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안과 수술실 현장/ 한겨레신문

이윤진이카루스 2015. 6. 28. 05:42

과학과학일반

튜브가 눈 속으로…상상만큼 끔찍하진 않았네

등록 :2015-06-26 19:31수정 :2015-06-26 19:45

 

안과 전문의 권현석 원장이 백내장 환자의 인공 수정체 치환 수술을 하고 있다. 눈에서 렌즈의 구실을 하는 수정체가 혼탁해져 빛을 투과시키지 못해 ‘백색 어둠’ 속에 갇히는 것이 백내장이다. 이은희 제공
안과 전문의 권현석 원장이 백내장 환자의 인공 수정체 치환 수술을 하고 있다. 눈에서 렌즈의 구실을 하는 수정체가 혼탁해져 빛을 투과시키지 못해 ‘백색 어둠’ 속에 갇히는 것이 백내장이다. 이은희 제공
[토요판] 하리하라 눈을 보다
(21) 안과 수술실 현장
사람들의 취향은 제각각이므로, 아마 세상 모든 이들에게 ‘좋아요’를 받을 수 있는 건 극히 드물다. 세상 모르게 잠이 든 귀여운 아기의 얼굴 정도? 오히려 모든 이들의 엄지손가락을 격렬하게 땅으로 향하게 만드는 게 더 쉬울지도 모른다. 손톱으로 칠판 긁는 소리처럼 말이다. 상상만 해도 피부가 근질근질해지고 속이 메스꺼워지니 이 소리가 지닌 비호감의 위력은 강력하다. 이 소리를 싫어하는 것은 전세계인의 공통점인 모양이다. 오죽하면 미국 밴더빌트대의 심리학자 랜돌프 블레이크 교수가 ‘손톱으로 칠판을 긁는 소리는 영장류의 공포에 찬 비명소리와 동일하기 때문에 본능적 공포를 불러일으킨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을까. 블레이크 교수는 이 연구 결과로 미국 하버드대의 유머 과학잡지인 <별난 연구 연보>(AIR: Annals of Improbable Research)가 매년 수여하는 이그노벨상의 2006년 수상자로 선정된 바 있다. 연구자들이 기쁨에 겨워(?) 수상 기념 세리머니로 손톱으로 칠판을 긁는 퍼포먼스 따위는 하지 않았길 빈다.

수술실에서 하이힐이 필요할 줄이야

그런 원초적인 공포는 또 있다. 감을 수 없도록 억지로 벌려진 눈과 그 앞으로 서서히 다가오는 뾰족한 물체 같은 것. 눈은 우리 몸에서 거의 유일하게 피부나 점막으로 덮여 있지 않은 채 노출된 신경조직이다. 게다가 이 모든 상황을 처음부터 끝까지 두눈 부릅뜨고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 더 절망적이다. 다가오는 위험을 피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두 눈을 질끈 감고 외면할 수조차 없다는 것이 공포감을 배가시킨다. 살면서 절대로 마주하고 싶지 않은 순간이지만, 또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바로 안과병원 수술실에서다.

몇 개의 문을 지나 닫힌 공간에 들어섰다. 옷 위로 전신을 덮는 푸른색 수술복을 입고, 머리에는 부직포로 만들어진 헤드 커버를 쓰고 머리카락이 나오지 않도록 꼼꼼히 집어넣었다. 그 위에 다시 마스크를 쓰고 노란 외과용 고무장갑을 끼니 내 몸에서 드러난 곳은 두 눈뿐이다. 답답했지만 꼭 필요한 조처였다. 지금 이곳은 안과병원의 수술실 앞. 안과 수술을 참관할 수 있는 기회를 얻어 기다리는 중이다. 유리창 너머로 나처럼 온몸을 가린 채 수술 전 준비를 하느라 분주한 간호사와 수술을 위해 대기하고 있는 환자의 모습이 보인다. 잠시 숨을 골랐다. 이제 저 수술실 안에서 나는 ‘착한 유령’처럼 존재해야 한다. 모든 것을 볼 수는 있지만, 아무것도 만져서는 안 된다. 보고 싶은 것을 보기 위해 움직일 수는 있지만, 의료진의 움직임을 절대로 방해해서는 안 된다.

준비를 마치고 잠시 기다리자 의사가 들어왔다. 안과 전문의 권현석(45) 원장은 익숙한 솜씨로 사전 준비를 마치고 수술실로 들어섰다. 나도 그 뒤를 따라 들어가 가능한 한 ‘유령처럼’ 자리를 잡았다. 환자의 얼굴에는 소독된 면포가 덮여 있었고, 한쪽 눈 부위만 구멍이 뚫려 있었다. 수술 도중에 눈을 감지 못하도록 기계로 고정된 눈은 평소보다 훨씬 더 크게 뜨여 있었지만, 정작 환자는 아무것도 볼 수 없다. 시력교정을 위한 안과 수술은 안약을 이용해 부분 마취로 이루어지기에 환자가 의식을 잃은 것은 아니었다. 멀쩡한 정신으로 눈을 활짝 뜨고 있지만, 정작 눈에 직접적으로 비치는 밝은 빛 때문에 오히려 눈이 부셔 아무것도 볼 수 없는 것이다. 의사의 시야를 밝게 하기 위해 비춘 빛이 환자 입장에서는 세상을 덮어버리는 ‘밝은 어둠’이 되어버린 셈이다.

환자의 이름을 확인하고, 환자에게 이후에 있을 과정에 대해 잠시 설명한 뒤, 의사는 환자를 위해 짤막한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수술이 무사히 끝나고 환자가 건강이 회복되기를 신께 기원하는 것이었다. 현대의학의 총아인 첨단 수술 장비들이 그득한 수술실에서 울리는 기도 소리라니. 어울리지 않으면서도 기묘한 안정감이 흘렀다. 첨단 장비들이 물리적인 수술의 성공을 위한 것이라면, 의사가 직접 들려주는 기도는 긴장하고 불안한 환자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위로의 목소리였다. 기도를 마친 의사가 수술용 현미경 접안렌즈에 눈을 대며 본격적으로 수술이 시작되었다. 나 역시도 재빨리 옆쪽에 있는 또다른 접안렌즈를 들여다보았다. 의사가 지금 보고 있는 시야가 내 눈 속에도 들어왔다. 동일한 대상을 서로 다른 접안렌즈로 들여다보며 시야를 겹치는 것은 마치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기분이 들었다. 영화 <존 말코비치 되기>에서 등장한 우연히 이상한 통로에 들어갔다가 존 말코비치의 시야 속으로 다이빙해버린 존 큐색의 느낌처럼 말이다. 현실의 내게 있어 유일한 문제는 접안렌즈의 위치가 높아 수술 시간 내내 발뒤꿈치를 들고 있어서 쥐가 날 것 같았다는 것뿐. 수술실에서 하이힐이 필요할지는 정말 몰랐다.

접안렌즈 너머로 익숙한 노란 불빛과 낯선 장면이 떠올랐다. 현미경을 보는 데는 익숙하지만 우글우글거리는 세포의 집단이 아니라 커다랗게 뜨여서 불안함이 가득 느껴지는 누군가의 눈을 보는 건 처음이다. 오늘의 수술은 백내장 치료를 위한 인공 수정체 치환술이었다. 앞선 칼럼에서 언급했듯이 눈에서 렌즈의 역할을 하는 수정체가 어떤 이유로든 혼탁해져 빛을 투과시키지 못해 ‘백색 어둠’ 속에 갇히는 것이 백내장이다. 과거에는 꼼짝없이 이 상태로 살아야 했지만, 이제는 혼탁해진 수정체를 제거하고 인공 수정체를 삽입하는 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수정체는 각막 뒤에 있고, 세상 모든 만물은 원격이동(텔레포테이션)이 불가능하므로, 수정체를 제거하려면 각막을 절개해야 한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그럼 수정체 크기로 각막을 절개해야 하는 건가? 눈 표면으로 칼날이 지나간다는 상상만으로도 등줄기가 간지러운 느낌이 들었다.

각막에 2mm 내외 구멍 만들자
가느다란 금속제 튜브가 안으로
들어가 초음파를 발생시켜
혼탁한 수정체를 깨뜨리면서
그 조각들을 흡입해 제거했다

안과의사에게 눈은 두가지 부위
수정체 중심으로 바깥쪽 각막과
안쪽 황반 포함한 망막과 시신경
각막이야 얼마든지 교정 가능해도
망막세포 죽는 건 완전 막지 못해

‘백내장 수술의사들의 악몽’

세상에는 직접 보면 상상을 능가하는 것이 있는가 하면-대표적으로 지난번의 썩어가는 사체처럼- 상상이 더 끔찍한 것도 많다. 다행히(?)도 현미경 속에서 보여지는 장면은 후자에 속했다. 바늘처럼 작은 기구로 각막에 2㎜ 내외의 구멍을 만들자, 그 안으로 가느다란 금속제 튜브가 눈 안으로 들어갔다. 초음파 분쇄장치이자 흡입기였다. 초음파(ultrasonic)는 원래 인간의 귀로는 들을 수 없는 약 20k㎐ 이상의 주파수를 지닌 소리를 뜻하는 말이지만, 우리가 감각적으로 느끼는 ‘소리’와는 다르게 이용된다. 기본적으로 음파의 진동수가 커지면 파장이 짧아지고 에너지도 강해진다. 이때의 에너지는 생각보다 커서 초음파를 아주 좁은 점에 집중시키면 단단한 고체도 깨뜨릴 수 있다. 몸속에 생기는 ‘돌’인 담석이나 요로결석을 개복수술을 하지 않고서도 외부에서 깨뜨려 부술 수 있는 것 역시도 초음파가 가진 숨은 힘 때문이다. 백내장 수술에서도 마찬가지의 방법이 이용된다. 좁은 틈으로 들어간 가느다란 튜브가 초음파를 발생시켜 혼탁해진 수정체를 깨뜨리면서 동시에 부서진 수정체 조각들을 기구 끝에 달린 구멍을 통해 흡입해 제거하는 형태였다. 따라서 수정체를 제거하는 장면은 마치 둥그런 비누를 끌로 조금씩 긁어내는 과정과 비슷했다.

숙련된 손길을 따라 튜브가 몇 차례 지나가고 나니, 수정체는 곧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백내장 수술에서 수정체를 제거하는 것은 단순하고 쉬운 과정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매우 노련한 손길이 필요한 작업이었다. 이유는 수정체를 둘러싸고 있는 얇은 막 때문이다. 수정체는 눈에서 렌즈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위치가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수정체가 눈 안에서 마구 돌아다니지 않도록 가장자리를 모양체라고 하는 단단한 결합조직이 붙들고 있을 뿐 아니라, 애초에 수정체 자체가 눈 앞쪽에 위치한 일종의 주머니 속에 들어 있어 위치 이탈을 방지한다. 하지만 이 주머니는 매우 얇고 연약한 조직이라, 작은 충격에도 쉽게 찢어질 수 있다. 따라서 수정체를 제거하기 위해 사용하는 초음파 분쇄기를 1㎜만 더 움직여도 찢어질 수 있고, 그러면 그 구멍으로 수정체가 눈 안쪽으로 빠질 수 있다. 일반적으로 눈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유리체는 젊을 적에는 젤라틴처럼 점도가 높은 겔 형태를 이루고 있어서 수정체낭이 찢어지더라도 수정체가 크게 자리를 이탈하지는 않지만, 나이가 들면 노화 효과로 인해 유리체를 구성하는 히알루론산이 분해되어 물과 같은 액체 형태로 바뀌어 그야말로 ‘유리체 액체 속에 수정체가 퐁당 빠져버리는’ 대참사가 일어날 수도 있다. 그 뒤의 일은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그는 이를 일컬어 ‘백내장 수술 의사들의 악몽’이라고 표현할 정도였다.

수정체를 제거하고 나자 환자의 눈은 이전보다 훨씬 더 맑고 또렷해 보였다. 아무래도 눈 앞의 안개를 걷어낸 형국이니 맑아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일 터였다. 이제 남은 것은 원래 수정체가 있던 자리에 인공 수정체를 삽입하는 일이다. 인공 수정체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아무리 보아도 2㎜ 정도의 절개 부위로 들어갈 성싶지는 않았다. 도대체 저 작은 틈새로 저렇게 큰 인공 수정체를 어떻게 집어넣는 거지? 비법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우리는 수정체를 렌즈로 치환해서 받아들이기 때문에 ‘렌즈=유리=단단한 것’이라는 등식에 익숙하다. 하지만 인공 수정체는 탄성이 있는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져 있어 접거나 돌돌 마는 것이 가능하다. 작게 접힌 인공수정체를 좁은 틈으로 밀어넣고 가느다란 튜브 끝으로 이를 펴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각막의 절개 부위를 한 바늘 꿰매는 것으로 수술은 끝이 났다. 이제 환자는 하얀 어둠에서 벗어나 밝은 세상을 다시 보게 될 것이다.

수술 참관을 마친 뒤 진료실에서 다시 의사를 만났다. 수술복을 벗고 얼굴 전체를 마주하자 조금 다른 느낌이 들었다. 안과의사에게 눈은 어떤 의미일까? 안과의사에게 있어 눈은 두 부위로 나뉜다. 수정체를 중심으로 바깥쪽(수정체와 각막, 결막, 공막 등)과 안쪽(황반과 시세포들을 포함한 망막과 시신경) 등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수정체 바깥은 얼마든지 인간의 손이 고치고 수리하고 대치하며 교정이 가능한 곳이다. 투명함을 잃어버린 수정체는 인공 수정체로 치환하고, 각막의 두께를 조절해 시력 교정도 하고, 아예 렌즈를 각막 안에 넣기도 한다. 심지어는 각막이 망가져버린 경우에는 타인의 각막을 이식해 이어붙이는 것도 가능하고, 결막을 침투하는 미생물에 대응하는 약물들도 많이 개발되어 있어 적어도 이 부위만큼은 해볼 만한 영역이라고 한다. 하지만 안쪽은 다르다. 다양한 안과적 지식과 기술의 발전이 이루어지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까지 현대의학은 망막세포가 죽어가는 것을 완전히 막지는 못하고, 끊어진 시신경을 다시 이어서 시각 회로를 다시 완벽하게 되살리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그런 점에서 안과의사에게 눈은 도전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겸허함을 되살리게 하는 존재라고도 했다.

기술발전에도 왜 눈은 더 나빠지나

아직까지 일부 난공불락의 지점들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과거에 비해서는 빛을 지켜주는 방법들이 훨씬 더 많아진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우리가 빛을 지키는 방법을 더 많이 알면 알수록 시야는 흐릿해지고 있다. 실제로 지난 반세기 동안 사람들, 특히 젊은층의 근시 비율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중국의 경우, 30년 전에 비해 근시인 아이들의 비율이 3배 증가했으며, 눈이 좋기로 소문난 에스키모의 경우에도 1969년에는 전체의 1.5%에 불과했던 근시의 비율이 2000년대 들어서 전체의 절반 정도로 껑충 뛰어올랐다. 심지어 서울에 사는 19살 남자의 96.5%가 근시라는 연구 결과까지 있을 정도다. 수십년 동안 인간의 유전자 정보가 크게 달라졌을 리는 없을 테니 이는 분명 환경 탓이리라.

전문가들은 실제로 실내 활동의 증가가 근시의 증가에 영향을 미쳤다는 데 동의한다. 보통 아이들의 눈이 제대로 발달하기 위해서는 1만 럭스 이상의 밝기에 하루 3시간 이상 노출되어야 하는데, 1만 럭스란 맑은 날 나무 그늘 아래 들어갔을 때 느껴지는 밝기 정도다.(참고로 요즘처럼 쨍쨍한 맑은 날 양지바른 곳의 밝기는 3만에서 13만 럭스 정도 된다.) 그늘이라고 쉽게 생각하면 안 된다. 인공 조명으로는 이 정도 밝기를 만들어내기 어렵다. 티브이 촬영 시 사용되는 강한 조명조차도 밝기가 1000럭스 정도이며, 일반 가정용 전등의 경우 300~500럭스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실제 많은 환자들을 진료하는 권현석 원장도 이에 동의했다. 도시의 아이들은 안경을 쓰지 않은 아이를 찾기가 더 어려운 반면, 의료봉사의 일환으로 만난 산골 마을 아이 중에서는 안경을 써야 할 만큼 근시를 가진 아이가 거의 없었다는 경험담도 함께 들려주었다. 눈은 빛을 인식하고, 빛은 눈이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도록 만든다. 아직까지 의사가, 혹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건 이미 빛을 인식할 줄 알고 있었던 눈이 완전히 기능을 잃지 않도록 보완하는 것이지, 결코 빛이 하는 것을 대신 해줄 수는 없다. 그 사실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우리가 눈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대강의 답은 나오는 셈이다.

이은희 과학 작가
이은희 과학 작가
이은희 과학 작가

▶ 하리하라 본명 이은희. 생물학을 전공해 연구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으나, 우연히 인터넷 블로그에 썼던 글들이 <하리하라의 생물학 카페> 등 책으로 묶여 나오면서 과학언론학으로 전공을 바꾸었다. 현재는 과학작가이자 강연자로 살고 있다. ‘하리하라’라는 인터넷 아이디를 필명으로, 세상에 퍼져 있는 과학에 대한 선입견과 오해를 걷어내는 이야기를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다. <한겨레> 토요판에서 격주로 ‘인간의 눈’과 본다는 것의 의미를 탐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