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 조목조목 논한 것과 같이, 일본의 인간 교류는, 상고시대부터 통치자 부류와 피통치자 부류라는 두 가지 요소로 나뉘어, 권력의 편중을 이루어, 오늘날에 이르기까지도 그 세력이 변한 것이 없다. 백성 간에 자신의 권리와 의무를 주장하는 자가 없는 것은 본디 말할 것도 없다. 종교도 학문도 모두 통치자 부류에 안에서 농락당하여 일찍이 자립할 수 없다. 난세의 무사가 의리가 있고 용감한 것 같아도, 역시 홀로 개인적인 묘미를 모른다. 난세에서도 치세에서도, 인간 교류의 지대함에서 지극히 세밀함에 이르기까지, 편중이 이루지지 않은 곳이 없고, 또 이 편중에 의하지 않으면 일이라 하여 시행할 수 있는 것이 없다. 흡사 만 가지 병에 한 가지 약을 쓰는 것 같고, 이 한 가지 약의 효능으로써 통치자 부류의 힘을 보충하여 늘리고, 그 힘을 모아 집권자의 한 손에 귀속시키는 취향이다. 앞에서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왕조시대의 정치도 무사가문의 정치도, 호조(北条) 아시카가(足利)의 책략도 도쿠가와(徳川)의 책략도, 결코 요점을 달리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저것을 이것보다 좋다고 하고, 이것을 저것보다 나쁘다고 하는 것은, 이 편중을 이용하는 능란함과 서투름을 보고 그 득실을 판단할 따름. 능란하게 편중의 재주를 실시하여 최상의 권력을 집권자의 가문에 귀속시킬 수 있으면, 만사가 이미 이루어져 달리 또 바랄 수 있는 것이 없다. 옛날부터의 인습으로 국가(国家)라고 하는 문자가 있다. 이 가(家)라는 자는 백성의 집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고, 집권자의 가족 또는 가문의 이름이라고 하는 뜻이리라. 그러므로 나라(国)는 즉 집(家)이고, 집(家)은 곧 나라(国)이다. 심지어는 정부를 부유하게 하는 것으로써 어국익(御国益) 등으로 주장함에 이르렀다. 이와 같은 것은 곧 나라(国)가 집(家) 때문에 망하게 된 꼴이다. 이와 같은 생각으로써 정치의 근본을 정하기 때문에, 그 책략이 나오는 곳은 항상 편중적인 권력을 한 가문에 귀속시키고자 하는 것일 뿐이다. 산요(山陽)의 외사(外史), 아시카가(足利)의 정치를 평하여 꼬리가 커서 다룰 수 없다(尾大不掉: 미대부도: 부하의 세력이 강하여 군주가 자유롭지 못하다) 하여 그 큰 실책이라 하였다. 이 사람도 다만 편중이 실행되지 않아서 아시카가(足利) 가문에 권력이 귀속되지 않음을 논하는 것까지의 일이어서, 당시 유교학자의 생각에는 뛰어난 것이라도, 결국 집이 있음을 알고 나라가 있음을 알지 못한다는 논리이다. 만약 아시카가(足利)의 꼬리가 커서 다룰 수 없다(尾大不掉: 미대부도: 부하의 세력이 강하여 군주가 자유롭지 못하다)를 실책이라고 하면, 도쿠가와(徳川)의 머리 쪽의 큰 편중을 보고 이것에 만족하지 않을 수 없다. 대체로 편중의 정치는 옛날부터 도쿠가와(徳川) 가문보다 능란하여 뛰어난 것은 없다. 통일 후, 빈번히 자기 가문의 토목공사를 일으켜 제후의 재산을 쓰게 하고, 한편에서는 사방의 성채를 무너뜨려 번(藩)마다 성(城)의 토목공사를 중지시키고, 큰 배를 만드는 것을 금지하고, 무기를 수도에 반입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제후의 처자식을 에도에 억류해서 성대히 저택을 짓도록 하여, 스스로 그들을 사치로 이끌어 인간에게 유용한 사업을 태만하게 하고, 여전히 그 여력이 있음을 보면, 혹은 하녀라 하든, 혹은 문지기라 하든, 제반의 핑계를 만들어 바쁘게 뛰어다녀 지치게 하여, 명령하여 실행되지 않은 것이 없고, 명령하여 따르지 않음이 없음은, 그 형국이 마치 사람의 수족을 꺾고 그와 힘을 겨루는 것과 같다. 편중의 정치에 있어서는 실제로 최고로 높고 최고로 훌륭한 본보기로 삼을 수 있는 것으로, 도쿠가와(徳川) 일가의 행위를 생각하면 능란함을 다하여 신묘함을 얻은 것이라 할 수 있다. 본디 정부를 세우는 데는 중심에 권력을 쥐고 전체를 통제하는 균형이 없을 수 없다. 이 균형을 반드시 써야함은 오직 일본뿐만 아니라 세계 만국 모두 그러하다. 야만적이고 문명이 없던 옛 일본인에게서도 여전히 이 이치를 이해하기는커녕, 수천 수백년 전 시대부터 전제정치의 취지만은 잊지 않은 것 아닌가? 하물며 문물이 점차 열린 후의 세상에 있어서, 누군가 정부의 권력을 빼앗아버리고 그런 후에 문명을 기대한다고 하는 사람이 있으리라. 정치적 권력을 반드시 써야함은 학교의 어린이도 아는 바이다. 그렇다할지라도, 서양 문명적인 각 나라에서는 이 권력의 발원이 다만 한 곳이 아니고, 행정명령은 한 가지 길로 나올지라도, 그 행정명령은 국내의 인심을 모은 것이거나, 설령 혹은 완전히 그것을 모을 수 없어도, 그 인심에 의하여 다소의 내용을 바꾸어, 다양한 의견을 조합하여 다만 그 나오는 곳을 하나로 하는 것이다. 그러나 옛날부터 일본에서는, 정부와 국민은 다만 주객(主客)일 뿐만 아니라, 혹은 이것을 적대(敵対)라고 일컫는 것도 가능하다. 즉 도쿠가와(徳川) 정부에서 제후의 재산을 낭비하게 한 것은, 적에게 이겨 배상금을 받는 것과 다르지 않다. 국민에게 조선(造船)을 금지하고, 다이묘(大名)에게 성(城) 토목공사를 중지시킨 것은, 전쟁에서 승리하여 적국의 포대를 무너뜨린 것과 다르지 않다. 이것을 동포의 소행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대체로 세상의 사물에서는 첫걸음과 그 다음 걸음의 구분이 있는 것이어서, 초보 단계의 제 1보를 처리하는 데는, 이것으로 다음의 제 2보에 맞추려는 궁리가 없을 수 없다. 그러므로 다음 걸음은 처음 걸음을 지배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비유건대 속담에, 고생 끝에 낙이 온다하고 하고, 좋은 약은 입에 쓰다고 하는 것이 있다. 고통을 고통으로 하여 피하고, 쓴 약을 쓴 약으로 하여 싫어하는 것은, 인지상정이어서, 사물의 첫걸음에서만 정신을 쏟는 때는, 그것을 피하고 싫어하는 것도 매우 좋은 것 같아도, 다음의 두 번째 걸음인 안락함과 병의 치료에 착안하면, 이것을 참고 견디지 않을 수 없다. 저 권력의 편중도, 일시 국내의 인심을 유지하여 사물의 순서를 얻고자 하는 것에는 부득이한 추세여서, 결코 사람의 나쁜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다. 소위 첫걸음의 처리이다. 게다가 그 편중의 교활함에 이르면, 일시적으로, 사람의 이목을 놀라게 하는 정도의 훌륭함에 이르는 것이라 할지라도, 다만 어찌하랴, 두 번째 걸음으로 나아가고자하는 때에 이르러, 곧 전년의 폐해를 드러내어 첫걸음의 적절함을 얻을 수 없었던 징후를 볼 수 있다. 이것으로써 생각하면, 전제적인 정치는 더욱 교묘해지면 그 폐해가 더욱 심해지고, 그 치세(治世)가 오래되면 그 나머지 폐해가 더욱 깊어져, 영원한 유전적인 독소가 되어 쉽게 제거할 수 없는 것과 같다. 도쿠가와(徳川) 시대의 평화와 같은 것이 곧 한 가지 사례이다. 오늘날에 이르러서 세상의 형편을 변혁시켜, 교류의 두 번째 걸음에 나아가고자 하여도, 그 일이 극도로 어려운 것이 아닌가? 그 어려운 이유가 무엇인가? 도쿠가와(徳川)의 전제가 교활하여 그 평화가 오래갔기 때문이다. 내가 이미 거친 말로써 이 사정을 평한 일이 있다. 이르건대, 전제의 정치를 미화하는 것은, 한가한 은둔자가 표주박을 애지중지하여 그 표주박을 닦는 것과 같다. 아침저녁으로 심신을 피곤하게 하여 닦아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여전히 둥근 표주박이어서, 다만 광택만 늘어났을 뿐. 시대의 추이가 바야흐로 변화하여 두 번째 걸음에 들어가려는 데 즈음하여, 여전히 구습을 사모하여 융통성을 모르고, 도저히 구할 수 없는 바의 물건을 구하여 뇌리에 상상의 그림을 그리고, 이것을 실제로 찾을 수 있다고 하여 번민하는 것은, 표주박이 이미 깨진 것을 알지 못하고 여전히 그것을 닦는 것과 같다. 어리석음도 역시 한층 더 심하다고 할 수 있다 하고. 이 거친 말은 혹시 들어맞는 일도 있으리라. 어떤 것도 모두 사물의 첫걸음에 근심하여 다음 걸음이 있음을 알지 못하고, 첫걸음에 멈추어 다음 걸음에 나아가지 않는 것이고, 첫걸음으로써 다음 걸음을 방해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것은 곧, 저 첫걸음의 편중으로써 사물의 순서를 얻게 하였다 하여도, 사실은 순서를 얻은 것이 아니고, 인간의 교류를 고사시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교류를 고사시킨 것이므로, 산요(山陽)의 외사(外史)의 이른바 꼬리가 커서 다룰 수 없다(尾大不掉: 미대부도: 부하의 세력이 강하여 군주가 자유롭지 못하다)도, 도쿠가와(徳川)의 머리 쪽의 큰 편중도, 어느 쪽도 득실을 결정할 수 없다. 결국 외사(外史) 등도 다만 사건의 첫걸음에 착안하여 표주박을 닦는 생각이 있을 따름.
시험적으로 도쿠가와(徳川)의 치세(治世)를 보는 데, 백성은 이 전제 편중의 정부를 위로 받들고, 회고하여 세간의 형편을 살펴 사람의 품행이 어떠한지를 물으면, 일본국 가운데 수천만의 인류는 각 수천만 개의 상자 안에 갇혀, 또 수천만 개의 장벽에 차단된 것과 같아서, 전혀 움직일 수 없다. 사농공상(士農工商), 그 신분을 구별하는 것은 물론, 무사 가족의 가운데서는 봉록을 세습하고 벼슬을 세습하여, 심지어는 유교 관리와 의사와 같은 것도 그 집안에 정해진 일이 있어 대대로 직업을 바꿀 수 없다. 농업에도 문벌이 있고, 상업과 공업에는 주식(株式)이 있어, 그 칸막이가 견고함이 쇠와 같고, 어떤 힘을 사용해도 그것을 깨뜨릴 수 없고, 사람마다 재간이 있어도 나아가 일을 할 수 있는 목적이 없기 때문에, 다만 물러서서 몸을 지키는 방책을 구할 뿐. 수 백 년 오래되어, 그 습관 마침내 사람의 본성이 되어, 소위 과감한 정신을 잃어버리기에 이르렀다. 비유건대 가난한 무사와 가난한 백성이 무지하고 문맹이어서 다른 사람의 경멸을 받고, 매년 가난은 또 가난에 빠져, 그 고통은 인간 세상에 비교할 수 있는 것이 없는 것 같아도, 스스로 고난을 거역하여 용감히 일을 하려는 용기가 없다. 예기치 않게 찾아오는 고난에는, 잘 감당하여도, 스스로 고난을 예상하여 미래의 행복을 구하는 자가 없다. 가난한 무사와 가난한 백성뿐만 아니라, 학자도 역시 그러하고, 상인도 역시 그러하다. 일반적으로 이것을 평가하면, 일본국의 사람은, 보통 사람들에게 갖추어질 수 있는 일종의 운동력이 결여되어 정체되어 흐르지 않는 극한상황에 빠진 것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이 곧 도쿠가와(徳川)의 치세(治世) 250년간, 이 나라에 대업을 기획하는 자, 드믄 이유이다. 최근 번(藩)의 폐지라는 한 가지 행동이 있었어도, 전국의 백성, 돌연히 그 품성을 바꿀 수 없었고, 다스리는 자와 다스림을 받는 자의 경계는 지금 여전히 분명하여 조금도 그 내용을 고치지 않기 때문이다. 그 뿌리를 찾으면 모두 권력의 편중으로 부터 오는 것이어서, 사물의 두 번째 걸음에 주의하지 않은 폐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폐해를 살펴서 편중이라는 병을 제거하지 않으면, 천하는 난세에서도 치세(治世)에서도, 문명은 결코 진보하는 일이 있을 수 없다. 오직 이 병의 치료법은, 당장 현재 정치가의 직무이므로, 이것을 논하는 것은 본서의 취지가 아니고, 우리는 다만 그 병의 병세를 제시한 것일 뿐. 대체로 역시 서양 여러 나라의 국민에 있어서도, 빈부강약이 똑같지 않다. 그 부강한 자는 가난하고 약한 자를 억제하는 데, 각박하고 잔인한 일도 있으리라, 오만하고 무례한 일도 있으리라. 가난하고 약한 자도 역시 이름과 이익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아첨하는 일도 있으리라, 다른 사람을 속이는 일도 있으리라. 그 교류의 추악함은 결코 우리 일본인과 다른 것이 없고, 혹은 일본인보다 심한 경우도 있을 수 있다할지라도, 그 추악한 즈음에, 스스로 사람마다 안에 홀로 개인의 기상을 보존하여 정신의 순조로운 흐름을 막지 않는다. 그 각박함과 오만함은 다만 부강하기 때문이고, 특별히 의지하는 바가 있지 않다. 그 아첨과 사기는 다만 가난하고 약하기 때문이고, 달리 두려워하는 바가 있지 않다. 그런데, 부강과 빈약은 자연스러움이 아니고, 사람이 지닌 지혜의 힘으로써 이룰 수 있다. 지혜의 힘으로써 그것을 이룰 수 있는 목적이 있으면, 가령 실제로 이룰 수 없어도, 사람마다 스스로 자신의 몸에 의존하여 자립과 진취의 길로 향하여 갈 수 있다. 시험적으로 저 가난한 사람을 향하여 물으면, 입으로 말할 수는 없다할지라도, 마음에서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는 것이 있으리라. 나는 빈곤하기 때문에 부유한 사람에게 순종하는 것이다, 빈곤한 시절만 저 사람에게 억제당하는 것이다, 나의 순종은 빈곤과 함께 사라질 수 있고, 저 억제는 부귀와 함께 가버릴 것이라고. 대체로 정신의 순조로운 흐름이라 함은 이 정도의 기상을 가리켜 이르는 것이다. 이것을 우리 일본인이, 역사 이래 세상에서 유행하는 편중의 법칙에 억매여, 다른 사람과 접촉하면 그 빈부강약에 구애되지 않고, 지혜와 어리석음과 현명함과 불초(不肖)를 불문하고, 다만 그 지위 때문에 혹은 이것을 경멸하고 혹은 이것을 두려워하여, 추호의 활기도 보존하지 못하고, 자신의 칸막이 안에 고착하는 것과 비교하면, 천양지차가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권력이 편중되면 치세와 난세 모두 문명은 진보할 수 없다)
- 일본의 심한 권력 편중, 후쿠자와 유키치의 “문명론의 개략, 제 5월 9장” 중에서 -
右条々に論ずる如く、日本の人間交際は、上古の時より治者流と被治者流との二元素に分れて、権力の偏重を成し、今日に至るまでも其勢を変じたることなし。人民の間に自家の権義を主張する者なきは固より論を竢たず。宗教も学問も皆治者流の内に籠絡せられて嘗て自立することを得ず。乱世の武人義勇あるに似たれども、亦独一個人の味を知らず。乱世にも治世にも、人間交際の至大より至細に至るまで、偏重の行はれざる所なく、又此偏重に由らざれば事として行はる可きものなし。恰も万病に一薬を用るが如く、此一薬の功能を以て治者流の力を補益し、其力を集めて之を執権者の一手に帰するの趣向なり。前既に云へる如く、王代の政治も将家の政治も、北条足利の策も徳川の策も、決して元素を異にするものに非ず。只彼を此より善しとし、此を彼より悪しと云ふものは、此偏重を用るの巧なると拙なるとを見て其得失を判断するのみ。巧に偏重の術を施して最上の権力を執権者の家に帰するを得れば、百事既に成りて他に又望む可きものなし。古来の因襲に国家と云ふ文字あり。此家の字は人民の家を指すに非ず、執権者の家族又は家名と云ふ義ならん。故に国は即ち家なり、家は即ち国なり。甚しきは政府を富ますを以て御国益などゝ唱るに至れり。斯の如きは則ち国は家の為に滅せられたる姿なり。是等の考を以て政治の本を定るが故に、其策の出る所は常に偏重の権力を一家に帰せしめんとするより外ならず。山陽外史、足利の政を評して尾大不掉とて其大失策とせり。此人も唯偏重の行はれずして足利の家に権力の帰せざりしを論じたるまでのことにて、当時の儒者の考には尤のことなれども、到底家あるを知て国あるを知らざるの論なり。若し足利の尾大不掉を失策とせば、徳川の首大偏重を見て之に満足せざる可らず。凡そ偏重の政治は古来徳川家より巧にして美なるものはなし。一統の後、頻に自家の土木を起して諸侯の財を費さしめ、一方には諸方の塁堡を毀ち藩々の城普請を止め、大船を造るを禁じ、火器を首府に入るゝを許さず、侯伯の妻子を江戸に拘留して盛に邸宅を築かしめ、自から之を奢侈に導て人間有用の事業を怠らしめ、尚其余力あるを見れば、或は御手伝と云ひ、或は御固めと云ひ、百般の口実を設けて奔命に疲れしめ、令するとして行はれざるなく、命ずるとして従はざるなかりしは、其状恰も人の手足を挫て之と力を較するが如し。偏重の政治に於ては実に最上最美の手本と為す可きものにて、徳川一家の為を謀れば巧を尽し妙を得たるものと云ふ可し。固より政府を立るには中心に権柄を握て全体を制するの釣合なかる可らず。此釣合の必用なるは独り我日本のみならず世界万国皆然らざるはなし。野蛮不文なる古の日本人にても尚且この理を解したればこそ、数千百年の前代より専制の趣意ばかりは忘れざりしことならずや。況や文物次第に開けたる後の世に於て、誰か政府の権を奪ひ去て然る後に文明を期すると云ふものあらん。政権の必用なるは学校の童子も知る所なり。然りと雖ども、西洋文明の各国にては此権の発源唯一所に非ず、政令は一途に出ると雖ども、其政令は国内の人心を集めたるもの歟、仮令ひ或は全く之を集ること能はざるも、其人心に由て多少の趣を変じ、様々の意見を調合して唯其出る処を一にしたるものなり。然るに古来日本に於ては、政府と国民とは啻に主客たるのみに非ず、或は之を敵対と称するも可なり。即ち徳川政府にて諸侯の財を費さしめたるは、敵に勝て償金を取るに異ならず。国民に造船を禁じ、大名に城普請を止めたるは、戦勝て敵国の台場を毀つに異ならず。之を同国人の所業と云ふ可らざるなり。
都て世の事物には初歩と次歩との区別あるものにて、初段の第一歩を処するには、之をして次の第二歩に適せしむるの工夫なかる可らず。故に次歩は初歩を支配するものと云ふも可なり。譬へば諺に、苦は楽の種と云ひ、良薬口に苦しと云ふことあり。苦痛を苦痛として之を避け、苦薬を苦薬として之を嫌ふは、人情の常にして、事物の初歩にのみ精神を注ぐときは、之を避け嫌ふも尤なるに似たれども、次の第二歩なる安楽と病の平癒とに眼を着すれば、之を忍て之に堪へざる可らず。彼の権力の偏重も、一時国内の人心を維持して事物の順序を得せしむるには止むを得ざるの勢にて、決して人の悪心より出たるものには非ず。所謂初歩の処置なり。加之其偏重の巧なるに至ては、一時、人の耳目を驚かすほどの美を致すものありと雖ども、唯如何せん、第二歩に進まんとするの時に及び、乃ち前年の弊害を顕はして初歩の宜しきを得ざりし徴候を見る可し。是を以て考れば、専制の政治は愈巧なれば其弊愈甚しく、其治世愈久しければ其余害愈深く、永世の遺伝毒と為りて容易に除く可らざるものゝ如し。徳川の太平の如きは即ち其一例なり。今日に至て世の有様を変革し、交際の第二歩に進まんとして、其事極て難きに非ずや。其難き由縁は何ぞや。徳川の専制は巧にして其太平の久しかりしを以てなり。余嘗て鄙言を以て此事情を評したることあり。云く、専制の政治を脩飾するは、閑散なる隠居が瓢箪を愛して之を磨くが如し。朝に夕に心身を労して磨き得たるものは、依然たる円き瓢箪にして、唯光沢を増したるのみ。時勢の将に変化して第二歩に入らんとするに当り、尚旧物を慕ふて変通を知らず、到底求めて得べからざる所の物を求めて脳中に想像を画き、之を実に探り得んとして煩悶するものは、瓢箪の既に釁(す)きたるを知らずして尚これを磨くが如し。愚も亦一層甚しと云ふ可しと。此鄙言或は当ることあらん。何れも皆事物の初歩に心配して次歩あるを知らず、初歩に止て次歩に進まざるものなり、初歩を以て次歩を妨るものなり。斯の如きは則ち、彼の初歩の偏重を以て事物の順序を得せしめたりと云ふも、其実は順序を得たるに非ず、人間の交際を枯死せしめたるものと云ふ可し。交際を枯死せしむるものなれば、山陽外史の所謂尾大不掉も、徳川の首大偏重も、孰れか得失を定む可らず。必竟外史なども唯事の初歩に眼を着して瓢箪を磨くの考あるのみ。
試に徳川の治世を見るに、人民は此専制偏重の政府を上に戴き、顧て世間の有様を察して人の品行如何を問へば、日本国中幾千万の人類は各幾千万個の箱の中に閉され、又幾千万個の墻壁に隔てらるゝが如くにして、寸分も動くを得ず。士農工商、其身分を別にするは勿論、士族の中には禄を世(代々のもの)にし官を世にし、甚しきは儒官医師の如きも其家に定ありて代々職を改るを得ず。農にも家柄あり、商工にも株式ありて、其隔壁の堅固なること鉄の如く、何等の力を用るも之を破る可らず、人々才力を有するも進て事を為す可き目的あらざれば、唯退て身を守るの策を求るのみ。数百年の久しき、其習慣遂に人の性と為りて、所謂敢為の精神を失ひ尽すに至れり。譬へば貧士貧民が無智文盲にして人の軽蔑を受け、年々歳々貧又貧に陥り、其苦は凡そ人間世界に比す可きものなきが如くなれども、自から難を犯して敢て事を為すの勇なし。期せずして来るの難には、よく堪ゆれども、自から難を期して未来の愉快を求る者なし。啻に貧士貧民のみならず、学者も亦然り、商人も亦然り。概して之を評すれば、日本国の人は、尋常の人類に備はる可き一種の運動力を欠て停滞不流の極に沈みたるものと云ふ可し。是即ち徳川の治世二百五十年の間、此国に大業を企る者、稀なりし由縁なり。輓近廃藩の一挙ありしかども、全国の人、俄に其性を変ずること能はず、治者と被治者との分界は今尚判然として毫も其趣を改めざる由縁なり。其本を尋れば悉皆権力の偏重より来りしものにて、事物の第二歩に注意せざるの弊害と云ふ可し。故に此弊害を察して偏重の病を除くに非ざれば、天下は乱世にても治世にても、文明は決して進むことある可らず。但し此病の療法は、目今現に政治家のなれば、之を論ずるは本書の旨に非ず、余輩は唯其病の容体を示したるのみ。抑も亦西洋諸国の人民に於ても、貧富強弱一様なるに非ず。其富強なる者は貧弱を御するに、刻薄残忍なることもあらん、傲慢無礼なることもあらん。貧弱も亦名利のために、人に諂諛することもあらん、人を欺くこともあらん。其交際の醜悪なるは決して我日本人に異なることなし、或は日本人より甚しきこともある可しと雖ども、其醜悪の際、自から人々の内に独一個人の気象を存して精神の流暢を妨げず。其刻薄傲慢は唯富強なるが故なり、別に恃む所あるに非ず。其諂諛欺詐は唯貧弱なるが故なり、他に恐るゝ所あるに非ず。然り而して、富強と貧弱とは天然に非ず、人の智力を以て致す可し。智力を以て之を致す可きの目的あれば、仮令ひ事実に致すこと能はざるも、人々自から其身に依頼して独立進取の路に赴く可し。試に彼の貧民に向て問はゞ、口に云ふ能はずと雖ども、心には左の如く答ることならん。我は貧乏なるが故に富人に従順するなり、貧乏なる時節のみ彼に制せらるゝなり、我の従順は貧乏と共に消す可し、彼の制御は富貴と共に去る可しと。蓋し精神の流暢とは此辺の気象を指して云ふことなり。之を我日本人が、開闢以来世に行はるゝ偏重の定則に制せられて、人に接すれば其貧富強弱に拘らず、智愚賢不肖を問はずして、唯其地位の為に或は之を軽蔑し或は之を恐怖し、秋毫の活気をも存せずして、自家の隔壁の内に固着する者に比すれば、雲壌の相違あるを見る可きなり。(権力偏重なれば治乱共に文明は進む可らず)
- 福澤諭吉, “文明論之槪略, 巻之五 第九章 日本文明の由来” -
일본의 심한 권력 편중 - 후쿠자와 유키치, 문명론의 개략 -.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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