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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알타이 암각화/ 박하선/ 한겨레신문

이윤진이카루스 2015. 10. 31. 11:46

국제국제일반

수만년전 몽골 알타이 암각화는 누가 그렸을까

등록 :2015-10-30 19:43수정 :2015-10-31 10:09

 

고비 알타이 아이막의 ‘바양 올’이라는 마을 주변에 있는 ‘수직 바위’라는 뜻의 ‘하난 하드’. 성소처럼 느껴지는 이곳에 그려진 대단위 암각화와 그 전경. 박하선 사진가
고비 알타이 아이막의 ‘바양 올’이라는 마을 주변에 있는 ‘수직 바위’라는 뜻의 ‘하난 하드’. 성소처럼 느껴지는 이곳에 그려진 대단위 암각화와 그 전경. 박하선 사진가
[토요판] 르포
▶ 박하선 다큐멘터리 사진가가 지난 9월21일부터 이달 4일까지 중앙아시아 알타이, 고비 등을 다녀와 사진과 글을 보내왔다. 낯선 땅에서 만난 벽화를 통해 그의 작업 주제 중 하나인 한국 고대사와의 연관성을 탐구했다. 박하선 사진가는 외부인이 접근하기 힘든 티베트의 장례의식을 담은 ‘천장’ 작업으로 2001년 세계적인 월드프레스포토 상을 수상했다. 지금도 아시아의 오지를 돌아다니며 삶과 죽음, 역사와 시원을 담고 있다.

‘알타이’(Altai)라는 말은 어렸을 때부터 들어왔기 때문인지 낯설지가 않지만, 정확하게 어느 지역을 말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알타이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은 일반인들에겐 아직 생소하다.

몽골 알타이 암각화 위치
몽골 알타이 암각화 위치
알타이 산맥은 몽골과 러시아, 중국, 카자흐스탄과 국경을 접하는 고지대 오지이다. 요즘 들어 이곳은 고대 문명의 발상지 중 하나로 학자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여러 설화나 민속 등을 통해서 우리 한민족의 원류 중 하나인 ‘부여족’의 뿌리가 이곳이라는 것을 짐작하게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유전자 검사를 통해서도 그 가능성이 조금씩 입증되고 있다. 특히 ‘알타이’는 ‘황금(金)’이라는 뜻으로 ‘신라’의 지배층이었던 경주 ‘김(金)’씨가 이곳 알타이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이 천마총 발굴 자료 등을 통해 알려지고 있어 우리를 놀라게 하고 있다.

생생한 고대문명의 흔적

의 흔적 세계 곳곳의 고대 인류가 살았던 곳에는 그 흔적들이 여러 형태로 남아 있다. 알타이의 암각화도 그중의 하나다. 특히 몽골 알타이의 암각화들이 시대성과 다양성을 비롯한 여러 면에서 인정받아 201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따라서 이번 취재의 목적은 몽골 북부 알타이 지역에 흩어져 있는 암각화들을 찾아 기록 촬영하는 것이었다.

몽골 알타이 산맥의 중심이라 말할 수 있는 곳은 서쪽 끝인 ‘홉드 아이막’(Hovd aimag: 아이막은 한국의 행정단위인 ‘도’에 해당)과 ‘바양얼기 아이막’(Bayan-ulgii aimag)이다.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프로펠러가 달린 항공편을 이용해 3시간 정도 날아가 도착한 곳이 ‘홉드’다. 유네스코에 지정된 암각화군이 있는 곳은 바양얼기 쪽이지만, 그보다 먼저 동남쪽의 고비 알타이 아이막의 ‘바양 올’이라는 마을 주변 일대에 흩어져 있는 또 다른 암각화군을 찾았다.

고비 알타이 아이막의 ‘노곤 혼드’의 산 위 바위에 집단으로 그려져 있는 암각화. 박하선 사진가
고비 알타이 아이막의 ‘노곤 혼드’의 산 위 바위에 집단으로 그려져 있는 암각화. 박하선 사진가

몽골 북부 알타이 지역에 흩어진
암각화들을 찾아 기록·촬영 작업
사진이나 그림들을 보여주면서
손짓 발짓으로 물으며 현장 찾아
넓은 저수지에서 바늘찾기 형국

초원·사막 지나고 산 넘어 만나는
암각화들은 그야말로 보물찾기
염소와 양, 사슴, 소, 사람 그려져
마치 현대의 회화를 보는 듯
남녀가 성행위 하는 장면까지

‘하난 하드’(수직 바위)의 일부는 오랜 세월을 견디다 못해 무너져 내렸지만 위아래, 좌우 곳곳에 빽빽하게 그려져 있어 당시에 제사 터를 비롯한 어떤 특정한 장소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암각화 앞에서 향토사 학자인 파슨 도르처가 안내를 하고 있다. 박하선 사진가
‘하난 하드’(수직 바위)의 일부는 오랜 세월을 견디다 못해 무너져 내렸지만 위아래, 좌우 곳곳에 빽빽하게 그려져 있어 당시에 제사 터를 비롯한 어떤 특정한 장소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암각화 앞에서 향토사 학자인 파슨 도르처가 안내를 하고 있다. 박하선 사진가
‘하난 하드’의 암각화가 있는 곳의 게르에서 생활하는 유목민 꼬마. 박하선 사진가
‘하난 하드’의 암각화가 있는 곳의 게르에서 생활하는 유목민 꼬마. 박하선 사진가

이곳은 수년 전 국내의 학자들이 답사를 하고 난 뒤 알려진 곳이다. 일단 그 보고서의 정보에 의존해 찾아 나서기는 했지만 쉽지가 않았다. 길다운 길이 없고, 안내판 하나 없으며, 눈앞에 보이는 모든 사막성 지형물들이 똑같아 보이기 때문이다. 또 말은 잘 통하지 않는데 사진이나 그림을 보여주면서 손짓 발짓으로 물어보고 싶어도 사방 천지 어디에도 사람 그림자 하나 찾아볼 수 없었다. 그야말로 넓은 저수지에 빠진 바늘 찾기를 하는 형국이었다. 한참을 헤매다 다시 마을로 돌아와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었다. 관공서에서 한 노인의 안내를 받아야 한다며 그 노인이 있는 곳을 알려주기에 차를 타고 10여㎞ 초원길을 달리니 그 노인이 사는 ‘게르’가 나왔다. 향토 사학자인 듯한 파슨 도르처라는 그 노인은 일전에 국내 학자들이 왔을 때도 안내를 맡았다고 하면서 길 안내에 흔쾌히 응해줘서 천군만마를 얻은 듯했다.

각종 동물들과 마차가 등장하는 ‘하난 하드’의 암각화. 박하선 사진가
각종 동물들과 마차가 등장하는 ‘하난 하드’의 암각화. 박하선 사진가
남녀가 성행위 하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박하선 사진가
남녀가 성행위 하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박하선 사진가
초원과 사막을 지나고 산을 넘어 만나는 암각화들은 그야말로 보물찾기였고, 전혀 예상할 수 없는 곳에서 만나는 그것들은 보석처럼 다가왔다. 염소와 양, 사슴, 소, 그리고 사람 등등이 그려져 있는 암각화들은 마치 현대의 회화를 보는 듯했다. 수천년 전의 목동들에 의해 그려졌다고 하기에는 너무도 생생하게 느껴졌다. 주로 산 아래쪽 어두운 색깔의 판판한 바위에 분포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바위그림들이 널브러져 있는 것이다. 사냥하는 모습은 물론이고 수레바퀴도 등장하고, 남녀 성행위 하는 장면까지도 등장한다. 고대 목동들이 그냥 심심해서 낙서하듯 그렸을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짜임새도 있고 예술성도 있어 보이는 고대 예술가들의 작품이라 해야 할 듯하다. 어떤 바위에는 집단적으로 그려져 있으면서 내용 또한 뭔가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듯해 문자가 없는 그 시대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기록물이라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리면서 카메라를 다루는 손끝이 가볍게 떨려왔다. 그 대표적인 곳이 바로 ‘수직 바위’라는 뜻의 ‘하난 하드’라는 곳인데, 일부는 오랜 세월을 견디다 못해 무너져 내렸지만 위아래, 좌우 곳곳에 빽빽하게 그려져 있어 당시에 제사터를 비롯한 어떤 특정한 장소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겨울이 시작되는 계절이라 하루해가 무척 짧다. 마을까지는 너무 먼 곳이기에 캠핑을 하기도 했지만 밤에는 눈까지 내려 너무 춥다. 다행스럽게도 어느 유목민의 게르에서 그 식구들과 함께 하룻밤 신세를 졌는데 난데없는 손님맞이에도 부담없어하는 그들의 표정에서 공동체 의식이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바양얼기 아이막의 아랄 톨고이에서 만난 사냥꾼과 큰 사슴이 새겨진 암각화. 널찍한 바위에 집중적으로 갖가지 동물과 사람이 그려져 있었다. 박하선 사진가
바양얼기 아이막의 아랄 톨고이에서 만난 사냥꾼과 큰 사슴이 새겨진 암각화. 널찍한 바위에 집중적으로 갖가지 동물과 사람이 그려져 있었다. 박하선 사진가
아랄 톨고이의 ‘첼링 동굴’ 안에 그려진 1만2000년 전 벽화. 박하선 사진가
아랄 톨고이의 ‘첼링 동굴’ 안에 그려진 1만2000년 전 벽화. 박하선 사진가

“여기는 금지구역, 돌아가라”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암각화군들은 바양얼기 아이막에 속해 있는데 ‘차간 살라’와 ‘차간 골’, 그리고 ‘아랄 톨고이’라는 곳이다. 국립공원에 속해 있을 뿐만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와의 국경이 인접해 있는 서쪽 끝 고지대의 오지이기 때문에 국립공원 관리공단과 국경수비대의 특별 허가를 먼저 받아야만 했다. 하지만 정작 문제가 된 것은 차량 수배였다. 고비 알타이 지역에서 함께했던 운전수가 그쪽은 잘 알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이 계절에는 너무 위험해 갈 수 없다고 한다. 할 수 없이 다른 차량을 수배하게 되었고, 몽골어가 통하지 않는 카자흐족들이 사는 곳이라 길 안내를 받기 위해서는 카자흐어를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이 꼭 필요하다고 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기에 더 많은 정보가 있을 줄 알았는데 사진 한 장 구경하지 못한 무지의 상태에서 그 깊숙한 오지로 찾아 나섰다. 안내판은 물론이고 제대로 된 길조차 없어 우리가 가는 곳이 길이 되었다.

먼저 ‘차간 살라’와 ‘차간 골’을 찾아 나섰다. 어쩌다 유목민 게르가 하나씩 보이는 것이 고작이고 주변의 산에는 벌써 눈이 쌓여 하얗게 빛나고 있는 오지다. 하지만 운이 좋았는지 도중에 만난 노인 한 명이 그쪽을 잘 알고 있어 동행했다. 알고 보니 그 일대의 ‘이장’쯤 되는 분으로 암각화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산을 넘고 넘어 도착한 ‘차간 살라’의 암각화는 러시아 국경에 바짝 붙어 있었다. 하긴 그 옛날 이 암각화를 그린 당사자들은 국경이라는 것 자체를 모르고 자유롭게 이동하면서 살았을 것이다. 지금까지 보았던 다른 지역의 암각화들과는 사뭇 달랐다. 먼저 널찍한 바위들의 형태가 달라 보였고, 집단적으로 그려져 있으며 내용이 좀더 풍부하였다. 거기다가 연조가 좀더 오래되어 보이는 것으로 봐서 과연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될 만하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어느 한 바위에는 동물들 사이에 사람의 옆모습이 크게 그려져 있어 마치 현대미술을 연상케 하는 것도 있고, 다른 곳에서 볼 수 없었던 동물들도 큰 그림으로 그려져 있었다. 적어도 3500년 이상 된 것이라는데 그 많은 세월을 견디고 지금까지 선명하게 남아 있다는 것 자체가 놀랍고, 이들이 던지는 메시지가 무엇일까 하는 궁금증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것은 분명 시원찮은 도구만으로 그린 고대 유목민 예술가들의 작품이다. 지금 누구에게 그리게 한다고 해도 예술적 감각 없이는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큰 산’이란 뜻 ‘아랄 톨고이’엔
화살 맞은 채 도망가는 동물들
거대한 뿔 사슴은 단연 압권
유네스코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이곳의 그림은 12000년 되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지만
안내판과 특별 보호장치 없이
방치되어 있다는 것이 놀라워
암각화 표면의 코팅처리가 고작
유목민과 가축이 밟고 지나다녀

마지막으로 찾아 나선 곳이 ‘큰 산’이라는 뜻의 ‘아랄 톨고이’의 암각화다. 이곳은 중국과 국경이 접해 있는 오지로 가도 가도 끝이 없는 험한 곳이다. 도중에 만난 군인들은 허가를 받고 왔음에도 금지구역이라며 길을 막고 돌아가라고 한다. 그렇지만 여기까지 와서 물러날 수 없는 일, 통사정도 하고 억지 세금도 더 내며 위기를 넘기다 보니 암각화를 찾기도 전에 산간에서 밤이 되었다. 텐트도 챙겨 가고 먹을 식량도 있었지만 영하 15도를 넘나드는 추위 속에서 야영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아무도 살지 않을 것 같은 깊숙한 오지에 다행스럽게도 유목민 집이 하나 있었다. 몽골족도 아니고, 카자흐족도 아닌 ‘투바족’ 내외가 밤늦게 난데없이 나타난 이방인들에게 서슴없이 잠자리를 내주었다.

아랄 톨고이의 알타이 암각화 마을 사람들이 신성시하는 찬드만 벌판엔 고대 묘지군이 있다. 이곳에서 마을주민이 ‘쿠누 초도’라 하는 사람 모양의 돌비석을 만지고 있다. 박하선 사진가
아랄 톨고이의 알타이 암각화 마을 사람들이 신성시하는 찬드만 벌판엔 고대 묘지군이 있다. 이곳에서 마을주민이 ‘쿠누 초도’라 하는 사람 모양의 돌비석을 만지고 있다. 박하선 사진가

운주사 석인상과 흡사한 ‘쿠누 초도’

두 군데로 나뉘어 있는 아랄 톨고이의 암각화는 또 달랐다. 널찍한 바위에 집중적으로 갖가지 동물들과 사람들이 그려져 있는데, 사냥하는 모습에서 날아가는 화살들과 화살을 맞은 채 도망가는 동물들의 모습까지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그중에서도 거대한 뿔을 가진 큰 사슴 그림이 단연 압권이다. 이곳이 예사로운 자리가 아니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유네스코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이 암각화들은 놀랍게도 1만2000년 전쯤의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들은 과연 누구였을까? 이 암각화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는 평지에 고대 묘지군이 있었다. ‘키릭수르’라 말하는 수십개의 돌무지와 ‘쿠누 초도’라 말하는 사람 모양의 돌비석이 서 있는 곳이다. ‘쿠누 초도’는 마치 전남 화순 운주사의 석인상과 아주 흡사하다. 이 무덤들은 기원전 ‘훈족’들의 지배층 무덤이라 알려져 있다. 특이하고 궁금하게 만드는 것은 ‘보그트’라 말하는 여러 개의 돌비석들이 각각의 무덤과 무덤 사이를 1열로 연결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 돌무지 무덤들이 별자리를 의미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본다. 아무튼 독특한 장례문화를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이 암각화의 주인들이 기원전의 훈족들이었을 거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 중에 1만2000년 전의 것들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아직까지는 이야기에 불과하지만 어쩌면 이곳의 원주민이었다는 ‘알타이 부여족’이 동쪽으로 이동하기 전에 남긴 흔적일 수 있다고 생각해 본다.

전남 화순 운주사의 석상과 비슷해 보이는 아랄 톨고이의 고대 무덤 앞 쿠누 초도. 이곳에 집단으로 몰려 있는 무덤들은 기원전 훈족들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박하선 사진가
전남 화순 운주사의 석상과 비슷해 보이는 아랄 톨고이의 고대 무덤 앞 쿠누 초도. 이곳에 집단으로 몰려 있는 무덤들은 기원전 훈족들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박하선 사진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 암각화들이지만 안내판은 물론이고 특별 보호장치 없이 방치되어 있다는 것이 놀랍다. 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 암각화 표면에 코팅처리한 것이 고작일 것이다. 그래서 더 자연스러워 보이는 것일까. 유목민들이나 가축들이 거리낌 없이 밟고 지나다닌다. 어쩌면 수천년의 세월을 이렇게 지내왔는데 지금에 와서 호들갑을 떨 일은 아닐 성싶다. 알타이 역사의 수레바퀴는 오늘도 이렇게 자연스럽게 굴러가고 있는 것이다.

고비 알타이·홉드·바양얼기/박하선 사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