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
문재인 하면 그 선한 눈망울이 떠오른다. 착하다는 말이 딱 어울리는 정치인이다. 어려우면 거들어주고자 하고, 힘든 걸 보면 돕고자 하는 게 착한 심성이다. 따라서 누군가를 대변하고 대표해야 하는 정치인에게 착함은 더할 수 없이 소중한 덕목이다. ‘착한 문재인’, 우리 정치의 귀한 자산이다.
그런데 착하다고 해서 좋은 정치인이 되는 건 아니다. 정치는 다른 사람의 삶을 다루는 영역이다. 그래서 정치의 질에 따라 보통사람의 삶이 달라진다. 늘 다툼과 소란이 일어나고, 치열한 갈등과 대립이 불가피하다. 착하기만 하면 자칫 무능하기 쉽다. 정치 컨설턴트 딕 모리스가 ‘개새끼’라는 악평을 가진 후보를 당선시킬 때, 그는 어려운 시대에 우리 몫을 잘 챙기려면 이처럼 거친 인물을 대표자로 내세워야 한다는 논리를 폈다. 착한 정치인이 새겨야 할 교훈이다. 게다가 지금이 바로 먹고살기 힘든 시대 아닌가.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은 ‘착한 후보’였다. 하지만 그가 과연 ‘좋은 후보’였는가 생각해보면 아쉬움이 많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후보 시절 보여줬던 강렬한 시대 상징성이 그에겐 옅게 나타났고, 자신이 속한 정파를 넘어 야권 전체를 이끌어 가는 리더십에서 유약한 모습을 보여줬다. 민주당의 희한한 대선평가보고서가 적시한 패배책임론에서 그는 한명숙, 이해찬에 이어 3위를 했다. 선거는 일면 후보 간의 게임이다. 성패의 가장 큰 책임이 후보에게 있을 수밖에 없다. 단순다수제에선 일종의 숙명이다. 따라서 문재인이 책임의 무게에서 3등 했다는 건 그가 착한 후보에 머물렀다는 방증이라 하겠다.
사실 문재인은 민주당에 마땅한 후보가 없어 본의 아니게 불려나왔다. 준비할 겨를이 없었다. 게다가 당은 무능했으니 그가 그 정도 득표했으면 잘했다는 생각도 한편 든다. 그렇다고 해서 문재인이었으니 그나마 그 정도 선전했다는 평가만 가능한 건 아니다. 109만표, 3.6%포인트 차이라는 박빙의 싸움이었다. 공표가 금지되는 선거 6일 전의 여론조사에서 문재인과 박근혜 후보의 지지율은 붙었다. 선거 후 조사 결과를 보면, 유권자의 10%가량이 선거일로부터 3~4일 전에 지지 후보를 결정했다. 문재인이라서 엄청난 변화열망을 온전하게 담아내지 못했다는 얘기도 가능하게 하는 데이터다. 요컨대 후보가 막판에 조금만 더 잘했더라면 이길 수 있는 선거였다.
정치인은 유능해야 한다. 선의든 간계든 간에 자신이 대변하고 대표하는 유권자에게 더 나은 삶을 가져다줘야 한다. 그런데 이 유능함은 착함과 별개다. 어쩌면 서로 배치되는 개념일 수도 있다. 착함은 의도를 말하지만, 유능함은 결과를 말한다. 착해서 이런저런 제약을 스스로에게 가하다 보면 결국 패배하기 십상이다. 막스 베버가 정치인에게 책임윤리를 주문하는 것도 바로 이런 점 때문이다. 차이와 다름을 극복하고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내는 유능한 리더십이 좋은 정치의 요체다.
착한 문재인은 좋은 정치인으로 변신해야 한다. 어떻게? 정치활동을 자제하는 소극적 자세가 아니라 대중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대중의 삶 속에서 자신의 생각을 벼리고, 열망을 담아내야 한다. 또 문재인 어젠다를 준비해야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균형발전과 탈지역주의를 평생의 일념으로 추구했듯이 그도 자신의 가치와 비전이 담긴 어젠다를 가져야 한다. 선거 때 불쑥 그 시대가 필요로 하는 어젠다를 꺼내 든다고 해서 대중이 믿어주지 않는다. 정치학자 키의 말대로 투표하는 대중은 바보가 아니다.(Voters are not fools.) 변신과 준비에 성공해야 2017년이 환하게 웃으며 문재인을 꼭 껴안을 것이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