は天文を窺ひ或は天地を祭りたることもあらんと雖ども、此至尊の天子に至強の力あらざれば、人民は自から之を度外に置て顧るものなし。亦至強の将軍は其威力誠に至強にして一世を威服するに足ると雖ども、人民の目を以て之を見れば至尊の天威を仰ぐが如くならずして自から之を人視せざるを得ず。斯の如く至尊の考と至強の考と互に相平均して其間に余地を遺し、聊かにても思想の運動を許して道理の働く可き端緒を開きたるものは、之を我日本偶然の僥倖と云はざるを得ず。今の時勢に至ては武家の復古も固より願ふ可きに非ずと雖ども、仮に幕政七百年の間に王室をして将家の武力を得せしむる歟、又は将家をして王室の位を得せしめ、至尊と至強と相合一して人民の身心を同時に犯したることあらば、迚も今の日本はある可らず。或は今日に至て彼の皇学者流の説の如く、政祭一途に出るの趣意を以て世間を支配することあらば、後日の日本も亦なかる可し。今其然らざるものは之を我日本人民の幸福と云ふ可きなり。故に云く、支那は独裁の神政府を万世に伝へたる者なり、日本は神政府の元素に対するに武力を用ひたる者なり。支那の元素は一なり、日本の元素は二なり。此一事に就て文明の前後を論ずれば、支那は一度び変ぜざれば日本に至る可らず。西洋の文明を取るに日本は支那よりも易しと云ふ可し。
前段或人の言に、各其国体を守て西洋の文明を取捨す可し云々の論あり。国体を論ずるは此章の趣意に非ざれども、他の文明を取るの談に当て、先づ人の心に故障を感ぜしむる者は国体論にして、其甚しきは国体と文明とは並立す可らざる者の如くして、此一段に至ては世の議論家も口を閉して又云はざる者多し。其状恰も未だ鋒を交へずして互に退くが如し。迚も和戦の成行は見る可らず。況や其事理を詳に論ずれば、必ず戦ふに及ばずして明に一和(いつくわ)の路あるに於てをや。何ぞ之を捨てゝ論ぜざるの理あらん。是れ余輩が文の長きを厭はずして、爰に或人の言に答て弁論する所以なり。第一国体とは何物を指すや。世間の議論は姑く擱き、先づ余輩の知る所を以て之を説かん。体は合体の義なり、又体裁の義なり。物を集めて之を全ふし他の物と区別す可き形を云ふなり。故に国体とは、一種族の人民相集て憂楽を共にし、他国人に対して自他の別を作り、自から互に視ること他国人を視るよりも厚くし、自から互に力を尽すこと他国人の為にするよりも勉め、一政府の下に居て自から支配し他の政府の制御を受るを好まず、禍福共に自から担当して独立する者を云ふなり。西洋の語に「ナショナリチ」と名るもの是なり。凡そ世界中に国を立るものあれば亦各其体あり。支那には支那の国体あり、印度には印度の国体あり。西洋諸国、何れも一種の国体を具へて自から之を保護せざるはなし。此国体の情の起る由縁を尋るに、人種の同じきに由る者あり、宗旨の同じきに由る者あり、或は言語に由り、或は地理に由り、其趣一様ならざれども、最も有力なる源因と名く可きものは、一種の人民、共に世態の沿革を経て懐古の情を同ふする者、即是なり。或は此諸件に拘はらずして国体を全ふする者もなきに非ず。瑞西(すいす)に国体堅固(けんご)なれども、其国内の諸州は各人種を異にし言語を異にし宗旨を異にする者あるが如し。然りと雖ども此諸件相同じければ其人民に多少の親和なきを得ず。日耳曼(ぜるまん)の諸国の如きは、各独立の体を成すと雖ども、其言語文学を同ふし懐古の情を共にするが為に、今日に至るまでも日耳曼は自から日耳曼全州の国体を保護して他国と相別つ所あり。
国体は其国に於て必ずしも終始一様なる可らず、頗る変化あるものなり。或は合し或は分れ、或は伸る者あり或は蹙(ちぢ)む者あり、或は全く絶て跡なき者あり。而して其絶ると絶へざるとは言語宗旨等の諸件の存亡を見て徴(ちよう)す可らず。言語宗旨は存すと雖ども、其人民政治の権を失ふて他国人の制御を受るときは、則ち之を名て国体を断絶したるものと云ふ。譬へば英と蘇格蘭(すこつとらんど)と相合して一政府を共にしたるは、国体の合したる者にて双方共に失ふ所なし。荷蘭(おらんだ)と白耳義(べるぎー)と分れて二政府と為りたるは、国体の分れたる者なれども尚他国人に奪はれたるに非ず。支那にては宋の末に国体を失ふて元に奪はれたり。之を中華滅亡の始とす。後又元を殪(たふ)して旧に復し大明一統の世となりたるは、中華の面目と云ふ可し。然るに明末に及て又満清のために政権を奪はれ、遂に中華の国体を断絶して満清の国体を伸ばしたり。今日に至るまで中華の人民は、旧に依て言語風俗を共にし、或は其中に人物あれば政府の高官にも列することを得て、外形は清と明と合体の風に見ゆれども、其実は中華南方の国体を失ふて北方の満清に之を奪はれたるものなり。又印度人が英に制せられ、亜米利加の土人が白人に逐はれたるが如きは国体を失ふの甚しきものなり。結局国体の存亡は其国人の政権を失ふと失はざるとに在るものなり。
第二 国に「ポリチカル・レジチメ-ション」と云ふことあり。「ポリチカル」とは政の義なり。「レジチメ-ション」とは正統又は本筋の義なり。今仮に之を政統と訳す。即ち其国に行はれて普(あまね)く人民の許す政治の本筋と云ふことなり。世界中の国柄と時代とに従て政統は一様なる可らず。或は立君の説を以て政統とするものあり、或は封建割拠の説を以て政統と為す者あり、或は民庶会議を以て是とし、或は寺院、政を為すを以て本筋と為すものあり。抑も此政統の考の起る由縁を尋るに、此諸説の初に権を得るや必ず半(なかば)は腕力を用るを免れずと雖ども、既に権を得れば乃ち又腕力を燿(かがやか)すを要せず、啻に之を要せざるのみならず、其権を得たる由縁を腕力の所為に帰するは、其有権者の禁句にて之を忌むこと甚し。如何なる政府にても之に向て其権威の源を問はゞ、必ず之に答て云はん、我権を有するは理の為なり、我権を保つや歳月既に旧しとて、時の経過するに従て次第に腕力を棄てゝ道理に依頼せざる者なし。 腕力を悪て道理を好むは人類の天性なれば、世間の人も政府の処置の理に適するを見て之を悦び、歳月を経るに従て益これを本筋のものと為し、旧を忘れて今を慕ひ、其一世の事物に付き不平を訴ることなきに至る可し。是即ち政統なるものなり。故に政統の変革は戦争に由て成るもの多し。支那にて秦の始皇が周末の封建を殪して郡県と為し、欧羅巴にて羅馬の衰微するに従ひ北方の野蛮これを蹂躙して後遂に封建の勢を成したるも此例なり。然りと雖ども人文漸く進て学者の議論に権威を増し、兼て又其国の事情に都合よきことあれば、必ずしも兵力を用ひずして無事の間に変革することあり。譬へば英国にて今日の政治を以て千七百年代の初に比較せば、其趣雲壌懸隔して殆ど他国の政の如くなる可しと雖ども、同国にて政権の事に付き内乱に及びたるは千六百年の央より末に至るまでのことにて、千六百八十八年第三世「ヰルレム」が位に即きしより後は、此事に付き絶て干戈を邦内に動かしたることなし。故に英の政統は百六、七十年の間に大に変革したれども、其間に少しも兵力を用ることなく、識らず知らず趣を改めて、前の人民は前の政を本筋のものと思ひ、後の人民は後の政を本筋のものと思ふのみ。或は又不文の世に在ても兵力を用ひずして政統を改ることあり。往古仏蘭西にて「カラウヒンジヤ」[The Carolingians]の諸君、仏王に臣とし仕へて、其実は国権を握りたるが如し。日本にて藤原氏の王室に於ける、北条氏の源氏に於けるも、此例なり。
政統の変革は国体の存亡に関係するものに非ず。政治の風は何様に変化し幾度の変化を経るも、自国の人民にて政を施すの間は国体に損することなし。往古合衆政治たりし荷蘭は今日立君の政を奉じ、近くは仏蘭西の如き百年の間に政治の趣を改ること十余度に及びたれども、其国体は依然として旧に異ならず。前条にも云ふ如く、国体を保つの極度は他国の人をして政権を奪はしめざるの一事に在るなり。亜米利加の合衆国にて大統領たる者は必ず自国に生れたる人を撰ぶの例あるも、自国の人にて自国の政を為さんとするの人情に基きしものならん。
第三 血統とは西洋の語にて「ライン」と云ふ。国君の父子相伝へて血筋の絶へざることなり。世界中国々の風にて、国君の血統は男子を限るものあり、或は男女相撰ばざるものあり。相続の法は必ず父子に限らず、子なければ兄弟を立て、兄弟なければ尚遠きに及ぼし、親戚中の最も近き者を撰ぶの風なり。西洋諸国立君の政を奉ずる処にては最も之を重んじ、血統相続の争論よりして師(いくさ)を起したるの例は歴史に珍らしからず。或は又甲の国の君死して子なく、遇(たまた)ま乙の国の君其近親に当るときは、甲乙の君位を兼ねて両国一君なることあり。此風は唯欧羅巴に行はるゝのみにて、支那にも日本にも其例を見ず。但し両国の間に一君を奉ずると雖ども、其国の国体にも政統にも差響(さしひゞき)あることなし。
右の如く国体と政統と血統とは一々別のものにて、血統を改めざれども政統を改ることあり。英政の沿革、仏蘭西の「カラウヒンジヤ」の例、是なり。又政統は改れども国体を改めざることあり。万国其例甚だ多し。又血統を改めずして国体を改ることあり。英人荷蘭人が東洋の地方を取て、旧の酋長をば其まゝ差置き、英荷の政権を以て土人を支配し、兼て其酋長をも束縛するが如き、是なり。
日本にては開闢の初より国体を改たることなし。国君の血統も亦連綿として絶たることなし。唯政統に至ては屢大に変革あり。初は国君自から政を為し、次で外戚の輔相なる者政権を専らにし、次で其権柄将家に移り、又移て陪臣の手に落ち、又移て将家に帰し、漸く封建の勢を成して慶応の末年に至りしなり。政権一度び王室を去てより天子は唯虚位を擁するのみ。山陽外史北条氏を評して、万乗の尊を視ること孤豚の如しと云へり。其言真に然り。政統の変革斯の如きに至て尚国体を失はざりしは何ぞや。言語風俗を共にする日本人にて日本の政を行ひ、外国の人へ秋毫の政権をも仮したることなければなり。
然るに爰に余輩をして大に不審を抱かしむる所のものあり。其故は何ぞや。世間一般の通論に於て専ら血統の一方に注意し、国体と血統とを混同して、其混同の際には一を重んじて一を軽んずるの弊なきに非ざるの一事なり。固より我国の皇統は国体と共に連綿として今日に至るは、外国にも其比例なくして珍らしきことなれば、或は之を一種の国体と云ふも可なり。然りと雖どもよく事理を糺して之を論ずれば、其皇統の連綿たるは国体を失はざりし徴候と云ふ可きものなり。之を人身に譬へば、国体は猶身体の如く皇統は猶眼の如し。眼の光を見れば其身体の死せざるを徴す可しと雖ども、一身の健康を保たんとするには眼のみに注意して全体の生力を顧みざるの理なし。全体の生力に衰弱する所あれば其眼も亦自から光を失はざるを得ず。或は甚しきに至ては全体は既に死して生力の痕跡なきも、唯眼の開くあるを見て之を生体と誤認(したゝむ)るの恐なきに非ず。英人が東洋諸国を御するに、体を殺して眼を存するの例は少なからず。
歴史の所記に拠れば、血統の連綿を保つは難事に非ず。北条の時代より以降、南北朝の事情を見て知る可し。其時代に在ては血統に順逆もありて之を争ひしことなりと雖ども、事既に治りて今日に至れば又其順逆を問ふ可らず。順逆は唯一時の議論のみ。後世より論ずるときは均しく天子の血統なるゆゑ、其血統の絶へざるを見て之に満足するなり。故に血統の順逆は其時代に当て最も大切なることなれども、時代を考の外に置て今の心を以て古を推し、唯血統の連綿のみに眼を着け、其これを連綿せしむるの方法をば捨てゝ論ぜざるときは、忠も不忠も義も不義もある可らず。正成と尊氏との間に区別も立ち難し。然りと雖どもよく其時代の有様に就て考れば、楠氏は唯血統を争ふに非ず、其実は政統を争ふて天下の政権を天子に帰せんとし、難を先にして易を後にしたる者なり。此趣を見ても血統を保つと政権を保つと、其孰れか難易を知る可し。
古今の通論を聞くに、我邦を金甌無欠(きんおうむけつ)万国に絶すと称して意気揚々たるが如し。其万国に絶するとは唯皇統の連綿たるを自負するもの乎。皇統をして連綿たらしむるは難きに非ず。北条、足利の如き不忠者にても尚よく之を連綿たらしめたり。或は政統の外国に絶する所ある乎。我邦の政統は古来度々の変革を経て其有様は諸外国に異ならず、誇るに足らざるなり。然ば則ち彼の金甌無欠とは、開闢以来国体を全ふして外人に政権を奪はれたることなきの一事に在るのみ。故に国体は国の本なり。政統も血統も之に従て盛衰を共にするものと云はざるを得ず。中古王室にて政権を失ひ又は血統に順逆ありしと雖ども、金甌無欠の日本国内にて行はれたる事なればこそ今日に在て意気揚々たる可けれ、仮に在昔魯英(露英)の人をして頼朝の事を行はしめなば、仮令へ皇統は連綿たるも日本人の地位に居て決して得意の色を為す可らず。鎌倉の時代には幸にして魯英の人もなかりしと雖ども、今日は現に其人ありて日本国の周囲に輻湊(ふくそう)せり。時勢の沿革、意を用ひざる可らず。
此時に当て日本人の義務は唯この国体を保つの一箇条のみ。国体を保つとは自国の政権を失はざることなり。政権を失はざらんとするには人民の智力を進めざる可らず。其条目は甚だ多しと雖ども、智力発生の道に於て第一着の急須は、古習の惑溺を一掃して西洋に行はるゝ文明の精神を取るに在り。陰陽五行の惑溺を払はざれば窮理の道に入る可らず。人事も亦斯の如し。古風束縛の惑溺を除かざれば人間の交際は保つ可らず。既に此惑溺を脱して心智活潑の域に進み、全国の智力を以て国権を維持し国体の基初て定るときは、又何ぞ患る所かあらん。皇統の連綿を持続するが如きは易中の易のみ。試に告ぐ、天下の士人、忠義の外に心事はなきや。忠義も随分不可なるに非ざれども、忠を行はゞ大忠を行ふ可し。皇統連綿を保護せんと欲せば、其連綿に光を増して保護す可し。国体堅固ならざれば血統に光ある可らず。前の譬にも云る如く、全身に生力あらざれば眼も光を失ふものなり。此眼を貴重なりと思はゞ身体の健康に注意せざる可らず。点眼水の一品を用るも眼の光明は保つ可きものに非ず。此次第を以て考れば、西洋の文明は我国体を固くして兼て我皇統に光を増す可き無二の一物なれば、之を取るに於て何ぞ躊躇することをせんや。断じて西洋の文明を取る可きなり。
前条に古習の惑溺を一掃するとのことを云へり。惑溺の文字は其用る所甚だ広くして、世の事物に就き様々の惑溺あれども、今これを政府上に論じて、政府の実威と虚威と相分るゝ由縁を示さん。凡そ事物の便不便は其ためにする所の目的を定るに非ざれば之を決し難し。屋は雨露を庇ふがために便利なり、衣服は風寒を防ぐがために便利なり。人間百事皆ためにする所あらざるはなし。然りと雖ども、習用の久しき、或は其事物に就き実の功用をば忘れて唯其物のみを重んじ、これを装ひ、これを飾り、これを愛し、これを眷顧し、甚しきは他の不便利を問はずして只管これを保護せんとするに至ることあり。是即ち惑溺にて、世に虚飾なるものゝ起る由縁なり。譬へば戦国の時に武士皆双刀を帯したるは、法律の頼む可きものなくして人々自から一身を保護するのためなりしが、習用の久しき、太平の世に至ても尚この帯刀を廃せず、啻に之を廃せざるのみならず、益この物を重んじ、産を傾けて双刀を飾り、凡そ士族の名ある者は老幼を問はず皆これを帯せざるはなし。然るに其実の功用如何を尋れば、刀の外面には金銀を鏤(ちりば)めて、鞘の中には細身の鈍刀を納るものあり。加之剣術を知らずして帯刀する者は十に八、九なり。畢竟有害無益のものなれども、之を廃せんとして人情に戻るは何ぞや。世人皆双刀の実用を忘れて唯其物を重んずるの習慣を成したればなり。其習慣は即ち惑溺なり。今太平の士族に向て其刀を帯する所以を詰問せば、其人の遁辞には是れ祖先以来の習慣なりと云ひ、是れ士族の記章なりと称するのみにて、必ず他に明弁ある可らず。誰かよく帯刀の実用を挙て此詰問に答へ得る者あらん。既に之を習慣と云ひ、亦記章と云ふときは、其物を廃するも可なり。或は廃す可らざるの実用あらば、其趣を変じて実の功用のみを取るも可なり。何等の口実を設るも帯刀を以て士族の天稟と云ふの理なし。政府も亦斯くの如し。世界万国何れの地方にても、其初め政府を立てゝ一国の体裁を設たる由縁は、其国の政権を全ふして国体を保たんが為なり。政権を維持せんが為には固より其権威なかる可らず。之を政府の実威と云ふ。政府の用は唯この実威を主張するの一事に在るのみ。而して開闢草昧の世には、人民皆事物の理に暗くして外形のみに畏服するものなれば、之を御するの法も亦自から其趣意に従て、或は理外の威光を用ひざるを得ず。之を政府の虚威と云ふ。固より其時代の民心を維持するには止むを得ざるの権道にして、人民のためを謀れば同類相食むの禽獣世界を脱して漸く従順の初歩を学ぶものなれば、之を咎む可きには非ざれども、人類の天性に於て権力を有する者は自から其権力に溺れて私を恣(ほしいまま)にするの通弊を免れず。之を譬へば酒を嗜む者が酒を飲めば其酒の酔に乗じて又酒を求め、酒よく人をして酒を飲ましむるが如く、彼の有権者も一度び虚を以て権威を得れば、其虚威の行はるゝに乗じて又虚威を振ひ、虚威よく人をして虚威を恣にせしめて、習慣の久しき、遂に虚を以て政府の体裁を成し、其体裁に千条万態の脩飾を施し、脩飾愈繁多なれば愈世人の耳目を眩惑して、顧て実用の在る所を失ひ、唯脩飾を加へたる外形のみを見て、之を一種の金玉と思ひ、之を眷顧保護せんがためには他の利害得失を捨てゝ問はざるに至り、或は君主と人民との間を異類のものゝ如く為して、強ひて其区別を作為し、位階服飾文書言語悉皆上下の定式を設るものあり。所謂周唐の礼儀なるもの是なり。或は無稽の不思議を唱へて、其君主は直に天の命を受たりと云ひ、其祖先は霊山に登て天神と言語を交へたりと云ひ、夢を語り神託を唱へ、恬として怪まざるものあり。所謂神政府なるもの是なり。皆是れ政府の保つ可き実威の趣意を忘れて、保つ可らざるの虚威に惑溺したる妄誕と云ふ可し。虚実の相分るゝは正に此処に在るなり。
此妄誕も上古妄誕の世に在りては亦一時の術なれども、人智漸く開るに従て又この術を用ゆ可らず。今の文明の世に於ては、衣冠美麗なりと雖ども衙門巍々たりと雖ども、安ぞ人の眼を眩惑するを得ん。徒に識者の愍笑を招くに足るのみ。仮令ひ文明の識者に非ざるも、文明の事物を聞見する者は其耳目自から高尚に進むが故に、決して之に妄誕を強ゆ可らず。此人民を御するの法は、唯道理に基きたる約束を定め、政法の実威を以て之を守らしむるの一術あるのみ。今世七年の大旱に壇を築て雨を祈るも雨の得べからざるは人皆これを知れり。国君躬から五穀豊熟を祈ると雖ども化学の定則は動かす可らず。人類の祈念を以て一粒の粟を増す可らざるの理は、学校の童子もこれを明にせり。往古は剣を海に投じて潮の退きたることありしが、今の海潮には満干の時刻あり。古は紫雲のたなびくを見て英雄の所在を知りたれども、今の人物は雲の中に求む可らず。こは古今の事物其理を異にするに非ず、古今の人智其品位を同ふせざるの証なり。人民の品行次第に高尚に進み、全国の智力を増して政治に実の権威を得るは、国のために祝す可きに非ずや。然るに今実を棄てゝ虚に就き、外形を飾らんとして却て益人を痴愚に導くは惑溺の甚しきなり。虚威を主張せんと欲せば下民を愚にして開闢の初に還らしむるを上策とす。人民愚に還れば政治の力は次第に衰弱を致さん。政治の力、衰弱すれば、国其国に非ず。国其国に非ざれば国の体ある可らず。斯の如きは則ち国体を保護せんとして却て自から之を害するものなり。前後の始末不都合なりと云ふ可し。譬へば英国にても、其先王の遺志を継て尚立君専制の古風を守らんとせば、其王統早く既に絶滅したるは固より論を俟ず。今其然らざる由縁は何ぞや。王室の虚威を減少して民権を興起し、全国の政治に実の勢力を増して、其国力と共に王位をも固くしたればなり。王室を保護するの上策と云ふ可し。畢竟国体は文明に由て損するものに非ず。其実は之に依頼して価を増すものなり。
世界中何れの人民にても、古習に惑溺する者は必ず事の由来の旧くして長きを誇り、其連綿たること愈久しければ之を貴ぶことも亦愈甚しく、其状恰も好事家が古物を悦ぶが如し。印度の歴史に云ることあり。此国初代の王を「プラザマ・ラジャ」と云ひ、聖徳の君なり。此君即位の時其齢二百万歳、在位六百三十万年にして位を王子に譲り、尚十万の残年を経て世を去りたりと。又云く、同国に「メヌウ」と云ふ典籍あり。《印度の口碑に、此典籍は造化の神なる「ブラマ」の子「メヌウ」より授かりたるものにて斯く名るなりと云ふ。西洋紀元千七百九十四年英人「ジョネス」氏これを英文に訳せり。書中の趣意は神道専制の説を巧に記したるものなれども、脩徳の箇条に至ては頗る厳正にして議論も亦高く、其所説に耶蘇の教と符合するもの甚だ多し。其符合するは教の趣意のみならず、文章も亦類似せり。譬へば「メヌウ」の文に云く、人を視ること傷むが如くして不平を訴へしむる勿れ、実を以て人を害する勿れ、亦意を以て人を害する勿れ、人を罵る勿れ、人に罵らるゝも之に堪忍す可し、怒に逢はゞ怒を以て怒に報る勿れ、云々。又耶蘇教の「サルミスト」の文と「メヌウ」の文と字々相似たるものあり。「サルミスト」の文に云く、愚人は自から其心に告て「ゴッド」なしと云ふと。「メヌウ」の文に云く、悪人は自から其心に告て誰も己を見ずと云ふと雖ども、神は明に之を見分け且胸中の精神も之を知る可しと。其符合すること斯の如し。以上「ブランド」氏の韻府より抄訳。》 此典籍の人間世界に授かりたるは今を去ること凡二十億年のことなりと。頗る古物と云ふ可し。印度の人はこの貴き典籍を守りこの旧き国風を存して高枕安眠の其間に、政権をば既に西洋人に奪はれて、神霊なる一大国も英吉利の庖厨(台所)と為り、「プラザマ・ラジャ」の子孫も英人の奴隷と為れり。且其六百万年と云ひ二十億年と唱へ、天地と共に長しとて自負するものも、固より無稽の慢語にて、彼の典籍の由来も其実は三千年より久しからざるものなれども、姑く其慢に任じて之を語らしめ、爰に印度の六百万年に対して阿非利加に七百万年のものありと云ひ、其二十億に対して我は三十億と云ふ者あらば、印度人も口を閉さゞるを得ず。畢竟痴児の戯のみ。又一言以て其自負を挫く可きものあり。云く、天地の仕掛は永遠洪大なるものなり、何ぞ区々の典籍系統と其長短を争はんや、造化一瞬、忽地(たちまち)に億万年を過ぐ可し、彼の十億年の日月は唯是れ瞬間の一小刻のみ、此一小刻に就て無益の議論を費し却て文明の大計を忘れたるは、軽重の別を知らざる者なりと。此一言を聞かば印度人も又口を開くを得ざる可し。故に世の事物は唯旧きを以て価を生ずるものに非ざるなり。
前に云へる如く、我国の皇統は国体と共に連綿として外国に比類なし。之を我国一種、君国並立の国体と云て可なり。然りと雖ども、仮令ひこの並立を一種の国体と云ふも、之を墨守して退くは之を活用して進むに若かず。之を活用すれば場所に由て大なる功能ある可し。故に此君国並立の貴き由縁は、古来我国に固有なるが故に貴きに非ず、之を維持して我政権を保ち我文明を進む可きが故に貴きなり。物の貴きに非ず、其働の貴きなり。猶家屋の形を貴ばずして、其雨露を庇ふの功用を貴ぶが如し。若し祖先伝来家作の風なりとて、其家の形のみを貴ぶことならば、紙を以て家を作るも可ならん。故に君国並立の国体若し文明に適せざることあらば、其適せざる由縁は必ず習慣の久しき間に生じたる虚飾惑溺の致す所なれば、唯其虚飾惑溺のみを除て実の功用を残し、次第に政治の趣を改革して進むことあらば、国体と政統と血統と三者相互に戻らずして、今の文明と共に並立す可きなり。譬へば今魯西亜(ろしや)にて今日其政治を改革して明日より英国自由の風に傚はんとすることあらば、事実に行はれざるのみならず立所に国の大害を起す可し。其害を起す由縁は何ぞや。魯英両国の文明は其進歩の度を異にし其人民に智愚の差ありて、今の魯は今の政治を以て正に其文明に適するものなればなり。然りと雖ども、魯をして永く其旧物の虚飾を墨守せしめ、文明の得失を謀らずして必ず固有の政治を奉ぜしむるは、敢て願ふ所に非ず、唯其文明の度を察し、文明に一歩を進れば政治も亦一歩を進め、文明と政治と歩々相伴なはんことを欲するのみ。此事に就ては次章の終にも論ずる所あり。これを参考す可し。《書中西洋と云ひ欧羅巴と云ふも其義一なり。地理を記すには欧羅巴と亜米利加と区別あれども、文明を論ずるときは亜米利加の文明も其源は欧羅巴より移したるものなれば、欧羅巴の文明とは欧羅巴風の文明と云ふの義のみ。西洋と云ふもこれに同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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