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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항쟁은 일본에서 상상 불가능하다/ 소메이 준조/ 한겨레신문

이윤진이카루스 2015. 6. 8. 09:51

사회사회일반

“6월항쟁 지켜본 감동이 ‘한국’과 ‘한겨레’ 사랑으로”

등록 :2015-06-07 19:07수정 :2015-06-07 21:07

 

[짬] ‘한겨레 일본어판’ 번역 자원봉사 소메이 준조

“일본에서도 <한겨레>가 있어야 합니다. 일본 사람들이 한국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합니다.”

일본 사람 소메이 준조(64)는 4일 한겨레신문사에서 감사패를 받은 뒤 이렇게 말하며 환하게 웃었다. 그는 2008년부터 <한겨레> 기사와 콘텐츠를 번역·편집해 인터넷에 올리는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그는 지난해 9월부터 ‘한겨레 일본어판’(japan.hani.co.kr) 뉴스가 포털 사이트 ‘야후 재팬’에 서비스되는데 큰 기여를 했다. 한겨레 일본어판은 독도, 위안부,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등 한일 관계를 다룬 콘텐츠가 많다. 페이지뷰(누리꾼이 인터넷에 접속해 특정 페이지를 열어 본 횟수)는 매월 500만~700만에 이른다.

1987년 6월 가족여행중 ‘민주화’ 충격
철강회사 IT분야 전문 ‘철의 노동자’
2004년 사표내고 7년간 서울 생활

2008년 팬클럽 ‘한겨레 사랑방’ 개설
지난해 ‘야후 재팬’ 서비스 연결에 기여
“일본인들 한국 제대로 알기에 필수”

소메이 준조 씨는 한겨레 기사를 일본어로 번역하는 자원봉사를 하고있다.
소메이 준조 씨는 한겨레 기사를 일본어로 번역하는 자원봉사를 하고있다.
“조·중·동 같은 보수언론은 이미 일본 포털 사이트를 통해서 뉴스를 서비스하고 있었지만 지난해 8월까지 한겨레는 없었어요. 그러다 보니 일본 사람들은 일방적으로 한국의 우파 목소리만 전해 들었습니다. 한겨레가 포털 사이트에 뉴스를 제공하면서 많은 일본 사람들이 한국 안의 다른 목소리를 듣게 됐습니다. 한국을 좀 더 균형 잡힌 시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현재 일본 나가노현 마츠모토시에 살고 있는 소메이는 매일 오후 8~12시에 한겨레 기사 4~6개씩을 일본어로 번역한다. 요즘엔 다른 일본인 자원봉사자들과 계약직 번역자, 카피에디터 등과 함께 나눠서 일을 하고 있지만, 지난해까지만 해도 혼자서 하루 10여개씩을 번역을 하는 강행군을 혼자서 감당하기도 했다.

“한겨레 뉴스를 야후 재팬에서 서비스한 뒤 올라온 댓글을 보면 ‘정부가 잘못한 것을 비판하는 흔치 않은 언론’ ‘정부를 이렇게 비판해도 살아남을 수 있나’ ‘일본 <아사히신문> 같다’는 내용이 많습니다. 한겨레 뉴스는 일본 시민뿐만 아니라 언론사 기자들도 많이 보고 있습니다.”

소메이와 한국의 인연은 1987년 6월항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른여섯살이던 그때, 그는 아내·딸·아들과 한국으로 여행을 왔다. 서울 명동과 남대문시장 등을 구경하다 시위대와 마주쳤다. “민주화를 요구하는 거대한 함성은 저에게 큰 감동이었습니다. 거리의 수많은 시민들이 시위대를 응원했는데, 일본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장면이었습니다.”

정영무(오른쪽) 한겨레신문사 대표이사는 4일 오후 서울 마포구 본사 사장실에서 2008년부터 ‘한겨레 온라인 일본어판’에서 번역 자원봉사를 해온 소메이 준조(왼쪽)씨에게 감사패를 전달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정영무(오른쪽) 한겨레신문사 대표이사는 4일 오후 서울 마포구 본사 사장실에서 2008년부터 ‘한겨레 온라인 일본어판’에서 번역 자원봉사를 해온 소메이 준조(왼쪽)씨에게 감사패를 전달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그 기억이 얼마나 강렬했던지, 일본으로 돌아온 뒤 그는 한국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2004년 12월 소메이는 회사에 사직서를 냈다. 한달 뒤인 2005년 1월2일 한국을 다시 찾았다. 그 뒤 그는 고려대 한국어학당에서 한국어 공부를 했고, 지난해에는 성공회대 사회학과 석사과정을 마치는 등 서울 사람으로 살다가, 지난해 9월 나가노현에 정착해 살고 있다. ‘일본에서 어떤 일을 했느냐’고 묻자 그는 “‘철의 노동자’였습니다”라고 말하며 ‘하하하’ 웃었다. ‘민주노조 깃발 아래~’로 시작하는 가수 안치환의 민중가요 ‘철의 노동자’를 일본 사람인 그가 알고 있었다. 농담이 아니었다. 그는 일본 철강회사의 정보기술(IT) 분야에서 일했다.

한국 생활 3년 만인 2008년 11월 쇼메이는 한겨레 팬클럽인 ‘한겨레 사랑방’(blog.livedoor.jp/hangyoreh/) 블로그를 열었다. 뜻을 같이하는 일본인 자원봉사자 10여명과 함께 한겨레 기사를 일본어로 변역해 올리기 시작한 것이다. 한겨레 사랑방은 2012년 10월 확대개편된 한겨레 일본어판 사이트의 초석이 됐다.

한겨레의 콘텐츠를 일본어로 번역할 때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일까? “지명, 이름의 한자를 찾는 게 어려워요. 같은 단어지만 역사와 문화적인 차이로 서로 다르게 쓰이는 것도 많아요. 예를 들면 ‘친일파’라는 단어는 ‘친미파’처럼 그 나라를 좋아하는 사람이잖아요. 하지만 한국에서 쓰이는 ‘친일파’에는 역사가 들어가 있잖아요. 그래서 친일파 대신 ‘친일에 부역한 사람’과 같이 풀어쓰는 사례가 많아요.”

올해는 한국과 일본이 국교를 정상화한지 50돌을 맞지만, 최근 한일관계는 최악으로 악화되고 있다. 아베 일본 총리의 우경화도 심해지고 있다. 이에 대한 소메이의 생각은 무엇일까? “일본이 경제적으로 힘들어지니까 더욱 우경화되고 있습니다. 아베가 등장한 것도 먹고 살기 힘들어서입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에서도 비정규직이 늘어나고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습니다. 이런 내부의 불만을 외부로 돌리기 위해서 우경화 정책이 심화되는 겁니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사진 김명진 기자 ittleprinc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