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노르웨이 / 한겨레신문

이윤진이카루스 2015. 5. 21. 08:24

esc

오직 이 길을 만나기 위해 노르웨이로 간다

등록 :2015-05-20 20:27수정 :2015-05-20 22:00

 

노르웨이 예이랑에르 피오르 플뤼달슈베트 전망대.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노르웨이 예이랑에르 피오르 플뤼달슈베트 전망대.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 노르웨이 중서부 피오르 여행
애틀랜틱 로드에서 몰데 파노라마, 예이랑에르 피오르 거쳐 올레순까지…노르웨이 중서부 3박4일 드라이브 여행
‘피오르의 나라’ 노르웨이. 피오르란 빙하가 오랜 세월 동안 서서히 밀려내려가며 깎아낸 협곡에 물이 들어찬 지형(빙식곡)이다. 스칸디나비아반도 서해안에 길게 자리한 노르웨이의 남서부 해안 지역에 무수한 피오르 지형이 형성돼 있다. 수많은 피오르는 노르웨이를 ‘터널의 나라’ ‘크루즈의 나라’로도 만들었다. 협곡과 바다, 설산과 계곡을 잇는 도로마다 무수한 터널이 뚫려 있다. 길이 10㎞ 이상이 흔하고, 지하에서 교차로가 나타나기도 한다.

노르웨이 피오르 지역 중서부 해안 롬스달 주의 아름다운 세 중소도시, 크리스티안순·몰데·올레순을 차례로 탐방하며 피오르해안과 빙하호수 들을 감상하는 드라이브 여행을 다녀왔다. 수시로 나타나는 협곡과 호수를 우회하거나 카페리를 타고 건너고, 까마득한 계곡과 아늑한 호숫가 도로를 따라 볼거리를 찾아간 여정이다. 물론, 좁고 어둡고 긴 땅굴을 수십차례나 드나들어야 했다. 세 도시를 직선으로 이으면 110㎞가량이지만, 나흘 동안 돌고 돌며 쏘다닌 거리는 1300㎞가 넘었다.

작은 섬 잇는 7개 다리로 이어진
9㎞ 길이 경관도로 애틀랜틱 로드
스토르세이순데트 다리 독특
경관 구경 위해 급정거한
바퀴 자국 어지러워

조각작품 같은 다리로 이어진 애틀랜틱 로드

오슬로에서 비행기로 50분 거리에 있는 크리스티안순은, 노르웨이 피오르 지역 북쪽 끝자락 해안에 자리잡은 인구 2만5000의 섬 도시다. 말린 대구와 오페라가 유명하다지만, 공항 렌터카 창구에서 차를 받자마자 외곽으로 빠져 다른 섬들로 이어진 64번 도로를 탔다. 노르웨이의 18개 국립관광도로 중 하나이자, 세계적인 드라이브 코스이며, 노르웨이 10대 사이클링 루트 중 한 곳인 ‘애틀랜틱 로드’(대서양로)로 가기 위해서다. 몇년 전 국내 자동차 광고에 등장하며 눈길을 끌었던 길이기도 하다.

도로 경관은 “오직 이 길을 만나기 위해 노르웨이에 왔다”는 일행 중 한 사람의 표현대로 “잘 만들어놓은 조각작품”을 떠올리게 했다. 크리스티안순에서 남서쪽으로 30㎞, 헨드홀멘 섬에서 애틀랜틱 로드가 시작된다. 베방까지 작은 섬들을 잇는 7개의 다리로 이뤄진 약 9㎞ 길이의 경관도로다. 길 전체를 조망하는 전망대가 몇곳 있지만, 이 길의 핵심 경관은 스토르세이순데트 다리다. 7개의 다리 중 가장 높고 경사진 굽잇길 다리로, 어느 쪽에서 보든 도드라진 경관을 드러낸다. 고갯길처럼 높이 솟은 다리 꼭대기 부근엔 급정거한 차량의 타이어 자국이 어지럽다. 경관 구경하느라 서행하던 차나 자전거, 그리고 사진 찍기 위해 걸어오른 일부 보행자들 때문에 생긴 것들이다.

애틀랜틱 로드의 스토르세이순데트 다리.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애틀랜틱 로드의 스토르세이순데트 다리.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롬교회. 나무로 지어진 바이킹 전통양식의 교회다.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롬교회. 나무로 지어진 바이킹 전통양식의 교회다.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설산과 폭포, 초록 목장 따라가는 지방도로

애틀랜틱 로드에서 남쪽으로 50㎞ 가까이, 양과 염소들 노니는 목초지와 바닷가 마을들을 달리면 국제 재즈페스티벌로 유명한 해안도시 몰데에 닿는다. ‘몰데 재즈페스티벌’은 1961년 시작된, 유럽에서 가장 오래되고 규모 큰 재즈축제로 해마다 7월에 벌어진다.

봄으로 접어든 이맘때 몰데를 찾는 관광객의 관심은 도시 뒷산 바르덴 전망대에 쏠린다. 해발 407m의 언덕에서 바라보는 광활한 설산 봉우리 전망 때문이다. 이른바 ‘몰데 파노라마’다. 발밑 산기슭의 몰데 시가지와 피오르 해안, 건너편에 좌우로 줄달음치는 설산들 풍경이 아름답다. 노을에 잠긴 설산 연봉들은 장엄하기까지 하다. 눈에 들어오는 설산 봉우리들은 모두 222개나 된다고 한다. 섬들 사이를 배들이 쉼표처럼 오고 가고 또 마침표처럼 떠 있다.

눈 덮인 봉우리들은, 어디로 차를 몰든 눈앞에 있고, 머리 위에 있고, 피오르 협곡 물속에도 잠겨 있다. 62번 도로 따라 랑피오르와 팅볼피오르 거쳐 70번 도로와 E6 도로를 번갈아 타고 내륙 소도시 오프달과 예르킨(히에르킨), 오타를 지나기까지, 눈을 덮어쓴 산들과 눈 녹은 물이 수백·수천길 폭포가 되어 떨어지는 절벽들을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었다. 가늘고 긴 수십단의 폭포 맨 위쪽은 흰 눈 덮인 겨울이요, 낙하를 마친 물줄기가 호수로 흘러드는 산기슭은 초록 새순들 무성한 봄날이다.

이런 봄빛·봄향기는 양떼·염소떼 노니는 목초지를 지날 때마다 가축 분뇨 냄새와 더불어 차창 안으로 막무가내로 쏟아져 들어왔다. 풀내음도 똥내음도 새털구름·뭉게구름 뜬 새파란 노르웨이의 하늘 아래서 피오르 깊은 물빛을 키우고 샛노란 민들레 꽃밭을 키워준다.

일행은 오프달의 한 편의점 앞 나무의자에 앉아 하나에 1만원이 넘는 소시지를 하나씩 들고, 가져온 컵라면을 뜯었다. 지난해 봄 노르웨이 드라이브 여행을, 허기지고 궁핍하게 했던 경험이 있는 일행이 말했다. “작년 봄에 사서 먹다 남은 ‘어제 팔다 남은 소시지’가 생각나는군. 이 커다란 핑크빛 소시지는 거기에 비하면 정말 신선하기 짝이 없지.” 당시 비용 절약을 위해 ‘어제 팔다 남은 음식’만 골라 싸게 사먹었다는 얘기다. 물가 비싸기로 이름난 노르웨이 여행길엔 햄버거 하나 1만5000원, 물 한병 5000원, 택시 한번 타면 몇만원은 기본이란 걸 염두에 둬야 한다.

피오르 지역 드라이브 여행 땐 수시로 카페리를 이용해 물길을 건너야 한다. 링에 선착장.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피오르 지역 드라이브 여행 땐 수시로 카페리를 이용해 물길을 건너야 한다. 링에 선착장.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위를 봐도 밑을 봐도 그림 예이랑에르 피오르

경관 빼어난 예이랑에르 피오르 쪽으로 오르는 15번 도로는 오를수록 한겨울로 다가섰다. 풀빛은 사라지고, 흰 눈 사이로 뻗은 검은 물길과 바위절벽이 이어지는 흑백사진의 세상이다. 안개비가 눈으로 바뀌더니 순식간에 눈보라가 몰아쳤다. 예이랑에르로 넘어가는 산길은 눈에 덮인 채 통제돼 있었다. 일시 통제가 아니라, 겨울이 끝나는 5월 말까지 통행금지다. 30분이면 넘어갈 산길을, 스트륀·헬레쉴트를 거쳐 스트라나(스트란다)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리아뷔그다로 건너간 뒤, 다시 링에에서 배를 타고 아스달로 건너가 차를 달려 예이랑에르 숙소에 도착하는 데 4시간이 넘게 걸렸다. 긴 하루해도 저물어 밤 10시가 넘은 시각. “운전하기를 아내 다음으로 좋아한다”는 운전자의 이마에도 땀방울이 맺혔다. 빗길·눈길·터널길·절벽길을 야수처럼 달려와 만난 예이랑에르. 다음날 아침 맑게 갠 하늘 아래서 그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예이랑에르 피오르는, 노르웨이 피오르의 대표적 경관 중 하나이자, 유서 깊은 절벽 목축 문화로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된 곳이다. 수심은 평균 200m에 이르고, 해발 1000m를 넘는 산들이 좁고 긴 협곡을 이룬 곳이다. 절벽 밑 물가의 비탈진 땅에서 19세기 주민들은 염소·양·소들을 키우며 살았다고 한다. 이들의 농장 흔적과 농막들이 지금도 남아 있다.

예이랑에르 피오르의 경관을 가장 잘 드러내는 전망대가 두 곳 있다. ‘이글스 로드’로 이름붙은 지그재그 절벽길 위의 전망대와 마을 뒷길로 2㎞쯤 오르면 나오는 플뤼달슈베트 전망대다. 이른 아침에 전망대를 찾는 이들이 많은 건, 고요한 물속에 누운 설산과 쪽빛 하늘, 눈부신 구름떼가 깊은 잠에서 깨어나기 전이기 때문이다.

노랑피오르 거쳐 아르누보 도시 올레순으로

예이랑에르에서 가장 가까운 선착장 마을 헬레쉴트 부근에서 655번 도로를 타면, 찾는 이는 적고 계곡은 웅장한 노랑피오르(노랑스피오르)로 접어든다. 19세기에 지어진 오래된 호텔 유니온이 있는 외위에(외예) 마을 거쳐 우르케 선착장까지 이어진 피오르다. 눈 녹은 깨끗한 물이 흐르는 이 골짜기에도 옛 농막들이 남아 있다. 외위에 유니온 호텔은 노르웨이의 극작가 헨리크 입센, 영국의 추리소설가 코넌 도일 등이 묵어갔다는 3층짜리 고풍스런 호텔이다. 여행객 누구나 들어가 둘러볼 수 있다. 방문마다 묵어간 저명인사들의 이름이 적혀 있다.

우르케에서 배 타고 세뵈(새뵈)로 건너가 외르스타 거쳐 E39번 도로 타고 다시 배 타고 건넌 뒤 바닷가 길을 달려 올레순에 닿았다. 올레순은 아르누보 양식의 건축물이 아름다운 항구도시다.

크리스티안순·몰테·올레순(노르웨이)/이병학 선임기자 leebh9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