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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상 철거, 누구 마음대로/ 김선주 칼럼/ 한겨레신문

이윤진이카루스 2015. 11. 11.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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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주 칼럼] 위안부상 철거, 누구 마음대로

등록 :2015-11-10 18:36

 

지난 3일 일본의 <요미우리신문>은 한·중·일 정상회담을 다룬 사설에서 한-일 관계 개선을 가로막는 원인은 한국 쪽에 있다고 못박았다. 그리고 새로운 관계설정을 원한다면 한국이 서울 주한일본대사관 앞에 있는 위안부상부터 철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무슨 근거로, 누구 마음대로 이런 주장을 하는가 의혹이 들었는데, 어제(10일) 요미우리는 한-일 정상의 단독회담에서 아베 신조 총리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위안부상 철거를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오늘(11일)부터 한-일 국장급회의가 열려 위안부 문제를 논의한다고 한다. 단독회담에서 한 말이라니까 두 정상만이 아는 일일 텐데 우리 국민은 일본 신문 보도를 통해서 얻어듣고 그런갑다 할 뿐, 아베의 주장에 대한 답이 ‘예스’였는지 ‘노’였는지 알 길이 없으니 기가 막힌다.

일본 쪽의 입장은 확실하다. 1965년 체결한 한일협정에 두 나라의 과거와 관련된 모든 문제는 “완전하게 최종적으로 해결되었다”고 명기되어 있고, 일제 36년의 과거사는 그것으로 종결되었기 때문에 한국 쪽에 빚진 것이 없다는 것이다. 다만 국제적인 여론을 생각해 인도적 견지에서 ‘아시아여성기금’을 만들어 민간으로부터 돈을 모금해 위안부 61명에게 배상을 했으니 충분하다는 주장이다. 당시 한국 민간단체들이 기금의 이름이나 성격이 모호하고 일본 국가의 책임을 회피한 것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일부는 수령을 거부한 채로 위안부 문제는 지금에 이르렀다.

일본이 항상 근거로 삼는 한일협정이란 무엇인가. 지금 대통령의 아버지가 1965년 체결한 한일협정을 들고나와 ‘아버지가 이룬 것을 부정할 것인가’라고 압박하는 것으로 들리기도 해서 나로선 심히 불편하고 뒷골이 땅긴다.

1965년 대학 신입생인 나에게 대학은 하루도 편할 날이 없는 데모의 현장이었다. 학교 정문엔 선배 대학생들이 진을 치고 앉아 대학으로 진입하려고 곤봉과 방패로 무장한 경찰들과 대치했다. 5·16 군사쿠데타 직후 대학생들과 군사정권의 관계는 무탈했다. 곧바로 민정이양을 하고 군 본연의 자세로 돌아간다고 한 공약을 국민 대부분은 믿었고, 그들이 군복에서 민간인복으로 갈아입고 20년 동안 독재를 할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다.

1964년 한일회담의 굴욕적인 내용이 알려지면서 대학가는 불이 붙었다. “한-일 굴욕외교”, “제2의 을사늑약”이라며 대학가는 들끓었고, 곧 계엄령이 선포되고 대학생들이 잡혀 들어갔고 군인들이 대학에 진입한 것이 6·3 사태다. 그런 가운데 탄생한 것이 바로 1965년의 한일협정이다. 당시에도 한일회담을 반대하면 공산주의, 즉 북을 이롭게 하는 행위라고 단죄했다.

그 전 이승만, 장면 정부 모두 미국의 종용으로 한일회담을 시도했지만, 우리 쪽의 요구는 30억달러 정도였고 일본이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달랑 8억달러. 1965년 한일협정으로 10년에 걸쳐 일본에서 받은 돈이다. 개인 보상은 없고 국가 차원의 보상으로 갈음했다. 세계에서 몇번째로 못살고 봄만 되면 보릿고개로 주린 배를 움켜쥐고 살던 그 시절에 8억달러는 상당한 것이었을 수도 있다.

그 돈이 경제개발의 종잣돈이 되었고, 어찌보면 우리 사회의 인프라를 구축할 수 있는 모태가 되었을 것이다. 다른 한편으론 독재 시작의 종잣돈이었을 수도 있다. 나중에 알려진 바로는 일본의 민간기업을 통해 집권당인 공화당에 6600만달러가 흘러들어갔다니 근거는 충분하다.

김선주 언론인
김선주 언론인
이것이 역사다. 역사에는 양면이 있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그러한 역사적 사실들을 올바로 인식하고 있어야만 우리는 지나간 역사에서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해서는 안 되는지를 배울 수 있다. 일본이 대놓고 요구한 위안부상의 철거부터 시작한다면 1965년 정권적 차원에서 졸속으로 이루어진 한일협정의 재판이 될 수도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일본 쪽에 “피해자들이 받아들이고 한국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해결”이어야 한다고 했다. 옳은 말이다. 단지 그것을 누가 판단할 것인지 걱정스럽지 않을 수 없다. 눈을 크게 뜨고 지켜볼 일이다.

김선주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