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교동계 역시 비슷했다. 디제이(DJ·김대중 전 대통령의 애칭)는 아랫사람에게 함부로 반말을 하지 않고 ‘박 실장’ ‘권 고문’ 이런 식으로 불렀지만 끈끈함과 동지 의식은 상도동계 못지않았다. 충성심과 애정으로 가득 찬 계파 의식은 ‘보스’를 대통령으로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집권 이후엔 적지 않은 정치적 부담이 된 것 또한 사실이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엔 최형우 김덕룡 서석재 등이 정부 부처 인사를 나눠 먹는다는 얘기가 끊이질 않았다. 김대중 대통령은 잇단 게이트와 인사 논란에 휩싸였던 권노갑 한화갑 등 동교동계 중진들을 임기 말엔 아예 보려고 하지 않았을 정도다. 상도동과 동교동계는 한국 정치의 고질인 ‘패거리 문화’의 상징이었다.
그 이후 정치적 계파라 부를 수 있는 건 ‘친노’와 ‘친박’뿐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세력을 뜻하는 ‘친노’는 통상적 계파와는 좀 다르다. 윤태영 전 청와대 대변인은 “친노라는 말이 나돌기 시작한 건 노 대통령 임기 말로 기억한다. 열린우리당 해산 논란이 거세지면서 당내에서 (우리를) ‘친노’라고 불렀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렇게 세력이 기우는 와중에 탄생했기에 보스가 강력한 공천권을 행사한 적이 없다. 더구나 노 전 대통령은 이미 세상을 떠났다. 그의 사후에도 ‘친노’란 이름이 선명히 남은 건 바깥에서 지속적으로 그렇게 낙인찍었다는 점과, ‘노무현’이란 이름에 기대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일부의 바람이 맞아떨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오히려 상도동계와 흡사한 건 친박이다. 보스의 강력한 장악력, 대통령 만들기에 온몸을 바친 충성스런 가신들…, 그러나 친박은 상도동계일 수 없다. 지금 친박계 실세를 들라면 정부에선 최경환 경제부총리, 새누리당에선 윤상현 의원을 꼽을 수 있다. 그런 윤 의원도 2012년 7월 정두언 의원 체포동의안 부결에 찬성했다가 미움을 사서 12월 대선이 끝날 때까지 박근혜 후보와 전화통화 한 번 제대로 하질 못했다고 한다. 정권 출범 이후 박 대통령과 사이가 멀어진 몇몇 인사들 역시 지금까지 관계가 회복됐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그러니 진박, 가박, 탈박, 복박과 같은 언어유희적 분류법만 횡행한다.
과거 상도동계·동교동계엔 그래도 동지가 있고 참모가 있었다. 친박계엔 오직 시종과 메신저만 있을 뿐이다.
박찬수 논설위원 pcs@hani.co.kr
박찬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