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를 위하여

눈먼 자들의 국가/ 한겨레신문

이윤진이카루스 2015. 6. 18. 07:08

사설.칼럼칼럼

[편집국에서] 눈먼 자들의 국가 / 박민희

등록 :2015-06-17 18:35수정 :2015-06-18 01:10

 

어느 날 건널목에서 차를 멈추고 신호를 기다리고 있던 한 남자의 눈이 갑자기 보이지 않게 된다. 이유 없는 실명은 곧 전염병처럼 번져 나간다. 정치인들은 아무런 대책도 준비도 없이 눈먼 자들을 수용소에 격리하도록 명령을 내린다. 곧 눈먼 사람들로 가득 차게 된 수용소는 굶주림과 폭력, 절망으로 가득한 지옥이 된다. 얼마 뒤 수용소 밖 사람들도 모두 눈이 먼 채 거리를 헤매게 된다.

포르투갈 작가 조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를 지금 꺼내 읽는 것은 더욱 슬프고 섬뜩하다. 소설은 우리가 보지 않으려 하고 있을 뿐 세상이 온갖 억압과 폭력, 부도덕과 부조리로 가득 차 있음을 보여준다. “나는 우리가 처음부터 눈이 멀었고, 지금도 눈이 멀었다고 생각해요… 볼 수는 있지만 보지는 않는 눈먼 사람들이라는 거죠.” 주인공의 말을 빌려, 이제는 눈을 똑바로 뜨고 현실의 참혹함을 직시하라고 한다.

인터넷을 뒤적이다 많은 이들이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에 답답해하며 이 소설을 읽고, 글을 올리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메르스에 걸릴까 두려운 것이 아니라 나는 이 사회가 두렵다. 사람들 귀를 가리고 눈을 가리고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 이 곳이… 가라앉는 배의 객실에서 나오면 안된다고 안내방송을 하던 세월호 선원들과 지금의 정부 하는 일이 뭐가 다른가.”(6월2일 싸이월드에 네티즌이 올린 글)

메르스 사태는 지도자의 무능력, 정부의 기능 마비 현실을 너무나 공포스럽게 보여줬다. 초동대처에 실패해 온 나라에 메르스를 확산시키고도 처음 내놓은 조처가 사회불안 조장하는 루머를 퍼뜨린 자를 수사하겠다는 것이었다. 병원 공개를 거부하고, 국민들이 근거 없이 불안해한다고 꾸짖었다. 사태 한달이 다 되도록 우왕좌왕하는 정부가 국민의 안전과 일상을 파괴하고 있다.

지지율이 급락하자 뒤늦게 대통령이 병원과 시장에 모습을 내민 그날 청와대 대변인은 ‘시민들이 대통령 힘내세요 등을 외치며 몰려드는 등 대통령의 인기가 높아 경호원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경호에 애를 먹었다’는 브리핑 자료를 발표했다. 봉건시대 <용비어천가>인가, 연예인을 홍보하는 연예기획사의 보도자료인가. 박근혜 대통령은 보수 언론과 조직들의 비호 속에 선거에서는 연전연승했다. 그러나 선거로 천하를 얻을 수는 있어도 후광과 동정에 기댄 선거 능력만으로 천하를 다스릴 수는 없다.

지난해 12명의 작가가 세월호 사건에 대해 써내려간 글들을 모은 책 제목이 <눈먼 자들의 국가>(문학동네)였음을 새삼 깨닫는다. 박민규 작가는 “세월호 참사는 선박이 침몰한 ‘사고’이자 국가가 국민을 구조하지 않은 ‘사건’이다. … 이것은 마지막 기회다.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우리는 눈을 떠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는 그때 제대로 눈뜨고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정부는 경제를 살리기 위해 적당히 덮자며, 진실을 밝히려는 이들을 경제를 죽이려는 이들로 몰아붙였다.

이제 무능정부가 초래한 경제 초토화의 풍경은 살벌하다. 중국인 관광객들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택시를 타도, 식당에 가도, 옷가게에 가도 “손님이 너무 없어 너무 힘들다” “이번 사태는 끝이 보이지 않아 더 무섭다”는 탄식뿐이다.

박민희 국제부장
박민희 국제부장
메르스는 이제 눈을 뜨라고, 더 이상 이 길로는 갈 수 없다고 우리를 깨우고 있다. 국가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시민이 어떻게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 나가야 할지도 묻고 있다. 정부의 책임을 반드시 따져 묻자. 나아가 서로의 삶에 더 관심을 기울이고 연대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실천 가능한 방안들을 찾아야 한다.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희망은 격리된 이들이 힘을 모아 진정한 공동체를 이룰 때 찾아온다.

박민희 국제부장 minggu@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