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소설의 효시’로 일컬어지는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1·2권이 완역되었다. 19세기 프랑스 화가 귀스타브 도레가 그린 삽화 100여점이 실렸다. 시골 양반이었던 돈키호테가 기사 소설에 탐닉한 모습 |
세르반테스 고전 1~2권 1700여쪽 완역
고려대 안영옥 교수 5년 작업 결실
우스꽝스런 기사 가면뒤 현실 비판 숨겨
미겔 데 세르반테스 지음, 안영옥 옮김
열린책들·각 권 1만5800원 돈키호테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그렇지만, 다시, 돈키호테를 제대로 아는 이는 얼마나 될까. 유치원생부터 팔순 노인까지 누구나 잘 안다고 생각하는 ‘괴짜 기사’ 돈키호테는 사실 그리 단순하거나 만만한 인물이 아니다. 어린이용 축약본이 아니면 ‘돈키호테 같다’는, 엉뚱한 모험가를 가리키는 상용구 정도로 우리에게 익숙한 그의 진면목을 만나고 싶다면 새로 나온 완역본 <돈키호테 1, 2>를 권한다. 안영옥 고려대 스페인어문학과 교수가 번역한 <돈키호테>는 미겔 데 세르반테스(1547~1616)가 1605년에 발표한 1권 <기발한 이달고 돈키호테 데 라만차>와 죽기 1년 전에 내놓은 2권 <기발한 기사 돈키호테 데 라만차>를 완역한 책이다. 기사 소설을 너무 많이 읽은 나머지 현실 감각을 잃은 라만차의 시골 양반(=이달고) 돈키호테가 스스로 소설에 나오는 편력 기사가 되어 시종 산초 판사를 데리고 모험에 나선다는 것이 돈키호테의 대강의 줄거리다. 돈키호테는 평범한 농사꾼 처녀 ‘둘시네아’를 자신이 흠모하는 공주라 상정하고 제 모든 무공(武功)을 둘시네아에게 바치겠노라고 말하지만, 정작 둘시네아는 <돈키호테> 1·2권 어디에도 실제로 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 소설의 묘한 특성 가운데 하나다. <돈키호테> 1권에서 쉰살 남짓한 시골 양반(=이달고) 알론소 키하노는 기사 소설에 심취한 나머지 스스로 돈키호테라는 이름의 편력 기사가 되어 비루먹은 말 로시난테를 타고 모험에 나선다. 출분 첫날 저녁 성으로 알고 투숙한 객줏집에서 운 나쁜 마부들을 때려 눕히고 엉터리 기사 서품식을 치른 돈키호테는 이튿날 길을 가다 주인한테 매질을 당하던 어린 하인을 구하는 것으로 첫번째 기사도를 행하지만, 또 다른 편력 기사들로 오해한 상인들과 시비 끝에 큰 부상을 입고 사흘 만에 집으로 돌아온다. 보름 동안 집에서 조용히 요양을 하면서 몸을 추스른 그는 이웃에 사는 농부 산초 판사를 시종으로 삼아 두번째 출분을 한다. 저 유명한 풍차 사건을 포함해 갖은 모험을 겪고 여러 사람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기도 한 돈키호테는 마을 친구인 신부와 이발사가 꾸민 계략에 속아 우리에 갇히고 소달구지에 실린 채 집으로 돌아오게 되며 그것으로 1권은 끝이 난다. <돈키호테>의 작가인 세르반테스는, 자신은 무어인 현자 시데 아메테 베넹헬리가 아랍어로 남긴 기록을 스페인어로 번역했을 뿐이라고 밝힌다. 1권 말미에는 “돈키호테는 세번째로 집을 나갔을 때 사라고사로 가서 그곳에서 벌어진 유명한 몇몇 무술 경연 대회에 참가했으며 거기서 그의 용기와 분별력에 어울리는 사건들을 겪었다는 소문”이 소개되는데, 아베야네다라는 필명을 쓰는 작가 이름으로 1614년에 나온 <돈키호테 제2편>이라는 책에서는 실제로 돈키호테와 산초 판사가 사라고사로 가는 것으로 그려진다. 이런 ‘가짜 돈키호테 속편’ 사건은 출간되자 마자 엄청난 인기를 끌며 거듭 인쇄되고 신대륙 아메리카로까지 건너간 <돈키호테> 1권의 인기를 반증하는 것이기도 한데, 이에 자극받은 세르반테스는 가짜 속편이 나온 이듬해 <돈키호테> 2권을 발표하고 다시 그 이듬해 4월22일 세상을 뜬다. 그보다 17년 뒤에 태어난 영국인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숨지기 하루 전이었다. <돈키호테> 2권에서 세르반테스는 돈키호테와 산초 판사를 예정됐던 사라고사가 아닌 바르셀로나로 보내 이런저런 모험을 겪게 하며 그 모험의 끝에 돈키호테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서는 숨을 거두는 것으로 그린다. “무덤에 묻는 이유는, 어느 누구도 감히 그에 대한 새로운 증언을 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라고 세르반테스는 2권 서문에서 쓰는데, 두 주인공이 사라고사가 아닌 바르셀로나로 간 것과 함께 결국 돈키호테를 숨지게 하는 설정은 그가 ‘가짜 속편’을 크게 의식했다는 증거로 보인다.
돈키호테와 산초 판사가 편력 중에 만난 부잣집 처녀 도로테아를 미코미코나 왕국 공주로 오해하는 장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