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를 위하여

서민 공감 없는 시대의 비극 / 최종건 연세대 교수/ 한겨레신문

이윤진이카루스 2016. 1. 6. 08:12

      

사설.칼럼칼럼

[세상 읽기]

등록 :2016-01-05 18:40

 

20대 총선이 100일 남짓 남았다. 정당과 후보들은 서민을 위한 여러 공약을 선보일 것이다. 선거 때마다 남용되는 키워드 ‘서민’. 그러나 선거가 끝나면 서민을 위한 정책은 대부분 사라진다. 서민은 세상 풍파에 휘둘릴 사람들이다. 서민은 일상을 열심히 사는 시민의 또 다른 이름이다. 정권은 서민의 고충을 공감하고 이 공감에 근거한 정책을 펼쳐야 할 의무가 있다. 민주정권은 고통받는 서민들의 아픔을 애도하고 통감할 수 있는 공감능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공감은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이 시대에 가장 힘없고 서러운 서민은 바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다. 세월호 참사에 자식을 잃은 부모들과 한시적 계약직에서 고용 불안에 떠는 노동자들은 나약한 하루하루를 보낸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자신의 서러움을 공감해주는 세상이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만큼 서민에 대한 공감이 결여된 정권이 있을까.

 

지난해 12월28일 박근혜 정부는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완결되었다고 했다. 일본 정부가 진정한 사과를 했는지 모르겠다. 아베 총리의 사과는 보지도 듣지도 못했다. 사과란 “잘못했다”는 반성, “내가 나빴다”는 책임 인정, 그리고 “다시는 안 그럴게”라는 약속의 총합이다. 사과라는 발언과 행위는 피해자의 고통을 공감할 때 진정성을 띤다. 이번 합의에 그러한 공감의 흔적은 없다. 오히려 위안부 고통의 상징물인 소녀상을 이전해야 한다는 일본의 진심에 박근혜 정부는 공감한 듯하지만, 대한민국의 가장 약한 서민인 위안부 할머니의 고통에는 공감하지 않았다.

 

박근혜 정권의 위안부 합의는 지난 3년간 정권이 보여준 공감부재의 연속일 뿐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이 정권은 자식을 잃은 부모들의 아픔에 공감하지 않았다. 오히려 부모들을 거리로 내몰았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역사의 다양한 해석을 배우고 가르칠 권리와 의무에 대한 사회적 공감을 박탈한 술수이기도 하다. 대통령은 다양한 의견과 논쟁을 조정하여 사회의 공감을 확대하기보다는 “가만히 있으라”고 한다. 반박하는 목소리들에게 통일대박이라는 허상과 안보 위협의 칼날을 내밀어 서민을 배제하고 고립시킨다.

 

그런데 말이다. 지난 3년간 경제 불황 속에서 대한민국은 약 9조1300억원 규모의 세계 최대 무기 수입국이 되었다. 이 정권은 미국이 전세계에 수출하는 재래식 무기의 20% 이상인 8조2000억원어치를 수입하면서도 한미 동맹 강화를 위해서 한일 군사협력이 필연적이라고 주장한다. 한미일 군사안보 강화라는 강대국의 논리는 고작 100억원어치의 돈으로 기억과 고통에 대한 침묵을 서민에게 강요한다. 미국과 일본의 입장에서 위안부 문제라는 걸림돌을 말끔히 치워버린 것이다. 결국 2016년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약한 서민인 위안부 할머니들의 공감을 저버리고 중국을 겨냥하는 한미일 군사협력을 한일 간의 군사정보 공유, 미사일 방어, 군수지원을 통해 가속화하는 원년이 될 것이다.

 

최종건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강대국의 관점에서 대한민국 서민의 공감은 애초에 고려 사항도 아니다. 이 모든 것이 우리 정부가 앞장서 우리의 이익보다 그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듯하다. 다시금 선거기간에 남용될 서민이라는 키워드에 얼마나 진정성이 있을지 모르겠다. 공감 없는 정치는 타협과 술수만 난무한다. 박근혜 정부의 지난 3년이 앞으로 펼쳐질 더욱 고단할 서민 불행 시대의 서막이 아니길 바란다. 이것이 비약이길 바란다.

 

최종건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세상읽기’의 새 필진으로 참여한 최종건 교수는 연세대 정치외교학과에서 국제정치이론, 국제안보를 연구하고 강의하는 학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