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들의 디지털 탐닉이 미국을 지적 퇴락과 민주주의 위기 상태로 끌고 가고 있다고 바우어라인은 얘기한다. 한국도 그럴까? 사진은 2011년 12월20일 서울 덕수궁 앞에서 스마트폰으로 행사 장면을 촬영하는 젊은이들 모습.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
가장 똑똑하다는 세대가 가장 멍청해
미국 민주주의 위기도 디지털 혁명 탓
해법은 종이책 읽고 사색·토론하는 것
마크 바우어라인 지음, 김선아 옮김
인물과사상사·1만4500원 미국 교육부가 주관한 2001년 전국교육평가(NAEP)에서 미국 고교생의 52%가 제2차 세계대전 때 미국의 적국이었던 독일·일본·이탈리아를 같은 편이었다고 대답했다. 2006년 미국지리학협회 설문조사에서 미국 청소년의 63%가 지도에서 자국이 전쟁을 벌인 이라크가 어디 있는지 찾아내지 못했다. 같은 해 미국 대학간협력연구기관 보고서는 조사대상인 50개 대학 신입생들의 공민(정치·사회) 과목 평균점수가 에프(F)학점인 51.7점이라고 밝혔다. 그들과 상급생의 점수차는 평균 1.5점에 지나지 않았으며, 버클리대에서는 상급생의 점수가 오히려 더 떨어졌다. 대학 졸업반 학생들 98% 이상이 유명 대중가수와 애니메이션 시리즈는 알고 있었지만 설문 중의 지문이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의 한 구절임을 안 학생은 22%에 지나지 않았다. 에모리대학 영문과 교수로 미국 국립예술진흥회에서 문화와 삶에 대한 연구를 이끌면서 특히 위기에 처한 독서문화를 깊이 연구한 마크 바우어라인의 <가장 멍청한 세대>(원제: The Dumbest Generation, 2008)는 바로 이들 미국 젊은 세대를 문제삼는다. 바우어라인은 그들의 형편없는 지식·독서 수준, 지나친 영상문화 탐닉, 역사상 가장 풍성해진 학습환경을 배반하는 최악의 학습 수준, 전통 가치 거부 등을 구체적 자료들을 토대로 하나하나 짚으면서 이대로 가면 미국이 쌓아올린 물적·정신적 자산이 무너지고 민주주의에도 미래가 없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는 미국 청소년을 멍청이로 만든 가장 큰 원인으로, 그들의 심신을 온통 컴퓨터와 텔레비전, 인터넷, 스마트폰에 붙들어매게 만든 ‘디지털 혁명’을 지목한다. 디지털 혁명이 처음부터 그런 혐의를 받은 건 물론 아니다. 2005년 <유에스에이 투데이>는 디지털 세대에 대한 기사 첫 문장을 “그들은 젊고, 영리하고, 자신만만하다”로 시작했다. 컴퓨터 마우스를 발명한 더글러스 엥글바트는 “디지털 혁명은 글씨의 발명이나 심지어 인쇄술의 발명보다 중요한 것”이라고 했고, 미국 초·중·고 학교장연합회는 그런 생각을 받아들여 “학생들이 디지털 혁명에서 낙오되게 놔둘 수 없다”는 캠페인까지 벌였다. 교육의 디지털화를 위한 엄청난 투자가 이뤄졌고, 학교 수업을 따분해하던 학생들은 디지털 환경 속에서 해방됐으며, 기성세대는 그들의 디지털 세계 탐닉을 장려했다. 작가 존 카츠는 “디지털 시대의 젊은이들이 혁명을 만들어내고 있다”며 그들을 세상을 바꿀 혁명가로 불렀다. 그리하여 미국사회는 디지털 혁명이 차원이 다른 지적·도덕적·예술적 감식안을 지닌 새로운 세대의 탄생을 가져다 줄 진화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건 ‘진화’가 아니라 ‘이탈’, 즉 탈선이었다고 바어우라인은 얘기한다. 그가 제시한 자료들을 보면 그건 이탈 정도가 아니라 ‘역진화’에 가깝다. 바우어라인은 지금의 디지털 혁명이 초래한 젊은 세대의 지적 퇴락은 예전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단언한다. “인류 역사상 물질적 조건과 지적 성취 사이에 이토록 깊은 골을 만든 집단은 존재하지 않았다. 또한 이토록 많은 기술 향상을 겪고도 이토록 보잘것없는 정신 발전을 이룬 이들도 없었다.” 디지털 혁명 이후 청소년들의 평균 지능(IQ)이 훨씬 높아진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그만큼 더 똑똑하거나 우수해진 건 아니다. 아이큐 테스트로 측정할 수 있는 것은 지능 전체가 아니라 특정 문제해결 능력일 뿐이다. “청소년은 프로처럼 멀티미디어 환경을 누비고 4개의 이메일 계정과 두 개의 가상 아이디(ID)를 관리하며, 스크린에서 자판으로 아이팟으로 쉼없이 옮겨가면서 콘텐츠를 만들어내고 세상에 자신을 표현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더 큰 세상인 정치, 사회, 역사, 수학, 과학, 외교에 대해 깜짝 놀랄 만큼 아는 것이 없다. 그들의 독해·작문 능력은 1970년대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들은 영리하면서 동시에 무지몽매하다. “뛰어난 문화 전사는 오랫동안 도서관에 머물고, 공개적으로 토론하고, 위대한 논쟁을 알고, 이를 당면한 문제에 적절히 적용할 줄 안다. 뛰어난 반대편을 인정하지만, 결코 작은 충돌에 겁먹거나 뒷걸음 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조건을 충족하는 30살 이하 젊은이는 매우 드물다. 대부분은 독서량이 부족하고, 예술작품에 대해서 잘 모르며, 신경도 쓰지 않는다. 어떤 사안을 충분히 숙고해 보는 법이 없고 토론할 수 있을 만큼의 어휘력조차 갖추지 못했다. 역사에서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하고….” 디지털 지식은 온전히 그들 자신의 것이 되지 못하고 그저 재빠르게 훑어보며 스쳐지나가는 의미없는 지식 쪼가리일 뿐이며, 또래들의 반응에 신경쓰면서 비슷한 디지털 공간을 배회하는 그들의 세계는 동일 차원을 맴돌 뿐이다. “지식의 세례는 도처에 널려 있지만 청소년은 사막에 모여앉아 이야기, 사진, 텍스트만을 주고받으며 또래의 주목을 받는 기쁨에 산다. 그동안 그들의 지성은 지금의 우리를 만들어온 문화적·시민적 유산을 거부한다.” 그렇게 해서는 새로운 지적 확장에 필수적인 어휘력이 늘지 않는다. 바우어라인은 미국 젊은이들 지적 능력이 이전 세대보다 오히려 뒤떨어진다는 걸 보여주는 자료들을 제시한다. 이 책이 무게를 갖는 것은 바로 이 구체적이고 실증적인 자료 덕이다. 빈곤한 독서·작문 능력도 빈곤한 어휘력 탓이 크다.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결국 지적 확장의 도구가 아니라 그 방해물이 된 셈이다. 이 지적 확장, 즉 충분한 지적 정보의 확보와 판단능력 없이 민주주의는 불가능하다고 지은이는 얘기한다. 미국 민주주의의 위기는 결국 지적 빈곤 때문이며, 그 바탕에는 디지털 혁명이 놓여 있다. 그렇다면 디지털 혁명이 미국 민주주의 위기의 한 요인이란 말인가? 이는 미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유럽도 일본도 우리나라도 동일한 문제에 봉착해 있는 것 아닌가. 바우어라인이 제시하는 해결책은 아날로그적 독서다. 차분하고 끈기있게 종이 책을 읽으며 깊이 사색하고 토론하는 것이다. 그의 논법에 따르면 독서는 독서를 낳고, 디지털은 디지털을 낳는다. 한 번 책을 읽기 시작하면 더 많은 책을 읽게 된다. 그 역도 성립한다. 디지털에 탐닉하면서 세계에 대한 총체적 판단 없이 돈·성공·출세를 향해 무한경쟁을 벌이며 스펙 쌓기에 미친듯 골몰하고 있다는 미국 청소년들. 우리 현실과 별로 다르지 않다.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 교육을 부러워한다는 보도가 여러차례 나왔지만, 뭔가 크게 오해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