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관찰하기

동북아의 새로운 질서/ 한겨레신문

이윤진이카루스 2015. 8. 13. 13:18

[편집국에서] ‘아베 미워하기’를 넘어 / 박민희

등록 :2015-08-12 18:37

 

1945년 8월15일 히로히토 일왕이 발표한 항복 조서에는 항복이나 패배란 말은 없었다. 그는 그저 “전쟁은 일본에 유리하게 전개되지 않았으며 세계의 대세 또한 우리에게 불리하다”며, ‘신민’들을 향해 “견디기 힘듦을 견디고 참을 수 없음을 참으라”고 명했을 뿐이다.

그해 9월2일 도쿄만에 정박한 미국 전함 미주리호 선상에서 항복문서에 서명한 일본 관리는 일본제국 육군을 대표하는 우메즈 요시지로 장군과 외교관 시게미쓰 마모루뿐이었다. 히로히토 일왕이나 일왕가의 인물은 한명도 나오지 않았다. 많은 미국 관리들조차 일왕이 직접 나와 항복문서에 조인해야 한다고 믿었으며, 연합국 당국이 ‘천황’의 불참을 허용한 것은 승자와 패자 모두를 놀라게 했다.(존 다우어 <패배를 껴안고>) 천황의 전쟁 책임을 묵인하겠다는 미국의 강력한 신호였다.

사회학자 시라이 사토시는 <영속패전론>(2013년)에서 일본이 지난 70년 동안 패전 대신 종전이라는 애매한 용어를 고집해온 것은 전쟁으로 국민을 몰아넣은 지배층이 패전의 책임을 지지 않고 전후에도 계속 지배를 이어가는 것을 정당화하려는 술책이었다고 지적한다.

이런 구조의 설계자는 미국이었다. 냉전의 한 축인 미국은 소련, 중국에 대항할 하위 파트너로 일본을 선택하고, 일본 전쟁 지도부에 면죄부를 주고 일본의 실질적 재무장을 추진했다. 1951년 9월 미국은 일본 침략의 최대 피해 당사자인 한국과 중국을 빼놓고 일본과의 전쟁을 마무리하는 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과 미-일 안보조약을 체결했다. 현재 동아시아의 영유권 분쟁, 역사 갈등은 미국이 당시 해결하지 않고 남겨둔 문제들에 질긴 뿌리를 두고 있다. 이런 모순의 구조는 일본의 경제적 힘과 미국의 독보적 군사력으로 은폐돼 있다가, 1990년대 이후 일본의 경제적 쇠퇴,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상대적 쇠퇴 속에서 분출하기 시작했다.

아베 신조 총리가 14일 발표할 ‘전후 70주년 담화’(아베 담화)에서 침략과 식민지배에 대한 사죄와 반성을 표할 것이냐를 두고 관련국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지만, 아베 총리와 일본 우파들이 만들어내고 있는 위기는 이미 사죄와 반성이란 말을 쓰느냐 마느냐의 단계를 넘어섰다. 중국의 부상으로 미국의 든든한 안보우산이 흔들리고, 일본 경제력이 쇠퇴하는 위기, 즉 전후체제 붕괴의 상황에서 일본 우파가 미국과의 동맹 강화(그로 인한 주변국과의 갈등 불사)와 군사력 강화의 길을 선택했고, 그로 인해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판이 새로 짜이고 있기 때문이다.

미-일 동맹 강화와 한-미-일 군사 협력이 한반도에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가? 일본은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통해 한반도 유사사태시 미군과 함께 북한 지역에 진출할 수 있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독도에서 한-일 간 충돌이 벌어진다면 미국이 미-일 동맹을 우선하지 않을 것으로 장담할 수 있는가. 센카쿠(댜오위다오)에서 중-일이 충돌한다면 한-미-일 군사협력에 따라 한국도 휩쓸릴 위험을 부인할 수 없다.

박민희 국제부장
박민희 국제부장
아베 총리가 치밀한 준비로 판을 뒤흔드는 데 대해, 한국 외교는 ‘아베 비판하기’ ‘아베의 올바른 역사관 촉구하기’ 수준의 대응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식의 외교로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일본이 절실한 미국의 전략, 한-미-일 군사협력의 걸림돌을 치우기 위해 역사 문제에 대한 한국의 타협을 요구하는 미국의 태도는 조금도 바뀌지 않을 것이다. 한국 외교는 사드 한반도 배치, 대통령의 중국 항일승전 기념 열병식 참석 여부 등 주요 외교 사안마다 미·중 눈치보기 외교로 우왕좌왕하고 있다. 통일대박, 한반도평화프로세스 등 구호는 요란했지만 남북관계는 최악의 긴장 상태다. 광복과 분단 70년, 한국 외교·안보는 사면초가에 빠져 있다.

박민희 국제부장 minggu@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