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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 극복 10계명/이무석/한겨레신문

이윤진이카루스 2015. 2. 4. 11:04

사회

종교

“나를 이제 그만 다그쳐라”…‘불안 극복’ 10계명

등록 : 2015.02.03 19:55 수정 : 2015.02.04 10:38

정신분석의 시조인 프로이트의 사진이 있는 이무석 교수의 서재.

이무석 교수 인터뷰

지난달 서울 강남지역 아파트에서 40대 가장이 아내와 두 딸을 살해한 사건이 발행했다. 이 남자는 2년 전 실직한 뒤 대출을 받아 주식투자를 하다 2억7천만원을 날렸으나 여전히 10억원대의 아파트에 살고, 외제차를 소유하고 있었다.

극빈 상태에서 자살한 송파 세 모녀와는 다른 처지였다. 현재 가진 것만도 빈곤층엔 부러움을 살 만한 정도이기에 그의 극단적인 선택은 더욱 충격적이다.

빈곤층과 무직자, 실직자, 청년실업자 등이 느끼는 불안이야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런데 그럴듯한 직장에 다니거나, 비싼 아파트에 살고, 고급 승용차를 끌고 다닌다고 불안이 없을까. 그렇지 않다. 그래서 현대인들의 ‘불안장애’의 원인과 치유책을 알아보기 위해 정신분석의 대가를 찾았다. 이무석(70) 전 전남대 의대 교수다. 한국정신분석학회 회장을 지낸 이 교수는 <정신분석에로의 초대>, <성격 아는 만큼 자유로워진다>, <30년 만의 휴식>, <자존감> 등 베스트셀러를 낸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정신분석가다. 지난달 30일 광주광역시 ‘이무석정신분석연구소’에서 이 교수가 고요한 미소로 맞아주었다. 무장을 해제해도 안심할 수 있게 하는 미소다. 그래서 친밀하게 내면여행을 동행하며 ‘불안’을 끌어내기 시작했다.

“인생 자체가 불안한 것이다.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인생을 합리적으로 대처하는 사람이 성숙한 사람이다.”

한국은 심각한 경쟁과 투쟁으로
열등감·패배감 휩싸인 ‘정신 불안사회’
불안장애 극복 위해
부모에게 받은 세발자전거 버리고
타인의 삶과 자신의 인생 비교 말고
자기의 목소리를 되찾아야

이 교수의 조언은 ‘불안한 인생을 받아들이라’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그러면서 “정신분석학에서 볼 때, 불안에도 ‘정상적인 불안’과 ‘병적인 불안’ 두 종류가 있다”고 설명한다.

“돈은 없고 아내는 병들고, 먹을 것조차 없다면 걱정되고 불안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정상적인 불안’에 해당한다. 이런 불안이 있을 때는 그에 따른 대처를 해야 한다. 그러나 실제는 나뭇잎이 떨어졌는데 마음속에선 태풍이 부는 건 ‘병적인 불안’이다. ‘공황장애’ 같은 것이다.”

‘병적인 불안’은 왜 생길까. 이 교수는 “열등감에서 비롯되고, 열등감은 자존감이 없기 때문이고, 이는 유년기의 상처에서 시작된다”고 설명한다. 그는 “어린 시절 실수했을 때 합리적인 꾸중을 들은 아이는 커서 자기 비난도 합리적인데, 비합리적인 대우를 받은 아이는 자기 비난의 소리도 비합리적이고 자학적인 성격이 된다”고 말한다.

그러면 잘나갈 때는 모르지만, 구조조정으로 실직을 당하거나 아이가 대학시험에 떨어지거나 부인이 유방암에 걸리는 등 스트레스 상황을 맞으면 곧바로 내면에서 ‘올 것이 왔구나’, ‘내 이럴 줄 알았다’는 ‘자기 비난’으로 지진이라도 난 것 같은 충격을 경험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유아기의 ‘엄마 거울’이 결정적이라고 한다. 엄마가 아기에게 활짝 웃어주고 안아주면 ‘사람들은 나를 좋아하는구나’라는 자존감이 생기는데, 품을 파고들어도 밀치는 외면을 경험하면 ‘남들도 엄마처럼 나를 싫어할 거야’라며 자존감이 낮아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길이 없는 것은 아니다.

“연구에 따르면,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도 3분의 2가량은 치유가 된다. 아빠나 선생님들이 가치를 긍정해주고 소중하게 여겨주면 ‘자기 이미지’의 수정이 돼 자존감을 회복한다.”

이무석 교수가 정신치료를 하는 모습을 재연했다.
문제는 회복하지 못한 나머지 3분의 1이다. 이들은 세살 때 어머니가 자신에게 준 세발자전거를 30살, 40살이 되어서도 타고 다니며 고통받는다고 한다. 이 교수는 이들을 위한 치유의 길로 ‘자기 고백’과 ‘자기 위로’를 제시한다.

“감정들은 언어로 표현되면 밖으로 나간다. 나쁜 감정들은 고백을 통해 밖으로 내보내고, 위로의 말이 마음속에 들어오면 치유될 수 있다. 그런데 그들은 열등감 때문에 친한 친구를 사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가족이나 친구들이 작은 말 한마디라도 인정해주고 격려해주는 게 필요하다. 신앙을 통해, 절대자의 사랑을 통해 자기 가치를 발견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이 교수는 “삶에서 뜻하지 않은 실패를 경험했을 때, 내면에서 ‘괜찮아’라는 자기 위로나 ‘그럴 줄 알았다’는 자기 비난이 올라온다”고 했다. 이 가운데 자기 비난이 강한 사람들이 불안을 더 심하게 느끼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 쉽다는 것이다.

“삶의 실패와 좌절을 극복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게 ‘탄력성’이다. 바닥에 떨어뜨린 돌처럼 그대로 나뒹구는 게 아니라 공처럼 튀어오를 수 있어야 역경을 버틸 수 있다. 자존감이 높을수록 ‘타인들이 내게 호감을 가질 거야’라는 믿음이 커 탄력성이 좋다.”

외적으로 스펙이 그럴듯하고, 직위가 높고, 돈이 많으면 탄력성, 자존감이 높아 보인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는 게 이 교수의 말이다.

“나도 처음 정신과 의사를 할 때는 사회적으로 지위가 낮고 재산도 없고, 신체 불구자들이 자존감이 낮은 줄 알았다. 또 사회적 위치가 높아지고 성형수술을 하면 자존감이 회복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실은 그렇지가 않았다. 간판으로 상처를 가릴 수는 있지만, 내적인 열등감은 그대로 갖고 있다.”

광주 이무석정신분석연구소에서 불안의 원인과 극복안을 제시하는 이무석 교수
광주천변 드맹빌딩 1층에서 부인 문광자씨와 화가인 아들이 그린 대형 그림 앞에 선 이무석 교수. 드맹빌딩 3층에이무석정신분석연구소가 있고, 1층엔 패션디자이너인 문씨의 매장이 있다.
이 교수는 “한국은 지나치게 경쟁과 투쟁의 사회가 되어 여기서 살아남기 위해 자기중심적인 자기애적 사회로 변하면서 모두가 열등감을 가진 패배자가 되어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세살 때 타던 세발자전거를 버리고, 엄마로도 아빠로도 살지 않고, 자기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대로 살아가는 것이 건강한 것인데, 한국에선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기보다는, 타인의 박수를 받는 스타로 살아가길 바란다. 일본 엄마들은 아이들에게 ‘남에게 폐 끼치지 말라’고 가르치는데, 한국 엄마들은 ‘지지 말라’고 가르친다. 인간 도리를 지키는 삶에 박수를 쳐주지 않고, 수능점수만 높으면 무례하고 비인간적인 행동까지도 합리화해준다. 그래서 선생님한테 대들고, 말은 못하지만 자식한테 맞고 사는 엄마가 많은 것이다. 고위직에 오른 이들조차 언제 쫓겨날지 몰라 불안해하고, 자기보다 성공한 사람 앞에선 열등감에 휩싸여 모두가 심리적 패배감 속에 살아간다.”

이 교수는 마지막으로 ‘백점 아니면 빵점’이라는 식의 이분법과 완벽주의를 버릴 것을 권했다.

“완벽하게 해내지 못했다고 다그치지 마라. 현실을 수용해줘야 한다. 현실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건강한 사람이다. 그에겐 그의 현실이 있고, 나에겐 나의 현실이 있음을 받아들여라. 인생은 진행형이다. 일류대학을 안 나왔어도, 가난했어도, 쌍꺼풀 수술 안 했어도 괜찮다고 말해주라. 죽고 싶은 순간도 있었지만 그래도 죽지 않고 나름 최선을 다하며 여기까지 오지 않았느냐고 자신을 위로해주라.”

광주/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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