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을 폐쇄해야 하는 이유

'에너지 절전소' 성대골/한겨레신문

이윤진이카루스 2015. 2. 9. 12:53

사회

지역

‘에너지 절전소’ 성대골…평범한 동네가 ‘절약 메카’로

등록 : 2015.02.08 20:55 수정 : 2015.02.09 10:03

‘에너지 자립마을’인 서울 동작구 성대골의 어린이도서관 게시판에 가정별로 매달 사용한 전력량이 막대그래프로 표시돼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월요리포트] 에너지 자립마을, 4년의 실험

‘4.2%.’ 2013년 서울의 에너지 자립률(소비량에서 생산량이 차지하는 비중)이다. 원자력발전소(원전)를 바닷가에 짓고, 멀리 떨어진 서울 등 대도시와 공장 등으로 전기를 보내기 위해 곳곳에 송전탑을 세운다. 경남 밀양 초고압 송전탑 갈등은 본질적으로 대도시가 에너지 생산은 않고 소비만 하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선택은 두 가지다. 지금처럼 갈등과 위험을 감수하면서 원전을 계속 짓든지, 아니면 대도시의 에너지 소비를 줄이거나 재생가능에너지 생산 비중을 높이든지. 서울 동작구 성대골(상도3·4동) 주민들의 지난 4년간의 실험은 원전을 더 짓지 않아도 서울살이가 가능하다는 단초를 보여준다. 2011년 이후 동작구 전체는 전기 사용량이 늘고 있지만 성대골 주민들은 매년 10% 가까이 전기 사용량을 줄이고 있다.

성대골을 포함해 서울에만 15곳이 있는 에너지 자립마을 가운데 성대골이 돋보이는 것은 태양광발전 같은 친환경 에너지 생산 방식 때문만이 아니다. 이곳 주민들은 절전으로 일상생활의 변화를 일궜고, 이 변화의 날갯짓이 마을 밖으로 확산되고 있다.

지난달 16일 서울 동작구 상도동 성대시장 입구부터 길을 따라 400m 가까이 쭉 올라 성대골을 찾았다. 이마에 살짝 땀이 배어나올 무렵, ‘뭔가’ 나와야만 하는 위치인데 눈에 띄는 건물은 보이지 않았다. 주변을 살펴보니 ‘에너지 슈퍼마켙’이란 낯선 이름이 적힌 간판이 보였다. 에너지 관련 마을기업인 마을닷살림협동조합이 운영하는 23㎡(7평) 크기의 작은 매장이다. 진열대에는 절전형 멀티탭과 엘이디(LED) 전구가 눈에 띄었다. 이곳은 에너지 대안에 대한 전시교육장 구실과 컨설팅 등의 일도 한다.

지난달 매장을 두차례 찾을 때마다 외부에서 찾아온 손님과 주민들로 북적였다. 지난달 16일 오전에는 우리동네햇빛발전협동조합의 강병식 사무국장이 찾아와 마을닷살림협동조합의 김소영 이사장과 상담했다. 강 사무국장은 “(삼각산고와 한신대에) 햇빛발전소를 만들고 난 이후, 지역 주민들이 계속 에너지 문제에 관심을 갖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노하우를 배우고 싶어 찾아왔다”고 말했다.

태양광발전 등 생산 방식보다
일상생활서 가능한 ‘절약’ 승부
주민들 매년 10% 사용량 줄여

타 지역서 ‘노하우 배우자’ 줄이어
주민들 절약 전도하며 수익 얻고
에너지 관련 직종 일자리도 생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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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민 한 사람이 바꾼 마을

성대골 에너지 자립마을의 원년은 일본 후쿠시마 원전이 무너진 2011년이다. 김소영 이사장에게 그해 3월의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충격 그 자체였다. 그런데 김씨가 더 놀란 것은 주민들의 태도였다.

“사고 직후에는 비가 오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느니 마니 하던 주민들이 사고 뒤 한 달 정도 지나자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 거예요.”

그는 여러 시민단체에 무턱대고 전화를 걸어 원전 사고에 대해 강의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해 9월15일 후쿠시마에 다녀온 녹색연합 소속 강사가 성대골을 찾았다. 강의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터진 뒤 방사능 수치가 계속 올라가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후 에너지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주민이 15명으로 늘었다. 노성숙(46) 에너지 슈퍼마켙 매니저는 “강의를 듣고 난 뒤부터 ‘내가 적극적으로 활동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다음 단계로 ‘그럼 당장 무얼 할 수 있을까?’에 대한 대답이 필요했다. 원전을 짓지 않으려면 서울의 에너지 사용량을 줄이거나 에너지를 직접 생산해야 했다. 국사봉 기슭에 자리잡은 성대골은 단독주택이 적어 태양광 발전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에너지 절약에 초점을 맞췄다. 실천 방법으로 떠올린 것이 ‘에너지 절약이 에너지 생산’이란 뜻을 담은 ‘절전소 운동’이다. 4인가구인 김소영 이사장 집의 경우, 전기 사용량·요금이 2010년 월평균 280~300㎾h(약 3만2000원)에서 지난해엔 150~170㎾h(약 1만5000~1만7000원)로 절반가량 줄었다.

가정별로 매달 사용한 전력량을 그래프로 그려 어린이도서관 게시판에 붙였다. 서로 눈으로 확인하고 경쟁했다. 마을의 변화는 흥미롭다. 2013년 연평균 1인당 전기사용량은 동작구 전체의 경우 2010년에 견줘 4.7% 늘었지만, 같은 기간 성대골(상도3·4동)에서는 오히려 3.4% 줄었다. 여름철(5~8월) 절전소 운동에 참여한 800가구 표본조사를 보면, 감소세가 더욱 뚜렷하다. 2013년에는 전년 대비 10.3%, 지난해에는 전년 대비 8.5% 줄었다.

 ■ 마을에서 마을 바깥으로

주민들은 에너지 문제를 고민하면 할수록, 더 빠져들게 됐다고 말한다. 미래를 살아갈 자녀들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상도4동의 국사봉중학교 문을 두드렸다. 제안을 받아들인 국사봉중에서 2012년 1학기에 처음 4명의 주민이 특강을 시작했다. 상도2동의 장승중도 특강을 부탁했다. 주민들은 그해 2학기 장승중 24개 학급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정규수업 시간에 특강을 했다. 수업이 가능한 주민은 10명으로 늘었다.

국사봉중은 올해 주민들의 강의를 정규수업 과목으로 정했다. 동작구뿐만 아니라 관악구 인헌고, 강서구 마곡중, 마포구 숭문고 등 20여개 학교에 성대골 주민들이 찾아가 교육을 한다.

성대골의 실험은 서울을 넘어 전국을 향한다. 에너지 절약에 관심이 많은 전국의 소비자와 ‘적정기술’(특정 지역에서 지속적인 생산과 소비가 가능하도록 만들어진 기술) 제품 생산자들을 이어주는 ‘에너지 슈퍼마켙 온라인쇼핑몰’을 준비하고 있다. 에너지 절약 제품을 판매하는 것은 물론, 에너지 문제와 관련된 각종 강의의 수강을 신청할 수도 있다. 이명주 전북 완주군 그린리더협의회 회장은 “에너지 문제를 고민하는 소비자와 적정기술 생산자 등이 모인 전국적인 소통의 공간이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 새롭게 창출되는 에너지 경제

성대골 주민들이 운영하는 ‘에너지슈퍼마켙’.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전문가들은 성대골 주민들이 에너지 자립마을 활동으로 돈을 벌고 있는 점을 눈여겨보고 있다. 학교 45분 수업 기준으로 강사는 5만원, 보조강사는 2만원을 받는다. 성대골 주민 한 명은 지난해 에너지 자립마을 사업에 참여한 동작구 현대푸르미아파트에 일자리를 얻었다. 이 주민은 월급 140만원을 받고 에너지 자립마을 사업 담당자로 일한다. 에너지 절약이란 주제로 돈을 버는 성대골 주민이 50명이 넘는다.

마을 경제에도 활력이 돌게 됐다. “처음엔 에너지 자립마을 사업을 곱지 않은 눈으로 보는 주민도 있었어요.” 김소영 이사장이 말했다. “그런데 자꾸 외부 사람들이 에너지 절약을 주제로 마을을 찾아와 식당도 이용하고 커피도 한 잔씩 마시며 돈을 쓰니까 점차 호의적으로 바뀌더라고요.”

윤순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성대골처럼 새로운 에너지시스템으로 먹고사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이 우리 사회가 핵발전에서 벗어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건설회사나 하청회사, 학회 등 원전으로 먹고사는 사람들이 2만명이라고 한다. 이들이 원전을 지지하는 여론을 주도한다. 새로운 에너지시스템을 지지하는 사람들, 그 시스템을 기반으로 먹고사는 사람들이 늘어야 현실이 바뀐다”고 강조했다.

음성원 기자 esw@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