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관찰하기

일본의 무사는 기상이 없고 비겁하다 - 후쿠자와 유키치의 “문명론의 개략 제 5권 9장” 중에서

이윤진이카루스 2015. 7. 17. 12:35

옛날부터 우리 일본은 의리와 용기의 나라라고 칭하여, 그 무사가 표한하여 과단, 충성스러워 솔직함은, 아시아 여러 나라에 있어서도 부끄러운 것이 없을 것이다. 그 중 아시카가(足利) 말년에 이르러 천하의 대란, 호걸은 있는 곳에 할거하여 공격이 멈추는 때가 없고, 대체로 일본에서 싸움이 유행함은, 이 때 전후보다 성행함이 없다. 한 번 패하여, 국가를 망하게 한 자가 있고, 한 번 승리하여, 집안을 일으킨 자가 있고, 문벌도 없고 유래도 없고, 공적과 명성이 자유자재, 부귀를 순간에 얻을 수 있다. 문명의 정도에 앞뒤의 차가 있어도, 이것을 저 로마의 말기에 북쪽 오랑캐가 침입한 시대와 비교하여 비슷한 형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사건의 추세 가운데에 있어서는 일본의 무사에게도 스스로 독립과 자주의 기상을 일으켜, 혹은 저 독일의 야만인이 자주와 자유의 요소를 남긴 것처럼, 우리 국민의 기풍도 일변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되지만, 사실에 있어서는 결코 그렇지 않다. 본 장의 첫머리에서 말한 권력의 편중은, 역사시작 처음부터 인간 교류의 미세한 곳까지도 침투하여, 어떤 진동이 있어도 이것을 파괴할 수 없다. 이 시대의 무사가 쾌활하고 자유로운 것 같아도, 그 쾌활하고 자유로운 기상은 한 몸의 강개함으로부터 피어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인정하여 일개의 남아라고 생각하여, 몸을 가장 중시하여, 자기 혼자의 자유를 즐긴다는 마음이 아니라, 틀림없이 외부의 무엇에 유혹되어 발생한 것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외부의 무엇을 빙자하여 발생을 도운 것이다. 무엇을 외부의 무엇이라고 하는가. 조상 때문이고, 가문의 이름 때문이고, 주군 때문이고, 부친 때문이고, 자기의 신분 때문이다. 대체로 이 시기의 전쟁에서 명분으로 하는 바는 반드시 이런 것 등의 제반 조건에 의존하지 않는 것이 없다. 또는 조상의 가문 이름이 없고, 주군과 부친의 신분이 없는 자는, 일부러 그 명분을 만들어 핑계로 이용하는 꼴이다. 어떤 영웅호걸이어서 힘이 있고 지혜가 있는 자라할지라도, 그 지혜의 힘에만 의지하여 일을 하고자 기도하는 자가 있음을 듣지 못한다. 여기서 사건의 흔적에 드러난 것을 들어, 한 가지, 두 가지 사례를 보이겠다. 아시카가(足利)의 말년에 사방의 호걸, 혹은 그 주인을 내쫓고, 혹은 그 주군과 부친의 원수를 갚고, 혹은 조상의 가문을 일으키고자 하고, 혹은 무사다운 면목을 온전하게 하기 위해서라 하여, 무리를 모아 토지를 압수하고, 할거하는 세력을 이루었다할지라도, 그 기대하는 바는 다만 수도(교토)로 올라가는 한 가지 일이 있을 뿐. 대체로 수도(교토)로 올라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살피면, 천황 혹은 쇼군을 알현하여, 그 명의를 차용하여 천하를 통제하겠다는 것이다. 또는 아직 수도(교토)로 올라가는 수단을 얻지 못한 자는, 멀리 왕실의 관직을 얻어, 이 관직에 의지하여 자신의 영예를 늘리고, 그로써 아랫사람을 통제하는 재주로 이용하는 것이다. 이 재주는 옛날부터 일본의 무사들 사이에 유행하는 정해진 고유한 방식이어서, 미나모토() 가와 다이라() 가의 우두머리, 모두 그렇지 않음이 없다. 호조(北条)에 이르러 바로 최상의 관직을 바라지 않고, 명분을 위하여 쇼군을 두고, 신분은 5품계로써 천하의 권세를 쥔 것은, 비단 왕실을 도구로 이용할 뿐만 아니라, 또한 쇼군도 이용한 것이다. 그 외형을 피상적으로 판단하면 아름답고 훌륭해 보이더라도, 충분히 사건의 내부를 분석하면, 틀림없이 사람의 비겁으로부터 생긴 것이어서, 진실로 천시할 수 있고 미워할 수 있는 요소를 포함하는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아시카가 타카우지(足利尊氏)가 아카마츠 엔신(赤松円心)의 책략을 이용하여 고후시미(後伏見) 천황의 칙서를 받고, 그 아들 고묘(光明) 천황을 세운 것과 같은 것은, 만인의 눈으로써 보아도 이것을 천황의 본심에서 나온 것으로 인정할 수 없다. 노부나가(信長)가 처음에 쇼군 요시아키(義昭)를 손안에 넣었어도, 쇼군의 명성이 천황의 명성보다 약하지 않음을 알아차리고, 곧 요시아키(義昭)를 내쫓고 곧바로 천황을 껴안은 것도, 그 정()이 두텁다고 할 수 없다. 어느 것도 모두 계략과 속임수가 명백한 것이어서, 대체로 천하에 눈과 귀를 구비한 자라면, 그 속내를 통찰할 수 있음이 당연하여도, 아직 그 표면에서는 충성과 신의와 절개와 의리를 부르짖어, 어린애의 놀이와 같은 명분을 핑계로 이용하여 스스로 이것을 책략을 얻은 것으로 하여, 사람들도 역시 이것에 의심을 품지 않는 것은 왜인가? 생각건대 그 무리들 안에 있어서 위와 아래가 함께 크게 이득을 보는 바가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무사는 역사시작 초부터 이 국가에서 이루어지는 인간 교류의 규칙에 따라, 권력 편중의 속에서 길러져, 항상 사람에게 굽힘으로써 수치로 여기지 않는다. 저 서양의 국민은 자기의 지위를 중시하여, 자기의 신분을 귀하게 여기고, 각각 그 권리와 의무를 지속적으로 확대함에 비교하면, 그 사이에 두드러진 차이점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전쟁과 소란의 세상이라할지라도, 이 교류의 법칙은 파괴할 수 없다. 일족의 우두머리에 대장이 있고, 대장 밑에 가노(家老)가 있고, 그 다음에 기마병이 있고, 또 가치(徒士: 하급무사)가 있고, 그로써 아시가루(足軽: 최하급 무사)와 쥬겐(中間: 하인)에 이르러, 상하의 명분이 명백하고, 그 명분과 함께 권한과 의무를 달리하여, 한 사람으로서 무리함을 당하지 않는 자가 없고, 한 사람으로서 무리함을 행하지 않는 자가 없다. 무리함에 억압당하고, 또 무리하게 억압하고, 이것을 향하여 굴복하면, 저것을 향하여 자부할 수 있다. 비유건대 여기에 갑을병정(甲乙丙丁)이라는 10명이 있어, 그 을()인 자, ()에 대하여 비굴한 모습을 하고, 참을 수 없는 치욕이 있는 것 같아도, ()에 대하면 의기 양양하여 크게 자부할 수 있는 유쾌함이 있다. 그러므로 앞의 치욕은 뒤의 유쾌함에 의하여 보상을 받고, 그로써 불만을 고르게하고, ()은 정()에게서 보상을 받고, ()은 무()에게서 대가를 구하여, 점점 끝이 없고, 흡사 서쪽의 이웃에 빌려준 돈을 동쪽 이웃에게 독촉하는 것과 같다. 또 이것을 물질에 비유하여 말하면, 서양 국민의 권력은 쇠와 같아서, 그것을 팽창시키는 것이 매우 어렵고, 이것을 수축시키는 것도 역시 매우 쉽지 않다. 일본의 무사의 권력은 고무와 같고, 그 서로 붙이는 바의 물질에 따라서 수축과 팽창의 내용을 달리하여, 밑에 붙이면 크게 팽장하고, 위에 붙이면 갑자기 수축하는 성질이 있다. 이 치우쳐서 수축하고 치우쳐서 무거워지는 권력을 일체로 모아서 무사가문의 위세라고 칭하고, 그 일체의 억압을 당하는 자는 의지할 데가 없는 평민이다. 평민을 생각하면 불쌍하여도, 무사의 무리에 있어서는 위로 대장(大将)부터 밑으로 아시가루(足軽: 최하급 무사)와 쥬겐(中間: 하인)에 이르기까지, 상하 일반적인 이익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비단 이익을 도모할 뿐만 아니라. 그 상하의 관계, 충분히 정돈되어 크게 체계적인 아름다움이 있는 것 같다. 곧 그 체계적이라는 것은 무리의 내부에서, 상하 간에 사람마다 비굴함의 추태가 있을지라도, 무리가 일체의 영광으로써 굳이 스스로 이것을 자기네 영광으로 삼고, 오히려 한 개인의 지위는 버리고 그 추태를 망각하고, 달리 일종의 체계를 만들어 그것에 길들여진 것이다. 이 관습의 한 가운데서 길러져 마침내 그로써 제 2의 천성을 이루어, 어떤 물체에 접촉하여도 그 물체를 움직일 수가 없다. 위세와 무력도 굴복시킬 수가 없고, 가난과 천박함도 빼앗을 수 없고, 엄연한 무사가문의 기풍을 엿보아 알 수 있다. 그 한 국면의 사건에 관하여 한 장면의 작동에 관하여 이것을 살피면, 정말로 부러워할 수 있고 또 사모할 수 있는 것이 많다. 옛날 미가와(三河)의 무사가 도쿠가와(徳川) 집안에 따라붙었던 형편도 이 한 가지 사례이다. 그 조직으로써 성립된 무사의 교류이기에, 이 교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부득이한 일종의 무형의 최고 권위가 없을 수 없다. 곧 그 권위가 있는 곳은 왕실에 멈춘다 할지라도, 인간세계의 권위는, 사실, 사람의 지혜와 덕행에 귀속되는 것이기 때문에, 왕실이라 할지라도 실질적인 지혜와 덕행이 있지 않으면 실질적인 권위는 왕실에 귀속될 수 없다. 이런 까닭에서인가 그 명분만을 남기고 왕실에 실권이 없는 지위를 품게 하여, 실권은 무사가문의 우두머리에게 장악하게 하려는 책략을 꾸몄던 것이이므로, 곧 당시 사방의 호걸이 수도(교토)로 올라오는 일에 열중하여, 어린애 장난같은 명분도 짐짓 남겨 이것을 이용한 까닭이다. 결국 그 근본을 찾으면, 일본의 무사에게 단지 한 개인의 기상(인디비쥬얼리티: individuality)이 없어서, 이런 비열한 소행을 수치로 여기지 않았던 것이다. (난세의 무사에게 단 하나의 기상이 없다)

옛날부터 세상 사람들이 등한히 간과하여 유의하지 않은 바이라도, 지금 특별히 그것을 기록하면, 일본의 무사에게는 오직 한 개인의 기상이 없는 모습을 엿볼 수 있는 한 가지 항목이 있다. 곧 그 항목이라는 것은 사람의 성명에 관한 것이다. 원래 사람의 이름은 부모가 짓는 것이어서, 성장 후 혹은 개명하는 일이 있어도, 다른 사람의 지시를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의식주에 관한 물품은 사람마다의 취향에 맡겨, 자유자재일 것 같아도, 대개는 외부의 물체의 의하여 움직여, 스스로 시대의 유행에 따르는 것이어도, 사람의 성명은 의식주의 물품과 다르고, 이것을 짓는 것에 타인의 지시를 받지 않는 것은 물론, 설령 친척과 친구라고할지라도, 내가 원해서 상담을 받는 것이 아니면, 참견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다. 사람의 일의 형태에 나타나는 것들 중에서 최고로 자유자재일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법에 따라서 개명을 금지하는 나라에 있어서는, 본래 그 법에 따름도 자유를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도, 개명이 자유로운 국가에 있어서, 겐스케(源助)라고 하는 이름을 히라키치(平吉)라고 고치거나, 또는 그것을 고치지 않는 자유는, 전적으로 한 개인의 의사에 맡겨, 밤에 자는 데 오른쪽을 베게로 하고 또 왼쪽을 베게로 하는 자유와 같다. 조금도 타인과 관계가 있을 수 없다. 그런데 옛날부터 우리 일본의 무사가문에서, 이름 한 자를 하사하여 성을 허락하는 사례가 있다. 비굴하고 저열한 풍습이라고 할 수 있다. 우에스기 겐신(上杉謙信)의 용맹도 여전히 이것을 피하지 못하고, 쇼군 요시데루(義輝)의 이름 한 자를 하사받아서 데루토라(輝虎)로 개명한 일이 있다. 더욱 심한 것은, 세키가하라(関原) 전투 후에 천하의 통치권이 도쿠가와(徳川) 씨에게 귀속되어, 제후 도요토미(豊臣) 씨를 사칭하는 자는 두 본래 성으로 회복시켰고, 또 마쓰다이라(松平)를 사칭하는 자가 있다. 이와 같은 성 개명은 혹은 스스로 원하여 혹은 위의 명령에 의해 하사를 받는 일도 있으려니 할지라도, 어느 것도 그 내용에 있어서는 경멸할 수 있는 행동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사람은 생각하여, 개명과 성을 사칭하는 일은, 당시의 풍습이어서 사람이 마음에 두는 일이 아니어서, 지금부터 나무랄 수 없다고 하는 사람이 있어도, 결코 그렇지 않다. 타인의 성명을 사칭하여 마음에 만족스럽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의 심정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모두 같다. 그 증거에서는 아시카가(足利) 시대, 에이교(永享) 6, 가마쿠라(鎌倉)의 구보 모치우지(公方持氏)의 아들이, 성년식을 하면서 이름을 요시히사(義久)로 짓는 데, 관령(管領: 쇼군 아래 고위직) 우에스기 노리사네(上杉憲実)는 여느 때처럼 무료마치(室町) 막부의 쇼군의 생전 이름을 원할 수 있다고 간언하였어도 듣지 않았던 일이 있다. 이때 모치우지(持氏)는 이미 자립의 의지가 있었다. 그 의지는 선이든 악이든, 다른 사람의 이름을 사칭하는 것은 천박한 행동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리라. 또 도쿠가와(徳川) 시대에, 호소카와(細川) 가문에 마쓰다이라(松平)의 성을 주려고 하는 데 사양하였다고 하여, 민간에서는 이것을 미담으로 하여 전했다. 진위가 상세하지 않을지라도, 이것을 아름답다고 하는 사람의 심정은 지금도 옛날도 같은 것을 명백하게 증명할 수 있다. 이상 기록한 바의 성명에 관한 사건은 그다지 큰 사건도 아니라도, 옛날부터 의리가 있고 용감하다고 칭하는 무사가, 사실은 의외로 비겁함을 알 수 있고, 또 한 가지는 권위를 장악한 정부의 힘은 무서운 것이어서, 사람 마음의 내부까지도 침범하여 통제하기에 충분하다는 내력을 밝히기 위하여, 몇 마디 말을 여기에 단 것이다.

 

- 일본의 무사는 기상이 없고 비겁하다, 후쿠자와 유키치의 문명론의 개략 제 59중에서 -

 

 

 古来我日本義勇其武人慓悍にして果断誠忠にして率直なるは亜細亜諸国てもるものなかる就中足利末年天下大乱豪傑所在割拠して攻伐止なく日本はれたる前後このよりなるはなし一敗あり一勝あり門閥もなく由緒もなく功名自在富貴瞬間文明前後はあれども羅馬末世北狄侵入せし時代して彷彿たる有様ふもなり此事勢ては日本武人にもから独立自主気象日耳曼野民自主自由元素したるが我国民気風一変きにはるれども事実てはしてらず此章へる権力偏重開闢より人間交際微細なるまでも入込何等震動あるもらず此時代武人快活不覊なるがくなれども此快活不覊気象一身慷慨よりしたるものにからめて一個男児身外無物一己自由むの外物はれて発生したるものしからざれば外物発生けたるものなり外物先祖のためなり家名のためなりのためなりのためなり身分のためなり此時とする是等諸件らざるものなし先祖家名なく君父身分なきさらに其名義口実るのなり如何なる英雄豪傑にして有力有智ども其智力のみをたのみさんとたるあるをかず其事跡はれたるものをさん足利末年諸方豪傑其主人其君父祖先さんとし武士たるの面目ふせんがためにとて党与土地押領割拠すとども其期する唯上洛一事るのみ此上洛何物たるをれば天子若くは将軍其名義借用して天下せんとすることなり上洛方便ざる王室官位此官位自家栄光するのあり此術古来日本武人はるゝ一定流儀にて源平酋長皆然らざるはなし北条ては最上官位をもめずして名目のために将軍五位天下権柄りたるは王室器械るのみならず将軍をも利用したるものなり其外形皮相すればにしてなるにたれどもよく内部にすれば必竟人心鄙怯よりじたることにてしむきの元素含有するものとはざるを足利尊氏赤松円心ひて後伏見帝宣旨其子光明天皇たるがきは万人るも尊王本心よりたるものとらず信長将軍義昭れたれども将軍天子かざるを義昭ふて天子はさみたるも其情厚しとらずれも皆詐謀偽計明著なるものにて天下耳目したるならば其内情洞察なれども尚其表面には忠信節義児戯しき名分口実ひてからたるものとこれにれざるはぞや其党与上下共するあればなり日本武人開闢より此国はるゝ人間交際定則権力偏重はれするをとせず西洋人民自己地位んじ自己身分各其権義持張するすれば其間しき異別兵馬騒乱ども此交際定則らず一族大将あり大将家老あり騎士あり又徒士あり足軽中間上下名分判然として其名分権義をもにし一人として無理らざるなく一人として無理はざるなし無理抑圧せられ又無理抑圧すればへば甲乙丙丁十名ありて其乙なるして卑屈らざるの恥辱あるにたれどもすれば意気揚々としてきの愉快あり恥辱愉快其不満足平均あることなく西隣したる東隣催促するがこれを物質へてへば西洋人民権力くにして膨脹すること収縮することも亦甚からず日本武人権力はゴムの其相接する縮張にしすれば膨脹すれば収縮するのあり此偏縮偏重権力一体めて武家威光其一体抑圧無告小民なり小民へばなれども武人党与ては上大将より下足軽中間るまで上下一般利益はざるを利益るのみに其上下関係よく整斉して条理なるものあるが其条理とは党与にて上下卑屈醜態ありとども党与一体栄光ひてから栄光独一個地位をばてゝ其醜体一種条理れたるものなり此習慣はれて第二何等るゝもかすらず威武することはず貧賎ふことはず儼然たる武家気風其一局一場すれば又慕きもの在昔三河武士徳川家附属したる有様なども此一例なり仕組成立たる武人交際なれば此交際維持せんがためにはむを一種無形最上権威なかるらず其権威王室まるとども人間世界権威事実智徳するものなるが王室ども智徳あらざれば権威らずてか其名目のみをして王室虚位せしめ実権をば武家統領らんとするのらしたることにて当時諸方豪傑上洛一事熱中児戯しき名分をもさらにして利用したる由縁なり必竟其本れば日本武人独一個人気象インヂヴヰヂュアリチなくして卑劣なる所業とせざりしことなり。(乱世武人独一個気象なし

 古来世等閑看過してめざりしなれども今特せば日本武人独一個人気象なき一個条あり其個条とは姓名なり元来人父母ずるものにて成長後或改名することあるも他人差図きに衣食住物品々の好尚自由自在たるにたれどもくは外物かされから流行ふものなれども姓名衣食住なりずるに他人差図けざるは勿論仮令親戚朋友どもより相談るにざればくちばし事柄人事はれたるものゝにて自由自在なる部分改名ずるてはより其法ふも自由るにざれども改名自由源助平吉めざるの自由一己して夜寝るににし又左にするの自由なるが他人関係あるらずるに古来我日本武家偏諱はりすのあり卑屈賎劣上杉謙信英武これをれず将軍義輝偏諱拝領して輝虎改名したることあり尚甚しきは関原戦争後天下大権徳川氏して諸侯豊臣氏本姓又松平あり是等変姓から上命にてはることもあらんとどもれにも事柄てはしむ挙動はざるを或人謂へらく改名冒姓当時風習にてめざることなればよりらずとふものあれどもしてらず他人姓名してしとはざるの人情古今皆同其証拠には足利永享六年鎌倉公方持氏元服して義久じたりしに管領上杉憲実室町はるしとめたれどもかずとあり此時持氏自立あり其志にもにもすはしき挙動ひしことならん又徳川時代細川家松平へんとせしにしたりとて民間には美談として云伝へり虚実詳ならざれどもとするの人情同様なること以上記姓名のことはまで大事件にもざれども古来義勇する武人其実外卑怯なるを又一には権威政府ろしきものにて人心内部までもしてするにるとの次第さんがために数言したるなり

 

- 福澤諭吉, “文明論之槪略, 巻之五 第九章 日本文明由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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