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조계사에서 25일을 버티다(?) 11일 경찰에 자진출석했다. 조계종이 경찰의 경내 진입과 강제연행 등 파국을 피하도록 했다. 총무원장인 자승 스님은 경찰이 강제진입을 예고하자 직접 나서 본인이 책임을 떠안는 등 요즘 보기 드문 리더십의 모범을 보였다. 화쟁위원장인 도법 스님은 한상균 위원장에게 합법집회를 요청했다. 5일 2차 민중총궐기 대회가 평화집회로 이어진 데는 조계종의 역할이 컸다.
조계종으로선, 할 만큼 했다. 그러나 조계종은 처음부터 끝까지 경찰의 경내 진입 저지가 최우선·유일 목표처럼 보였다. 불교신자인 한 위원장은 조계사로 들어오며 “나는 폭동을 일으킨 사람이 아니고 해고된 노동자”라며 “고통받는 중생을 보듬어 달라”고 했다. 그러면서 △평화로운 집회 보장 △노동자 대표와 정부의 대화 △정부의 노동법 개정 중단 등 3가지를 중재해 줄 것을 요청했다. 조계종은 평화집회 외 나머지 두 사안에는 전혀 이룬 바가 없다. 도법 스님은 이에 대해 “정부에 대화를 요청했으나, 정부나 민주노총 양쪽 다 벽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조계종에 무리한 요구일 수도 있다.
지난 2010년 설립된 조계종 화쟁위원회는 4대강 문제, 철도노조 파업 등 우리 사회의 갈등 해결에 종종 나섰다. 그러나 조계종에는 2012년 설립된 노동위원회도 있다. 그런데 왜 이번에 노동위원회는 나서지 않고, 화쟁위원회만 나섰는가? 이에 대해 조계종 쪽은 ‘노동위원회가 아직 이를 감당하기 힘들다’고 말한다. 그러나 외부에서 보기에는 조계종이 이번 사안에 대해선 ‘골칫거리’ 한 위원장이 어서 빨리 조계사를 떠나주기만을 간절히 바라는 것으로 비춰졌다. 원효의 화쟁 사상은 ‘부처님의 법계에 맞고 틀린 것이 없으며, 다 옳다’는 종교적 깊음으로, 다양한 사상 간의 대립을, 소통으로 화해시켜 더 높은 차원의 통합을 이뤄내자는 뜻이다. 비정규직 양산을 막자는 노동자 생존권 투쟁에 ‘정부와 민주노총이 서로 화해하라’(화쟁)니, 약자에게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도법 스님은 94년 개혁종단 사태 때에도 오랜 단식에 나서는 등 늘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는 분이다. 하지만 도법 스님은 인터뷰에서 한 위원장에 대해 “어느날 갑자기 조계사 경내로 떨어진 불덩어리”라고 했다. 그리고 “거기에 타서도 안 되고, 그걸 식히고 가라앉혀서 불을 꺼내기도 해야 했다”고 했다. 조계종은 타지 않았고, 그 ‘불’을 꺼내 내보냈다. 그런데 ‘불’은 여전히 식지 않았다. 총무원장 자승 스님은 마지막 인사를 하러 온 한 위원장에게 “몸도 챙기며 정진하라”며 자신의 염주를 벗어 건네는 측은지심을 보여줬다. 더는 없었다.
한 위원장은 애초 명동성당에 피신하려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명동성당은 지난 2000년 한국통신 노조원 농성 이후 사전허락을 받지 않은 성당 내 농성은 불허한다. 1987년 명동성당은 상계동 판자촌 주민들에게 8개월간 공간을 내줬고, 6월 항쟁 때는 경찰들이 성당으로 피신한 학생들을 잡겠다며 진입하려 하자, 김수환 추기경이 “경찰이 들어오면 맨 앞에 내가 있을 것이고, 그 뒤에 신부들, 그 뒤에 수녀들이 있을 것이오. 그리고 그 뒤에 학생들이 있을 것이오”라고 말했다. 경찰은 들어가지 못했다.
오늘날 종교가 사회로부터 점점 외면받는 것은 ‘그들만의 신앙’으로 스스로 유리되기 때문이다. 성경의 오병이어 기적도 교회에선 ‘잘 믿으면 잘 먹고 잘 산다’고 할 때가 많다. 예수는 먼저 이렇게 말했다. “내가 무리들을 불쌍히 여기노라. 저희가 나와 함께 있은 지 이미 사흘이매 먹을 것이 없도다. 만일 내가 저희를 굶겨 집으로 보내면 길에서 기진하리라. 그중에는 멀리서 온 사람도 있느니라,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느냐?”
권태호 디지털 에디터 ho@hani.co.kr
권태호 디지털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