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 70년과 관련해 일본 텔레비전이나 신문 등에선 태평양 전쟁을 시작하고 진행해 가면서 일본 정부가 내린 여러 결정들을 분석하는 특집 프로그램들을 편성해 왔다. 이를 보다 보면 전후의 일본은 어리석은 전쟁을 추진한 정치의 잘못을 극복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통감하게 된다.
예를 들어 <엔에이치케이>(NHK) 방송이 지난 8일 방영한 <엔에이치케이 스페셜, ‘특공’(자살공격) 왜 확대됐는가>를 보자. 이 프로그램은 세계 역사에서 드물게 관찰되는 잔학한 작전인 ‘특공작전’(가장 대표적인 예는 가미카제 특공대)을 당시의 육·해군 지도부가 어떤 식으로 추진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먼저 해군이 특공에서 성과를 내자, 육군이 작전을 확대했다. 군대 내부의 관료주의가 많은 젊은이들을 희생시킨 것이다. 전체적 전황 속에서 특공작전이 어떤 결과를 냈는지를 고찰하지 않고, (단순히) 전의를 고양하기 위해 적이 입을 피해를 날조했다. 그리고 끝내는 속도가 느린 연습기까지 (특공작전에) 동원해 적의 먹잇감이 됐다. 젊은이들을 사지로 몰아넣었던 지도자들은 전후에도 살아남았다.
얼마나 무책임한 일인가. 그 무책임의 구조는 전후에도 그대로 살아남았다. 예를 들어 원자력 정책에서 그 일단의 모습을 끌어낼 수 있다. (2011년 3월11일 발생한 도쿄전력) 후쿠시마 제1원전의 사고로 10만명 넘는 사람들이 고향에서 쫓겨나 생업을 잃었다. 그러나 정부는 사고에 관한 철저한 진상규명과 안전대책을 소홀히 한 경영자나 관료에 대한 책임 추궁도 하지 않은 채 가고시마현 센다이 원전을 지난 11일 재가동시켰다.
전쟁을 반성한다고 할 때 침략과 식민지배로 희생을 당한 사람들과 그 자손들에게 사죄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동시에 국책을 그르친 지도자의 죄를 분명히 하고 이를 되풀이하지 않는 결의와 각오의 마음을 갖는 것도 반성에 반드시 필요하다. 무책임 체제를 연명하는 것에 대한 분함과 참괴(慙愧·부끄러워하고 괴로워함)의 마음은 내 마음속에선 커지기만 한다.
일본 국내외의 주목을 모은 전후 70년 담화에서 아베 총리는 어쨌든 침략에 대해 반성의 표현은 언급했다. 그러나 그것은 아베 총리의 본심이 아닌 것이 분명하다. 아베 총리는 무라야마 담화를 변경하는 데 강한 의욕을 보여 왔다. 그러나 과거의 전쟁을 정당화하는 것은 국제사회가 용인하지 않는다는 현실을 알고, 본의가 아니지만 궤도를 수정하는 상황에 몰렸다는 것이 (아베 담화를 둘러싼) 진상일 것이다.
국가주의자이자 역사수정주의자로 알려진 이나다 도모미 자민당 정조회장은 침략에 대한 사죄에 대해 언제까지 사죄를 계속해야 하는 것이냐는 불만을 토로했다. 얼마나 얄궂은 말인가. 이나다가 대변하는 자기정당화가 이어지는 한 일본은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전쟁에 대해선 언제까지고 사죄를 거듭해야만 한다.
일본이 미래 지향을 말하는 것은 지극히 오만한 일이다. 과거의 죄를 진지하게 반성하고, 피해자에 대한 속죄를 철저히 하는 것을 통해 일본의 성의가 인정된다면, 이웃 여러 나라들로부터 저절로 미래 지향으로 가자는 분위기가 솟아날 것이다. 무라야마 담화가 나온 뒤 수년간은 그런 조짐이 나타나기도 했다. 오부치 게이조 총리와 김대중 대통령의 노력으로 미래 지향의 일-한 관계가 구축되려 했던 일도 있었다.
아베 정권에서 시곗바늘이 과거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다. 아베 정권이 추진하는 안보법제에 반대하는 운동은 전쟁의 역사를 겸허히 반성하고 이웃 나라들과 신뢰를 재구축하는 작업과 연결되어야 한다.
야마구치 지로 일본 호세이대 법학과 교수
야마구치 지로 일본 호세이대 법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