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관찰하기

일본에는 어용 종교와 어용 학문만 있다 - 후쿠자와 유키치, "문명론의 개략" 중에서 -

이윤진이카루스 2015. 5. 28. 00:28

   종교는 사람 마음의 내부에서 작동하는 하는 것이어서, 가장 자유롭고 가장 독립적이어서, 조금도 다른 사람의 제어를 받지 않고, 조금도 다른 사람의 힘에 의지하지 않아, 세상에 당연히 존재할 수 있을 터인데, 우리 일본에 있어서는 곧 그렇지 않다. 원래 우리나라의 종교적 교설은 신도(神道)와 불교의 양쪽 길이라고 하는 자가 있어도, 신도(神道)는 아직 종교적 교설의 체제를 갖추지 못했다. 설령 오랜 옛날에 그 주장이 있어도, 이미 불법(仏法) 안에 농락되어. 수 백 년 간 본색을 드러낼 수 없다. 혹은 요즘에 이르러 조금 신도(神道)라는 이름을 듣는 것 같아도, 정부의 변혁을 맞아 겨우 왕실의 음덕에 의지하여 미미한 운동을 하려고 할뿐이어서, 다만 한 때의 우연한 일이기에, 나의 소견에서는 이것을 정해진 종교적 교설이라고 인정할 수 없다. 아무튼 옛날부터 일본에서 유포되어 문명의 한 국면을 맡은 종교적 교설은, 다만 하나의 불법(仏法)이 있을 따름. 그런데 이 불법(仏法)도 처음 생긴 때부터 다스리는 자의 무리에 들어가 그 힘에 의지하지 않은 것이 없다. 옛날부터 유명한 스님과 고명한 스님이라고 칭하는 사람, 혹은 당나라에 들어가서 법()을 구하고, 혹은 자국에서 있으면서 새로운 종파를 열어, 사람들을 교화하고 절을 세운 것도 많다할지라도, 대개 모두 천황과 쇼군(將軍) 등의 보살핌이라는 요행을 맞이하여, 그 음덕을 빌려서 법()을 보급하려 할 따름. 심지어는 정부로부터 작위를 받고 명예라고 하는 데 이르렀다. 승려가 승정(僧正: 승려의 고위직)과 승도(僧都: 승려의 고위직)의 지위에 보해진다는 사례는 매우 오래되어, 엔키시키(延喜式: 헤이안 시대 율령의 시행세칙)에 승도(僧都: 승려의 고위직) 이상은 3품에 준한다 하고, 고다이고(後醍醐) 천황의 겐무(建武) 2년의 칙명에는, 대승정(大僧正: 승려의 최고위직)으로써 2품 대납언(大納言), 승정(僧正: 승려의 고위직)으로써 2품 중납언(中納言), 권승정(権僧正: 승정의 다음 직위)으로써 3품 참의(参議)에 준한다고 되어 있다 (석가관반기[釈家官班記]). 이 내용을 보면, 당시 유명한 스님과 고명한 스님도 조정의 관직을 몸을 지니고, 그 지위로써 조정의 많은 신하들과 상하의 반열을 다투어 한 자리 내외로써 영예와 수치로 삼았던 것이리라. 이것 때문에 일본의 종교적 교설에서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종교는 있어도 자립적인 종교 행정인 것이 있음을 듣지 못한다. 더욱이 그 실제적 증거를 얻고자하면, 오늘날에도 나라 안의 유명한 절에 가서 그 기록된 유래를 불 수 있다. 쇼무(聖武) 천황의 텐표(天平) 연중에 일본의 제후국마다 고쿠분지(国分寺: 국분사)를 세우고, 간무(桓武) 천황 엔랴쿠(延暦) 7년에는 전교대사(伝教大師: 最澄: 최징)가 히에이잔(比叡山)을 열어 고본츄도(根本中堂: 근본중당)을 세워 왕성(王城)의 기몬(鬼門: 귀문: 음양설에서 여러 귀신이 출몰하는 곳)을 진압하고, 사가(嵯峨) 천황 고닌(弘仁) 7년에는, 고보다이시(弘法大師: 홍법대사: 空海: 공해)가 고야산(高野山)을 열어 천황으로부터 윤허를 받아 그 대가람(大伽籃)을 건립했다. 기타 남부의 여러 산, 교토의 여러 절, 헤이안 시대에는 가마쿠라(鎌倉)5, 근세에는 우에노(上野)의 도에이야마(東叡山), 시바()의 조죠지(増上寺) 등 어느 것도 모두 정부의 힘에 의존하지 않은 것이 없다. 기타 역대 천황 스스로 불교에 귀의하여, 혹은 친왕(親王: 적출 황손)으로 중이 된 자도 매우 많다. 시라카와(白河) 천황에게 8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6명은 중이었다고 한다. 이것 역시 종교에서 권력을 얻은 한 가지 원인이다. 오직 정토진종(淨土眞宗)이 자립에 가까운 것이라 해도 여전히 그런 폐단을 면할 수 없다. 아시카가(足利) 말기, 다이에이(大永) 원년 지츠뇨 상인(実如上人) 시대에 천황의 즉위 자금을 기부하여, 그 보답으로써 영원히 몬제키(門跡: 황족이 출가하여 법통을 전하는 절)에 준한다 하여 호신노(法親王: 법친왕: 황자가 출가하여 친왕까지 봉해지는 경우)에 준하는 지위를 하사받은 일이 있다. 왕실이 쇠미하고 빈곤함을 불쌍히 생각하여 여유 돈을 대주는 것은 승려의 신분으로서 훌륭한 일일지라도, 사실은 그렇지 않아서, 니시산조(西三条)는 불교에 입문하는 중개인을 통하여 관직의 등급을 산 일이 있다. 이것을 비열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옛날부터 일본 가운데 대사원이라 칭하는 것은, 천황과 칙명으로 기원하는 바가 아니면 쇼군(将軍)이 집권하여 건립했다. 생각건대 이것을 어용사찰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절의 유래를 들으면, 쇼군(将軍)의 도장이 찍힌 문서는 몇 백 석, 주지의 자격은 어떠어떠하다고 하여, 그 상황도 높은 무사족이 자신의 가문을 말함에 다르지 않다. 한 번 들어서 혐오감이 생길 것이다. 절의 문 앞에는 말에서 내리라는 표찰을 걸고, 문에서 나가면 추종세력을 거느리고, 사람들을 치워서 길을 피하게 하여, 그 위력은 봉건시대의 다이묘(大名)보다도 기세등등한 것이다. 그런데 그 위력의 근원을 찾으면, 종교의 위력이 아니고, 다만 정부의 위력을 차용한 것이어서, 결국 속세 권력 중의 한 부분이었음에 지나지 않는다. 불교가 번성했다할지라도, 그 종교는 모두 정권의 한 가운데 포함되어, 사방 온 누리에 보편적으로 비추는 것은, 불교의 밝은 빛이 아니고, 정권의 위력인 것 같다. 사원에서 독립적인 종교가 없는 것도 역시 괴이할 것이 없고, 그 종교에 귀의하는 무리에 종교를 믿는 본심이 없는 것도 역시 놀랄 것이 못된다. 그 한 가지 증거를 들면, 옛날부터 일본에서는 종교적 교설만을 위한 전쟁에 이르는 것이 극히 드문 것을 보아도, 역시 신앙인의 나약함을 살펴 알 수 있다. 이 종교에 있어서 신앙심이 귀의하는 외양에 드러나는 바는, 무지하고 배우지 못한 촌농부와 촌노파가 눈물을 흘리며 우는 경우가 있는 것에 불과하다. 이 상황을 보면, 불법(仏法)은 다만 이 문맹세계의 한 가지 도구이어서, 매우 어리석고 매우 누추한 사람의 마음을 완화하는 수단일 뿐, 기타에서는 하등의 효용도 없고, 또 하등의 세력도 있을 일이 없다. 그 세력이 매우 없음은, 도쿠가와(徳川) 시대에, 파계승이라 하여, 세속적인 죄를 범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종파 위의 계율을 어긴 자이기 때문에, 정부로부터 직접 그를 체포하여, 시중에 끌고 다니고 귀양을 보내는 사례가 있다. 이와 같은 것은 곧 승려가 정부의 노예라고 할 수 있다. 요즘에 이르러서는 정부로부터 전국의 승려에게 육식과 대처(妻帯)를 허락하는 명령이 내렸다. 그 명령의 의하면, 종래의 승려가 고기를 먹지 않고 부녀자를 가까이 하지 않은 것은 그 종교의 취지를 지키기 위함이 아니어서, 정부의 허락이 없기 때문에 노력하여 스스로 금지한 것이리라. 이런 것들의 내용을 보면, 승려는 비단 정부의 노예뿐만 아니라, 일본 안에 이미 종교가 없다고도 할 수 있다. (종교 권리가 없다)

   종교는 여전히 또 그러하다. 하물며 유교의 학문에 있어서야. 우리나라에 유교서적이 전해진 것은 이미 오래다. 왕조시대에 박사를 두고, 천황이 스스로 중국서적을 읽고, 사가(嵯峨) 천황의 시대에 대납언(大納言) 후유츠구(冬嗣), 간가쿠인(勧学院: 권학원)을 세워 일족의 자제를 가르치고, 우다(宇多) 천황 시절에는 중납언(中納言) 유키하라(行平), 쇼가쿠인(奨学院: 장학원)을 건설하는 등, 한학도 점차 열리고, 특히 와카(和歌: 일본의 시) 교육은 옛날부터 성행한 일이 있어도, 모두 이 시대의 학문은 다만 재위 천황의 자제에게 미칠 뿐이어서, 저서라 할지라도 모두 관청의 손에 이루어진 것이다. 본래 인쇄술도 아직 발명되지 않아서, 민간에서 교육에 다다를 수 있는 수단이 있을 수 없다. 가마쿠라(鎌倉) 시대에 오에노 히로모토(大江広元), 미요시 야스노부(三善康信) , 유학으로써 등용되었다 해도, 이것 역시 정부에 속한 자들이어서, 백성들 사이에 학자가 있음을 듣지 못한다. 죠큐(承久) 3년 호조 야스토키(北条泰), 우지세타(宇治勢多)에 침입했을 때, 고토바(後鳥羽) 상황(上皇)으로부터 어명이 와서, 병졸 5000여명 안에서부터 이 어명을 읽을 수 있는 자를 찾는 데, 무사시노(武蔵) 국의 주민 후지타 사부로(藤田三郎)라는 자 한 사람을 얻었다고 한다. 세상이 문맹인 것을 이로써 알 수 있다. 이로부터 아시카가(足利) 말기에 이르기까지, 문학은 온전히 승려의 몫이 되어, 글자를 배우고자하는 자는 반드시 절에 의지하지 않으면 그 수단을 얻지 못한다. 후세 글자를 배우는 학생을 칭하여 데라코(寺子: 절 아이)라고 하는 것도 그 이유가 있다. 혹자의 주장에, 일본에 목판본이 생긴 것은 가마쿠라(鎌倉)5(五山)을 시작으로 한다고 했다. 과연 믿을 것인가? 도쿠가와(徳川) 초기에 그 시조 이에야스(家康), 우두머리로서 후지와라 세이카(藤原惺窩)를 중용하고, 다음에 하야시 도슌(林道春)을 등용하고, 평화가 지속됨에 따라 대유학자를 배출, 그로써 근세에 이른 것이다. 이와 같이 학문의 성쇠는 세상의 치세와 난세라는 행보를 함께하여, 독립적인 지위를 차지하는 일이 없고, 수 십 백년 전쟁과 소란의 사이, 완전히 이것을 승려의 손에 맡긴 것은, 학문의 불명예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한 가지 사건을 보고도 유교는 불교에 미치지 못함을 알 수 있다. 그렇다할지라도 전쟁에 즈음하여 학문이 쇠미함은 유독 일본뿐이 아니고, 세계의 모든 국가가 그렇지 않음이 없다. 유럽에 있어서도 중세 암흑시대부터 봉건시대에 이르기까지는, 문자에 관한 권한, 전적으로 승려에게 귀속되어, 세간에서 점차 학문이 피어난 것은 실제로 1600년대 이후의 일이다. 또 동양과 서양의 학풍이 그 내용을 달리하여, 서양 여러 나라는 실험에 대한 주장을 주로 하고, 우리 일본은 공자와 맹자의 이론을 좋아하여, 허실의 차이, 동시에 말할 수 있음이 아니라도, 역시 일률적으로 그것을 나무랄 수 없다. 아무튼 우리 국민을 야만의 단계에서 구하여 오늘날의 문명에 이르도록 한 것은, 불교와 유교의 덕택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근세에 유교가 번성함에 이르러, 세속에 유행하는 신불(神佛)을 믿는 부류의 거짓말과 망설을 배척하여 사람 마음의 현혹을 불식시킴과 같은 것은, 그 공로가 매우 적지 않다. 이 한편에서 보면 유교도 역시 유력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제 동양과 서양 학풍의 득실을 잠깐 제쳐두고, 다만 그 학문이 유행한 사정에 관하여, 두드러진 두 가지 양상의 차이를 내걸어 여기서 제시할 따름. 생각건대 그 차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난세가 지나고, 학문이 일어남을 맞아, 이 학문이라는 것, 서양 여러 나라에 있어서는 국민 모두 사이에서 일어나고, 우리 일본에서는 정부 안에서 일어나는 한 가지 사건이다. 서양 여러 나라의 학문은 학자가 하는 일이어서, 그 실행하는 것이야 관민의 구별이 없고, 다만 학자의 세계에 있다. 우리나라의 학문은 소위 다스리는 자의 세계에 속하는 학문이어서, 흡사 정부의 한 부분임에 지나지 않는다. 시험적으로 보자, 도쿠가와(徳川)의 치세 250년간, 국내에서 학교라고 칭하는 것은, 처음 정부의 설립이 아니면 여러 번()의 것이다. 혹은 유명한 학자가 없지 않고, 혹은 많은 저술이 없지 않아도, 그 학자는 반드시 다른 사람의 하인이고 그 저서는 반드시 관청의 발간이다. 혹은 떠돌이 낭인(浪人)에서 학자도 있을 것이고, 개인적인 장판(蔵版: 소장본)도 있으리라고 할지라도, 그 낭인(浪人)은 하인이 되는 것을 바라서 이루지 못한 것이고, 그 개인적인 장판(蔵版: 소장본)도 관청 판본이기를 바라서 적합하지 않은 것이다. 국내 학자의 결사가 있음을 듣지 못하고, 논문과 신문 등의 출판이 있음을 듣지 못하고, 기예를 가르치는 교습소를 보지 못하고, 여러 사람이 회의를 여는 곳을 보지 못하고, 전체 학문에 관한 일에 대해서는 조금도 사사로이 기획하는 것이 없다. 간혹 석학과 대유학자가, 사숙(私塾)을 열어 사람을 가르치는 자가 있으면, 그 학생은 반드시 무사에 한하여, 세습봉록을 먹고 군주를 섬기는 여가 시간에 글자를 배우는 자일 뿐. 그 배움의 흐름도 역시 다스리는 자의 명분에 어긋나지 않아서, 오로지 사람을 다스리는 길을 구하여, 수 천 백 권의 책을 독파함도, 벼슬길에 오르지 않으면 소용이 없는 것과 같다. 혹은 드물게 은둔군자라고 칭하는 선생이 있어도, 사실은 마음에 만족하여 숨은 것이 아니고, 몰래 불우함을 탄식하여 다른 사람을 원망하는 자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세상을 잊고 방심한 자이다. 그 내용을 표현하여 말하면, 일본의 학자는 정부라고 칭하는 새장 속에 갇혀, 이 새장으로써 자기가 하늘과 땅으로 삼고, 이 작은 하늘과 땅 속에서 번민하는 자라고 할 수 있다. 다행히도 세상 한 가운데 중국의 유교 교육이 멀리 퍼지지 않아서 배우는 자가 많지 않은 것이 축하할 가치가 있고, 만약 선생의 생각대로 무수한 학생을 낳는 일이 생기면, 좁은 새장 속에 혼잡하여, 몸을 수용할 수 있는 좌석도 없어서, 원망은 더욱 많고, 번민은 더욱 심하지 않을 수 없다. 불쌍하기가 짝이 없는 상황이 아닌가? 이와 같이 제한된 새장 안에 한없는 학생을 낳아, 새장 바깥에 인간세상이 있음을 알지 못하는 자이기에, 자신의 지위를 만드는 방도를 이해하지 못한다. 오로지 그 시대의 권력자에게 의지하여, 어떤 경멸을 받아도 전혀 부끄러움을 모른다. 도쿠가와(徳川) 시대에 학자의 뜻을 얻은 자는 정부와 여러 번()의 유교로 등용된 관리(儒官: 유관)이다. 이름은 유관(儒官)이라고 부른다할지라도, 사실은 긴 소매 옷을 입은 신분(長袖身分)이라 하여, 그들을 존경하지 않고, 다만 일종의 수단과 같이 다루어, 또 본인이 좋아하는 것인 정치적인 사무에서도 참가하게 하지 않고, 겨우 다섯 말의 쌀을 주어 소년들에게 독서교육을 하게 할뿐. 글을 아는 자가 드문 세상이기에, 다만 그 부자유를 보충하기 위하여 이용하기까지 하는 일이어서, 이것을 비유하면 가죽세공에 한하여 에타(穢多: 쇠백정)에게 지시하는 것과 같다. 비굴과 비천의 극한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무리를 향해 또 무엇을 바랄 것이며, 또 무엇을 비난하리? 그 패거리 안에 독립적인 결사가 없는 것은 수상한 일이 아니고, 일정한 논의가 없는 것도 역시 놀랄 일이 아니다. 그뿐만 아니라, 정부의 전제가 충분히 사람을 속박한다고 하여, 조금 기개가 있는 유학자는 자칫하면 그것을 향해 불평을 품는 자가 없지 않다. 그렇다할지라도 잘 그 근본을 찾으면, 그 사람 스스로 씨앗을 뿌려 그것을 배양하여, 그 묘목이 무성하기 때문에 오히려 스스로 비난을 받는 것이다. 정부의 전제, 이것을 가르치는 자가 누구인가? 설령 정부 본래의 특성에 전제라는 요소가 있어도, 그 요소의 발생을 도와서 그것을 윤색하는 자는 중국에 관한 유교학자 무리의 학문이 아닌가? 옛날부터 일본의 유교학자에게서 매우 재주가 있어 매우 잘 일을 처리하는 인물이라고 칭하는 자는, 매우 전제를 잘하여 매우 잘 정부에 등용된 자이다. 이 단계에 이르러서는 중국의 유교는 스승이고 정부는 제자라고 하는 것도 가능하다. 불쌍하게도, 지금 일본 국민, 누가 사람의 자손이 아니랴? 현재 세상에 있어 전제를 행하고, 또 그 전제에 괴로움을 당하는 것은, 오로지 이것을 현대인의 죄로 돌릴 수 없고, 멀리 그 선조에게 받은 유전적인 독소가 그렇게 만든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이 병적인 독소의 득세를 도운 자가 누구인가, 중국 유교의 선생도 역시 책임이 있고 크게 힘을 쓴 것이다. (학문에 권리가 없고 오히려 세상의 전제를 돕다)

 

                                                   - 후쿠자와 유키치, “문명론의 개략중에서 -

 

 

 宗教人心内部くものにて自由最独立して制御けず依頼せずしてなるに我日本てはらず元来我国宗旨神仏両道なりとあれども神道宗旨さず仮令往古其説あるも仏法籠絡せられて数百年間本色はすを近日しく神道くがくなれども政府変革王室余光々たる運動さんとするのみにて唯一時偶然なれば余輩所見にてはりたる宗旨らず古来日本はれて文明一局きたる宗旨唯一仏法あるのみるに此仏法初生より治者其力依頼せざるなし古来名僧智識する入唐して自国新教教化るものしとども大概皆天子将軍等眷顧徼倖げうかう其余光りてめんとするのみしきは政府より爵位けてとするにれり僧侶僧正僧都等せらるゝの延喜式僧都以上三位ずと後醍醐天皇建武二年宣旨には大僧正二位大納言僧正二位中納言権僧正三位参議ずとあり釈家官班記)。此趣れば当時名僧智識天朝官位其位朝廷群臣上下一席内外栄辱したることならんがため日本宗旨には古今其宗教はあれども自立宗政なるものあるをかず尚其実証んとせば今日にても国中有名寺院其由来記聖武天皇天平年中日本毎国国分寺桓武天皇延暦七年には伝教大師比叡山根本中堂てゝ王城鬼門嵯峨天皇弘仁七年には弘法大師高野山より印符はりて其大伽籃建立したり他南都諸山京都諸寺中古には鎌倉五山近世には上野東叡山増上寺等れも皆政府らざるものなし其他歴代天子自から親王たる白河天皇八男ありて六人たりしと是亦宗教たる源因なり一向宗自立きものなれどもこのかれず足利大永元年実如上人天子即位其賞として永世准門跡とて法親王ずるのはりたることあり王室衰微貧困ふて有余するは僧侶身分としてのことなれども其実らず西三条入道媒酌官位たるものなり鄙劣古来日本国中大寺院するものは天子皇后勅願所ざれば将軍執権建立なりして御用はざるを其寺由来けば御朱印何百石住職格式々とて其状恰々の士族自分家柄るにならず一聞以厭悪えんを門前には下馬札れば儻勢召連けしめ其威力封建大名よりもなるものありして其威力れば宗教威力唯政府威力借用したるものにして結局俗権中一部分たるにぎず仏教盛なりとども其教悉皆政権摂取せられて十方世界らすものは仏教光明ずして政権威光なるが寺院自立宗政なきも亦怪むにらず其教帰依する信教本心なきも亦驚くにらず其一証れば古来日本にて宗旨のみの戦争びしことのなるをみても亦以信教者懦弱其教信心帰依はれたる無智無学田夫野嫗れてくものあるにぎず此有様れば仏法唯是文盲世界一器械にして最愚最陋人心緩和するの方便たるのみ其他には何等功用もなく又何等勢力もあることなし其勢力なきのしきは徳川時代破戒とて世俗すに唯宗門上あれば政府より市中して流刑するのありきは僧侶政府奴隷ふもなり近日ては政府より全国僧侶肉食妻帯すのあり此令れば従来僧侶はず婦人づけざりしは其宗教るがためにはずして政府免許なきがためにめてからじたることならん是等れば僧侶政府奴隷のみならず日本国中既宗教なしとふもなり。(宗教権なし

 宗教尚且然儒道学問てをや我国儒書へたるは日既王代博士天子自から漢書嵯峨天皇大納言冬嗣勧学院てゝ宗族子弟宇多天皇には中納言行平奨学院漢学次第和歌よりなりしことなれども此時代学問唯在位子弟ぶのみにて著述ども悉皆官りしものなりより印書発明あらざれば民間教育方便あるらず鎌倉大江広元三善康信等登用せられたれども此亦政府したるものにて人民学者あるをかず承久三年北条泰時宇治勢多攻入たるとき後鳥羽上皇より宣旨来従兵五千余人より此宣旨読をとねしに武蔵国住人藤田三郎なる者一人たりと世間不文なることこれより足利るまで文学僧侶ばんとするらざれば其方便後世習字生徒寺子ふも其因縁なり或人日本版本出来たるは鎌倉五山とすとへりしてならん徳川其始祖家康として藤原惺窩林道春太平持続するに碩儒輩出近世びしことなり学問盛衰治乱にして独立地位ることなく数十百年干戈騒乱僧侶したるは学問不面目はざるを此一事てもばざることりとども兵乱学問衰微するは我日本のみに世界万国皆然らざるはなし欧羅巴ても中古暗黒より封建るまでは文字僧侶して世間学問けたるは千六百年代以降のことなり又東西学風其趣にして西洋諸国実験とし我日本孔孟理論虚実相違よりふしてきにざれども亦一概らず我人民野蛮今日文明らしめたるものは仏法儒学とのはざるを近世儒学なるに俗間はるゝ神仏者流虚誕妄説して人心蠱惑たるがきは其功最なからず此一方よりれば儒学亦有力のものと今東西学風得失唯其学問はれたる次第しき両様異別げてすのみ其異別とはぞや乱世学問るに此学問なるもの西洋諸国ては人民一般我日本にては政府たるの一事なり西洋諸国学問学者事業にて其行はるゝや官私なく唯学者世界我国学問所謂治者世界学問にして政府一部分たるにぎず徳川治世二百五十年国内学校するものは本政府設立ざれば諸藩のものなり有名学者なきに大部著述なきにざれども其学者家来なり其著書発兌なり浪人学者もあらん蔵版もあらんとども其浪人家来たらんことをざりしなり其私蔵版官版たらんことをふてはざりしなり国内学者社中あるをかず議論新聞等出版あるをかず技芸教場衆議会席学問てはあることなし碩学大儒家塾あれば其生徒士族世禄るの余業のみ其学亦治者名義かずしてるの数千百巻するも官途かざればさゞるが隠君子する先生あるも其実んじてするに不遇して怨望する者歟らざればれて放心したるなり其趣形容してへば日本学者政府閉込められ此篭乾坤此小乾坤煩悶するものとにして漢儒教育洽ねからずして学者からざりしこそ目出たけれ先生思通りに無数学者ずることあらば混雑もなくして怨望益多煩悶益甚しからざるを毒千万なる有様ずやあるなき学者人間世界のあるをらざるなれば自分地位るの方便只管其時代有権者依頼して何等軽蔑るもるをらず徳川時代学者たる政府諸藩儒官なり儒官ふとども其実長袖身分とてぶに唯一種器械くにして当人好物なる政治上事務にもらしめず五斗米へて少年読書けしむるのみなるなれば唯其不自由ふがためにひたるまでのことにてへば革細工りて穢多ずるが卑屈賎劣此輩又何をかめん又何をかめん其党与独立社中なきもむにらず一定議論なきも亦驚くにらざるなり加之政府専制よく束縛すとしく気力ある儒者もすれば不平なきにりとどもよく其本れば夫子自から培養其苗蔓延するがためにからめらるゝものなり政府専制これをぞや仮令政府本来性質専制元素あるも其元素発生けて潤色するものは漢儒者流学問ずや古来日本儒者にて才力してもよくしたる人物する専制にしてもよく政府ひられたるなり此一段ては漢儒にして政府門人ふもなり日本人民子孫ざらん専制又其専制めらるゝものは今人らず其祖先けたる遺伝毒らしむるものとはざるをして此病毒けたるぞや漢儒先生亦預あるものなり。(学問なくして専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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