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을 폐쇄해야 하는 이유

칼 포퍼가 말하는 3차 세계대전의 위험, '금세기의 교훈' 중에서 (인터뷰 II)

이윤진이카루스 2015. 1. 30.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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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3차 세계대전의 위험에 빠져있다

4월에 우리는 보스니아(Bosnia)에 대한 개입을 지지하는 당신의 글을 발표했다. 그 후 당신은 생각을 바꾸었는가?

내가 당시 개입을 요구한 것은 틀림없이 우연한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문제는 여전히 이전과 같다: 우리는 전쟁에 대항하여 싸워야 한다. 전쟁을 막는 전쟁(war on war)’이라는 개념의 본질은 이미 칸트에게서, 칸트의 영구적 평화(Perpetual Peace)’라는 논문에서 발견될 수 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 상황이 와서는 안 된다, 최근의 전쟁은 결과가 전혀 없어 보이는 거대한 노력과 함께 무의미한 인간 생명들의 희생이었다는 일반적인 느낌을 아마도 우리는 잊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전쟁동안에도 전쟁을 막는 전쟁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나타났다. 물론 그 생각은 많은 역설을 포함하여 의문스러운 방식들로 흔히 사용되지만 본질적으로 매우 진지한 생각이다.

전쟁을 막는 전쟁(war on war)’이라는 원칙은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가?

2차 세계대전은 처음부터 정확하게 그 원칙으로서 착상되었다. 1차 세계대전에서 제2차 세계대전에 이르는 기간으로 인하여, 평화가 실제로 각 정부의 책무에 얼마나 크게 의존하는지 밝혀졌다. 네빌 챔버레인(Neville Chamberlain)은 나치 독일을 달래는 임무를 상정해서 그 임무를 평화의 이름으로 양보하는 자신의 주요 책무로 보았다. 그것은 정확하게 그가 자신의 임무를 본 방식이다. 그래서 그는 나치의 통치를 강화하는 데 이미 크게 도움을 주어 오랫동안 히틀러를 도왔다.

당신의 말은 완전히 전쟁을 거부하는 것이 위험할 수 있다는 의미인가?

나는 그 20년 동안 전쟁이 유럽에 있는 정부들과 미국 정부에 의하여 많은 선언에서 불법화되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어떤 일이 일어나든, 더 많은 전쟁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것이 1939년 이전의 일반적인 태도였다. 국제연맹(The League of Nations)은 다양한 분야에서 귀중한 일들을 한 매우 진지한 기구였다. 예를 들어 국제연맹은 무국적인 사람들에게 여권과 서류들을 발급했는데 가장 중요한 업적이다. 내가 의미하는 바는, 1차 세계대전 이후에 본질적인 목표가 인도적 가치들에 대한 존중이었던 정책들뿐만 아니라 강력하게 인도주의적인 경향들을 드러냈던 상황이 전개되었다는 것이다. 그것이 1차 세계대전의 전형이 아니었다면 그것은 적어도 1차 세계대전의 끝난 후의 결과였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때 이 분위기는 세계의 대부분에서 수용되고 공유되었기 때문에 여전히 널리 확산되어 있었다. 그래서 나중에 그 분위기는 처칠이 주창한 국제연합(United Nations)의 토대가 되었다.

이것으로부터 당신은 어떤 결론을 도출하는가?

오늘날의 세계에는 2차 세계대전 때의 완벽한 성숙성과 인식에 도달한 정치지도자가 없다. 그것은 시간이 흐르면서 나타난 한 가지 불행한 결과이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는 사이에 20년이 흐른 반면, 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에서 보스니아의 전쟁까지의 기간은 매우 훨씬 더 길었다.

거의 50년이다.

그것은,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을 때 나폴레옹이 벌인 전쟁들이 나에게 느껴졌을 것과 같이 사람들에게 단지 역사로서 보이는 상황을 사람들이 실제로 이해하기에는 너무 긴 기간이다. 고대 역사일 따름...

분명히 자신의 경험한 것의 도움을 받아서 2차 세계대전의 발발에서 오늘날에 이르는 기간을 지적(知的)으로 통달할 수 있는 처칠이나 다른 정치가가 우리에게는 없다. 그러나 왜 당신은 방금 처칠이 주창한 국제연합을 언급했는가? 왜 오늘날 처칠을 생각하는가?

처칠의 생각은, 더 많은 전쟁을 겪지 않기 위해서는 국제연맹이나 실제로 전쟁에 반대하여 전쟁을 벌이는 국제연합(UN)과 같은 국제기구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처칠이 생각한 원칙은 소련의 역할 때문에 결과적으로 무시되었다. 사실상 국제연합은, 서구와 러시아 모두가 지지할 각오가 되어 있어야만 개입이 가능하다는 것을 수용함으로써 처칠의 생각으로부터 멀어져야 했다. 그리고 처칠이 깨달은 바와 같이 그것은 처칠의 정치노선에서 패배였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소련도 냉전도 없다.

1989년 이후 나는 우리가 직면할 위험요소들을 인식했지만 나는 또한 우리가 오늘날 겪는 세상에 대한 전망들보다 더 나은 전망들을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사하로프가 만든 수소폭탄에 반대하여 항의하고 싶었다. 나는 소련의 핵물리학자 사하로프가 거대한수소폭탄의 실험을 완수하겠다는 결심으로 떠맡았던 가공할 책임들을 비판하고 싶었다. 당신이 이탈리아에서 발표한 내 자신의 견해들은, 사하로프가 개발한 수소폭탄들이 세계 여러 곳에 배치되었기 때문에 우리가 직면해야 했던 위험들을 지적한다. 그러나 나는 또한 출구도 보았다.

그 출구는 무엇이었나?

1989년 이후 서구에 있는 우리는 러시아에게 봐라, 서구는 평화를 원하고 우리는 공포의 무기 없이, 철의 장막 이전에 러시아에 있던 체제들과 같은 것 없이 평화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고 말했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했다. 유럽의 상황은 사실상 매우 평화로워서 우리가 공포의 정권들로의 복귀를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일본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대서양을 건너 북미 전체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언급될 수 있을 것이다. 아프리카는 평화롭지 않았지만 세계의 다른 거의 모든 곳은 평화로웠다.

분명히 그 전망은 빛을 잃었다.

먼저, 이라크에는 매우 위험한 개입이 발생했는데 이라크에서는 사활이 걸려있던 그 문제가 - 사활이 걸린 실제적인 문제 핵무기였다. 그리고 이제 세계는 완전히 다르게 보인다. 유럽은 오래된 국제연합의 압력 하에서 뭉쳤던 것보다 덜 평화롭다. 그리고 공산주의의 붕괴 이후, 테러가 유고슬라비아에서 퍼지기 시작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공산주의가 이 터무니없는 민족주의에 의하여 갈음되었다. 민족주의가 실제로 모두 슬라브족인 민족들을 서로 적대시 하도록 만들기 때문에 나는 터무니없다고 말한다. 세르비아인들은 슬라브족이고 동시에 크로아티인들도 슬라브족이다. 그리고 보스니아인들도 또한 이슬람으로 개종한 슬라브족이다. 무서운 일은 서구에 살고 있는 우리들이, 과거 20년 동안 상황이 전개된 것처럼 상황이 전개되도록 내버려둠으로써 학살, 살인, 극악한 행위 항복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서구의 정치적 주요 요소들을 포기했고 평화 자체의 원칙을 필두로 우리 자신이 만든 원칙들을 저버렸다. 우리는 그렇게 하지 말았어야 했다; 우리는 항복하지 말았어야 했다. 무기와 파괴 수단이 증가했기 때문에, 그리고 사하로프가 만든 수소폭탄들이 (적어도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보다 3,000배의 위력을 지녔음을 기억하라) 세상에서 돌아다니고 있기 때문에 그것은 그로 인하여 우리가 거대한 위험에 노출된 최악의 실수였다. 그런데 우리가 우리의 나라를, 정부를 그리고 야당을 책임지고 있는 무리들 이 상황에 어떻게 만족하고 있을 수 있는가?

이 항복은 어떻게 일어났다고 당신은 생각하는가?

항복한 후에는 평화로 이어질 수 있는 타협책이 없다. 그것은 절대적으로 불가능하다. 우리는 그들을 무장해제 시켰어야 했다. 우리 모두에 대한 핵위협은 발칸반도로부터 나온다.

어떤 조치를 취할 수 있는가?

우리에게는 무기가 항공기 있어서 우리는 상대적으로 다행인 위치에 있고 우리는 희생자의 숫자가 최소화되는 정도로 그 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 서구 국가들은 공중전에 크게 우세하다. 내가 제안하는 것은 모든 지상군의 철수이다. 외국의 어려운 지형을 위하여 전쟁을 벌이는 일은 (미국인들이 베트남에서 배운 바와 같이) 실책이다. 사막에서는 그런 전쟁을 벌일 수 있지만 발칸반도에서는 불가능하다. 아무튼 구호품, 약품들이 심지어 필요하다면 의사들 공수될 수 있다. 사람들은 헬리콥터로 안전하게 소개될 수 있다. 그리고 장갑차나 여하한 중화기에 대한 공격과 같은 훨씬 더 많은 군사적 행동이 공중에서 수행될 수 있다. 그런 군사적 조치로 인하여 지상군의 철수가 가능했을 것이라는 그리고 아마도 여전히 가능할 것이라는 징표는 많다.

우리가 허용하면 그들은 계속해서 서로 학살을 계속할 것이다. 우리가 그들은 진지하게 막기만 하면 그들은 학살을 그칠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당신은 군사적 개입이 여전히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 보스니아의 영역 분할에 관하여 정치적인 합의를 이루려는 노력들은 어떤가?

평화, 평화라고 그들은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지구상의 평화는 (적어도 그 평화가 최종적으로 확립될 때까지 [이 괄호 안의 문장은 at least until it has been established once and for all인데 괄호 밖의 문장과 연결하여 at least until it will have been established once and for all로 써서 미래완료시제를 표현해야 할 것이다. 역자]) 무기들로써 뒷받침될 필요가 있다는 것을 경찰이 국내에 평화를 유지하기 위하여 무장해야 하는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그리고 동일한 이유들 때문에 지금쯤 배웠어야 한다. 우리는 범죄자들과 화해를 함으로써 국내에서 평화를 이룩할 수는 없을 것이다.

독일 철학자 한스-게오르그 가다머(Hans-Georg Gadamer)는 거의 당신 나이인데...

그는 나보다 두 살 더 먹었다.

L’Unità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소말리아와 관련하여 국제연합이 중화기를 사용하여 개입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국제연합이 작전들을 통제한 역할만 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 원칙을 수용하면 평화는 이룩되지 않을 것이다. 핵폭탄들이 있는 세계에서 무기를 내려놓으라고 제안하는 것은 완전한 허무주의이다. 상황은 매우 간단하다: 무기들을 사용하지 않고는 평화를 이룩할 방법이 없다. 가다머는 틀림없이 이마누엘 칸트의 원칙을 잊었다 그리고 아마도 한 가지 이유는, 칸트가 가다머나 나와 달리 80세 이상 살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봐라, 이 문제에 관하여 철학자들이 자신이 할 말을 하면서 철학자들이 전문적인 권위를 지니고 있다고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 문제에 대해서 나도 전문가로서 말할 수는 없다 또한 나는 철학자로서 말하고 싶지도 않다. 나는, 20세기의 흐름 위에서 열린 생각으로써 살려고 노력했던 다른 사람처럼, 내가 생각하는 것을 말하고 있을 따름이다.

(L’Unità, 199399일자에 발표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