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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리'로 망하려는가?/박성민/한겨레신문

이윤진이카루스 2015. 2. 7. 10:24

정치

정치일반

홍명보처럼 ‘의리’로 망하려 하는가

등록 : 2015.02.06 18:42 수정 : 2015.02.06 22:18

일러스트레이션 장광석

[토요판] 박성민의 2017 오디세이아
③ 대통령의 지지율과 레임덕

‘대통령의 어려운 임무는 옳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옳은지를 아는 것이다.’
- 린든 존슨(전 미국 대통령)

2005년 8월25일은 노무현 대통령이 임기의 반환점을 돌던 날이었다. 그날을 기념하여 마련된 ‘국민과의 대화’에서 대통령은 자신의 지지율이 29%라고 처연하게 말하면서 이대로 대통령직을 계속 수행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를 고민하게 된다고 솔직하게 밝혔다. 취임 3개월 만인 2003년 5월에도 ‘대통령 못해먹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레임덕을 자초한 적이 있는 노무현다운 고백이었다. 레임덕이란 대통령 임기를 3개월 남겨 놓고 오는 것이지 임기 시작 3개월 만에 오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2015년 1월30일 한국갤럽의 정기조사가 밝힌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노무현 대통령이 대통령직 수행을 고민한다던 ‘29%’였다. 부정평가는 63%였다. 불과 2년 만에 박근혜 대통령은 레임덕에 빠진 걸까?

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 겪은 레임덕

대통령의 지지율이 떨어지면 레임덕의 징후가 몇 가지 나타난다. 첫째, 사람이 거부당한다. 국회의 동의가 필요하거나 선거로 뽑는 자리에 대통령이 원하는 사람을 앉히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국회의장, 당대표 선거에서 진 것이 미사일 수준이라면 원내대표 선거에서의 패배는 핵폭탄 수준이다. 둘째, 정책이 거부당한다. 총선이 다가오면 정책의 주도권은 자연스럽게 청와대에서 당으로 넘어간다. 대통령의 지지율이 당의 지지율보다 낮아지면 당은 청와대와 정부의 정무감각이 한심하다며 노골적으로 반기를 든다. 셋째, 기밀이 새나간다. 검찰·경찰·국정원·국세청·군·청와대 등 권력기관이 갖고 있는 엑스(X)파일이 언론과 야당으로 넘어간다. 후각이 남다른 권력기관의 새로운 줄서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권력 내부의 은밀한 내용이 언론에 보도되어 치명상을 입은 대통령이 예전의 힘을 회복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눈치 빠른 언론도 차기 대선 주자들에 대한 기사를 쏟아내기 시작하는 것이 이때쯤이다. 국민들도 자연스럽게 2017년 대선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왜 대한민국 대통령들은 예외 없이 지지율이 떨어지고 레임덕에 빠지는 걸까? 집권 초기에 대통령의 지지율이 높은 것은 지지자들의 기대감과 반대자들의 ‘승복 심리’가 합쳐진 결과다. 시간이 지나고 선거가 다가오면 야당 지지자들은 당연히(?) 대통령에게서 떠나기 때문에 지지율은 낮아지는 것이 정상이다. 반대자들은 대통령 선거 때가 되면 대통령을 싫어할 어떠한 이유라도 찾는 데 성공한다. 그냥 싫다고 말하기는 좀 그러니까. 그런데 사실은 유권자가 정치인이나 정당을 지지하는 이유 세 가지 중에서 가장 많은 유권자는 ‘상대가 싫어서’ 지지하는 것이다.(진영 논리 때문이다.) 나머지 두 가지는 ‘좋아해서’거나 ‘필요해서’다. 그래도 사람들은 남들이 물어보면 상대가 싫어서라고 말하기보다는 가급적 자기가 지지하는 정당이나 정치인을 좋아하거나 필요한 이유를 답으로 준비해둔다.(진영 논리를 숨기고 싶기 때문이다.) 문제는 왜 지지했던 사람들조차 등을 돌리느냐는 것이다. 레임덕은 반대자들의 이탈이 아니라 지지자들의 이탈로부터 시작된다.

유권자들은 대통령 선거에서 네 가지를 비교하고 지지를 선택한다. 영향을 미치는 순서대로 나열하면 진영, 후보, 정당, 공약 순으로 보인다.(한국 대선에서 공약은 다른 이유를 은폐하는 용도로 쓰일 때가 많다.) 이를 둘러싸고 지역, 이념, 세대, 계층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것이 대한민국 선거다. 지지자들은 승리하기 위한 충분한 세를 모으고자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 ‘통치연합’을 구축한다. 레임덕은 야당의 공격이나 정책의 실패 때문에 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반대자들의 이탈 명분이 될 뿐이다. 대통령의 지지율이 떨어지고 레임덕이 오는 것은 ‘통치연합’에 균열이 생길 때다. 지역, 이념, 계층, 세대 연합에 신뢰가 깨지면 일단 ‘항의’를 해 보지만 아무리 요구해도 변하지 않으면 비슷한 이유로 지지했던 사람들이 다양한 이유를 들면서 ‘이탈’한다. 그러면 ‘충성’된 지지자들만 남게 된다.(앨버트 허시먼, ‘Exit, Voice, and Loyalty’)

1992년 대선에서 김영삼을 지지했던 유권자 중에는 전두환·노태우를 좋아하는 사람들(주로 TK)과 김종필(주로 충청)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섞여 있었다. 그들의 요구는 단순했다. 3당 합당의 지분을 인정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1995년 2월에 김종필이 탈당(사실상 출당)하고 그해 겨울에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이 구속되자 김영삼 대통령은 티케이와 충청을 기반으로 하는 자민련의 역습을 받는다. 이는 결국 1995년 지방선거에서 시작되고 1997년 대통령 선거에서 완결된 디제이피(DJP)연합의 빌미를 제공했다.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을 지지했던 유권자 중에는 김종필 때문에 지지했던 보수 유권자, 충청 유권자가 꽤 있었다.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 역시 김영삼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내각제 개헌 약속을 깨고 김종필과 결별했다.(2001년 9월 임동원 통일부 장관 해임안 가결로 최종 결별) 정치적으로 노련했던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은 그래도 임기 초반에는 통치연합을 유지했기 때문에 중요한 업적을 남길 수 있었다. 통치연합이 깨지고 지지율이 떨어지면서 레임덕이 오자 두 대통령 모두 아들의 구속을 피할 수 없었다. 1990년대를 내내 3김의 지역주의와 싸웠던 노무현도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는 호남의 절대적 지지가 필요했다. 호남 유권자들도 퇴임 후의 김대중 대통령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정권을 넘겨줄 수는 없었기에 김대중 대통령을 당선시킬 때와 거의 비슷한 강력한 지지를 보냈다.

통치연합의 균열을 보여준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 29%
이는 대통령의 자만에서 왔다
그보다 더 치명적인 타격은
‘공적 이미지’의 심각한 훼손

누구도 반박 못할 원칙 말해놓고
아무도 수긍할 수 없는 예외를
자신에게만 허용한 박 대통령
청와대 문건 파동과 그 대응 보며
월드컵 때의 홍명보호 떠올리다

청와대에서조차 존중받는 이는 극소수

그러나 연합은 오래가지 못했다. 대북송금 특검과 민주당 분당으로 임기 첫해에 통치연합이 붕괴됐다. 2003년 9월에 불에 기름을 붓는 사건이 벌어졌다. 광주를 방문한 노무현 대통령이 “호남 사람들이 나를 찍은 것은 내가 좋아서가 아니라 이회창이 싫어서 아니냐”고 말해 루비콘 강을 건너고 말았다. 정치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인식이 중요하므로 실제 발언의 맥락이야 어찌됐든 노무현의 본심이라고 받아들여졌다. 그로 인해 노무현 대통령은 임기 내내 레임덕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2007년 박근혜를 지지했던 많은 유권자들은 이명박 후보를 어쩔 수 없이 지지하면서도 ‘이명박근혜’ 공동정권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2008년 총선 공천 과정에서 박근혜의 “국민도 속고 저도 속았습니다”라는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말 한마디에 통치기반은 순식간에 금이 갔다. 2009년 9월 정운찬 총리의 임명과 2010년 1월 세종시 수정안 제출은 금이 간 통치연합을 결국 갈라지게 만들었다. 2012년 박근혜 후보가 대선에서 승리했던 비결 중 첫째는 강력한 통치연합의 구축이었다. 대선을 앞두고 충청도를 기반으로 하는 ‘선진통일당’과 합당함으로써 느슨하게나마 3당 합당 구조를 복원시켰다. 그리고 무엇보다 전임 후보들과 달리 현직 대통령의 탈당을 요구하지 않은 최초의 후보이면서도 이명박 대통령과 차별화에도 성공함으로써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다. 국정원 댓글 재판의 유죄 판결과 세월호 참사에도 불구하고 지난 2년간 높은 지지율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도 통치연합이 유지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1월30일 갤럽 조사에서 새누리당 지지율이 41%인데 대통령 지지율이 29%라는 것은 통치연합에 심각한 균열이 생겼다는 것을 보여준다. 균열은 박근혜 대통령이 ‘혼자’ 힘으로 대통령이 됐다는 자만에서 왔다. 성공한 사람들은 예외 없이 누군가의 도움으로 그 자리에 간 것이다. 혼자 힘으로 간 것 같지만 고마워해야 할 누군가가 반드시 있다. 대선에서 나름의 역할을 했다고 믿는 새누리당은 지난 2년간 그에 걸맞은 존중을 대통령으로부터 받지 못했다. 당에 대한 대통령의 고마움이 없자 당원들은 ‘새로운 당청관계’를 위해 김무성 대표를 뽑았지만 상황이 나아지기는커녕 더 나빠졌다. 당대표에게 대놓고 수모를 줬다. 보수 언론 역시 내놓고 대선 공치사를 할 입장은 아니지만 내심으로는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 결국 폭발했다. 내가 남을 존중하지 않으면 나도 존중받지 못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른바 청와대발 ‘문건 파동’이 터지자 청와대 안에서조차 존중받는 사람들은 극소수라는 것이 드러났다. 통치는 단순한 원칙에서 출발한다. 기반을 넓히면 살고 좁히면 죽는 것이다. 서서히 좁히면 서서히 죽고 빨리 좁히면 빨리 죽는다. 예외가 없다. 모든 대통령이 자신은 다르다고 오판했지만 세상 이치가 그렇게 될 리가 있겠는가.

박근혜 대통령은 ‘통치연합’의 균열보다 더 치명적인 타격이 있다. 다른 정치인들은 범접할 수 없었던 ‘공적 이미지’에 심각한 훼손이 생긴 것이다. 국민들이 대통령을 뽑을 때는 세 가지를 평가하고 선택한다. 업적, 비전, 이미지가 그것이다. 업적은 ‘과거에 대한 평가’다. 박정희는 산업화의 업적이 있고, 김영삼·김대중은 민주화의 업적이 있다. 그런데 박근혜는? 딱 떠오르는 업적은 없다. 비전은 ‘미래에 대한 평가’다.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나 문재인 후보 모두 대통령감으로서 업적과 비전은 약했다. 결국 승부는 이미지에서 갈렸다. 이미지는 ‘현재에 대한 평가’다. 대통령 후보의 가장 중요한 이미지는 ‘지도자’의 이미지다. 당연한 일 아닌가. 지도자를 뽑는 선거니까.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가 갖고 있는 ‘지도자’의 이미지에 맞서기에는 문재인의 ‘참모’ 이미지, 안철수의 ‘멘토’ 이미지는 뚜렷한 한계였다.

대통령은 결단력, 통찰력, 추진력, 설득력이 모두 필요하다. 정치가, 사상가, 경영가, 운동가의 대표적인 자질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보다 우선하는 것은 ‘공적 이미지’다. 정치 캠페인의 전략적 목표는 정치인의 ‘사적 욕망’을 ‘공적 이미지’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사적 욕망이 ‘사적 이미지’에 머무른다면 대통령이 되기도 어렵거니와 운 좋게 된다고 해도 국민의 사랑을 받을 수는 없다. 왜냐하면 아무리 대단한 성취를 한다고 해도 희생과 헌신 없이 자신이나 가족만을 위해 열심히 산 사람은 ‘존경’의 대상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평가가 박한 이유는 ‘사적 욕망’이 ‘사적 이미지’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예컨대 양김의 공적 이미지는 민주화를 위한 희생과 헌신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박근혜 대통령은 이미지는 말할 것도 없고 ‘욕망’조차 ‘공적’으로 비쳤다. 박정희의 딸이자 결혼하지 않은 이력은 ‘대한민국과 결혼했다’는 신화 같은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국민, 애국 같은 자주 쓰는 단어들도 그런 이미지에 일조했다. 대통령이 되기 전 그는 ‘원칙’과 ‘신뢰’의 상징이었다. 한나라당 대표 시절에는 부패에도 단호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사적 이미지’와 비교해 ‘공적 이미지’가 돋보였다. 그러나 대통령이 되자 달라졌다. 2012년의 박근혜 후보와 2013년 이후의 박근혜 대통령은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보인다. 통합의 상징인 ‘100% 대한민국’과 약속했던 ‘경제민주화’와 ‘정치혁신’을 언제 약속했냐는 듯이 쉽게 폐기 처분했다. 전에는 박근혜 대통령의 말은 반대자들도 믿었지만 지금은 지지자들도 믿지 않는다.

대통령은 ‘경험’하는 자리가 아니다

박성민 정치 컨설턴트
내가 못하는 것은 남에게 요구할 수도 있고, 비판할 수도 있지만 내가 안 하는 것은 남에게 요구해서도 안 되고 비판해서도 안 된다. 국민들은 대통령에게 모든 것을 요구할 수도 있고 비판할 수도 있다. 대통령은 그러면 안 된다. 국가 개조를 요구하려면 청와대 개조를 먼저 해야 한다. 관피아 척결을 하려면 청와대 내의 비리와 부패에 더 엄격해야 한다. 국민들에게 애국심을 요구하려면 돈과 권력을 우선시하는 사람들을 청와대에 두면 안 된다. 낙하산 인사를 하면서 그것을 비판해서는 안 된다. 대통령과 청와대는 ‘국가대표 공직’이다. 이영표의 말대로 국가대표는 증명하는 자리이지 경험하는 자리가 아니다. 위대한 조직은 피터 드러커의 말대로 평범한 사람들로 비범한 일을 하는 조직이다. 아시안컵에서 축구 국가대표들은 상금도, 군 면제도 없는데 오직 국가의 명예를 위해 국가대표로서 마땅히 해야 할 ‘투혼’을 불살랐다. 슈틸리케는 평범한 선수들로 비범한 결과를 만들어냈다. ‘이익은 사유화’하고 ‘손실은 사회화’하는 대한민국 현실에서 대통령과 청와대는 축구 대표팀의 경기를 보고 무엇을 느꼈는가? 청와대 문건 파동과 대통령의 대응을 보면서 월드컵 때의 홍명보호를 보는 듯했다. 홍명보호는 ‘의리’로 망했다. 박근혜 대통령 역시 그랬다.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원칙’을 말해 놓고는 아무도 수긍할 수 없는 ‘예외’를 자신에게만 허용했다. ‘대통령의 임무는 옳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옳은 일을 아는 것이다.’ 미국 대통령을 지낸 린든 존슨의 말이다.

박성민 정치 컨설턴트

▶박성민 정치 컨설턴트. 1991년 설립한 ‘민(MIN) 컨설팅’ 대표. 30년간 정치를 현장에서 관찰하고 수많은 선거를 이끌었다. 전략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승리를 위한 캠페인 방법을 몸으로 익혔다. 세계 최고의 전략컨설팅 회사를 꿈꾼다. 생각이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지혜가 민주주의라고 믿고 있다. ‘힘든 일은 있어도 나쁜 일은 없다’는 인생관으로 버틴다. 책과 영화, 커피를 사랑하며 걷는 것을 즐긴다. ‘2017 오디세이아’를 통해 차기 대선을 향한 여정을 독자들과 함께한다. 격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