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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전쟁 고발/ 한겨레신문

이윤진이카루스 2015. 10. 9. 13:37

문화문화일반

‘목소리 소설’ 개척…여성·아이들 입 빌려 전쟁 참상 고발

등록 :2015-10-08 21:13수정 :2015-10-08 22:30

 

노벨문학상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8일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벨라루스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작품들이 8일 스웨덴 스톡홀름에 있는 스웨덴 한림원에 전시되어 있다. 독일어를 포함한 여러 나라 언어로 번역된 그의 작품들이 보인다. 스톡홀름/AFP 연합뉴스
8일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벨라루스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작품들이 8일 스웨덴 스톡홀름에 있는 스웨덴 한림원에 전시되어 있다. 독일어를 포함한 여러 나라 언어로 번역된 그의 작품들이 보인다. 스톡홀름/AFP 연합뉴스
2015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목소리 소설’(novels of voices)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작가다.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실존 인물들의 인터뷰를 바탕 삼은, 논픽션에 가까운 글들을 그는 선보인다. 노벨상 수상 소식과 거의 동시에 한국어판이 나온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박은정 옮김, 문학동네)가 대표적이다.

1983년에 집필을 끝냈으나 검열 때문에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 이후인 1985년에야 출간된 이 책은 그동안 전쟁에 관한 역사서나 문학 작품에서 소외되었던 여성들의 입을 빌려 2차대전의 다른 면모를 들려준다. 남성들의 전쟁 서사가 승리와 패배, 이념과 대의 같은 큰 틀에 갇힌 반면 여성들의 전쟁 이야기는 한층 개인적이고 일상적이다. 전쟁에 참전했거나 목격한 여성 200명의 목소리를 담은 이 책을 두고 여성학자 정희진은 “만일 ‘노벨 평화문학상’이 있다면 이 책은 최초의 수상작이 될 것이다”라고 썼다.

우크라이나 군인 가족의 딸
인터뷰 바탕으로 생생한 글 선봬
“삶에 다가갈 수 있는 문학방법 탐색”
아프간 침공·체르노빌 참사도 다뤄

알렉시예비치는 자신이 주력하는 ‘목소리 소설’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나는 실제 삶에 가능한 한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문학 방법을 찾아 왔어요. 현실은 언제나 자석처럼 나를 끌어당겼지요. 나를 고문하고 마취시킨 그 현실을 종이 위에다 포착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실제 사람의 목소리와 고백, 증언과 증거서류를 활용하는 이 장르를 채택했어요. 개별 인물들의 목소리로 이루어진 합창과 시시콜콜한 일상사의 콜라주, 이것이 내가 세계를 보고 듣는 방식입니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1948년 우크라이나에서 군인 가족의 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벨라루스 사람이었고 어머니는 우크라이나인이었다. 그는 민스크에 있는 벨라루스 국립대학교 언론학과를 졸업한 뒤 몇개 지역신문에서 기자로 일했으며 문학잡지에 적을 두기도 했다. 옛 소련 시절에 반공산주의 및 투항적 세계관으로 비판을 받았던 그는 독립 벨라루스에 새로 들어선 군부 사회주의 정권과도 불화를 일으켰으며 그 결과 2000년에 벨라루스를 탈출해 파리와 베를린 등지에서 지내다가 2011년에 민스크로 돌아갔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과 함께 1985년에 나온 또 다른 작품 <마지막 증인들: 천진하지 않은 100가지 이야기>는 아이들의 눈으로 본 전쟁 이야기였다. 1989년에는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야기를 다룬 <아연 소년들>을 통해 그동안 신화화했던 이 전쟁의 폭력적이고 범죄적인 측면을 까발렸다. 1993년에 낸 <죽음에 매료되다>는 소련 사회주의의 몰락 이후 새롭게 들어선 질서에 적응하지 못하고 ‘죽은 이념’과 함께 자살을 기도한 이들의 이야기다.

1997년에 낸 <체르노빌의 목소리: 미래의 연대기>는 알렉시예비치라는 이름을 세계적으로 널리 알린 작품이며 그의 책 중에서는 처음으로 2011년 한국에서도 번역 출간되었다. 1986년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로 죽거나 살아남은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핵전쟁 이후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책이다.

알렉시예비치는 현재 사랑을 다룬 새 책 <영원한 사냥의 훌륭한 사슴>의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다. 다양한 세대의 남자와 여자가 자신들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이다. 이 책에 대해 작가 자신은 이렇게 말했다.

“그동안은 사람들이 어떻게 서로 죽이고 죽는지에 대한 책을 써 온 것 같아요. 하지만 그게 인간 삶의 전부는 아닙니다. 이제 저는 사람들이 어떻게 서로 사랑하는지 쓰고 있어요. 이번에는 사랑의 프리즘을 통해, 다시 한번 저 자신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져요. 우리는 누구이고 우리가 사는 나라는 무엇인가 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