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작시

물미역을 사며

이윤진이카루스 2010. 8. 2. 08:07

한국전쟁이 어정쩡하게 끝나고

바닷가 사람들도 배를 곯았다.

보릿고개를 밀기울로 넘길 수 있어

생명을 연장할 수 있었지만

궁핍의 시절에는 그것 또한 귀했다.

 

겨울이 오면서 달랑거리던 곡식이 떨어지면

추운 날씨는 빈 곡식통과 더불어 얼어붙고

시간이 빨리 지나기를 기다릴 따름인데

포만을 포기한 아이들의 눈망울을 따라

낮은 길었고 밤은 뒤채다 지쳤다.

 

바닷가에 불어오는 바람에 파도가 흩어지고

부두에 얼어붙은 소금물이 짧은 해를 비웃을 때

사람들은 파도에 휩쓸려온 미역을 주웠다.

알곡 부스러기와 미역을 먹고 살아가노라면

막연하지만 걱정을 잊고 살 수 있으려니.

 

오십년이 흘러 늙은이가 되어가며

습관적으로 물미역을 산다.

두뇌의 한 부분에 각인되어

유전자 초기형태를 보이는,

물미역이라도 확보하고 싶은 기억은

어물전에서 눈을 굴린다.

 

줄기는 초고추장에 비벼먹고

이파리는 국을 끓이곤 했는데

지금은 아스라이 추억으로 남았다.

어리석은 세월을 막으려고,

유전자 초기형태를 떨치려고

지금 무엇을 하는지...

'습작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색 종이비행기로  (0) 2010.08.02
혜성  (0) 2010.08.02
눈물로 살아가기  (0) 2010.08.02
한국전쟁(8)  (0) 2010.08.02
신화(神話) 뿌리  (0) 2010.08.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