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소련 방첩기관은 61살의 농민 윤양원씨의 증언을 확보했다. 내용을 정리하면 이렇다. “나는 친구 채정환이 사는 미즈호 마을로 소를 사러 갔다. 그의 일본인 아내가 ‘지난 8월 친구가 살해당했다’고 고백했다. 8월 러시아인들이 상륙했을 때 일본 헌병의 명령에 따라 미즈호 마을의 모든 조선인들이 살해당했다고 했다.” 소련 국가안보부 유즈노사할린스크 담당 수사관의 심문 기록도 있다. 정리하면 “8월21일인가 22일에 내 남편은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살해당했다. 경찰관 이시다가 조선인들을 한곳에 모아 모두 서른명 가까이 죽였다”는 것이다. 1951년부터 사할린에서 역사 교사로 일했던 콘스탄틴 가포넨코는 1990년대 공개된 러시아 문서에 근거해 이 사건을 책으로 남겼다. 그는 당시 수사와 재판 기록에 바탕을 두고, 이 사건이 일본 민족주의자들이 평화로운 조선인 주민에게 자행한 극도로 잔인한 만행임을 밝히고 있다. 한국의 일제강점하 강제동원피해 진상규명위원회도 2008년 ‘사할린 미즈호 조선인 학살사건 진상조사’ 보고서(조사책임자 방일권)를 낸 바 있다.
세계한인의 날인 5일 사할린 유즈노사할린스크 주립도서관에서 한-러 우호 문학의 밤이 열렸다. 이날 가포넨코의 저서가 우리말 번역판 <사할린 미즈호 마을의 비극>(새문사 펴냄)으로 첫선을 보였다. ‘1945년 8월 일본인의 한인 학살만행에 대한 추적과 기록’이라는 부제가 달렸다. 장한나씨가 번역하고, 김병학 시인이 감수를 맡았다.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유레카] 사할린 미즈호 마을의 비극 / 손준현
등록 :2015-10-06 18:31
참혹한 학살은 전쟁이 끝난 뒤에 벌어졌다. 1945년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했다. 그 직후인 8월20일부터 며칠간 일본인들은 사할린 미즈호 마을에서 조선인 27명을 학살했다. 전쟁에서 진 분풀이와 함께, 조선인들이 곧 진주할 소련군을 도와 일본인들에게 해를 입힐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광기에 가득 찬 일본 극단주의자들은 조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한마을에 살던 젊은이와 노인은 물론 여성과 갓난아기까지 도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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