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및 퍼온 글

돈키호테/한겨레신문

이윤진이카루스 2014. 11. 28. 21:25

당신은 돈키호테를 얼마나 아시나요?

등록 : 2014.11.27 20:31 수정 : 2014.11.28 10:39

‘근대소설의 효시’로 일컬어지는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1·2권이 완역되었다. 19세기 프랑스 화가 귀스타브 도레가 그린 삽화 100여점이 실렸다. 시골 양반이었던 돈키호테가 기사 소설에 탐닉한 모습

세르반테스 고전 1~2권 1700여쪽 완역
고려대 안영옥 교수 5년 작업 결실
우스꽝스런 기사 가면뒤 현실 비판 숨겨

돈키호테 1, 2
미겔 데 세르반테스 지음, 안영옥 옮김
열린책들·각 권 1만5800원

돈키호테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그렇지만, 다시, 돈키호테를 제대로 아는 이는 얼마나 될까. 유치원생부터 팔순 노인까지 누구나 잘 안다고 생각하는 ‘괴짜 기사’ 돈키호테는 사실 그리 단순하거나 만만한 인물이 아니다. 어린이용 축약본이 아니면 ‘돈키호테 같다’는, 엉뚱한 모험가를 가리키는 상용구 정도로 우리에게 익숙한 그의 진면목을 만나고 싶다면 새로 나온 완역본 <돈키호테 1, 2>를 권한다. 안영옥 고려대 스페인어문학과 교수가 번역한 <돈키호테>는 미겔 데 세르반테스(1547~1616)가 1605년에 발표한 1권 <기발한 이달고 돈키호테 데 라만차>와 죽기 1년 전에 내놓은 2권 <기발한 기사 돈키호테 데 라만차>를 완역한 책이다.

기사 소설을 너무 많이 읽은 나머지 현실 감각을 잃은 라만차의 시골 양반(=이달고) 돈키호테가 스스로 소설에 나오는 편력 기사가 되어 시종 산초 판사를 데리고 모험에 나선다는 것이 돈키호테의 대강의 줄거리다. 돈키호테는 평범한 농사꾼 처녀 ‘둘시네아’를 자신이 흠모하는 공주라 상정하고 제 모든 무공(武功)을 둘시네아에게 바치겠노라고 말하지만, 정작 둘시네아는 <돈키호테> 1·2권 어디에도 실제로 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 소설의 묘한 특성 가운데 하나다.

<돈키호테> 1권에서 쉰살 남짓한 시골 양반(=이달고) 알론소 키하노는 기사 소설에 심취한 나머지 스스로 돈키호테라는 이름의 편력 기사가 되어 비루먹은 말 로시난테를 타고 모험에 나선다. 출분 첫날 저녁 성으로 알고 투숙한 객줏집에서 운 나쁜 마부들을 때려 눕히고 엉터리 기사 서품식을 치른 돈키호테는 이튿날 길을 가다 주인한테 매질을 당하던 어린 하인을 구하는 것으로 첫번째 기사도를 행하지만, 또 다른 편력 기사들로 오해한 상인들과 시비 끝에 큰 부상을 입고 사흘 만에 집으로 돌아온다.

보름 동안 집에서 조용히 요양을 하면서 몸을 추스른 그는 이웃에 사는 농부 산초 판사를 시종으로 삼아 두번째 출분을 한다. 저 유명한 풍차 사건을 포함해 갖은 모험을 겪고 여러 사람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기도 한 돈키호테는 마을 친구인 신부와 이발사가 꾸민 계략에 속아 우리에 갇히고 소달구지에 실린 채 집으로 돌아오게 되며 그것으로 1권은 끝이 난다.

<돈키호테>의 작가인 세르반테스는, 자신은 무어인 현자 시데 아메테 베넹헬리가 아랍어로 남긴 기록을 스페인어로 번역했을 뿐이라고 밝힌다. 1권 말미에는 “돈키호테는 세번째로 집을 나갔을 때 사라고사로 가서 그곳에서 벌어진 유명한 몇몇 무술 경연 대회에 참가했으며 거기서 그의 용기와 분별력에 어울리는 사건들을 겪었다는 소문”이 소개되는데, 아베야네다라는 필명을 쓰는 작가 이름으로 1614년에 나온 <돈키호테 제2편>이라는 책에서는 실제로 돈키호테와 산초 판사가 사라고사로 가는 것으로 그려진다.

이런 ‘가짜 돈키호테 속편’ 사건은 출간되자 마자 엄청난 인기를 끌며 거듭 인쇄되고 신대륙 아메리카로까지 건너간 <돈키호테> 1권의 인기를 반증하는 것이기도 한데, 이에 자극받은 세르반테스는 가짜 속편이 나온 이듬해 <돈키호테> 2권을 발표하고 다시 그 이듬해 4월22일 세상을 뜬다. 그보다 17년 뒤에 태어난 영국인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숨지기 하루 전이었다.

<돈키호테> 2권에서 세르반테스는 돈키호테와 산초 판사를 예정됐던 사라고사가 아닌 바르셀로나로 보내 이런저런 모험을 겪게 하며 그 모험의 끝에 돈키호테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서는 숨을 거두는 것으로 그린다. “무덤에 묻는 이유는, 어느 누구도 감히 그에 대한 새로운 증언을 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라고 세르반테스는 2권 서문에서 쓰는데, 두 주인공이 사라고사가 아닌 바르셀로나로 간 것과 함께 결국 돈키호테를 숨지게 하는 설정은 그가 ‘가짜 속편’을 크게 의식했다는 증거로 보인다.

돈키호테와 산초 판사가 편력 중에 만난 부잣집 처녀 도로테아를 미코미코나 왕국 공주로 오해하는 장면.
1권 앞부분에는 돈키호테가 편력에 나선 사이 그의 광기를 유발했다는 이유로 신부와 이발사가 그가 읽은 책들을 솎아내서 불태우는 장면이 나온다. 세르반테스 자신이 1585년에 발표한 첫 소설 <라 갈라테아>가 그 책들 중 하나로 등장하는데, “세르반테스도 내 오랜 친구지. 내가 알기로, 그 친구는 시 쓰는 일보다 세상 고생에 더 이력이 나 있는 사람이라네. 그 책은 무언가 기발한 구석이 있지만, 제시만 할 뿐 결론은 아무것도 없단 말이야”라는 신부의 말에서 보다시피 작가 자신을 소설에 등장시키는 기발한 발상이 흥미롭다.

같은 맥락에서 <돈키호테> 2권은 텍스트와 현실의 관계에 관한 다수의 흥미로운 논점을 담고 있다. <돈키호테> 1권을 읽은 사람들이 돈키호테와 산초 판사라는 인물을 잘 알고 있는데다, ‘가짜 속편’까지 나와 있기 때문에 그들에 관한 그릇된 정보도 사실처럼 통용되고 있는 것이 2권의 상황. 두 주인공은 소설 속 현실의 모험에 임하는 한편 자신들에 관한 사람들의 이해와 오해에도 적절히 대응해야 하는 이중의 과제를 떠안게 된다. <돈키호테>가 ‘근대 소설의 효시’(알베르트 티보데)로 일컬어지는 까닭을 텍스트의 이런 현대성에서도 찾을 수 있겠다.

“내 소원은 다름 아닌, 기사도 책에 나오는 거짓되고 터무니없는 이야기들을 사람들로 하여금 증오하도록 하는 것뿐이었으니 말이다.”

기사도라는 비현실적인 꿈을 품고 엉뚱한 사건을 벌이다가 집에 돌아온 알론소 키하노가 가까스로 정신이 돌아와 고해와 공증을 마치고 숨을 거둔 뒤,<돈키호테>의 ‘원저자’ 시데 아메테 베넹헬리는 이렇게 말한다. 비슷한 이야기가 1권 서문에도 나오거니와, 이런 맥락에서 <돈키호테>를 기사도 소설의 시대착오적 세계를 풍자한 것으로 보는 것이 일종의 상식이다. 그러나 상황이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은 것이, 소설에서 돈키호테가 표방하는 기사도의 낭만적 가치는 가령 2권에서 주요 인물로 나오는 공작 부부의 이성적이고 세속적인 가치에 맞서는 ‘꿈과 이상’으로서 현실 비판적 의미를 획득하게도 된다. 여기에다가 ‘광인’ 돈키호테를 앞세워 당대 계급 질서와 종교의 억압 등을 직·간접적으로 비판하는 대목을 읽다 보면 이 소설을 가리켜 ‘인류의 바이블’이라 한 생트 뵈브의 평가에 고개가 끄덕여지게 된다.

지난 5년 동안 소설 무대인 스페인 곳곳을 답사하고 문헌 고증을 거쳐 1·2권 합계 1700쪽 남짓한 분량에 840여개 각주를 붙인 완역본을 내놓은 안영옥 교수는 “돈키호테의 우스꽝스러운 면모는 검열을 피하기 위해 세르반테스가 쓴 가면이었다”며 “계급 문제와 민주주의, 종교의 억압은 물론 인간의 존재 이유와 삶의 가치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한다는 점에 고전으로서 <돈키호테>의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