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11.26 20:34 수정 : 2014.11.26 20:34
[매거진 esc] 요리
고즈넉한 운치 즐기며 피자 파스타 스테이크 등 즐기는 서촌 일대 한옥 식당들
맛있었다는 기억은 혀끝에서만 오는 게 아니다. 시각이 일조를 한다. 아무리 맛이 있어도 먹는 공간의 환경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맛의 기억은 지워진다. 많은 레스토랑과 식당들의 주인이 공간의 구성과 색에 공을 들이는 이유다. 그런 점에서 한옥에서의 서양 요리는 색다른 경험을 제공한다. 쪼르륵 떨어지는 빗물을 받아내는 처마, 닳아 반들거리는 댓돌, 햇살을 네모나게 오려내는 격자창틀. 우리 한옥에서 맛보는 ‘포크질’과 와인 한잔은 어떨까? 서울 종로구의 서촌 일대를 뒤졌다. 크리스마스날 고즈넉한 분위기에서 사랑하는 이와 함께 특별한 낭만을 즐기기도 그만이다.
처마·댓돌·격자창틀 등
한옥에서 와인 한 잔 색다른 맛
좋은 재료와 실험적 메뉴 돋보여
프러포즈 장소로도 인기
색다른 조화, 특별한 식감 피자피케이션 자하
해가 지고 어스름 땅거미가 깔리면 자하문로길 골목은 쓸쓸한 나그네들의 차지가 된다. 자하에서 고독한 여행자의 심정을 달래주는 아늑한 불빛이 새어나온다. 굵은 한옥 기둥이 떡하니 버티고 있는 이곳은 피자와 파스타 등이 주메뉴다. 30대 청년 둘이 뭉쳐서 만든 공간이다. 최현민, 서기원씨는 대학 동창이다. 영문학을 전공한 이들은 자신들만의 철학으로 해석한 피자와 파스타를 내놓는다고 한다. 차림표에는 이들의 철학이 적혀 있다. ‘편안한 음식 위에 현대 가스트로노미(미식)의 새로운 발견들을 담아내는 것’. 이탈리아에서 생산하는 밀가루인 카푸토를 사용하고 야생효모를 활용한 실험도 한다. 질 좋은 재료로 만드는 피자가 5종류. 많이 알려진 마르게리타도 있지만 다른 곳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에푸아스’도 있다. 에푸아스는 프랑스 치즈다. 이 피자는 나폴리식 도(반죽)에 프랑스식이 올라간 셈이다. 치즈 향을 살리기 위해 에푸아스치즈를 소스로 만들지 않고 덩이째로 도에 올려 구웠다. 대파까지 올라가 독특하다. 3가지 샐러드와 ‘버터포르치니 파파르델레’ 등 2가지 파스타가 있다. 와인뿐만 아니라 라프로익 같은 싱글몰트 위스키와 에일 맥주 등이 있다. 주문을 할 때마다 음식의 설명을 간결하게 적은 ‘셰프의 노트’를 건네준다. 서씨는 와인회사에서 직장 생활의 첫발을 디뎠다가 요리에 빠져 이탈리아 요리학교 아이시아이에프(ICIF)에서 공부하고 프랑스에서 수학했다. 올해 가을 문 연 이곳은 젊은 여성들 중심으로 입소문이 나고 있다. 단체예약은 7명까지만 가능하다.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7길 34/(02)737-1355/1만3000~2만8000원/월요일 휴무
사랑 고백하기 좋은 곳 까델루포
한옥레스토랑 까델루포의 마당에는 포도나무가 있다. 종업원들은 벌써 크리스마스 장식등을 달기 바쁘다. 30대 오너 셰프 이재훈씨는 “한옥은 유리 문짝을 통해 안에서도 밖이 보인다. 비 올 때, 눈 올 때가 다르고, 낮과 밤의 풍경도 다르다. 4계절이 지나가는 게 보인다. 꽃이 피고 눈이 쌓이는 것을 보다 보면 한 해가 간다”고 말한다. 한옥이 주는 매력이다. 2006년 문 연 이곳은 프러포즈하기 좋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큰 한옥의 사랑채처럼 마당 한쪽에는 독방이 있어 사랑 고백을 하는 이들이 많다.
이씨는 29살에 이탈리아 요리학교 아이시아이에프를 졸업하고 서울 청담동 일대의 레스토랑에서 실력을 닦았다고 한다. 사람을 주눅 들게 하는 화려한 서양식풍의 레스토랑보다는 시골 할머니네 같은 편안한 공간에서 자신의 음식을 선보이고 싶었다. “손님들은 여름날 마당의 나무에서 벌레들이 들어와도 개의치 않고 좋아한다.” 내비게이션이라도 봐야 찾을 수 있을까 싶을 만큼 외진 골목에 있지만 고즈넉한 한옥 처마를 보는 순간 반갑다. 실내는 낡은 피아노, 액자 등이 있어 가정집 같다. 파스타만도 11가지다. 스테이크 등의 고기류는 한우와 양고기가 재료. 빵까지 포함해 7가지가 나오는 점심코스가 인기다. 그는 처음 문 연 4~5년 전과 서촌이 많이 달라졌다고 말한다. “당시는 경복궁이 가까워 외국인 여행객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한국인 손님이 더 많다.” 이씨는 인근에 와인집 ‘에노테카 친친’도 운영한다. 1만원대의 와인부터 있어 만석일 때가 많다.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16길 5-5/(02)734-5233/8800~4만3000원. 디너코스 8~9가지 4만9500~8만2500원. 점심코스 3만2000~4만3000원
느긋하고 편안하게 즐기는 만찬 레시피
레시피의 나무 식탁에 앉아 있노라면 세월이 멈춘 것 같다. 큰 창을 마주하고 파스타를 먹는다. 비 오는 날은 처마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이 반찬이다. 2004년 문을 열고 2008년에 잠시 닫았다가 2010년에 다시 오픈한 곳이다. <효자동 레시피>(2009년)의 저자 신경숙씨의 레스토랑이다. 의상을 전공하고 의상회사에 다녔던 그가 대가족이었던 집안의 맛이 그리워서 연 곳이다. 올해 초에는 어린 시절 아카시아 꽃잎을 따서 튀겨 먹었던 기억을 살려 아카시아꽃잎튀김을 만들기도 했다. 책은 식당을 찾은 이들과 소곤소곤 나눈 삶에 관한 이야기를 조리법과 함께 담았다. “가게가 작다 보니 손님들과 좀더 친근한 사이가 됐다. 2008년 문을 닫으려고 하니 손님들이 ‘우리는 어디 가서 밥 먹느냐’고 해서 아예 레시피를 알려주자는 생각으로 책을 냈다.” 이곳은 풍성한 샌드위치와 파스타로 유명한 곳이었다. 부암동이나 인근으로 여행 가는 이들이 하나씩 사서 가곤 했다. 레스토랑의 주방은 놀러 간 친구 집 부엌처럼 훤히 보인다. 주문을 하고 있노라면 사각사각, 보글보글 요리하는 소리와 냄새가 난다. 침이 절로 고인다. 레스토랑 터로 한옥을 선택하게 된 것은 우연이었지만 수리하고 공사하다 보니 이제는 애착이 많이 가는 공간이 됐다고 한다. “한옥 공사를 하는 곳을 발견하면 유심히 본다.” 파슬리 등을 버무린 그린소스는 그의 작품이다. 디너는 완전 예약제로 운영한다.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14길 8-2/(02)736-7301/1만5000~4만2000원. 디너 8만8000원
운치에 곁들이는 미국식 푸짐함 합스카치 광화문
네모난 한옥 대문을 지나 레스토랑에 들어가면 천장에는 한옥 문짝이 달려 있다. 천장에서 빛이 쏟아진다. 단단한 벽돌을 박은 벽과 거울 장식은 운치가 있다. 한쪽 바에는 각종 맥주들이 눈에 들어온다. 마당은 예쁜 엽서 한 장 같다. 강남구 언주로에 있는 고급맥주전문점 합스카치의 동업자인 40대 초반의 데이비드 조가 신동율씨와 동업한 집이다. 강남 합스카치의 2호점인 셈이다. 데이비드 조는 재미동포로 미국에서 태어나 줄곧 미국에서 산 요리사다. 그는 평소 “한옥에서 꼭 살아보고 싶었다”면서 평소 소망을 실현하고자 선택한 장소라고 말한다. “양식을 꼭 외국 스타일의 레스토랑에서 먹어야 한다는 생각은 고정관념이다.” 한옥의 따스하고 친근한 분위기가 음식 맛을 배가시킨다. 신동율씨는 20여년간 마이크로소프트코리아 등 아이티업체에서 일한 이다.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고 시작한 일이지만 재밌다고 말한다. 이곳은 주인들의 성향을 따라 미국식 스타일의 음식이 주메뉴다. 잠발라야, 오리 기름에 튀긴 감자, 튀긴 돼지껍질, 루콜라와 적양파 조림, 치즈 등을 올린 미니햄버거, 도톰한 스테이크 등 다양하다. 강남의 합스카치처럼 수박맥주 등 여러 종류의 크래프트맥주가 구비돼 있다. 올가을 열었는데 입소문이 나 평소 데이트족뿐만 아니라 직장인들도 자주 찾는 곳이다.
서울 효자로7길 14-1/(02)722-0145/6000~2만3000원/일요일 휴무. 새벽 3시까지 영업
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